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신학

[스크랩] 4. 전략 Ⅱ : 한국인 디아스포라를 통한 협력선교

하나님아들 2014. 4. 22. 23:47

4. 전략 : 한국인 디아스포라를 통한 협력선교

 

 

교회와 선교의 관계는 계속 된다

 

우리가 세상에서 선교하는 삶을 살려면, 우리는 먼저 교회와 선교의 관계를 주의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로서의 본질을 생활화할 때에야 세상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참 모습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교회와 선교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교회를 말씀과 성례, 증거를 위주로 하는 지상의 모든 가족들의 모임 즉, 통일성과 성결성, 보편성과 사도성을 갖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모임으로 정의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스티븐 니일(Stephen Neil)은 선교를 복음 전파 목적을 가지고 말과 행함에 있어서 교회에서 교회 밖을 향해 의도적으로 장벽을 넘어가는 것이라 정의했다.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의 생각 속에, 교회와 선교라는 두 단어는 각기 다른 두 가지 사회 집단을 의미한다. 그 하나는 예배와 목회 및 영적인 도움을 주는 기관으로 인식되며, 다른 하나는 복음을 전파하고, 회심자들을 교회로 보내는 기관으로 인식된다. 선교를 후원하는 일은 본 교회가 필요한 모든 일을 전부 마친 후에나 해야 하는 것으로 안다. 교회 밖의 일을 벌이기 전에 남아도는 자본이 있는지 분명히 확인한다. 세계의 모든 교회들도 이와 같이 신중한 기업체로 세워져야만 한다.

교회와 선교, 이 두 개념이 다르다고 이해하지만, 우리는 교회와 선교를 분리하여 어느 한 편만을 따로 이해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다른 한편, 선교활동은 교회가 후원이 되고 교회 출신의 성도들이 합하여 행하며, 선교의 열매들은 교회에 속하게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 교회는 세상 안에서 선교함으로 그의 소명을 실천하게 되고,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함으로 교회의 본질적인 목적을 발견하게 되며, 선교 목적의 많은 프로그램들을 하게 된다. 결론은 분명하다. 교회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선교를 이해할 수 없고, 교회의 선교를 간과하고서는 선교를 이해할 수 없다.

 

뉴비긴(Lesslie Newbigin), “우리가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라고 주장하듯이, 교회의 참모습을 갖지 못한 선교도 신적 사도성(divine apostolate)을 바르게 표현함이 아니다. “교회 없는 선교는 선교하지 않는 교회처럼 괴물 같은 기형아일 뿐이다.”

 

 

성경에서 비추인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Diaspora)란 말은 그리스어로서 흩어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본래 팔레스타인 밖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가리켰으나, 후에는 종교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다수집단 속에 살고 있는 소수집단을 가리키는 말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흩어짐에 대한 성경적 기초는 다음과 같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사람(유대인)들이 세계에 흩어지게 된 경로를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다윗과 솔로몬의 통일왕국 시대에 이스라엘인들이 장사와 식민지 통치의 목적으로 남부 아라비아, 아프리카, 소아시아 등지로 나가게 되었다(삼하 8; 왕상 4; 10).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이 흩어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그들이 앗시리아와 바벨론에게 망하여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이다. 앗시리아는 주전 722년대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함락시키고 다수의 이스라엘인들을 포로로 잡아가 하볼, 고산, 할라 등 상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정착시켰다(왕하 17:6 ; 18:10,11). 남왕국 유다는 주전 587년에 바벨론에게 망하고 왕을 포함하여 주로 상류층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 그발강(1:3) 주변과 텔아비브(3:15)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주전 597년과 582년에도 유대인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갔다. 이들 유대인들의 일부는 고레스 칙령(1:1-4; 7:12-26)에 의하여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으나 대다수는 바벨론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팔레스타인 땅을 등지고 외국으로 떠나게 된 유대인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헬라와 로마시대에 포로로 잡혀가거나 노예로 팔리기도 했고,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되거나 피난을 떠나기도 했다. 또 경제적인 이유 즉, 팔레스타인 땅이 좁고 가뭄이 심하며 기후가 좋지 않아 살수가 없어서 떠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이유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주후 1세기에는 로마제국 내에만도 400여만의 디아스포라가 거주하게 되었다. 그들이 거주한 지역도 중세기 이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소아시아, 그리스, 이탈리아를 넘어서서 전 세계에 뻗치게 되었다.

