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
(삼상 1:12-18)
2005. 7. 31 늘푸른 주일 낮
무엇인가가 움직이려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 에너지를 우리는 ‘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입니까? 기름이죠. 이 기름의 힘으로 자동차도 비행기도 축구장만한 배도 움직입니다. 자전거는 사람의 운동 에너지가 페달을 통해 바퀴에 전달되어 움직입니다. 이 세상엔 그냥 저절로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실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알고 보면 지구의 중심에서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공동체가 잘 돌아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리더쉽, 지도력 이라고 부릅니다. 이 지도력에 따라서 한 공동체의 사람들이 잘 움직이기도 하고 잘 안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인 목사의 지도력이 중요합니다. 사실 교회만큼 다향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는 드뭅니다. 대개의 공동체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모입니다. 그런 공동체는 움직이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직업도, 성격도, 환경도, 개성도, 생활수준도, 경제적 능력도, 다 다릅니다. 교회가 크면 클수록 더 그렇습니다. 교회는 좋을 땐 무한 좋지만 한번 틀어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다 추구하는 신앙적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조금만 서로 간에 서운함이 있고 갈등이 있으면 참 힘든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리더쉽이 필요한 집단이 교회입니다.
제가 요즘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염려스러운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자꾸만 갈등의 요인들이 보입니다. 서로 간에 화목하지 못하고,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갈등하고 상처주고 상처받고 그래서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는 척 하지만 속으로는 ‘꽁’ 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그것 때문에 교회와 멀어지는 분이 있습니다. 저한테 서운함을 가지고 계신 분도 있는 것 같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하나가 되고 한 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오히려 반대의 모습들이 보여 져서 안타깝고 참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를 놓고 요즘 심각히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 늘푸른교회라는 공동체를 어떻게 움직여 갈까?’ 이것이 저의 고민입니다. 이 고민은 아마도 모든 목회자들의 공통된 고민이고 목회를 그만두기 전에는 계속해야할 고민일 것입니다.
교회를 움직이는 힘. 교회를 움직이게 하는 힘. 온 성도들이 하나 되어 움직이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기도입니다. 지금 우리교회는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꾸만 비끄덕 거리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기도하지 않고 일하니까 자꾸만 증이 나고 신경질이 나고,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그러다 보니 점점 교회와는 멀어지고 어느새 구경꾼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구경꾼입니다.
저의 부부에게 한 가지 숙제가 있는데 6,7 8 이 세달 동안 저희 부부가 감당해야할 사역이 참 많습니다. 그 사역이 큰 틀에서는 복음을 위한 일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이지만 사실 우리 교회 밖의 일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고 집사람도 그렇고. 그러다 보니 기도할 시간을 빼앗깁니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기 때문에 둘 중 하나만 없어도 새벽에 기도하러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이것이 숙제입니다. 크게 보면 다양하고 많은 일에 쓰임 받는 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인데 그것이 내 교회의 목회에 특히 기도에 집중할 시간을 빼앗긴다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면서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기도가 부족하면 다 부족하고 기도가 넘치면 다 넘친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부족하면 참 사역이 힘들고 불평이 생기고 기도가 넘치면 사역이 즐겁고 보람되고, 그래서 교회를 움직이고 사람을 움직이고 나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바로 기도에 있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는 시간이 바로 이 여름의 시간입니다.
사역은,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힘으로 한다면 목회는 다 똑똑 하고 돈 많고 힘이 썬 사람들만 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같이 무식하고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사람을 목사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기도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무식해도 할 수 있고, 돈이 없어도 할 수 있고, 힘이 없어도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데 무슨 밑천이 필요합니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만 투자하면 됩니다. 그것 말고 다른 밑천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 시간의 밑천을 잘 활용해서 기도에 성공하면 우리의 사역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그래서 기도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 인 동시에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기도보다 앞서면 안 됩니다. 하나님 보다 앞서면 안 됩니다. 우리가 기도보다 하나님 보다 앞서니까 자꾸 문제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우리교회 온 성도가 하나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 가길 원하신다면 기도보다 앞서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보다 앞서지 말기를 바랍니다. (기도보다 앞서지 맙시다) 정말 우리교회가 좋은 교회되길 원하신다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가 좋다더라. 어느 교회는 어떻다더라.’ 그러면서 그 교회 부러워하며 ‘어떻게 그 교회 한 번 가볼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시고 우리교회를 그런 교회 만들려고 발버둥치면서 나 자신을 죽이고 승질 부리지 말고 기도하면서 그런 교회 만들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 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해서 하나님을 움직이기만 하면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하나님 함께 하시는데 못 이룰 일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하시는데 막을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시겠다는데 누가 감히 반대하겠습니까?
