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유년시절.
눅 2: 41-52.
예수님의 유년 시절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고 또 다른 기록이 없다. 단 누가복음에 12살 때에 유월절을 지킨 사건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은 어려서 어떻게 자랐을까 ? 하는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중세 전시대 가경(假經)과 외경(外經에)는 과장하여 기록한 사건들이 있다. 그러나 외경이며 가경일뿐이다. 이것들은 믿을 수 없는 글이므로 인정하지 않았다.
1987년 석가의 제자였다[예수는 불제자였다]는 책이 나왔다. 그리하여 잠시 초 신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 책을 쓴 사람이 예언자라고 자칭하는 엘리자베스 클레어이다. 이 여자의 글을 충북대학에서 강의하는 김용환이란 사람이 번역하였다.
그러나 그 책은 사실상 추측으로 이루어 졌다 만약 예수님께서 불교에서 수학하였다면 성경에 불교사상이 들어 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그 선생에게 배웠으면 그 선생의 사상을 전하는 것이요 또 그 가르침과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사상이 조금도 나타나지 않는다. 아니 비슷한 부분도 없다. 오히려 정 반대이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 책을 만들어 재미를 보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예수원의 성공회 신부인 토레이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그 토레이는 여러 나라 역사를 연구한 사람이다. 특히 우리 한국에 머물러 있기에 중국 역사와 인도 역사에 관심 이 있었다. 그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가 불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석가나 공자가 오히려 솔로몬에게 배웠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석가는 B.C.486년-B.C. 483년 사람이고 솔로몬은 B.C.990년-932년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가는 솔로몬 이후 500년 이후 이스라엘이 패망하여 민족이 바벨론과 그 주변 지역에 퍼져서 포로생활 후반 사람이다.
1. 솔로몬의 지혜문학.
솔로몬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나라를 평화롭게 다르시기 위하여 지혜를 구했다. 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1000번 번제를 드렸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셨다 그 솔로몬의 지혜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왕상4:29-33)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 난지라 저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와서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 저가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그 노래는 일천 다섯이며 저가 또 초목을 논하되 레바논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저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를 논한지라. 했다.
솔로몬의 지혜는 동양의 지혜보다. 애급의 지혜보다 뛰어나다고 하였다. 그 당시의 현자인 에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 보다 뛰어났기에 솔로몬의 이름이 사방에 들려지게 되었다고 했다. 잠언 3000을 썼다고 했으니 문학가 중의 문학가요 노래가 1005이라 했으니 음악가 중의 음악가요 레바론의 백향목에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논했다고 했으니 식물학자요 짐승에서 물고기 그리고 기어다니는 것까지 논했다고 했으니 동물학자며 생물학자임을 알 수 있다. 이 솔로몬에게 배우기 위하여 각 나라 모든 천하에 민족 중에서 많은 왕들이 배우러 왔다고 하였다.
(왕상4:34)모든 민족 중에서 솔로몬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 중에서 그 지혜를 들으러 왔더라.
불교에 석가는 B.C. 483년-486년경에 태어난 사람이고 공자는 B.C. 552년-479년경 사람이고 솔로몬은 B.C. 970년-930년경의 사람이다.
이스라엘은 왕국은 B.C. 1010년-1003년 사울의 등극으로 시작하고 이스라엘 제국은 B.C. 1003년-970년에 다윗으로 하여금 세워진다. 그리고 B.C. 970년-930년은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이 즉위하여 화려한 평화의 제국으로 통치했고 솔로몬 이후 B.C. 930년-586년까지 유다 역대 20대 왕들의 통치하다가 B.C. 586년-B.C. 597년 시드기아 왕을 마지막으로 해서 바벨론과 페르시아에게 패하여 포로생활을 하다가 B.C. 537년에 1차 귀환하고 B.C. 458년에 2차 귀환하고 B.C. 444년에 3차 귀환하여 다시 나라를 세웠다. 그러므로 석가나 공자의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이 2차포로 귀환하던 때에 태어났다.
이 역사적인 배경을 생각 해 보는 것은 석가나 공자 이전에 이미 솔로몬 왕 시대 정치와 종교와 문화가 발달해 있었고 특히 지혜문학은 더욱 발달했다. 그러기에 석가나 공자의 시대에는 이미 그 지혜 문학(깨달음의 사상)이 동양에 널리 알려 있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생활 한 나라가 바벨론 페르시아이다. 페르시아는 인도와 인접해 있는 나라이다. 석가가 이 이스라엘 포로들과 접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들의 지혜문학만 접했을 수 있다. 석가가 6년 동안이나 지혜를 찾아 헤매고 다녔기 때문에 어디든지 학문이 있는 곳은 찾아갔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솔로몬 시대에 각 나라 왕들이 와서 공부했고 왕족들이나 귀족들 그리고 왕의 아들들이 모여들어 솔로몬에게 지혜를 배웠다. 이스라엘 민족은 말할 것도 없이 솔로몬의 말씀을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생명보다 더 귀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민족이고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어느 곳에 가든지 그 지혜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쳤다.
