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설계도 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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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6장 36절
요점
이스라엘의 뜰은 하나님의 통치를, 제사장의 뜰은 복음으로 인한 영혼의 영성을, 최고회의실은 복음화된 마음을, 대제사장실은 타인을 위한 도고를, 우물실은 격려와 위로를 의미한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성전론을 강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동안 1-15번까지 성전의 외곽지대를 대부분 지었습니다. 즉 성전을 지음이란 성전다운 성전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 임재를 강하게 드러내십니다. 예를 들면 그 동안 배운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고 거룩한 자와 기도자와 사랑자와 겸손자와 열심자와 회개자와 성령충만자와 찬송자와 연단자와 선한 양심자와 성결자와 감사자와 함께 하십니다. 어떻게 이 많은 내용들을 다 기억하고 실천하느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우리 영혼이 몸 전체 사지백체가 다 건강해야 깃들어 살기 좋은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신령한 성전도 그 조건이 많습니다. 말을 바꾸면 이 중 몇 가지만 파손되어도 영혼은 그 육체를 떠나고 말 듯이 신령한 성전도 반드시 구비조건이 충족해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그 중에 한 가지라도 잘하면 나머지도 잘되어지는 특징이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기도를 열심히 하면 다른 것들도 잘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혹은 찬송을 잘하는 사람은 찬송 때문에 기도도 잘하게 되고 그 은혜를 받아 봉사도 잘하게 됩니다. 이러한 유기적인 관계가 있으므로 크게 염려하지 말고 자신의 장점을 크게 살려가면서 성전의 여러 신앙의 요소들을 생각하면서 노력하면 나도 모르게 다 지켜지는 결과가 오게 됩니다. 어떤 이는 봉사를 충성되게 하므로 합당한 나머지 성전의 요소를 유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 것이 하나라도 없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요소를 충분히 이해하는 가운데 몇 가지라도 굳게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에도 계속하여 성전의 구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6번은 이스라엘의 뜰입니다.
이 뜰은 성전의 허리띠의 부분인데 남북이 135규빗(67.5미터) 동서가 11규빗(5.5미터)의 길다랗게 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남자들은 제사장의 뜰에서 제사하는 제사장들의 모든 활동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일 때는 이 뜰을 넘어가는 것이 허용되었고, 이 뜰에 왕이 성전행사시에 앉는 왕의 보좌도 있었습니다. 이 뜰과 제사장의 뜰 사이의 4계단을 두칸(duchan)이라고 부르는데 이 계단에서 레위인들이 하루에 두 번씩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수효가 많을 때는 찬양이 올라가는 계단에서 찬양했습니다. 이 뜰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완충지대입니다. 그런가 하면 왕과 백성들이 함께 있는 장소입니다. 왕은 이곳에서 백성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반면 하나님의 대리자로 그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통치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 뜰은 자기 백성들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우리 신령한 성전에서 이스라엘의 뜰은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하나님 나라의 상징입니다. 이곳의 특징인 왕과 백성과 찬양은 천국의 상징입니다. 이 뜰에서 끊이지 않는 찬양은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천국의 모습입니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이곳에서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 하나님"(시84:3)이라고 불렀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는 하나님의 대리자일뿐 하나님만이 왕이십니다. 우리는 겸손히 왕의 통치에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뜰의 구조처럼 겸손의 허리띠를 띠어야 합니다. 그럼 겸손은 어디에서 올까요? 이스라엘의 뜰에서는 자기가 드린 제물이 불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백성들은 활활타는 제물을 보면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더구나 불은 사람의 마음에 어떤 감동과 정열을 불러 일으킵니다. 즉 나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희생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히12:2-3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했습니다.
