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제자들
메시아 사역은 십자가의 대속 사역이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기 때문에 그 죄를 해결하므로 영원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여호와의 신의 뜻이 메시아 사역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그 대속의 사역이다. 그 대속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대속 사역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알려서 그 구원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다.
그 대속의 사실을 전하기 위해 12제자를 선정하여 그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 죽고 다시 부활한 사실을 전하고 그것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사실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전하라고 했다.
그리스도가 생존할 때 직접 부른 제자는 12제자다. 그런데 그중에 가룟유다는 그리스도를 배신하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목던 날 그도 배신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목메어 자결했다.
[마 28:18-20]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
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막 16:15-16]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가룟 유다가 죽자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온 교회가 모여서 제자를 선택했다. 그중에 맛디아라는 자가 보선되었다.
[행 1:6-8]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마 10:2-4]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행 1:24-26]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
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은 후 부활한 그리스도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울이란 사람을 불렀다. 이는 그 당시 가말리엘 문하 생으로 율법을 공부한 사람이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며 언어에 능통한 사람이다.
[행 9:3-7]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
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이 모두를 합하면 그리스도의 제자는 13제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가 부른 자 11사람 교회 회에서 선택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그리스가 부활한 후에 부른 바울 13명의 제자이다.
1. 그리스도 생존시 부른 제자들.
1) 베드로(Peter)
베드로는 수제자(首弟子)라고 일컫는다. 원래 이름은 시몬(Simon)이라는 그리스식 이름이었는데, 예수가 그에게 케파(Cephas-반석)라는 아람어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 이름을 그리스어로 옮긴 것이 페트로스이다.
신약 성경에 베드로의 이름이 세 가지로 나타난다. 베드로, 시몬, 게바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요나]이며 전통적으로 어업에 종사한 사람의 가정이다.
시몬 - 제자가 되기 전에 부친이 지어 준 이름이다. 의미는 비둘기라는 의미이다.
베드로 - 그리스도가 지어 준 이름이다. 의미는 반석이라는 의미이다.
게바 - 아람어로 베드로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베드로는 원래 베싸이다에 살았으나 그리스도의 공생활이 시작될 때쯤 결혼을
하여 가버나움에 살았다. 가버나움은 적은 항구도시이다. 그리스도가 전도할 때에 베드로의 집에 머물면서 전도했다.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결혼한 제자이다.
예수의 승천 후, 베드로는 명실공히 교회의 으뜸가는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마티아를 새로운 사도의 일원으로 뽑을 때 주도적 역할을 하였고, 이른바 오순절(五旬節) 이후 '성령의 도움으로' 많은 군중에게 설교하여 교도수가 급증하였다. 또 그는 사도들 중 첫번째로 기적을 행하여, 절름발이를 고쳤다(사도 3:1∼11).
유명한 마술사 시몬을 꺾어 개종 시키었다 시몬이란 마술사가 있었다. 이는 마술로 자신은 신의 능력으로 행한다고 속였다. 그 속임수를 베드로가 폭로하였다. 그러자 베드로를 정면 대항하여 자신이 신의 능력을 힘입어 공중을 날으면서 재주를 부렸다. 이를 베드로의 능력으로 그를 떨어뜨렸다. 떨어진 시몬은 죽었다. 그 후 다른 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해 버렸다.
개종자 중에 로마 황제의 총독 알바누스의 아내 구산티베가 개종하였다. 이로 인하여 총독은 베드로를 심히 미워했다. 그리하여 베드로를 죽이려 하였다. 제자들이 이 사실을 알고 베드로를 피하라 권면하였다. 그리하여 로마를 빠져나가게 되었다. 가는 도중에 로정에서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묻자 그리스도가 말하기를 네 대신 로마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로 한다”고 하자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돌아와 그는 잡혀서 십자가에 못밖히게 된다 아내와 같이 십자가에 못박힌다. 순교하는 아내에게 주님을 생각하시오 라고 했다. 그러자 “당신도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주님이 십자가에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죽었으니 자신은 거꾸로 십자가에 달아 죽이라고 자청하였다. 이 형장에는 로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믿는 자는 이렇게 죽인다는 본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광경을 바라보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살아서 전한 사람들보다 이 죽음을 보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생명을 던져 복음을 전하고 죽었다.
예수가 그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었다는 이야기 때문에 사람들은 천국의 문에서 베드로가 문지기처럼 사람들의 입장을 허가하거나 거부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그리스도교권의 나라에서 베드로는 남자 이름으로 흔히 사용된다. 피터, 피에르, 페드로, 피에트로, 표트르 등등이 모두 베드로에서 나온 이름들이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6월 29일을 베드로와 바울의 축일로 삼는다. 또한 가톨릭에서는 2월 22일을 성베드로 사도좌 축일로 기념한다. 즉 베드로가 그날에 초대 교황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베드로는 어부였으므로 교황들은 자신의 이름과 베드로의 모습이 새겨진 '어부의 반지'를 지니고 있다.
2) 안드레(Andrew)
그리스도의 12사도 중 한 사람. 갈릴리 호반 벳세다의 어부로서 신약 성서 요한 복음 1장 35절 이하에 의하면, 베드로의 아우이며 최초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다고 한다. 안드레는 원래 세례요한의 제자였다. 그러다가 세례요한이 그리스도를 증거하자 그리스도를 따른 사람이다. 그러므로 제자 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사람이다.
안드레는 성격은 조용하면서도 일하는데 있어서는 큰 야망이 있었던 사람이다. 이는 전도 지식을 택할 때에 야만족을 택했다.
이 당시 갑바도기아, 바드니아, 갈라디가, 비쟌틴에서 설교하다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전도한 곳이 수구디아 현재 러시아 콘트 족이다 코트 족은 난폭하기로 유명한 족속이다. 또 해적의 나라 영국, 스코틀렌드 이다. 이들은 섬사람들이기에 해적의 근성이 있었다.
