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건축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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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7장 1-17절
요점
다윗의 성전 건축의 열망은 그가 예비해 놓은 재물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러한 열망만이 신령한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오늘은 '성전건축 열망'이라는 내용으로 말씀드립니다. 성경에서 성전건축을 위해서 가장 갈망하고 애통했던 사람이 많겠지만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본문에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찌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했습니다. 여기서 자신은 아름다운 백향목 궁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궤는 성전도 아니고 성막도 아니고 그나마 휘장 가운데 있었으니 주님을 사랑하는 다윗으로서 송구하고 그 애타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참된 성도들의 신앙양심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자신의 심령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 애타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집과 나의 일보다 교회가 더 아름답고 주님의 일이 더 잘되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렇치 못할 때는 깊은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보이는 집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성령의 전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다윗과 같이 마음의 성전을 위해서 뜨거운 열망을 갖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음이 없어서 성전을 짓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다윗은 성전을 건축할 마음은 가졌지만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이 전쟁의 왕이라 평화를 상징하는 성전을 건축할 인물로서는 합당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성전을 건축할 재물과 인력과 성전의 설계도까지 친히 다윗에게 지시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설계도를 허락하셨습니다.
대상 28:12절에 "성신이 가르치신 모든 식양"이라고 했고 19절에 "다윗이 가로되 이 위의 모든 것의 식양을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그려 나로 알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성막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설계도를 주신 것이 아니라 성전까지 설계도를 친히 내셨다는 사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설계하시고 지시하신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그것입니다. 그랬기에 세상의 수천톤 짜리의 배도 다 침몰했지만 방주만은 그 험한 파도에서도 좌초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님이 친히 설계하신 것이 성막입니다. 그랬기에 이 성막은 어느 것 하나 그리스도의 구원의 도리를 가득 가득히 담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또 요14장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처소를 준비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늘의 새예루살렘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는 오늘 말씀드리는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정확하게 직접 그려서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해 줍니까? 여기서 다윗을 예수 그리스도요, 솔로몬을 성령의 상징으로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심령 성전의 모든 설계도가 완성되었다는 점입니다. 엡2:10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이 은혜의 설계도에 의해 우리 안에 그 구원과 그 성품과 그 복락의 충만함을 실재가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고전2:12에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한 것입니다. 여기 안다는 것은 실재가 되도록 경험시킨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전의 설계도는 곧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곧 그리스도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룬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는 죽었고 그리스도가 윌의 의로움이요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광이요 높음이며 승리일뿐 아니라 생명이요 전부입니다. 우리 성전 설계도는 하나님의 형상과 그리스도와 같은 장성한 분량 즉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는 아니되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함과 그 형상을 입게 됩니다. 즉 다윗에게 주신 설계도의 영적인 의미는 곧 그리스도 안의 복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려주신 설계도란 마음의 성전도 하나님의 뜻대로 지어야지 내 뜻대로 지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입니다. 여기서 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설계도는 성경이요 그리스도입니다. 재료는 성령이며 기술은 믿음과 기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마음의 성전을 내 육이나 내 자아 내 취향 내 개성에 맞게 지으려고 하는데 그래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설계하신대로 지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육신적인 욕심도 죽이고 자아도 죽이고 취향도 죽이고 개성도 죽여야 합니다. 본질적으로는 그리스도가 성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라지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야 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나타날 때 바로 아름다운 성전이 지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을 잘못지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고전3:10-17에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했습니다.
다음에. 성전의 설계도의 내용을 살펴보십시다.
