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일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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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2장 17-18절
주요 요점
성전의 건축은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의 적용하심과 아울러 우리의 영혼과 육체와 교회 그리고 시련을 통한 연단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 시간에는 성전건축의 일군들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전을 건축하려면 일군들이 필요합니다. 요즈음 인건비가 얼마나 비쌉니까? 그것은 일군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성막건축에도 일군이 있었습니다. 설계도를 받은 모세와 성령의 재능을 가진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금은보화를 하나님께 드린 백성들 그리고 기타의 노동일군들이 그들입니다.
그러나 성전의 일군은 좀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들이 어우러져서 이루어낸 합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에 이방인들까지도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구속사적인 귀중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전건축에는 여러 종류의 일군들이 수고를 했습니다.
1.계시의 일군이 있었습니다.
대상28:19에 “다윗이 가로되 이 위의 모든 것은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그려 나로 알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다윗이 바로 계시의 일군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다윗의 손을 잡고 직접 설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손을 잡으시고 그 복잡하고 정밀한 성전의 설계도를 그리셨습니다. 마치 바벨론의 벨사살 왕의 잔치에 한 손이 나타나 글을 쓴 것과 비슷합니다. 고전12:6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했습니다. 역사가 좀 특이해도 그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면 수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계시의 일군은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의 비밀을 모두 드러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성전 그 자체이십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설계도의 그 자체이십니다. 그러니까 그대로 지어야 하는데 스스로는 불가능하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입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레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이 그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성전의 설계도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살으심과 승천이 기본 골격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이시고 살리시며 그 안에서 높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의롭고 영광스럽고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그 마음을 갖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하시며 영원한 사랑과 영화로서 교제하시던 그 모습 그 축복 그대로 우리들에게도 실재가 되도록 성령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우리도 그와 같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얼마나 가슴 부푼 설계도입니까?
2.인수의 일군이 있었습니다.
대상22:8 이하를 보면 그러나 성전건축의 임무가 다윗에게 주어지지 않고 솔로몬에게 인수됩니다. 다윗은 준비만 했지 건축은 솔로몬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인수의 일군입니다. 여기서 솔로몬은 성령의 상징입니다. 솔로몬이 예수님을 상징할 때도 있지만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상황에 따라서 이 부분에서는 성령의 상징입니다. 누룩이 여러 가지를 상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솔로몬과 같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성취시키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처럼 십자가로 세상을 이기시고 부활하시며 아버지께 모든 것을 얻으시며 모든 것들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성취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구속을 집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3.유대의 일군이 있었습니다.
왕상5:13-16에 “이에 솔로몬왕이 온 이스라엘에서 역군을 불러 일으키니 그 역군의 수가 삼만이라 솔로몬이 저희를 한 달에 일 만인씩 레바논으로 보내매 저희들이 한 달은 레바논에 있고 두 달은 집에 있으며 아도니람은 감독이었고 솔로몬에게 또 담군이 칠만인이요 산에서 돌 뜨는 자가 팔만이며 이 외에 그 역사를 동독하는 관리가 삼천 삼백인이라” 했습니다.
이 유대의 일군은 순수한 이스라엘인들이었습니다. 이 순수한 이스라엘인은 영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상징합니다. 총감독자가 아도니람인데 그는 거듭난 영혼의 상징입니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은 가장 존귀하신 분이시라’는 뜻으로 이것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완성할 뜨거운 열망으로 가득차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 레바논은 강우량이 1200미리 이상 내리는 비옥하기로 소문난 곳으로 천국의 상징이요, 만 명은 충만의 수요, 백향목은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인성의 성품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영혼은 유대일군처럼 레바논 숲속으로 들어가 백향목을 찍어 오듯 하나님과의 늘 깊고 충만한 교제 속으로 들어가서 성령의 열매를 받아 지어져야 합니다. 솔로몬이 매 달 만 명씩 레바논의 깊은 숲 속으로 끊임없이 보내고 또 보냈던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의 깊고 충만한 영적인 교제 속으로 들어 가고 또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일군의 의미입니다.
4.예비된 일군이 있었습니다.
