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에는 감사가 있어야
(삼상 2:1-11)
2005. 8. 28 늘푸른 주일 낮
우리의 입에 습관처럼 붙어 다녀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입니다. 이 감사의 말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입에서 흘러 나와야 합니다. 감사는 성숙한 사람의 증표입니다. 사람이 감사할 줄 아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기에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도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헌신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누구인지도 어디에 사는지도 알지 못하지만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존재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늘 감사하며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가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다면 그 응답에 대한 감사가 반드시 따라야합니다. 여러분 한번 매주 주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릴 때 정성 것 준비한 예물을 드리며 감사의 표현을 해보세요. 여러분의 삶이 놀랍게 변화될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감사할 것이 없었다 해도 그냥 감사하세요. 그러면 은혜가 넘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한나는 감사할 줄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사실 한나의 위대함은 고통 중에 기도했다는 것 보다 기도의 응답을 받았을 때 진정으로 그 받은 은혜에 대해서 감사할줄 알았다는데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잘 되면 그것이다 자기가 잘나서 그러줄 알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요 내가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느 것 하나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이루어진 일이 없고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된 일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나의 소원을 이룬 후에 기도의 응답을 받은 후에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말은 “감사해요. 고마워요.”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참 감상하다는 말을 듣기 힘든 세상입니다, 다들 제 잘난 맛에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있기에 제가 있으니 감사합니다. 제가 아무리 목회를 잘한다고 해도 여러분들이 없으면 빛이 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계시기에 저의 목회가 빛나는 겁니다. 그러니 저는 늘 여러분들께 감사할 뿐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성도들과 목회하는 행복한 목회자입니다. 그래서 늘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은 또한 제가 있기에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에 힘이 되니 제한데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목사 만났으니 여러분들은 행복한 성도들입니다. 이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만날 때 마다 감사해야 합니다.
현대는 사랑의 홍수 속에 살아갑니다. 잘못된 사랑. 금지된 사랑,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사랑. 뭐 노래도 드라마도 영화도 온통 사랑천지입니다. 그런데 감사해요라는 노래는 못 들어 봤습니다. 그런 주제의 드라마나 영화는 없습니다. 사랑은 홍수인데 감사는 가뭄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합니다.” 말도 좋아하지만 “감사합니다.”란 말이 더 좋습니다. 교회나 와야 감사라는 말을 들어볼 수 있지 세상엔 없습니다. 세상엔 겨우 “수고했습니다.” 정도입니다. 여러분 예배마치고 나면 저한테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하시는 분 있는데 사실 저 그 말 상당히 기분이 나쁩니다. 내가 설교한 것이 무슨 노동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싫어요. 나는 기쁨으로 했는데 사명으로 했는데 듣는 사람은 노동한 것으로 느껴지나 싶어서 싫어요. 물론 그런 의도로 인사하시는 건 아니 줄 아는데 듣는 제가 싫거든요. 그냥 “감사합니다.”그렇게 인사하세요. 설교를 죽 쒔어도. “감사합니다.”하세요.
설교를 참 못하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저만큼 못했나 봐요. 한소리 또 하고 또 하고 오죽 설교를 못하면 한 가지 주제로 두 달이나 설교하겠어요. 근데 그렇게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나 쌤쌤 이긴 해요. 하여튼 설교를 못하는 목사님이 있는데 그 교회 주책 맛은 노인 집사님이 예배만 마치고 나면 “목사님 오늘도 설교 죽 쑤셨네요.” 그러는 겁니다. 설교 죽 쓰고 나면 설교한 목사 자신이 제일 먼저 알거든요. 그리고 나면 힘이 쭉 빠지고 살맛이 안 나거든요. 밥맛도 없고. 그렇지 않아도 교인들 아멘소리도 없고 반응도 시원치 않고 ‘오늘도 설교 죽 쒔다.’속으로 그러고 있는 참에 이 노인 집사님이 그렇게 인사를 하니 속상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한번은 참다못해 이 목사님이 그랬답니다. 집사님이 “목사님 오늘도 설교 죽 쒔네요.” 그러니까 “예, 요즘 제가 보니까 여러분들 상태가 다 환자 같아서 죽 좀 쒔습니다.” 말 되지요? 제가 설교 죽 쑤면 ‘아 오늘은 나의 영적 상태가 환자구나.’ 그렇게 생각하시고 목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인사하지 마시고 그래도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하세요. 죽 쑤느라고 수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러분들이 감사하시면 제가 더 힘이 됩니다.
