인간을 통한 사단의 시험을 이기신 그리스도.
삼상 6 : 10-12.
시험에 든다는 말은 사단의 꾀임에 넘어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길을 가지 못하도록 사단[벨리알-꾀는자]은 장해물, 덧, 함정을 놓아 방해한다. 여기에 빠지지 않는 것이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다.
사단은 우리의 선조 하와에게 그랬듯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단의 말을 더 신뢰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진실을 외곡 시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으려 한다.
사단은 그리스도에 대한 직접적인 시험이 실패하자 간접적으로 인간을 통하여 세상에 있는 동안 끊임없이 시험했다.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 육신 적인 시험 또는 물질적인 시험만 시험으로 아는 경향이 종종 있다. 고난이 오고 사업이 실패하고 몸에 병이 들고 하면 시험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고난이 오는 것은 대다수가 시험을 받은 결과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시험을 받으실 때에 병이 들었거나 사업에 실패하였거나 한 시험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1. 율법사를 통해 율법을 아느냐 알지 못하느냐 하는 시험이다.
(눅10:25)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율법사를 통하여 확신의 여부를 시험했다. 이 율법사는 자기는 계명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믿었던 사람이다. 율법사는 다른 사람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이 율법사가 예수임께 와서 시험하는 이유는 계명을 지키지 아니해도 구원받는다고 하면 율법을 범하는 자라고 해서 고소하려 하였던 것이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장차 주님의 십자가의 대 속의 진리를 무익하게 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로 이기셨다. 주님은 율법의 정신을 말씀하셨으니 율법의 정신은 사랑이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의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결국 인간의 구속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구원은 선행에 대한 보상이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며 은혜가 아니다. 은혜는 나의 죄 값을 면제해 주는 것이 은혜이고 내가 죄 값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는데 그 죄를 용서하고 대신 책임져 주시기 때문에 그것이 은혜이고 사랑인 것이다.
대부분이 이단자들이 우리들에게 와서 시험하기를 말씀을 잘 아느냐 잘 알지 못하느냐를 시험한다. 그리고 말씀의 일면만 가지고 전체인 것처럼 시험한다. 그리하여 말씀이 지식이 약한 자들에게 진리를 잘 알지 못하는 연약한 자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려고 유혹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말씀에 확신하고 진리 위에 굳게 서야 한다.
기독교를 믿는 자들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보이지 않는 영에 대한 말씀이고 성경이 나 개인의 하나만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고 우리 한 세대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한 말씀이고 역사 안에 모든 인간을 위해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만을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니고 과거에 현재에 미래의 시대에 모든 인간들을 위해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과거에 역사이며 현재의 삶이며 미래에 대한 예언인 것이다.
우리가 가진 지식 또한 마찬 가지이다. 개인이 안다는 것은 한 부야에 대하여 안다는 것이지 모든 지식을 다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한 지식의 가지를 공부하고 그 분야에 대하여만 잘 알 수 있다.
일반 성도들은 신학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지식을 온전히 가질 수 없다. 신학공부를 했다 하더라도 신학문은 너무나 광범위하기 때문에 기초 공부에 불과하다. 또한 모든 인간이 가지는 지식은 나무의 한 가지에 불과한 것이다.
이단자들은 이점을 이용하여 어느 한 부분의 조각 지식을 마치 전체를 다 아는 것처럼 성도들 유혹한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하여 미처 생각하지 못한 성도들은 대변할 수 없다. 그러기에 쉽게 유혹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경을 주신 기본적인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라고 주신 것이지 연구하고 헤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영원한 생명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을 믿으라고 주신 것이다.
신학적인 학문은 이단자들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은 자들의 지식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외곡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의 지성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대하여 진리에 대하여 아는 지성이 상실되었다. 검은 색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검게 보이고 붉은 색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붉게 보이는 것이다. 마찬 가지로 우리 인간은 지성과 마음과 시각이 죄로 오염되어 색깔이 변하여 있어서 하나님과 진리를 바로 줄 수가 없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 가지의 나무로 전체를 알 수는 없다. 열매가 없는 가지 하나를 가지고 이 나무는 열매가 있다 없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우주선을 발사할 때에 소련에 우주 비행사와 미국의 아폴로 11호를 탄 비행사가 보는 견해 차이가 이었다. 소련 비행사는 말하기를 “내가 달나라를 갔다 왔는데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더라”고 했다. 그러나 암스트롱은 고백하기를 “이제 우리는 기도할 것밖에 없다”고 했으며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했다.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 하는 것은 우주 전체를 다 다녀와 본 후에 말해야 할 것이다. 겨우 달 하나에 다녀와서 전체 다 다녀 본 듯이 말하면 어리석다. 또한 소련 비행사가 찾는 하나님하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하고 다른 것이다.