대상28:11-18절에 "다윗이 전의 낭실과 그 집들과 그 곳간과 다락과 골방과 속죄소의 식양을 그 아들 솔로몬에게 주고 또 성신의 가르치신 모든 식양 곧 여호와의 전의 뜰과 사면의 모든 방과 하나님의 전 곳간과 성물 곳간의 식양을 주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과 여호와의 전에 섬기는 모든 일과 섬기는 데 쓰는 모든 그릇의 식양을 설명하고 또 모든 섬기는 데 쓰는 금기명을 만들 금의 중량과 모든 섬기는 데 쓰는 은기명을 만들 은의 중량을 정하고 또 금등대들과 그 등잔 곧 각등대와 그 등잔을 만들 금의 중량과 은등대와 그 등잔을 만들 은의 중량을 각기 적당하게 하고 또 진설병의 각 상을 만들 금의 중량을 정하고 은상을 만들 은도 그렇게 하고 고기 갈고리와 대접과 종자를 만들 정금과 금잔 곧 각 잔을 만들 금의 중량과 또 은잔 곧 각 잔을 만들 은의 중량을 정하고 또 향단에 쓸 정금과 또 타시는 처소된 그룹들의 식양대로 만들 금의 중량을 정하여 주니 이 그룹들은 날개를 펴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덮는 것이더라" 했습니다.
여기 나온대로 하나님께서 그려주신 식양은 다음과 같습니다. 낭실, 곳간, 다락 골방, 속죄소, 뜰, 사면의 모든 방, 전의 곳간과 상물의 곳간, 그릇, 금기명, 은기명, 금등대, 은등대, 떡상, 고기 갈고리, 대접, 종자, 금잔, 은잔, 분향단, 그룹 등 나중에 소개 되겠지만 더 많은 것이 부가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성막에 없던 것들이 많이 추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은으로 만든 여러 그릇들이 많이 추가 되었고, 많은 다락, 많은 낭실, 많은 방이며 많은 창고들이 추가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구원만을 받으려면 성막의 조건이면 됩니다. 물론 성막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 위에 부가된 성전의 풍성하고 확실하고 구체적인 여러 가지의 요건들은 성막의 그것들을 능가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시고 영화롭게 섬기면서 살려면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것 이것은 기초이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섬기고 우리 안에 그 분으로 충만하고 그 분의 뜻을 받들고 그 분의 방법대로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을 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 성전을 잘 알아야 합니다.
참고적으로 성막과 성전을 비교하면
먼저 모양에 있어서 성막은 조립이동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영구적인 건물이었습니다. 강조에 있어서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나타내는데 강조점이 있지만 성전은 교회와 천국을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성막에는 모든 기구들이 하나입니다. 그러나 성전에는 물두멍도 열 개, 촛대도 열 개, 떡상도 열 개, 기타의 시설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또 성전은 성막처럼 12지파가 아니라 24반으로 조직된 제사장들로 구성되어 신구약 교회와 천국의 24장로 등을 작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또 바닥을 보면 성막은 바닥이 광야의 거친 모래였습니다. 이것은 나그네된 인생으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전은 바닥이 온통 금이었습니다. 이것은 영광의 장소인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 성막에 쓰인 나무는 사막에서 나는 조각목이었습니다. 쓸모없는 나무, 버림받은 인생으로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을 뜻입니다. 그러나 성전에는 백향목 잣나무 등의 최고급 나무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부활 후 영광을 받으신 재림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또 만든 시기를 보면 성막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고 완성은 출40:17을 보면 정월 곧 그 달 초 일일 그러니까 유월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성막은 구원과 깊은 상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왕상8:2을 참고하면 칠월 절기 그러니까 초막절에 완공이 되었습니다. 초막절이면 추수된 곡식을 저장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절기이듯이 부활과 천국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성도들은 이제는 성전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예배의 형태를보면 성막은 조용한 기도의 예배였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성가대가 없으면 예배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성전에는 나팔을 부는 자만도 12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예배도 여러 가지의 악기들이 동원되어 기쁨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찬송도 더 기뻐야 합니다. 구원은 조용히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어도 됩니다. 그러나 마음의 천국은 기쁨의 예배라야 임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연구해 보면 이런 부분까지 잘 가르쳐 줍니다.
