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신학

[스크랩] 3. 전략 Ⅰ : 장기선교를 위한 선교의 기지확보

하나님아들 2014. 4. 22. 23:46

3. 전략 : 장기선교를 위한 선교의 기지확보

 

이슬람교권에서 장기 사역자로서 선교할 경우 선교의 기지확보가 필수 불가결이다. 선교의 거점을 확보하고 계속적인 집중선교가 선교의 효율성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청교도 선교사들이 후대의 선교 정책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이 있다면 선교 기지 중심의 선교이다. 선교의 기지는 단순히 행정, 관리적 측면에서 본부의 역할을 하는 그런 장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인디언 원주민들을 저들의 이교적 삶의 터전에서 불러내어 선교사들이 설정한 일정한 장소에 거주하게 하여 거기에 교회당과 학교, 의료 시설까지 지어서 나중에는 일종의 선교 소도시를 형성하는 일이다.

 

이슬람교권의 선교에 있어서 이슬람의 사도라 불리던 사무엘 즈웨머(Samuel M. Zwemer, 1867-1957)는 아라비아 반도지역에서 그가 살던 당시에 불가피했던 선교기지 접근방식을 취했다. 1905년 즈웨머의 아랍선교회는 4개의 기지(쿠웨이트, 베이루트, 이라크, 바레인)를 갖게 되었고 개종자는 비록 그 수가 적었으나 그들이 신앙고백을 하는 데에는 비범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예수님이 보여준 기지중심의 선교

 

예수님의 선교활동이 복음서의 기록으로 볼 때 예루살렘, 갈릴리, 사마리아, 베뢰아 지역을 선교의 기지로 삼아 전략적으로 선교활동을 하였음을 알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갈릴리에서 시작된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14-15). 그러나 마태는 예수의 갈릴리 사역이 흑암과 사망의 땅에 거하는 백성들에게 큰 빛이 되었다고 전한다.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 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

느니라”(4:13-16).

 

이곳에서 그는 제자들을 부르셨다.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 잡던 어부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시고(4:18, 1:16-17),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으며(1:19-20), 세관에 앉은 레위를 부르시고(5:27), 그 외의 제자들을 부르심으로 열 두 제자를 세우셨다(10:2-4, 3:13-19, 6:12-16).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기도 하셨고, 그 곳에서 백성 중에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기도 하셨다(4:23, 1:21-28, 4:33-37). 그래서 예수의 소문이 온 갈릴리에 두루 퍼지게 되고 갈릴리,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허다한 무리가 예수를 쫓았으며(4:25), 심지어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었다(6:1). 에수님께서 갈릴리를 선교활동의 장소로 선택한 현명한 처사였다는 세 가지 이유를 윌리암 바클리는 말한다.

 

첫째로 갈릴리는 예수가 가장 잘 알고 계신 지방이었다. 학생시절을 보내고 어른이 되어 일을 하신 곳도 갈릴리였다. 회당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목공소에서 일을 하신 곳도 갈릴리였다. 예수는 갈릴리 사람들에게 말씀하실 수 있었다. 그것은 예수가 그들과 함께 사셨고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갈릴리는 아마도 팔레스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방이었다. 예수가 제한된 지역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려고 하셨다면 그 일을 시작하는 장소는 갈릴리보다 나은 곳이 없었다. 셋째로 갈릴리 사람들의 성격과 기질은 모든 팔레스틴 주민이 마찬가지로 새 교사와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를 좋아했다. 유대는 손이 닿기 힘들 정도로 구석진 데 있었지만 갈릴리는 고대 세계의 대로가 나 있는 지방이었다. 그래서 갈릴리는 유대보다도 훨씬 더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이 열려 있었다. 갈릴리 사람들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예수가 그의 선교 활동을 시작하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예수 자신의 배경으로 보든지 갈릴리 사람들의 수와 성격과 기질과 역사로 보든지 그 일을 시작하는 시발점으로서 갈릴리보다 나은 장소는 없었다. 그의 지상 생애의 절정은 예루살렘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공관 복음서와는 달리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3차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2:13-3:36, 5:1-47, 12:2-8), 그 중 유대 전도에 대한 기사가 요한복음 322이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서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시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을 오가는 길목에 위치한 사마리아와 베뢰아 지방 역시 중요한 복음 전도의 거점이 된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실 때 사마리아의 한 촌이 저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9:53). 예수께서 다른 촌으로 들어가셨다(9:56). 예수께서는 여러 번 이런 일을 당하셨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다 배척을 당하자 곧 이방인에게 향한다고 선언 한 것처럼(13:46) 예수께서도 고향에서 배척을 당하셨다.

 

예수께서 고향을 방문하셔서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듣고 놀라는 기사가 나온다(13:53-54, 6:1-6). 그런데 예수께서는 배척을 당하셨다. 그래서 그는 다른 촌으로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게 된다(6:6). 베뢰아 지방으로 향하신 예수는 여리고에 들어가시기까지(19:1) 70인의 제자를 파송하시기도 하시고 각종 비유와 교훈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기도, 욕심, 회개와 겸손, 물질적 문제, 제자로서의 삶, 재림과 구원, 복음 증거 등을 가르치심으로 그의 죽음을 대비케 하셨다. 결국 예수의 공생애 선교사역은 선교의 기지 확보를 통한 선교활동 이었다. 예수는 주로 갈릴리와 예루살렘, 그리고 사마리아와 베뢰아 지방을 중심하여 활동했다.

