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 성전!! 하나님의 집!!!

[스크랩] 성막론 제 1강

하나님아들 2012. 9. 6. 11:32

성막론 제 1강 히 9:1-10

구약 성경은 주로 모세 오경을 기초로 되어 있다.

모세오경의 중심은 "하나님을 섬기는 법과 하나님을 섬기는 성소 짖는 법"이다. 이것이 구약성경의 중심이다.

1절에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를 말함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예법은 하늘에 속한 것이지만, 장소는 세상에 속한 성소이다. 성소 짖는 법과 그 안에서 섬기는 법, 이것은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다.

여기서 하늘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아야 한다. 성소는 참 것의 그림자이다.

계시록의 수정으로 만들어진 새 예루살렘의 성전은 이 성막을 잘아야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다.

자기 고향집을 잘 알 듯이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를 잘 알아야 하는데, 성경은 하나님 나라의 윤곽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것을 모르면 열심히 신앙생활 하다가도 쉽게 좌절하고 무너진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기억이 나고 윤곽이 어떤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전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셨는대, 우리가 성전이 어떤지 모른다면 안 된다.

시집가기 전에는 시집의 일을 잘 모르나 시집을 가면 잘 알 듯이, 이 땅의 세상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영으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자라면 하나님 나라의 일을 실질적으로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 사람으로 헌신과 실질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모르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도록 가르쳐 주고 있다. 모세가 산에서 보여 준 그대로 지어야 한하는 것이 성전이다.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성전은 거룩한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집이다. 거룩한 이가 가장 더럽게 취급하는 것은 귀신이다. 주님은 귀신을 더럽게 취급하셨다. 더러운 눈멀고, 꼬부라지고, 벙어리된 더러운 귀신아. 사도들도 더러운 귀신아..

거룩한 이가 거하는 거룩한 전이 더러운 귀신이 거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거룩한 성전에 더러운 것이 들어가 있으면 하나님이 멸하신다는 것이다. 더러운 귀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더럽게 만든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늘은 거룩한 이가 거하는 곳이다. 범죄하고 타락한 천사는 거룩한 곳에서 쫒겨난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이 거룩하니 그 안에 거하는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

귀신이 들어오지 않으면 절대로 더러워지지 않는다. 귀신의 생각이 지배하면 더러워지기 시작한다.

유다가 거룩한 제자였지만 마귀가 더러운 생각을 집어넣으니까 당장 더러운 마귀의 일을 따라 예수를 배신하고 저주받는 일을 한 것이다. 귀신의 생각이 들어가면 아무리 헌신을 약속하고 충성을 한다고 해도 더러워지는 것이다. 아나니아 삽비라같이... 약속을 하고도 지키지 못하는 것은 귀신이 이간시키기 때문이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귀신과 마귀뿐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더러우면 멸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을 쫒아 내라는 것이다.

더러운 돼지 집은 청소를 안 한다. 그러나 깨끗한 집은 계속 깨끗하게 한다.

(계22: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되게 하라 귀신이 들어오면 영이 더러워지고 생각과 행동이 더러워지게 되어있다.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은 성전을 포기하신다. 성전이 우리가 더러우면,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시고, 하나님이 성전을 포기한다면 나는 멸망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성령이 임하신 성령의 전으로서 하나님의 전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하나님의 성전이 되므로 버린 바 되지 않은 증거를 가지고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될 때 더러운 영이 거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령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서 성령의 인침을 받은 것이다.

전구가 빛을 발하는 것은 전기가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일이 끊어지면 깜깜해진다. 성령이 거하시면 더러운 영들이 접근하지 못하기에 거룩하고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성경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의 책이다. 거룩한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으니 거룩해지는 거이다.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귀신을 쫒는 것은 거룩한 말씀이기에 더러운 귀신을 쫒을 수 있는 것이다. 빛과 어두움 중에서 밝은 빛이 비추면 어두운 것은 물러가게 되어 있다.

거룩한 말씀과 성령이 거하시면 더러운 것은 떠나고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고 있어야 한다. 수 십년간 신앙생활을 하다가 순식간에 타락하고 더럽힌다면 어찌하겠는가? 더러운 것이 들어오면 버리운다는 것이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성경은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한다. 너희는 성전이다. 성전은 거룩하다. 처음 믿음을 버리면 심판을 받는다. 더러운자는 하나님이 망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자.