한가지만 더 비교하면. 성막시대에는 왕은 없고 제사장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시대에는 제사장도 왕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왕같은 제사장도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막과 성전은 동일점과 아울러 상이점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점은 구원받은 성도는 이제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다윗이 성전건축을 위한 열망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대상22:14에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일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중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예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했습니다.
이 말은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한 당부입니다. 다윗의 성전 건축의 열망은 그의 기도의 소원과 아울러 그가 하나님의 허락을 입어 준비한 물자의 규모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건축물자 준비를 위해서 용기를 내었던 것은 삼하7:27에 나온 대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해서 성전건축을 이룩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다윗이 준비한 물자는 어느 정도 될까요? 그것은 금 십만달란트와 은 일백만 달란트였습니다. 이 물자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가 놀라지 마십시오. 약 1경에 해당하는 액수입니다. 금만 계산해 보면 1달란트가 68kg입니다. 68kg이면 1키로 짜리 금송아지가 68개 그러니까 약 9억원에 해당합니다. 이것이 10만 달란트니까 900조원입니다. 900조원이라면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돈입니다. 900조이면 우리나라의 기업들을 다 인수하고도 남을 돈입니다. 거기다 은이 금의 10배나 되니 당시에는 은값도 금값 못지 않았고 은이 더 비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수 천조에서 경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이것들은 다윗이 세계에 나가 전쟁해서 모은 전리품들입니다. 그러니까 세계의 보물들을 다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오늘날과 비교해도 천문학적인 액수인데 당시에야 얼마나 큰 액수였겠습니까? 그는 이 보물을 여호와의 성전을 짓는데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랐는지 솔로몬에게 여기에 더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열정의 사람입니다. 기타 외국 왕에게 물자조달을 부탁하고 아들과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준비해 놓고 전 국민이 여호와의 성전을 짓는데 신앙적으로 정신적으로 조직적으로 물질적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했던 그의 준비는 일일이 다 열거할 수도 없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이렇게 수 천조를 준비했다니 하나님을 위해서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만큼 성령의 전을 건축함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성령의 전 건축이야 말로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하고 귀하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어느 것을 중요시하여 뒤로 미룰 성질의 것도 아니며, 이 일을 위해서 미치고 미치고 미쳐야 할 귀하고 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의 마음의 성전을 온전히 건축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재물은 바로 세계에 나가 전쟁하여 얻은 전리품이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완성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사 승리하여 얻으신 귀한 공로의 전리품이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은은 십자가 구속의 상징이요, 금은 신성 부활 생명이신 성령의 상징입니다. 즉 우리 심령의 성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재료로 지어집니다. 그러니까 성전이란 결국 우리 안에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남입니다. 우리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인데 엄밀히 말하면 예수 안에 성령이라고 했기 때문에 성전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기에 우리가 성전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건축의 완성도 나는 사라지고 내 안에 성전되신 예수가 나에게 나타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릴 훌륭한 성전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천하보다도 귀하신 주님 자신을 드리셔서 우리를 성전삼으셨습니다. 이만큼 귀한 것이라면 더 강조할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성령의 전의 건축의 중요성만 깨닫고 가신다면 오늘 말씀의 목적은 다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출애굽시킨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배하게 하려고, 그리고 성막을 짓게 하시려고, 그래서 애굽의 온갖 보화를 가지고 나오게 했습니다. 또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나오게 한 목적도 역시 성전을 짓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도 성전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귀중한 것이 성전건축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집을 집시다. 이 집은 너무도 귀한 전입니다. 이 전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보좌가 되어 하나님이 거하신다니 세상에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부모님을 잘못 모시면 안모시는 것보다 못한 불효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모셨다면 효도가 될만큼 잘 모십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합당한 아름다운 성령의 전으로 건축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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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7장 1-17절
요점
다윗의 성전 건축의 열망은 그가 예비해 놓은 재물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러한 열망만이 신령한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오늘은 '성전건축 열망'이라는 내용으로 말씀드립니다. 성경에서 성전건축을 위해서 가장 갈망하고 애통했던 사람이 많겠지만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본문에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찌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했습니다. 여기서 자신은 아름다운 백향목 궁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궤는 성전도 아니고 성막도 아니고 그나마 휘장 가운데 있었으니 주님을 사랑하는 다윗으로서 송구하고 그 애타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참된 성도들의 신앙양심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자신의 심령의 전을 건축하기 위해 애타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집과 나의 일보다 교회가 더 아름답고 주님의 일이 더 잘되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렇치 못할 때는 깊은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보이는 집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성령의 전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다윗과 같이 마음의 성전을 위해서 뜨거운 열망을 갖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음이 없어서 성전을 짓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다윗은 성전을 건축할 마음은 가졌지만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이 전쟁의 왕이라 평화를 상징하는 성전을 건축할 인물로서는 합당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성전을 건축할 재물과 인력과 성전의 설계도까지 친히 다윗에게 지시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설계도를 허락하셨습니다.
