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자 외,,,

하나님아들 2012. 8. 4. 17:14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자

(요 6:9)

요즘 날씨가 무척 덥지요. 잠깐 게임을 한 번 해 볼까요? 우리 친구들 과일 좋아하지요. 포도하면 박수 1번, 수박하면 박수 2번, 포박하면 박수 3번 치는 거예요. 포도, 잘했어요. 포박, 틀렸지요. 포박하면 3번 치라고 했지요. 어때요. 게임을 하니까 정신이 집중되지요. 정신을 집중해서 이 시간 말씀을 잘 들으세요.

우리 친구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지요. 속담을 보더라도 '티끌모인 태산'이지, '태산모아 티끌'이 아니예요. 우리 친구들의 몸도 70조 이상이나 되는 작은 세포 하나 하나가 결합되어서 인체를 구성하여 비로소 하나의 인간이 될 수가 있었어요.

성경에 보면 자기가 엄청나게 크다고 자그마한 소년을 깔보다가 비참하게 죽음을 당한 장군이 있어요. 누군지 알아요. 맞았어요.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이에요. 골리앗은 너무 커서 갑옷으로 몸은 가렸지만 넓은 얼굴과 이마는 가릴 수가 없었어요. 우리 친구들은 작다고 무시하거나 깔봐서는 안되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4복서에 모두 나오는 내용이예요. 우리 친구들도 지금까지 한, 두 번 이상 들었을 텐데,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시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가 되었다는 '오병이어'의 말씀인데, 잘 들어 보시기 바래요.

1. 하늘나라의 산수공식을 가져야 되요.

예수님과 제자들이 디베랴 바다 건너편의 벳새다 광야로 가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 들었어요. 그래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들었는데, 하루 종일 먹지를 못해서 배가 고프기 시작했어요. 아마, 여기 저기서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났을 거예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요. 배가 고파서 기운이 없어 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불쌍한 마음이 생기셨어요. 그래서, 빌립에서 물어 보시는데, "빌립아!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이렇게 물어보신 것은 빌립이 얼마나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한 번 시험해 보려고 하신 말씀이였어요.

빌립은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죽은 아이를 살리시는 등 엄청난 능력을 직접 봤으면서도 세상의 산수공식을 가졌어요. "지금 이 들판에 사람이 몇 명이나 되나 어디볼까, 어린이와 여자를 포함하면 한 2만명 정도 되겠는데, 그러면 한 사람 앞에 떡을 조금씩만 나눠줘도 어이구, 200데나리온도 모자라겠네" 빌립은 이런 생각을 하고는 예수님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했어요. "예수님! 제가 계산을 해 보니까요,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있어도 안되겠어요. 어떡하지요"

빌립의 대답은 세상의 산수 계산으로는 100점짜리 대답이었어요. 그러나 하늘나라의 산수계산으로는 0점짜리 대답이었어요. 빌립은 인간적인 계산에는 강했지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약했어요. 사실, 광야에서 남자 어른들을 포함해서 2만명 가까운 사람들의 떡을 준비한다는 것은 돈도 없겠지만, 많은 떡을 사온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에요. 1데나리온이 그 당시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니까, 오늘날 일당을 4만원 치더라도 800만원이나 되는 많은 돈이에요.

우리 친구들! 예수님이 빌립에게 원했던 대답은 돈이나 떡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셔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세요.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이런 대답이었어요. 예수님을 믿는 우리 친구들은 어려운 일을 당해도 하나님이 힘을 주시기 때문에 어려움도 이길 수가 있고, 안될 것 같은 일도 할 수가 있는 거예요. 세상의 산수 공식은 1더하기 1은 반드시 2 가 되어야 하지만, 하늘나라의 산수 계산법은 그렇지가 않아요. 1더하기 1이 백이 될 수가 있고요, 만이 될 수가 있어요. 왜 그런지 알아요.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 모자란 나머지 부분을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목사님이 문제를 하나 낼테니까 맞춰 보세요. 하늘나라의 산수 계산법인데, 2더하기 5는 18이다. 맞았을까요? 틀렸을 까요? 맞았다구요. 잘했어요. 왜, 그러냐면 2더하기 5는 물론 7이지만, 나머지 11을 우리의 믿음으로 하나님이 채워 주시기 때문이에요.

예를들어 안믿는 사람들에게는 암이나 백혈병 걸리면 어때요. "뭐, 김선생님이 간암에 걸렸다구,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어. 얼마 못사시겠네" 그러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때요. 세상의 힘으로는 못고치겠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면 의사가 못고치는 불가능한 암병도 깨끗이 고침을 받을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 하늘나라의 산수 공식이 얼마나 좋아요. 하나님 믿는 게 행복이지요.

2. 현재에 감사하고 있는 그대로 주님께 드려야 되요.

우리 친구들! 사람들을 보면 차이가 많이 나지요. 키가 큰 사람, 작은 사람, 예쁜 사람, 못생긴 사람, 부유한 사람, 가난한 사람, 똑똑한 사람, 바보같은 사람, 정말 가지각색인데 그러나 우리 인간이란 현재있는 자신의 모습에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면서 있는 그대로 자신이 가진 것을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리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60배, 100배로 축복하여 주셔서 주님의 큰 일꾼으로 삼아 주세요.

오늘 보세요. 한 아이가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예수님께 드렸을 때 남자 어른만 5천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잖아요. 우리 친구들이 작다고 무시해서는 안되요. 어린아이가 드렸던 보리떡이란 그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볼품없는 떡이었고요, 물고기도 멸치정도의 작은 고기였어요. 그렇게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도 예수님께서는 기쁘게 받으시고 수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데 아주 아주 귀하게 사용하셨어요.

