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십자가의 길, 마귀의 길 마태복음 4:1-11

하나님아들 2020. 4. 28. 19:49

십자가의 길, 마귀의 길  마태복음 4:1-11

 

구라파에서 예전에 콜레라가 한참 유행할 때에 한 작가는 그 당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을 풍자하여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어떤 농부가 마차를 타고 도시를 향해서 들어가는데, 길에서 어떤 부인이 손을 들어 마차에 태워 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 부인을 자기 옆에 태웠지만 얼굴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마차를 타고 가면서 농부가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묻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한마디도 대답을 안 합니다.

해가 저물어 가는데 갑자기 이 농부의 마음속에 섬뜩한 두려움이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계속 질문을 하니까 할 수 없이 이 부인이 입을 엽니다.

꼭 내 이름을 알아야 하겠소?” “알고 싶습니다. 누구십니까?" “나는 콜레라요.”

깜짝 놀란 농부가 정신을 차린 후 화가 나서 외칩니다.

왜 하필이면 당신은 이 도시에 들어가려고 합니까?”

지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 때문에 죽어간 사실은 모르십니까? 제발 마차에서 하차하시오."

나는 이번에 꼭 열 명만 죽이겠소. 그리므로 당신과의 동행을 허락하시오.”

"아니! 그러지 말고 내리시오."

이번에는 꼭 열 명만 죽일 것이요. 그러나 당신만은 안 죽일 터이니 염려하지 마시고 계속 가게 해주시오.”

한참 후에 이 농부가 작전을 바꾸어 "그렇다면 꼭 열 명만 죽여야 합니다."확약을 받습니다.

그렇게 열 명만 죽이겠다는 약속을 받고 드디어 성문에 도착했을 때 성 앞에는 이미 수많은 시체들이 즐비하게 드러누워 있습니다.

수천 명이 죽어간 것을 보고 농부는 화가 나서 소리칩니다.

"염병 부인! 약속이 틀리지 않소, 열 명만 죽이겠다고 하고서 이 수많은 시체가 웬 말이오."

이때 부인이 이런 대답을 합니다.

나는 아직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소, 이 사람들은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다 죽어 버린 사람들이오.”

이 풍자적인 이야기는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는 대상 그 자체보다도 그 대상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지 그 두려움의 가능성, 두려움의 무서움을 잘 설명하고 있는 에피소드입니다.

 

오늘 우리는 코로나 19 감염 병으로 인하여 많이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막연하게 두려워만 하지 말고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우리 속에 스며드는 불안을 이기고 공포를 이기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를 얻어야 할 줄 믿습니다.

시편 91편에 보면, 시인이 처한 당시 상황이 오늘날과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어두울 때에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당시 상황을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전쟁과 전염병이 함께 뒤섞여 있는 참으로 두렵고 공포스러운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은 예전의 전쟁 상황에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낮에는 생명을 내 놓고 적과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하고 밤중이 되면 적은 물러갔지만 이제는 전염병의 두려움이 끝없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썩어가는 시체에서 내 뿜은 냄새는 코를 진동시키고 옆에서는 전우가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니라 수백 명 수천 명이 죽어가고 있다고 할 때 얼마나 두렵고 불안하고 공포를 느끼겠습니까?

 

그런데 시인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담대한 마음을 갖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라.”(2,3)

천명에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하지 못하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담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물론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셔야 하고 바이러스 차단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내지 마시고 그 위에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고 간절히 기도하고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바이러스도 다스리신다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기도할 때 우리를 지키시고 가정을 지키시고 바이러스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코로나 19 사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금요일 성경통독을 다 했다고 정 권사님이 문자를 보내면서 인간의 범죄로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지구를 오염시키고 파괴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아파하실까?’ 하는 귀한 글을 주셨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성경을 통독하면서 이번 사태와 연결하여 많은 깨달음을 갖게 되고 은혜를 받는 줄 압니다만 저도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난 22일 조카 결혼식이 있어서 충주를 다녀왔습니다.

거기에 저희 큰 딸이 함께 참석을 했는데요, 큰 아이가 우리에게 신신당부를 합니다.

아빠 엄마 가능하면 밖에 나가지마. 나갈 때는 꼭 마스크를 쓰고 나가. 나갔다 오면 손 세정제를 꼭 바르고 아빠 차에도 갖다놓고 시시때때로 발라.’

제 나이도 있고 기저 질환이 있기에 더 당부를 하는 건데요, 그 말끝에 큰 딸이 이런 말을 합니다.

엄마 아빠가 감염되면 자기도 오빠도 직장에 못 나가고 자기가 다니는 호텔도 오빠가 다니는 호텔도 문을 닫아야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 애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런 일을 얼마든지 목격하고 있습니다.

확진 자가 다녀간 백화점, 병원, 직장, 공장이 무더기로 폐쇄되거나 쉬는 것을 보면서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조심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여기에 있는 줄 압니다.