왕상5:2-6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비된 일군은 누구였습니까? 두로왕 히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방인이지만 다윗의 절친한 오랜 친구였습니다. 그는 솔로몬에게 부친과의 정을 잊지 아니하고 자기 나라 레바논의 귀한 백향목을 무수히 제공했습니다. 그러자 솔로몬도 감사하여 많은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여기 예비일군은 우리의 육신을 상징합니다. 육신은 다윗과 히람처럼 영혼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히람이 백향목을 조달했는데 나무는 본래 인성 즉 육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히람처럼 영혼을 따르고 협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영육간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입니다. 약2:17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듯이 육신의 협력이 없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이 육신이 협력하면 우리의 영적생활이 아주 풍성해집니다. 성도들이 마음적으로는 영적 사실들을 잘 이햐하지만 문제는 육신이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육신은 한사코 자기 편리 위주입니다. 그래서 영적 빈곤이 옵니다. 잠6:11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좀더 눕자 하면 빈궁이 강도와 군사같이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육으로 풀면 대체적으로 맞지만 영으로 풀면 정확하게 맞습니다.
그래서 육신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청년은 정욕을 잘 다스려야 하고 노년들은 침체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몸의 힘이 가라앉는다고 용기 내지 않으면 신앙도 가라앉아 버립니다. 우리는 내가 육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망하겠구나 정신 번쩍 차리고 날마다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육신을 영혼을 잘 협조하는 친구와 동역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때 솔로몬이 히람에게 많은 것을 선물로 줌과 같이 우리의 육신도 많은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 때 고전 6:13의 말씀처럼 주께서도 우리의 몸을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붙들어 주실 것을 믿고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예비된 일군 히람의 의미입니다.
5.반유대 일군이 있었습니다.
왕상7:14에 “저는 납달리 과부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두로 사람이니” 여기 히람이 바로 반유대일군입니다. 반유대일군이란 절반은 유대인 절반은 이방인이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히람인데 여기 히람은 두로왕 히람 말고 동국동명이인인 쇠를 다루는 장인 히람입니다. 이 히람은 놋을 녹여 여러 가지 물건들을 만드는데 능숙한 사람이었습니다. 혈통으로 본다면 그는 선민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닌 중간 사람입니다. 이 중간 사람은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상징입니다. 교회란 그리스도의 피로 선민과 이방인이 한 몸이 된 유기체입니다. 또 히람이 불을 잘 다루듯 신약의 교회는 성령의 불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불은 사람들의 심령을 태우고 녹이고 바꾸어 아름답게 만들어냅니다. 또 놋은 심판의 상징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죄알을 소멸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뜨거워야 합니다. 교회는 성령의 용광로입니다. 교회에 불이 꺼지면 안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찬송의 불, 기도의 불, 말씀의 불, 사랑의 불, 회개의 불, 이렇게 자꾸 성령의 불을 지펴야 합니다. 불 끄는 소방관은 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각자가 그렇게 뜨거워야 합니다. 이러한 교회가 바로 장인 히람입니다.
6.이방인 일군들이 동원되었습니다.
대하2:17-18에 “전에 솔로몬의 부친 다윗이 이스라엘 땅에 거한 이방 사람을 조사하였더니 이제 솔로몬이 다시 조사하매 모두 153,600인이라 그 중에 7만은 담군이 되게 하였고 8만인은 산에서 벌목하게 하였고, 3,600인은 감독을 삼아 백성에게 일을 시키게 하였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이방인들이 건축에 참여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합하면 30만명이 넘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천문학적인 보물과 아울러 7년 6개월 동안 전 국민이 나섰겠습니까?
여기 이방인은 우리의 신령한 건축에 있어서 연단의 의미가 있습니다. 신령한 건축을 위해서는 연단이 필요합니다. 수23:13을 보면 이 이방인들은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올무가 되고 덫이 되고 옆구리에 채찍이 되고 눈에 가시가 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방 백성들이 성전건축에 일조를 한 것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그래서 이방인은 연단의 귀한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찌르고 가시가 되고 아픈 괴로운 일이 있다고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다 나를 건축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솔직히 인간은 연단 없으면 꼼짝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려운 일 당해야 부르짖지 우리의 악한 속성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악한 속성을 버리고 속히 신령한 성전건축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그 것만이 연단이 끝나는 길입니다.
