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제21장 24절 / 성안에 들어갈 두 부류

하나님아들 2014. 4. 18. 17:18

제21장 24절 / 성안에 들어갈 두 부류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24)


요한은 성안에 들어갈 신분에 대하여 왕들(βασιλεs-바실에이스)과 사람(ἀνθρώποs-안드로포스)이라 하였는데, 헬라어 원전에는 ‘사람’이라는 단어는 없고, 대신에 ‘이런 부류(οἴσουσιν-호이소우신)’라고 표기되었다.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받아들이기에 자족(αὐτήν-아우텐)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들어올 신분들에게 공통점은 ‘만국’에서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올 것이라고 하였다. 24절에서 연구하고 공부할 단어는 ‘만국’은 무엇을 말하며, ‘땅의 왕들’을 누구를 일컫는 말이며, 왕들이 가지고 들어오는 그들의 ‘영광’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여기에 대한 기존의 설은,


ⓐ. 어떤 이는 ‘그곳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이가 없이 모든 백성들이 다 들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 가운데로 다닌다.’하였고,



ⓑ. 다른 이는 ‘왕들에 대하여는 땅에서의 왕들이었지만 그곳에서는 지배권만 없는 문자적인 왕들이다’는 해석들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모두가 차별이 없다는 견해와 지상의 왕들이라는 해석은 많이 잘못된 해석이다. 이유는 모든 인류가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이라는 조건을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라는 사상은 수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만국이란 뜻; 만국으로 표기된 ‘에드네(ἔθνη)’는 ‘군중, 나라, 민족, 백성 이방인’ 등으로 설 명된다. 이러한 단어에서 ‘이방’이라는 단어에 주안점을 둔 사람들이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차별이 없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본문이 주는 의미는 그보다 더 깊은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에드네(ἔθνη)’는 지구촌 곳곳에 흩어져 있는 ‘나라’인 군중에 더 강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따라서 만국은 모든 나라가 된다.


땅에서 들어오는 왕들; 여기서 땅의 왕들(βασιλεί?-바실에이스)은 문자적인 지상에서의 왕들이 아니다. 이 뜻은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을 향한 선한 삶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3층천 하늘나라에서 왕의 칭호가 주어지는 왕과 같은 권세를 받은 하 나님의 아들들이란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의 견해는 지상의 왕들이라 하는데, 지상의 왕들은 1층천 하늘나라에도 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살 때 하나님을 위한 선행으로 하늘나라에서 왕과 같은 권세가 부여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영광으로 새 예루살렘에 들어온다.’는 뜻이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의도다.


자기 영광을 가지고; 우리 성경은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온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자기’는 헬라어 원전에는 ‘행한 일(αὐτών εἰ? αὐτήν)’로 되어있다. 따라서 자기 영광을 가지고는 ‘스스로 행한 일을 가지고(φέρουσιν-펄로으신)’가 된다. 그리고 ‘일’이 곧 영광이 되므로 왕과 같은 권세를 받을 일을 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정리하면 ‘사람들이 땅에서 자기가 행한 일로 인하여 하늘나라에 들어올 때 왕과 같은 칭호를 받게 될 것’이라고 미래 완료형으로 표기되었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문자적인 왕들에게 주어졌던 위엄이나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행위가 ‘영광’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땅에서 자기가 한 선행으로 인하여 하늘나라에서 왕과 같은 칭호을 얻고 그리로 들어온다.’는 뜻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께 속하였던 자들이며, 하늘나라에서의 왕과 같은 권세이지 지상에서의 왕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해하면 안 된다.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나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25-26)


만국에서 오는 사람들; 새 예루살렘 도성에 들어갈 두 번째 부류에 해당되는 무리들이다. 이들도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올 것이라 하였다. 영광(δοξα-독샤)은 한일에 대한 결 과로 나타나다, 위엄, 영광, 명성, 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존귀(τιμὴν-티멘)는 값, 명예, 보상, 존경이라는 뜻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대로 우리말 성경이나 영어성경에는 ‘사람들’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원문에는 사람(ἀνθρώποs안드로포스 )이라 하지 아니하고, ‘이런 부류(οἴσουσιν-호이소우신)도 자족(αὐτήν-아우텐)하다’로 되어있다.


이 뜻에 대하여 마태는 “4거리 길로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너라.”(마22:9)하였고, 누가는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들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리니”(눅14:21)에서 이해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를 원문대로 해석하면 가난 한 자들, 병신들, 소경들, 저는 자등, 이런부류(οἴσουσιν)일지라도 그들이 행한 일은 가치가 있으므로 존귀(τιμὴν)를 받을만한 무리라는 말이다.