안드레의 선교로 영국은 세계의 신사 나라가 되었다. 스코틀렌드는 보수신앙인 장로 교회의 신앙 중심지가 되었다. 이 스코틀렌드 신도들이 미국에 건너와 오늘의 기독교 국가를 만들었다.
안드레는 헬라지방 바스라스에서 X자 형틀에 순교하였다. 이 지방에 지사에게 [아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 맥시밀러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 그러나 그 남편 아게아스가 아내가 죽으면 자기도 같이 죽겠다고 칼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드레가 찾아가 기적적으로 살렸다.
그런데 그 아게아스는 기독교를 매우 반대하는 사람인데 이로 인하여 아내가 믿게 되자 은혜를 저버리고 아내를 박해하고 안드레를 미워하였다. 그러던 중 그의 종 스트라스토클레스라는 사람이 중병에 들렸는데 안드레가 고치게 되니 이 종도 그이 친구들 종들이 믿게 되었다. 그러나 아게아스는 이 종들도 미워하였다. 그 후에 자기 형제들도 믿게 되었다.
그러자 아스라는 안드레를 죽이려고 체포하였다. 그는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면 쉽게 죽으니 고통을 더 주려고 나무에 매달아 주리고 목말라 죽게 하였다. 안드레는 자기를 X자 십자가에 달아 달라고 요청하였다. 집행자들에게 매를 많이 맞고 주리고 목말라 죽었다.
주후 337년 스코틀렌드 임금으로 헝거스가 되었다. 남쪽 잉글렌드와 전쟁을 하게 되는데 어느 날 저녁 꿈에 안드레가 나타나 이기리라 예언하였다. 그리하여 그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승리하기까지 그의 눈에는 안드레의 십자가가 떠나지 아니 하였다. 그리하여 파란 하늘에 X형 십자가를 새긴 국기를 삼아 마침내 체택 되었다. X현 십자가는 스코틀렌드 국기가 되었다.
3)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Iakob Jemes)
신약성서에 야고보가 3인이 나타난다. 하나는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 그리스도의 동생 요셉의 아들 야고보이다. 이 세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의 제자인데 요셉의 아들 야고보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후에 믿은 사람이다.
야고보는 요한의 형제이고 요한의 어머니는 살로메이다. 살로메는 마리아와 자매지간이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육신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사촌 형제지간이다.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는 큰 야고보라 칭했고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라 칭했다.
야고보는 사도시대 아그립바 1세(헤롯 아켈라오의 아들)에게 주후 37년-44년에 순교한다. 헤롯의 가문이 3대를 이어 오면서 왕위에 있었는데 아그립바는 바로 헤롯의 4째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 아켈라오에게 낳은 손자이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와 카에사레아의 신학자가 쓴 글에 의하면 야보고의 순교할 때에 증언이 있다. 로마의 관리가 그를 연행하여 재판석으로 끌고 갔다. 야고보가 유창한 말로 그리스도를 증언하자 크게 마음이 움직여 그도 기독교인이라고 고백했는데 그 관리도 사형언도를 받았다. 그가 형장으로 가는 도중에 야고보에게 야고보를 연행해온 죄를 용서를 구했다. 야고보는 조금 생각한 후에 주님의 은혜로 평안할 지어다 하고 그에게 입을 마추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함께 목베임을 당했다. 그러기에 순교자는 둘인 셈이다. 사도로서는 최초의 연소 순교자이다.
4) 요한(John).
신약 성서에 요한이 여러 사람이 있다. 세례요한, 베드로의 아버지 요한, 마가 요한, 제사장 요한, 세베데의 이들 요한 즉 사도 요한이다.
세베데의 아들 요한은 야고보와 형제지간이다. 어머니는 살로메이다. 갈릴리의 어부로서 종업원을 두고 어업을 했던 그 당시 부유한 가정의 아들이다. 일찍부터 가정을 등지고 주님을 따른 제자이다. 그의 어머니는 살로메인데 극성스런 성격의 소유자이며 아들에 대한 욕심이 많은 여자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세상 왕으로 오해하고 그리스도가 왕이 되면 자기의 두 아들을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하기도 했다.
요한의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 황경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극성스러운 만큼 하나님을 섬기는 일도 적극적인 분이었다. 예베소 교회 감독의 플라크라테스 서신에 이런 글이 있다.
예루살렘 뒷골목에 그슬린 작은 집이 있다 지금은 아랍 사람의 집인데 원래 세베대의 집이었다. 세베데는 갈릴리에서 생선업을 하였는데 예루살렘에 지점을 경영하였다. 이때 제사장의 가정에는 생선을 늘 공급하는 사람이 바로 사도 요한의 가정이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영향을 받아 사랑의 사도라는 칭하게 되된 것이다.
요한의 이름을 요하네스라고도 한다. [의미는 여호와의 깊으신 은혜]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별명을 주셨는데 보아너게이다. [우뢰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사랑의 제자로 부드러운 제자로 나타난다. 요한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릴 때에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와 함께 조용히 골고다까지 따라갔던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신실한 신임을 받은 자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면서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의 부양을 이 요한에게 의탁했다. 요한은 그를 에베소교회에 정주할 때에 같이 모시고 있었고 마리아는 거기서 죽었다고 한다.
요한은 에베소에 있다가 주후 81-96년에 도미티안 로마 황제의 핍박에 의하여 밧모섬에 위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요한게시록을 받아 기록하고 에베소에 돌아와서 순직했다고 한다.
사도 요한이 기록한 성경은 요한 계시록, 요한 복음, 요한1. 2. 3서 등인데 요한복음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 한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내면적인 마음을 가장 자세하게 나타낸 성경이다. 그리고 요한 1. 2. 3.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다. 그리고 계시록은 하나님이 인류에 대한 사랑을 전했다.
요한은 사랑의 사도이다. 요한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집회할 때에 청년 한 사람에 회개하여 알게 되었다. 마치고 그를 데리고 집회를 주관하던 감독에게 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증거로 이 청년을 맞깁니다.” 하고 그 감독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 청년은 친구들의 유혹으로 인하여 타락하게 되고 마침내 도적의 두목까지 되었다.
