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서론
피 없이 - 히9:7,18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7절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8절
성경에는 여러 진리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주목을 요하는 근본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새로이 나올 때마다 언제나 두드러지게 서 있고,
하나님의 경륜이 바뀌어도 여전히 변치 않는 진리가 있는데 그것이 그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에서 '피'라는 말로 표현된 것보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상이 없습니다.
1. 피에 대한 구약의 가르침
아벨은 양의 첫 새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아벨이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이 후에 나타나는 계시에 비추어 볼 때,
아벨의 제사는
피가 없이는 하나님께 의로운 자로서 나아갈 수 없고, 우리의 제사와 삶이 열납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홍수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행한 최초의 사건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의 시점에서 피가 개입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는 실제로 이삭을 제물로 바침으로 피를 흘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대치할만한 제물을 결정적인 순간에 준비해두었습니다.
이삭 대신 피 흘리며 죽었지만 이삭이 죽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제사는 '난 하나님 앞에 죽은 자이다. 곧 하나님 앞에 드려진 제물이구나' 라는 마음을 이삭에게 주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피 흘림'은 곧 하나님 앞에 드려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출애굽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름으로써, 그리고 대대로 이것을 지키고 기념함으로써, 이스라엘 사람들의 구원과 해방은 대속물의 피 흘림으로 가능함을 몸소 체험해야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은혜도,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성취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시행하시는 일도 대속의 피가 없이는 안됨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심으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하나님의 거룩을 담고 있는 율법에 대한 숙지와 준수는 언약의 유효와 효력을 누리기 위해서는 필수입니다.
그런데 희생제물의 피가 먼저 언약의 당사자인 하나님을 대표하는 제단과 율법책에 뿌려져야 했고 그 다음 백성들에게 뿌려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백성사이에 세워진 언약은 '피로 세운 언약'이었던 것입니다.
성소를 지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 집의 구조와양식, 그리고 섬기는 예에 대해서 소상한 지침을 제공합니다.
성소(성전)로 들어가 나아가면 처음 눈에 띄는 것은 '번제단'입니다.
바로 거기서 피를 뿌리는 이리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이뤄집니다.
성소의 가장 깊은 곳 지성소에는 하나님께서 거하십니다.
여기에는 일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단,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절대 안됩니다
성전안에서의 피 흘림이 구약백성의 역사속에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 있어왔습니다.
2.주님께서 가르치신 교훈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가르켜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 다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6:53-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6:56-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26:28-
3. 사도들의 교훈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 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9:12-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깨끗하게.. 못하겠느뇨? -히9:14-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드러갈 담력을 얻었나니 -히10:19-
a{gion(39, 하기온) ; 성소, 지성소.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히12:24-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 -히13:20-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롬3:25-
우리가 그 피로 말미암아 의롭하심을 받았다 -롬5:9-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고전10:16-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며 -엡1:7-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 -벧전1:2-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 받았다. -벧전1:19-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요일1:7-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그리스도시라 –요일5:6-
4. 요한 계시록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의 피
일찍 죽임을 당하사 ..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셨도다. -계5:8-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하였느니라. -계7:14-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저를 이기었도다. -계12:11-
성경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에덴의 문이 닫히는 때로부터 하늘의시온의 문이 열리기까지,
성경전체를 하나의 황금 실이 관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피'입니다.
성경에서 피가 그렇게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은
1) 하나님께는 피를 통해서가 아니면 죄나 죄인을 다룰 길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2) 피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하나님과 동일한 위치를 점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3) 그 피의 충만한 축복과 능력을 배우기 힘쓰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4) 주 예수를 의지하면 그가 그의 피의 능력을 우리에게 드러낸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의 피는 가장 큰 영원한 신비요, 하나님의 지혜의 가장 깊은 신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피의 온전한 계시를 위해 4000년의 역사속에서 풀어내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로서도 그 피의 능력을 올바로 깨닫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다른 것을 희생시키는 명확한 사실없이 그저 시간을 보낸다고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주예수께서는 우리의 삶을 희생시키지 않아도 괜찮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드리시고 자기의 피를 흘리신 것이 아니랍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으로 하여금 희생 제물로 드리는 일이 가능하도록 하고
이런 일을 원하는 마음이 일어나도록 예수님께서는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속에 감추어진 가치는 바로 '자기 희생의 정신'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내 마음에 역사하면 내 마음 속에서 그와 유사한 자기 희생의 정신이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을 포기하기를 배웁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베풀어진 새로운 생명의 충만한 능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죄와 세상적인 사고방시과 나 자신의 의지에서 나 자신을 분리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이 방해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얻은 축복은 주님에 대한 신뢰로 말미아아 우리의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피와 그 피를 적용시키시는 주님을 분리해서는 안됩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 더 깊은 영적 통찰력을 주신다는 것을 신뢰합시다.
그 피에 대해서 하나님과 동일한 생각을 하도록 주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신다는 것을 신뢰합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도록 합시다.
주님께서 그의 피로 하여금 우리에게 영, 생명, 능력, 진리가 되게 하시도록 바랍시다.
보배로운 피의 충만하고도 강력한 하늘의 효과들을 받읍시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 안에서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2장 피로 말미암는 구속
너희가 알거니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18,19- lutrovw(3084, 뤼트로오) ; 몸 값을 치르고 되찾다 to ransom, 속량하다 redeem.
1. 피의 능력이 어디에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의 피에 그런 능력을 주는 것이 무엇인가?)
생명이 피에 있다.-레17:11-
예수의 생명이 예수의 피안에 거하고 있다. 피의 능력은 예수의 생명의 능력이다.
흘린 피는 죽음을 의미하고 죽음은 죄에 대한 형벌이다.
단 위에 '흘린 피'를 뿌리게 하였다. - 죄를 속하거나 가리기 위한 것이다. --
희생물의 죽음은 거기에 전가된 죄들의 죽음 또는 형벌로 간주된다. 이것이 구속이다.
예수의 죽음 혹은 피 흘림은 형벌을 지심이며, 율법을 만족시킴이다. 아버지를 영화롭게 함이다.
죄를 없애는 놀라운 능력 지니고 죄인을 위해 하늘을 여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예수의 피가 놀라운 것은 구속적 피 흘림이기 때문이다. 속죄의 피이다. 이 속죄의 피가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만족시킨다.
따라서 예수의 피에는 구속의 효능이 있다.
2.. 피의 능력이 무엇을 이루었는가?
1) 무덤을 열어놓는 능력 (어둠의 나라, 지옥에 대한 전능한 능력)
히13:20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
하나님은 영원한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주 예수를 죽음으로부터 이끌어내셨다. -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것이 바로 그 피의 덕택이라는 것이다.
그 피가 아니었다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도록 발휘되지를 않았다.
그리스도의 피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피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이 나타난다.
2) 하늘문을 여는 능력 (천국과 그 영광에 대한 전능한 능력)
히9:12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의가 지성소의 입구를 지키고 있어서 그 어떠한 육체라도 그에게 접근불가하였다.
그런데 예수의 피가 하늘을 열어 놓았다.