 

신약시대 디아스포라는 팔레스틴의 바깥의 이방인 지역에서 살면서 유대의 종교적인 규범과 관습들을 지키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원인(遠因)과 근인(近因)들을 생각할 수 있지만 주로 기독교 초기에 많은 박해로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생각할 수가 있다. 초대 기독교회사라 할 수 있는 사도행전에서 그 뜻을 엿볼 수가 있다.

 

사도행전 8장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고 하였다. 디아스포라들은 무서운 박해로 인하여 여러 지방으로 흩어졌지만 거기에는 도리어 전화위복의 축복이 숨어 있었다. 이들은 무서운 환난을 피하여 여러 지방으로 흩어졌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더욱 충실하였고, 도리어 이방선교의 문호를 여는 놀라운 축복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사도행전 1119절 이하에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 몇이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 몇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하는 말씀들은 디아스포라들의 선교적 사명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 구원에 집착했던 복음이 인류의 복음이 되게 하신 것이다. 결과적으로 안디옥은 이방 선교의 최 전초기지가 되어서 세계 선교의 위대한 문을 열게 되었다.

 

 

세계에 머물고 있는 한국인 디아스포라

 

현재 550만의 재외동포가 한반도 이외의 나라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근년에 이주하여 그 역사가 150년도 되지 않은 짧은 이민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민사회는 아직 1세가 지배적인 지역이 많아 재외동포사회는 본국과의 관계가 많다. 140개국에 거주하고 있어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재외동포는 한반도를 떠나 다른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국민들이다. 그러나 우리와는 혈연으로 연결되어 비록 다른 나라에 거주하고 있어도 한민족으로서의 동질감을 갖고 있다.

 

우리는 외국에 거주하는 우리의 동포를 과거 여러 다른 용어로 표현하였다. 우선 외국에 거주하는 것을 해외(海外)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바다를 건너라는 의미에서 사용한 것이지만 대륙으로 연결되어 있는 외국도 있어 외국을 해외라 하면 모순이 있다. 이에 근년에는 해외라는 말 대신 재외(在外)라는 용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외국 거주 한인을 흔히 교포(僑胞)라 하였다. 이것은 본국인에 대하여 객인(客人)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집을 떠난 사람, 그래서 나그네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것을 근거로 중국인 교포를 화교(華僑)라 하였고, 이와 유사하게 우리는 한교(韓僑) 그리고 북한에서 나간 교포를 조교(朝僑)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외국에 정주하지만 나그네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동포(同胞)라는 용어가 보다 가깝다는 의미를 포함하기에 새로 생긴 교포를 위한 재단을 재외동포재단이라 하였다. 아직 일반에게 보편화되지는 않았으나 이곳에서는 외국 거주 한인을 재외동포라 하겠다.

 

우리의 해외 교포는 우리 민족 수난사이기도 하다. 우리의 해외이민사는 1860년대부터 시작된다. 처음 이민의 방향은 두만강을 건너 소련의 연해주와 중국의 북간도로 향한다. 소련은 이 시기에 연해주 개척에 필요한 사람이 부족한 때였고, 중국도 만주를 청()의 원산지라 하여 봉금하던 것을 풀기 시작할 때였다. 초기 이민은 가난 때문에 이주를 하였고, 특히 1860년대 말에는 심각한 흉년을 견디지 못해 국경을 넘어간 사람들이 많았다. 이어 국운이 기울면서 우국지사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연해주와 북간도로 유입하였고, 이것이 1905, 1910년 그리고 1919년에 이른바 망명이민의 새 물결을 이루었다. 1919년 이후 이민과 이주의 물결은 남쪽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으로 가는 한인들은 오래 머물 생각이 아니라 수년 일을 하고 돌아올 단기 노동이민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침략전쟁을 감행하면서 군수산업이 계속 번창하여 한인의 귀국이 지연되게 되었다. 일본이 2차 대전을 감행하면서부터는 한인을 강제로 징용, 징병하였으며 정신대까지 동원하여 해방되던 당시 일본에 한인이 2백만이나 되었다고 한다. 해방이 되었으나 배편이 불리하고 귀국 조건이 까다로워서 결국 60만 동포가 일본에 남게 되었다.