마 21:3에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준엄한 선포입니다. 이 주님의 선포에 누가 감히 반기를 들겠습니까? 우리가 노력해도 안 되는 이유는 매번 실패하고 혹은 되는 것 같다가도 마지막에 가서 안 되고 하는 이유는 기도보다 앞서기 때문이고 하나님 보다 앞서기 때문입니다. 지금 잘된다고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가봐야 아는데 지금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내 생각과 내 욕심에 따라 살아가면 잘 되다가도 마지막에 가서 안 되고 맙니다.
요금 도청 사건으로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그 도청 사건으로 잘나가던 사람 하나가 넘어지고 말았는데 그 사람이 홍석현 주미 대사입니다. 미국 대사는 대통령 다음입니다. 아니 미국에서는 우리나라 대통령입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리가 바로 주미 대사라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앉은 홍석현 이라고 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전형적인 엘리트 과정을 거친 사람입니다. 우리나라 최대 신문사 사장의 아들이고, 삼성 이건희 회장의 사돈이고 경기고 - 서울대 - 하버드대를 거쳐 40대에 중앙일보 사장이 되었고, 작년 재산 증가율 1위라는 업적을 남기며 승승장부 장부해서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외교부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사가 된 사람입니다. 대단한 실력자입니다, 똑똑하고 돈 많고 집안 좋고 학벌은 끝내주고. 작년에 미국대사로 임명받고 땅 투기 의혹으로 언론의 숫한 공격을 받고도 그 자리를 든든히 지킬 만큼 실격자입니다. 정치력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지금은요? 결국 도청사건에 연루되어 스스로 미국 대사직 사표를 던지고 말았습니다. 6자 회담이 끝나면 교체될 겁니다. 참 잘 갔던 사람인데 하나님 없이 산 그가, 기독교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 없이 살았기에 그의 결말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선줄로 생각한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보다 앞서가면 기도보다 앞서 가면 넘어지는 날이 옵니다. 지금 조금 잘 된다고 교만하고 하나님 없이 망나니처럼 살아가면 그동안 쌓아 놓은 것들이 바닷가의 모래성 같이 힘없이 무너집니다. 모래위에 지은 집과 반석위에 지은 집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모든 일은 하나님을 위한 사역이 되어야 하고 그 사역은 반드시 기도가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의 기도가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 기도.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이 기도가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의 삶에 너무나 많은 아픔과 상처와 문제들이 있지 않습니까? 내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지 않습니까? 어떡하면 될까요? 예,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감동되도록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이도록 간절히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감동 되는 기도,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가 바로 눈물의 기도입니다.
아랍 속담에 “태양만 비추면 사막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태양을 원하지만 푸르름과 풍성함을 위해서는 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양만 계속되면 우리의 인생은 사막이 되고 맙니다. 촉촉하고 푸르른 인생이 되려면 비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눈물입니다. 그래서 하나니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는 겁니다. 우리의 삶을 촉촉이 적시는 고통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인생이 풍성해 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웃는 일만 있다면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 기도의 눈물을 흘리게 하십니다. 이 눈물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도시키는 능력입니다.
한나가 바로 이러한 기도를 드린 여인입니다. 고통의 소낙비를 통해 인생의 풍요로움을 누린 여인입니다. 우리는 한나를 통해 이 기도의 비밀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삼상 1:12에서 두 가지 단어를 주목해야 합니다.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 단어는 ‘여호와 앞에’라는 단어이고 또 한 단어는 ‘오래’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첫째,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대상이 누구인지가 분명한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천하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만군의 여호와. 그렇죠? 그런데 우리는 종종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 망각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런 신혼부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예날 우리의 전통예절은 갓 결혼한 새댁은 아침마다 한복을 차례입고 부모님께 인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부모님이니까요. 부모님이니까 아침 마다 그런 예를 갖추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부모님이 이젠 됐다고 할 때 까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옆집 아저씨 한테 그렇게 합니까? 옆집 아저씨한테 그렇게 하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하라고 시키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침마다 인사해야할 대상은 부모님입니다. 대상이 분명하기에 인사합니다.
기도가 그렇습니다.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 그분이 누구이신지 분명히 안다면 우리는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종종 우리가 기도의 대상을 잊기에 기도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고도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부모를 인정하지 않는 죄가 크듯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임에도 우리는 그 죄를 날마다 범하면서 죄책감도 없이 살아갑니다. 기도를 드려도 대충 형식적으로 드릴 때가 많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동시키고 그래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한다는 강한 의식을 가지고 기도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놀랍게 다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는
둘째, 오랜 시간을 투자한 기도입니다.