예수의 피가 끊임없이 말을 하기 때문에 하늘이 죄인들을 위하여 계속 열려있어서 이 땅에 축복을 내려보내는 것이다.
3) 인간안에서의 능력
벧전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한 것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것이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되었다.
- 죄의 빚을 갚았고 사탄과 저주와 죄의 권세를 무너뜨렸다고 선언하고 있다. 죄의 삶으로부터, 망령된 행실에서부터 구원이 시작된다.
예수의 피가 죄인의 마음 속에서도 전능한 능력을 발휘한다.
[구속] : 주인이 해방시키주든지 혹은 값을 주고 구매함으로써 노예의 상태에서 구원받는 것을 말한다.
죄 사함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죄인을 위해 행하시는 모든 것이 다 포함된다. 죄사함으로부터 시작해서 부활로 말미암아 완전한 몸의 구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거기에 다 포함 됨.
3. 이 능력이 어떻게 역사하는가?
1. 믿음을 통해서이다. 믿음은 지식에 의존한다.
그리스도의피가 성취할 수 있는 사실에 대한 지식이 불완전하면 믿음도 거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된다.
그리스도의 피가 이미 성취한 사실을 주목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이 강건케 될 수 있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 인내하며 기다리는 믿음으로 그 피의 놀라운 능력을 더더욱 체험해야 겠다.
2. 피와 성령은 언제나 함께 증거한다.
믿음으로나 설교로 그리스도의 피를 존귀하게 하는 곳에는 성령께서 반드시 역사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영혼속에서 그 충만한 능력을 드러낸다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을 성령의 가르치심 아래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들은 자기들이 구속함을 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한 그 구속이 무슨 의미인지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알 것은 그들이 구속된 것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구속이 무엇이며 그 피의 능력과 보배로움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만큼 그 가치를 더욱 충만히 체험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두가지 필요하다.
1. 그 피의 필요성을 더욱 깊이 자각하는 것이요, 또한 그 피를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바람이다.
2. 바람을 통해 ‘기대’를 가져야 한다. 그 피가 우리 속에서 충만한 능력을 드러낼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인정해야 한다.
3장 피로 말미암는 화목
그리스도 예수 아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으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롬3:24,25
화목제물 - iJlasthvrion (힐라스테리온) 70인역본에서 약 24회 나오며, 주로 캅포렛(속죄제, 속죄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출 25:16이하; 출 31:7레 16:2이하; 민 7:89). 이 단어의 의미는 속죄의 장소가 아니라 속죄를 행하는 자를 가리킨다: '속죄를 행하는 것' ; ‘속죄하는 것’, ‘화해시키는 것’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축복이 우리에게 베풀어졌다. 이 축복중 첫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화목”이다.
주님의 구속사역에서 ‘화목’이 가장 먼저 온다.
이 화목을 통해 구속의 또 다른 축복들에 참여함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화목을 누리게 된 신자는 그 의미와 복에 대해서 더 깊고 더 영적 생각을 가지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화목이 무엇인지를 더욱 온전하게 아는 것이 그 피의 능력을 더욱 충만히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1. 죄가 화목을 필요하게 만들었다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에 있어서, 화목의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목표는 죄를 제거하고 죄를 멸하는 것이다.
따라서 화목을 알기 위해서는 ‘죄’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화목으로 말미암아 죄가 무력화 되어야 화목의 축복을 체험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죄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불순종이요, 모독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주 되심의 존귀를 그에게서 빼앗는 것이다.
죄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한 확연한 반대이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거룩한 진노를 그 죄에 대해 발휘하게 되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끼친 죄의 효과 (이중적 부정적 영향)
① 죄는 하나님께 끔찍하고 심각한 영향을 발휘했다. 죄가 하나님께 그런 영향을 끼쳤기에 죄가 우리에게 권세를 부리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그냥 내버려 두실 수 없다. 하나님의 법은 ‘죄는 반드시 슬픔과 죽음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죄 가운데 타락하자, 하나님의 그 법으로 말미암아 슬픔과 죽음 즉 죄의 권새 아래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대적하는 자가 되셨다.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지만,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신과의 교제 속에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은 사랑 대신 그의 진노와 형벌, 저주를 쏟아 붓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죄가 끔찍하게 변화시킨 것이다.
② 사람은 죄 아래 있기에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죄를 범함으로써 죄의 책임이 남게 된다. 죄책을 져야 한다. 죄책은 부채이다.
반드시 지불해야 할 대가이다. 부채(죄책)는 남김없이 갚어져야 한다. 깔끔히 정리되어야 한다. 그래서 죄인은 죄책을 지게 되었다.
부채를 갚거나 죄의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 한, 거룩하신 하나님으로서는 죄인으로 하여금 그의 임재 속에 들어오도록 허락하실 수 없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우리 속에 내재하는 죄의 권세에서 구원받는 것과 더불어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쌓여 있는 그 중대한 죄의 책임에서 구원받을 수 있느냐 이다.
이 죄의 책임을 제거하는 일이 오직 ‘화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2.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화목을 미리 제정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는
하나님의 선함과 사랑을 표출하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의 법에 따라 악한 것을 내쫓고 소멸시키는 그의 진노(엄위로우심;공의)가 연합되어 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은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사람의 모든 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은 사람을 포기할 수 없었다. 반드시 사람들은 구속을 받아야 했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는 하나님의 법이 요청하는 요구사항을 절대로 물리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법이 멸시를 당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존귀가 멸시당했다.
하나님의 법이 만족하지 않는 한 죄인을 방면한다는 것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인간이 죄의 책임을 법 형량에 따라 깨끗하게 져야 한다.
이 두 거룩하심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경륜가운데 준비하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화목’이다.
화목은 덮어 주는 것이다.
다른 무언가가 죄가 서 있는 자리를 대신 취하여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죄를 보실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에서는 흠 없는 짐승이 죄된 사람을 대신하였다. 짐승에게 사람의 죄가 전이되고 짐승의 죽음가 피흘림으로 죄의 형벌(죄책)을 감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생명의 죽음(피 흘림)이 죄를 덮어주고 죄의 형벌을 사해주는 ‘덮음’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피 속에 화목이 있다라고 한다.
죄와 죄의 책임을 영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이런 짐승과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피가 필요했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 친아들의 피 흘림으로 이뤄지게 된 것이다.
3. 예수님의 피가 화목을 이루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기꺼운 순종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법 아래 들어가시고 그 율법을 이루셨다.
예수는 인류의 머리이다. 육체를 입으사 둘째 아담이 되셨다.
말씀이신 그가 육체를 입으셨을 때에, 그는 죄의 권세 아래 있는 우리 인생들과의 진정한 관계 속으로 자신을 집어넣으셨고,
인간이 지은 죄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범한 모든 책임들까지 그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셨다.
자기 자신을 다른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집어 넣으시고 그들의 죄를 스스로 지신 것이다.
인간의 죄가 그에게 전이 되었고, 인간의 죄책이 그분의 죽음(피 흘림)으로 해결되었다.