17번은 제사장의 뜰입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의 뜰에서 네 계단을 올라서면 17번 제사장의 뜰이 나타납니다. 성막 뜰이 이 곳입니다. 제사장의 뜰에는 그 중앙에 40번 대형 번제단이 있습니다. 왼쪽 뜰에는 열두마리의 소가 받드는 42번 대형 수조인 놋바다가 있습니다. 오른 편의 37, 38, 39번은 희생제물들을 도살하고 제물로 준비하는 곳입니다. 번제단 바로 오른편에는 둥근 지붕의 집 아래 번제단에 쓰이는 '영원한 불꽃'이 보관되고 있습니다. 또 19. 20, 23번의 작은 세 방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의 제사장뜰의 사면은 돌 세 켜로 싼 담과 그 위에 두꺼운 백향목 마감제로 잘 덮여 있었습니다. 왕상6:36에 "또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로 둘러 안뜰을 만들었더라" 그리고 왕상7:12에 "또 큰 뜰 주위에는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으니 마치 여호와의 전 안뜰과 낭실에 놓은 것 같더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성막과 비교하자면 모든 기구와 장소들이 대형화 및 다수화되었고 성막의 세마포 울타리는 돌과 백향목 담으로 변천함입니다. 그러니까 세 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백향목은 인성을 취하신 예수를 가리킵니다. 여러 개의 백향목으로 이어진 판자는 메시야라인입니다. 또 백향목은 문둥병자 성결예식에 쓰인 나무로(레14:4,6, 49, 52, 민19:6) 이는 예수 안에서 죄인들이 의인됨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의 뜰은 삼위 하나님 안에서 이루지는 구속사의 귀한 예표입니다. 그러니까 여인의 뜰이 육체의 영성부분이라면 제사장의 뜰은 영혼의 영성 즉 생명부분입니다. 이것을 참고하면서 제사장의 뜰과 안 성전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사장의 뜰의 세부사항은 구체적인 언급이 있을 것이므로 생략하고자 합니다.
18번은 최고회의실입니다.
이곳이 산헤드린 공의회 회의실입니다. 이처럼 성전 안에 국회가 자리잡은 것은 모든 결정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정치 형태만 민주일뿐 실재는 신주였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민주라고 생각하는데 형태만 민주일뿐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기도하면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결정이라도 주의 뜻과 배치될 때는 그것은 무효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공회에서 예수님을 정죄하여 죽이기로 결의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인본주의에 대한 커다란 경고입니다.
신령한 성전에서 산헤드린 공의회의실은 복음적인 마음관리를 상징합니다. 이곳은 정치의 토론와 의결의 장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옥신각신 토론하고 의결하는 기돤이 있는데 바로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혹은 여쭙는 생각의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회의실이 성전에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생각마저도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생각으로 믿는 신앙은 상황의 지배를 받으며 언제나 부정적이고 갈팡질팡합니다. 신앙생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합니다(잠3:1).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음도 머리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그래서 롬10:10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산헤드린 공회실 운영을 잘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결정을 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기도하고 여쭙고 기다리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께 여쭙고 사십니까? 한 번 여쭙고 안들린다고 여쭙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문제는 오랜 시간 간구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쭈었으면 응답의 형태가 어떠하든지 기다리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합2:1-4에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셨습니다. 이 기다리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각의 산헤드린 공회실을 잘 운영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9번은 대제사장실입니다.
이 방은 최고회의실과 연접하여 있습니다. 이 방은 시대의 조류에 따라 로마 관리의 이름대로 팔헤드론실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나무실(wood room)이라고도 불리기도 했습니다. 여러 설이 있지만 외세에 의해 대제사장들이 무분별하게 임명되는 것을 풍자한 명칭으로 보입니다. 이 방은 대제사장들이 일년 중 대속죄일 기간인 7일 동안 철저히 대속죄일 행사를 준비했던 곳입니다. 참고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들은 민족을 지킬만큼의 권위있는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알렉산더가 예루살렘을 정복했을 때 당시 제사장 시몬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대제사장 앞에 무릎을 꿇으며 '이것은 전쟁에서 승리한 얼굴이다' 외쳤습니다. 그 후 알렉산더는 제사를 소중히 여겼고 성전을 보호하여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치고 모두 장수하여 단명한 사람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 대제사장은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신령한 의미에서 도고의 상징입니다. 도고(禱告)란 공동번역에서는 '간청'으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남을 위한 기도를 가리킵니다. 흔히 중보기도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는 하나이시므로(딤전2:5, 요일2:1, 롬8:34) 그 용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타인을 위하여 기도하는 그 자체를 비판함은 아닙니다. 대제사장들이 받았던 복들처럼 남을 위해 기도함이 곧 나의 복입니다. 내 심령이 더 강건해지고 남을 위해 구한 것들이 나에게도 와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놀랄만큼 복내려 주실 것입니다. 원수를 위해서 기도한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욥이 친구들을 위해서 빌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욥을 곤경에서 돌이키시고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이 갑절은 영육간의 복을 상징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라는 구역에 묶여 있기에 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도와 축복에 있어서도 나를 잊고 주님께서 감동하시는 대로 축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제단의 화목으로 쓰일 나무가 함께 저장되었듯 그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도고의 대제사장실이 없다면 속히 개설하시기 바랍니다.