우리 친구들! 혹시 남보다 못생겼다고, 키가 작다고, 공부를 못한다고 속상해 하는 친구들 있어요. 절대 그런 마음 같지 마세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못생겼어도, 공부를 못해도 진실한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 제가 남보다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주님을 위해서 이 몸과 마음을 드립니다. 주님의 훌륭한 일꾼이 되게 해 주세요"

그렇게 하나님께 나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주님의 큰 일꾼으로 만들어 주실 거예요. 세상적으로 비록 우리 친구들이 작게 보여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드려서 하나님께 쓰임 받는 큰 일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발병으로 죽은 아사왕

(대하 16:12)

유초등부 친구들도 이 노래는 다 알거예요. 우리나라 민요인 '아리랑'이란 노래인데, 거기보면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네" 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사 임금님이 바로 그와 같았어요. 하나님을 그렇게 잘 믿던 아사왕이 하나님을 떠나자 발병이 났고 결국엔 그 발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성경이 모두 1754페이지가 되는데, 아무리 찾고 또 찾아도 발병으로 죽은 사람은 아사 임금님 밖에는 없어요. 앞으로 혹시 "유초등부 친구들! 성경에 보면 발병으로 죽은 사람이 한 사람 있는데, 누구일까요?" 그런 성경 퀴즈가 나오면 "녜 아사 임금님입니다" 그렇게 대답을 하면 푸짐한 상품을 받을 거예요. 그러면 왜 아사 임금님이 발병이 나서 죽었는지 3가지로 이야기해 드릴테니까 잘 들어보세요.

1. 아사 임금님이 아람 나라의 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우리 친구들도 잘 아는 '지혜의 왕'인 솔로몬 임금님이 처음엔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끝에 가서 우상을 섬기는 산당을 만들어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함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어요. 그래서 남과 북으로 나누어지게 됐는데, 북쪽은 계속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됐고요, 남쪽은 유다라는 나라가 됐어요. 그런데 본문의 아사 임금님은 남쪽 유다의 세번째 임금님이었어요. 이제 아사 임금님의 39년 째에 북쪽의 이스라엘이 공격해 와서 중요한 성을 빼앗아 버렸어요. 수도인 예루살렘이 위험해 졌는데, 이때 믿음의 임금님인 아사왕이 "하나님 우리 유다를 도와 주세요. 북쪽의 이스라엘이 공격해 와서 우리가 위험에 처했습니다" 이렇게 기도를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어요. 7절에 보니까 '아람왕을 의지 했다'는 말이 나와요.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아람 임금님이시여! 우리 유다를 도와 주세요. 이스라엘이 우리나라에 쳐들어 왔으니 못된 이스라엘을 혼내 주세요" 이렇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옛날에는 믿음이 너무 좋아서 모든 우상 단지들을 없애고 어머니도 우상을 만들었다고 태후의 지위를 빼앗고, 또 애굽과 구스의 100만 대군이 쳐들어 와도 조금도 겁내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큰 승리를 거두웠던 아사 임금님이 슬프게도 변했던 거예요.

우리 친구들! 사람이란 옛날에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지금 하나님을 열심히 믿지 않으면 마귀한테 다 넘어갈 수밖에 없어요. "내가 옛날에 얼마나 주일학교 잘 다녔는지 알아", "내가 옛날에 기도 대장이었고, 전도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알아 영철이, 경희, 상구 다 내가 전도한 친구들이야" 물론, 하나님이 다 기억하시고 하늘나라에 가면 그에 대한 상을 받겠지만 믿음이란 현재가 가장 중요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친구들이 주일날 빠지지 말아야 되고요, 매일같이 말씀읽고 기도해야 되는 거예요.

달리기 선수들을 보세요. 어저께 열심히 뛰었다고 오늘 쉬는 선수들 봤어요. 마라톤 선수들은요 하루에 보통 40-50km 뛰어요. 그것도 하루도 빠짐없이 뛰는데, 얼마나 열심히 훈련을 하는지 몰라요. 우리 친구들도 매일같이 믿음의 훈련을 쌓아서 훌륭한 신앙의 선수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2. 아사 임금님은 하나님의 책망을 전한 선지자를 화가 나서 감옥에 가두었어요.

다윗 임금님은 나단 선지자가 다윗의 죄를 지적했을 때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하나님께 고백하고 침대가 젖어 눈물바다가 될 정도로 회개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더욱 훌륭한 임금님이 되었어요. 그런데 아사 임금님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선지자가 찾아와서 "아사 임금님이시여! 임금님이 아람왕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였다면 아람나라도 임금님의 손아래 있고 더욱 강한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님께서 하나님을 의지하기 않았기 때문에 이제 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아사 임금님은 하나님앞에 자신의 잘못을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크게 화를 내면서 하나님의 사람을 감옥에 가두어 버렸어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화가 나셨겠어요.

9절에 보면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고 기록이 되 있어요.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살피시기 위해 이리 저리로 달리고 계신다는 말씀인데, 그 만틈 진짜 그리스도인이 드물다는 거예요.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칭찬하는 말보다는 책망하는 말을 더 좋아하고, 잘못을 지적하면 "네 알았습니다. 다음부터 고치겠습니다" 또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도 받고,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들을 수가 있는 거예요.

3. 발병이 난 아사 임금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세상의 의원들에게 구하였어요.

이제 하나님의 선지자가 잘못을 지적한 후 3년이 흘렀어요. 그럼에도 아사 임금님은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사 임금님에게 벌을 내리셔서 발에 병이 나게 하셨어요. 아마, 이 발병은 발가락, 무릎의 관절이 부어 오르고, 몹시 쑤시는 굉장히 아픈 병이었을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왕이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를 짓게 되면 여러 가지 병으로 벌을 내리세요.

여호람이라는 왕은 악한 행동만 하다가 창자에 병이 들어 창자가 터져서 죽었구요, 웃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문둥병에 걸려 죽었어요.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이렇게 하나님께 혼나게 되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친구들은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빨리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되요.

