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장 1~2절 / 생명 강 나무와 잎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22:1-2)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으로 넘겨졌다. 요한계시록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이제 요한은 지상으로 돌아오려는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천사들의 인도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의 보좌 앞에까지 볼 수 있었다. 인 재앙과 나팔재앙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대접재앙에 대하여 들었고 될 것을 보았다. 그때에는 지구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며 지구정부 통치자와 그들이 시행하는 짐승의 이름으로 계수되는 666표를 받고 영원히 고통 받는 곳으로 가는 사람들도 보았다.
그러한 것을 물리치고 예수 믿는 믿음으로 이긴 자들이 1층천 낙원과, 2층천 왕국과, 3층천 시온에 들어갈 것을 보았다. 3층천 시온의 공중에 있던 새 예루살렘 도성이 시온의 지면으로 내려오는 찬란한 광경을 보았다. 그곳은 하나님의 아들들과 어린양의 신부들이 들어갈 거처이나, 들어가지 못할 자들에 관한 말씀도 듣고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축복받게 될 원리에 대한 포괄적인 결론으로 끝내는 내용으로 전개시키는 것이 마지막장이다. 22장에서 말씀을 연구하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우리를 구원시키시고 은혜주시는 어린양에게 감사를 드리기 위하여 나누게 될 단원들은,
1). 생명을 살리는 강물의 근원이 어디로부터 인가를 설명하면서 그 나무의 열매와 잎사귀의 소용이 설명되었다. 또한 새 예루살렘에 거하게 될 하나님의 아들들이 전체 하늘나라에서의 왕과 같은 존대를 받음에 대하여,(1-5)
2). 1장 1-3절에서 지시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의 답을 확인시키신다. 따라서 복을 받거나 그렇지 않음도 확인하게 하였고, 요한이 천사와 작별할 장면이 설명된다.(6-7)
3). 요한에게 계속하여 전달하는 천사는 계시의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로 읽고 복을 받도록 인봉하지 말고 공개하라 하였고,(8-9)
4). 마지막 때가 되면 선과 악의 간격이 벌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나 천사들도 돕지 아니하고 자신의 의지에만 맡긴다고 한다.(10-13)
5).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성문들로 들어갈 권세를 얻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설명하였고, 그러나 이런 자들은 하늘나라에서 쫓겨나서 성 밖에 있게 된다고 하면서, 이러한 것을 처음에 알리신 분은 예수님이라고 알리신다.(14-15)
6).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는 생명수를 주겠다고 부르시는 신분은 하나님이나 어린양이 아니라 어째서 성령과 신부가 되어야 하는가를 알리시고,(16-17)
7). 끝으로 계시의 말씀을 첨가시키거나 삭제하지 말고,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기다리라는 말씀으로,(18-21)
생명강의 근원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1-2a)
하늘나라의 생명강의 근원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을 요한은 보았다. 에스겔은 생명 강물은 성소로부터 시작하여 그 문지방 밑으로 나와서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의 남쪽으로 흘러내리더라 한다. 계속하여 에스겔이 바깥에 나아가서 보았을 때 생명의 샘물은 오른쪽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했다. 바깥으로 흘러나온 물은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라 한다.
요한은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시작을 설명하였고, 에스겔은 성소로 말미암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생명을 살리는 물의 근원은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근원을 두었으며, 그 맑기는 수정과도 같다고 하였다.
길 가운데로 흐르는 강; 하늘나라에서도 지상과 같이 왕래할 수 있는 길들은 대소를 막론하고 수없이 많다. 모든 길에는 생명 강이 흐르도록 하셨다. 그리고 강 좌우에는 가로수처럼 나무들로 아름답게 조성되었음을 말한다.
시온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사람은 ‘현대적인 환경구조로 보면 모순같이 보인다.’하였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길 가운데로 물이 흐르는 것으로 착각하고 그렇게 말한 것 같은데, 강을 강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냇물’이나 ‘도랑물’로 취급하면 안 된다. 이러한 조성은 독일 라인(Rhein)강변과 비교하면 시온의 생명강변의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말할 수 있다.
오늘날의 고속도로에서 그러한 배경을 짐작하게 된다. 가는 길과 반대편에서 오는 길 사이에 넓게 분리시키는 공간이 있는 것처럼, 생명 강이 흐르고 강 양쪽으로 길이 있으며 길과 강 사이에 나무들이 있음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하늘나라에 생명강의 폭이나 수심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기에 에스겔은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하였다.
생명강의 근원은 주의 보좌에서; 요한은 물의 근원을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라 하였고, 에스겔은 “성소로 말미암는다”(겔47:12) 하였다. 하늘나라에서 모든 존재들이 영생을 얻게 되는 요소의 한 부분이 생명 강이다. 그 강물의 근원이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 곧 성소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지상에서 영혼을 살리는 메시지가 왜 성전의 강단에서 거짓 없이 맑게 선포되어야 하는지를 암시한다. 강단은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오는 영생의 말씀이 거짓 없이 전달될 때만이 영혼을 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구정부시대에는 통치자의 시녀(侍女)가 된 목사라는 사람들이 외치는 메시지는 통치자의 강령이므로 영혼을 살리는 맑은 물이 아니라 흙탕물이요 오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소 곧 강단에서 전파되는 메시지는 가감이 없을 맑은 메시지가 될 때 하늘에서의 영적 물을 공급받게 된다.