죄는 슬픔과 죽음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는 하나님의 법이 성취되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법을 만족시키셨다.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우리 모든 인간이 죄 아래 있게 되었듯이
둘째 아담이 우리 모든 인간의 죄와 죄책을 짊어지고 피 흘림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죄와 죄책에서 해방되었다. ‘화목’이 이뤄졌다.
그는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이신 그가 스스로 피조물과 연합하였고 그 神의 죽음(神의 피 흘림)으로 피조물의 죄, 죄책을 단 한번만에 영구히 해결하였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피 흘리셨다. 속죄가 이뤄졌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의 깊은 사랑 속에 그 모습을 숨긴 것이다.
예수의 피로 말미암는 화목이 인간의 죄를 덮었고 그리하여 그 죄들이 더 이상 하나님 앞에 나타나지 않게 된 것이다.
따라서 구속함을 받은 자들의 노래 속에서 그리스도의 피가 영원토록 찬양을 받아야 한다.
4. 죄 용서가 화목의 결과이다.
예수의 피가 죄를 위하여 화목을 이루어 내었다 하여도 우리가 거기에 개별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개별적으로 거기에 참여하는 일은 ‘죄 용서’를 통해서 일어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고후5:9-
이 화목의 말씀에 이어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라는 초청이 이어진다.
죄를 위한 화목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다는 것이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죄들이 용서함 받았음을 스스로 아는 것이다.
이 죄용서의 완전함이 의롭다 하심(칭의)이다.
화목이 너무도 완전하며 또한 죄가 정말로 덮어졌고 도말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전적으로 의로운 자로 바라보시고 그렇게 대하시는 것입니다.
화목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피를 믿는 믿음 이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오직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 밖에는 필요한 것이 없다.
그 피가 진정으로 죄를 속하였으며 자기를 위하여 정말로 속죄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 말이다.
그 믿음을 통해서 그는 자기가 하나님과 충만하게 화목되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에게 충만한 사랑과 축복을 부어주시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 피를 믿는 믿음이 하늘에서 역사하는 그 피의 능력과 동일한 능력을 그의 마음 속에서 발휘한다.
그 피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그는 그리스도의 피가 하나님께로부터 그를 위하여 얻어 놓은 모든 축복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성령께서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것이 된 이 화목과 죄 용서의 영광을 여러분에게 드러내 주시기를 진지하게 기도하시기 바란다.
성령을 향하여 마음 문을 열어서 그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일어난 그 영광스러운 효과들을 여러분 속에서 드러내시도록 하시기를 바란다. 예수야말로 우리 죄를 위한 화목이다.
예수를 의지하라. 우리와 우리 죄 사이에 예수를 세우라.
그러면 그가 이루신 구속이 얼마나 완전하며 또한 그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을 발휘하라. 그저 믿기만 하라. ‘그 피가 내게도 역사하리라.’ 하나님께 그 피의 능력을 믿는다고 말씀드리라.
사랑이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요일2:2
힐라스모스 iJlasmov"70인역본에서 10회 나오며, 히브리어 킵푸르(보상, 죄값, 속죄; 레 25:9민 5:8), 슬리하(5547: 용서; 시 130:4단 9:9)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제의적 속죄와 하나님의 용서를 의미한다. 신약성경은 요일2:2 4:10에서 ‘화목제물’로 번역되고 있다.
4장 피로말미암아 깨끗하게 씻으심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리스도의 피 효과중 가장 중요한 것은 화목입니다.
화목에 대한 지식과 믿음의 열매는 죄 용서입니다.
이 화목의 능력을 깨닫고 누리는 만큼 피의 다른 축복들이 베풀어집니다.
화목의 첫째 효과 가운데 하나는 '죄에서 깨끗이 씻는 것'입니다.
깨끗이 씻는다는 것은 죄 용서함이나 죄책에서 사면되는 것으로 이해했어는 안됩니다.
깨끗이 씻는다는 것은 죄의 오염에서 구해낸다는 뜻입니다.
죄책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관한 것이요, 우리의 잘못된 행실에 대해 형벌을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죄의 오염은 죄가 우리의 내적 존재에 가해 놓은 더러움과 불결함에 대한 지각이요,
깨끗이 씻는다는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깨끗이 씻는 일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구약성경에 나타난 '깨끗이 씻음' 의미
2. 신약성경에서 그 단어가 시사하는 축복
3. 어떻게 하면 이 축복을 충만히 누리는가
1. 구약성경에 나타난 '깨끗이 씻음' 의미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 준비단계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희생제사였고, 또 하나는 정결예식이었습니다.
이 둘은 사람들에게 그 자신이 얼마나 죄악되며 거룩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에 부족한지 깨닫게 합니다.
이 둘로 인해 죄에 대한 의식, 구속의 필요성에 대한 깨달음을 일깨워졌으리라 이해됩니다.
이 둘 모두 예수님께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시키려 행하신 구속을 예표합니다.
구속을 예표하는 이 둘의 의미는 두 가지 점에서 서로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제물은 죄행실(과실)로 인한 죄책을 해결하고 죄용서를 허락합니다.
깨끗이 씻는 일은 직접적인 과실과의 관련보다는 죄의 결과로 일어난 상태와 더 관련이 있습니다.
문둥병, 죽은자와의 접촉 등은 깨끗이 씻는 정결의식이 필요합니다.
암송아지를 불에 태워 그 재를 물에 타서 우슬초로 부정한 자에게 뿌린 다음 물에 목욕하고 나면 그 사람은 의식적으로 다시 정결케 됩니다.
둘째 제물은 드리는 사람에게 아무일도 행해지지 않습니다. 그저 피흘림을 보고 제단에 뿌려지고 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볼 뿐입니다.
이 예식이 하나님앞에서 화목을 이루는 것임을 그저 믿을 뿐입니다.
깨끗이 씻는 일은 그 자신에게 행해지는 일입니다.
그 사람에게 물로 뿌리든지, 씻든지 행해집니다.
깨끗이 씻음은 그 사람 자신이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의 상태에도 변화를 일으킵니다.
제물은 그 사람을 위하여 어떤 일이 행해진 것입니다.
깨끗이 씻는 일은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이 행해진 것입니다.
제물은 죄의 책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깨끗이 씻는 일은 죄의 오염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겔36:25-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말3:3-
물, 피, 불로 깨끗이 씻는다는 것 혹 정결케 한다는 것은
새 언약 아래서 일어날 깨끗이 씻음 - 내적 의미의 깨끗이 씻음, 죄의 얼룩에서 구원하는 역사-을 예표합니다.
2. 깨끗이 씻음이 신약성경에서 시사하는 축복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5:8-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 -딤전1:5-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2:14-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하자..-고후7:1-
요일1:7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깨끗하게 하심은 회심때에 죄사함의 은혜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빛 가운데 행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안에서 역사하는 은혜의 효과를 가리킵니다.
요일1:9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깨끗케 하는 일은 죄 사함 이후 그 결과로 오는 것으로
신자가 예수의 피의 능력을 내적 체험으로 받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먼저 양심을 깨끗케 합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9:14-
양심은 우리의 행동을 판단하는 심판자일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증거해 주는 내적인 음성입니다.
