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브라데와 네 천사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9:12~22)
지나간 첫 번째 화는 지구정부과도기에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앞으로도 두 가지 화가 남아있다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그 두 가지 화는 무엇인가? 앞으로 있을 두 번째 화는 하나님이 정하신 년,월,일,시에 유브라데의 천사가 놓여나면서 사람 ⅓이 죽는 재앙이다. 그리고 세 번째 화는 교회에 박해가 시작된다.
오늘은 9장 12절에서부터 종말적인 전쟁으로 알려진 아마겟돈에 관한 내용이 된다. 7절에서 ‘전쟁을 위하여 예비했다’고 하였다. 이 전쟁은 어두움의 세력이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을 활용하여서 하나님을 이겨보려는 전쟁이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인간을 어두움의 권세가 그의 경배를 빼앗을 때, 하나님을 이길 것이라고 착각하는 내용을 시편기자가 일렀으되,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행4:25~26)
이 말씀에서 “여호와 기름 받은 자에 대적”은 그리스도를 대적한다는 내용에는 이견이 없다. 그리고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는 것도 하나님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것도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매인 것을 끊으려는 결박은 어떤 의미를 말하는가? 하나님께서 일찍이 어두움의 권세를 음부에 가두어 놓으셨는데(사14:12~17) 그것을 벗어나려는 행위를 말한다(계9:1). 이것이 ‘새시대질서(New world order)’ 법이라는 것이다. 영어 New world order는 라틴어 Novus ordo seclorum에서 온 말이다.
영어만 놓고 우리말로 직역하면 ‘새세계질서’라는 의미이다. 이것만으로는 매인 것을 끊거나, 그리스도를 대적한다는 설명은 약하다. 그러므로 라틴에서 답을 찾아야 확실하게 이해가 된다. 라틴어 Novus ordo seclorum은 ‘하나님이 통치를 받지 아니하는 질서’라는 의미다. 이것을 영어로 변역된 말이 ‘New world order’이다.
인간들이 새세계질서(New world order)를 추진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십자가의 은혜를 거부하는 행위다. 이 거부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속에서 떠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섬기려고 하나님을 떠나려 하는가? 사탄이다.
사탄은 사람들로 하여금 조물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고, 대신 피조물인 사탄이 그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단일정부 곧 지구정부를 향하여 새시대질서(New world order)를 진행시키고 있다.
1. 여섯째 나팔재앙
“여섯째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주라 하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⅓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9:13-15)
이제 두 번째 화에 관해서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다. 이때 요한에게 들리는 음성이 있었는데 그 음성은 하나님 앞에 금으로 만들어진 단의 네 뿔에서 났다. 그렇지만 한 소리였으며 조금 전에 나팔을 불었던 여섯째 천사에게 지시하는 음성이라 한다. 지시의 내용은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되어 있는 네 천사를 놓아주라”는 지시었다. 금단 네 뿔에서 나온 음성은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에서 내리시는 명령이다. 여섯째 나팔재앙은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에 유브라데에서 사람의 ⅓이 죽이게 되는 전쟁준비가 되고 있음을 말한다.
여기에 대한 기존의 해석들은 대부분이 ‘하나님 앞에 있는 금단이나 네 뿔이나 한 음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얼버무렸다. 그러나 문제는 유브라데 강과 네 천사에 관한 기존의 해석들은, ⓐ.어떤 이는 ‘유브라데 강의 위치에 대하여 상징’으로 해석하였고, ⓑ.다른 이들은 ‘동방(2억 중국군대라 했음)에서 유브라 강을 건너갈 현재의 유브라데 강’ 그대로 해석도 있다.