대상 28:12절에 "성신이 가르치신 모든 식양"이라고 했고 19절에 "다윗이 가로되 이 위의 모든 것의 식양을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그려 나로 알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성막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설계도를 주신 것이 아니라 성전까지 설계도를 친히 내셨다는 사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설계하시고 지시하신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그것입니다. 그랬기에 세상의 수천톤 짜리의 배도 다 침몰했지만 방주만은 그 험한 파도에서도 좌초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님이 친히 설계하신 것이 성막입니다. 그랬기에 이 성막은 어느 것 하나 그리스도의 구원의 도리를 가득 가득히 담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또 요14장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처소를 준비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늘의 새예루살렘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는 오늘 말씀드리는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정확하게 직접 그려서 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해 줍니까? 여기서 다윗을 예수 그리스도요, 솔로몬을 성령의 상징으로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심령 성전의 모든 설계도가 완성되었다는 점입니다. 엡2:10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이 은혜의 설계도에 의해 우리 안에 그 구원과 그 성품과 그 복락의 충만함을 실재가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고전2:12에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한 것입니다. 여기 안다는 것은 실재가 되도록 경험시킨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전의 설계도는 곧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곧 그리스도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룬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는 죽었고 그리스도가 윌의 의로움이요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광이요 높음이며 승리일뿐 아니라 생명이요 전부입니다. 우리 성전 설계도는 하나님의 형상과 그리스도와 같은 장성한 분량 즉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는 아니되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함과 그 형상을 입게 됩니다. 즉 다윗에게 주신 설계도의 영적인 의미는 곧 그리스도 안의 복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려주신 설계도란 마음의 성전도 하나님의 뜻대로 지어야지 내 뜻대로 지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입니다. 여기서 터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설계도는 성경이요 그리스도입니다. 재료는 성령이며 기술은 믿음과 기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마음의 성전을 내 육이나 내 자아 내 취향 내 개성에 맞게 지으려고 하는데 그래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설계하신대로 지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 육신적인 욕심도 죽이고 자아도 죽이고 취향도 죽이고 개성도 죽여야 합니다. 본질적으로는 그리스도가 성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라지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야 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나타날 때 바로 아름다운 성전이 지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을 잘못지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고전3:10-17에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했습니다.
다음에. 성전의 설계도의 내용을 살펴보십시다.
