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제12장 6 / 그리스도의 피신과 교회의 피신처

하나님아들 2014. 4. 18. 16:55

그리스도의 피신과 교회의 피신처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12:6)


요한계시록 자체가 종말에 관한 메시지이기에 종말관에서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6절의 126일 동안 피신은 그리스도께서 애굽으로 피신하신 기간과, 환난에 남겨진 거짓교회 둘로 설명되어야 한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피신 문제만 다루고 교회의 피신은 다음에 다루기로 하겠다. 여자는 유대교회이며 그가 낳은 그리스도가 승천한 후에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광야와 같은 사단의 박해를 받았었다. 그것이 초대교회가 흩어져서 시리아 안디옥 등 여러 곳을 피신했던 것을 사도행전 8~9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 구절에서 여러 이견을 보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여자를 법왕의 핍박아래 놓여있는 교회’로 해석하면서 광야는 ‘보헤미야 지방의 유럽’

 으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1,260일은 종교개혁이 완성될 때까지’라고 해석하였다.


②어떤 사람들은 ‘여자는 유대교회며, 그가 낳은 그리스도인들이 승천한 후에 광야와 같은 사단이 있는

  세상에서 3년 반이란 기간 동안에 환난을 통과하면서 보호하심을 받는다.’라고 통과설(通過說)을 주

 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말로는 아니라 하겠지만 그들의 해석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문에는 여자가 낳은 아이는 복수가 아니라 단수인 그리스도이고, 여자는 교회로 보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남자 아이를 성도들로 해석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무리들이 많다.


2장 26절에서 성도들에게도 만국을 다스리는 철장권세를 준다고 하였다. 그 권세는 자의적인 권세가 아니라 주권자로부터 위임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여자가 낳은 아이는 성도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그렇지 않고 성도들로 본다면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자’는 그 주권자 이외에도 자의적인 권세가 없는 성도들이 백보좌심판 때 배심원이 아니라 심판주가 된다는 모순이 생기게 된다. 왜 이런 잘못된 해석들이 나오는가? 교의(Doctrine)로 일관하는 잘못된 사상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된 본질은 그대로 두고서 지엽적인 것으로만 포장하려하기 때문에 엉뚱한 해석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으로 피신하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승천과정이 먼저 언급 되였는데 실제로 일어난 사건과는 순서가 바꾸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인류를 구원시키려고 스스로 계시었던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세상에 오셨다. 그런데 헤롯이란 한 인간을 통하여 애굽으로 피신해야 될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한다.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마2:13)


요한복음을 읽으면 “그[예수]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4-5) 라고 하였다. 왜 그런가? 요한은 계속해서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더라.”(요1:10-11했다). 헤롯이 예수가 누구인지 알았다면 죽이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죄 없는 200여명의 아이들도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가 누구신지 알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겠기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는다.”(요1:12-13)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헤롯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그리스도가 태어나서 할례를 받았고(눅2:21) 헤롯이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라”(마2:16)고 하였다. 그리스도가 출생하면서 곧바로 애굽으로 피신한 것이 아니라는 근거로 볼 때, 목수의 기술을 가진 요셉은 애굽으로 피신할 때까지 베들레헴에서 2년은 더 살았을 것이다. 그러면 이 기간에는 사단은 가만히 있었는가?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그의 사자들과 싸우기 때문에 자기들의 있을 곳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예수에게까지는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기간이 2년이란 세월이 지난 것이다. 그리스도는 한 살 되던 해에 애굽으로 피신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애굽으로 안전하게 피할 수 있었던 결과는 하늘에서 용과 미가엘의 싸움에서 용이 이기지 못했다는 증거다. 애굽으로 피신한 그리스도에게는 어째서 3년 반 곧 1,260일 동안에 공격할 수 없었던 이유를 요한은 이렇게 증거 하였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

라.”(12:6)


아무리 사악한 사탄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란 곧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침범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보호하는 천사들만의 영역에서 그리스도는 1,260일 동안 애굽에서 보호받으며 피신할 수 있었다는 말씀이다.


일찍이 사탄이 야곱의 아들들을 이용하여 요셉을 죽이려했을 때에도, 요셉은 하늘의 도움으로 애굽으로 끌려갔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애굽으로 피신하는 경로가 닮은 꼴이 됐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1,260일이 지난 어느날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마2:20) 이것으로 피신생활은 끝났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던 사탄은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고 40주야로 금식기도 할 때 다시 공격하였는데, 그리스도께서 “사단아 물러가라” 하신 명령으로 미가엘로 승리하게 했다. 미가엘의 승리는 사단이 그리스도를 미혹하다가 떠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하늘에서 영적존재들의 싸움의 결과였다.


이때부터 사단은 얼마나 많은 공격을 했는가? 그럴 때 마다 미가엘은 붉은 용과 싸왔다. 항상 사탄이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하여 사람을 사용할 때, 높은 자리를 탐하는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버린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의지를 하나님을 향하여 선한 일을 버리고 사단을 향하여 악한 일을 도모하기 때문에 어두움의 도구 노릇하는 것이다.


하늘로 올라간 아이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12:5b)


철장권세를 잡고 장차 만국을 다스릴 아이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데려갔다. 이 해석을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보느냐? 아니면 후일에, 성도들이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으로 보느냐는 해석이다. 대표적인 해석들 중에서,


ⓐ어떤 이는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 아이를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본다고 하면서도 그리스도께서 십자

  가의 죽으심과 장사지낸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으니 그리스도의 승천은 아니라’고 하였다.