 

큰 줄거리로 말하면 1960년대 초 서독으로 계약노동을 간 광부와 간호사가 있었다. 이들의 수는 1만 명 전후이지만 이들이 계약이 끝난 후에도 귀국하지 않고 유럽 여러 나라에 분산되어 유럽 일대의 교민이 되었다. 우리 이민사에 전환점이 된 것은 1965년 미국이 새 이민법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이것으로 연간 한인 2만 명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어 재미한인은 급격히 늘어났으며, 현재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1960년대 중반 남미로의 농업이민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명목상으로만 농업이민일 뿐 모두 도시에 이주하여 상업에 종사하였다. 월남전은 우리 이민사에 큰 역할을 했다. 월남전이 종식되면서 월남에 진출하였던 한인들이 동남아시아로 분산되었으며 이들이 멀리 호주와 뉴질랜드까지도 진출하게 되었고, 또 한 줄기는 중동을 거쳐 멀리 아프리카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재중교포는 현재 중국에 2백만, 미국에 120, 일본에 70, 소련에 50만 교포를 갖고 있다. 기묘하게도 이들 4대국은 우리나라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중요한 나라들이다. 이곳 이외에도 남미에 10, 서구에 3, 호주와 뉴질랜드를 포함한 동남아시아에 8, 중미에 2, 캐나다에 8,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 7만 등으로 계산하고 있다. 이들 모두를 합하면 4백만이 더되며, 몇몇 나라에는 불법이민이 상당수 있기 때문에 5백만 이상으로 보는 것이다.

 

아라비아반도 내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들의 유형을 보면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유형은 이주식 이민형태이다. 어떤 교민은 지난 날 월남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월남패망으로 그곳에 계속 살지 못하고 희망의 땅으로 옮겨 다니다가 중동으로 정착한 교민들도 있다. 또한 어떤 교민들은 이란에 자영업이나 직장인으로 갔다가 이란혁명으로 인하여 생명 부지를 위해 중동으로 이동하여 정착한 교민들도 있다. 그리고 중동경제의 붐을 타고 닥치는 대로 경제가 좋은 인접 국가들을 찾아다니다가 정착하게 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어 그곳에 머물러 생존해 가는 교민들이다. 이주식 교민들은 중동지역에서의 개척자들이기도 하다. 이 지역의 밑바닥으로부터 시작하여 개척의 문을 열어 놓은 공로자들이라 하겠다. 둘째유형은 사업투자 이민형태이다. 이들은 중동지역에서 나름대로 사업의 꿈을 가지고 현지에 들어와 무작정 뛰어들어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쌓아 떠났든지 머물든지 하는 교민들이다. 중동지역의 사업투자이민은 호주, 캐나다, 미국 등의 형태와는 다른 형태이다. 거금의 자금을 투자하는 형태가 아닌 소 자금으로 시작하는 모험형 투자이민일 것이다. 이들 중에 한몫 크게 벌어들인 교민 중에는 호주나 미국 등으로 이민을 갔고, 명맥만 이어가는 형편인 교민들은 현재도 남아서 꿈을 가지고 그 땅에 거주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셋쩨유형은 직업형 이민형태이다. 잠시 3년에서 5년 동안 외국인 회사원이나 해외 지상사 주재원이나 아랍 현지국 체육지도자로 근무하다가 계약기간이나 근무기간이 끝나게 되면 고국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나름대로 그 땅에서 사업을 시작하여 정착하는 이민형태이다. 이들의 생활은 중동지역에서 가장 잘사는 교민들에 속하는 계층이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주택비, 교육비, 관리비 등 모두를 책임져 주기 때문이다. 사실상 중동에서 거주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중동에서의 보통사람들의 정착비가 한국 중산층이상의 예산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넷째유형은 국제결혼유형이다. 이들은 해외유학중이나 직장생활을 하다가 중동 아랍인들과 만나서 가정을 이루거나 고국에서 아랍인들과 만나서 국제가정을 이룬 교민들이다. 이들은 이슬람권에 속한 아랍인들과 결혼한 자들도 있으나 기독교인 아랍인들과 결혼한 가정들도 있다.