얼마 후 요한은 감독에게 욌다. 그리고 내가 맞겨 놓은 것을 달라고 하자 감독은 무슨 물건인 줄 알고 어리둥절하였다. 청년의 영혼을 돌려 주시오 하자 사실을 말하니 옷을 찟으며 “내가 맡긴 이 청년은 인도하라고 맡긴 것인데” 하면서 괴로워하고 슬퍼하였다.
요한은 인도자를 따라 도적의 소굴로 들어갔다. 부하들에게 포박되어 끌려갔다. 두목은 그를 알아보고 외면 하였다.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다. “왜 나를 피하는가 나를 생각하여 보라 겁낼 것 없다. 네 앞에는 희망이 있다. 네게 필요하다면 주님이 하신 것처럼 너의 받을 벌을 내가 받겠노라 내 생명을 바쳐서 너를 살 수만 있다면 바치겠다. 믿어다오 주께서 너를 위하여 나를 보내셨다.” 말했다.
두목은 칼을 잡았던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요한 앞에 나와 무릎을 꿇었다. 요한은 기도하고 그를 데리고 외서 자기 옆에서 신앙으로 키워 나중에 훌륭한 감독으로 키웠다.
인간의 영혼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의 사도였다. 한 영혼이 살 수만 있다면 자신의 생명이라도 아까워하지 아니하고 바치려는 숭고한 사랑의 사도인 것이다.
준다. 그는 마리아가 죽을 때까지 그를 모시고 살았다. 그리고 그가 84세 때에 고령에 강단을 지키게 되었는데 어느 날 걷지도 못하면서 제자들의 부축을 받고 올라와 설교를 하는데 그의 설교 제목은 언제나 “형제여 서로 사랑하자”였다. 그 때에 교인들이 실증이 나서 어째서 똑같은 말씀을 계속 하십니까? 하니 어째서 그렇게 같은 말씀을 실증이 나도록 해도 사랑하지 아니하느냐 하시며 이것은 주의 명령이니 아무리 말해도 괜찮다 하며 이것만 행하면 넉넉하다 하였다.
요한은 진리를 사랑하는 만큼 이단은 미워했다.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고 이를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지만 영혼을 해치는 이단자에 대하여서는 지극히 냉정하고 철저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행실에 참여하는 자임이라”하였다. 영혼을 사랑하는 만큼 인단자를 미워한다. 이단자에 대하여 관대하는 자는 그의 마음이 반절은 이단에 기울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이단에 빠질 사람이다.
사도요한 당시 케린더스라는 그노시스주의 이단자가 있었다. 이는 예수님의 가현설을 퍼트리고 다니던자다 가형설이란 말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츅신적인 부활이 아니라 제자들의 환상이다 말한다. )이다. 어느 날 예배소에 목욕탕을 가는데 마침 거기에 케린더스가 있었다. 그러자 요한이 고함을 지르기를 “하나님의 원수 케린더스가 여기 있으니 이 집은 무너질지 모르니 모두 나아 오라 하였다. ”
요한은 고난에서 승리한 사도이다. 요한은 마리아가 죽은 후에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도미티안 횡제에게 잡히게된다. 이는 황제숭배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도미티안 황제는 두말할 것 없이 처형명령을 내렸다. 기름 가마에 넣어서 죽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황제가 보는 앞에서 집행자들이 기름 가마에 넣었다. 그러나 오히려 얼굴이 밝아 죽지 아니하자 회가 치밀어 독약을 먹였다. 그래도 죽지 아니하자 이를 두려워하였다. 그리하여 에베소에서 멀리 떨어진 밧모 섬에 위배를 보내었다. (지금은 팟모사이다.)
그 섬은 길이 9키로 너비 17키로이다. 채석장이 있는 곳으로 사람이 살수 없는 무인도이다. 여기에서 주일날 혼자 예배드리며 기도 하다가 주님이 계시를 받게되었으니 바로 인류 역사의 장래를 보여 주신 오한 계시록이다. 그 후에 살아 돌아와 예베소 감독으로 있으면서 설교하다가 강단에서 숨을 거두시었다.
5) 빌립(Phlilip)
성경에 빌립이 3사람 나타난다. 1) 분봉왕 헤로디아의 남편 빌립이 있다. 2) 초대교회 집사 빌립이 있다. 3) 사도 빌립이 있다. 제자 빌립이라는 이름의 뜻은 필립(φιλιπποs)이다. “말(馬)을 좋아하는 자”란 뜻이다.
빌립은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 같이 벳세다 사람이다. 세례요한의 집에서 그리스도를 처음 본 사람이다.
빌립은 가시 책찍에 맞아 순교한 사도이다. 역사적인 구전에 의하면 빌립은 철학의 도시 아덴에서 전도하였다. 한번은 300명의 철학자들을 모여 있는데 설교하게 되었다. 새 학설이라 하는 면에서 모였을 때에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유창하게 전했다.
이들이 설교를 듣고 이해하기 위하여 3일간 여유를 달라 하였다. 부활의 사실 여부를 알아보려고 예루살렘에 사람을 보냈다. 그들은 하필이면 제사장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물으니 제사장들이 오히려 빌립을 잡으려고 500여명의 유대인과 함께 아덴에 오게 되었다. 이때에 빌립은 이들의 눈을 어둡게 하였다. 그리하여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달아날 때에 지진이 일어나 이들을 생매장시키었다. 이일로 인하여 잡으러 왔던 유대인들과 아덴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다. 빌립은 아덴에 1년을 유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 후 리비아 아시아 파르디아 등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마지막에 히에라포리스에서 순교 하였다. 순교하게 된 이유는 이 지방은 큰 뱀을 섬겼다. 빌립이 전도하자 많은 사람이 개종하였다. 그리하여 그 지방 사람 총독에게 미움을 받았다. 그리하여 빌립을 죽이려 하고 잡아다가 거꾸로 매달아 가시 채찍으로 때렸다. 견디다 못해 반항하려 하자 요한이 시도들과 함께 외서 악을 악으로 갑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듣지 아니하고 그들을 저주하였다. “대지로 저들을 삼키라고 하였다. 지진이 이러나 7000여명이 죽었다. 이 때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 내가 너에게 준 권능을 보복으로 삼았느냐 하고 책망하였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 일을 괴로워하였다고 한다. 그가 죽을 때에 유언하기를 내 시체를 마포로 싸지 말고 파피루스로 싸라 주님께서 세마포로 싸이셨는데 내가 같이 대우 받을 수 없다.” 했다.