나무 잎사귀들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2b)
잎사귀들; 요한은 생명강변에 있는 나무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그 나무는 매달 열두 가지 실과를 맺는다 하였다. 그리고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시키기 위하여 있더라 한다. 에스겔은 강 좌우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하였다. 그리고 흐르는 물은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는다 하였고, 그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산다 하였다. 그리고 끝으로 에스겔은 각종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요한과 에스겔의 공통점 중에서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시킨다는데 중점을 두었다.
오늘은 만국을 소성시키는 나무 잎사귀에 대하여 상고하려고 한다. 요한은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2) 하였고, 에스겔은 “잎사귀들은 약재료가 되리라”(겔47:12) 하였으므로 소성(θεραπείαν)과 약 재료(א??)라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 소성을 헬라어 에서 데라페이안(θεραπείαν)이라 하였고, 히브리어 라파(א??)는 치유, 신유를 말한다. 영어에서 Therapy(물리치료)가 헬라어 데라페이아(θεραπεία)이다. 그러므로 생명강변에 있는 나무 잎사귀들은 약(ה?וּר?-테루파하) 재료라는 말이다. 약재료에 대해서는 14절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게 된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이마에 있으리라.”(3-4)
다시 저주가 없다; 저주는 앞에서 설명된 두 번째 사망이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그 어린양이 저들에게는 성전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의 성전을 중심으로 영생한다는 뜻이다.
그의 종들이 섬기고;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긴다(λατρεύσουσιν-라트르소우신)하였는데 ‘그’에 대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7:15)라고 하늘의 장로가 알리셨다. 그리고 밧모섬에서 요한은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1:6) 하셨으므로 섬김을 받는 대상은 하나님과 어린양이 되신다. 섬기는 신분은 3층천 하늘나라에 들어간 자들에게만 해당됨을 밝혀둔다. 섬기는 종들에 대하여 여러 이견을 보이는 기존의 해석들은,
ⓐ. 어떤 이는 ‘새 예루살렘의 중심에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고 구원받은 백성들이 영광스럽게 그를 섬기되 소속을 분명히 하여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그의 얼굴을 보며 섬긴다.’ 하였고,
ⓑ. 다른 이는 ‘구원받은 전체 백성들이 ‘종’이란 범주로 취급된다.’고 해석하였다.
섬김을 받을 대상은 이견이 있을 수 없으나, 섬기는 종이라는 범주를 구원받은 전체 백성이라는 논리에는 천사의 설명으로 기록된 성경은 그러한 사설(邪說)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면 종들의 신분은 누구일까? 다음에서 설명되어진다. 대부분의 견해는 섬김(λατρεύσουσιν-라트르소우신)에 대한 단어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요한은 하나님과 어린양을 경배하는 종들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았나부터 설명한다. 그들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하신 말씀에 비춰볼 때, 아무리 예수를 믿었어도 마음이 청결하지 못했다면 하나님과 어린양을 섬기지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12:14) 하였으므로 구원받은 신자들의 전체가 아니다.
그의 이름도 이마에; 요한은 하나님과 어린양을 섬기는 신분에 대한 두 번째 조건을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이마](μετώπωον-메토포온)에 기록하리라”(3:12) “어린양이 시온에 섰고 그와 함께 144,000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14:1) 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못했으면 아무리 구원(원죄사함)을 받았을지라도 섬기는 자가 될 수 없다.
①. 하나님과 어린양을 섬기려면 자신의 이마에 아버지와 어린양의 이름이 쓰인 자라야 된다.
②. 이름이 쓰이려면 3층천 하늘나라에 들어가 시온과 새 예루살렘 도성에서 살게 될 자라야 된다.
③. 하늘나라에서 왕의 칭호를 받고 영원히 그 권세를 행사할 수 있는 자라야 된다.
④. 결론은 구원은 받았을지라도 1.2.층 하늘나라에 거하는 자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만 있고 어린양의 이름은 없다.
⑤. 1,2,층 하늘나라에 거하는 자들은 시온이나 예루살렘 도성에서 살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⑥. 구원받고 1.2.층 하늘나라에 거하는 자들은 왕의 칭호를 얻지 못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전체 백성이라는 해석은 잘못이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5)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20장 6절과 21장 23절에서 상고했던 내용이다. 그들에는 왕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호칭되는 왕과 같은 권세가 주어진다. 그리고 그들은 새 예루살렘에 거할 자들이며 하늘나라 1,2,3층 하늘나라에서 다스릴 자를 왕과 같은 권세를 가진 자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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