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재림의 징조/마태 24:1~14
서론
본문은 <감람산 강화, Olivet Discours>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은 종말에 관한 말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감람산에 올라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면서 예루살렘의 성전의 돌 하나도 남김없이 무너질 것을 말씀하셨는데 앞으로 있을 종말에 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세상에 돌아가는 사정을 보고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세상 말세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성경을 알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세상에 돌아가는 일들이 하두 심상치 않게 되어 지니 절망감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언제인 가는 확실히 말하고 있지 않지만 종말이 올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 종말이 어떤 것인지 언제 임하는지 그 종말을 맞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오늘 본문 마태복음 24:1-14 말씀을 통해서 “주님 재림의 징조”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저 합니다. 오늘 세 가지로 대지를 나누어서 말씀 드립니다.
I. 기독교의 역사관
II 주님의 재림의 징조
III. 주님의 재림과 우리의 자세
I. 기독교의 역사관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운행하시고 주관하십니다. 세상에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전쟁도 일어나고 기근이며 환난과 재앙도 일어납니다. 그 모든 일들이 하나같이 하나님의 예정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장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관하여“ 제목으로 하나님의 예정에 관하여 상세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개인의 일이나,나라의 일이나,세계적인 일들이 모두 하나님의 주권으로 그의 예정을 입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 우연하게 일어나는 듯 보이지만, 반드시 크고 작은 사건 뒤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예정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번 그의 영광을 위해서 예정하신 일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시간의 시작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종말이 있게 마련이며 역사는 그 종말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향하면 어느 정도 가다보면 필연코 대구를 지나 삼량진, 밀양을 지나 부산에 도착합니다.
아무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출발이 있기에 종말이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도 언제까지나 지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 후서 3장에 보면 베드로 당시의 사람들도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는가? 모든 만물이 조상적부터 그대로 있지 않느냐?" 라고 벧후 3:4에 말했습니다. 그들도 시작이 있으면 종말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편, 헬라 철학에서는 역사란 마치 훌라후프 처럼 둥글게 원형으로 움직이며 계속해서 반복해 나간다고 가르칩니다.
둥근 원형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그저 같은 course 가 지속될 뿐입니다. Arnold Toynbee 가 “History repeats itself" 라고 말한 것도 이런 영향을 받은 까닭입니다. 따라서 헬라 철학에서는 기독교에서 보는 심판의 개념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원형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어느 역사의 시점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 별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토아 철학이 등장 합니다. 스토아 학파는 역사는 수직적이거나 수평적인 성격을 가진 것도 아니고,
둥글게 원형으로 돌기 때문에 어떤 이에 짜증을 낼 필요도 없고, 실망이나 절망할 필요도 없고 단지 모든 일어나는 일을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짜증내지 말고 편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넘어져 몸을 많이 상해도 “살다보면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니 오히려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pictetus 라는 철인에게 하루는 제자들이 찾아와서 스승의 다리를 비꼬는 것입니다. Epictetus 는 “그렇게 하면 다리가 불어질지도 몰라” 라고 충고하면서도 말리지 않고,