ⓑ다른 이는 ‘이스라엘의 회개로 볼 때 그것은 회개이지 “낳음”이 아니기에 문제가 있다’고 핵심을 피

  하였다.


ⓒ또 다른 이는 ‘그리스도의 승천하는 모습이 보이기는 하지만 장차 교회가 들림 받는 것이라’고 해석

  했다.(살전4:17)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장사지낸 언급이 없다면서 그리스도가 아니라하지만 요한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자’라 하였으므로 그리스도가 분명하다. 또 어떤 사람은 후일에 성도들이 하늘나라로 올라간다고 해석하는데 이러한 해석은 보통 잘못이 아니다. 요한은 아이가 올라간 곳은 “하나님 앞과 보좌 앞으로” 올라갔음을 말한다. 그 보좌는 누구의 보좌인가?


성도들에게는 그러한 보좌가 없으므로 ‘그’ 보좌는 ‘그리스도의 보좌’다. 그 보좌는 어린양이 만국을 통치할 보좌이므로 그리스도의 승천이 분명하다. 그러면 어째서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을 설명하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전능자에게는 죽음이란 없다. 따라서 예수께서 내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1:4) 하시면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1:8)라 하셨다.


그러므로 요한으로서는 죽임이나 장례문제는 취급할 필요가 없다. “곧 산자라. 내가 전에는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1:18). 이처럼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하여 언급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탄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죽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죽지 아니하고 지금도 이렇게 살아있다.’ 하셨으니 하늘로 올려간 남자 아이는 그리스도가 분명하다.


붉은 용과 미가엘의 싸움은 이때에는 없었는가? 이때에도 있었다. 예루살렘 입성 때의 광경은 어두움의 세력들이 꼼짝도 못하게 했던 사건이다. 일찍이 모세가 죽었을 때에 사탄과 미가엘의 싸움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리스도의 시체를 놓고 영적존재들의 싸움이 있었다.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에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하나이다”(마27:64). 라고 하늘에서 미가엘과 용의 전쟁이 있었음 암시한다.


모세의 시체 때도 그랬듯이 도적질은 사탄이 바라는 것이다. 거짓말로 속이고 사탄의 음모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탄은 서기관들의 마음에 거짓을 넣어주었고,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갔다 하라”(마28:13).고 거짓말을 사주하였다. 그런데 부활날 아침에 지진이 일어나며 병사들은 쓰러지고 그리스도의 무덤이 열린 것은 하늘의 전쟁에서 용이 미가엘에게 이기지 못하고 패한 전쟁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런데 용이 땅으로 쫓겨났고 더 이상 하늘에서 거처를 잃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 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12:12)


붉은 용이 하늘에서 미가엘에게 패하고 땅으로 쫓기어 내려오는 때는 적그리스도 정부가 시작되는 때이다. 그러므로 9장에서 연기 같은 연기가 땅위에 올라오매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온 지면을 덮게 된다. 따라서 땅이라고 하는 시대(Time)는 지구정부 통치라는 폭정(Tyranny)이 있으므로 바다라는 세대(Generation)에게는 화가 있다고 경고했다.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쫒긴 용이 분을 삭이지 못하고 지구정부의 폭정으로 발전시킨다. 이것이 42달 동안 성전 바깥마당을 이방인들이 짓밟게 하였기 때문(계11:2)이다. 이때 사단의 박해로 성도들이 죽임을 당할 때 사역자들도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 기간이 1,260일은 42달인데,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복음)를 마치고 죽을 때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하였으므로 얼마나 폭정이 되겠는가? 그래서 ‘땅과 바다는 화 있다’하신 것이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12:11)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기까지에 일어났던 사건, 곧 십자가 사건과 장사지내는 언급이 없다고 예수가 아니라는 해석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 그러한 견해는 인류를 구원시키시려는 그리스도의 전능하심과 권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발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빼앗으려던 어두움의 사상이 그 마음에 자리 잡고서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남자 아이’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사상이 저들 마음에 사로잡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로 인하여 신자들의 영혼이 타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을 조심하지 않으면 자신도 어두운 세력에 사로잡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단원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남자 아이’에 관한 해석이다. 사람들은 이 아이를 그리스도로 보지아니하고 세계적인 교회, 곧 성도들이라고 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사상은 사단으로부터 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유는 앞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하늘로 올라가고 유대인들만이 당하는 대환난으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아이를 그리스도의 교회로 본다면 앞에서의 설명과 뒤가 일치되지 않은 논리로서 성도들의 믿음을 미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러한 가르침이나 사상을 따르게 해서 대환난에 남겨놓으려는 것이 사탄이요 음모라는 이유에서 적그리스도의 사상이라는 교훈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무리들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성도들의 믿음을 타락시키는 위험이 따른다는 교훈이다.


따라서 믿기만 하면 다 들림 받고 대환난에 남지 않는다는 비진리를 정당화 시키려하다가 자신마저 어두움에 사로잡힌다는 교훈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사탄이 가장 깊이 침투되어 있는 곳이 신학교와 교단에 치우치는 지도자들이다’라고 하시면서 ‘말세에 천국과 지옥과, 재림설교를 하지 않는 교회는 벌써 어두움에 사로잡혀 있다’ 하시면서 ‘너희는 항상 주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분부하셨다. 이것이 진리요 성경의 가르침이다.


출처 : churchofpraise
글쓴이 : 장죠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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