이탈리아 고고학자인 프란체스코 단드리아(D'Andria)는 "우리는 수년간 빌립 사도의 무덤을 찾기 위해 터키 지역을 탐방했다"며 "마침내 한 달 전 폐허가 된 옛 교회를 발굴하다 빌립 사도의 무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단드리아 박사는 발견된 무덤 내부의 글과 구조를 보면 무덤 주인이 빌립 사도임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6) 바돌로매(Bartholomew).
바돌로매는 나다나엘과 같은 사람이다. 나타나기도 한다. 나다나엘은 바돌로매와 같은 사람이다. 이는 빌립에게 전도를 받고 빌립과 친절한 사이가 되었다. 갈릴리 가나 출신이며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다. 바돌로매(나다나엘)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인정할 만큼 신앙성품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사도가 되어 인도와 아르메니아에서 전도하였다.
빌립이 그에게 와서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나사렛 예수라 하니 어떻게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는가 하였다. 다시 성경에는 메시아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신다고 예언되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라 하니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바돌로매(나다나엘)는 부유한 가정에서 가정교육(성거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나사렛은 어울리는 말이 아니었다. 성경에 분명히 베들레헴서 나신다고 하였는데 나사렛에서 난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나고 확신한 그는 공감하게 개종하였다.
나타나엘은 인도에 선교한 사람이다. 바르톨로메오는 그리스도가 승천한 후 소아시아 지방인 프리기아와 리카오니아 등지를 거쳐 아르메니아에 도달해 그 곳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이교 사제들의 선동을 받은 아스티아제스라는 왕에 의하여 참수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다나엘에 대하여 기록이 있는데 [이는 머리털이 검고 살결은 희고 눈은 크며 콧마루는 높고 고수머리로 귀를 덮었다. 수염은 많고도 길며 키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았다. 흰 옷을 입고 붉은 빛 띠를 띠고 네 귀퉁이에 자색 보석을 네 귀에 단 외투를 입고 다녔으며 26년이나 이 같은 차림으로 살았으나 추하지 아니 하였다. 그는 낮과 방으로 늘 기도하고 그의 음성은 나팔소리같이 컸고 그에게는 주의 사자가 항상 옹위하였다.
이는 많은 이적을 행하였다. 임금이 미친 딸을 고치고 왕이 섬기는 우상의 거짓됨을 폭로하고 거기에 접한 악마를 추방하고 임금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은 바돌로매를 미워 하였다. 임금이 형제인 아스터아케스에게 모함하여 모함의 서신을 보냈다. 왕의 형제 아스티아케스는 바돌로매를 체포하여 곤봉으로 많이 때렸다. 그 후에 산채로 가죽을 벗겨 십자가에 달아 죽였다.]
이 기사는 아르메니아 교회에 소장되어 있는 그의 행적의 일부이다. 그는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주를 위하여 고난을 두려워하지 아니했다. 그의 피 값으로 우리가 복음을 받게되고 아르메니안 신학이 탄생하였다.
유명한 역사가인 제롬의 기록에 이런 기사가 있는데 주님이 부활하신 후 40일 계실 때에 함께 다니며 대화한 이야기 중에서 그의 질문이 있는데 “ 이 세상에가 제일 큰 죄가 무엇입니까? 이는 아버지를 봉사하는 사람에게 반항하는 사람이며 성령을 거스리는 죄라고 말하였다.” 라고 기록되었다.
바르톨로메오는 산 채로 칼에 의해 전신의 살가죽이 벗겨지고, 나중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머리가 베어지는 등 갖은 혹형을 당하였다.
그의 유해는 알바노 시에 정중히 매장되었다가 후에 메소포타미아의 다라 지방으로 옮겨졌고, 6세기에 시칠리아 섬 근처에 있는 리파리 섬에 이송되었다. 839년에는 사라센의 침략을 피해 베네벤토에, 983년에는 로마로 운반되었고, 오늘날에는 티베르 강 가운데 있는 한 섬에 건축된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에 보관되고 있다.
7) 도마(Thomas).
성경에 도마의 이름이 세가지로 나타난다. 토마, 디두모, 유다,이다 이는 제자 중에 의심 많은 제자로 알려 졌으나 확신을 얻은 후에는 성자로써 주님을 위하여 일생을 바쳤다.
도마는 인도에서 선교하고 순교하였다. 사도들이 선교지역 제비를 뽑을 때에 인도가 뽑혔다. 도마는 자신이 어떻게 인도 같은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가? 하고 염려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겁내지 말고 가서 전하라 명하셨다. 나의 은혜가 너에게 항상 있으리라 하셨다. 그러자 도마는 다른데 같으면 몰라도 인도에는 못가겠습니다. 했다.
얼마 후 아바네스라는 인도의 장군이 왕의 명령을 받아 예루살렘에 오게 되었다. 이는 궁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목공을 구하려 왔다. 이 때에 예루살렘 시장에 아바네스에게 나타난 사람이 있으니 은 30을 주고 목공을 사가라 하여 거래가 마쳤다. 도마는 자기도 모르게 은 30에 팔리게 되었다. 장군은 도마에게 물었다. 그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러자 도마가 말하였다. 나는 나무를 가지고 장기와 멍에와 삽과 배와 활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또 돌을 가지고 궁이나 신전, 법정의 기둥을 깎아 세울 수 있습니다. 하였다. 이리하여 도마는 임금에게 소개되고 궁전과 신전을 짓기 위해 설계하였다. 임금은 넉넉하게 돈을 주었다.