그냥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나중에 다리가 불어졌습니다. 그때 Epictetus 가 하는 말, “내가 말했지, 다리를 비꼬면 다리가 불어질 것이라고.” 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어 넘겼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심지어 오늘 기독교 신자 중에도 스토아 철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모두 비판 없이 수용하면서 자연에 순응하는 태도입니다. 가령 계단을 오르다가 잘 못하여 넘어져 다쳤는데 “Praise the Lord" 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은 나쁜 것입니다. 요즘은 신앙의 바른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에 무엇이 성경적이고 무엇이 비성경적인지 구분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 사도행전 17:18 절에서 스토아 학파의 생각을 비판합니다. 성경에는 “스도이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사람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역사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공산주의 의 역사관은 인류는 원시공동사회로 시작하여 봉건주의, 자본주의, 제국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공산주의로 변한다고 그들의 <사화발달사> 에서 가르칩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모든 사상은 기원 1135년에 이태리에서 태어난 'Joachim da Fiore' 라는 성직자의 철학에서 시작됩니다. 그는계시록 주석을 썼는데 그 책에서 주장하기를, "구약은 성부시대이고, 신약은 서자시대이고 지금은 성령시대인 것 처럼 신학도 진화한다" 고 가르쳤습니다.이런 그의 철학은 그 후에 문예 부흥기에 들어서면서 Petrarch 에게 전수되었고, 그 뒤를 이어 Thomas More, Hegel, Darwin, Marrx, Lenin, John Dewey, New Age 등으로 이어지는데,
Thomas More 는 Utopia 라는 작품을 통해서 계급이 없는 사회를 꿈꾸었고, Hegel 은 변증법을 만들어냈고, Darwin 은 진화론을 만들어냈습니다. 다윈의 생각으로는 신학만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단세포 아메바에서 고등동물로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Marx 에 와서는 Feuerbach 의 유물론 사상을 도입하여 Hegel 의 철학에 힘입어 사회도 진화한다는 “변증법적 유물론” 의 사상을 발표했고, 그 사상에 심취하여 Lenin 은 1917년 Marx 의 이론을 실천하여,
St. Peterberg에서 쏘련 Bolshevik 공산혁명을 이룩했습니다. 미국의 John Dewey 는 인간의 의식도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학교와 민주주의 > (School and Democracy) 라는 책을 발행하면서 실용주의 교육으로 미국의 교육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오늘의 New Age 운동가들은 사람이 요가나 초월명상이나 신접하면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면서 인간의 <잠재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서 Big Sur에 Esalen Institute 라는 교육기관도 만들었습니다.
유대인은 헬라의 철학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Hebraism 은 Hellenism 과 늘 충돌했습니다.. 유대의 역사관은 항상 수직적입니다. 기독교의 역사관도 수직적입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역사에는 반드시 시작과 종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종말이란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됩니다. 이 세상은 언제까지나 지속하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종말이 오고야 맙니다. 그럼 주님 재림의 징조가 있는가요? 있다면 어떤 징조들이 있는지 알아 봅시다.
II 주님 재림의 징조들
주님 재림의 징조는 많이 있습니다. 어떤 징조가 있을까요? 본문에 보면 전쟁과 난리가 있고, 지진이 나고 기근이 있고, 사랑이 식어진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한다고 했습니다.그리고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면 주님이 오신다고 여러 가지 징조를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다는 말은 세계 구석구석 모든 민족 모든 개인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말이 아니라, 복음이 전파될대로 세계에 전파된 후에 주님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미국 성서공회에서 발행하는 Record 라는 잡지에 보면 이제 전 세계의 언어로 거의 모두 복음이 전퐈 되었다고 보도합니다.많은 재림의 징조 중에서 성경은 사람의 미혹을 받지 말라고 말합니다. 속임수가 얼마나 성행합니까? 중세 천년동안 교회의 잘못된 숙임수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예를 들면, 마리아 숭배, 연옥의 교리, 성찬식의 오용, , 유품숭배, 교황숭배 등 얼마나 남을 속이는 교리가 성행했습니까?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종교개혁가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 것입니다.
중교개혁 이후에도 재세레파들이 일어나서 혼란기가 있었고, 그 후 Quaker 교가 생기고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여러 가지 교파가 우후죽순처럼 많이 생겨났습니다. 1830년대에 시작된 John Nelson Darby 의 세대주의가 미국에 들어와 1900년에 미국에 Scofield 에 의하여 널리 퍼지게 되었고, 전에 없던 이런 신학은 이윽고 Louis Sperry Chafer에게 전해 졌고 Dallas 신학교를 통해서 급속도로 세대주의가 펴저 나갔습니다.