상징으로 해석한 것이나, 얼버무린 것이나, 문자적인 해석은 설득을 얻지 못한다. 네 천사를 사람 ⅓을 죽이는 천사는 아니다. 악한 천사라 하지만 둘 다 문자적인 해석이다. 년,월,일,시 문제는 숫자가 표기되지 않았으므로 누구도 말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16장에서 동일한 ‘유브라데 강’이 명시돼 있고, 전쟁을 위해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다’는 내용과 “아마겟돈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고 돼있다(계16:16). 그리고 “2만만의 마병”의 숫자가 명시돼 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서 동방에서는 중국외에는 그런 숫자의 군대가 없다면서, 2억의 중국군대가 이스라엘의 므깃도(아마겟돈은 므깃도산의 별명이다) 에서의 전쟁을 위해 유브라데 강을 건너간다고 해석하여 왔었다. 이러한 해석의 잘못은 정론(定論)인데도 불구하고 정통론(正統論)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정설(正說-Right theory)은 정설(定說-Establied theory)이 아니라 정통론(正統論)이어야 된다. 옳지 않은 것은 수용하지 말고 옳은 내용만 확정시케야 정설(正說)이다. 그런데 우리 교계가 옳지 않은 내용이나 잘못된 내용일지라도 이미 정해진 설(定說)을 정설(正說)이라고 고집한다. 그런 것은 유전(遺傳)일뿐이지 정설(正說)은 결코 아니다. 정통론(正統論)은 올바르게 계승되는 이론이라야 된다.
이러한 오류로 인하여 기독교의 신앙에 문제점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단마다 자신들이 지향하는 사상을 정해놓고서 그것을 정통이라고 주장하여 왔었다. 이런 것으로 인하여 교단이 갈라지고, 같은 명칭의 교단이 수도 없이 많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를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자신들만 옳다고 주장해 왔었다. 그러한 이유는 자신들이 정해놓은 사상과 부합되지 않으면 정통이 아니라고 규정짓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유브라데’에 관하여 바른 해석을 내어놓을지라도 이미 정해놓은 설이 아니므로 신학적인 논리와 거리가 멀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롭게 거론되는 내용이 2-3백 년 전에 세상에 알려졌다면, 그것은 정통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반대로 지금 주장하는 정통설은 문제의 요소가 있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잘못된 해석을 정설도 아니면서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큰 교회 목사님의 해석이 절대적이라고 말하면서 그분의 해석 외에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분의 책을 읽으면서 어째서 이토록 잘못해석 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지금도 그 의문이 떠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게 훌륭하다는 분이기에 더욱 아쉬움이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명령을 받은 천사는 하늘에서 대환난을 위하여 나팔을 불게 된 임무를 수행하는 천사였다. 그러면 유브라데에 묶여 있었던 천사는 어떤 존재며, 무엇 때문에 묶여있어야 했는가?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천사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리고 각기 쓰임 받는 임무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따라서 유브라데에 묶여있었다는 뜻은 이러하다.
네 천사들은 사람 ⅓을 죽이려고 일어나는 전쟁을 막고 있었던 천사들이다. 하나님이 명령을 내리시는 년,월,일,시, 까지는 어떤 경우에도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묶어둠을 “결박했다”고 한다. 모든 피조가 그렇듯이 특별히 천사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 외에는 결코 움직이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놓아주라’는 뜻은 어두움의 세력이 사람 ⅓을 죽이는 전쟁을 막지 말라는 명령이다.
이해를 돕는다면, 물을 막고 있던 땜의 수문을 완전히 열어놓으라는 뜻과 같이, 수문이 열려지면 급류는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완전히 휩쓸어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천사들을 놓아주라는 부문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하였다.(살후2:7)
그러므로 유브라데를 막고 있었던 천사들이 사람 ⅓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황충이라는 악한의 존재들이 지구주의 찬성론자들에게 들어가면, 그들은 연기라는 어두움의 힘에 이용해서 사람들의 ⅓을 죽이게 되는 아마겟돈전쟁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유브라데에 묶여 있었던 네 천사에 관해서는 스가랴서 말씀을 보면, “화석류 나무사이에 선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슥1:10) 그리고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슥6:7)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유브라데에서 마지막 전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천사들에게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끝났으므로 원대복귀하라’는 뜻이 “놓아주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네 천사들이 사람 ⅓을 죽이는 천사는 아니다. 하나님의 자비(Mercy)라는 성질로 볼 때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죽이라고 하셨는가? 인간들이 생각하는 세상적인 판단은 이러한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먼저 알 것은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의로우신 분이시다. 그분의 거룩하신 성질은 죄와 악과는 함께 할 수 없으시다. 죄와 악을 깨끗하게 회개시켜서 받아들이든가 불살라 버리든가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신다. 이럴 때 기회를 주지않고 죽이시면 하나님의 공의라는 성질에 문제가 된다. 각인에게 의지를 주셨고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참으심을 무시하고 예수를 믿지 않았으므로 회개할 기회를 저버린 것이다. 이러한 잘못은 하나님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편에서 스스로 구원을 버린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Justice)라는 성질은 이러한 인간은 버려야 되겠기에 죽이라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유브라데에 모이는 사람들은 그 년,월,일,시까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무리들이기에 죽기로 된 운명이다.