20번은 우물실입니다.
이 방 역시 대제사장실과 연접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커다란 물 탱크가 있었기에 골레방(The goleh chamber)이라고 불렀습니다. 골레란 큰 물탱크라는 의미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이 곳에 물을 가득히 채우고 제사장들이 목마를 때마다 이 곳에 와서 물을 마셨습니다. 이 방은 해외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제사장들을 사모하여 봉헌한 방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은 제사장들을 사모함에서 나타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과거의 선지자들은 모두 미화하면서도 당대의 선지자들은 언제나 정죄하는 잘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마23:29). 그 현상은 오늘날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국 땅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처럼 조국을 그리워하며 시원한 냉수 한 잔이라도 제사장들에게 대접하고파 이 우물실을 만들어 봉헌함과 같이 성도들의 격려의 말 한마디가 바로 시원한 아침의 냉수요 이 냉수 한잔이라도 아버지께서 받으시고 상주실 것입니다.
신령한 성전에서 우물실의 의미는 은혜로운 언어생활입니다. 대개 물은 말씀이나 말입니다. 그런데 이 우물실이 제사장을 격려하기 위해 지어졌듯 우리는 은혜로운 말씀과 말로서 늘 이웃의 신앙생활을 늘 격려하고 도와야 합다. 그런데 이 물은 아침마다 채웠듯이 시원한 아침 냉수와 같은 위로와 소망과 격려의 말이어야 합니다(잠15:23, 16:24).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한 것처럼 언어란 자신을 포함하여 외부에 미치는 영향력은 큽니다. 성경은 언어의 위력을 이렇게 교훈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에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약3:2-10)
그래서 히3:12-14에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벧전3:10-11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했습니다. 우리의 언어가 바꾸어질 때 인격과 행동과 환경이 바꾸어집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에게도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십시오. 생명으로 충만하십시오. 하나님께 여쭙는 신앙을 가지십시오. 남을 위해 대도하십시오. 그리고 남을 말로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입술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성전의 아름다움을 사모한 것처럼 우리의 신앙을 본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본받는 역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거하시고 모든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아름다운 성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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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6장 36절
요점
이스라엘의 뜰은 하나님의 통치를, 제사장의 뜰은 복음으로 인한 영혼의 영성을, 최고회의실은 복음화된 마음을, 대제사장실은 타인을 위한 도고를, 우물실은 격려와 위로를 의미한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성전론을 강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동안 1-15번까지 성전의 외곽지대를 대부분 지었습니다. 즉 성전을 지음이란 성전다운 성전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 임재를 강하게 드러내십니다. 예를 들면 그 동안 배운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고 거룩한 자와 기도자와 사랑자와 겸손자와 열심자와 회개자와 성령충만자와 찬송자와 연단자와 선한 양심자와 성결자와 감사자와 함께 하십니다. 어떻게 이 많은 내용들을 다 기억하고 실천하느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우리 영혼이 몸 전체 사지백체가 다 건강해야 깃들어 살기 좋은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신령한 성전도 그 조건이 많습니다. 말을 바꾸면 이 중 몇 가지만 파손되어도 영혼은 그 육체를 떠나고 말 듯이 신령한 성전도 반드시 구비조건이 충족해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그 중에 한 가지라도 잘하면 나머지도 잘되어지는 특징이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기도를 열심히 하면 다른 것들도 잘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혹은 찬송을 잘하는 사람은 찬송 때문에 기도도 잘하게 되고 그 은혜를 받아 봉사도 잘하게 됩니다. 이러한 유기적인 관계가 있으므로 크게 염려하지 말고 자신의 장점을 크게 살려가면서 성전의 여러 신앙의 요소들을 생각하면서 노력하면 나도 모르게 다 지켜지는 결과가 오게 됩니다. 어떤 이는 봉사를 충성되게 하므로 합당한 나머지 성전의 요소를 유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 것이 하나라도 없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요소를 충분히 이해하는 가운데 몇 가지라도 굳게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에도 계속하여 성전의 구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6번은 이스라엘의 뜰입니다.
