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 성전!! 하나님의 집!!!

[스크랩] 두 그룹

하나님아들 2012. 9. 6. 11:29
두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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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6장 23-28절

주요 요점
지성소의 그룹천사에게서 주의 사역의 원리를 발견한다.

이 시간에는 법궤 위의 두 그룹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룹은 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종이요 수행원입니다. 그런데 이 구룹의 모형이 법궤 위에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이 그룹천사의 모습은 곳곳에서 볼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룹을 통해서 주의 사역의 원리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언젠가 에스겔서에 나타난 그룹천사를 통해 주의 사역의 원리를 말씀드린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성전의 그룹을 통한 주의 사역의 원리가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귀하게 쓰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알아야 할 그룹천사의 비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그룹의 기본 재료는 감람목이었습니다.
본문 23절에 “내소 안에 감람목으로 두 그룹을 만들었는데”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백향목도 아니고 잣나무도 아니고 조각목도 아니고 감람목으로 만들라고 했을까요? 감람목은 기름을 짜는 나무로 본래 성령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즉 온전한 주의 사역자가 되려면 그 첫째가 성령을 받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 예로 오실 메시야를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분명히 중생 했지만 성막을 짓기 위해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따로 성령을 받게 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혹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어 중생한 제자들이었지만 따로 성령의 권능을 받으라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행1:8에 성령의 권능을 받아 내 중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2.두 그룹은 금으로 입혀졌습니다.
본문 28절에 “저가 금으로 그룹에 입혔더라” 했습니다. 금은 신성 혹은 믿음입니다. 즉 주의 일은 믿음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전1:3에 “믿음의 역사와”라고 했습니다. 주의 일을 감당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가 애굽의 왕이 될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자기 백성들과 고락을 같이했던 것은 온전히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 좋은 것 다 거절하고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100% 믿음입니다. 믿음 없이는 주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부자라고 권력자라고 할 것이라고 기대하면 실망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부자든 아니든 일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들은 오히려 방해꾼만 되고 사람만 더 괴롭힙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입혀진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그룹의 숫자는 둘이었습니다.
23절에 두 그룹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둘은 증인의 수입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나 70인의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도 둘씩 둘씩 짝지어 파송하셨습니다. 율법의 판결에서도 반드시 두 세 증인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실 때도 두 천사가 나타났고, 승천하실 때에도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둘은 증인의 수입니다(계11:3).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 증인이 되어 내 자랑 내 이익에 힘쓰면 큰 일 납니다. 나는 안 되어도 예수님만 잘되고 존귀히 되려함이 증인의 자세입니다.
4.그룹의 키를 10규빗으로 만들었습니다.
23절에 “그 고가 각각 십규빗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10은 율법수요 질서수요 전체수요 온전수입니다. 또 큰 키는 장성한 분량을 뜻합니다. 즉 온전히 자란 사람은 그리스도를 입었기에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으로 장성해야 쓰십니다. 그래서 급하고 급해도 영적 성장만큼 급한 것은 없습니다.
5.날개의 길이는 5규빗이었습니다.
24절에 “한 그룹의 이 날개는 다섯 규빗이요 저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이 날개 끝으로부터 저 날개 끝까지 십 규빗이며” 했습니다. 5는 고난과 수고의 숫자입니다. 날개의 역할은 운반 안전 보호 등의 역할입니다. 즉 이 5규빗의 날개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대한 온전한 사랑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암탉이 날개 아래 품으려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 선지자 자기 아들을 희생하시면서까지 자기 백성을 품으려고 하십니다. 그런데 5규빗이면 아무리 큰 사람도 다 덮을 수 있는 크기입니다. 그러니까 한 그룹만해도 양날개를 펴면 5미터나 되는 거대한 그늘이 만들어집니다. 대하3:11에 “두 그룹의 날개 길이가 모두 이십규빗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10미터의 큰 정자와 같은 날개 그늘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니까 지성소는 이 그룹으로 장관을 이루는 곳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큰 사랑입니다. 룻2:12에 룻에게 이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역은 수고와 희생을 통한 사랑의 사역이라는 중요한 원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6.두 그룹의 날개는 모두 활짝 펴졌습니다.
대하3:12-13을 보면 그룹이 날개를 활짝 폈기에 양 날개가 벽에 닿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최선의 봉사를 뜻합니다. 우리는 부족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육신과 이 세상의 환경 속에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것은 그 가운데서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천사처럼 피곤도 모르고 자유롭다면 누군들 못하겠습니까? 우리는 효과만을 생각하고 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하고자 하는 그 마음을 보시기 위해서 우리의 환경을 그대로 두십니다. 잠이 오는 데도 성경을 읽을려는 그 마음을 보십니다. 혹은 피곤해도 교회에 나오려는 그 모습을 보십니다. 혹은 멀고 몸이 아파도 새벽기도하는 그 모습을 보십니다. 그리고 빈곤해도 애쓰고 노력하는 그것을 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큰 상이 됩니다.