2. 유브라데는 어디인가?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주라 하매,”(9:14)
문자적인 유브라데(Euphrates) 강은 터키(Turkey)의 동북부에 있는 Erzurum에서 시작하여 걸프만으로 흐르는 강이다. 이 강은 키반(Keban) 땜에서부터 남쪽으로 흘려서 시리아를 지나게 된다. 이락 서북부를 벗어난 강줄기는 바그다트 서남쪽을 지나서 디그리스 강과 합류하여 걸프만까지 흐르는 강이 유브라데(Euphrates) 강이다.
지금의 이락 수도 바그다트는 옛날의 바벨론이다. 바벨론은 성서적으로 교만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영벌을 받아야 될 곳으로 알려져 왔었다. 그러므로 창세기에서의 바벨탑을 쌓았던 곳이 오늘날의 바그다트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동안 살았던 힛데겔(???)강 이 지금의 디그리스(Τίϒρηs) 강이다. 이런 곳에 건설된 도시가 교만의 바벨론이다.
유브라데 강에 관한 내용은 “여섯째가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하였고(16:12), 그리고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Αρμαϒεδᾠν)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16:16)고 기록된 말씀을 오해하고 동방의 왕들이 길이 열려진 것은 유브라데 강물이 마르고, 따라서 2억의 중국군대가 이스라엘로 진군한다고 잘못 해석했다. 또 성경에도 헬라 음으로 아마겟돈(Αρμαϒεδᾠν)을 히브리 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전쟁은 므깃도(וֹדּ??)라는 아마겟돈으로 해석해 왔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에 가면 실제로 아마겟돈이라는 지역과 지명은 없다. 다만 ‘아마겟돈’이라 부르는 것은 높지도 않은 작은 산 므깃도’의 별명이다. 18장에서는 바벨론은 한 시간에 망하게 되어있다. 그 바벨론은 유브라데와 디그리스(힛데겔)강 중간에 있다. 므깃도는 갈멜산에서 32km남동쪽 에스드론 들판에 있는 낮고 좁은 산이다. 산이라기보다는 높은 언덕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이러한 므깃도라는 산을 헬라발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아마겟돈은 문자적이 아니므로 이스라엘에 있는 므깃도(아마겟돈)에서의 전쟁설은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첫째는; 유브라데의 전쟁집결지가 문자적인 이스라엘의 므깃도라면 문자적인 바벨론의 멸망과 일치되지 않으므로 문자적인 아마겟돈은 아니다. 따라서 년,월,일,시,에 일어날 전쟁도 문자적인 이스라엘의 므깃도란 해석은 설득을 얻을 수 없다.
둘째는; 현지를 답사하면 므깃도라는 좁은 공간에는 2천명도 들어설 수 없는 낮고 좁은 산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변의 에스드론 들판이 있기는 하지만 그곳역시 2억의 병력을 수용할 만큼 넓은 지역은 못되기 때문에 아마겟돈을 이스라엘의 므깃도라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그렇다면 강물이 마르는 유브라데는 어디인가?