양심이 깨끗이 씻음 받으면 나아가 마음 또한 씻음 받아야 합니다. 지성, 의지, 모든 생각과 욕망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삶 속에서 충만히 효력을 발휘하는 신자는 자기의 옛 사람이 그 힘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저지 당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그 육욕과 욕심이 억눌림 당하고 죽임당하여 성령께서 그 열매를 드러내실수있게 됩니다.
지극히 작은 넘어짐이 있을 때에도 즉각적인 깨끗이 씻음과 회복의 역사를 영혼이 체험하게 됩니다.
신약성경의 경우 깨끗이 씻음은 언제나 살아서 중보하시는 예수님을 의지함으로써 이뤄집니다.
믿음이 이러한 사실을 보고 바라고 붙들 때 매 순간마다 그 피의 보호하심과 깨끗이 씻는 능력 아래 거하게 됩니다.
3. 어떻게 하면 이 축복을 충만히 누릴 수 있는가?
(1) 무엇보다 먼저 지식이 필요합니다.
(2) 소원-간절한 바람-이 있어야 합니다.
(3) 부정한 모든 것들로부터 기꺼이 자신을 분리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본성,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더러워졌습니다.
부정한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며 그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일을 깨끗이 씻는 역사가 대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들에게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라고 명령하시니다.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전부 부정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뒤로 남겨두는 사람은 그 충만한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4) 믿음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그 자체로 능력과 효능을 항상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불신앙이 우리의 마음을 닫고 그 피의 역사를 방해합니다.
믿음으로 자신을 주께 맡기고, 이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리라는 것을 믿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 일이 주어질 것입니다.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하늘 위로부터 이 땅 아래까지 쉬지 않고 계속 흘러내리는 그 복된 샘물 말입니다.
예수님의 피의 능력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 땅의 영혼들을 향하여 흘러내립니다.
영혼을 치유하고 정결케 하는 것이 복되신 성령의 역사입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 는 말씀에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신적의미가 있음을 그저 믿으시기 바랍니다.
5장 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하심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13:12-
깨끗이 씻는 일과 거룩하게 하는 일이 거의 동일하게 보입니다만 이 두 단어는 서로 크고도 중대한 차이가 있습니다.
깨끗이 씻는 일은 주고 제거되어야 할 옛 사람과 죄의 얼룩에 관계 되는 것으로 오직 예비적인 의미만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하게 하는 일은 새 사람과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풀어주시는 특성과 관계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여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딤후2:21-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셨다.(주셨다.)
말씀을 통해 물로 교회를 깨끗이 씻어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교회를 그리스도앞에서 빛나는(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기 위해서 말이다. -엡5:25~27-
거룩하게 하는 일은 깨끗이 씻는 일 다음에 이어지는 것으로써 깨끗이 씻는 일을 능가하는 것입니다.
1. 거룩하게 함이란 무엇인가?
2. 그리스도의 고난의 위대한 목적이 바로 '거룩하게 함'이었다는 사실
3. 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함'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
1. 거룩하게 함이란 무엇인가?
하나님만 거룩하십니다.
피조물의 거룩함은 오직 그분께로부터만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죄를 미워하고 대적하는 데 있다 라고 하면 이것은 그저 부정적인 진술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지고한 선이며 또 지고한 선을 뜻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또한 이 거룩함 때문에 피조물안에서 지고한 선을 바라시고 또한 그들에게 지고한 선을 베푸시는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하나님입니다.
이것은 죄를 벌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만물을 위해 선한 일을 뜻하게 하시고 또 그를 움직여 죄인들을 구속하게 하는 근원입니다.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나, 죄인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 모두 그의 '거룩하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의거룩함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일치하는 하나의 기질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는 일은 바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전이됨으로써 이뤄집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하심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지 않고서는 달리 거룩하게 함을 얻을 길이 없습니다.
첫째 거룩하게 함이란 '분리'입니다.
죄에서만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심지어 허용 가능한 것들로부터도 온전히 분리된 것을 의미합니다.
천지창조시 7일은 거룩했습니다. 다른 6일은 부정하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6일은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표현 할 수 있다면
제7일은 거룩했습니다. 오직 그날만이 거룩했습니다. 오직 그날만 하나님께서 거룩하다고 분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열국으로부터 분리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그 가운데서도 제사장들은 또 구별되었습니다.
이처럼 분리시켜 거룩하게 하는 일은 언제나 하나님 자신이 행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의 은혜가 거룩하게 하는 일과 밀접한 연관을 갖습니다.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레20:2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신7:6-
하나님은 다른 주인들과 무엇을 함께 공유할 수 없습니다. 그는 홀로 소유주가 되셔야 하며, 홀로 통치자가 되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의 소유요, 그의 통치를 받는 그 백성에게 자신의 거룩하심을 계시하시고 베풀어 주십니다.
분리는 그 다음에 당연히 이어지는 상태를 위한 불가피한 조건일 뿐입니다.
분리가 가치를 지니려면, 무언가 그보다 더한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둘째, 거룩하게 함속에는 자기 자신을 주님의 것으로 주님께 드리는 인격적인 헌신(personal consecration)을 요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의지에 반하여 그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마음을 다하여 굴복하는 일이야말로 거룩하게 하는 일의 필수불가결한 한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일(분리시켜 구별하는 일)을 말씀함과 동시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야 한다는 사실(분리되어 구별된 자로서 하나님께 허신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분리, 헌신이 참된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의 거룩함을 영혼에 베풀어 주시는 역사가 필요합니다.
분리, 헌신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영광스런 역사를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연단(징계)하신다. -히12:10-
하나님께서 우리를 분리하신 이유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눠갖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분리하신 하나님의 영광된 목표입니다.
거룩을 얻는 일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 속에서 하나님의 신적인 생명에 참여하는 가운데 이뤄집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그 백성 중에 거하셨습니다. (출29:45,46)
거룩하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뿐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거하실 때 거룩하게 하는 역사는 가능합니다.
성령께서 임하사 우리 속에 거하시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거룩하게 함 (성화) 가 가능하니까요.
2. 거룩하게 함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고난 당하신 목적이었다는 사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람의 최고의 운명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중심되는 목적도 이것이었고, 그의 고난과 죽으심의 목적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수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다.
그분의 관점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말이다.-엡1:4-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자..그런데 그 하나님은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영적복으로 하늘의 영역에서 우리를 축복하신다. 엡1:3-)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하시려고'가 바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의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겟세마네 동산에서 다음과 같이 기도 하셨습니다.
'그들을 위해 제 스스로를 거룩하게 합니다. 그들 역시 진실로 거룩되기 위해서 말이죠.'-요17:19-
그의 고난과 죽으심이 그리스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 일이 또한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이셨는데 그가 자기 자신을 거룩하게 하셔야 한다니요?
예 그분은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 했습니다. 그 일은 필수불가결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주님 생애 전체를 통해
주님은 계속해서 자신의 뜻을 아버지의 뜻에 굴복시키셨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 제물로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가장 결정적으로 이뤄진 것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였습니다.