이 뜰은 성전의 허리띠의 부분인데 남북이 135규빗(67.5미터) 동서가 11규빗(5.5미터)의 길다랗게 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남자들은 제사장의 뜰에서 제사하는 제사장들의 모든 활동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일 때는 이 뜰을 넘어가는 것이 허용되었고, 이 뜰에 왕이 성전행사시에 앉는 왕의 보좌도 있었습니다. 이 뜰과 제사장의 뜰 사이의 4계단을 두칸(duchan)이라고 부르는데 이 계단에서 레위인들이 하루에 두 번씩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수효가 많을 때는 찬양이 올라가는 계단에서 찬양했습니다. 이 뜰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완충지대입니다. 그런가 하면 왕과 백성들이 함께 있는 장소입니다. 왕은 이곳에서 백성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반면 하나님의 대리자로 그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통치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 뜰은 자기 백성들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우리 신령한 성전에서 이스라엘의 뜰은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는 하나님 나라의 상징입니다. 이곳의 특징인 왕과 백성과 찬양은 천국의 상징입니다. 이 뜰에서 끊이지 않는 찬양은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천국의 모습입니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이곳에서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 하나님"(시84:3)이라고 불렀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는 하나님의 대리자일뿐 하나님만이 왕이십니다. 우리는 겸손히 왕의 통치에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뜰의 구조처럼 겸손의 허리띠를 띠어야 합니다. 그럼 겸손은 어디에서 올까요? 이스라엘의 뜰에서는 자기가 드린 제물이 불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백성들은 활활타는 제물을 보면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더구나 불은 사람의 마음에 어떤 감동과 정열을 불러 일으킵니다. 즉 나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희생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히12:2-3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했습니다.
17번은 제사장의 뜰입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의 뜰에서 네 계단을 올라서면 17번 제사장의 뜰이 나타납니다. 성막 뜰이 이 곳입니다. 제사장의 뜰에는 그 중앙에 40번 대형 번제단이 있습니다. 왼쪽 뜰에는 열두마리의 소가 받드는 42번 대형 수조인 놋바다가 있습니다. 오른 편의 37, 38, 39번은 희생제물들을 도살하고 제물로 준비하는 곳입니다. 번제단 바로 오른편에는 둥근 지붕의 집 아래 번제단에 쓰이는 '영원한 불꽃'이 보관되고 있습니다. 또 19. 20, 23번의 작은 세 방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의 제사장뜰의 사면은 돌 세 켜로 싼 담과 그 위에 두꺼운 백향목 마감제로 잘 덮여 있었습니다. 왕상6:36에 "또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로 둘러 안뜰을 만들었더라" 그리고 왕상7:12에 "또 큰 뜰 주위에는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으니 마치 여호와의 전 안뜰과 낭실에 놓은 것 같더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성막과 비교하자면 모든 기구와 장소들이 대형화 및 다수화되었고 성막의 세마포 울타리는 돌과 백향목 담으로 변천함입니다. 그러니까 세 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백향목은 인성을 취하신 예수를 가리킵니다. 여러 개의 백향목으로 이어진 판자는 메시야라인입니다. 또 백향목은 문둥병자 성결예식에 쓰인 나무로(레14:4,6, 49, 52, 민19:6) 이는 예수 안에서 죄인들이 의인됨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의 뜰은 삼위 하나님 안에서 이루지는 구속사의 귀한 예표입니다. 그러니까 여인의 뜰이 육체의 영성부분이라면 제사장의 뜰은 영혼의 영성 즉 생명부분입니다. 이것을 참고하면서 제사장의 뜰과 안 성전을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제사장의 뜰의 세부사항은 구체적인 언급이 있을 것이므로 생략하고자 합니다.
18번은 최고회의실입니다.
이곳이 산헤드린 공의회 회의실입니다. 이처럼 성전 안에 국회가 자리잡은 것은 모든 결정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정치 형태만 민주일뿐 실재는 신주였습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민주라고 생각하는데 형태만 민주일뿐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기도하면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가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결정이라도 주의 뜻과 배치될 때는 그것은 무효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공회에서 예수님을 정죄하여 죽이기로 결의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인본주의에 대한 커다란 경고입니다.
신령한 성전에서 산헤드린 공의회의실은 복음적인 마음관리를 상징합니다. 이곳은 정치의 토론와 의결의 장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옥신각신 토론하고 의결하는 기돤이 있는데 바로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혹은 여쭙는 생각의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회의실이 성전에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생각마저도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생각으로 믿는 신앙은 상황의 지배를 받으며 언제나 부정적이고 갈팡질팡합니다. 신앙생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합니다(잠3:1).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음도 머리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그래서 롬10:10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산헤드린 공회실 운영을 잘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결정을 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기도하고 여쭙고 기다리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께 여쭙고 사십니까? 한 번 여쭙고 안들린다고 여쭙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문제는 오랜 시간 간구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쭈었으면 응답의 형태가 어떠하든지 기다리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합2:1-4에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셨습니다. 이 기다리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생각의 산헤드린 공회실을 잘 운영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9번은 대제사장실입니다.
