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요리문답(Catechism)
⑴ 신학 작업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르침을 베풀어야 할 필요성으로부터 나온 결과이다. 그런데 교회에 초신자들이 계속 들어오게 됨에 따라서 이들이 성경을 바르게 알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이교와 철학에 대한 변증으로서의 신학적 공부나 연구 보다는 성경 교리들을 통한 기독교의 근본들에 대하여 가르쳐야 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엡 4:11)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⑵ 초기부터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경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신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이미 주후 2세기에 교회는 이교(異敎)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많은 신자들을 가르치는 도구로서 “교리에 대한 정교한 요약들”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후 4 세기경 예루살렘 교회에서 교리의 학습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중세까지는 초신자들을 위한 문답식 교육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중세의 요리 문답은 어거스틴의 전통을 따라서 믿음, 소망, 사랑의 기독교 3대 신덕을 가르치는 의미에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과 십계명을 가르치는 것을 골자로 삼아 왔다. 이 전통은 종교개혁 이후의 요리 문답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⑶ 그러나 교리 교육의 진정한 설립은 종교개혁 시대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 특히 요리 문답이 발달된 이유는 새로 세워진 개신교회의 실체를 교리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이후 개혁파 교회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것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1563)”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1647)”이다.
한국 장로교회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성경 요리문답”이라고 하여 헌법에 편입시켜 왔다. 그러나 19세기 주일학교 운동이 발전함에 따라 옛 종교 교육 방식인 요리 문답 교육은 쇠퇴하여 왔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직접 교육함에 따라 요리문답 교육은 거의 등한시되어 오고 있는 실정이다.
③ 성경의 요약(biblical summarization)
1) 성경적 바른 신학의 정립을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진리들을 “요약된 형태의 교리”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껴왔다. 구약 이스라엘도 그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과의 만남 또는 체험으로부터 생겨난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요약적으로 제시했다.
(신 6: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5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마 22:37)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2) 신약에서도 구원의 본질과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요약적인 교리로서의 신학적 진술들을 제시하고 있다.
(빌 2: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딤전 3:16)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3) 신학을 “성경의 요약인 교리”로 이해하는 태도는 교회사 속에서 전통적으로 계승되었으며 이것을 신학의 중심적 기능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종교개혁 이후로 보수적인 신학자들은 이러한 측면을 신학의 중심적인 기능으로 다루었다. 그들은 성경 요약이라는 신학의 초점을 학문의 본질에 대한 근대적 개념들과 결부시켰다. 자연계가 과학자들의 탐구에 순응하여 밝혀지듯이, 성경의 가르침도 객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그들은 주장하였다. 이러한 전제의 결과로서, 자연과학이 자연계의 수많은 사실들을 조직화하듯이, 조직신학은 일차적으로 성경의 “사실들”(facts)을 조직하는 학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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