그분은 피하고 싶은 유혹이 다가왔을 때, 그 유혹을 다 거부하셨습니다.
그는 자신과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과 그의 거룩하심에 내어맡기셨습니다.
그는 말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당신의 뜻을 행하러 왔습니다." ...
이 뜻을 따라 우리가 거룩함을 받았다. 단 한번 예수 그리스도 몸의 희생을 통해서 말이다. -히10:9,10-
(개역개정 :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이 뜻을 따라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주님께서 자신을 굴복시키사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자기 안에서 이뤄지도록 하신
그 완전한 순종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원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죄를 영원히 정복하는 능력이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으로 말미암마 그것과 동일한 기질이, 동일한 거룩하게 하심의 역사가
우리의 마음 속에서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히2:11-
이 거룩하게 함을 위해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는 고난을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13:12-
피로써 거룩하게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진정으로 깨닫고 체험하길 원한다면
우리로서 가장 중요한 일은
우선 거룩하게 함이야말로 우리 주님의 고난 전체의 특징이요 목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주님 고난의 절정에 주님께서 흘리신 피가 있고 고난과 피 흘림의 목적은 바로 우리를 거룩하게 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거룩하게 하심으? 자신의 거룩하심을 영화롭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한 영 이른바 성령은 우리 속에서 그의 거룩함을 드러내려고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영입니다.
주님의 보혈 뿌림은 하나님을 위해 분리되었다라는 신적인 표적입니다.
주님의 보혈은 분리된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해 온전히 헌신된 삶을 요구하는 신적인 표적입니다.
주님의 보혈로 인해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고 그 성령으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됨이 가능하게 됩니다.
3. 피로 말미암는 거룩하게 함의 역사를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
피의 공로에 참여함, 피와 긴밀하게 지속적으로 접촉함을 통해 피의 거룩하게 하는 효과들을 진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그의 피로 값 주고 우리를 사신 어린양께 마음을 다하여 자신을 드리고 믿음으로 경배드리며 그와 교제를 나누게 되면
그 피로 말미암아 자기가 깨닫지 못하는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자신을 향하여 분리시킨 표적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에게 뿌려짐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오직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만 사는 존재로 세워졌습니다.
이젠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고 자기의 피로 값주고 사신 예수님께 속함으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예수의 피를 볼때마다 우린 고백하여야 합니다.
주 예수께서 나를 거룩하게 하셨고 하나님을 위해 나를 완전히 소유하였으니 이제 나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하였도다
거룩하게 하는 일은 분리입니다. 분리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인격적 헌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위하겠다는 마음과 이 마음에서 나오는 거룩한 굴복까지가 거룩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어떤 방식으로 이런 거룩한 굴복까지 우리안에서 이룰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 자신을 기꺼이 굴복시키셨기에 그의 피에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그는 친히 피를 흘리심으로써 자신을 거룩하게 하셨고 또 하나님께 자신을 드렸습니다.
예수의 피가 그렇게 거룩하며 또 거룩하게 하는 능력을 지닌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예수의 피에는 예수의 철저한 자기굴복의 모습이 녹아져 있습니다.
예수의 피에는 하나님을 향한 예수의 헌신이 녹아져 있습니다.
철저한 자기굴복과 온전한 헌신이 예수의 피로 하여금 죄에 대한 승리를 위한 길을 열어주며 그런 승리를 위한 능력을 베풀어 줍니다.
예수의 피와 가까이 접촉할수록, 그리고 그 피를 뿌린 바 되었다는 깊은 감동 가운데서 살수록 그 피의 음성 곧 하나님께 전적으로 굴복하는 것이 바로 죄에서 충만히 구속받는 길이다 라는 선언을 듣게 됩니다.
예수의 피는 예수님속에 있었던 똑같은 기질을 우리 속에 이뤄갑니다.
분리와 헌신!
그러나 분리와 헌신을 온전히 거룩하게 하는 마지막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는 역사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드려진 성전을 소유하시고 그의 영광으로 가득 채우실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출29:43-
실질적인 거룩하게 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하심-자기 자신-을 주시는 데 있습니다.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와 접근이 가능해졌습니다.
자신을 예수의 피에 온전히 굴복시키는 자는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자신을 전적으로 주실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경계하며 산다고 해서 영혼이 만족을 얻진 못합니다.
성전은 깨끗이 씻음 받아야 하며 또한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채워져야 합니다.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갑시다. -히13;12~13-
예수님께 나아갑시다.
예수께서 자기를 거룩하게 하시도록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개의치 않고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그 피의 복된 효능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6장 피로말미암아 깨끗하게 되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김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서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9:14-
거룩함과 교제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교제도 있을 수 없습니다.
거룩함에 보장된 영광과 축복은 다름 아닌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이 교제야말로 사람에게 가장 높고 완전한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가장 영광스런 축복은
바로 하나님의 보좌에, 하나님의 임재속으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된것입니다.
이 축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기 위해서 그 내용을 살펴봅시다.
1. 하나님의 임재속에 거하는 특권
2. 하나님께 영적 제사를 드릴 소명
3. 다른 사람들을 축복할 권세
1. 하나님 임재속에 거하는 특권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처소에 자유로이 출입하였습니다. 진설병을 먹었고 희생제사에 참여했습니다.
이것은 큰 특권입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시65:4-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시42:2-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하나님과의 교제와 그의 보호하심과 축복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아는 자는 언제나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속에서 축복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그 교제속에서 성령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아주 사소한 표적까지도 이해하고 그의 뜻을 따릅니다.
교제가 우리의 삶과 성품에 영향을 미칩니다. 왕의 존전에 있는 자로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닮는 기질이 만들어집니다.
이 교제는 우리를 '섬김'으로 이끕니다.
2. 하나님께 영적 제사를 드릴 소명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은 무슨 어떤 일을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성소의 종들로서 그곳에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그곳에 있습니다.
그들이 행한 섬김은 피를 뿌리며, 향을 준비하여 집 안을 향의 냄새로 가득 채우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집을 꾸미는 일과 관련된 모든 일을 질서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하게 한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서 그의 종들로서 살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영적 제사를 드림이 마땅할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피를 성소 안 하나님 앞에 가져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할 때, 어린양의 피를 믿고 높이는 것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물이 없습니다.
겸손한 신뢰,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의 행위마다
아버지로 하여금 어린양의 피를 주목하게 하시며 그 피를 찬양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제사장들은 성소에 향을 피워서 하나님의 집을 향기로 가득 채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야말로 아름다운 향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가치는 그저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는 수단이라는 것에서 뛰어넘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섬김의 사역이라는 데 있습니다.
피를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를 진정으로 기뻐하는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기도의 삶입니다.
매 순간마다, 매 발걸음마다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는 가운데 은혜를 구하고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시고 변함 없이 선한다라는 확신가운데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성취되리라 라는 확실한 믿음의 신뢰성 있는 확신을 갖습니다.