북한에서 탈출한 이순옥씨의 간증을 들어보니까 북한에는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오지 못하는 수용소가 있답니다. 그런데 이 분이 그곳에 들어가서 보니까 그 곳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고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더랍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그 곳에 갇힌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글을 읽고 하나님께서는 왜 그들을 그 곳에 방치하고 계실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은 그 분들 대로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하늘의 상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7.두 그룹은 서로 같았습니다.
25-26절에 “다른 그룹도 십 규빗이니 그 두 그룹은 한 척수 한 모양이요 이 그룹의 고가 십 규빗이요 저 그룹도 일반이라” 했습니다. 이 땅에 많은 성도들이 있지만 서로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더 귀한 직분과 은사를 받았으니 더 귀하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입니다. 서로를 인정하는 존중 속에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조건이 조금도 없어 실망했는데 하나님께서 기도의 봉사자로 쓰시기 위함임을 깨닫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8.두 그룹은 서 있었습니다.
대하3:13에 “서 있으며” 라고 했습니다. 서 있다는 것은 활동하고 있다는 뜻이요, 일할 긴장을 풀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성전에는 의자가 없었습니다. 언제나 제사장은 서 있었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진리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부지런하라는 말씀이요, 다른 하나는 그룹이 법궤 위에 서듯 진리에 견고히 서서 주의 일을 감당하라는 교훈입니다.
9.두 그룹은 서로 날개를 맞잡았습니다.
대하3:11에 “좌편 그룹의 한 날개는 다섯 규빗이니 전 벽에 닿았고 그 한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우편 그룹의 날개와 닿았으며” 라고 했습니다. 이는 한사역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 협력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협력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와같이 영의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고전12:20-27을 보면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서로 존중하며 손을 맞잡아야 합니다. 내가 제일이다 혹은 나는 보잘 것이 없다는 생각은 무서운 교만이요 남에게 실망의 상처를 주는 죄악입니다.
10.그룹의 얼굴은 외소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대하3:13에 “그 얼굴을 외소로 향하고 서 있으며” 했습니다. 외소는 바로 성소인데 이 쪽은 동쪽입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여호와의 성전에서 흐른 생명수는 동쪽으로 흘러 강과 바다와 사막을 소성시켰습니다. 즉 희망이 부푼 현장입니다. 이것은 사역자들은 마음에 꿈이 있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나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시기를 원하시는가 하는 분명한 비죤을 받아야 합니다. 혹시 비죤이 작을지라도 불타는 비죤의 예수님에게 사용되어지고 있음을 기억하시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11.그룹은 성전의 곳곳에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출26:31에 보면 휘장에도, 출25:18 이하에는 속죄소 위에도, 출26:1이나 출36:8에 보면 성막 안쪽의 덮개에도, 왕상6:35에 보면 지성소와 성소의 문에도, 왕상6:29에 보면 성소와 지성소의 벽면에도, 왕상7:29, 36을 보면 열 개의 물두멍의 받침에도 그룹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화염검을 들었던 그 그룹천사가 있다는 것은 사람이 거룩을 법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사항입니다. 그러므로 곳곳에 그룹을 두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아이가 내일 가지고 가야할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 한 번은 종이를 방바닥, 책장, 책상, 탁자, 신발장, 방문, 현관, 의자, 찬장, 냉장고, 쌀통, 세면장, 심지어는 조리대의 물속에까지 얺져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다음날 확인해 보니까 잊지 않고 가지고 갔데요. 하나님의 성전에도 꼭 그 식입니다. 이것은 사역자의 거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의 이마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쓴 글을 붙였습니다. 주의 사역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죄입니다. 성결함을 유지하는 것은 생명과 같이 중요합니다.
12.그룹은 하나님과 함께 있습니다.
시80:1에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라고 했습니다. 또 시37:16에도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라고 했습니다. 시18:10이나 삼하22:11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룹을 타고 날으신다고 했습니다. 에스겔서에 나타난 그룹의 모습은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그 모습이 불과 같았습니다.
이처럼 주의 사역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택하실 때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셨고 승천하시면서도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맡기신 일을 하지않고 내 뜻대로 저지르면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그래도 주의 문제이므로 언젠가는 해결해 주시겠지만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많은 고통을 경험케 하십니다. 주의 사역은 주의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사역의 원리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바로 우리가 그룹과 같은 사역자들이 다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어서 속히 영적으로 성장하십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귀하게 써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귀하게 써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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