감사는 참 좋은 겁니다. 감사란 뭐냐? 받은 것을 받았다고 표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겁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받은 것을 생각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찬송에도 있잖아요?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오늘 읽은 본문 삼상 2:1-11절이 바로 기도응답을 받은 후에 드린 한나의 감사기도입니다. 이 감사의 기도를 통해 우리가 드려야할 감사의 내용이 무엇인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나를 생각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해 주었다는 것에 감격했습니다.
삼상 1:19절에 “그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여러분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나를 생각해 준다고 합시다. 어떻겠습니까? 국무총리 뽑을 때 나를 생각해 주었다. 그런 분들이 우리교회에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나를 생각해 준다고 해도 큰 영광이고 감격인데 만왕의 왕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해 주신다면 얼마나 영광이고 감격이 되겠습니까? 애도 못 낳는 천한 한 여자를 하나님께서 생각하신다. 그러니 한나가 감격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한나는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생각하셨을까요? 아들 못 낳는 것을? 그렇죠.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생각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대로 응답하신 겁니다. 삼상 1:11절을 보세요.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한나가 뭐라고 기도했어요? 나를 생각하시고......
한나는 구체적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를 생각해 주세요, 나 불쌍한 여자잖아요. 나 애도 못 낳고 신랑 첩한테 구박이나 받는 불쌍한 여자잖아요 하나님 제발 나 좀 생각해주세요. 나를 잊지 마세요.”그렇게 기도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 한나의 기도를 생각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 기도대로 응답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얼마나 감격스러운 말씀입니까? 비천한 한 여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여인을 생각하셨다니요. 우리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생각하십니다. 한번 따라하십시다. “여호와께서 ○○○을 생각하신지라.” 아멘. 그러니 감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하시고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니 감사함이 마땅치 않습니까?
창 19:29에 보면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그 조카 롯을 구원하셨습니다. 나 때문에 내가 속한 공동체가 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망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중보의 기도가 이렇게 위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기도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나라도 내 남편을 위해 기도해야하고 내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내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왜요?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셔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시기도 하시니까요.
하나님은 나를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십니다. 아멘?
사 49:15-16에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다”고 하셨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하고 계시므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담대하게 사세요. 자신 있게 당당하게 사세요. 왜 기죽어 삽니까? 나 남이 가진 것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남이 갖지 못한 것 갖게 하셨습니다.
둘째, 고통이 기쁨 되게 하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삼상 2:1.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한나는요. 고통의 여인이었어요.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사는 여인이었습니다. 괴로움과 절망과 고통이 그녀를 짓누르고 그래서 원통하여 울고 울고 또 울며 살았던 여인입니다. 너무나 마음이 괴로워서 통곡하며 기도한 여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여인의 고통을 기쁨 되게 하셨습니다. 눈물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높이셨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 그래서 나는 기쁘다. 기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기쁨의 근원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진정 구원의 하나님, 전능하신 여호와 그분 때문에 기쁘십니까?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아무것도 없어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십니까? 한나에게 주신 이 기쁨을 여러분 진정 맛보셨습니까? 왜 우리의 삶에 만족이 없습니까? 이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이 기쁨이 가능합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고통을 기쁨으로 변화시켜주시고 나의 통곡을 노래로 바꾸시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래요.
♬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주님을 찬송 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 만 따라 가리 ♪
셋째, 소원을 이루시게 하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 응답에 대한 감사입니다.
삼상 2:5을 보면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좀 번역이 어려운데 표준 새번역의 성경을 보면 “한때 넉넉하게 살던 자들은 먹고 사려고 품을 팔지만 굶주린 자들은 다시 굶주리지 않는다. 자식을 못 낳던 여인은 일곱이나 낳지만 아들을 많이 둔 여인은 홀로남는다”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없는 성공은 참된 성공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성공은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성공은 영원하다는 거지요 지난주에 말씀드렸죠? 하나님은 끝까지 함께하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이라고.
한나는 소원을 성취한 여인입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아들을 못 낳던 내가 아들을 낳았다. 그래서 감사하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아들을 일곱 낳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진짜 일곱 아들을 낳은 것이 아니라 일곱은 완전의 숫자를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원을 완벽하게 이루셨다는 기쁨의 표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완벽하게 이루십니다. 그리고 이 소원을 갖게 하시기 위해 나의 삶에 고통을 주십니다. 그래야 내 안에 불타는 소원을 갖기 때문입니다. 한나에게도 그 마음에 아들에 대한 불타는 소원을 갖게 하시기 위해 브닌나라는 사람을 동원해서 마음을 괴롭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고통은 기도의 창조요 응답의 창조라고 했습니다.