19 세기에는 안식교,모르몬교,여호와의 증인, 20 세기의 통일교,장미십자교,Christian Science 등이 일어났고 20세기에는 들어오면서 자유주의가 프린스톤 신학교를 강타한 것은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Topeka, Kansas 의 Bethel 신학교에서 시작된 방언 운동이 Los Angeles 의 Azusa 로 번저 본격적인 구오순절파 운동이 생겨났고,1960년대에 신오순절파가 일어나더니, 1990년대부터는 Fuller 신학교의 Peer Wagner 목사를 중심으로한 소위 "제3의 물결운동" 이 일어났으니
일반 성도로서는 어느 것이 성경적인지 분간하기가 참으로 어렵게 되어 버렸습니다. 요즘은 Brian McLaren 이 주창하는
또한 가지 이단적 신학의 변질은 바울의 칭의의 개념입니다. 영국 사람 Noel Thomas Wright 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비성경적인 신학운동인데 그의 말을 따르면, “바울의 칭의의 개념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얻는 것이라고 지금까지 알고 있었으나 새로 연구한 바에 따르면, 바울의 칭의의 개념은 그런 것이 아니고 이방인들이 유대교에 들어가려면 유대인의 율법을 따르는 행위에 의하지 않고,
유대교를 믿음으로 유대교에 들어가 구원을 얻는다“ 고 가르칩니다. 이 얼마나 이단적인 가르침입니까? 그러나, 놀랍게도 이런 사상이 요즘 신학계에 퍼져가고 있습니다.Clark H. Pinnock 목사나 Gregory Boyd 같은 목사는 <하나님이 미래를 모른다> 는 학설을 도입했습니다. "미래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미래를 알 수 있는가? 라고 반문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창세기 6장에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한다” 라는 말을 해석하면서,“하나님은 미래에 되어질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한탄했다“ 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Open Theism" 이라고 부르는데 요즘 새로 나온 신학 용어 입니다.뿐만 아니라, 패역한 오늘이 세대는 성경도 제멋대로 뜯어 고치면서 이른바 "Gender-neuter Bible" 이라고 하여 하나님을 ”중성“ 으로 표기하는 등, 학문 연구라는 이름으로 온갖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죄를 짓는 인간을 언제까지 하나님이 참고 견딜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분명 살아계시고 역사를 주관하시고 계시며 때가 되면 재림하십니다. 초림의 예수님은 말구유에 낮은 몸으로 탄생하셨지만 재림의 예수님은 구속자로서가 아니라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대심판주로 오시며,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오십니다. 모든 무릎이 그에게 꿇을 것이며 모든 입이 그를 주라고 시인하게 됩니다 (빌 2:10-11).
주님의 재림을 예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과거 '이장림,하방익' 같은 사람들이 주님의 재림을 예고하면서 얼마나 소란을 피웠습니까? 얼마나 많은 평신도들과 목사들이 이에 속아 넘어 갔습니까? 1992년 뉴욕의 Medison Square Garden 은 연일 <다미 선교회> 의 집회로 북쩍거렸고, 많은 사람들이 미혹을 당했습니다. 재림소동으로 말하면, 1883년의 William Miller 라는 침례교 목사가 주님의 재림을 1883년 10월21일로 예고하여 사람들을 미혹하였고, 주님의 재림하시지 않게 되자 1884 년으로 재조정했고,
다시 빗나가자 그는 시름 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고 그 뒤에 안식교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또 새로운 재림 일자를 예고하는 무리가 등장했는데 이들은 2011년 5월 21일부터 “대 환란” 에 들어가고 2011년 10월 21일에 주님이 재림하시며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가르치는 분이 생겨났습니다. 그분의 예언이 맞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마태복음 24:36절에 분명히 가르쳐 주는데,
천사도 모르고 인자도 모르는 일을 사람이 알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벌서부터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우리의 소망이지만 어느 날자에 오실는지 그것을 알 수 있는 지식은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주님은 분명히 재림하십니다. 그 때가 언젠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지식만 주셨습니다. 주님은 “무화과나무에 잎이 무성하면 인자가 문 앞에 온 줄 알라” 고 말씀 하십니다.