회개하지 않고 세상의 의원들만 찾아다닌 아사 임금님은 결국 발에 난 병으로 인해 죽고 말았어요. 슬프지요. 그러니까 우리 친구들은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려서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친구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렘 33:2-3)

우리친구들 이런 노래가 있지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강정식' '그 이름 멋이 있구나' 우리에게는 이름이 다 있어요. 조기형, 신경희, 박주호등 그런데 이름을 안다고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어요. 없지요. 하나님도 하나님이란 이름만 갖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가 없어요.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이제 원수 나라인 바벨론의 창과 칼앞에 비참하게 멸망을 당하게 될 유다 백성들을 바라볼 때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워서 감옥 안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찾아 오셔서 응답해 주신 내용이 우리 친구들이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이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3가지로 말씀드릴 테니까 잘 들어 보세요.

1. 하나님께서는 일을 행하시는 분이예요.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계시거나, 주무시는 분이 아니에요. 일을 하시는 분이에요. 천지를 창조하신 것도 일하신 것이요. 그것을 다스려 나가시는 것도 일하시는 거예요. 요한복음 5장 17절에 보니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어요.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니라 일을 하시는 분이신데,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우리들도 부지런히 일을 해야 되는 거예요. 사도 바울은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하고 있어요.

지금도 이 세상과 우리를 돌보시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따라 우리 친구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먹고, 운동하고, 놀고 해야 되요. 사실, 우리 인간이 움직이는 모든 것이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최고의 일은 주님의 일이에요.

이 세상에서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는지 몰라요.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는 말을 한 나폴레옹은 하루에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어요. 그래서 프랑스의 황제가 될 정도로 성공을 했지만, 그 안에 예수님이 없으니까 죽을 때는 세인트 헬레나 섬에 감금되어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하나님을 떠나서 흘린 수고와 땀은 죽을 때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어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때 보람이 있고 가치가 있는 거예요(고전10:31).

2.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에요.

하나님께서는 마음속에 계획하신 것을 그대로 행하셔서 성취하시는 분이에요. 사람들이 보기에는 실패한 것 같아도 결국 성공으로 이끄시는 분이 하나님이세요.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것이 1884년 9월 20일 제물포로 들어온 알렌 선교사 부터인데, 그런데 그 이전에 더욱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그것이 무엇이냐면 1866년 미국의 상선인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온 27살의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님이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조선 관리들에 의해 비참하게 죽고 말았어요. 그래서 겉으로 볼때는 하나님이 실패하신 것 같았는데, 최후의 순간에 백사장에 던진 몇 개의 한문 쪽복음 중에 하나를 조선 관리 중 한 사람이 주워서 읽게 되었어요. 놀랍게도 그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사실은 후에 그 사람이 미국 선교사에게 찾아와 고백을 해서 알려지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신데, 성경 66권의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 친구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약속하신 성경 말씀은 반드시 다 이루어지는데 구약, 신약이라는 말도 옛 약속, 새 약속이라는 말이에요.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행하시고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래요.

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시는 분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좋으신 분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에는 조건이 하나 있어요. 그것이 무엇이냐면 간절히 그리고 열심히 부르짖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 친구들은 언제 부르짖나요. 아주 급하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 부르짖겠지요. 물에 빠져서 죽어 가고 있는데 점잖게 "여보세요 누구 없으신가요, 제가 지금 물에 빠져서 죽어가고 있사오니 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 사람 봤어요. 당연히 그런 사람은 없겠지요. 젖먹던 힘까지 다 모아서 큰 소리로 "사람 살려요, 누구 없어요, 빨리 살려 주세요" 하고 외칠 거예요. 집에 불이 났을 때도 마찬가지 겠지요. 큰 소리로 "불이야" 하고 외칠 겁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되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들어주세요.

예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던 귀신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이나,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다 응답을 받았어요. 에드워드 페이손이라는 목사님은 무릎을 꿇고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마루에 홈이 파였다고 해요.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이 들어주시고 또 우리가 모르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세요.

본문에 나오는 예레미야 선지자도 하나님께 수없이 부르짖으니까 유다가 앞으로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멸망당하고, 포로로 잡혀가지만 70년 후에 다시 돌아오는 해방을 맞이할 것에 대해 미리 알려 주셨어요. 그리고 우리 친구들도 잘아는 아브라함에겐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알려 주셨으며, 노아 할아버지에겐 120년 전에 홍수의 비밀을 알려 주셨어요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큰 비밀을 보여 주시는 거예요. 우리 친구들! 얼마나 신이 나요. 남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안다는 것이, 그런데 그 비밀이 어디에 다 담겨져 있냐면 바로 우리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책 속에 있어요. 그러니까 기도하면서 성경을 열심히 읽으면 말씀 속에 감추어진 비밀을 알게 되요. 그런데 우리 친구들! 비밀중에 가장 큰 비밀이 무엇인지 알아요. 그것은 바로 복음의 비밀이에요.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받는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비밀이에요.

교회를 다녀도 이 비밀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리고 아예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들은 이 비밀을 절대로 알 수가 없어요. 이 비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죽어서 다 어디에 가겠어요. 지옥에 가는 거예요. 우리 친구들은 이 복음의 비밀을 다 알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모두 골인할 수가 있어요.

이제, 우리 친구들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았으니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되요. 그게 무엇이냐면 복음의 비밀이신 생명의 예수님을 전하는 거예요. 오늘도 내일도 복음의 비밀이신 예수님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열왕기서의 메시지

열왕기서는 본래 한권의 책이었다. 솔로몬왕 이후에 남북으로 분열된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를 교대로 기록하고 있는데 열왕기하에는 여호야긴이 바벨론 포로로 갔다가 37년만에 풀려났다는 사실로 끝을 맺고 있다. 솔로몬의 죄와 그의 자손 르호보암의 잘못된 신앙과 통치로 분열되었던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를 하나로 기록한 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이 약속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야곱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1. 유다의 쇠퇴 원인

유다는 점점 쇠퇴하고 결국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끌려간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게 망하기까지 약 130년동안을 악한 왕들의 실정에 시달린다. 이는 모두 다 하나님의 통치대신 왕을 구하였던 이스라엘이 걸어야 했던 길이요,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아니한 결과이다. 우리 또한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세상의 고난에 시달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 하나님의 선지자의 사역

그러나 본서에는 엘리야를 이어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선지자가 된 엘리사의 사역이 나온다. 수넴 여인의 아들이 살아나고 나아만의 문둥병이 나았으며 이세벨이 하나님의 예언대로 비참하게 죽는등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가 기록되어 있다.

