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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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8장 1-5절
주요 요점
성전의 법궤에는 그리스도의 온갖 비밀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요 복의 원인이신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한다.
오늘 이 시간에는 법궤에 관해서 좀 다른 측면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즉 법궤를 그리스도로 보고 법궤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예표가 되는가 여러 면에서 비교하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법궤를 통해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과연 하나님이 보내신 참된 구세주임과 아울러 주님을 보다 더 확실하게 믿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1.계시면에서 볼 때 그렇습니다. 법궤는 숨겨져 있던 하나님의 비밀이었으나 계시로 모세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가 그렇습니다. 요일1:1-2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알려면 성령으로 계시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성도에게서도 예수의 형상이 나타납니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안됩니다.
2.성령으로 되어진 면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이것을 잉카네이션이라고 하는데 출37:1을 보면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브살렐은 성령을 받아서 신비한 손길로 법궤를 만들었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도 신비롭게도 남자가 없이 여자의 몸에서 성령으로 탄생했습니다. 성령이 브살렐을 사용하신 것처럼 마리아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마1:20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담의 후손이 아니고 원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3.증거적인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출26:34에 “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라고 한 대로 법궤는 증거궤였고 언제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 궤에서 만나 주셨습니다. 또 출25:22을 보면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를 말씀을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통해서 말씀하셨고 또 요5:31-32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또 요16:14에 성령께서 오시면 성령께서도 역시 예수를 증거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행1:8처럼 성령받아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증인이 아닙니다. 예수 증인입니다.
4.성령면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출30:22-26을 보면 거룩한 관유를 만들어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라고 했습니다. 이미 법궤가 만들어졌지만 다시 거룩하게 기름을 바른 것과 같이 마3:16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공적으로 쓰임을 받으시려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했습니다.
5.보이는 면에 있어서도 법궤는 사람의 눈에 띠지 않았습니다. 민4:44-45을 보면 법궤를 운반할 때에도 대제사장들이 챙기고 보자기에 싸고 싸고 쌌기 때문에 레위 제사장들은 볼 수도 없었고 무게만 느꼈으며 특수한 사람들만 보았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도 강보에 싸여 마굿간의 구유에 탄생하실 때 특수한 사람들만 볼 수 있었습니다.
6.음성면에서 그렇습니다. 출25:22이나 민8:89을 보면 하나님의 음성이 법궤에서 나왔습니다. 이처럼 히1:2에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라고 했고 요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했습니다.
7.능력면에서 그렇습니다. 법궤는 이스라엘의 능력이었습니다. 시132:8에 “주의 권능의 궤”라고 했고 법궤가 가는 곳마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하나님의 영광의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행10:38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하셨으매 저가 두루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법궤가 블레셋에게 잠시 빼앗긴 적이 있었던 것처럼 구속사역을 이루시기 위해서 능력 많으신 예수님도 잠시 십자가에 못박히셔야 했습니다.
8.지성소면에서 그렇습니다. 출40:3-5대로 법궤는 어디로 움직여도 안치된 곳은 언제나 지성소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세상에서는 머리 둘 곳이 없으셨으나 하나님 우편으로 승천하셨습니다.
9.내용면에서 그렇습니다. 법궤 안에는 만나와 십계명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하늘의 만나이신 생명의 떡이시고, 십계명처럼 십자가의 도 즉 길이 되시고, 밤새 싹이 난 아론의 지팡이처럼 부활이 되십니다.
10.율법면에서 그렇습니다. 신31:9을 보면 법궤 옆에 율법책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율법을 무시하지 않으셨으며,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오셨고, 새율법을 선포하셨으며, 율법을 온전히 지키사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원하셨습니다.
11.구름면에서 그렇습니다. 법궤에는 언제나 영광의 구름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왕상8:10에 보면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얼마나 충만한지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마17:5을 보면 예수님께서 변화산상에서 계실 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덮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구름을 타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12.즐거움면에서 그렇습니다. 삼하6:15에 보면 다윗왕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올 때 다윗도 춤을 추고 많은 사람들이 나팔을 불고 즐거워했습니다. 이와같이 마21:1-11을 보면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호산나 찬송하며 그러하였습니다.
13.저주면에서 그렇습니다. 법궤를 우습게 안 사람들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삼하6:20을 보면 다윗이 법궤를 보고 너무 기뻐 춤을 추는데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비웃었습니다. 그 결과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즉 왕자를 낳지 못해 왕 위를 물려 받는 큰 축복이 떠났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미갈처럼 하나님을 체면 차림으로만 섬기면 영적권세가 나타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14.찬송면에서 그렇습니다. 법궤에는 늘 찬송이 있었습니다(대상16:4-6). 이와 같이 주님이 머리되신 교회에도 항상 찬송이 있습니다(히2:12).