하나님을 알라,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임을 알라,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것이다. 성경은 알라는 것을 명령하신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얻었고, 어떻게 영광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구약은 신약의 안내도이다. 구약은 첫 언약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법과 성소지는 법이다. 신약에서도 주님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동안에 이르키리라. 구약의 방법은 양과 피를 가지고, 성전세 반세겔을 내는 것은 구약의 모든 전통으로 인해 성전을 시장으로 바꾼 것이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열심이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다.반세겔을 바꾸라면서 반세겔을 빼앗고, 매물의 양을 비싼값으로 받고, 성전에서만 산 것만이 거룩하다는 것을 미끼로 강도의 굴혈로 만들어 버림. 주님은 "이 성전을 헐라" 이제까지의 성전은 비유이다. 이제 주님이 친히 참 성전이 되는 것이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몰랐다.

(요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2: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요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2: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구약이 말한 성전은 개혁할 때까지 맡겨두신 것이고, 예수님이 오셔서 개혁이 되므로 구약의 모형인 성전은 없어지는 것이다. 모델하우스는 본 건물이 지어지면 허물어 버리듯이..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는 모형이요 참 것은 아니다.

구약의 성전은 과거에는 광야에 지었다가 예루살렘에 옮겨 지은 것이다. 이것은 손으로 지은것이요, 참 것이 아니요 비유인 것이다. 참 것이 오면 비유는 없어지는 것이다. 구약의 성전은 모형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귀신이 들어와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멸하시리라. 더러운 귀신이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더럽게 취급한다. 즉, 하나님이 소멸하시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가?

하늘나라는 성전을 보아야 알 수 있다. 성전은 하늘의 참 것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히9:1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9: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히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 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과거에는 참 것의 그림자로 모형을 만들어 놓고 제물을 가지고 성전에 들어갔지만, 이제는 예수님이 대 제사장으로서 참 것의 그림자인 모형에 들어가지 않고, 하늘성소에 들어가신 것이다. 성소를 알아야 하늘을 알 수 있다.

성경을 통하여 깨달은 것이 성막의 모형과 실상이다. 이것을 알아야 하나님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첫 언약은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다.(히9:10) 왜? 참 것이 아니기에 개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구약은 성소와 성소 짖는 법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구약의 성전은 장차 오는 것의 그림자요(히9:24, 10:1), 새 언약의 비유요 히9:9, 손으로 만든 성소요 히 9:24, 세상에 속한 성소요 9:1, 육체의 예법으로 되어 있는 것이요,9:10. 양심으로 온전케 할수없다, 9:9 사람이 살동안만 주관하는 법이요, 마음이 머므르는 것이 아니다. 8:9

롬3:19. 사람으로 의롭게 못하고, 7:1 사람이 살동안만 주관한다.죄를 없이하지 못하고10:3-4, 양심으로 온전케 할수 없으므로히9:9, 무익하기에 페하는 것이다9:8. 무익하다는 것은 죄를 여전히 생각나게 한다는 것이다. 히10:3. 흠이 있기에 새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8:9 성도의 신앙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이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성전임을 알고, 더러운 귀신이 틈타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 더러운 것이 틈타면 하나님은 성전을 멸하신다는 것을 알자. 구약의 눈으로 보는 성전이 아닌 주님이 직접 지으신 하늘의 성전이 내 안에 이루어지게 하소서.

주님이 직접 지으신 거룩한 성전이 내 마음에 임하셔서 더러운 영들이 틈타지 못하게 하셔서. 더러운 영이 들어오니 타락하고 망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하게 하옵소서. 자기를 거룩하게 하소서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를 거룩하게 하소서. 하늘의 성전이 들어와 있게 하소서. 하늘의 모형을 그대로 가지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소서.

성막론 제 2강 히8:5-13

하나님의 성전은 모세를 통하여 광야에서 장막으로 지었으나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성전으로 지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의 성전인 새 것의 모형이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다. 예수님이 성전이시오, 성령을 모신 우리가 성전이다.

예수님은 장막 전체를 말하는 것이며, 우리가 성전이 되는 것은 성전 안의 지성소를 말하는 것이다. 회막과 그 안에 지성소가 성전으로 되어 있는데 주님은 전체 성전을 말하는 것이며, 우리는 성전 안에 있는 지성소를 말한다

법궤는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하는 것이고, 그 안에 계시고 이름을 두셔서 거하시는 것이다.

지성소 안에 법궤를 두신 것이다.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한다는 것이 바로 성전을 알면 된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성전은 모형으로서 개혁 할 때까지만 있는 것이다. 개혁은 주님이 오셔서 내가 성전이다 한 때까지이다.