3. 열왕들

유다는 르호보암에서 시드기야까지 345년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1세로부터 호세아까지 210년의 역사속에 믿음의 왕이 세워질 때는 나라가 평안하고 불순종하는 왕이 세워질 때는 적국의 노략물이 되고 포로가 되는 부침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이 오로지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내려짐을 보여주는 역사적 진실이 되고 교훈이 된다.

엘리야와 아하시야

(왕하 1:1-8)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속국이었던 모압이 아합왕이 죽은 이후에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때에 이스라엘왕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들었다. 이 때문에 그는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병이 나을 것이지 물어보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진리가 그 속에 없는 자는 어두울 때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1. 엘리야의 사역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서 아직 사역이 끝나지 않았다. 그가 많은 고초를 겪어 아합왕 시대를 지났지만 아직도 이스라엘은 악한 왕들로 인하여 고초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그들을 위로하고 인도하셨다.

2. 어리석은 아하시야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길을 여호와께 묻지않고 우상에게 묻는다. 그리고 인생을 의지한다. 하나님은 이것을 엘리야에게 알리시고 그의 불신앙으로 인하여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을 것을 예언한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도 않고 영화롭게도 아니하는 자의 길은 필경 사망이다(롬1:28-29).

3. 말씀을 전하는 사명

하나님의 종이 전하는 말씀은 복음이 되든 심판이 되든 순종해서 전하는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는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에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도 예수로 말미암는 구원과 함께 거부해서 얻게될 심판과 지옥의 멸망도 담대하게 전해야 한다.

아하시야의 멸망

(왕하 1:9-18)

바알세붑은 '파리의 신'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본래는 왕이란 뜻의 '세불'이었다. 마10:25에 나오는 '바알세불' 즉 '바알왕'이라는 그 귀신의 왕이다. 아하시야가 바알을 좇은 것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사랑치 않고 자신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없는 자기 사랑은 결국 세상에서 실패하는 지름길이 된다.

1. 아하시야의 뒤늦은 회개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다. 언제나 우리를 달아보고 재어 보시며 돌아설 때까지 기다리신다. 하지만 구원의 문이 일단 닫히면 뒤늦게 후회해도 하나님의 진노는 멈추지 않는 것이다. 아하시야는 멸망받을 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성도들은 회개하라고 하신 현실에서 그리고 지금 당장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회개해야 한다.

2. 오십인을 보내매

왕의 사자가 왕에게 가서 엘리야의 말을 전했다. 왕은 엘리야와 그의 권능을 아는 지라 오십 부장과 그 오십인을 보내어 엘리야를 청하였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늘의 불을 불러 오십인을 사르게 했고, 다시 또 오십부장과 오십인이 오나 그들도 불에 타 죽었다. 예수님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많은 은혜와 용서를 베푸심은 후일의 심판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3. 심판 멸망

평소에 그속에 진리의 기름을 많이 준비해 둔 자는 영감을 얻는다. 그래서 심판의 때를 깨닫는 것이다. 진리의 기름을 얻으려면, 말씀을 많이 읽고 들어야 한다. 여타 독서량보다 성경읽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성령의 영감을 얻기 위해 기도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래야 말씀을 체험한다.

승천하는 엘리야

(왕하 2:1-11)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쓰실 종을 세우신다. 그리고 때가 되면 불러서 하늘나라의 일꾼으로 쓰신다. 그리고 새로운 종이 예비 되었으니 그는 오랜시간 이때를 위하여 준비되고 훈련되어진 종이다. 우리도 이처럼 주님 앞에 겸손하게 훈련을 받으면 때가 되매 높이 들어 사용하신다.

1. 당신을 따르리니(2절)

엘리야의 제자인 엘리사는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그를 쫓았다. 이는 하나님의 종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능력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지만 우리가 간절히 구해야 할 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엘리사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2.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라(6절)

엘리야를 끝까지 쫓으려는 엘리사 앞에 많은 반대와 만류가 있었다. 엘리야도 그만 따르라고 했지만 천국의 상급을 이미 바라본 엘리사는 죽기까지라도 따를 것을 고백하였다. 우리 또한 온전한 주의 종이 되려면 본토와 친척 아비집을 버려야 하고(창12:1-3) 아비와 어미집과 전토도 버려야 하고(막10:29-30) 죽기까지 주를 쫓아야 한다(마19:29).

3. 당신의 영감을(9절)

엘리야가 요단강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겉옷으로 그 물을 갈랐다. 이에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행할 것을 구하라 하자 엘리사는 스승의 영감을 갑절이나 있기를 구하였다. 그러자 엘리야는 자신이 승천하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도 큰 능력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능력의 근원이 엘리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한 엘리야의 진실한 신앙이 보여진다. 결국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엘리야는 승천했고 엘리사는 소원을 성취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왕하 2:12-25)

엘리사는 엘리야의 승천을 목격한다.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본 것이다. 이로 인해 엘리사는 하나님께로부터 새로운 능력을 얻었다. 이는 여호와의 은혜요 엘리야의 약속한대로 였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확증시키기 위한 증거로서 채택된다.

1. 엘리야의 겉옷(14절)

요단 저편에서 엘리야의 승천을 지켜 보았던 엘리사는 다시 요단을 건너 이편으로 와야 했다. 다시 요단물을 갈라야 한다. 엘리사는 스승의 겉옷을 들고 엘리야가 하던대로 해 보았다. 그랬더니 요단이 다시 갈라졌다. 하나님의 능력이 힘하도록 하려면 믿음의 스승을 따라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그때 엘리야의 하나님은 엘리사의 하나님이 되고 또 나의 하나님이 된다.