각 나라 왕들이나 왕족들이 자기 나라에 돌아서 가르쳤을 것이다. 석가의 생가(生家)인 칼라비성(城)과 그 주변 모든 나라들이 이미 솔로몬의 지혜문학을 공부했을 가능성이 크다.
솔로몬의 지혜 문학인 잠언서와 전도서에 석가가 깨달은 윤회사상(輪廻思想)과 너무나도 동일하다. 그렇다면 석가는 혼자 깨달은 것이라고 보다 이런 지혜문학을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솔로몬의 지혜문학이 시편 일부와 잠언서 전도서 아가서인데 그중에 전도서만 살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① 인생은 돌고 도는 것이다. 불교의 윤회사상이다.
(전1:1-8)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 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 하는 도다.
(전3:1-8)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멜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② 인생의 행복은 마음에 평안이다. 불교의 열반적정 사상이다.
(전2:24-25)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나보다 승하랴
③ 인생의 생명과 짐승의 생명이 죽는 것은 일반이다.
(전3:18-21)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하심이라 하였노라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여기에서 인간과 짐승과 동이하다는 말씀은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비참함을 말한 것인데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 범신론(梵神論)처럼 인간과 동물과 동일하게 생각할 수 있다.
④ 인생은 괴로움이다. 불교의 석가가 깨달은 고(苦)의 사상이다.
(전4:1-3)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 라 학 대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 자가 없도다.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저희에게는 위로 자가 없도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 있는 산 자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를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서 행하는 악을 보지 못한 자가 더욱 낫다 하였노라
위의 말씀도 하나님 없이 죄 아래 사는 인생에 대한 탄식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앙으로 생각할 때 인생은 비참함이고 괴로움이라 생각하게 된다.
⑤ 모든 수고가 헛되다는 것이다. 불교의 삶의 집착(執着)의 사상이다.
(전5:13-17)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 되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되도록 지키는 것이라 그 재물이 재난을 인하여 패하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 것도 없느니라.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일평생을 어두운 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
(전6:7-9) 사람의 수고는 다 그 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하느니라. 지혜 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뇨 인생 앞에서 행할 줄 아는 가난한 자는 무엇이 유익한고 눈으로 보는 것이 심령의 공상보다 나으나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석가는 왕자로서 위대한 스승을 찾는 석가는 솔로몬이나 그 나라에 와서 공부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은 석가는 이 세상에서의 영생을 추구한 사람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믿지 못하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⑥ 삶은 괴로움이다. 불교의 인생의 생노병사 (生老寎死)의 괴로움이다.
(전12:1-8)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 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 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 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 은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솔로몬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저주아래 있는 인생은 이렇게 불행함을 말하고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석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현실에 집착한 나머지 이 세상에 살면서 행복은 마음에 평안을 누리를 열반을 깨달았고 이 세상을 태어나지 않고 벗어나야 한다는 해탈(解脫)을 깨달은 것이다.
공자의 논어는 솔로몬이 기록한 성경 잠언서의 가르침과 비슷하고 석가의 깨달음은 솔로몬의 가르침인 전도서와 같다. 이미 성가나 공자의 시대에 이 지혜문학이 매우 발달한 시대이고 보면 춘추 전국 시대이고 보면 솔로몬의 가르침을 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유명한 장군이며 문학의 천재였던 루 윌리스(Lew Wallace)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작가인 친구 엥거르솔(Ingeresoll)과 약속하기를 기독교의 신화를 영원히 지상에서 추방해 버리자고 약속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믿고 예배하는 것을 분개하게 생각했다, 윌리스는 미국과, 유럽, 유명한 도서관에서 기독교를 파괴할 자료를 찾으며 2년 동안 연구하였다. 윌리스는 그 책 2장을 쓰다가 그만 무릎을 꿇고 이렇게 부르짖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연구하면 할 수 록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가 사기꾼으로 폭로하려는 그 분이 그를 사로잡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로 그는 그리스도에 생애에 관한 가장 위대한 책 [벤허]를 썼다 .