 

 

사도바울이 보여준 기지중심의 선교

 

이종윤은 그의 논문 "영적갱신과 교회성장의 성경적원리"란 글에서 교회성장의 긍정적 원인 중에 한 요소가 바로 기지 중심의 선교전략임을 밝히면서, 그 기지들은 예루살렘, 수리아의 안디옥, 비시디아의 안디옥, 에베소, 로마로 소개하고 있다. 바울은 제한된 지역에서의 집중적 선교 활동을 폄으로서 그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바울이 부르심을 받은 본래의 사명은 멀리 이방인에게’(22:21)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디까지가 멀리인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중국, 아프리카, 그 어디를 멀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바울에게 있어 이 모든 지역을 방문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가장 인구가 많고 번성하는 4개의 지역 곧 아시아대륙에 속한 갈라디아와 소아시아, 그리고 유럽대륙에 속한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지역에 대하여 집중적인 전도활동을 펴기로 결정하였다.

 

바울은 세계의 모든 이방인을 한꺼번에 복음에로 인도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아직 복음화 되지 않은 몇몇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도 그 지역의 중심이 되는 도시들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회중을 많이 모으는데 힘을 쏟기보다는 교회를 세우고 자립적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거기에 머물면서 일하였다. 그리고 일단 스스로 설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 일들을 다른 동역자들에게 맡기고 다음 사역지 곧 아직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복음을 전하러 갔다. 이렇게 도시중심으로 세워진 교회는 그 주변지역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세워진 교회는 언제나 새로운 선교 기지가 되는 것이었다.

 

바울은 로마제국의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바, 이는 그곳에서의 생활이 보다 안락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도시들이 복음의 빛을 주변지역에 전파하는데 있어 전략기지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바나바와 함께 제자들을 가르치며 1년 남짓한 세월을 보낸 바 있는 안디옥을 기점으로 하여 출발하였다. 지도를 펴보면 이 도시의 전략적인 중요성이 즉각적으로 드러나리라고 믿는다.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로마 제국에서 제3의 규모를 자랑하던 안디옥은 여러 종족들이 뒤섞여 사는 도시였고, 서의 상업을 연결하는 요충지로서, 예루살렘으로부터 퍼져 나아가기 시작한 기독교 신앙의 확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안디옥은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가 사방으로 퍼져 나갈 수 있는 최적의 전략 기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안디옥은 팔레스타인 경계선에 인접해 있는 도시로서 복음전파의 진원지에 가까이 위치한 까닭에 모 교회와도 계속적인 연계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었으며, 팔레스타인으로부터 희랍, 로마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안디옥은 기독교를 로마제국으로 파급시키는데 있어 최적의 전략기지였다.

 

에베소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사도 바울의 선교전략은 바로 기지 중심의 선교전략이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 대한 그의 선교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힘껏 노력을 해야 했다. 그 계획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그는 전 지방을 통해, 도시에서 도시에로 복음전파를 계속하였고, 힘든 곳도 인내하며 몇 번이나 재 시도하여 어느 선교에서나 칭찬 받을 만한 성실성을 가지고 인간의 나태함을 극복하였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에게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처럼 보여 졌을 것이다. 그의 사역에 있어서의 열정적인 헌신 기독교 박해 시에 나타났던 것과 같은 형태의 특징 이 그를 재촉하였다. 그 자신은 몇몇 중요한 교통 중심지에서 그의 사역을 수행하는 것을 만족했었다. 그곳에서부터 복음은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 넓게 전파되었고, 그곳에 잠깐 머문 후 계속하여 자신이 일해야 할 다음 장소로 나아갔다.

 

확실히 바울은 전략 중심지들에서 선교에 종사하였다. 그는 빈번하게 그의 전도가 여러 나라들과 지리적 지역들에 지향되어 있다. 이런 거대한 도시들은 통신, 문화, 상업, 정치, 그리고 종교에 관한 한 주요 중심지들이다. 바울은 인종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지리적으로 생각하여 대표적 특징을 가진 도시들을 선택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분명하게 전략적 중심지들로부터 복음이 주변의 시골과 소도시에 퍼져나갈 것이라는 희망에서 기독교의 공동체의 기반을 조성한다.

 

 

초기아랍선교사들의 기지중심의 선교

 

아라비아반도 지역에서 선교하는 일은 선교의 기지 확보가 중요하다. 전략적 측면에서 장기선교활동을 위한 대책인 동시에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 즉 무슬림들을 위한 효율적인 선교방향이 되기 때문이다. 아라비아반도 내에 자리 잡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국에는 일찍이 기독교 의료기관들이 설립되어 현지인들에게 의료봉사활동을 통하여 대단한 효과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된다. 특히 알아인(Al Ain) 지역에 1960년에 설립된 팀(TEAM) 병원 진료소(Oasis Hospital)와 후자이라(Fuzaira)에 있는 세계적인 산부인과 진료소가 주목할 만하다. 중요한 사실은 허락된 종교부지 두바이(Dubai)에 자리 잡은 영국성공회 건물 안에서 신앙 활동이 허락되어 약 65개 공동체들이 각 언어별 교파별로 모여서 예배 및 종교 활동을 하고 있다.

