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신의 성품 성경: 벧후1:1-11절

하나님아들 2020. 1. 9. 20:46

신의 성품 성경: 벧후1:1-11


오늘 성경은 당시 이단을 이기고, 박해 중 배교를 피하는 최선의 비결은 영적인 성장에 있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오늘 성경에서는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문제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 같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또 신비한 신인합일에 이른다는 말도 아닙니다. 믿고 세례를 받은 성도는 점차적으로 신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던지 반드시 중요하게 여기고 도전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신의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기를 소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70인 바위, 학생수련회, 금정산 동물원. 새벽. 사자의 울음소리./ 영국의 설교자 부르스)

 

역사상 가장 강하고, 문명화된 제국 중 하나였던 로마가 물먹은 흙 담처럼 무너졌습니다. 당시 로마는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군사력과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으로 온갖 종류의 음식과 술, 쾌락과, 정욕을 맹목적으로 사랑했습니다. 로마제국은 북쪽의 미개한 유목민,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나라에는 신앙을 위협하는 일이나 박해가 없습니다. 음식을 골라서 먹을 수 있고, 가족들이 함께 여행을 갈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위험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진리에 무심하게 살며, 주일 예배 한번 드리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다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나 종교형식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실재생활에서 거룩함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신의 성품에 참여하라는 말씀은 우리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시간이 가고 세월이 가면 자동적으로 나이를 먹습니다. 청년이 장년이 됩니다. 장년이 노년이 됩니다. 이것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냥 됩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을 닮거나,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시간이 간다고 자연히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과 관계(3.8)

어거스틴이 꿈을 꾸었습니다. 천국에 이르자 문지기가 당신은 누구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자 문지기가 말합니다. “내가 보니 당신은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오. 당신 머릿속에는 온통 철학자의 지식으로 가득 차 있소. 당신은 철학자일지는 모르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아니오. 라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 꿈에서 깬 어거스틴 그날 이후로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고치는 기회로 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의 위대성은 그의 철학이나, 그의 탁월한 지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 몰두함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 3절에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8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8)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신의 성품에 참여 한다는 큰 주제는 우리 개인이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하던지, 혹은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던지, 기도하는 것이 그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부르신 자를 알아야,“한다는 3절이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하는 8절은 통해서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한 너의 관계가 어떤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붕어빵에 붕어가 없고, 호도과자에 호도가 없고, 칼국수에 칼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교회에 그리스도가 없다. 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성경은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고후 13:5)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여러분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내 자신을 만듭니다. 이렇게 보면 나에게 무엇이 가득 차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성공이나, 지식, 철학, , 출세 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나의 주()가 되느냐 여부입니다.

 

세계 최고부자요, 최고의 C. E. O로 인정받는 빌 게이츠는 매년 새해에 1주일간을 생각하는 주간”(Think week)을 갖는다고 합니다. 그는 이때에 모든 연락을 끊고 책을 몇 권 들고 자기만의 장소로 들어가서 생각을 깊이하면 지낸다고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M. S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기업 수익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자신의 남은 인생을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깊이깊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서 그는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딴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290억 달러, 30조원의 기금으로 에이즈. 기아로 고통 받는 사람을 돕고, 학교가 없는 곳에 학교를 세우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로 나온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항상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자연히 예수님을 닮게 하는 동인(動因)이 됩니다. 한국축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히딩크 감독입니다. 이 사람은선수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공만 향해 뛰는 것을 동네 축구라고 합니다. 반면에 생각하는 축구를 전략 축구라고 합니다. 4세기에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는 기독교의 모든 흔적을 말살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독교를 박해하면 할수록 기독교는 더욱 번창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젠장 기독교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단 말이야. 노예들조차 생각을 하니 말이야!" 이것은 로마인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좋아 하는 것, 사랑하는 것, 또 귀하게 여기는 것은 자동적으로 우리의 생각에 들어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얼마나 주님을 귀하게 여깁니까. 생각합니까. 스스로에게 물어 보시길 바랍니다. 말은 신자요. 몸은 교회에 나오는데 그의 생각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 자식, 땅이나 집 같은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신앙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3:1)

깊이 생각하다 말은 카타노에오라는 헬라어인데, “어떤 것에 대해서 전심으로 몰두해서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집중하는 것이 바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관심이요, 사랑입니다.