그는 받은 돈으로 전도하기 시작하였다. 가난한 자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마음에 괴로움이 있었다. 궁전이 마쳐지면 신전을 지어야 한다는 괴로움이다. 그러자 자신이 주님의 제자로서 궁전은 모르지만 신전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궁전만 짖고 신전은 짖지 않기로 결심하고 궁전을 짖는 동안 열심히 전도하다가 죽기로 결심하였다.
임금의 신하가 개종하기 시작하였다. 임금이 도마에 대하여 소문을 듣고 신하에게 물었다. 신하는 도마가 특별한 성자인 것과 그의 생활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주 금식과 단식을 하며 소금에 빵을 찍어 식사하며 냉수를 마시고 살며 날이 춥거나 더웁거나 한겹의 옷을 입고 살며 누구에게도 요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있는 것을 아낌없이 가난하고 어려운 자에게 나누어 주며 일생을 보냅니다. ”
얼마 후 왕은 도마를 불러 신전에 대하여 물었다. 그러자 도마는 올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왕이여 왕이 요구하신 신전보다 왕이 영원히 거하실 수 있는 신전을 지을 것입니니다. 그러나 지금 보실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실 때에 가지실 수 있습니다. 제가 지은 건축은 지상의 것이 아니고 천상의 것입니다. 이것이 죄가 되거든 저는 죽어도 좋습니다.”했다
당연히 왕은 노하여 왕명을 어긴 죄로 투옥시키고 죽이기로 하였다. 이 때에 왕의 동생 가드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이같은 처사에 화병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되고 유언하기를 “내가 죽거든 도마를 산채로 가죽을 벗겨서 불에 태워 죽이라”했다.
그런데 1일 후에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형제에게 말하기를 “그가 죽어 천상을 보는데 찬란한 궁전이 있는데 눈부셨다. 제일 낮은 데라도 살고 싶다고 원했다. 천사는 이 궁전은 도마가 지금 건설하는 궁전이라 말하였다. 자신이 도마에게 유언함 것이 죄로 느껴져서 괴로워 하다가 깨어났다. 그리고 형에게 출옥시키어 달라고 요청하여 출옥시키었다.
신앙을 회복한 후, 전설에 의하면 파르티아, 인도 등지에 가서 전도하다가 창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8) 마태(Matthew).
마태라는 의미는(μαθθαιτοs) “하나님의 은사”라는 의미이다. 마태는 가버나움 인근 항구의 세리였다. 세관에 앉아 있다가 그리스도에게 부름을 받았다.
마태는 최초의 2복음서 기록자이고 히브리인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이 대망하는 메시아 즉 왕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기 위하여 이 복음서를 기록하여 전하였다. 이 당시 저술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유명 작가도 아닌 자연인으로서 이 장구한 복음서를 기록한다는 것은 사명감이 기록할 수 없다.
고대 세계에서는 세리는 인간이 아니고 멸시받는 계급이다. 카케로는 말하기를 “신사와 일반들에게 적합하지 아니한 직업은 세리와 고리대금 업자라고 했다. 그는 그의 저서(지옥의 환상)에서 지옥으로 향하는 긴 행렬이 있는데 강폭자, 복술자, 간음한자, 매음업자, 세리, 아첨하는자, 밀고자, 백만장자, 고리대금업자, 배가 불러터진 자들이었다고 말했다. 세리도 지옥에 행열에 끼인 사람이다..
세리에 대한 유대인들의 정서는 대단히 좋지 않았다. 로마정부에서 징세를 잘 거두어 들이기 위하여 징수자들을 잘 훈련된 자들로 하여금 받아 드리게 하였는데 세금 징수에 유능하여 출세한 사람이 바로 헤롯이란 사람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금융 하청업을 주는데 그 하청을 받은 사람들이 로만인들이 있지만 대부분이 히브리인들이다. 이 세금 하청 업자들이 세리장인데 삭게오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마태는 그 세리장이 채용한 사람이다.
종교적인 면에서는 세금은 하나님께만 바치는 것인데 이방인들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지극히 억울한 일이라 하여 가급적 세금을 내지 않으려 했다. 세리들은 신권을 침해하는 도적같은 자들이며 강도 같은 자들이라고 인정했다. 세리는 회개한다해도 용서받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인정했다.
이들이 거두는 세금은 물품 구입세, 매도세, 다리건너는 세, 길 가는 통행세, 항구에 들어간 입항세, 시장사용하는 시장사용세, 도시들어가는 입도세, 수례를 몰고 그는 동물세, 강을 건너는 도강세, 베를 타는데 입선세, 부두 사용세, 상업 허가세, 가옥세, 안두세, 토지세 등인데 세리들은 결혼한 여자를 제외하고는 어디서나 수사할 권리를 가진다. 어디에서나 짐은 풀고 입은 의복을 벗기는 권리륵 가진자들이다. 세관 관리로 자기가 탄 나귀와 여행자의 나귀를 바꾸는 일이 빈번하고 여행지에서 비싼이 자로 돈을 바꾸어 준다. 이러기에 이들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라고 여겼다.
이렇게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고 자타가 인정하는 상황이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하나님게 버림받은 것처럼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자기를 부르실 뿐아니라 제자로 삼으신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었고 감사한 나머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했다.
그러자 바리세인들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면서 더럽게 하니 버림받은 자 어울린다고 정죄하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눅 5:29-31)로 말씀하셧다.
마태로 예수님은 따랐다. 자기의 직업을 버리고 따랐다.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의 직업을 버리고 주님을 다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주님을 다르면 어떤 앞날에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먹고 사는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영혼이 살길이 있다는 사실 앞에서 그 무엇도 미련이 없었다.
마태는 글로 복음을 전한 사람이다. 마태의 행적은 그다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복음서 첫 번에 마태복음이 나타난다. 복음서 중에 가장 처음에 기록된 말씀이다. 역사가인 유세비어스는 이렇게 말했다. “ 마태가 주님을 따를 때에 가지고 간 것은 펜뿐이었다. 주의 여러 제자 중에 오직 마태와 요한만이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필요상 이것을 썼다. 왜 썼느냐 하면 처음에는 히브리 사람들에게 전하다가 다른 나라에도 전하게 되므로 자기를 보내는 이들에게 그 기록을 남기고자 쓰게 되었다.