15.주변면에서 그렇습니다. 법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기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달아난 것처럼(삼상4:10) 예수님께서 원수들에게 붙잡히자 제자들이 도망쳤습니다.
16.관리면에서 빼앗은 법궤를 블레셋 사람들이 어떻게 처리할 줄을 몰라 물었듯(삼상5:8, 삼상6:2) 빌라도는 잡힌 예수를 어떻게 할 줄 몰라서 물었습니다(마27:22), 눅6:11).
17.피난면에서도 다윗이 압살롬에게 배척을 받고 기드론 시내로 법궤를 가지고 피한 적이 있었는데(삼하15:23-25) 요18:1을 보면 예수님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 피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18.3일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법궤는 이스라엘 진영의 3일 앞 길을 먼저 가면서 쉴 곳을 찾았듯(민10:33)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3일만에 다시 부활하셨서 우리들을 참 안식과 승리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19.대적면에서도 민10:35에 “궤가 떠날 때에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했듯 주님이 가시는 곳마다 귀신은 떠나갔고 문제는 해결되었고 병은 떠나갔습니다.
20.거리면에서도 법궤가 요단강을 건널 때 2,000규빗 앞서 갔던 것처럼 예수께서 죽음의 요단강을 건넌 후 약 2,000년이면 새예루살렘 가나안을 밟는 역사가 있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21.죄면에서도 매년 7월 10일 대속죄일에 법궤 위에 속죄의 피가 뿌려진 것처럼(레16장)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대속죄가 이루어졌습니다(히10:3, 4, 12)
22.위치면에서도 법궤가 언제나 이스라엘 진의 중앙에 있었던 것처럼 마18:20을 보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23.전쟁면에서도 민14:44을 보면 법궤 없는 싸움에 실패했듯이 예수 없는 싸움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24.양면성에서도 법궤는 이스라엘에게는 축복이지만 삼상4장 이하를 보면 이방인에게는 저주가 되었던 것처럼 예수는 믿는 자에게는 영생 불신자에게는 사망이 주어집니다(딤전2:5). 그래서 생명을 얻을 자에게는 생명의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이것이 무슨 냄새냐 저 냄새를 맡아야 살겠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25.중보자면에서도 수7:6을 보면 이스라엘이 아이성 싸움에 지고 법궤 앞에 엎드려 물었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한 분밖에 없는 중보자이십니다.
26.거짓신에서도 삼상5장을 보면 다곤 우상도 법궤 앞에서는 부서졌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 에수 앞에 엎드려졌습니다. 이처럼 예수의 영이 들어오면 육에 속한 것은 무너지고 영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27.나팔소리면에서 그렇습니다. 법궤를 메고 여리고를 돌 때 7일째 7바퀴를 돈 후 7제사장이 7나팔 소리에 성이 무너졌듯, 계11:19을 보면 일곱째 나팔소리가 나매 하늘 문이 열리며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오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하늘로 좇아 재림하실 것입니다.
28.축복과 저주면에서도 신 11장을 보면 법궤가 축복의 산인 그리심산과 저주의 산인 에발산 사이에 놓여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마지막 날에 예수님을 중심으로 오른 편과 왼 편으로 양과 염소를 가르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29.안식면에서도 왕상 8장을 보면 여기 저기로 다니던 법궤는 드디어 솔로몬 성전에서 안식을 취하게 되었듯이 이 땅에서 머리 둘 곳도 없으셨던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안식을 취하고 계십니다.
30.삼하 6장을 보면 웃사가 법궤를 손으로 붙들다가 죽었는데, 이처럼 예수님의 고난을 베드로가 인정으로 그리 마옵소서 붙들 때 사단아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하며 책망했습니다. 법궤를 인간의 방식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처럼 예수님도 인정으로 섬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처음과 나중면에서 그렇습니다. 출25:10-22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많은 성물 중에서 맨 먼저 계시하신 성물이 법궤였고 왕상8:9에 보면 솔로몬이 모든 성전을 다 마치고 마지막으로 들여 놓은 것이 또 법궤였듯이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 되십니다. 이것은 창조에서 구속과 섭리와 재림과 신천신지와 영원 등 예수님이 빠진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와같이 법궤는 무엇으로 보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제 법궤는 실상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 땅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도 구약을 신봉하여 성전을 지어 법궤를 안치하려고 하여 법궤의 행방을 찾지만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미 예언한 말씀입니다. 렘3:16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한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법궤에 대하여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확실히 일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할 뿐이지 법궤는 숭배의 대상도 보존의 대상도 찾아야 할 대상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중에 천상에서 계11:19에 나타난 법궤를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법궤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요 축복의 원인인 이 법궤되신 예수님을 잘 믿으십시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오벧에돔이 받았던 그 귀한 복을 충만히 누리시는 성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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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8장 1-5절
주요 요점
성전의 법궤에는 그리스도의 온갖 비밀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요 복의 원인이신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한다.