한나는 오랫동안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한나는 오랜 시간 기도했습니다. 물론 시간보다는 기도의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도의 시간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겉보다는 속이 중요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겉모습을 아무렇게나 할 수는 없습니다. 양보다는 질이 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오랜 시간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늘 무엇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기도를 무슨 문안인사 하듯이 끄떡하고 끝내면 기도의 깊은 영성을 맛볼 수 없습니다. 그것마저도 하지 않는 것 보다야 낫지만 우리는 짧은 기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요즘 시대가 하도 빨라지고 복잡해져서 간단명료한 것을 종아 하는데 그럴수록 기도의 시간은 길어야 합니다. 대표기도는 짧은 수록 좋지만 개인기도의 시간은 길면 길수록 좋습니다.
여러분 다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간다고 하면 ‘벌써가나 좀 더 있다 가지!’싶지만 내가 싫은 사람은 ‘왜 안가나!’싶잖아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오래 있고 싶습니다. 데이트하는 연인이 ‘나는 짧고 굵은 것이 좋아’하면서 시간이 있는데도 잠깐 만나고 헤어지는 바보는 없잖아요? 늘 시간이 부족해서 아쉽지 데이트하면서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하면 깊어집니다. 사랑하면 빠져듭니다. 그러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가치를 인정할 때 우리는 오랜 시간 하나님 앞에 머물게 됩니다.
여기에서 오랜 기도는 한번 기도했을 때 오래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도의 응답이 있을 때 까지 계속된 연속적인 기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계속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중단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사단 마귀는 자꾸만 우리의 기도를 중단케 합니다. 기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조금 만 더 기도하면 되는데 자꾸 일을 만들고 문제를 일으켜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기도를 오래하면 마귀 자신들이 패할 것을 알기 때문에, 기도를 오래하면 하나님께서 더욱 강력하게 역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를 자꾸 피곤하게 만들어서 기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럴 때 어떡하면 좋을까요? 이때 기도의 동역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기도의 동역자가 이때를 위해 필요한겁니다. 혼자 기도하려면 피곤하고 힘들지만 같이 기도하면 힘이 납니다. 여러분에게는 기도의 동역자가 있습니까?
제가 집사람하고 연애할 때 저는 대전에 집사람은 천안에서 자취를 하는데 둘 다 잠이 많습니다. 특히 둘 다 밤잠은 없는데 새벽잠은 많아요. 지금도 저의 목회의 최대의 적이 있다면 그건 새벽잠 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집안의 반대가 있었기에 기도해야 하는데 집사람은 그때 학교 출근할 때고 저는 군대 다녀와서 복학하고 학교를 다니는데 늘 친구들과 밤늦도록 몰려다니며 놀다가 12시는 넘어야 잠자리에 들고 그러니까 새벽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로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전화해서 잠을 깨워주는 겁니다. 그래도 전화 끊고 또 자니까 새벽기도 갔나 안 갔나 확인해서 안 간 사람이 벌금을 냅니다. 그 돈이 그 돈이지만. 그렇게 해서 새벽에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서로 이런 거룩한 경쟁을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기도의 동역자를 확보하시기 바랍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과 아멜렉이 전투를 합니다. 그때 모세는 산위에 올라가서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힘들어서 모세의 손이 내려오고 기도가 멈추면 이스라엘이 지고 다시 모세가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오랜 시간 이 일이 반복되니까 아론과 훌이 옆에서 모세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첫 번째 치룬 전쟁에서 승리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저의 아론과 훌 입니다. 저 혼자 기도하면 힘들고 피곤합니다. 기운이 안 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함께 기도하면 힘이 납니다. 교회 부흥 위해 오랜 시간 기도해야 하는데 누가 저의 아론과 훌이 되시겠습니까? 누가 저의 목회의 동역자가 되시겠습니까?
뒤에서 우리 목사, 사모는 뭐가 어떻고 저떻고 불평을 많이 하십니까? 아니면 기도를 많이 하십니까? 여러분의 입은 기도하는 입입니까? 아니면 불평하는 입입니까? 여러분들은 저의 목회의 동역자입니까? 아니면 방해 꾼 입니까? 저에게는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목사도 사람이기에 지치고 피곤하고 때론 목회가 하기 싫고 떠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저의 마음을 붙잡는 것은 부족한 저를 위해 뒤에서 묵묵히 기도해 주시고 동역자가 되어 주시는 여러분들입니다. 사도바울은 바울 자신으로 참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그에게도 든든한 동역자가 있었기에 바울이 존재하는 겁니다.
요 15:7에서 주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붙잡고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기도할 수 있다면 우리 인생은 언제나 발전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문제, 교회의 문제, 나라와 민족의 문제를 끌어 않고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감동하시도록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눈부신 끈기를 가지고 마지막 순간까지 승리하도록, 인생의 역전을 이루도록 저와 함께 기도에 더욱 힘쓰는 동역자가 되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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