2. 그리스도의 유년기
그리스도의 유년기에 대하여 기록하지 않음은 인간적인 역사나 전기를 기록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분의 능력이나 신적인 능력을 자랑하려면 성경에 모두 기록할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든다면 밥을 어떻게 먹었다든가 어떻게 울었다던가 일을 어떻게 하였다던가 어떻게 놀았다던가 하는 것을 기록한다면 성경은 독자들로 하여금 매력을 잃게 될 것이다. 구태여 그런 기사가 없어도 인간을 구속하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외경이나 위경에 어린 시절의 기록이 있으나 가감하였기에 정확성이 없다.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유년 시절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은 없고 태어난 8일이 지나서 결례식을 행한 사실과 애급으로 피난한 사실과 나사렛에 돌아와 거주했다는 사실과 그리고 12살 때 절기를 지키러 왔다가 가는 중에 예수를 잃어버리렸다가 성전에서 만난 기록밖에 없다.
1) 결례식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 결례식 즉 할례예식, 산모 정결예식, 장자는 하나님의 자녀로 드리는 예식이다.
(1) 할례예식.
할례예식은 자신이 선택한 백성임을 인증하는 예식이다. 할례를 받지 않으면 이스라엘에서 태어났어도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다.
[창 17:9-14]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2) 산모(産母) 정결 예식.
어린 아이를 출산한 여인은 부정한 자로 정결 예식을 행해여 정결함을 받아야 한다.
[레 12:1-7]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3)여덟째 날에는 그 아이의 포피를 벨 것이요 4)그 여인은 아직도 삼십삼 일을 지내야 산혈이 깨끗하리니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기 전에는 성물을 만지지도 말며 성소에 들어가지도 말 것이며 5)여자를 낳으면 그는 두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월경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 일을 지내야 하리라 6)아들이나 딸이나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면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가져가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회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7)제사장은 그것을 여호와 앞에 드려서 그 여인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리하면 산혈이 깨끗하리라 이는 아들이나 딸을 생산한 여인에게 대한 규례니라
(3) 장자 헌신(獻身)예식
처음난 아들은 장자로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한다.
[출 13:11-13] 11)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12)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3)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가 출생한지 8일째에 이 세 가지 결례식을 행하였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기 때문에 그 율법을 이루시기 전에는 모두 지킨 것이다.
2) 애급 피난생활
[눅 2:21-24]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22)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예수의 결례식은 모세의 율법을 이행하기 위함이다. 이 결례식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산모가 해산을 하게 되면
[마 2:13-23] 13)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급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14)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15)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16)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17)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3) 갈릴리 나사렛 생활.
[마2:19-23]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급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20)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21)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22)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23)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요셉의 직업이 목수였기 때문에 요셉이 생존 해 있었을 때에는 애급에서나 나사렛에서나 목수 생활을 했었음으로 그리스도의 유년 시절에는 그 아버지를 도와 같이 일을 했을 것으로 이해된다.
4) 12살 때에 유월절
그리스도 열두 살 때 선생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거한다. 유월절 사건이 기록된 것은 유년 시절부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눅2:46-47)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했다.
(1) 선생들 중에 앉아 있었다.
구약시대에는 어른들과 어린이들과 같이 앉아 있을 수 없었다. 특히 선생들과는 더 더욱 그러했다. 구약에 랍비들은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명절이 다 지난 후였으니 같이 동석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같이 앉아 있었다는 말은 선생이나 다름없이 동등하였다는 말이다.
(2) 듣기도 하며 묻기도 했다.
그가 배웠다는 말이 아니다. 듣기도 하며 묻기도 하였다. 묻고 들었다는 말이다. 12살 어린이가 감히 선생들과 질문을 하고 듣기도 하였음은 예사 사건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교육 방법은 주입식 방법이다. 그러기에 12세 어린 아이에게 듣는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육 정통도 그렇고 랍비의 자존심도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12살 때 랍비들에게 묻기도 했고 듣기도 했다고 했다.
(3) 듣는 자가 기이히 여겼다.
기이하다는 말은 인간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지혜로웠다는 말이다. 나이 어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생들이 듣기에 이해 할 수 없을 만큼 진리를 말하였다
(4) 양친 부모와 랍비들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①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구약 시대에 유대 사회에서는 하나님의 이름도 입에 올리지 못했다. 선생님들과 제사장들도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 예수님 이전에는 아버지로 부를 수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다 누가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랍비들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다.
우리나라에서의 하나님의 개념과 이스라엘 나라에서의 하나님의 개념은 다르다.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어린이들은 하나님의 이름도 부르지 못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②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이 말씀은 나는 찾지 아니 하여도 되는 분이란 말이다. 어린이 이지만 부모에게 염려를 끼치는 육적인 아들과 다름을 잘 아시면서 어찌하여 찾으셨나이까 하는 뜻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다 아시면서 찾으신 마리아 요셉에게 일깨우는 의도의 말씀이다. 필요 없는 고생을 하였다는 말씀이다
③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까?
그 자리에 요셉이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아버지는 요셉이라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라 했다 만약 요셉이나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책망을 했을 것이다. 요셉이 있는 자리에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음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 심을 자연스럽게 증거 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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