오늘 이 시간에는 법궤에 관해서 좀 다른 측면에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즉 법궤를 그리스도로 보고 법궤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예표가 되는가 여러 면에서 비교하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법궤를 통해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과연 하나님이 보내신 참된 구세주임과 아울러 주님을 보다 더 확실하게 믿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1.계시면에서 볼 때 그렇습니다. 법궤는 숨겨져 있던 하나님의 비밀이었으나 계시로 모세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가 그렇습니다. 요일1:1-2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알려면 성령으로 계시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성도에게서도 예수의 형상이 나타납니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안됩니다.
2.성령으로 되어진 면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이것을 잉카네이션이라고 하는데 출37:1을 보면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브살렐은 성령을 받아서 신비한 손길로 법궤를 만들었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도 신비롭게도 남자가 없이 여자의 몸에서 성령으로 탄생했습니다. 성령이 브살렐을 사용하신 것처럼 마리아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마1:20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담의 후손이 아니고 원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3.증거적인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출26:34에 “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 위에 속죄소를 두고”라고 한 대로 법궤는 증거궤였고 언제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 궤에서 만나 주셨습니다. 또 출25:22을 보면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를 말씀을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통해서 말씀하셨고 또 요5:31-32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또 요16:14에 성령께서 오시면 성령께서도 역시 예수를 증거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행1:8처럼 성령받아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증인이 아닙니다. 예수 증인입니다.
4.성령면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출30:22-26을 보면 거룩한 관유를 만들어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라고 했습니다. 이미 법궤가 만들어졌지만 다시 거룩하게 기름을 바른 것과 같이 마3:16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공적으로 쓰임을 받으시려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했습니다.
5.보이는 면에 있어서도 법궤는 사람의 눈에 띠지 않았습니다. 민4:44-45을 보면 법궤를 운반할 때에도 대제사장들이 챙기고 보자기에 싸고 싸고 쌌기 때문에 레위 제사장들은 볼 수도 없었고 무게만 느꼈으며 특수한 사람들만 보았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도 강보에 싸여 마굿간의 구유에 탄생하실 때 특수한 사람들만 볼 수 있었습니다.
6.음성면에서 그렇습니다. 출25:22이나 민8:89을 보면 하나님의 음성이 법궤에서 나왔습니다. 이처럼 히1:2에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라고 했고 요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했습니다.
7.능력면에서 그렇습니다. 법궤는 이스라엘의 능력이었습니다. 시132:8에 “주의 권능의 궤”라고 했고 법궤가 가는 곳마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하나님의 영광의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행10:38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하셨으매 저가 두루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법궤가 블레셋에게 잠시 빼앗긴 적이 있었던 것처럼 구속사역을 이루시기 위해서 능력 많으신 예수님도 잠시 십자가에 못박히셔야 했습니다.
8.지성소면에서 그렇습니다. 출40:3-5대로 법궤는 어디로 움직여도 안치된 곳은 언제나 지성소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세상에서는 머리 둘 곳이 없으셨으나 하나님 우편으로 승천하셨습니다.
9.내용면에서 그렇습니다. 법궤 안에는 만나와 십계명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하늘의 만나이신 생명의 떡이시고, 십계명처럼 십자가의 도 즉 길이 되시고, 밤새 싹이 난 아론의 지팡이처럼 부활이 되십니다.
10.율법면에서 그렇습니다. 신31:9을 보면 법궤 옆에 율법책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율법을 무시하지 않으셨으며,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오셨고, 새율법을 선포하셨으며, 율법을 온전히 지키사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원하셨습니다.
11.구름면에서 그렇습니다. 법궤에는 언제나 영광의 구름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왕상8:10에 보면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얼마나 충만한지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마17:5을 보면 예수님께서 변화산상에서 계실 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덮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구름을 타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12.즐거움면에서 그렇습니다. 삼하6:15에 보면 다윗왕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올 때 다윗도 춤을 추고 많은 사람들이 나팔을 불고 즐거워했습니다. 이와같이 마21:1-11을 보면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호산나 찬송하며 그러하였습니다.
13.저주면에서 그렇습니다. 법궤를 우습게 안 사람들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삼하6:20을 보면 다윗이 법궤를 보고 너무 기뻐 춤을 추는데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비웃었습니다. 그 결과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즉 왕자를 낳지 못해 왕 위를 물려 받는 큰 축복이 떠났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미갈처럼 하나님을 체면 차림으로만 섬기면 영적권세가 나타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14.찬송면에서 그렇습니다. 법궤에는 늘 찬송이 있었습니다(대상16:4-6). 이와 같이 주님이 머리되신 교회에도 항상 찬송이 있습니다(히2:12).