요셉도 총리대신이 되어 자기 민족을 구원한 것도 다 연단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팔았던 형들을 용서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악한 형들로 하여금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하려고 도둑의 누명을 씌웁니다. 그런데 의외로 형들은 너무나 진실했습니다. 도둑질도 하지 않았고, 거짓말도 몰랐고, 하나님의 징계로 아는 신앙도 있었고, 부친을 끔찍히 염려하고 있었으며, 배 다른 막내 요셉의 친동생인 베냐민에 대한 편견도 없이 그의 안전을 위하여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있었으며, 전에 동생 요셉에게 못할 짓을 한 것을 깊이 통감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서 악한 속성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너무나도 진실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깨닫게 됩니다. 형들이 자기를 죽이고자 한 것은 하나님의 연단이지 형들의 악함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요셉은 울면서 형님들 제가 요셉입니다. 아버지는 잘 계십니까? 가족을 모셔 오세요. 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연단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십니다. 알고 보면 모든 결론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이 연단이 없었으면 어떻게 총리대신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깨달을 때 감사할 뿐 아니라 나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사용되었음을 알고 도리어 죄송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건물성전 건축에 일군이 있었던 것처럼 신령한 전에도 일군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는 설계도이십니다. 성령은 그대로 지으시는 집행자이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영혼으로 주님을 깊이 만나고 몸으로 신앙생활에 적극 혐력하며, 교회를 통한 은혜와 연단을 통한 환경을 거절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성전건축에 매진하는 일입니다. 땀 흘림이 없이 어떻게 지어질 수 있겠습니까? 신령한 성전을 이루십시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진실로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삼위 하나님이 내주 내제하시는 신령한 성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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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2장 17-18절
주요 요점
성전의 건축은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의 적용하심과 아울러 우리의 영혼과 육체와 교회 그리고 시련을 통한 연단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 시간에는 성전건축의 일군들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전을 건축하려면 일군들이 필요합니다. 요즈음 인건비가 얼마나 비쌉니까? 그것은 일군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성막건축에도 일군이 있었습니다. 설계도를 받은 모세와 성령의 재능을 가진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금은보화를 하나님께 드린 백성들 그리고 기타의 노동일군들이 그들입니다.
그러나 성전의 일군은 좀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들이 어우러져서 이루어낸 합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에 이방인들까지도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구속사적인 귀중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전건축에는 여러 종류의 일군들이 수고를 했습니다.
1.계시의 일군이 있었습니다.
대상28:19에 “다윗이 가로되 이 위의 모든 것은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그려 나로 알게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다윗이 바로 계시의 일군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다윗의 손을 잡고 직접 설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손을 잡으시고 그 복잡하고 정밀한 성전의 설계도를 그리셨습니다. 마치 바벨론의 벨사살 왕의 잔치에 한 손이 나타나 글을 쓴 것과 비슷합니다. 고전12:6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했습니다. 역사가 좀 특이해도 그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면 수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계시의 일군은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의 비밀을 모두 드러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성전 그 자체이십니다. 그리스도가 바로 설계도의 그 자체이십니다. 그러니까 그대로 지어야 하는데 스스로는 불가능하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입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레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이 그대로 나타나게 됩니다. 성전의 설계도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살으심과 승천이 기본 골격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이시고 살리시며 그 안에서 높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의롭고 영광스럽고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그 마음을 갖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하시며 영원한 사랑과 영화로서 교제하시던 그 모습 그 축복 그대로 우리들에게도 실재가 되도록 성령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우리도 그와 같게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얼마나 가슴 부푼 설계도입니까?
2.인수의 일군이 있었습니다.