그는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찾으려 했고 우리는 영적인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또한 이방 종교인들은 대부분 자신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대다수가 자신의 선행의 공적이 구원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롬7:18-19)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 도다.
(롬7:24-25)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바울은 자신이 선하게 살아 보려고 무척 노력을 했다. 그러나 노력하면 노력하는 만큼 인간이 얼마나 무능력한 가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무능력을 탄식하였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우리들에게 주신 것은 물론 지키라고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 율법을 주시면서 제사 제도를 주셨다. 내가 믿는 하나님께 용서 받는 제도인 것이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는다면 제사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제사 제도를 주신 것은 지은 죄를 용서 받게 하기 위한 것이다.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이 죄악 된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죄를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율법을 통하여 죄를 알게 하고 그 죄를 용서 받을 있도록 제사를 주신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이다.
인간이 율법을 온전히 지킨다면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기에 주님께서 대속을 이루어 놓으시고 회개하여 의에 참례하도록 하신 것이다. 인간 자신이 어떤 능력으로 구속을 이루려 하는 것은 인간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요 성도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시험에 지름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을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말씀위에서 있어야 한다. 우리의 선조 하와가 시험에 넘어간 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먹지 마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 과일을 먹으라는 사단의 말을 믿고 행하였기 때문이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행하였어야 했다.
율법을 지켜 구원을 받는 다는 가르침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도록 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하려는 사단의 속임수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는 율법사의 질문에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나에게 주신 율법을 통하여 죄를 깨달아 회개하는 것이며 그 율법의 정신인 사람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위로는 사람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내 몸처럼 사랑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고 말씀하셨다.
2 바리새인들을 통해 신적인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했다.
(마16:1-3)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했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면서 많은 표적을 행한다고 들었는데 우리들 보는 앞에서 한번 능력을 나타내 보이라 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 앞에서 이적을 행하시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표적에 대한 소문을 들었으면 믿어야 할 것이다.
내가 이적을 행한 것이 한 번 두 번이 아니고 날마다 행하는데 내가 그렇게 많은 이적을 행해도 믿지 아니하면서 새로운 기적만 추구하는 너희들의 마음이 강퍅할 대로 강퍅하여 아무리 행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은 내가 요나처럼 십자가에 죽었다가 살아야 믿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너희들에게 그 표적밖에 보일 것이 없다고 했다.
만약 예수님께서 이들의 요청대로 응하였다면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이 이런 시험에 얼마나 많이 시달리겠는가? 오늘날 성도들을 가장 많이 미혹하는 것이 이적에 관한 유혹이다. 그리하여 심지어 최면술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속이는 일들이 종종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천하보다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믿음을 주시려고 경우에 따라서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필요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것이지 인간에게 이적을 과시 하여 보이려 하거나 자랑하려고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간절히 기도할 때에 능력으로 도우신다. 이러한 체험을 한 성도들이 수 없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 기도의 응답도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지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병자를 위하여 기도한다고 해서 모든 병자가 다 고쳐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서 이루어 주신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마치 능력을 지니고 다니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이 다스리는 것처럼 말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사실상 능력이 없다. 소리만 요란하다. 이것은 시험에 빠진 행위이다.
3. 제자를 통해 대속을 가로막는 시험을 했다
(마16:22-23)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시고. 했다.
사단은 사랑하는 제자인 베드로를 이용해서 인정을 동원하여 시험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인간 베드로를 보시지 않으시고 베드로 안에 역사하는 사단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너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고 책망하셨다. 베드로는 사람의 일을 생각했다.
자신의 장래의 문제를 생각하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 자신들의 꿈이 깨지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 임금이 되시면 자신은 신하가 되리라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인간적인 애정으로 스승이 죽는다고 하므로 당연히 말려야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단아 물러가라 하였다. 사단은 예수님이 계시는 마지막까지 시험하였다. 예수님은 시험을 이기셨다. 예수님이 이기지 아니 하였으면 우리는 영원한 사단의 예속물이 되었을 것이다. 믿는 자에게 가장 이기기 어려운 시험은 인정을 통한 시험이다. 그러기에 주님께서 원수가 네 집안에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인정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일이 많다. 인정에 관계되어진 것이면 신앙도 박차고 바른 교훈도 박차는 경향이 있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때로는 인정 때문에 큰 시험에 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시험 중에 이삭 독자를 제물로 바치라는 명을 하셨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부성에를 끊고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쳐 신앙승리를 했다. 그러나 제사장인 엘레는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므로 부성애를 끊지 못하여 패하게 되었다. 다윗은 밧세바의 관계인 애정을 끊지 못하여 범죄하였다. 그리하여 가정이 실패 했다. 그러나 욥은 모든 인정을 끊고 믿음을 지키므로 성공하였다.
믿는 자가 때로는 인정을 초월해야 할 것을 성경은 말씀하신다.
[삼상 6:10-12]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11)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12)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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