앞에서 설명했던 대로 유브라데 강물이 마른다는 뜻은 문자적인 유브라데가 아니라,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는 때가되면 영혼을 살리는 진리의 말씀을 완전히 마른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마겟돈 전쟁도 므깃도에서만의 전쟁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말한다. 이 전쟁을 ‘하다드 림몬의 애통’이라 한다.(슥12:11-12)
“그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 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EK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모든 남은 족속도 따로 하고 그 아내들도 따로 하리라.”(슥12:11-14)
아마겟돈 전쟁은 어느 한 지역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다. 세계 곳곳에서 모든 민족들이 애통하게 된다고 성경을 경고하였다. 그러므로 아마겟돈 전쟁을 이스라엘로 국한시키는 해석이나 설은 옳지않다. 그렇지 않고 문자적인 이스라엘에만 국한되는 전쟁이라면 이스라엘을 벗어난 다른 나라들에는 전쟁이 없고 안전하다는 결론이 됨으로 문자적인 아마겟돈 전쟁을 이스라엘로만 보는 해석은 진리를 비진리로 바꾸는 어두움의 속수임을 깨닫는 사람이 복되다.
3. 년.월.일.시.는 언제인가?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월,일,시에 이르러 사람 ⅓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9:15)
먼저 사람 ⅓의 죽음에 관해서부터 상고해야 년,월,일,시, 관한 문제가 해결된다. 유브라데에서 놓여 진 천사들의 역할은 세상의 문화가 변하고 제도가 바꾸어졌어도 유브라데에서의 죽음을 막았던 임무였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임부가 끝났기 때문에 피 흘리는 죽음이 유브라데로 몰리게 된다. 마치 물을 막고 있던 땜이 터지는 것과 같은 원리로 보면 될 것이다.
“그날에 ‘므깃도(וֹדּ??)’ 골짜기 ‘하다드림몬(זוֹמּ?־ד??)’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슥12:11-12)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계18:10)
므깃도는 므낫세 지파에 배당된 영역이라고 기록됐다.(수17:11,대상7:29 ) 그럼에도 사사기 기자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므깃도를 점령하지 못하였다(삿1:27). 이유는 가나안 주민들은 철 병거(鐵兵車)와 같이 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수17:16)
이토록 견고한 므깃도는 B.C.609년경에 애굽의 ‘느고’와의 전투에서 패하고 유다왕 요시아는 전사되고 므깃도는 파괴됐다(왕하23:29-30.대하35:20-24). 그래서 스가랴는 예루살렘에서 애통이 므깃도 평원에서 애통과 같을 것이라고 기록했다. 그때는 특정지역으로 여로보암에 대한 애통이지만, 좀더 세계사적으로는 므깃도와 같은 멸망이 온 세상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때에 사람들이 애통하게 되는 것이 아마겟돈 전쟁이다.
그러므로 아마겟돈 전쟁은 어느 특정지역만을 말하지 않고 온 세계에서의 통곡이 있을 전쟁을 말한다. 그러므로 스가랴가 경고하는 내용은 온 땅의 각 족속들이 하다드 림몬 골짜기 므깃도에서 흘린 피처럼 세계적인 죽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수없이 많은 외적의 공격을 당했어도 철웅성과도 같은 므깃도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토록 철웅성과 같았던 므깃도가 애굽의 공격을 받았을 때, 하다드 림몬 골짜기에 피로 메웠다고 역사는 말한다.
스가랴는 하다드 림몬의 피 흘림에서 통곡하였던 것처럼, 먼 훗날에 온 세상에 그러한 죽임이 있게 됨으로 유브라데에서 사람⅓의 죽음은 문자적인 아마겟돈은 아니다. 그러므로 아마겟돈은 교만의 바벨론이며 이러한 곳은 세계전체에 깔려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정해놓은 그 년,월,일,시,에 어두움의 세력으로 인하여 사람 ⅓을 죽게 된다는 것이다.