이 기도와 함께 감사, 찬송이 영적 제사입니다. 곧 하나니의 제사장들이 계속해서 입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영적 제사는 외형적인 규례나 순서를 뛰어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행하는 사람이 행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행한다는 사실 때문에 영적제사로 하나님은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제사장의 기질에 의해서 감동을 받아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드리는 행위로 행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제사행위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받으시는 것이 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3:17-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으로 깨끗이 씻음 받아 거룩하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왔으니
나의 세상적인 직업이나 나의 삶 전체나, 심지어 먹고 마시는 일까지도 모두 영적인 예배입니다.
나의 일, 사업, 돈, 집,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임재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됩니다.
아무리 하찮은 세상의 일도 제사장의 섬기는 봉사입니다.
3. 다른 사람들을 축복할 권세
제사장들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죄와 필요 사항들을 하나님의 임재속으로 지니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죄 용서를 선포할 능력과 백성들을 축복할 권세를 얻었습니다.
이제 모든 신자들은 새 언약의 제사장 가문에 속한 자들로서 이러한 특권을 소유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 누리는 교제의 최고의 능력과 영광은
제사장의 중보, 연약한 자들에 대한 제사장의 마음, 성전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제사장의 능력에 있습니다.
이것이 제사장적 위엄입니다.
이 제사장적 위엄은 첫째 간구함으로 행사됩니다.
다른 이들을 위하여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최고의 특권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른 이들의 필요와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쏟아 부어 공급해 달라고 구하는 의미를 뛰어넘습니다.
이 간구는 '믿음의 기도'라는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하는 바를 생각하여 그 약속이 이 구체적인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기도의 주제가 되는 다른 이들의 죄와 필요를 자기의 짐으로 취하고서,
마치 그것들이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인 것처럼 그것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믿음을 일깨우시기까지
하나님의 임재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깨닫기 까지 말입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제사장적인 능력은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사는 제사장다운 삶에 달려 있습니다.
생명을 주는 그 피의 거룩한 능력이 그 피를 흘린 예수께서 지니셨던 것과 동일한 기질을, 곧 자기를 희생하여 다른 사람들을 구속하는 기질을 우리 속에 창조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으로 하나님의 집에서 섬기며 하나님의 복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 주는 삶을 사는 축복을 진정 소원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축복이 바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것을 믿고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이미 그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 상태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모두가 그 피를 충만히 체험하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 있는 삶이 바로 나를 위한 것임을 믿읍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속에서 사는 것이 우리의 특권입니다. 이 사실을 든든히 붙듭시다.
또한 우리는 오로지 우리 마음속에 화목의 피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채우도록 합시다.
죄가 완전히 속해졌고 도말되었으므로 죄의 권세가 영원히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충만히 의롭다 인정함을 받았고, 성소 안에 거할 의로운 권리가 있음을 믿읍시다.
그 피로 맘미암아 우리 속에 거하고 있는 죄의 더러움에서 내적인 구원을 기대합시다.
나아가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그 피의 능력을 우리속에 드러낼 것입니다. 이것을 기대합시다.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계7:14~15-
영원한 영광에 관련된 이 구절의 말씀은 또한 이 땅에서의 삶에도 해당되는 구절입니다.
예수의 피의 능력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체험이 충만해질수록
교제가 더욱 친밀해집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그를 섬기는 일도 더욱 넓어질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더 큰 능력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가 주위에 펼칠 제사장의 축복도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오 주님.
이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지금 저에게 충만한 능력을 발휘하게 하소서.....아멘...
8장 피로말미암아 지성소에 거함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10:19~22-
위 본문은 히브리서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신약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누구든 지성소를 자기의 거처로 삼을 수 있고, 또 마땅히 거처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이 이루신 구속의 충만한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본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 :
(1) 지성소
(2) 예수의 피
(3) 새롭고 살아 있는 길
(4) 큰 제사장
2. 위 예비하신 것들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는 방식 :
(1) 참 마음
(2) 온전한 믿음
(3) 악한 양심에서 뿌림을 받은 마음
(4) 맑은 물로 씻은 몸
이 모든 말씀은 결국 '하나님께 나아가자' 라는 말씀으로 귀결됩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것
(1) 지성소
그러므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 하나님께 나아가자.
예수님이 구속 사역의 목적은 우리를 '지성소'에 데리고 들어가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성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거처입니다. 하늘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지성소입니다.
구약에서는 제한된 공간으로서의 지성소가 있었다면, 신약에서는 공간제약을 받지 않는 지성소 곧 하나님께서 자기를 나타내는 곳이 지성소입니다.
지성소에서는 하나님의 보살핌, 교제가 있습니다. 생명, 축복을 경험합니다. 능력, 기쁨을 경험합니다.
그 속에 거하는 자는 제사장적인 순결과 헌신의 삶을 삽니다. 늘 거룩한 기도의 향이 태워집니다.
구약에서는 모든 것이 물질적이이어서 지성소와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물질적이었고 공간에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신약에서는 모든 것이 영적입니다. 성령께서만이 예수께서 이루신 그 역사를 우리의 체험속에서 실감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의 충만한 능력은 바로 이 지성소에서만 충만히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지성소가 우리가 거할 집이어야 합니다.
지성소에 들어가며, 지성소에서 살며, 지성소에서 봉사하기를 간절히 바래야 합니다.
(2) 예수의 피
지성소가 하나님의 것이든, 지성소에 들어가는 일도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생각하셨고 준비하신 것입니다.
오직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지성소에 들어갈 자유와 권한을 갖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레17:11- 말씀에 따라
예수의 피는 예수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입니다. 신적 생명의 능력이 거하는 피입니다.
이 예수의 피가 율법의 저주아래에서 흘려짐으로 율법을 완전히 성취하였으며 그리하여 죄를 전적으로 무기력하게 하였습니다.
신적 생명의 피의 흘림은 이 죄를 속하기 위하여 드린바 된 피 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피가 지고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것입니다. (히13:20)
예수님은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히9:12)
그리고 이제 우리도 그 피로 말미암아 지성소로 들어갈 자유와 권한을 갖게 되었습니다.
죄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우리의 자유를 박탈했었는데, 예수의 피가 우리에게 이 자유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이것이 예수의 피의 능력입니다.
이제 이 피로 말미암아 지성소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할수있게 되었습니다.
오 성령님, 우리에게 예수의 피의 충만한 능력을 알려 주십시오...아멘.
(3) 새롭고 살아 있는 길 (새로운 살 길)
예수님께서 자기의 피를 흘리셔서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휘장이 있습니다. 그 휘장이 찢어져야만 들어갑니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은 바로 육체의 찢어진 휘장을 통과해야 합니다.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은 육체의 찢어짐을 요구합니다.
예수의 피가 능력으로 역사하는 곳에는 언제나 육체를 죽이는 일이 뒤따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자기 육체의 죄악성을 가지고서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4) 큰 제사장
지성소로 들어가는 우리에게는 예수의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께서 계십니다.
'피'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신 예수님 자신이 있습니다.
구약의 지성소출입은 아론의 아들들만 가능했습니다.
우리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보소서 나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지성소에 들어가기를 바라면, 그가 거기 계셔서 우리를 영접해주시고 우리를 아버지께로 데려가십니다.