이 방은 최고회의실과 연접하여 있습니다. 이 방은 시대의 조류에 따라 로마 관리의 이름대로 팔헤드론실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나무실(wood room)이라고도 불리기도 했습니다. 여러 설이 있지만 외세에 의해 대제사장들이 무분별하게 임명되는 것을 풍자한 명칭으로 보입니다. 이 방은 대제사장들이 일년 중 대속죄일 기간인 7일 동안 철저히 대속죄일 행사를 준비했던 곳입니다. 참고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들은 민족을 지킬만큼의 권위있는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알렉산더가 예루살렘을 정복했을 때 당시 제사장 시몬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 대제사장 앞에 무릎을 꿇으며 '이것은 전쟁에서 승리한 얼굴이다' 외쳤습니다. 그 후 알렉산더는 제사를 소중히 여겼고 성전을 보호하여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치고 모두 장수하여 단명한 사람들이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 대제사장은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신령한 의미에서 도고의 상징입니다. 도고(禱告)란 공동번역에서는 '간청'으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남을 위한 기도를 가리킵니다. 흔히 중보기도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는 하나이시므로(딤전2:5, 요일2:1, 롬8:34) 그 용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타인을 위하여 기도하는 그 자체를 비판함은 아닙니다. 대제사장들이 받았던 복들처럼 남을 위해 기도함이 곧 나의 복입니다. 내 심령이 더 강건해지고 남을 위해 구한 것들이 나에게도 와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볼 때 놀랄만큼 복내려 주실 것입니다. 원수를 위해서 기도한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욥이 친구들을 위해서 빌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욥을 곤경에서 돌이키시고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이 갑절은 영육간의 복을 상징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라는 구역에 묶여 있기에 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도와 축복에 있어서도 나를 잊고 주님께서 감동하시는 대로 축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제단의 화목으로 쓰일 나무가 함께 저장되었듯 그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도고의 대제사장실이 없다면 속히 개설하시기 바랍니다.
20번은 우물실입니다.
이 방 역시 대제사장실과 연접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커다란 물 탱크가 있었기에 골레방(The goleh chamber)이라고 불렀습니다. 골레란 큰 물탱크라는 의미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이 곳에 물을 가득히 채우고 제사장들이 목마를 때마다 이 곳에 와서 물을 마셨습니다. 이 방은 해외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제사장들을 사모하여 봉헌한 방입니다. 성도들의 신앙은 제사장들을 사모함에서 나타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과거의 선지자들은 모두 미화하면서도 당대의 선지자들은 언제나 정죄하는 잘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마23:29). 그 현상은 오늘날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국 땅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처럼 조국을 그리워하며 시원한 냉수 한 잔이라도 제사장들에게 대접하고파 이 우물실을 만들어 봉헌함과 같이 성도들의 격려의 말 한마디가 바로 시원한 아침의 냉수요 이 냉수 한잔이라도 아버지께서 받으시고 상주실 것입니다.
신령한 성전에서 우물실의 의미는 은혜로운 언어생활입니다. 대개 물은 말씀이나 말입니다. 그런데 이 우물실이 제사장을 격려하기 위해 지어졌듯 우리는 은혜로운 말씀과 말로서 늘 이웃의 신앙생활을 늘 격려하고 도와야 합다. 그런데 이 물은 아침마다 채웠듯이 시원한 아침 냉수와 같은 위로와 소망과 격려의 말이어야 합니다(잠15:23, 16:24).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한 것처럼 언어란 자신을 포함하여 외부에 미치는 영향력은 큽니다. 성경은 언어의 위력을 이렇게 교훈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에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약3:2-10)
그래서 히3:12-14에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벧전3:10-11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했습니다. 우리의 언어가 바꾸어질 때 인격과 행동과 환경이 바꾸어집니다.
<결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에게도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십시오. 생명으로 충만하십시오. 하나님께 여쭙는 신앙을 가지십시오. 남을 위해 대도하십시오. 그리고 남을 말로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입술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성전의 아름다움을 사모한 것처럼 우리의 신앙을 본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본받는 역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거하시고 모든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 아름다운 성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운영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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