대상22:8 이하를 보면 그러나 성전건축의 임무가 다윗에게 주어지지 않고 솔로몬에게 인수됩니다. 다윗은 준비만 했지 건축은 솔로몬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인수의 일군입니다. 여기서 솔로몬은 성령의 상징입니다. 솔로몬이 예수님을 상징할 때도 있지만 성경이 말씀하고자 하는 상황에 따라서 이 부분에서는 성령의 상징입니다. 누룩이 여러 가지를 상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솔로몬과 같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성취시키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처럼 십자가로 세상을 이기시고 부활하시며 아버지께 모든 것을 얻으시며 모든 것들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성취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구속을 집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3.유대의 일군이 있었습니다.
왕상5:13-16에 “이에 솔로몬왕이 온 이스라엘에서 역군을 불러 일으키니 그 역군의 수가 삼만이라 솔로몬이 저희를 한 달에 일 만인씩 레바논으로 보내매 저희들이 한 달은 레바논에 있고 두 달은 집에 있으며 아도니람은 감독이었고 솔로몬에게 또 담군이 칠만인이요 산에서 돌 뜨는 자가 팔만이며 이 외에 그 역사를 동독하는 관리가 삼천 삼백인이라” 했습니다.
이 유대의 일군은 순수한 이스라엘인들이었습니다. 이 순수한 이스라엘인은 영적으로 우리의 영혼을 상징합니다. 총감독자가 아도니람인데 그는 거듭난 영혼의 상징입니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은 가장 존귀하신 분이시라’는 뜻으로 이것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완성할 뜨거운 열망으로 가득차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 레바논은 강우량이 1200미리 이상 내리는 비옥하기로 소문난 곳으로 천국의 상징이요, 만 명은 충만의 수요, 백향목은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인성의 성품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영혼은 유대일군처럼 레바논 숲속으로 들어가 백향목을 찍어 오듯 하나님과의 늘 깊고 충만한 교제 속으로 들어가서 성령의 열매를 받아 지어져야 합니다. 솔로몬이 매 달 만 명씩 레바논의 깊은 숲 속으로 끊임없이 보내고 또 보냈던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하나님의 깊고 충만한 영적인 교제 속으로 들어 가고 또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일군의 의미입니다.
4.예비된 일군이 있었습니다.
왕상5:2-6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비된 일군은 누구였습니까? 두로왕 히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방인이지만 다윗의 절친한 오랜 친구였습니다. 그는 솔로몬에게 부친과의 정을 잊지 아니하고 자기 나라 레바논의 귀한 백향목을 무수히 제공했습니다. 그러자 솔로몬도 감사하여 많은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여기 예비일군은 우리의 육신을 상징합니다. 육신은 다윗과 히람처럼 영혼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히람이 백향목을 조달했는데 나무는 본래 인성 즉 육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히람처럼 영혼을 따르고 협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영육간의 가장 이상적인 관계입니다. 약2:17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했듯이 육신의 협력이 없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이 육신이 협력하면 우리의 영적생활이 아주 풍성해집니다. 성도들이 마음적으로는 영적 사실들을 잘 이햐하지만 문제는 육신이 말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육신은 한사코 자기 편리 위주입니다. 그래서 영적 빈곤이 옵니다. 잠6:11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좀더 눕자 하면 빈궁이 강도와 군사같이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육으로 풀면 대체적으로 맞지만 영으로 풀면 정확하게 맞습니다.
그래서 육신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청년은 정욕을 잘 다스려야 하고 노년들은 침체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몸의 힘이 가라앉는다고 용기 내지 않으면 신앙도 가라앉아 버립니다. 우리는 내가 육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망하겠구나 정신 번쩍 차리고 날마다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육신을 영혼을 잘 협조하는 친구와 동역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때 솔로몬이 히람에게 많은 것을 선물로 줌과 같이 우리의 육신도 많은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 때 고전 6:13의 말씀처럼 주께서도 우리의 몸을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붙들어 주실 것을 믿고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예비된 일군 히람의 의미입니다.
5.반유대 일군이 있었습니다.