대상28:11-18절에 "다윗이 전의 낭실과 그 집들과 그 곳간과 다락과 골방과 속죄소의 식양을 그 아들 솔로몬에게 주고 또 성신의 가르치신 모든 식양 곧 여호와의 전의 뜰과 사면의 모든 방과 하나님의 전 곳간과 성물 곳간의 식양을 주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과 여호와의 전에 섬기는 모든 일과 섬기는 데 쓰는 모든 그릇의 식양을 설명하고 또 모든 섬기는 데 쓰는 금기명을 만들 금의 중량과 모든 섬기는 데 쓰는 은기명을 만들 은의 중량을 정하고 또 금등대들과 그 등잔 곧 각등대와 그 등잔을 만들 금의 중량과 은등대와 그 등잔을 만들 은의 중량을 각기 적당하게 하고 또 진설병의 각 상을 만들 금의 중량을 정하고 은상을 만들 은도 그렇게 하고 고기 갈고리와 대접과 종자를 만들 정금과 금잔 곧 각 잔을 만들 금의 중량과 또 은잔 곧 각 잔을 만들 은의 중량을 정하고 또 향단에 쓸 정금과 또 타시는 처소된 그룹들의 식양대로 만들 금의 중량을 정하여 주니 이 그룹들은 날개를 펴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덮는 것이더라" 했습니다.
여기 나온대로 하나님께서 그려주신 식양은 다음과 같습니다. 낭실, 곳간, 다락 골방, 속죄소, 뜰, 사면의 모든 방, 전의 곳간과 상물의 곳간, 그릇, 금기명, 은기명, 금등대, 은등대, 떡상, 고기 갈고리, 대접, 종자, 금잔, 은잔, 분향단, 그룹 등 나중에 소개 되겠지만 더 많은 것이 부가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성막에 없던 것들이 많이 추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은으로 만든 여러 그릇들이 많이 추가 되었고, 많은 다락, 많은 낭실, 많은 방이며 많은 창고들이 추가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구원만을 받으려면 성막의 조건이면 됩니다. 물론 성막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 위에 부가된 성전의 풍성하고 확실하고 구체적인 여러 가지의 요건들은 성막의 그것들을 능가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시고 영화롭게 섬기면서 살려면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것 이것은 기초이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섬기고 우리 안에 그 분으로 충만하고 그 분의 뜻을 받들고 그 분의 방법대로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을 해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 성전을 잘 알아야 합니다.
참고적으로 성막과 성전을 비교하면
먼저 모양에 있어서 성막은 조립이동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영구적인 건물이었습니다. 강조에 있어서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나타내는데 강조점이 있지만 성전은 교회와 천국을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성막에는 모든 기구들이 하나입니다. 그러나 성전에는 물두멍도 열 개, 촛대도 열 개, 떡상도 열 개, 기타의 시설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또 성전은 성막처럼 12지파가 아니라 24반으로 조직된 제사장들로 구성되어 신구약 교회와 천국의 24장로 등을 작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또 바닥을 보면 성막은 바닥이 광야의 거친 모래였습니다. 이것은 나그네된 인생으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성전은 바닥이 온통 금이었습니다. 이것은 영광의 장소인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또 성막에 쓰인 나무는 사막에서 나는 조각목이었습니다. 쓸모없는 나무, 버림받은 인생으로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을 뜻입니다. 그러나 성전에는 백향목 잣나무 등의 최고급 나무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부활 후 영광을 받으신 재림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또 만든 시기를 보면 성막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고 완성은 출40:17을 보면 정월 곧 그 달 초 일일 그러니까 유월절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성막은 구원과 깊은 상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왕상8:2을 참고하면 칠월 절기 그러니까 초막절에 완공이 되었습니다. 초막절이면 추수된 곡식을 저장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절기이듯이 부활과 천국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성도들은 이제는 성전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예배의 형태를보면 성막은 조용한 기도의 예배였습니다. 그러나 성전은 성가대가 없으면 예배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성전에는 나팔을 부는 자만도 120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예배도 여러 가지의 악기들이 동원되어 기쁨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찬송도 더 기뻐야 합니다. 구원은 조용히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어도 됩니다. 그러나 마음의 천국은 기쁨의 예배라야 임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연구해 보면 이런 부분까지 잘 가르쳐 줍니다.