다니고; 이 단어는 미래(ήσω)이며, περί+πατἑω 인데, 이 뜻은 ‘돌아 다닌다, 다닌다, 거한다, 교제하다, 머물다’라는 뜻이다. 이 말이 영어로 교제하다(Fellowship)이다. 그러므로 ‘다니고(περιπαήσουσιν-펄리페소우신)’ 보다는 ‘거한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그렇게 해석되는 것은 그곳에서 영원토록 살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8)는 신념으로 살았던 사람들에 주어지는 보상이다. 바울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5)는 말씀대로 살았던 사람들이다.


밤과 낮이 없는 새 예루살렘; 밤과 낮이 없음은 앞에서 설명되었다. 밤낮은 계절과 시간이 있음을 말한다. 시간이 있음은 수명에 한계가 있게 된다. 그 한계는 죽음이라는 생을 말한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죽음은 없고 영원히 존재하므로 밤낮이 없다는 뜻은 죽음이 없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성안에 못 들어갈 자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27)


무엇이든지 속된 것; 세속적이라는 말이다. ‘무엇이든지’라 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금령은 속된 것(κοινὸν-코이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행위는 곧 속된 것이다. 불신자들이나 이방종교인들처럼, 시대적인 환경에 따르는 행위가 세속이다. 그러므로 앞에서 공부한대로 ‘스스로 행한 일로 얻어지는 가치로 인정받아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부류는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가증한 것; 더러운 우상, 밉살스럽고, 얄미운 행위를 말한다. 우상숭배자는 물론이요, 믿는다고 말하면서 우상을 겸하는 경우는 하나님 입장에서는 밉살스럽고 얄미운 행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은 우리들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곧 제사문화, 점치는 일, 도박하는 일은 속이는 거짓에 포함되므로 가증한 행위(βδέλυϒμα-브더루그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그렇게 한다면 ‘스스로 행한 일이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렸기 때문에 새 예루살렘에 들어올 가치가 없기 때문이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거짓말 하는 자; 거짓말 하는 자(ψεύδοs-프스도스)는 성경을 사실과 다르게 꾸며서 비 진리로 말하는 사람을 말한다. 거짓말을 하는 원인은 탐욕과 자만에서 시작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거짓말하는 자는 22장 15절에서 말하는 개(犬)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개가 무엇이냐는 이사야는 “그 파수꾼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사56:10-11)고 설명함으로 이런 자들은 자기 스스로 행한 거짓됨으로 인하여 새 예루살렘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였다.


결코 못 들어온다; 요한은 이런 자들은 새 예루살렘에 들어오지 못한다 할 때, 결코(μὴ εἰσέλθῃ-메에이셀데)라고 강조하였다. εἰσἑρχομαι는 미래 부정이므로 그리로 들어오지 못한다 하였는데,


ⓐ. 어떤 이는 모든 유대인과 모든 이방인들도 들어간다고 ‘모든’이라 하였다. ‘모든’이라는 단어를 붙이게 되면 이방인들 모두가 되기 때문에 타종교와 불신자들 까지 포함시키게 됨으로 그러한 해석은 아주 위험하다. 그리고 왕들에 대하여서도,


   ⓑ. 세상의 ‘모든’ 왕들이 들어간다고 ‘모든’이란 단어를 붙였다.


그렇다면 구약에서 설명되는 왕들과 어린 예수를 죽이려던 헤롯도 새 예루살렘에 왕으로서의 들어간다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지구정부를 만들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리스도의 교회와 성도들을 죽이게 될 왕들도 그들의 위엄을 가지고 새 예루살렘 들어가야 된다는 논리가 성립되므로 그러한 해석은 참으로 위험한 해석이다. 왜 그러한 해석을 했을까? 행위를 생각지 아니하고 말로만 믿기만 하면 된다는 사상 때문이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생명(ζοή-죠헤)과 책(βιβλοs-비브로스)으로 표기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쓰인 자라는 뜻은 이러하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무리들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영생의 권세를 위임하셨기 때문에 어린양이 당신의 소유로 삼는 자들에게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불러질 이름을 주시며, 구속받을 자들의 이름을 기록하심을 말한다. 그러므로 모든 유대인과 모든 이방과, 모든 왕들이 새 예루살렘 도성에 들어간다는 해석은 옳지 않다.


특별히 새 예루살렘 도성에 들어갈 아들들은 “하나님의 이름과, 하늘에서 하나님께로 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어린양)의 새 이름”(3:12)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이름은 거듭난 자로서 하늘나라 백성으로서의 하나님의 소유로 인 치심을 받고(엡4:30), 새 예루살렘의 이름은 그들이 들어갈 자들에게만 주어지고(3:12), 어린양의 이름은 신부로서의 영원히 불러질 이름이 쓰임을 말한다.(14:1,22:4)


출처 : churchofpraise
글쓴이 : 장죠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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