이제는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없어지고,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모신 각각 지성소가 되는 것이다.

성전은 하늘의 모형이다. 하늘은 이름을 두신 것이다. 너희가 성전이라 함은 하나님의 이름을 너희 안에 두시겠다는 것이다. 하늘 나라가 하나님을 모신 곳이며,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 인간이 가까이 접근 할 수 있는 성전을 주신 것이다. 이제 우리 안에 있는 것은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닌 하나님의 지성소이다.

법궤는 보좌요,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이다.

법궤 안에 있는 지팡이는 사십 년 동안 인도하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금 항아리의 만나는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굶지 않고 양식을 공급하신 만나, 돌비석은 이스라엘이 듣고 지켜서 거룩하고 구별되게 지켜야 할 계명이 있는 것이다. 내 속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있다.

법궤 안에 지팡이와 만나와 비석이 있는 것처럼 계명이 있어서 세상과 구별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은 법이 없으나 우리는 하나님의 법이 있어서 세상 속에서 구별되는 것이다.

우리 영혼 속에 법궤가 있다면, 하나님의 계명이 있어야한다.

계명을 돌비석에 새긴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 마음 속의 심비에 새겨야 한다.

그 계명으로 살고 구별되고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하고, 십계명의 명령이 우리 마음에 살아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십계명의 명령이 우리 마음비애 새겨져 있으므로 그 말씀이 우리를 지키고 인도하시고 감동되게 하는 것이다.

만나는 40년 동안 하나님의 도우심을 말한다. 물과 먹을 것이 없는 광야에서 만나를 통하여 40년을 먹이신 하나님의 역사이다. 매일 아침마다 만나를 주셔서 이것으로 먹고 죽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이시다. 주님을 잘 모신다면 계명이 있어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켜 주신다.

법궤가 있다면 세상과 내가 분리된 생활을 할 수 있고, 만나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먹여 주시는 복을 주신다. 복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기에 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도움의 길이 없지만 믿음으로 나간 자들은 만나를 준비할 수 있었다.

안식일의 계명을 듣고 미리 믿음으로 준비한 자들은 만나로서 굶지 않고 먹을수 있었다. 하나님의 법대로 순종하여 안식일을 준비한 자들은 먹을 것을 준비했지만, 믿음이 없어서 안식일에도 나간자들은 먹을수 없었다.

만나는 하나님이 매일 매일 하루의 양식으로 준비하라, 안식일은 전에 준비할 것을 명령하신 것은, 하나님은 하루의 생활을 반듯이 보장하신 다는 것이다. 마6:33.

법궤는 증거궤로서 약속과 믿음에 대하여 증거 하라는 것이다.

내가 거룩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 계명으로 들려 올 때 거룩한 것이다.

법궤에는 십계명이 들어 있지만, 우리 마음에는 하나님 말씀 전부가 들어와 있다.

말씀이신 예수가 우리 안에 들어와 있고, 주의 말씀은 아버지가 명하신 것이기 때문에 주의 명령이 내 안에 들어와 권고, 책망, 명령하시면서 역사하므로 거룩해 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셔야 거룩해 지는 것이다.

설교나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들려와 복종하고 순종하기도 하고, 내 안에 계신 말씀이 나를 인도하고 역사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영적인 양식뿐 아니라, 육신이 사는데 필요한 식물을 먹어야 하고, 영혼은 메마르지 않아야 한다. 만나 항아리는 주님을 모신 자들에게는 믿음으로 약속되어 있다. 우리에게는 보장이 있다. 기도는 약속에 의해 청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고에 들어 있는 양식을 날마다 공급 하시 듯이 만나를 계속적으로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 공급하신 것이다. 하나님을 모신 내 심령은 일용할 양식이 보장되어 있다.

나에게 양식주심을 감사합니다. 끝없이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보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돌비석은 깨지지만 심비에 새겨진 말씀은 깨어지지 않고 항상 들려 와서 나를 명령하고 인도해야 한다.

지팡이는 이스라엘 12 지파의 대표들을 불렀을 때, 하나님 앞에서 아론의 지팡이가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맺는 이적이 나타남. 이는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는 증표를 주신 것이다. 아론은 하나님을 섬기는 족속으로서 어떤 환난이라도 면하고, 오직 성전을 모시는 직분을 맡은 것이다.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함께 하시는 증표이다.