피로 말미암아 그 자신이 지성소로 들어가셨고, 그 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도 그리로 데려 가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들이 아무리 연약할지라도 그가 그것들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를 체휼하시는 대제사장으로서 주님은 우리가 아무리 연약할지라도 우리를 잘 돌봐주십니다.
예수님을 친히 바라봅시다. 그가 우리를 가르쳐 주시고 친히 우리를 지성소 안으로 이끌어 주시길 구합시다.
그는 하나님의 집의 큰 제사장이기 때문에 오직 그를 붙들기만 하면 지성소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성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에게 지성소에 들어갈 자유와 권한을 주셨습니다.
새로우면서도 살아있는 길이 우리에게 열려 있습니다.
우리를 인도하며 도우시는 큰 제사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2. 어떻게 하면 지성소로 들어갈 준비를 갖추는 것이 될까?
(1) 참 마음을 갖고서
'참 마음을 갖고서'
하나님께 나아가길 소원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네가지 요구사항 가운데 첫번째입니다.
복음은 회개와 믿음과 함께 시작합니다.
죄를 버리지 않고서는 사람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의 삶의 과정 가운데서도 이 법칙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참 마음이라 함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정직한 마음, 하나님께 전적으로 굴복한 마음입니다.
참 마음은 찾는다고 입으로 말하는 바를 진정으로 찾고자 힘쓰는 그런 마음입니다.
참 마음 없이는 지성소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지성소 안에 거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그런 마음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소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피의 권위와 능력에 자신을 맡기기 위하여 모든 것을 진정으로 버리는 그런 마음으로 예수의 내주하심과 그의 주 되심에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는 그런 마음으로 지성소로 나아갑시다.
이 참 마음을 진정 가질수 있는 것인가요?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새 마음이 참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새 마음 속에 거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 있는 죄와 대적하고 하나님 편에 서도록 하십시오.
이 일을 위하여 우리의 의지를 발휘하십시오.
대제사장이신 주님께 말씀하십시오.
주 앞에 모든 죄와 모든 이기적인 삶을 내어 놓으며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우리안에 아직도 의식하지 못하는 육체 속 깊이 박혀 있는 감추어진 죄들과 마음의 악의에 대해서도 성령의 빛에 자신을 계속 쪼이십시오. 성령께서 우리 속에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이를 행함이 지성소에 들어가길 원하는 참 마음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참 마음으로 가까이 나아가겠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행위의 완전함을 기준으로 우리를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모두 정직하게 내어 놓고 버리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우리의 아는 죄를 다 내어 놓고 버릴 때에 또한 성령께서 우리의 감춰진 죄에 대해서도 깨닫게 하십니다.
이를 징직하게 행하는 마음이 참 마음입니다.
(2) 온전한 믿음의 확신을 갖고서 (믿음의 충만한 확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지성소에 들어가는 입구에서는 모든 것이 '믿음의 충만한 확신'에 달려 있습니다.
믿음의 충만한 확신이 있어야만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지성소가 있게 됩니다.
예수의 피가 죄를 완전히 정복하여 하나님과의 교제에 방해가 없게 됩니다.
예수께서 그의 육체로 거룩하게 하신 그 길이 살아있는 길이 되어 그 길을 걷는 자들에게 살아있는 능력으로 인도하게 됩니다.
큰 제사장이 하나님께로 나아오기를 원하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히12:2)와 함께 교제를 나눔으로써만 믿음의 충만한 확신까지 이룰 수 있습니다.
그를 생각함으로써
그의 놀라운 사랑과 역사를 생각함으로써
그의 보배롭고 전능한 피를 생각함으로써
믿음이 유지되고 강건해집니다.
우리의 눈을 계속해서 예수에게 고정시킴으로써 믿음의 충만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도다
하나의 문자로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음성으로서의 말씀이 믿음을 발생시킵니다.
시간을 갖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음에 새기십시오. 그러나 언제나 예수님 그분에게 마음을 고정시키고서 그렇게 하십시오.
믿음을 발휘하고 사용하고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가장 중요한 일이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믿는 자녀들을 원하십니다. 믿음만큼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없습니다.
주여 내가 이것을 얻을 것을 믿습니다. 주께서 이 약속을 제게 성취시킬 것을 믿습니다.
하루종일 모든 일에서 그런 일을 거룩한 습관으로 삼으십시오.
믿음의 충만한 확신으로 지성소로 나아갑시다.
(3) 깨끗이 씻은 마음을 갖고서
우리가 악한 양심에서 마음을 깨끗이 씻었으니 ... 지성소로 나아갑시다.
마음은 인간생명의 중심입니다. 마음이 중심은 양심입니다. 이 양심을 통해 사람이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인식합니다.
지성소로 들어가기를 사모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의 마음을 악한 양심에서 깨끗이 씻어내야 합니다.
악한 양심으로부터 우리를 깨끗게 하는 (피)뿌림을 받은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피뿌림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제사장이 단 위 하나님 앞에 피 뿌림으로써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제사장이 자신에게 피 뿌림을 받아야 했었습니다.
예수의 피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과 직접 접촉하여야만 비로소 우리의 마음이 악한 양심에서 깨끗하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과 우리가 교제를 나누는 관계가 되었음을 양심이 증거합니다.
믿음의 충만한 확신으로 우리 마음이 깨끗이 씻음 받았음을 믿읍시다. 그 피를 크게 존귀히 여깁시다.
예수의 피가 우리를 깨끗이 씻었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합시다.
(4) 맑은 물로 몸을 씻고서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마음이 피로써 뿌림을 받아야 하듯, 몸도 맒은 물로 씻어야 합니다.
제사장들고 피로 뿌림을 받을 뿐 아니라, 몸을 물로 씻었습니다.(출29:4,20,21)
성소에 들어가면 피가 뿌려진 단이 있었고, 물이 담긴 대야가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물과 피로 임하셨습니다.(요일5:6))
물로써 받는 세례는 회개하여 죄를 멀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피가 마음을 , 속사람을 깨끗이 씻는다면
물세례는 눈에 보이는 육체의 모든 삶을 포함하여 몸 전체를 죄와 분리시키는 데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의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 자신을 깨끗이 씻어내지 않고서는
내적으로 깨끗이 씻어주는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피를 뿌림으로써 이뤄지는 신적인 씻음의 역사와 죄를 멀리함으로써 이뤄지는 인간적인 씻음의 역사는 불가분리관계입니다.
죄를 깨끗이 씻지 않고서는 지성소에서 하나님의 임재 속에 감히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 할지라도 조심스럽게 버리고 제거하는 일이 언제나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합니다.
부정한 자는 절대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이 초청은 특별히 기도를 지칭합니다.
늘 지성소안에 거하는 우리들이지만
특별히 전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 오직 하나님과만 관계하는 좀 더 직접적인 교제의 순간을 가지자는 뜻입니다.