빌 2:13을 보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했는데 우리 안에 소원을 주시기 위해 고통도 주십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삶에 어떤 고통이 찾아오걸랑 ‘올커니 이제야 올 것이 왔구나 하나님이 내게 소원을 갖게 하시는 구나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시겠구나!’그렇게 생각하시고 감사함으로 그 고통 끌어안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약속을 지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삼상 1:27-28. “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또 삼상 2:11.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한나가 어떻게 했습니까?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려 성전에서 지내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한나의 행동은 자신이 서원한 것을 지킨 겁니다. 어떤 서원이었습니까? 삼상 1:11을 다시 보면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는 아들을 달라고 기도할 때 그냥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아들 주시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실인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드리겠다고 서원기도를 한 것이고 이 기도에 대해 책임을 지고 지킨 겁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이 아들을 성전에 드릴 때 그녀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어떻게 얻은 아들인데, 이 아들이 어떤 아들인데.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을 경험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한나는 감사합니다. 자신의 서원을 지킬 수 있는 믿음을 주셨음을 감사했고 나의 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한나에게도 결코 쉬운 일인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고 해도 그 아들을 드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어려운 일입니다. 아들이 죽은 것도 아니라 하나님께 드린 것이고 맡긴 것이지만 어린 아들이 자신의 품을 떠났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은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는 그런 아픔 가슴을 부둥켜안고 눈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한나는 위대한 여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나가 서원한 것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나에게 손해가 오는 약속은 더욱 그렇습니다. 은혜 받을 때는 뭐든지 다 할 것 같아서 서원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믿음이 약해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환경이 변해서 약속 한 것 지키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응답을 받고나면 공수표 떠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입 싹 씻고 모르쇠 일관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특히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더 큰 복을 보는 안목과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지키면 더 큰 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한나는 이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믿음 또한 하나님 주신 은혜입니다. 그래서 감사한겁니다.
눅 6:38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 드림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계산법은 성경의 계산법은 빼고 나누어야 더 커지는 법입니다. 세상의 계산법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신앙은 오묘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진리입니다.
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이아이의 재산목록 1호는 진주목걸이입니다. 물론 가짜인데 그 사실은 부모만 알았습니다. 이 아이는 어디를 가든지 이 목걸이를 하고 다니며 자랑을 합니다. 이 아이는 아빠도 무척 사랑했습니다. 이 아빠는 사업상 며칠씩 출장을 다니곤 했습니다. 어느 날 출장을 다녀온 아빠가 딸과 침대에 누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런다가 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아빠 사랑하니?”
“예 아빠 세상에서 아빠를 제일 사랑해요.”
“어떤 것 보다”
“예 아빠”
아빠가 한참 후 다시 묻습니다.
“그럼 너의 진주목걸이 아빠 줄래?”
이 아이가 갑자기 고민을 하더니
“아빠 그건 안돼요. 그 목걸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요.”
“그래 알았어.”아빠는 빙그래 웃으며 뽀뽀를 해주고 잘 자라고 인사하고 나왔습니다.
아빠가 나간 후 이 딸이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다 다음날도 하루 종일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이 아이는 진주 목걸이를 가지고 와서 아빠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목걸이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아빠 난 진주 목걸이보다 아빠를 더 사랑해요. 아빠 가져요.”
“정말이니? 아빠는 무 척 기쁘구나”
아빠는 기뻐하면 자신의 여행가방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는 무엇인가를 조심스럽게 꺼냈습니다. “아빠가 네게 줄 선물이 있단다.”
아빠는 그 딸에게 작은 상자를 건넸습니다. 상자를 열어본 순간 이 아이는 너무 기뻐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 상자 안에는 진짜 진주 목걸이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아빠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달아보십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건지 아니면 말로만 그러는 건지 확인해 보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보시고 더 큰 은혜와 복으로 채워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과 작든 크든 약속한 것이 있습니까? 그 약속을 지킬 때 주시는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기대하면서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기 바랍니다. 지키다 말다 하시는 분 있으십니까? 끝까지 지키시기 바랍니다. 전도팀들 제가 첫 모임 때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3년 동안은 도망갈 생각도 직장 잡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말라고 그것이 전도팀으로서 하나님과의 가장 중요한 약속이라고 이 약속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지키시기 바랍니다.
한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감사의 조건들
나를 생각하셨음을 감사.
고통이 기쁨 되게 하심을 감사,
소원을 이루게 하심을 감사,
약속을 지키게 하심을 감사.
이 감사가 성숙한 성도의 모습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힘입니다. 예수님도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늘 감사하셨습니다. 죽겠다, 죽겠다. 하면 죽을 일만 일어나고, 불평하고 원망하면 불평하고 원망할 일만 일어나고 감사하면 감사할 일들이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일이 없어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우리 입에서 떠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 곱고 아름다운 말을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고운 입술과 마음에 넘치는 은혜와 복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감사의 신앙으로 승리하며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덧입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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