 

오늘 성경에 주님을 아는데 게으르지 않는 사람에게 신의 성품이 형성된다. 는 것입니다. 예수로 눈을 뜨고 예수로 눈을 감고, 하루를 마치는 사람 말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신의 성품에 참여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허락된 축복입니다.

 

2. 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4)

 

피한다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고 도망한 일이 떠오릅니다.(창세39:7-12) 사람은 탐심, 음행, , 쾌락 같은 것에 마음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성경은 피하라고 요청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적인 자극을 주는 것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그러한 소재로 농담을 하거나, 이야기하면서 즐기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에베소5:3,4) 그러한 것들을 멀리하는 것도 세상을 피하는 일부입니다.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해야 한다는 말씀은 세상에 속한 것은 썩고, 없어지고 살아지는 말입니다.

 

노르웨이의 피터진트가 정신병원을 방문했는데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미친 사람들 같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도 분별이 있고,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사람들이 정신병자도 미친 사람들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의사에게 이 생각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담당의사는 그들은 미쳤어요. 정상이 아닙니다. 그들이 분별력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잘 들어보세요, 모두가 자기 이야기만합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빠져 있는 자들입니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그리고 저녁에도 오직 자기 자신뿐입니다. 그들은 자신에 미쳐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세상은 피터진트가 방문한 병원과 같습니다. 보기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 자신에게 깊이 빠져있습니다. 그들이 모든 자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관심에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안정되지 못하고,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한 것이 현실입니다. 현대인들의 특징은 자기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교회에서 마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열심히 노래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데, 나를 누가 사랑하겠습니까.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습니다. “신경성 환자는 허공에 성을 쌓는 사람이요 정신병자는 그 성으로 이사 가는 사람이요, 그리고 정신과 의사는 그 성을 세놓은 사람이다.” 세상에는 모든 것이 다 있지만 하나님이 없습니다. 세상은 찬란하지만 참 빛이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12:15-17)

 

우리의 눈은 동시에 두 가지를 다 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보고 있다면, 세상이 보이지 않을 것이고, 세상에 주목하고 있다면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커지면, 세상은 작아지고, 세상이 커지면 그리스도는 작아질 것입니다. 우리의 귀는 두 가지를 동시에 들을 수 없습니다. 주의 음성을 들으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될 것이고, 세상의 소리를 들으면 주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세상을 따르면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계가 하나인 사람은 시간을 정확히 알지만 시계가 두 개인 사람은 결코 확실한 시간을 알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욕망과 영적인 부요를 다 다 이루려고 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 나누어지면,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습니다. 토저는하나님을 만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라.”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을 피한다는 것은 중이나 수도사들처럼 산으로 암자로 가서 내려오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이 신의 성품에 참여 한다는 것입니다. 소돔 고모라는 세상 한복판입니다. 하나님은 롯의 가족에게 떠나라고 했습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기에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롯의 아내의 몸은 소돔 성을 떠나왔지만 마음은 그 성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 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제는 다시 세상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세상 미련을 다 버려야 합니다. 세상에 마음이 빼앗겨서는 안 된다 는 것입니다. 유혹을 받지 마세요, 선악과를 따먹지 마세요.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3. 속죄를 잊지 않고 사는 것

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9)

 

요즘 많은 사람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는 병이 치매입니다. 이 치매는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고 세례를 받아서 교인 된 사람이 죄 사함을 받은 사실을 잊고 지낸다는 것입니다.(9)