 

 

선교의 공동체로서 디아스포라한인교회

 

이민교회나 이민목회자들은 흩어진 나라에서 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민 선교사나 이민선교를 위해 왔던 사람들도 현지인에게 선교를 하든지 아니면 교포들에게 선교하든지 그 사명은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 이민의 특징은 그들이 어느 국가, 어느 사회에서든지 예배처소를 만드는 일이다. 처음에는 가정교회로 출발했다가 신앙 공동체의 집단화가 이루어지면 그 나라 지역 예배당을 빌어 예배 공동체로 확대시키는 것이다. 미국의 교회나 구라파 교회들은 예배 구성력이 약하거나 예배 시간이 고작 주일 아침뿐이기 때문에 오후 시간에 예배당을 전세 받거나 아니면 아예 예배당을 사기도 한다. “처치 세일간판이 붙기가 바쁘게 교회당을 사는 민족은 으레 한국 이민교회인 것이다. 이민 신앙인들의 뜨거운 기도와 간절한 희망은 두고 온 교회와 형제와 성도들을 그리워하면서 모국교회나 고국의 어려운 교회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 이민이 가는 곳에 한인 교회가 세워 진다는 유행어가 있을 정도로 한국인 이민 교회는 극성스럽기도 하다.

 

이광순은 199824일 우리교단 목사 후보생훈련과정 강의에서 디아스포라 한인교회는 다음과 같이 선교의 기지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 재외 한인들의 교육과 선교를 위한 기지: 디아스포라 한인 교회는 재외 한인 공동체의 구심점이자 집합 장소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점을 활용해서 재외 한인들을 교육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다.

. 타문화권 선교의 훈련기지: 디아스포라 한인 교회는 우리 선교사가 직접 가기 어려운 지역의 현지인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선교 훈련 기지로 활용될 수 있다.

. 2세들의 타문화권 선교의 예비기지; 디아스포라 한인 교회들의 큰 이점 중의 하나는 언어와 문화에 정통한 2세들을 선교 인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 타문화권 선교의 전초기지: 디아스포라 한인 교회는 타문화권 선교 현장에 있거나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이점을 지니고 있다. 지리적인 근접성은 경제적 사회적 언어적 장벽을 넘는데 드는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따라서 디아스포라 한인 교회들은 타문화권 선교를 위한 전초 기지로 활용될 수 있다.

. 한국 디아스포라 선교체널: 고려인을 통한 선교의 체널로 삼는 것이 다.

 

중동지역에는 일찍이 한인들이 많이 진출하여 나라마다 한인공동체가 형성되어있다. 또한 나라 곳곳에 나름대로 교회가 설립되어 선교의 일익을 감당하고 있다. 아라비아반도에 자리 잡은 나라들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은 나라들이다. 기독교 선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기독교 한인들은 신앙생활의 유지를 위해 지하교회를 세우고 투옥과 죽음을 각오한 신앙으로 예배를 드리고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이슬람교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에 자리 잡은 한인교회는 리야드에 3교회, 담맘에 1교회, 젯다에 2교회들이 있으며, 쿠웨이트에는 1교회, 아랍에미리트에는 3교회, 카타르에는 1교회, 바레인에는 1교회가 각각 자리 잡고 있다. 아직 예멘과 오만에는 한인교회가 설립되지 아니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한국인 건설회사가 진출한 건설현장에 기도처와 임시예배처가 현장마다 설립되어 예배 및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아라비아반도에 자리 잡은 기독교 한인공동체들은 중동에 건설 붐이 일어났을 때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론 건설현장에 임시로 세워진 기도처와 예배당들은 공사기간까지만 존재하였다. 그러므로 회사가 떠날 때는 폐쇄되고 또 새로운 회사가 들어오면 새로운 기도처와 예배당이 시작하곤 했다. 이러한 일이 여러번 중복되는 가운데 무슬림들을 향한 선교의식과 도전이 정착되어 알게 모르게 직접 간접으로 기독교복음이 전파되게 된 것이다. 중동에서의 신앙생활은 고국에서 생활했을 때보다 뜨거운 열정과 헌신이 있어 신앙의 자질이 향상되는 기간이기도 하다.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닌 홀로 살아가는 해외생활에 고독감과 외로움을 달래며 기도와 교회봉사에 진취적이기도 하다. 이런 한인 기독교인들을 잘 훈련시켜서 중동선교를 위한 인적 자원으로 크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내도중앙교회
글쓴이 : 바나바 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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