마태가 에수님 당시에 당장에는 활동하지 않았지만 그의 저서는 지금 대대에 수 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도 그랬다. 데오빌로 각하 한 사람을 위하여 누가복음을 기록했다. 영혼을 살기기 위한 열심히 그렇게 대단 했던 것이다.
마태의 순교하여 생명을 바쳤다. .소크라테스의 말에 의하면 사도들이 선교지를 놓고 제비를 뽑았다. 마태는 에디오피아에 할당되었다. 마태의 죽음에 대하여 클레멘스는 신혜드린 공회원들에 의하여 사형을 당했다고 한다.
마태의 활동에 대해서(안드레와 마태행전)에 잘 나타나 있다. 앵글로 색손의 시인 키눌로스는 이렇게 기록했다. 마태는 빵과 포도주를 먹을 줄 모르고 고기와 사람의 피를 마시는 인종이 사는 지역으로 파송된다. 그 인종은 외국국인을 무조건 잡아 마취약을 먹여 30일동아 가두어 둔다. 마태도 잡혀서 같히게 되었다. 안드레가 이 소식을 듣고 마태를 구하려고 27일 날 배를 타게 되는게 풍랑을 만나게 된다. 안드레로 과거에 그리스도께서 풍랑을 잔잔하게 하신일이 있다면 그리스도가 계시면 풍랑도 잔잔하게 될 것인데 하였다. 그 배를 그런데 노를 젓는 사공이 너무도 능숙하게 노를 저어 육지에 이르르게 되었다. 사공에게 16년간 항해했지만 당신 처험 능숙하게 노를 젓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말하자 그것은 내 노를 젓는 능력이 아니라 당신이 그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에 어떤 능력이 나를 도와 주었기 때문이라고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다.
안드레가 마태가 갇쳐있고 감옥에 이르르게 되어 기도하였다. 감옥문이 열리게 되고 270명의 남자와 49명의 여자 죄수가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 사실을 알고 안드레를 잡으려 했다. 안드레가 숨어 지내다가 주님의 제자로서 어엿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모습을 나타내자 잡아다가 며칠동안 학대를 받았고 다시 자신이 감옥에 가게 되엇다. 안드레도 감옥에 같혀 있면서 전도하여 여러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마태도 식인 종들을 교화하고 그들에게 전도했다. 그리고 마귀를 쫒아내고 기적을 행하였다. 추장이 마태의 능력을 질투한 나머지 장차 자신의 지위에 위기를 느끼고 잡아 죽이려 했다. 마태를 기름 종이로 쌓서 아스팔트를 칠하고 유황을 발라 장작더미 위에 불을 렀다.. 마태로 그 나무에 불이 붙기전에 부활하여 두 천사가 데리고 올라가게 되었다. 왕이 그 관경을 보고 회개하였다. 그리고 안드레를 석방시키고 그에게 복음을 들었다. 마태는 이렇게 최후를 마치면서도 자기를 희생하고 한 나라 부족의 영혼을 살리고 자기 사명을 다하고 그리스도 앞에 이르게 되엇다.
9)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Jemes).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에 행적에 대해서는 성경에 잘 나타나 있지 않기에 잘 알 수 없다. 신약성경에 사도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 외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그리고 구전에 의하면 그는 페르시아에서 전도하다가 순교한 사실이 있다. 그러므로 그의 인생은 간략하게 알페오의 아들로 태어나 사도로 부름 받아 순교하여 일생을 마쳤더라고 기록된다.
야고보는 알패오와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며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라는 것 외에는 거의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다음의 행적은 알패오의 야고보고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동일 인물이라는 가정 하에서 기술된 것이다.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와 친척 관계였으므로 야고보 역시 예수와 혈통이 이어져있기 때문에 친척에 해당한다. 때문에 그는 ‘예수의 형제(마태 13,55)’ 또는 ‘예수의 동생(갈라 1,19)’으로 언급된다.
야고보는 열심 당원이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열심당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야고보, 다대오, 시몬, 가룟 유다이다. 가룟 유다도 민족을 위해서는 열심한 자이다. 열심당이란 말은 애국자란 말이다.
이 당시 로마의 지배하에 행정관이 된 자들을 유대인들을 지독하게 미워했다. 이들을 보면 매국노라 하여 증오하였고 이들을 암살하는 자들이 열심당이었다. 다시 말하면 극렬 민족주의 파에 속한 자들이다.
야고보는 그리스도가 생존해 있을 때 예루살렘에서는 활동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의 업적이 기록이 없다. 다만 이방 땅에서 전도하다가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만 전해져 왔다.
신약성서에서는 그에 관한 언급이 별로 없으나 전승에 의하면 그는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두터워 엄격하고 경건한 수양 생활을 했기 때문에 고기와 술을 일절 입에 대지 않았으며, 외모를 가꾸지 않았고, 긴 겉옷과 망토만 몸에 걸치고 맨발로 돌아다녔다고 한다. 오랜 기도생활로 그의 무릎은 낙타의 발바닥처럼 되었다. 또한 유대인으로서의 율법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잘 준수하였다.
야고보는 어린 시절부터 예수와 매우 가깝게 생활을 함께하였고 70인 제자 중에 한 제자로 부름을 받았다. 성령 강림 이후,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탁받아 예루살렘의 첫 번째 주교로 선출되어 교회를 다스리며 포교 활동을 열심히 하였다(사도 12,17; 21,17-18).
전승에 따르면, 야고보는 그를 시기하고 경계하던 바리새 파에 의해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바리새파는 부활절 날 야고보를 강제로 끌어내어 예루살렘 성전에 끌고 가 각종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며 배교할 것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야고보가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며 버티자 화가 난 바리새 파는 즉시 그를 성전 꼭대기에서 떠밀려 떨어뜨린 다음 일제히 돌로 쳤기 때문에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10) 다대오(Thaddaeus)
유다, 다대오는 그리스도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유다는 ‘존경받는’ 또는 ‘찬미하리’라는 뜻이며, 타대오는 ‘마음이 크고 넓다’는 뜻이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형제 관계이며 가룟 유다와는 다른 사람이다.