왕상7:14에 “저는 납달리 과부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두로 사람이니” 여기 히람이 바로 반유대일군입니다. 반유대일군이란 절반은 유대인 절반은 이방인이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히람인데 여기 히람은 두로왕 히람 말고 동국동명이인인 쇠를 다루는 장인 히람입니다. 이 히람은 놋을 녹여 여러 가지 물건들을 만드는데 능숙한 사람이었습니다. 혈통으로 본다면 그는 선민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닌 중간 사람입니다. 이 중간 사람은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상징입니다. 교회란 그리스도의 피로 선민과 이방인이 한 몸이 된 유기체입니다. 또 히람이 불을 잘 다루듯 신약의 교회는 성령의 불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불은 사람들의 심령을 태우고 녹이고 바꾸어 아름답게 만들어냅니다. 또 놋은 심판의 상징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죄알을 소멸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뜨거워야 합니다. 교회는 성령의 용광로입니다. 교회에 불이 꺼지면 안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찬송의 불, 기도의 불, 말씀의 불, 사랑의 불, 회개의 불, 이렇게 자꾸 성령의 불을 지펴야 합니다. 불 끄는 소방관은 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각자가 그렇게 뜨거워야 합니다. 이러한 교회가 바로 장인 히람입니다.
6.이방인 일군들이 동원되었습니다.
대하2:17-18에 “전에 솔로몬의 부친 다윗이 이스라엘 땅에 거한 이방 사람을 조사하였더니 이제 솔로몬이 다시 조사하매 모두 153,600인이라 그 중에 7만은 담군이 되게 하였고 8만인은 산에서 벌목하게 하였고, 3,600인은 감독을 삼아 백성에게 일을 시키게 하였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이방인들이 건축에 참여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합하면 30만명이 넘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천문학적인 보물과 아울러 7년 6개월 동안 전 국민이 나섰겠습니까?
여기 이방인은 우리의 신령한 건축에 있어서 연단의 의미가 있습니다. 신령한 건축을 위해서는 연단이 필요합니다. 수23:13을 보면 이 이방인들은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의 올무가 되고 덫이 되고 옆구리에 채찍이 되고 눈에 가시가 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방 백성들이 성전건축에 일조를 한 것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그래서 이방인은 연단의 귀한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찌르고 가시가 되고 아픈 괴로운 일이 있다고 불평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다 나를 건축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솔직히 인간은 연단 없으면 꼼짝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려운 일 당해야 부르짖지 우리의 악한 속성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악한 속성을 버리고 속히 신령한 성전건축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그 것만이 연단이 끝나는 길입니다.
요셉도 총리대신이 되어 자기 민족을 구원한 것도 다 연단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팔았던 형들을 용서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악한 형들로 하여금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하려고 도둑의 누명을 씌웁니다. 그런데 의외로 형들은 너무나 진실했습니다. 도둑질도 하지 않았고, 거짓말도 몰랐고, 하나님의 징계로 아는 신앙도 있었고, 부친을 끔찍히 염려하고 있었으며, 배 다른 막내 요셉의 친동생인 베냐민에 대한 편견도 없이 그의 안전을 위하여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있었으며, 전에 동생 요셉에게 못할 짓을 한 것을 깊이 통감하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서 악한 속성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너무나도 진실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깨닫게 됩니다. 형들이 자기를 죽이고자 한 것은 하나님의 연단이지 형들의 악함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요셉은 울면서 형님들 제가 요셉입니다. 아버지는 잘 계십니까? 가족을 모셔 오세요. 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연단을 통해 사람을 온전케 하십니다. 알고 보면 모든 결론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이 연단이 없었으면 어떻게 총리대신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깨달을 때 감사할 뿐 아니라 나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사용되었음을 알고 도리어 죄송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건물성전 건축에 일군이 있었던 것처럼 신령한 전에도 일군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는 설계도이십니다. 성령은 그대로 지으시는 집행자이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영혼으로 주님을 깊이 만나고 몸으로 신앙생활에 적극 혐력하며, 교회를 통한 은혜와 연단을 통한 환경을 거절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성전건축에 매진하는 일입니다. 땀 흘림이 없이 어떻게 지어질 수 있겠습니까? 신령한 성전을 이루십시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진실로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삼위 하나님이 내주 내제하시는 신령한 성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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