한가지만 더 비교하면. 성막시대에는 왕은 없고 제사장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시대에는 제사장도 왕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왕같은 제사장도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막과 성전은 동일점과 아울러 상이점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점은 구원받은 성도는 이제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다윗이 성전건축을 위한 열망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대상22:14에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일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중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심히 많이 예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했습니다.
이 말은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한 당부입니다. 다윗의 성전 건축의 열망은 그의 기도의 소원과 아울러 그가 하나님의 허락을 입어 준비한 물자의 규모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건축물자 준비를 위해서 용기를 내었던 것은 삼하7:27에 나온 대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해서 성전건축을 이룩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다윗이 준비한 물자는 어느 정도 될까요? 그것은 금 십만달란트와 은 일백만 달란트였습니다. 이 물자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가 놀라지 마십시오. 약 1경에 해당하는 액수입니다. 금만 계산해 보면 1달란트가 68kg입니다. 68kg이면 1키로 짜리 금송아지가 68개 그러니까 약 9억원에 해당합니다. 이것이 10만 달란트니까 900조원입니다. 900조원이라면 한 번도 들어보지도 못한 돈입니다. 900조이면 우리나라의 기업들을 다 인수하고도 남을 돈입니다. 거기다 은이 금의 10배나 되니 당시에는 은값도 금값 못지 않았고 은이 더 비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수 천조에서 경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이것들은 다윗이 세계에 나가 전쟁해서 모은 전리품들입니다. 그러니까 세계의 보물들을 다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오늘날과 비교해도 천문학적인 액수인데 당시에야 얼마나 큰 액수였겠습니까? 그는 이 보물을 여호와의 성전을 짓는데 바쳤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랐는지 솔로몬에게 여기에 더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열정의 사람입니다. 기타 외국 왕에게 물자조달을 부탁하고 아들과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준비해 놓고 전 국민이 여호와의 성전을 짓는데 신앙적으로 정신적으로 조직적으로 물질적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했던 그의 준비는 일일이 다 열거할 수도 없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이렇게 수 천조를 준비했다니 하나님을 위해서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만큼 성령의 전을 건축함이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성령의 전 건축이야 말로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하고 귀하다는 것입니다. 이 일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어느 것을 중요시하여 뒤로 미룰 성질의 것도 아니며, 이 일을 위해서 미치고 미치고 미쳐야 할 귀하고 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의 마음의 성전을 온전히 건축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재물은 바로 세계에 나가 전쟁하여 얻은 전리품이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완성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사 승리하여 얻으신 귀한 공로의 전리품이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은은 십자가 구속의 상징이요, 금은 신성 부활 생명이신 성령의 상징입니다. 즉 우리 심령의 성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재료로 지어집니다. 그러니까 성전이란 결국 우리 안에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남입니다. 우리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인데 엄밀히 말하면 예수 안에 성령이라고 했기 때문에 성전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기에 우리가 성전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건축의 완성도 나는 사라지고 내 안에 성전되신 예수가 나에게 나타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릴 훌륭한 성전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천하보다도 귀하신 주님 자신을 드리셔서 우리를 성전삼으셨습니다. 이만큼 귀한 것이라면 더 강조할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성령의 전의 건축의 중요성만 깨닫고 가신다면 오늘 말씀의 목적은 다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출애굽시킨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배하게 하려고, 그리고 성막을 짓게 하시려고, 그래서 애굽의 온갖 보화를 가지고 나오게 했습니다. 또 이스라엘을 바벨론에서 나오게 한 목적도 역시 성전을 짓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도 성전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귀중한 것이 성전건축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집을 집시다. 이 집은 너무도 귀한 전입니다. 이 전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심령이 보좌가 되어 하나님이 거하신다니 세상에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부모님을 잘못 모시면 안모시는 것보다 못한 불효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모셨다면 효도가 될만큼 잘 모십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합당한 아름다운 성령의 전으로 건축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운영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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