이처럼 하나님을 모신 자는 갈 바를 모르는 우리에게 함께 하시고 인도하는 지팡이가 있다는 것을 증표로 싹을 나게 한 것이다. 내가 세운 계획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지팡이는 우리의 앞길을 항상 인도하시는 것이다. 택한 자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시므로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믿는 자에게 표적과 능력도 나타나고, 이적도 나타나게 하신다. 축도는 축복이다. 두 손을 들고 장수와 부귀의 축복을 비는 것이다.

(잠3:16)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잠3:17)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축도할 때 복을 받겠다는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성령이 인도하심이 있을 찌어다. 예수의 은혜가 있을 찌어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 찌어다.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문제는 주님이 나를 보호하시고 보장해주셔야 한다. 법궤를 모신 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신 자요, 법을 얻은 자이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다.

법궤는 두 그릅(날개), 두 날개를 편 천사가 법궤를 싸고 있다. 계시록의 네 생물이 나오는데 이들이 그룹들이다. 두 천사는 하나님의 보좌 좌 우편에 둘러선 천사들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법궤를 모신 우리에게 천사가 둘러싸고 보호하고 돕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누가 축복을 하면 거절하지 말고 받아 드려라. 그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면 그대로 임하는 것이다. 뉘집에 들어가든지 평강을 빌라.

복은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복을 빈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내셨기에 빌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을 모신 자는 법궤를 좌우로 둘러싸서 보호하는 것처럼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이다.

베드로를, 롯을 구하여 내듯이...천사는 성도들을 섬기라고 보냄 받은 자이다.

(히1:14)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주님을 모신 자는 천사가 좌우편에 있다. 내 심령에 하나님을 모신다면 항상 천사가 나를 돕고 있는 것이다.

내가 주님을 모시면 싹난 지팡이의 인도하시는 역사가 나타나며, 만나로서 일용한 양식을 일평생 공급하시는 축복이 있다. 영원히 보장된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것이다.

일용할 양식과 신령한 양식과 인도하시는 축복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 법궤가 너희 안에 있다면, 너희를 거룩하게 하시고, 구별 하시는거룩한 말씀이 있으며, 일생동안 굶주리지 않는 만나의 금항아리가 있으며, 항상 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증표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일용할 양식과 신령한 양식이 하나님을 모신 자에게는 공급이 약속된 것이다.

이스라엘이 40년동안 광야에서 인도하심과 보장을 받은 법궤가 우리 안에 있다면 광야의 험란한 길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내 안에 주님를 모신다면 좌우편에 둘러서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축복이 있는 것이다.

예수의 은혜가,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을지어다. 이는 법궤를 모신 자에게는 실감나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신 자는 거룩한 말씀이 있고, 일생동안 굶주리지 않는 일용한 양식의 보장, 항상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증표가 있는 것이다. 나는 주님을 모신 지성소다!!!.

주님을 모신 자는 천사가 법궤를 돌러 싸고 있듯이 천사의 보호가 있을 것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과, 일용할 양식의 역사와 믿는 자의 따르는 표적으로 인도하시는 지팡이가 있는 것이다. 말씀의 비속과 금항아리와 지팡이의 인도하심이 주님을 모신 자들에게는 자동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다면 이 세 가지는 확실한 보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참 성전의 지성소이다. 내 안에 주를 모시고 있다면 천사들이 옹위 하고, 영원히 변치 않는 영생의 말씀이 있으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면서 기사와 이적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것이다.

성막론 제 3강 히8:5-13

신앙 생활을 깊이 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타락하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모르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이 능력이 없고 신앙이 부실한 것은 성막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9절 -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않기에 돌아보지 않았다. 이는 새 언약에도 동일하다는 것을 알자.

10절- 그 날 이후.. 새 언약은 저희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리라.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하나님을 알 것이다. 이대는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하나님의 법이 저희 생각에 머물지 않으면 돌아보지 않았지만, 기록되면 나와 너희 관계는 회복된다. 너희는 내 자녀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모두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왜? 하나님이 나를 돌아보지 않으시는가?

신앙을 초월하고 무시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나와 상관이 없다. 믿음이 없으면 나와 상관이 없는데 율법이 믿음이 되어야 한다. 내 생각과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기록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생각과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자. 우리는 그 법이 내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자. 하나님의 법이 내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면 하나님의 축복과 능력을 확신할 것이다.

광야에 세운 장막 성전은 백성과 항상 함께 하지 못한다. 백성은 절기 때만 그곳에 찾아 왔다가 떠나가고, 그곳을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성전이 우리 안에 있도록 축복 하셨다.