세상에 되어지는 정황들을 보면 주님이 오실 날이 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되어지는 정황>이란 바로 오늘 마태복음 24장에서 읽어보는 모든 일들을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서로 속이는 일, 미혹 받는 일입니다. 이런 일이 극심해지면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재림일자는 아무도 모른다고 마태복음 24:36절에 말합니다. 옛날 데살로니가 교희 성도들은 주님 이 당대에 오시는 것으로 알고 소유를 모두 팔아버리고 주님의 오실 날만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도 교인들은 죽어 가는데 주님은 재림하지 않으니 교인들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주님의 재림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성경은 주님은 도적같이 임한다고도 하고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고도 가르칩니다. 베드로후서 3:10 의 말씀은 '불신자' 혹은 예수를 믿어도 '명목상의 성도'들을 말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4의 말씀은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참 성도'들을 말합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를 믿는 성도라면 우리에게는 주님이 도걱 같이 임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우리가 그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도적같이 몰래 와서 믿는 성도들이 휴거된다는 세대주의의 가르침은 거짓입니다. 믿는 성도에게는 주님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는 성도의 신앙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1.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살아갑시다. 우리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그때 우리가 죽지 않고 그의 재림을 맞이한다면 우리는 죽음의 고통을 맛보지 않고 “영화로운 몸, Glorified body" 로 순식간에 변화 할 것입니다.
2. 각자 맡은 일에 중실하며 동요하지 맙시다. 늘 경성하여 하는 일에 매일 충실하면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처럼 동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매일 매일을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 는 자세로 살아가면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이 언제 오셔도 두려울 것 없습니다. 그날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 (Final Consummation of our Salvation) 되는 날입니다.
3. 항상 전도에 힘쓰도록 합시다. 우리를 아직도 이 땅에 남겨 두신 것은 우리가 아직 인생대학을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우리가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주님은 아직도 우리를 데려가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많이 있겠으나 주님의 나라 위해서 열심히 전도하는 일입니다. 세상이 점점 어지러워 갑니다. 사람들이 성경적 믿음을 떠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고 베드로 사도는 벧전 4:17에 말합니다. 이 생명 다하도록 전도하십시다. 우리 튤립 교육 선교회는 이런 사명을 띠고 개혁주의 신앙을 전하기 위해서 뜻 있는 성도들이 모여 땀과 눈물로 매일 봉사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핍박이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핍박이 와도, 죽음이 와도 우리는 영원한 그나라에 갈 때까지 열심히 전도하십시다.
결론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 22장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고 끝을 맺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동요함이 없이 주의 일에 더욱 힘씁시다. 주님은 재림하십니다. 그의 재림의 징조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 중에서 “거짓 복음” 이 난무하며 속임수가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에 미혹을 받으면 안됩니다. 그가 언제 오시는가요?
벧후 3장 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자”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서 재림하신다는 말입니다. 늘 말씀을 사랑하고 주님에게 순종하는 바른 신앙생활을 지켜나갑시다. 열심히 전도하십시다. 때가 악합니다. 사람들은 서로 속이고 속고 살아 갑니다. 거짓 복음에 속지 맙시다.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 때는 지구 땅덩어리가 불에 타서 녹는 날입니다.
벧후 3장11절 이하에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에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 라고 사도 베드로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우리 모두 그날을 사모하며 부활신앙으로 소망가운데 살아갑시다.전천년설*무천년설*후천년설등과 같은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 재림하면 이 세상 마지막입니다. 예수 믿지 않던 자들과 사이비 신자들이 굴 바위에 숨어서 산과 바위에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오?” 라고 하는 날입니다 (계시록 6:15-17).그날에 모든 무덤이 열리고 일반 부활과 일반 심판이 있게 되고,
우리 모두가 주님이 예비한 새 하늘과 새 땅에 영원히 거하게 되는 영광의 아침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되도다” 라고 요한계시록 14:13 에 말합니다. 그 날이 지금 빨리 다가 오고 있습니다. 주님 재림의 징조를 경계하면서 시대를 분별하며 영광의 그날을 사모하면서 경건하게 살아갑시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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