기독교의 성자로서 축일은 10월 28일이다. 상징물은 책과
곤봉·배이다. 회화에서는 같이 순교한 시몬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종종 표현된다.
누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는 그를 유다라고 부르고 있지만(루카 6,16; 사도 1,13),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그를 타대오라고 부른다.
신약성서에서는 그에 관한 언급은 유일하게 사도들의 이름을 나열할 때 뿐인데, 총 4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최후의 만찬 당시 유다 타대오는 예수를 향해 “주님, 주님께서 왜 세상에는 나타내 보이지 않으시고 저희에게만 나타내 보이시려고 하십니까?” 라고 물어보기도 하였다(요한 14,22).
전승에 의하면, 성령 강림 이후 유다 타대오는 시몬과 함께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복음을 전파하였고, 페르시아 제국 지역으로 가서 포교 활동을 벌였는데, 예수에 대해 설교한 뒤 그 곳의 신상을 파괴하였다. 그러자 자신들이 여태껏 섬겨왔던 신상이 부서지자 분노한 현지인들은 그들에게 달려들어 포박한 후 죽였는데, 어떻게 순교하였는지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11) 시몬(Simon)
시몬은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스라엘의 민족주의 정당인 혁명당원(zelotes)이었다고 한다. 이름의 뜻은 ‘응답하셨다’ 또는 ‘들으심’이다. 로마 가톨릭에 의해 지정된 축일은 10월 28일이며, 동방 정교회에 의해 지정된 축일은 5월 10일이다. 흔히 톱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구전에 따르면 시몬은 알패오와 클레오파스의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와 형제지간이라고 한다.
성서에 따르면, 시몬은 가나안에서 태어나 자랐으며(마태 10,4), 사도가 되기 전에는 바리새 파로 구성된 극단적인 유대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열심당의 일원이었으며, 마카베오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로마 제국으로부터의 유대인 해방을 부르짖었다.
그래서 로마인들과 그들에게 순종하는 동족 유대인들에 대해서 동료들과 함께 약탈과 살인 등 테러와 비슷한 공격을 저질렀다. 또한 열심당은 장차 예언에 따라 메시아가 이 땅 위에 강림하면 군대를 이끌고 로마 제국을 몰아내 조국을 해방시켜 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초라한 행색을 한 그리스도를 결코 자신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결국 두 세력은 극과 극으로서 충돌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그들과 동료였던 시몬은 그리스도의 설교와 기적을 듣고 본 후 감화되어 열심당에서 탈퇴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스도는 성실하거나 피동적으로 순종만 하는 사람들만 제자로 맞아들이기보다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을 포섭하고자 했기에 자신에게 오는 시몬을 받아들였다.
또한 로마 제국에 순종했던 과거를 가진 마태와 로마 제국에 반대했던 극단주의자 시몬을 모두 자신의 제자로 맞아들임을 통해서 서로 상반된 이념으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하고자 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설교하다가 유다 타데오와 함께 페르시아 지역으로 가서 포교 활동을 벌였는데, 예수에 대해 설교한 뒤 그 곳의 신상을 파괴하였다. 그러자 자신들이 여태껏 섬겨왔던 신상이 부서지자 흥분한 이교도들은 그들에게 달려들어 포박한 후 죽였는데, 시몬은 기둥에 거꾸로 매달려 사타구니에서부터 머리까지 톱으로 육신이 두 동강이 나는 형벌을 당하여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12) 가룟 유다(Iscariot Judah)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이스가리옷 유다는 가룟 시몬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에게 선택받은 열두 사도 중의 한 사람이다. 가룟 유다는 계산이 빨라서 회계를 맡으면서 자기 호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공금을 횡령하기도 하였다.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베다니아의 마리아의 집에서 그녀가 값비싼 향유를 그리스도의 발에 붓는 헌신을 하자, 유다는 “이 향유를 어찌하여 비싸게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았는가”라고 투덜거렸는데 저자는 유다가 도둑이라서 그런 것이라고 평가한다. 진짜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 가난한 사람 운운한 게 아니라, "저 향유를 팔아서, 그 돈의 일부를 횡령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도둑의 생각을 숨기기 위한 위선적인 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왜 이 여자를 괴롭히느냐 ? 이 여자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들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들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마가복음 14:6-7)”라며 사도들을 꾸짖고 충고하였는데, 그는 오히려 분격하여 당시 유대교의 대사제(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제가 그리스도를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겠느냐 했다. 제사장들은 이에 동의하여 당시 노예의 시세 엄밀하게 말하면 노예가 황소에 받혀 죽었을 때 보상금으로 주인에게 지불하던 금액인 은 30개를 지불했다.
유대인들의 명절 유월절인 무교절 첫날이자 목요일의 최후의 만찬에서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을 때가 다가오는 것을 깨닫고 사도들이 한창 식사를 하던 도중에 “내가 진실로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하고 조용히 말하였다. 이에 사도들이 모두 근심하며 저마다 자기가 아니라고 부정하였다. 그 자가 누구인지 가르쳐달라는 사도들의 성화에 못이겨 그리스도는 “나와 함께 접시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 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빵 한 조각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유다에게 가져다 주었다. 유다가 그 빵을 받자마자 사탄이 그의 마음 속에 들어갔다. 즉, 유다는 스승인 그리스도가 자신의 악한 마음을 드러냈는데도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스승을 배반하는 악행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뻔뻔스럽게도 유다는 시치미를 뚝 떼고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반문했다. 그리스도는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하고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고 유다에게 말하였다. 다른 사도들은 그리스도가 그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리스도가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했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그리스도의 행적을 생각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한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가서 대제사장들에게 달려갔다.