“마병대가의 수는 2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9:16)
앞에서 2만만에 관해서는 다니엘서를 읽으면 하나님의 사자들의 수가 천천이요 만만이라 하였다(단7:10). 모세는 야곱의 12 아들들에게 축복할 때 에브라임은 만만이요 므낫세는 천천이라 했다(신33:17). 사도 요한은 어린양과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둘러 선 찬사들을 만만이요 천천이라 한다.(계5:11)
그 숫자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2만만도 인간의 능력으로는 셀 수 없으나 하나님만이 셀 수 있는 어두움의 세력을 말한다. 어두움의 세력으로 보아야 되는 이유는 세 재앙이 2만만의 입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와서 사람 ⅓이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만만의 마병대는 문자적인 말들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어두움의 영적존재들이다. 이러한 존재들은 세계 곳곳에서 그날을 준비하고 있다. 멀지않은 날 교만의 바벨론이 공격당하게 될 세력의 계획은 오래전부터 진행시키고 있다.
지금 세계를 보면 공평이 없고, 공의가 없으며, 거룩함이 없고, 다만 우상숭배와, 물질만능과, 술 취함과, 죄의 속박과, 죄 없는 피를 흘리는 살인과, 가정 파탄과, 생명을 죽이는 낙태와, 음란한 세대다. 거짓설교 자들, 거짓예언 자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자들, 형식적인 신앙생활과, 경건의 모양은 가졌으나 능력을 부인하는 목자들이 잘못 가르쳐서 소돔과 고모라로 만들어 가는 곳이 멸망을 받아야 될 아마겟돈이다.
이러한 죄악을 더 이상 묵과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께서 동서해안을 공격하기 위해 양 대양으로 통과하는 곳으로 모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겠는가? 나아가서 북극으로부터 NWT로 통과하도록 허락하시지 않으시겠는가?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면 핵미사일과 세균가스등의 사용을 위한 집결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유브라데에 집결은 전쟁을 위한 것이나 아직은 전쟁이 시작되지 않았다. 그 전쟁은 16장에서 취급된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전쟁을 위한 준비를 보여준다.
4. 세가지 재앙
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 빛과 유황빛 흉갑이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휴황이 나오더라. 이 세 재앙 곧 저희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⅓이 죽임을 당하니라.(9:17-18)
세 가지 재앙에 대하여 지금까지 전달되는 해석들은, ①어떤 이는 ‘군대에서 사용되는 탱크와 탱크에서 발사될 때 불과 연기와 화약내가 나온다.’고 하고, ②다른 이는 ‘하나님의 징계의 표징이 유황이므로 불과 연기와 유황은 하나님께서 내리는 심판’이라고 했다. ③또 다른 이는 ‘현대전에 쓰이는 장비들과 화력’이라 하는데, 이러한 해석은 지지를 받을만하고, 앞의 둘은 설득을 얻지 못할 해석이 된다. 그러므로 불과 연기와 유황에 대한 해석은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연기; 세균전(Chemical biological warfare-CBW)을 알리는 내용이다. 하나님이 정한 날에는 이러한 대량 살상무기로 죽은 시체처리훈련까지 끝낸 상태다. 요한은 이것을 연기로 보았을 것이다.
유황; 핵미사일 전(Nuclear missile warfare-NMW)을 경고하는 내용이다. 요한은 이것을 유황으로 보았을 것이다.
불; 불은 문자대로다. 핵무기 사용이나, 미사일등, 무기들이 사용될 때,불을 뿜겨 된다. 요한이 이러한 것을 불이 나오더라 하였다.
이러한 세 가지 재앙으로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로 볼 수 있다. 첫째 부류는, 주님의 공중강림 때에 휴거되지 못했던 그리스도인들이다. 두 번째 부류는 대격변전까지는 예수를 믿지 않았으나 사건 후에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저들은 두 번 다시 실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대환난을 통해서 회개하고 예수 이름을 부르면서 포화 속에서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구정부 요원에게 잡히기 전에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고 예수 이름을 부르다가 잡혀가서 666표를 받으라는 강요를 뿌리치고 받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오직 자신들의 영혼을 위해 갈보리에서 십자가로 죽어주신 예수 이름과 십자가를 붙들고 죽은 사람들이다. 저들은 교회를 출석했거나 출석하던 사람들이다.
예수 이름을 불렀던 사람이다. 나름대로 열심이었거나 게을렀던 간에 한때는 천국을 사모하며 십자가의 구원에 감사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한 저들이 언젠가부터 세상에 빠지면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행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휴거에서 탈락되고 대환난에 남겨진 사람들이다.
