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생명 얻는 회개

하나님아들 2012. 8. 4. 17:14

 

생명 얻는 회개  행11:18 

 

주님의 은혜가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구원의 큰 은혜로 이 시간 임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순절 날 성령강림 사건을 계기로 초대교회는 복음전도가 활발해졌고 이로 인해 큰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인근 다른 나라에까지 나아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유대주의의 편협함을 버리지 못하고 이방인들을 배척하는 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인 베드로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결정적으로 로마의 군대장관인 고넬료의 회심을 통해 이 모든 사상이 깨어져 버리게 됩니다.

무할례자들인 이방인들 집에 들어가 함께 식사를 했다는 것은 유대주의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이기에 유대 기독교자들은 베드로는 책망하였습니다.

이것에 대해 베드로는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그들에게 나타났는지에 대해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도 자신들과 똑같이 성령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에 그들 모두는 오늘 본문에 기록됨과 같이 고백합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여러분,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방인들에게 이루어진 놀라운 변화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그리고 이 회개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입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 즉 영생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회개하는 삶을 반드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이 믿음 가운데에는 반드시 회개의 삶이 전제가 되어져야 한다는 이 진리 또한 알고 믿고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7:10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회개가 꼭 필요한 것은 회개는 구원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하면서도 회개하는 삶을 살지 않아 결국에 그들 스스로 구원을 잃어 버리는 것을 봅니다.

참된 구원은 주님을 영접했다는 이 한 가지 사실과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믿음과 사건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회개의 삶이 뒷받침 되어져야 합니다.

세례요한도, 예수님도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유대인들을 향하여 처음 외친 하 마디가 무엇입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성경은 철저하게 구원에 대한 중요한 조건으로 회개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영생을 얻기 위하여, 구원을 얻기 위하여 회개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나는 이이 구원을 받았는데 무슨 구원을 또 받으라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분들을 위해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회개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산다고 그들 스스로는 자부했지만 스데반은 그의 설교를 통해 이렇게 책망합니다.

행7:51,53에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마19장에 한 부자관원인 청년이 영생을 얻을 방법에 대해 주님께 질문하였을 때에 그는 율법에 대해서는 어릴 때부터 다 지키었다고 말합니다.

이렇듯 유대인들은 나면서부터 율법을 지키는 훈련을 철저히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들이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았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롬2:29에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진짜 하나님의 백성은 율법만 따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영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해야 그가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며 이를 위하여 필히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철저하게 회개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서 온갖 종교적 행위에만 열심을 내고 있는 교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참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입니다.

기독교는 영적인 종교입니다.

타종교는 그들 스스로의 절제된 삶과 노력을 통해 상당히 높은 수준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살 수 있지만 결코 그들의 영혼은 변화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바로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회개란 바로 영에 이루어지는 놀라운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단지 자신의 잘못을 실토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를 통해 그의 영이 새롭게 바뀌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척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너희의 영혼이 바뀌어야 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렘4:4에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렘9:13,14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율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그 조상들이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영이 변하기 위해서 마음의 가죽을 베라,

너희의 마음이 완악할 때에 율법을 버리고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죄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유대인들의 종교적 열심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눅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기도를 통해 그들의 종교적 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눅18:11,12에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그러나 주님의 판단은 이러하였습니다.

마23:23,25,26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겉으로 율법을 지키는 열심만 있었지 더욱 중요한 그들의 영은 온갖 죄악으로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이를 다시 말하면 그 더러워진 영으로 행한 율법의 지킴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의 지킴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롬10:2에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열심은 있지만 회개하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결코 바르게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서 어찌 하나님의 뜻을 맞는 율법을 지킬 수 있었겠습니까?

유명한 신학자 바클레이는 죄란 하나님이 계셔야 하는 우리의 영의 자리에 나라고하는 자아가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쉽게말해서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되어 행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살고 있는 모든 것에서는 죄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영이 변하지 않으면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 되기 위해서 반드시 회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회개 없는 삶은 저가 아무리 종교적 열심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하나 그의 영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 십년 신앙생활을 해오지만 그의 인격도 삶도 변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교만과 권위주의만 늘어나고 마음은 더 강팍해지고 완악해지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지탄을 받고 있다면 필시 이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교인들이 부족해서가 아니요 성경을 배우지 않기 때문이 아니요 진정으로 회개하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은 구약과 신약에 동일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겔33:11에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드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들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벧후3:9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기독교인들에게 복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보다 더 중요할 순 없습니다.

그러기에 회개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회개가 생명을 얻는 것이라 하였고 더욱이 구원에 이르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냥 기도만 하지 마십시오.

가장 많은 기도를 해야할 것은 회개의 기도입니다.

여러분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삶은 회개하는 삶입니다.

종교적 열심이 있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 할수도 있지만 회개하는 사람은 결코 구원을 잃어 버리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며,

회개하는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바르게 지킬 것이며,

회개하는 바로 그 사람의 열심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이 중심으로 살지 못한 모든 것을 철저하게 회개하며 진정한 회개의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 여러분의 영이 거룩하게 변화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반듯하게 세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호두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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