2. 계속되는 능력(19절)

엘리사가 여리고에 올라갔더니 엘리사를 알아본 성읍 사람들이 좋지 못한 물을 고쳐 주기를 구하였다. 이에 엘리사는 소금을 새 그릇에 담아 물 근원에 던졌더니 좋은 물이 되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찌니라"고 선포하자 그대로 되었다. 믿음의 선포는 하나님이 보증하시므로 그대로 되어진다.

3. 젊은 아이들의 조롱

엘리사는 대머리였다. 길거리의 비루한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종을 조롱하자 그들에게 암콤들이 나아와 찢어 죽였다. 하나님을 무서워함같이 주의 종들을 두려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 종을 조롱함은 그 수고를 조롱하는 것이다.

모압의 반격

(왕하 3:1-27)

유다왕 여호사밧의 십팔년 되던 해에 유다에서는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었다. 저가 악을 행하기는 했지만 그 부모와 같이는 아니하였다. 바알의 주상들은 제하였으나 여로보암이 범한 금송아지 우상숭배는 금하지 않았다(1-3절).

1. 세 왕의 연대(5절)

모압왕은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던 자였다. 그러다가 아합이 죽자 배반하였다. 마귀 역시 하나님의 백성의 영적인 힘이 약해지면 금방 우리를 유혹해 무너뜨린다. 이스라엘은 유다와 에돔과 연대하여 공격준비를 했다. 그러나 칠일동안 군사와 생축을 먹일 물이 없어 엘리사에게 구하게 된다.

2. 가득해진 물

엘리사가 세 왕에게 이르러 말하였다. 유다왕 여호사밧이 아니라면 보지도 아니하리라 하였다. 우리 역시 하나님을 볼 수도 없으나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니 예수님의 공로가 크다 할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기도로 눈물의 샘을 파라고 하신다(시84:6).

3. 승리의 개가

골짜기에 물이 가득해지자 또다른 기적이 일어났다. 아침에 해가 떠 물에 비취자 그 붉은빛이 모압진에서 보기에는 가득해진 피로 보였다. 다급해진 모압은 자신의 장남을 번제로 드렸으나 이미 기울어진 전세는 회복할 길이 없었다. 성도가 세상에서 승리하려면 하나님의 축복과 기적을 받아야 한다.

① 세상사람의 삶의 방법 - 과학적, 저축, 근면

② 성도의 삶의 방법 - 기적과 축복

그릇을 채운 기름

(왕하 4:1-7)

하나님은 시대 시대마다 긍휼을 베풀어야 할 종들에게는 긍휼을 베푸신다. 특히 남편이 죽은 생도의 그 가정을 돌아 보셨으니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 또 그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 보는 자를 돌아보사 도우신다.

1. 한 병 남은 기름

선지자의 생도는 이미 죽었고 그 부인은 과부가 되어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빚으로 인하여 그 두 아이가 종으로 빼앗겨 갈 위기에 까지 이르렀다. 이 마지막에 여인은 엘리사에게 나아와 간청한다. "보소서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여호와를 경외하던 믿음의 생도였으니 도와 주소서" 하자 여인에게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한 병 남은 기름 뿐이라고 대답한다.

2. 그릇을 빌려오라

엘리야 시대에도 하나님은 그 가뭄 중에 사르밧 과부를 돌아 보셨다(왕상17:14). 전심으로 주를 찾는 자에게는 정녕히 돌아보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엘리사는 모든 그릇을 빌려오라고 했다. 그릇을 준비하는 만큼 부어 주신다.

3. 그릇마다 채워진 기름

그릇에 기름을 붓기위해 엘리사는 문을 닫았다. 오병이어 때도 있는 것을 가지고 나누어 줄 때마다 기적이 일어났으니 이는 참으로 온전한 믿음을 요구하는 행위인 것이다. 기름병을 기울여 붓고나면 또 생기고 또 생기고 하여 그릇을 준비한 만큼 다 채웠으니 하나님의 역사는 구하는대로 바라는 대로 이루어짐을 깨달아야 한다.

수넴여인과 엘리사

(왕하 4:8-17)

주님의 종을 대접함은 그 상전이신 주님과 하나님을 공경함이다. 수넴에 있는 한 여인은 엘리사를 정성껏 접대했다. 그러자 여인의 가장 큰 고민이 해결되었다. 이는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든다는 증거이다(엡5:10).

1. 주의 종을 섬김

주의 종은 항상 피곤하다. 저가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였다고 하나 사람인 이상 피곤을 느낄 것은 당연한 이치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전지역을 다니며 말씀을 전하였으니 피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수넴지역에 사는 한 여인이 강권하여 음식을 대접하며 섬기니 그것이 베다니의 마리아 삼남매처럼 예수님을 대접함 같았다.

2. 엘리사의 다락

그뿐아니라 그 여인은 주의 종을 위하여 몸을 쉴수 있는 다락을 만들었다. 침상과 책상도 준비하여 주의 종을 극진히 모셨으니 이는 진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에 엘리사는 그를 위하여 틈나는 대로 구하게 되자 그 집의 소원을 알게 된다. 주의 종에게 기억됨이 복이 되는 것은 대접받은 종은 기도로 갚게 되기 때문이다.

3. 아들을 얻게 될 축복

엘리사가 여인을 불러 소원을 묻는다. 혹 왕에게 청할 것이 있다고 하여도 들어줄 의사가 있음을 말했다. 여인은 겸손하게 없다고 하였으나 시종을 통하여 아들이 없음을 듣는다. 여인에게 돌이 되면 아들을 안게 되리라고 축복한다. 여인은 믿지않고 넘겼지만 사라에게 이삭을 주심같이 하나님은 축복할 자를 꼭 축복하신다.