 

바레인 국에도 역시 병원이 선교의 기지로서 그 일익을 크게 담당하고 있다. 바레인에 사무엘 즈웨머(Samuel Zwemer)에 의하여 기독교 선교가 시작 된지 약 100년이 지났다. 바레인 선교는 1893년에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바레인에는 병원선교가 시작되어 오늘의 선교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1903126일 이곳에 세워진 마손기념병원(Mason Memorial Hospital)은 지금의 미국선교병원(American Mission Hospital)이 되었다. 현재 이 병원은 또 다른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미국선교병원에는 환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역시 의료기술이 발달된 이 시대에 더 많은 병원설립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곳에 교회당이 설립되어 45개 이상의 다민족 교회들이 각 언어별, 교파별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 서점이 있어서 기독교 문서선교에 많은 효과를 보고 있다.

 

쿠웨이트 국에도 일찍이 병원선교의 기지가 정착되어 봉사활동을 해오다가 정부로부터 공식 허락 받은 지대에 병원을 설립하였다. 미국 개혁교회의 아라비안 선교회가 1910년에 쿠웨이트에 병원을 개설하고, 의료선교를 시작하여 문을 닫기까지 왕실로부터 인정받는 기관으로 봉사하였다. 쿠웨이트 내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집회의 자유를 얻어내 과거 병원건물이 있는 구역 내에서 25개 기독교 공동체들이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쿠웨이트에는 일곱 교회가 있는데 그 중 두 곳에 가톨릭교회가 있다. 중요한 사실은 현지인 아랍인교회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이 병원선교 활동을 통한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계속되는 기지중심의 선교전략

 

중동지역에서의 선교활동 역시 전략이 있어야 한다. 단기선교전략보다 장기선교전략이 우선성을 가진다. 아라비아반도에서의 장기선교를 위해서는 선교의 전진기지를 확보해야한다. 실현 가능한 기지중심의 장기선교활동은 다음과 같다.

 

. 사회복지원 운영 : 무슬림을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기 위해서는 사회봉사 사업이다. 자국 내에 이미 사회봉사활동을 위한 기관들이 있으나 선교적 차원에서의 사회봉사가 필요하다. 아랍인들은 근친결혼으로 인하여 지체장애자, 정신장애자, 저능아, 등의 자녀들이 많이 태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장애자들은 그들의 집안 내에 갇혀서 살든지 아니면 사회생활과 격리되어 외부와는 접촉이 어려운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다. 이런 자녀들을 향하여 사회봉사기관을 설립하여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사랑의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접촉점으로 인하여 일대일 양육이 가능해져서 선교의 열매와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 기술교육원 운영 : 아라비아 반도에는 아직도 기술 분야에는 개척단계이기에 기술교육원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곳이다.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고 방황하는 형편이기에 컴퓨터기술, 전산기술, 정보산업기술 분야에 대한 교육기관으로서 인재양성에 주력하면 훗날 그들이 자라서 국가의 일군이 되는 일과 더불어 현지선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유치원 운영 : 아라비아 반도에 자리 잡은 국가들에는 외국인들이 취업차 많이 거주하기에 교육기관이 부족한 실정이다. 현지인들을 위한 교육기관은 더욱 부족하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교육기관들은 서구영향으로 발전된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아직 미약한 형편이기에 성숙된 교육시스템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중요한 점은 조기교육과 자녀교육에 대한 인식도가 점차적으로 높아짐으로서 교육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향상된 편이다. 또한 현지인들의 자녀들을 국제교육기관에 입학시키어 교육시키려는 부모들이 많아졌기에 매우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 한국문화원 운영 : 많은 아랍인들이 세계화의 물결에 따라 기타 국가들에 대한 관심으로 유학, 단기교육, 연수교육 그리고 여행 등이 늘고 있다. 한국문화센터를 설립하여 한국어 교육, 한국문화 소개, 직업소개, 관광안내, 한국영화상영 등 주선함으로 기독교와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얻어지게 될 것이다.

 

. 선교사훈련원 운영 : 중동지역에 대한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 선교후보자들이나 단기선교활동을 희망하는 선교사들에게 가장 적합한 프로젝트로 지역별, 대륙별로 선교현지훈련원을 운영할 필요성이 요청된다. 한국 국내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문화와 선교현장을 훈련원을 통하여 경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지연구 및 선교전략수립에 많은 도움이 있을 것으로 본다.

 

. 아랍어 훈련원: 중동지역에 나올 선교 후보생들을 모집하여 이슬람권에서 사역한 선교사들을 강사로 하여 언어훈련을 실시하므로 선교지 지역 방언 아랍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앞으로 일할 선교국 언어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출처 : 내도중앙교회
글쓴이 : 바나바 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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