15.주변면에서 그렇습니다. 법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기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달아난 것처럼(삼상4:10) 예수님께서 원수들에게 붙잡히자 제자들이 도망쳤습니다.
16.관리면에서 빼앗은 법궤를 블레셋 사람들이 어떻게 처리할 줄을 몰라 물었듯(삼상5:8, 삼상6:2) 빌라도는 잡힌 예수를 어떻게 할 줄 몰라서 물었습니다(마27:22), 눅6:11).
17.피난면에서도 다윗이 압살롬에게 배척을 받고 기드론 시내로 법궤를 가지고 피한 적이 있었는데(삼하15:23-25) 요18:1을 보면 예수님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 피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18.3일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법궤는 이스라엘 진영의 3일 앞 길을 먼저 가면서 쉴 곳을 찾았듯(민10:33)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3일만에 다시 부활하셨서 우리들을 참 안식과 승리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19.대적면에서도 민10:35에 “궤가 떠날 때에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했듯 주님이 가시는 곳마다 귀신은 떠나갔고 문제는 해결되었고 병은 떠나갔습니다.
20.거리면에서도 법궤가 요단강을 건널 때 2,000규빗 앞서 갔던 것처럼 예수께서 죽음의 요단강을 건넌 후 약 2,000년이면 새예루살렘 가나안을 밟는 역사가 있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21.죄면에서도 매년 7월 10일 대속죄일에 법궤 위에 속죄의 피가 뿌려진 것처럼(레16장)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대속죄가 이루어졌습니다(히10:3, 4, 12)
22.위치면에서도 법궤가 언제나 이스라엘 진의 중앙에 있었던 것처럼 마18:20을 보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23.전쟁면에서도 민14:44을 보면 법궤 없는 싸움에 실패했듯이 예수 없는 싸움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24.양면성에서도 법궤는 이스라엘에게는 축복이지만 삼상4장 이하를 보면 이방인에게는 저주가 되었던 것처럼 예수는 믿는 자에게는 영생 불신자에게는 사망이 주어집니다(딤전2:5). 그래서 생명을 얻을 자에게는 생명의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이것이 무슨 냄새냐 저 냄새를 맡아야 살겠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25.중보자면에서도 수7:6을 보면 이스라엘이 아이성 싸움에 지고 법궤 앞에 엎드려 물었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한 분밖에 없는 중보자이십니다.
26.거짓신에서도 삼상5장을 보면 다곤 우상도 법궤 앞에서는 부서졌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 에수 앞에 엎드려졌습니다. 이처럼 예수의 영이 들어오면 육에 속한 것은 무너지고 영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27.나팔소리면에서 그렇습니다. 법궤를 메고 여리고를 돌 때 7일째 7바퀴를 돈 후 7제사장이 7나팔 소리에 성이 무너졌듯, 계11:19을 보면 일곱째 나팔소리가 나매 하늘 문이 열리며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오십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하늘로 좇아 재림하실 것입니다.
28.축복과 저주면에서도 신 11장을 보면 법궤가 축복의 산인 그리심산과 저주의 산인 에발산 사이에 놓여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마지막 날에 예수님을 중심으로 오른 편과 왼 편으로 양과 염소를 가르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29.안식면에서도 왕상 8장을 보면 여기 저기로 다니던 법궤는 드디어 솔로몬 성전에서 안식을 취하게 되었듯이 이 땅에서 머리 둘 곳도 없으셨던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안식을 취하고 계십니다.
30.삼하 6장을 보면 웃사가 법궤를 손으로 붙들다가 죽었는데, 이처럼 예수님의 고난을 베드로가 인정으로 그리 마옵소서 붙들 때 사단아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하며 책망했습니다. 법궤를 인간의 방식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처럼 예수님도 인정으로 섬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처음과 나중면에서 그렇습니다. 출25:10-22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많은 성물 중에서 맨 먼저 계시하신 성물이 법궤였고 왕상8:9에 보면 솔로몬이 모든 성전을 다 마치고 마지막으로 들여 놓은 것이 또 법궤였듯이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 되십니다. 이것은 창조에서 구속과 섭리와 재림과 신천신지와 영원 등 예수님이 빠진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와같이 법궤는 무엇으로 보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제 법궤는 실상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 땅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도 구약을 신봉하여 성전을 지어 법궤를 안치하려고 하여 법궤의 행방을 찾지만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미 예언한 말씀입니다. 렘3:16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 사람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한 선지자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법궤에 대하여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확실히 일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할 뿐이지 법궤는 숭배의 대상도 보존의 대상도 찾아야 할 대상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중에 천상에서 계11:19에 나타난 법궤를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법궤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요 축복의 원인인 이 법궤되신 예수님을 잘 믿으십시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오벧에돔이 받았던 그 귀한 복을 충만히 누리시는 성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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