기도할 때마다 먼저 우리가 정말로 지성소 안에 있다는 사실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지성소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8장 피안에 있는 생명
우리 형제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계12:11-
1. 단번에 얻은 승리
2. 언제나 계속 진행되고 있다
3. 거기에 우리의 몫이 있다
1. 단번에 얻은 승리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마귀가 그런 사망의 세력을 쥐게 된 것은 하나님의 율법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그를 감옥게 갇힌 죄수를 간수하는 간수장으로 삼은 것입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15:56-
사탄에 대해 승리를 얻고 사탄을 내쫓는 일은 율법의 의로운 요구들이 완전히 성취되기 전에는 일어날수가 없습니다.
죄인이 먼저 율법의 권세에서 구원을 받아야만 비로소 그가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에수께서 그의 죽으심으로, 피를 흘리심으로 율법의 요구들을 완전히 성취하셨습니다.
율법은 끊임없이 죄의 삭은 사망이라고-롬6:23-, 죄를 범한 영혼은 죽으리라 -겔18:4-고 선포했습니다.
성전의 모형적인 사역을 통해서,
그리고 그속에서 이뤄지는 피 흘림과 피 뿌림을 동반하는 희생제사를 통해서
율법은 오직 피 흘림을 통해서만 화목과 구속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율법 아래에서 출생하셨습니다. 그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사탄의 권세 아래 들어가게 만들려는 사탄의 유혹들을 물리치셨습니다.
기꺼이 죄의 형벌을 지도록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율법을 성취하는데 바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율법이 완전히 성취되자 죄와 사탄의 권세는 종지부를 찍게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망이 주님을 붙들어 놓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영원한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히13:20-
그리하여 그도 자신의 피로써 하늘에 들어가 그가 이루신 화목을 우리를 위하여 효력을 발생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2. 첫 승리에 뒤따라 이어지는 점진적인 승리. 사탄이 땅으로 내쫓겼으니 하늘의 승리가 이제 여기서 진행되어야 한다.
다니엘 10:12,13을 통해 확인해보건데
하나님의 일을 진행해 나가는데 하늘과 땅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하자마자 천사가 역사하였고 하늘에서는 삼주간의 싸움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땅에서는 삼주간의 기도와 금식이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싸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결과입니다.
이제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천사들과 이 땅의 형제들이 승리를 얻었습니다.
싸움이 하늘에서 땅으로 옮겨졌습니다.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12)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13)
여자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아들에게 더 이상 해를 가할 수 없게 되자 그는 그의 교회를 핍박합니다.
초기 3세기 동안 핍박이 세월이었습니다. 하지만 형제들이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함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지금도 어린양의 피를 기리고 높이는 만큼
교회가 새로운 생명을 얻고 무기력함과 그릇된 사상에 대하여 승리를 얻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적용됩니다.
어린양의 거룩한 피가 뿌려지는 바로 그곳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사탄이 피하여 도망치는 것입니다.
3. 이 승리에 우리의 몫도 있다.
(1) 싸움 없이는 승리도 없다.
우리는 원수의 영역에 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탄는 이 땅에 쫓겨나 굉장히 화가 나 있습니다.
사탄은 이제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께 다다를 수 없기에 그의 백성을 공격함으로써 그를 해치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간계와 능력을 가진 원수가 매 순간마다 우리를 살피고 있다는 거룩한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전적으로, 또는 일부분만이라도 자기의 권세 아래 도로 끌어내리기 위해서 지칠 줄 모르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사탄은 이 세상의 왕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기꺼이 그를 섬길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사탄은 어떻게 하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이용하여 교회로 하여금 그 주님께 신실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자기의 영을 교회에 불어넣을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죄라 생각하는 것들을 이용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합법적인 모든 것들을 도구로 해서 우리를 해치려고 합니다.
어린양의 피로써 사탄을 이기기를 사모하는 신자는 누구든 싸우는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원수의 성격을 깨닫고 이해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말씀을 통해서
사탄의 은밀한 간계가 무엇인지를 가르침 받아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바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고 속이는 사탄의 깊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가르침 받아야 합니다.
그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모든 면에서 죽을 때까지 이 싸움을 행하는 데 자기 자신을 헌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의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라는 승리의 노래에 참여하게 됩니다.
(2) 승리는 믿음을 통해 얻어진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요일5:4,5-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사탄은 이미 정복 당한 원수입니다.
하지만 불신앙으로나 무지함으로나 혹은 우리가 예수님의 승리에 참여한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붙드는 데서 물러서게 되면
그것은 사탄에게 다시금 나를 다스릴 권세를 내어주는 꼴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과연 예수님과 함께 있고 주께서 친히 내 속에서 사셔서 자신이 얻으신 승리를 내 속에서 유지시켜 주시고
이어 가신다는 것을 내가 분명히 알고 있으면 사탄은 절대로 내게 권세를 부릴 수가 없습니다.
오직 이러한 믿음이 사탄과의 싸움에서 용기와 기쁨을 불러 일으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이 연약함을 가지고 원수를 대적한다면, 혹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승리를 얻으려 한다면 우린 지칠 것입니다.
우린 그렇게 승리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승리자 되셨습니다.
이 예수로 말미암아 사탄이 하늘에서 내쫓긴 이상으로,
예수께서 친히 사탄을 정복하신 그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그가 친히 우리와 함께 계셔서 그의 피의 능력과 승리를 지키신다는 믿음으로
우리는 승리합니다.
(3) 믿음의 승리는 어린양의 피와의 교제 속에 있다는 사실
믿음은 내가 붙잡고 있는 생각, 확신을 넘어 생명입니다.
믿음은 영혼을 이끌어 하나님과 직접 접촉하도록 해 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것들과 접촉하도록 해줍니다. 무엇보다도 예수의 피와 접촉하도록 해 줍니다.
나 자신이 전적으로 그 피의 능력 아래 들어가지 않고서는 그 피로 말미암는 사탄에 대한 승리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피의 능력에 대한 믿음은 내 속에 그 피의 능력을 나 스스로 체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체험할 때마다 승리에 대한 믿음이 더욱 여광스럽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화목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항상 '그 피가 모든 죄를 깨끗이 씻었다'는 확신 가운데서 믿음을 발휘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제사장이 되었으며 왕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제사장의 순결과 섬김 뿐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다스리는 왕의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왕의 용기로 우리의 원수들을 다스려야 합니다.
어린양의 피는 죄에 대한 모든 책임에 대한 화목의 증표요, 인침이면서도
죄의 모든 권세에 대한 승리의 증요요 인침입니다.
우리의 존재 전체를 예수님의 피의 능력이 들어오도록 활짝 열어 놓으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삶에서 우리 주님의 부활과 승천을 계속 보고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하늘의 노래가 계속 울려 펴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잉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까지 아니하였도다. 계12:10~11-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20.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세례와 휴거와의 관계 (0) | 2012.08.27 |
---|---|
[스크랩] 10. 보혈로 얻어진 하늘나라 기쁨 (0) | 2012.08.27 |
[스크랩] 서론-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0) | 2012.08.27 |
[스크랩] 1장-피로 말미암은 구속 (0) | 2012.08.27 |
[스크랩] 2장-피로 말미암은 화목 (0) | 2012.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