목회를 할려면 눈이 가슴에 달려야 한다. 머리에 달린 눈, 귀, 입으로는 목회를 못한다. 귀도 가슴에 달려있어야 한다. 입도 가슴에 달려 있어야 한다. 목회는 눈과 귀와 입이 가슴에 달려서 가슴으로 보고 듣고 말해야 한다. 성경은 반복하도록 만드셨다. 수 십번 일생동안 반복하는 것이다.

성막은 지성소부터 봐야 한다. 밖에서 출발하면 행위가 앞서지만 지성소부터 보면 믿음이 앞서는 것이다. 우리는 행위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나가는 것이다. 기도하고 행위로 복을 받겠다는 것은 율법적이다. 믿음이 있을 때 기도하고 감사하고 순종하고 충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나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문제를 가저가야 한다.

법궤는 지성소 안에 있다. 너희가 성전이다 - 너희는 하나님의 지성소라는 뜻이다.

더러우면 멸하시리라.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더러운 귀신의 생각이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더럽히면 = 무시하면, 소멸한다는 뜻.

이스라엘에 열심히 섬기고 행했지만 하나님의 법이 그들 속에 머물러 있지 않았기에 망하고 만 것이다. 그들의 행위로 열심히 나왔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성막은 일해야 할 순종이지만 지성소는 직접 체험하는 것이다.

대제사장들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만 용서받고 하나님과 연결이 된다.

구약은 대제사장이 늙어 죽으면 다시 세우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속죄, 구원을 이루셨기에, 우리의 대 제사장인 예수님을 영원히 갈리지 않는 것이다.

법궤의 상자는 싯딤나무로서 아카시아 나무이다. 광야의 가시나무로 가장 강한 나무이다. 법괘는 금으로 입힌 상자에 날개 돋힌 두 천사가 양쪽에서 감싸고 있다.

그 안에는 금항아리, 돌비석, 나무 지팡이로 삼라만상을 주관하는 모든 권능을 말한다. 법괘는 그릅(날개, 천사들)사이에 싸여있다. 천사의 날개 밑은 속죄소로서 시은좌라 한다. 은혜를 베푸는 보좌,

속죄를 베푸는 곳으로서 시은좌이다.

대제사장이 속죄소에 양의 피를 뿌린다. 어린양의 피가 속죄소에 뿌려질 때 하나님과 인간은 화해가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성전 휘장이 찢어졌다. 대제사장이 속죄소에 들어갈 때는 사람이 휘장을 가르고 들어갔지만, 주님이 죽으실 때는 그 휘장이 위로부터 찢어진 것이다. 이는 예수님이 성소에 들어가심을 말하는 것이다.

대제사장은 비유로서 예수께서 오셔서 대제사장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늘성소에서 피를 뿌린 것이다. 히12: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하늘 성소는 우리 안에 이루어 져야 한다.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져야한다. 하늘 나라의 모형이 그대로 우리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하늘에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이다. 피를 뿌림으로서 완전한 화해가 이루어진 것이다.

좌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다.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이다. 그 죄가 없어진 증거는 속죄소에 피를 뿌린 것이다. 휘장은 그리스도에 의해 갈라지고 주님의 피가 속죄소에 뿌려지므로 우리의 모든 죄는 다 사함 받은 것이다..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심령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

성전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지 않으면 버리운 자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법궤는 이제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신다.

예수님을 위해 형상을 그리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름만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것이다. 그 이름이 내 안에 거하셔야 한다. 형상이 떠오른다면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우리는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한다.

(히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히5: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히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 하는 자들이니라 우리 속에 형상을 그리고 생각한다면 여전히 갖난 아이다.

광야에 세운 법궤는 나무에 금을 입히고 모양을 만들어 성전에 두고 모든 사람이 바라보게 했지만, 이제는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는 것이다. 내 안에 하나님의 성소가 있다. 내 영혼이 성소이다.

하나님의 법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곳이 어디에 있는가? 내 심령이다.

내 심령에 있다. 하나님의 이름은 내 안에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내 안에 있음을 시인하고,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해야 한다.

내 안에 계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지성소된 나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그 이름이 있다.

법궤가 있을 때 만나의 금항아리와 돌비석과 지팡이가 있다. 이제는 지성소의 법궤가 내 안에 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있을 때 거룩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 거룩할 수 있다.