최후의 만찬이 끝나자 그리스도는 나머지 11명의 사도들과 같이 게쎄마네 동산으로 가서 열심히 기도하였다. 기도가 다 끝났을 때 마침 유다가 군인들을 이끌고 왔다. 밤이 깊어서 어두웠기 때문에 누가 그리스도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가 그리스도인지 알리는 신호로서 유다는 그리스도에게 다가가 입맞춤을 하였다. 이리하여 그리스도는 체포되었다.
다음날 그리스도가 단죄받아 산헤드린 의회에서 십자가형을 선고받았는데, 산헤드린 의회에서는 사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어서 본티오 빌라도 총독에게 그리스도를 데려가자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신이 한 행동을 뒤늦게 후회하면서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은 30개를 돌려 주면서 “내가 죄 없는 사람을 팔아넘겨 죽게 만든 죄를 범하였다”라고 말했다.
그의 후회에 대해, 대제사장들은 “그게 우리들과 무슨 상관이냐? 그것은 네 일이다” 라면서 싸늘하게 말하였다. 가룟 유다는 그 은을 성전 안에다 내던지고 나와서 목을 매달아 자살하였고, 대사제들은 이를 주워다가 나그네들을 위한 묘지용 토지를 샀다.
가룟 유다의 일생은 유다가 3년 간 횡령한 돈으로 산 대농장(피밭)을 남기고 비참한 최후를 마쳤다.
가룟 유다가 그리스도를 배반했는데 그가 그리스도를 배반하게 된 연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진다.① 탐욕적이어서 제사장의 돈을 탐내어 예수를 팔았다는 설이다,
② 열성적으로 예수를 따르면서 예수의 신정왕국(神政王國)의 출현을 기대하였으
나 그 기대가 어긋나자, 실망하여 스승을 배신했다는 설이다,
③ 악마가 그 속에서 역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배반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설 등이다.
2. 그리스도 부활 후에 세운 제자들.
1) 맛디아(Mathias)
마티아는 그리스도가 직접 부른 제자가 아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고 하늘로 승천한후 11명의 사도와 교우 약 120명이 마가의 다락방 모여 기도했는데 베드로가 유다가 자신의 사도직을 배반한 지금 우리는 '다른 사람이 그자의 직무를 맡게 하라.'는 성서의 말씀을 좇아야 하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오시는 동안, 즉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예수께서 우리 곁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날까지 줄곧 우리와 같이 있던 사람 중에서 하를 뽑아 우리와 더불어 주 예수의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해야겠기에 공석이 된 남은 사도직을 보충자고 제안해서 사도는 그 후보자로서 바사바라고도 하고 '유스도 라는 별칭이 있는 요셉과 마티아를 천거했고 기도하고서 제비를 뽑은 결과 마티아가 당첨되어 그자가 마지막 사도직을 맡았다.
마티아는 사도로 뽑히고서 곧바로 예루살렘을 떠나 기독교 이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사는 여러 나라를 순회하면서 열심히 선교하였다. 전승에 의하면 악숨에서 큰 도끼에 찍혀 죽었다고 한다.
로마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의 모후인 성녀 헬레나는 성지 순례 중에 우연히 마티아의 유골을 발견하고 독일의 트리어 지방으로 옮겼고 후일 1127년 그 유골이 다시 발견되어 베네딕토회 성 마티아 수도원 성당에 다시 안치하였다.
2) 바울(Paul)
바울은 로마식 이름이고 사울은 유대식 이름이다.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출생. 했다. 그는 유대인 혈통에서 태어났으며 바리새인으로 유대교의 교육을 받았으며 예루살렘에서는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청년 때 이미 지도자로 인정되었다.
바울은 철저한 유대교 신봉자라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다. 기독교인 청년 스데판이 순교당할 때 앞장 섰던 사람이다. 발해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안디옥과 다메식에 모이게 되었는데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해 공식 공문을 받아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는도중에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 바울은 율법에 능통한 사람이고 언어에 능숙한 사람이며 특히 로마의 시민권
을 소지한 사람이라서 어느 로마 전역역 전도사역자로 자질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방인 사도로 선택했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안디옥교회서 선교사로 파송 받아 전도가 시작된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오직 전도사역에 전염했다.
파울은 초대교회를 이끈 뛰어난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교의를 전하려는 열정으로 아프리카(북아프리카) 지역을 제외한 로마 제국의 주요도시를 돌아다녔다. 무려 20,000km에 이르는 거리를 돌아다닌 그의 선교여행과, 신약성서 27권 중 13권에 달하는 그의 이름으로 된 서신은, 초대 교회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그는 자신이 선교여행 중에 숫한 고난을 겪었다. 그가 그가 고백한 성서 고린도 후서 11장 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고후 11:23-27]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
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은 전도자로서 열열한 사람이었고 학자로서 그리스도교의 신학의 초석이
되었고 오직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일생을 산 사람이다. 기독교 역사에 가장 교회를 많이 세웠고 사도로서 가장 일을 많이 한 사람이다.
바울은 지성이 없이 열정만 있는 맹신자가 아니었다 그의 열정은 그리스도인
가를 구약성서를 근거로 변증하는 지성적인 신앙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 후대 기독교의 교리 역사에 미친 영향이 매우 커서 혹자는 "예수가 없었다면 바울도 없었겠지만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도 없었을 것이다" 라고 평하기도 한다.
바울은 바리새파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러기에 어려서부터 율법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사람이다. 유대인들은 어릴 때에 율법을 기본적으로 가르친다. 그리고 그는 존경받는 율법학자 가말리엘에게서 율법 공부를 받았는데 당시 그리스 문화권에서 일반 종교학공부를 햇을 것으로 보고 유대 전통에 따라 구약성서(율법, 예언서), 율법 해석(미드라시), 수사학을 공부했을 것이다. 이러한 체계적 신학교육은 사도 바울을 유대 전통인 율법을 비판할만큼 뛰어난 신학자로 자라게 해 주었다. 사도 파울로스가 가말리엘의 제자였다는 사도행전의 설명을 바탕으로 회심하기 전까지 그가 바리사이 파에 적극 협조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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