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독교 인식론(The theory of Knowledge)
1) 인식의 원천적 근거 - 하나님
만물이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의 근본적인 지식의 원천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
(고전 8:5)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따라서 조직신학의 모든 내용들, 즉 “하나님 그분”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과 관련을 갖는 피조물”에 대한 지식은 오로지 하나님께로부터만 출발되어야 하는 것이다.
2) 인식의 외적 근거(extra nos - outside us) - 계시
일반적으로 세상의 모든 학문적인 진리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이성적인 방법으로 탐구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련된 지식으로서 언약과 구속에 관한 지식은 성경에 보존되어 있는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통해서만 인간(=택자)에게 전달된다.
(요 5: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40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41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2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즉 “언약과 구속의 계시”는 하나님의 선물로서 “외부로부터 입혀지는 것”이다. 이는 주어진 성경 말씀을 성령이 조명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결코 인간의 이성으로 깨달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조직신학은 성령으로 조명된 성경을 가장 근본적인 인식의 근거로 삼는다.
3) 인식의 내적 근거 - 신앙과 이성
먼저 전제할 것은 인식의 내적 근거가 신앙이라고 했을 때, 이는 사람 안에서 믿음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믿음이 주어져야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한편 일반 학문은 이성을 지식을 얻는 절대적인 매개로 생각하나, 신학은 믿음을 기독교적 진리 인식의 필수불가결한 도구로 간주한다.
(갈 3:5)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물론 성경은 그 내용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이성적 활동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누구나 문자를 읽을 수만 있다면 성경을 읽고 주어진 이성으로 그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언약과 구속사의 진리에 대한 이성적 접근은 선물로 받은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따라서 믿음이 성경 진리에 대한 이성을 일깨운다고 할 수 있는데, 이때의 이성을 중생한 이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요 3: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4) 신학과 신앙의 관계
① 신학이 신앙에 대한 성찰이라면, 신학과 신앙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에 틀림없다. 신앙은 본질상 직접적인 것으로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신자 개인에게 무조건적으로 오는 선물이다.
(엡 2: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② 이러한 신앙은 신자로 하여금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공동체의 증언을 진리로 받아들이게 한다. 다시 말해서 믿음이란 신앙 공동체에의 참여를 수반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인 것이다. 이렇게 부르심을 입은 신자는 타자(他者: 예수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에 대한 성령의 인도로써 그의 의지를 헌신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예수님의 제자들과 더불어 교제(fellowship)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엡 2: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된다.
③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학과 신앙의 구별은 신앙이 우선이고, 신학은 이차적인 시도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신학은 신앙에 의해서 요구되는 것으로서, 신자가 신앙의 실체를 성찰하고 그 내용을 진술하고자 할 때 신학이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전문적인 신학자들이 다른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큰 믿음을 지녔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신학자들은 교회에 의해서 그들의 사고능력을 사용하여 다른 이들의 신앙에 봉사하도록 요청받은 사람들일 뿐이다.
엡 4:11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④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믿음을 통해서 신학적 성찰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며 보존, 계승하는 신학적 과제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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