(요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만나의 금 항아리가 있으므로 하나님이 내 평생에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는 보장이 있는 것이다. 만나의 항아리가 있어야 광야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 만나의 금항아리가 이어야 내 영혼이 복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복이 내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도 받는 것도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자기를 거룩하게 하는 말씀이 내 안에 있을 때 거룩할 수 있는 것이며, 그 말씀을 순종할 때 거룩하고 깨끗해지는 것이다. 거룩하게 사는 길은 내 안에 있는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다.

너를 인도하는 지팡이, 금항아리, 약, 속의 말씀은 내 안에 있다.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다.

모든 복의 근원은 내 안에 있다. 그런데 모든 복이 내 안에 있는데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가?

씨앗이 봄이 와야 나는 것처럼, 아브라함이 아들이 있으리라 할 때 "내가 네게 오리라" 한 약속을 붙들고 오시기를 사모한 것처럼.. 거룩함과 생명과 복에 대한 모든 약속과 영원히 버리지 않는 언약은 내 안에 있다.

대제사장이 속죄소에 피를 뿌릴 때 하나님과 백성이 만날 수 있다.

이제는 예수님이 오셔서 피를 뿌리시고 하늘성소에 들어가셨다.

우리 안에 법궤가 있어도 내 안에 계신 증표는 성령이 계셔야 한다. 성령이 내 안에 계셔서 예수의 이름을 증거 하시고, 인정하실 때 하나님과 나는 화해가 되는 것이다. 성령은 예수의 이름으로 오셔서 예수가 내 안에 계심을 인정하고 증거해 주어야 하나님과 화해가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법으로 거룩해진다.

구약에서는 말씀을 법, 신약에서는 뜻이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에 법궤, 언약궤, 증거궤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하시고 시행하시면서 증거를 보여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궤, 증거궤, 언약궤라 한다. 비석을 기준하면 법궤, 금항아리를 언약궤, 지팡이를 기준하면 증거궤이다. 생명과 복에 대한 약속이 있을 때 언약궤, 너를 인도하시는 역사가 증거궤이다.

지성소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의 법괘, 언약하신 언약궤, 증거궤가 있어야 한다.

내가 지성소인데, 속죄소에 피가 뿌려지므로 하나님과 화해가 되는 것이다.

법궤, 언약궤, 증거궤의 효과는 피가 있어야 한다.

예수의 피가 있는 것은 하나님과 화해되는 것이다. 대제사장인 예수의 피가 있을 때 법괘, 언약궤, 증거궤의 믿음의 역사가 나타난다. 믿음이 발동이 안 걸리는 것은 하나님과 화해가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 안에서 먼저 화해해야 한다. 성령은 예수가 내 안에 거하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은혜의 보좌가 우리 안에 있사오니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믿습니다. 하나님과 화해가 되지 않음을 용서하소서.

복도 우리 안에 있고, 거룩함도 우리 안에, 복과 생명의 금항아리도 우리 안에 있지만, 하나님과 화해가 되지 않으므로 좌절하고 낙심하고 타락하는 것이다. 우리를 용서하소서. 주의 보혈로 하나님과 화해되게 하소서.

 

성막론 제 4강 히8:8-13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면서 시내 산에서 첫 언약을 주셨지만, 그들이 마음과 생각이 첫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않음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돌아보지 않으셨다. 그러나 새 언약을 주시므로 그 언약 안에 머물면은 죄를 기억지 않고 긍휼히 여기신다.

새 언약은 예수의 이름으로 주신 것이요, 옛 언약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주신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은 모든 사람 속에 머물지 않고 성소에 두신 이름이다.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자녀, 구원, 용서, 영생을 얻는다.

첫 언약은 짐승의 피로서 온전함을 얻지 못하고 구원을 못하지만, 새 언약의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허물을 사하시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생명의 길을 열어주시고 화목하게된 것이다. 죄인은 불신앙으로서 하나님과 원수이다. 원수에게는 용서가 없다. 주님의 피는 하나님과 원수된 담을 헐어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새 언약이 우리 생각과 마음에 머물기를 원하신다.

구약의 언약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머물지 않기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우리 안에 머믈게 하시므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 불의를 기억지 않고..12-13

(히10: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히10: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히10: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첫 언약은 죄인이란 짐을 벗지 못한다. 세 언약은 죄를 긍휼히 여기고, 믿음이 들어오면 하나님을 다 알게 된다. 새 언약이 오면 다 각각 증인이 된다. 모두가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다. 11절 법궤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법이 될 때 법궤라 한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뜻이 되어 내 속에서 들어와 그 뜻대로 받들고 뜻대로 되어 질 때 마음에 머무는 것이다. 언약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우리는 언약으로 구원받은 자들이다. 언약궤가 우리 안에 있어서 증거를 받은 것이다. 성령은 보혜사로서 증거자이다.