다시 살아난 아들

(왕하 4:18-37)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 밖에 없다. 그래서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인 것이다. 엘리야는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렸고 그의 영감의 갑절을 구한 엘리사도 수넴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렸다. 욥바에 있는 도르가를 베드로가 살렸으니 이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때문이었다. 이처럼 예수님은 생명의 주요 부활의 주로 후일에 모든 믿는 자를 살려 내신다.

1. 아들이 죽다

아들이 죽자 차라리 없는 것이 나을 뻔 했다고 한다. 사랑하는 자가 죽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하나님도 독생자를 우리 위해 주셨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하지만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깨닫게 되는데 아브라함도 독자 이삭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다. 이는 능력과 부활을 믿었기 때문이다.

2. 여인의 고통

말로 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신음할 때는 그 영혼의 신음소리를 하나님은 들으신다. 아이의 죽음을 남편에게도 알리지 아니하고 나귀를 타고 갈멜산에 있는 선지자에게 알렸다. 엘리사도 여인이 입을 열기 전까지는 몰랐으니 응답받는 기도는 구체적으로 입을 열어 구하여야 받는다.

3. 엘리사의 기도

여인은 주의 종을 강청하여 집으로 데리고 갔다. 엘리사는 죽은 아이 위에 올라가 엎드리니 점차 몸이 따뜻해지고 다시 살아났다. 죽은 자를 살리는 분은 오직 예수님의 권세밖에 없다. 이는 그가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생명의 문을 열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도 죽을 일에 빠지나 다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이다.

흉년이 임함

(왕하 4:38-44)

아담의 범죄 이후 세상은 기근과 전쟁, 그리고 인생의 수고로움과 고난이 가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언제나 하나님은 택한 자들과 주를 섬기는 자들을 특별하게 돌보아 주셨다. 광야 40년 중에도 만나와 메추라기가 멈추지 않았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1. 독이 있나이다.

길갈에는 흉년이 들었다. 그러자 그곳에 있는 생도들도 먹을 것이 모자랐다. 엘리사는 그들에게 솥을 걸고 국을 끓이라고 했다. 채소를 캐러 갔다가 야등동굴만 잔뜩 캐어 가져다가 썰어 국에 넣었다. 국을 먹으려다 보니 독이 들어 있어 먹을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종들이 당하는 고난엔 이처럼 훼방의 역사가 항상 배후에 있다.

2. 가루를 던졌더니

엘리사는 가루를 가져오라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독이든 국에 던졌다. 그랬더니 해독되어 국을 먹을 수 있었다. 가루에 무슨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광야 마라에서도 쓴물을 만났을 때 한 나뭇가지를 집어 넣어 던져 달게한 것처럼 믿음으로 순종할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렇게 한 것이다(롬15:25).

3. 배부르게 된다

어떤 경건한 사람이 그 흉년에도 처음 익은 곡식 얼마를 생도들에게 먹으라고 가져왔다. 그러나 생도 일백명이 먹기에는 너무나도 적은 양이었다. 하지만 엘리사 선지자는 생도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면서 먹고 남으리라고 말했다. 생도들은 의심했지만 나누매 일백명이 배부르게 먹고 남았다. 하나님의 돌봐 주심을 믿고 따르면 성도의 삶엔 항상 축복과 기적이 따른다.

나아만 장군

(왕하 5:1-14)

하나님의 이름과 그 능력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나라를제사장 나라로 삼아서 온 백성과 민족들을 다 하나님 앞에 화목시키려 하심이다. 즉 세계선교적 계획이 구약에도 나타나 있다. 나아만은 아람 사람이지만 한 계집종을 통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들었고 그 종의 이름을 들었다. 복음은 들을 때 믿음이 시작되는것이다.

1. 잡혀간 계집

하나님의 섭리는 항상 놀랍다. 어린아이와 젖먹이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권능을 세우신다. 포로로 잡혀갔던 일곱 살 계집아이가 엘리사를 자랑했다. 한국 초대교회 때도 주일학교 학생을 통하여 부모들이 구원 받은 예가 많았다. 하나님은 연약하고 비천한 것을 들어 쓰신다.

2. 예물을 가지고 온 나아만

문둥병자였던 나아만은 마음이 가난한 자였다. 이처럼 심령이 가난한 자가 믿음의 눈을 떠서 천국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는 왕에게 허락을 받고 이스라엘로 왔다. 이스라엘왕은 그가 오는 것을 두려워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영광을 크게 선포하실 것이었다. 현재적 상황만을 보고 두려워 하는 것은 믿지 않는 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범사에 기도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

3. 요단 강물의 목욕

왕은 두려워 자기옷을 찢었으니 일곱 살 계집종 보다도 못한 믿음을 가진 것이다. 엘리사는 그를 불러 요단 강물에 들어가 일곱 번 씻으라 지시한다. 나아만은 자기의 환처를 만져주고 낳게 해주리라 믿었는데 물에 씻으라 하니 노하여 돌아가려고 했다. 주의 십자가 복음은 이처럼 세상 사람들에겐 미련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공로없이 선물로 받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믿음과 순종이다.

나아만의 감사

(왕하 5:15-27)

나아만은 건강해졌다. 그 기쁨에 보답하기 위해 예물을 드렸다. 하지만 주의 종은 그것을 거부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의 무한함을 보이기 위해서 였다. 어찌 은혜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반대로 게하시는 그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도 재물을 사랑하다가 실패한 인생이 된다.

1. 엘리사의 거절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고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이방신처럼 대가를 받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의 마음에 깨끗함을 보시고 회개하며 자복하는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것이다. 주님도 우리에게 거저 받았으니 거저 베풀라고 하셨다(마10:8).

그러자 나아만은 예물 드리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약속한다. 이것이 은혜 받은 자의 바른자세인 것이다.

2. 게하시의 실패

돈을 사랑함은 일만악의 뿌리가 된다(딤전6:10). 게하시는 나아만을 뒤쫓아가 거짓말을 해서 그 선물을 가로 챘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집에 감추었다. 결국 그는 두가지 죄를 짓게 된 것이다. 이처럼 죄는 죄를 부르게 된다.