그러면 왜 대환난에 남겨졌는가? 먼저는 목사들이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다. 다음은 자신이 교회와 목사를 잘못 택한데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 쪽으로 향하지 않은데 있다. 여기에서 우리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마지막 때는 교회를 잘 만나고 목사를 잘 만나야 된다. 대환난에 남겨지지 않도록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심판과 대환난을 알지 못했거나 깨닫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 거짓 선생들이 많다고 한다. 삯꾼 선생들이 많다고 한다. 형식주의 선생들이 많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로부터 잘못가르침을 받았던 탓으로 대환난에 남겨진 사람들이다. 저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핵이나, 세균이나, 불속에서 죽는 순간까지 예수 이름을 부르면서 죽은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기에 7장에서 “아무도 능히 셀수 없는 큰 무리들”(계7:9)이 “대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7:14)는 숫자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부끄럽게라도 구원을 받았으므로 낙원에 있는 교육장에 가서 교정을 받고 낙원에서 영광을 누리게 되는 축복이라도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긍휼에 있을 뿐이다.
5.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려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 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계9:20~21)
이 재앙에서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러면 어떠한 심령이기에 회개하지 못하는가? 후반부에서 말하는 죽지 아니하고 남은 사람들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근본부터 심령이 다른 사람들이란 뜻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섯 달 동안이란 과도기에서 666표를 받았던 사람들이다.
이 무리들은 사람들을 체포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지구정부(Global government) 요원들도 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Mercy)하심을 받을 수 없었다. 이유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더 큰 고통의 재앙 을 통하여 회개할 기회를 한 번 더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죽는데서 제외된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회개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이 단원에서 우리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저들은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이러한 재앙을 내린 것을 깨닫지 못하고 목숨을 살리려고 우상을 찾아간다고 하였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만 했더라면 되는데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미 666표를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더 짓는 것이다. 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우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금, 은, 동, 나무, 돌로 만든 우상 앞에서 절하며 목숨을 살리겠다고 절하면서도 자신이 지은 죄를 누구에게 가서 회개해야 되는지를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다.
특별히 마지막 때가되면 네 가지 일들을 지적하는데 첫째는 살인사건이고 둘째는 마약문제이고 셋째는 음행이고 마지막이 도적질이라 하였다. 날이 갈수록 얼마나 많은 살인과 마귀와 음행으로 인하여 문제가 되는가? 또한 도적질은 좀도적이 아니라 국가 재산을 훔치고 회사재산을 빼돌려서 비자금이니 무어니 하면서 크고 작은 회사들이 파산되는 것이 도적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금까지 학설(Doctrine)들은 ‘복술은 사람을 속이는 요술이나 점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복술은 헬라어 성경에서 팔마케이아(φαρμακεία)인데 이는 영어가 약국(Pharmacy)이다. 그러므로 복술은 제약회에서 의약을 제조할 때와 약국에서 약을 제조할 때 마약이 취급된다는 뜻이고, 또한 사람들은 마약밀매 등을 다루는 내용이지 요술이나 점치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된다.
여기에서 요한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아니하고 우상에 절하더라 하였다. 왜 우상 문제를 거론하였을까? 하나님은 우상숭배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보다 더 징계하시고, 666표 받는 것과 같이 취급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학자들이나 목사들이 바른 해석을 하지 못함에 따르는 문제이다.
앞에서 지적했던 대로 유브라데를 세계적인 타락과 교만으로 보지 아니하고 문자적인 지역으로 국한시켰기 때문에 재난은 그 지역에서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상관이 없는 해석이 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잘못으로 인하여 해석하는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런 책을 읽게 되는 목사들이나 성도들까지 대환난에 관하여 경각심을 갖지 아니하도록 만들어 놓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 굳어지게 된 것이 사상(Ideology)인데, 이것이 곧 바다와 땅에서 나오는 짐승이란 말이다. 그래서 학계나 종교지도자층에 사탄의 사상이 가장 깊이 역사한다고 경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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