이스라엘이 법궤를 메고 요단강을 건널 때 요단강이 갈라지고, 법궤를 메고 돌 때 여리고 성도 무너진 것이다. 여리고 성의 두께는 17m 이다. 현대의 무기로도 불가능한 것을...

그런데 법궤를 빼앗기면 저주를 받은 것이다. 법궤가 없는 것은 불신앙이 되므로 하나님이 참관하시지 않으신다. 불신앙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원수가 되는 것이다.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하지 말라.

하나님은 오직 믿음이 있는 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붙들어 주신다는 것은 새 언약이다.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이 돕게된다. 이것이 새 언약이다.

과거에는 법궤는 하나이지만, 이제는 각각 믿는 자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내피와 살을 받아 먹으라고 나누어 주신 것처럼, 지성소가 된 각 심령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법궤가 들어와 있으면 믿음이 들어와 있는 것이요, 말씀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그 말씀이 내 속에서 법이 되어 있을 때 우리는 거룩할 수 있다. 아버지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요17:15-17

내 속에 하나님의 법이 들어와 있다면,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킬 수 있다. 세상과 우상을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거룩한자는 그 안에 있는 말씀으로 더러운 귀신을 쫓아 낼 수 있다. 마8: 생명의 금항아리가 있으면 영육 간에 살수 있는 것이다.

숨쉬는 날에 대하여 하나님이 매일같이 양식을 주신 것처럼 일용할 양식인 영원한 양식이 있어서 우리를 살리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궤가 우리 속에 들어와 있지 않으면 하나님과 우리는 상관없는 것이다.

내가 너희 안에 = 법궤가 너희 안에 있느냐?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법궤가 있으면...

다윗이 법궤를 찾아 올 때 기뻐하며 춤추며 찾아오는 것을 보고 미갈이 조롱하므로 저주받은 것을 보라. 하나님을 모시고 기뻐하는 자를 비난하는 자는 저주받는다.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망령되이 부르는 자는 저주받는다.

떡상 레24:5-9,

등대 레24:1-4,

물두멍 물30:17-21,

향단 출30:5-10

번제단 출27:1-8

증거궤 출26:33

성소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들어와 섬기는 곳이다.

섬기는 자들은 등대에 기름을 넣고, 볼똥이 생기지 않게 불을 밝힌다.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고 은사를 받는다. 은사는 충성심이다. 은사와 교만이 합하면 망한다. 우리신앙에 교만이 들어오면 절망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 하나님이 대적하신다. 주님은 가장 낮은 자가 큰 자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주셨을 때 겸손해야 한다.

권위를 주장하면 망하고, 처음 사랑을 버리면 촛대를 옮긴다는 것이다. 주님의 상관하심이 없어진다.

섬기는 자는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나를 사랑하시고 감격하시고 인정하시도록 해야한다. 스스로 주님과 거리가 멀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겸손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계속 쓰신다. 처음 약속을 잊지 말라, 처음 사랑을 버리면 촛대를 옮긴다는 것을 알자. 에베소 교회가 일곱 가지가 다 좋아도 은사가 떠나버리면 우리의 신앙 생명이 끝나는 것이다. 나를 지탱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인데 은사가 떠나면 무너진다.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나를 사랑하시고 인정하시고 지지해주셔야 한다. 다른 것이 다 좋아도 첫사랑이 떠나면 촛대를 옮기겠다는 것이다. 첫사랑을 배반당하면 하나님은 촛대를 옮기시고 그러면 무너진다. 촛대가 떠난 자는 하나님이 쓰시지 않는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촛대가 항상 빛나도록 유지되도록.. 떡상은 성결한 상이다.

12지파의 상징인 떡 12개를 놓고 있다. 매주 안식일에는 새 떡으로 갈아 놓는다. 주님은 첫날에 너희 수입을 속이지 말고 가지고 나오라(고전16:1). 매주 안식일마다 새것으로 갈아 놓고 갈은 떡은 제사장이 먹을 지니라.

법궤를 모신 자는 일곱 영의 등대가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은사가 계속 유지되어야 하고, 하나님께 바치는 떡을 곱게 갈고 기름으로 반죽하여서 갈라지지 않도록 정성과 성의를 가지고 나와야 한다.