3. 문둥병의 옮김

주의 종을 속이는 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다(행5:4).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성령을 속였다고 해서 죽었다. 그는 엘리사에게 또 거짓말을 했다. 이 일로 인하여 나아만의 문둥병이 그에게로 옮아 가게 되었으니 결국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만 것이다. 죄는 파괴하는 기계이다. 죄를 숨겨놓고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미련한 것이다. 죄는 모양이라도 버려야 산다.

떠오른 도끼

(왕하 6:1-7)

그때나 지금이나 주의 종의 길을 걷는 자는 의식주의 고통과 훈련을 받는다. 더욱이 선지 생도 시절에는 말로 할 수 없는 고난을 겪는 것이다. 선지 생도들이 먹을 것 입을 것 처소 때문에 고생하였다. 하지만 남을 사랑하고 돕는 것은 넉넉하여서가 아니라 은혜 받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1. 도끼가 빠져

당시에도 많은 선지후보생들이 좋은 스승을 따라 다녔다. 엘리사에게도 많은 생도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기거할 처소가 좁게 되었다. 어려운 형편에 나가 나무를 베어 처소를 지어야 하는데 그만 빌려온 도끼가 물에 빠지고 말았다. 철연장이 귀한 시기이니 만큼 물어 낼려면 노예가 되어야 할 처지까지 간 것이다.

2. 나무를 베다가

열심히 일하는 자는 항상 문제도 일으키고 실수도 한다. 그러나 주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묻어두고 가만있는 자를 게으르고 악한 종이라 하셨다(마25:26). 도끼를 빌려온 생도는 자루가 빠져 도끼가 물에 빠졌으니 그 마음이 녹아 얼마나 상심되겠는가? 주의 일을 하다보면 낙심되는 일, 비난받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사실을 하나님은 알고 계시다.

3. 떠오른 도끼

인간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하시니 하나님은 전능자 이시다. 우리가 믿는 것은 그러한 그분의 전지 전능을 믿는 것이다. 믿을 때에는 자연법칙과 과학적 법칙을 뛰어 넘는 기적과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기적과 축복의 법으로 살기를 기도하자. 하나님과 통하면(신통) 사람과 통하고(인통) 물질과도 통한다(물통).

아람 군대의 침입

(왕하 6:8-23)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지 않으면 많은 일이 없는데 분주하고 하루 종일 분주하게 돌아 다녀도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하나님없이 일을 도모하는 세상 모든 군왕의 일어섬이 다 헛되고 헛된 것이다. 주께서는 그들을 비웃으신다(시2:4).

1. 아람왕의 계획이 드러남

밀실에서 아람왕이 그의 군대 참모들과 모월 모일 모시에 쳐들어가 왕을 기습하기를 의논 하였는데 그것이 다 들통나 버린 것이다. 누가 도청장치하거나 첩보한것도 아닌데 왕이 알게 된 것은 주의 사자가 엘리사에게 알렸고 그것을 왕에게 가서 일러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쟁이 될 턱이 없다. 화가 난 아람왕은 먼저 엘리사부터 잡으려고 도단성으로 집결한다.

2. 이스라엘의 병거

결국 아람왕은 많은 군사를 보내어 밤중에 그 성을 에워 쌌다. 엘리사의 종이 나가보니 수만의 군사와 말과 별거가 성을 포위해 버렸다. 깜짝놀라 엘리사에게 고하니 엘리사는 그의 눈을 열어주어 그 뒤에 있는 천군 천사들의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했다. 그 숫자는 둘러선 아람 군대보다 많았다. 하나님은 기도하고 주의 일을 행하는 우리에게 이러한 천군천사의 호위를 붙여 주신다. 그러므로 주의 일을 할 때도 내 힘으로 하면 안된다.

3. 선대하여 보냄

아람 사람들은 엘리사의 기도대로 눈이 감기워져서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일순간에 포로가 되어버린 그들을 사마리아로 데려와서 눈을 뜨게 기도했다. 그리고는 그들을 떡과 물을 먹여 돌려 보내었다. 그랬더니 다시는 이스라엘을 침범치 못했다. 선으로 악을 이긴 것이다. 우리는 항상 믿음의 싸움에서 기도로 이겨야 하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그래야 뒤에도 문제가 없다.

포위된 사마리아성

(왕하 6:24-30)

아람군대를 선히 돌려보내고 한참 지난후에 아람왕 벤하닷이 다시 쳐들어 와서 사마리아성을 포위했다. 장기적인 포위로 말미암아 사마리아성의 사람들은 굶어 죽기에 까지 이르렀다. 심지어 어떤 여인들은 자신들의 아이까지 잡아서 삶아 먹기에까지 이르렀다. 나귀머리 하나에 은 팔십세겔이요, 합분태 사분일 갑에 은 다섯세겔이나 하는 엄청난 물가 폭등이 일어났지만 구원 받을 길은 전혀 없었다. 오늘날 이러한 재앙이 이스라엘에 다시 임하게 된 것은 무슨 이유인가?

1. 악의 끈질김

모든 악의 배후에는 악령과 사탄의 세력이 있다. 죄의 유혹은 우리가 성령충만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땐 맥을 못 추지만 그와 동시에 우는 사자와 같이 항상 우리를 노리다가 믿음이 약해지면 공격해 온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이러한 영적 전투에서 벗어나 피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마귀를 대적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2. 감사치 않은 이스라엘

아람의 1차 침입시 엘리사를 통하여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였었는데 이스라엘은 회개도 감사도 하지 아니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아람왕 벤하닷을 통하여 징벌하신 것이다.

3. 환난에 빠진 사마리아성

심각한 기근속에 굶주림이 임하였고(25절) 아람군대의 포위로 물자 공급은 중단되었으며(27절), 자식을 삶아 먹는 저주의 삶(28-29절)을 통해 말세에 나타날 마지막 환난 때의 극심한 상황을 우리가 엿볼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있는 신자는 그때에도 안보하심을 받기위해 회개하고 감사하는 열매를 많이 맺어 놓아야 할 것이다.