바이러스 차단에도 여러분 한 사람이 중요하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반대로 나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그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좋은 영향력,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 사람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예수님보다 더 중요한 분은 없습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온 인류가 구원을 받는다고 할 때 예수님 한 분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 분보다 더 중요한 분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좋은 방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너무 자주 듣고 익숙해져서 이 성육신 사건이 얼마나 감동적인 지를 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만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얼마나 절실하였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이 세상에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대접을 받고 사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능력도 있었고 그런 성향도 인간인 이상 갖고 계시지 않았겠습니까?

설사 그런 대접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십자가에 달리는 고통은 받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와 똑 같은 성정을 가지신 분이 십자가의 고통을 왜 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 십자가의 길을 처음부터 작정하셨고 그 결심을 끝까지 밀고 나가셔서 결국 우리 인간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인간의 구세주가 되시기까지 그 밑바탕에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가셨기에 그는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소요리 문답에 나와 있는 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원토록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가고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 결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게 하고 다른 방법을 택하도록 유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인데요, 이러한 시험의 내용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는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시험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하고 할 수 만 있다면 편하고 쉽고 세상적인 길을 걸어가도록 유혹합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면 일시적으로는 편하고 좋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은 결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주님은 마귀의 물질적인 시험을 물리치십니다.

 

마귀는 40일 금식하고 심히 주리신 주님에게 이 돌들로 떡을 만들어먹으라고 시험합니다.

-이 시험은 주님이 40일 금식을 하고 난 후 아주 주리셨을 때 했던 시험입니다.

이 정도가 되면 돌이 떡덩이로도 보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겠습니까?

정말 급하고 가장 우선적인 일이 떡을 먹는 일이었습니다.

-아울러 지금 주님과 같은 이런 상황을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당하고 있었습니다.

포도원 품꾼들의 비유에서 보여주는 대로 군중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시켜주는 사람이 없어서 오후 5시까지 놀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을 하지 못하면 그 다음날 하루는 온 식구가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살아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빵이라는 사실을 주님은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들을 굶주림에서 해방시킨다면 얼마나 귀하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이냐?

-뿐만 아니라 주님은 그런 능력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이기에 돌들로 떡을 만드는 일 자체는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마귀의 시험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하여 능력을 행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물질적인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말씀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물질이 풍성하면 상대적으로 영적인 부분이 약해지고 신앙적으로 약해집니다.

물질을 의지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이 목적이 되면 하나님이 목적이 되지 못하고, 돈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일만 가지 악을 범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물질에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물질의 풍성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마귀는 주님의 관심과 시선과 방향을 물질적인 것에 두려고 했지만 주님은 십자가에 시선을 고정하시고 어떠한 방해 속에서도 십자가의 길을 벗어나지 않으시고 골고다 언덕까지 가셨습니다.

우리의 가는 길에 물질적인 것이 방해하지 않도록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로, 주님은 명예적인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릴 때 죽으면 그것은 미련한 짓입니다만 사뿐히 내려앉아 죽지 않고 산다면 그것은 엄청난 영광이고 명예요 인기를 얻는 일이 될 것입니다.

마귀가 유혹한 것은 그런 명예와 영광과 인기를 얻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의 능력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유혹은 글자 그대로 유혹입니다. 넘어가기가 쉽다는 말입니다.

인간으로서 영광과 명예와 인기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이라고 이것을 왜 싫었겠습니까만 그러나 주님은 이것이 궁극적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없음을 아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지 못함을 아셨기에 이런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유혹은 예수님이 당하신 유혹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늘 다가오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섬기기 위해 오셨다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늘 섬김을 받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종이 되기 위해 오셨다는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늘 주인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낮아지신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높아지려고 하고, 겸손하신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늘 교만하였고,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십자가를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 영광과 명예와 인기는 주님을 따라가는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세상 영광바라보기 보다는 주님의 영광 바라보면서 주님과 함께 겸손과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세상과 타협하라는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는 유혹은 몇 가지 면에서 참으로 매력적인 제안입니다.

먼저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는 매력이 있고요 둘째는, 더도 말고 딱 한번만 하라는 매력입니다.

셋째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서 딱 한 번만 절하면 이 엄청난 천하만국의 영광이 네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매력적인 말이고 또 얼마나 쉬운 말입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유혹에 넘어갑니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유혹 속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진짜가 아니라 마귀의 거짓이라는 점입니다.

한 번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마귀는 그 약점을 이용해 계속 요구합니다.

아무도 안 본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도 알고 사람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세상 만국의 영광도 안 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마저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귀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마귀와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신 주님은 마귀를 물리치시고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십자가의 길로 공생애를 시작하십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일에 한 치도 흩어지지 않으시고 갈보리 언덕까지 올라가셔서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고 하나님의 모든 영광을 누리시게 됩니다.

십자가의 길을 오로지 주장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방해하시는 온갖 유혹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신 주님은 오늘 우리 성도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십자가의 길을 방해하는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020.03.01.)

권호만barnab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