떡이 갈라지면 죽는다. 물로 반죽하지 말고 기름으로 반죽하여 갈라지지 않도록 하라. 갈라지면 하나님이 용납지 않는다. 아나니아 삽비라가 하나님 앞에 드린 재물이 갈라진 것은 저주이다. 하나님 앞에 드린 것을 후회해서도 안되고, 나를 철저히 복종시키면서 바쳐라. 내가 무너지고 망하는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하나님 앞에 정성을 다하라.

진설병은 성결한 상이다. 성결한 상에 올리는 떡은 고운 가루를 기름으로 반죽하여 갈라지지 않도록 하라.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고운 가루를 반죽하듯이 지극한 정성과 성의를 가지고 드리라. 성소는 성도들이 섬기는 장소이다.

금향로는 금으로 만든 것으로 아침 저녁으로 향을 피우라 출30:7-10. 새벽 저녁기도는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다. 계8:3- 향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지극히 거룩한 향이 된다.

성소에서 향을 피우면 지성소에까지 향이 베어들어 꽉 차게 하는 것이다. 일년간 향이 베어들게 하고 일년에 대속죄 일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주님을 모신 사람은 섬기는 은사로서 하나님과 처음 만났을 때의 약속대로 섬기는 것이다. 매주 새것으로 수입의 정성된 헌물을 드리고, 아침저녁으로 기도하여 향을 올려 내 기도에 주님이 감동하고 들으시도록 해야 한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을 감동하도록 섬겨야 한다. 성소는 주님이 모신 자가 섬기는 장소이다.

성전 뜰은 세마포로 들렀는데 세마포는 성도들의 착한 행실이며 계19:8, 예수를 둘러싼 구름같이 많은 증인들이다히12:1. 예수는 교회의 몸이다. 우리는 교회이며 회중이다.

주님의 지체는 주님을 둘러싸고 있는 거룩한 성도들이며 증인들이다.

성전 전체는 주님의 몸인데 가에는 세마포로서 성도들, 증인들이 둘러 쌓여 있다. 예수님의 지체된 성도들의 착한 행실이다. 지체는 손가락, 종, 권능이다. 구름같이 둘러싼 예수를 증거 하는 증인들이 주님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번제단은 피를 흘리는 것이다. 피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물두멍에서 손발을 닦아 죽기를 면하라. 출30:17-21

양의 피를 번제단에서 흘리고, 물두멍에서 손발을 닦고 들어가야 죽기를 면하는 것이다.

지성소는 주님을 모신 자요, 성소는 주님을 섬기는 자들이다. 나는 성소요, 지성소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시므로 새롭고 산길이 된 것이다. 피와 물을 초월하여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의 몸에서 흘린 피와 물로서 성소에 들어가 섬기는 것이다.

회막은 예수요, 그 안에 있는 성소는 우리다. 지성소는 일년 일차, 영원히 한 번만 들어간다.

성소는 세상에 있는 동안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 해야 할 부분은 불을 잘 피고, 떡을 올리고, 향을 피우고, 잘 섬겨야 비로소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다.

너희는 내 안에, 나는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은 회막 안에 있는 성소된 우리를 말하는 것이다. 내 생활은 하나님을 섬기는 첫사랑을 떠나면 촛대가 옮겨진다는 것을 알자.

출30:17. 물로서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하라. 예수님은 성전으로서 법궤는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발에서 피가, 옆구리에서 물이 양손에 양쪽은 떡을 등을, 향으로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고, 지성소에 들어가신 것이다. 십자가에 못이 박혀 피와 물이 나오므로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여신 것이며, 양손에 떡을 주시고, 성령으로 등을 밝히고, 내 영혼을 받으소서. 향으로서 기도를 올리시고 운명하시면서 휘장이 찢어진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는 과거의 성전이 헐어지고 예수님의 십자가로서 완성한 것이다.

(계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첫 사랑이 어디에 있느냐? 촛대가 없어지면 불이 없어 방황할 수밖에 없다. 정신을 차려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가 되자. 섬기는 자는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항상 나와 동행하시도록 하면서 사명을 감당하고, 감사생활하고, 기도 생활하는 것은 금촛대 금향로, 떡상의 생활이다.

출처 : 예수 생명
글쓴이 : 주님의 표현 원글보기
메모 :

'성막!! 성전!! 하나님의 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일반적 고찰 | 성막론  (0) 2012.09.06
[스크랩] 성막론  (0) 2012.09.06
[스크랩] 성전의 파괴  (0) 2012.09.06
[스크랩] 성전 낙성식  (0) 2012.09.06
[스크랩] 건축의 일군들  (0) 2012.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