1867330일 러시아가 미국에게 알레스카를 720만 달러에 매각한 것입니다. 1달러를 1200원 기준으로 86억 원이죠. 우리 돈으로 치면 100평을 불과 2원에 판 것입니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 스워드가 매입할 때 미국 의회에서는 쓸모없는 얼음 덮인 땅이라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30년이 지난 후 알레스카에서 금광이 발견 되고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고 지금은 군사적 요충지요 산업과 교통의 요지 등 보물 같은 땅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러시아가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습니다. 크기는 남한의 15, 인구는 63만 명 미국의 49번째 주. 1968년 노스슬로프(North Slope)에서 원유매장량이 96억 배럴로 알려진 대유전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로써 하루 200만 배럴의 원유 수송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참고: 우리 하루 220만 배럴 사용) 이렇게 엄청난 땅을 헐값에 미국에 넘긴 것입니다. 그 중요성을 몰랐기 때문에 일어 난일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 알레스카 100개의 값보다. 더 귀합니다. 이 죄 사함을 감사하며 잊지 않는 사람이 되어라 는 것입니다. 성경에 자신의 장자 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판 에서도 있습니다. 나중에 땅을 치고 통곡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죄 사함의 은혜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속죄의 은혜를 잊는다면 감사할 수 있습니까. 전도할 수 있습니까. 속죄는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입니다.

 

결론

병조판서였던 율곡 이이( 李珥, 1536~1584 )가 임금께 "나라 사정이 10년 내에 큰 병란이 일어날 듯하니 10만 상비군을 세웁시다. 중앙에 2, 8도의 각 도에 일만 명씩 8만 명 총 10만을 농사철에는 농사짓게 하고, 농사철이 끝나면 훈련을 받게 하되 이들의 세금을 면해 줍시다. 그렇게 하면 세금이 감면 되니 열심히 훈련 받을 것입니다" 그때 조선은 일본의 조총보다 더 멀리 나가는 성능이 좋은 총이 있었습니다. "이 총을 대량 생산하여 무장을 시킵시다. 그래야 나라의 재난을 막을 수 있습니다." 라고 간했습니다.

 

그러나 신하들이 벌떼 같이 일어나서 "왜 태평시대에 화를 불러일으킵니까? 다른 흑심이 있는 거 아니요?" 이율곡은 병조판서 직에 사표를 내고 낙향하였습니다. 율곡 선생은 낙향하는 길에 자신의 심정을 실은 시를 남겼습니다. “사방은 먹구름이 가득한데 먹구름 뒤에 태양은 밝기만 하구나. 어리석은 신하가 눈물로 나라의 장래를 탄식하노라그 후 10년 후에 임진왜란이 터졌습니다. 왜군이 물밀듯이 쳐들어 왔는데 나라에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였습니다. 그제야 율곡 선생의 십만 양병 론을 반대하였던 사람들이 말하였습니다. "! 율곡이 성인이로다. 성인이야" 그러나 율곡 선생은 이미 작고한 후였습니다. 임진왜란은 1592년에 일어나 1598년에 끝이 났습니다. 이 강산은 짓밟히고 불살라지고 초토화 되었고 왕궁은 불에 타고 왕은 의주로 피난을 갔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합니까. 예수님이 마음에 있어야 한다고 말해도, 세상은 썩어질 것이라고 말해도, 죄 사함을 받은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해도 여러분들이 가볍게 듣고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어떤 일이 앞으로 올 것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명은 자라고 성숙합니다. 우리는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1:2225). 이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본 훼퍼는 믿음과 순종은 떨어질 수 없는 하나로 보았습니다. "믿는 자들만이 순종할 것이며 순종하는 자들만이 믿는 것이다." 우리에게 어려움과 곤란함이 계속될 때,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존 밀턴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실낙원'을 썼습니다노아 웹스터는 `웹스터사전'을 쓰기위해 36년간 자료를 모으고, 두 번이나 대서양을 건넜습니다플라톤의 `국가론'은 무려 아홉 번이나 대필한 다음에 완성된 것입니다시인 브라이언트는 자신의 시를 보통 99번씩 다듬어 완성했답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8,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10년 세월이 걸렸습니다. 슈만 하인 크는 위대한 가수가 되기 위해 20년간 가난과 싸웠습니다, 꿀벌은 살아있는 동안에 지구의 세 바퀴나 되는 거리를 날며 꿀을 모은다고 합니다. 소중한 것은 우리의 결심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가난이란 내가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자각입니다. 돈도 권세도 그 어떤 것도 고통과 죽음을 면하게 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내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도우심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사람입니다. 소유할수록 더 행복해 질 것이라는 신화와 결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평범한 현실에서 행복하게 존재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프랑스 속담에는죽을 때 그대가 손에 쥐고 갈 수 있는 것은 그대가 포기한 것들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영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