자객이 온 것을 미리 앎

(왕하 6:30-33)

이스라엘왕 여호람이 아이 삶아 먹은 여인들의 송사를 듣고 분하여 오히려 옷을 찢고 이 문제의 탓을 엘리사에게 돌렸다. 엘리사가 사마리아성에 있기 때문에 아람군대가 쳐들어 왔으며, 또 저가 사마리아성에 있다면 지난번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구원의 능력을 보여 주었을 텐데 오히려 그렇지 않고 숨어 보이지 아니한다고 그를 죽이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1. 왕의 실수

여호람이 자기가 죽을 실수를 저질렀으니 이와같이 악인은 자기의 죄를 보지도 못하고 항상 타인의 눈에 있는 티만 보고 분개하게 된다. 왕이 엘리사를 찾아 죽이려고 한 결정적 실수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된다.

2. 자객을 보냄

여호람은 엘리사를 죽이려고 찾다가, 찾으매 자객을 보낸다. 자신의 죄가 있는 자는 항상 그 죄를 감추기 위해 제2, 제3의 범죄를 더 저지르게 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가 되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이 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3. 자객이 온 것을 미리 안 선지자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고 좇는 자는 시험을 이기게 하실뿐아니라 미리 피할 길도 주시고 능히 이겨 감당하게도 하신다(고전10:13).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힘써 하나님 말씀을 듣고 새기며 순종하는 것을 제일로 여겨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님앞에서 겸손하게만 살면 모든 문제와 환난에서부터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실 것이다.

시험을 이기려면,

① 마음에 진리가 가득해야 한다. 그래야 어두움속에 헤매지 않는다.

② 하나님과만 의논한다. 기도로 하나님하고만 의논해야 한다.

③ 선으로 악을 이긴다.

복음을 전한 네 문둥이

(왕하 7:1-20)

엘리사는 선포하길 이제 내일 이맘때면 사마리아성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자유케 되어 밀가루와 보리가루 값이 정상으로 내려가게 되어 평온한 삶이 회복되어 질 것을 예언헀다. 복음이 선포된 것이다. 그러나 복음이 선포되면 적극적으로 그것을 믿고 받는 사람과 배척하고 조롱하는 사람의 두 부류로 나누어 지게 된다.

1. 복음을 버린 장관

엘리사가 말을 전할 때에 한 장관이 엘리사의 말을 비웃었으니 그가 비웃은 것은 사람의 말을 비웃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은 것이고, 사람의 계획을 비웃은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역사를 비웃었으니 어느 시대나 자기 지식에 똑똑하여 진리를 배척하는 자는 있게 마련이다. 엘리사는 그의 믿음대로 그는 내일 그 구원을 보기는 하되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라 선포했다. 누구든지 그 입의 고백에 따라 열매를 먹는 것임으로 핑계할 것이 하나님께는 없다.

2. 성문밖의 네 문둥이

이스라엘에서 문둥이는 마을에 들어오지 못했으니 전쟁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도 성문 어귀에서 얻어먹지 못해 굶어 죽기를 기다리는 데 죽을바엔 실컷 먹고 죽으리라는 심령으로 아람군대 진영으로 가게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들의 발걸음은 큰 군대의 진군소리로 들리게 되었다. 그 소리에 놀라 모든 아람 군대가 도망하고 말았으니 비어있는 진영에 은금과 먹을것이 풍부하였다. 기적이 나타나고 축복이 나타난 것이다.

3. 소식을 고한 문둥이

그들은 은, 금과 의복을 가져다가 묻고 감추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성안에 갇혀 이 기쁜 소식을 모르고 떨고 있는 동족들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지 않으면 하나님께 화를 받으리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가서 소식을 전하매 백성들이 성문을 박차고 나가 아람사람의 것들을 차지 하였으나 엘리사의 복음을 거역하였던 그 장관은 급히 몰려 나가는 백성들에 떠밀려 밟혀 죽고 말았다. 복음 전도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발이다.

수넴여인의 형통

(왕하 8:1-6)

엘리사를 공궤하였던 여인이요 또 이전에 죽었던 아들을 살려 주었던 수넴여인에게 또 한 번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였다. 평소에 친하였던 수넴여인에게 엘리사 선지자는 이스라엘에 다가올 재앙의 비밀을 가르쳐 주었다. 7년동안 이 땅에 기근이 임하므로 잠시 피할 것을 일러 주었던 것이다.

1. 비밀을 아는 축복

여인은 주의 종의 말을 듣고 즉시 순종하여 일어나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 권속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칠년을 우거하여 기근을 면하였으니 이와같이 주님과 사귐이 있고 주님을 사모하는 우리들에게는 하늘의 비밀을 아는 것과 주님의 징조를 아는 비밀이 허락되었으니 듣는 즉시 우리 또한 그 말씀대로 순종할 것이다.

2. 형통하는 축복

칠년이 지난후에 고향으로 돌아 왔더니 자기집과 전토가 타인의 것이 되어 있었다. 이를 인하여 여인은 왕께 나아가 재판하여 줄 것을 호소했다. 그런데 그때 왕이 마침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가 죽은 여인의 아들을 살렸던 얘기를 하는 중간에 여인이 왕께 나아가게 되었으니 여인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었다. 이처럼 주를 사랑하는 자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들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있다(롬8:28).

3. 땅의 기름진 축복

수넴여인은 믿음이 땅에 떨어진 시대에 믿음을 보여준 아름다운 신앙의 여인이다. 그래서 저는 많은 축복을 받았으니 아무리 어려운 시대라도 주를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는 특별한 도우심을 입게 됨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것이다. 하늘의 신령한 복을 입은 자는 땅의 기름진 축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사엘의 벤하닷 암살

(왕하 8:7-15)

하사엘은 족보나 궁중에서의 그의 관직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문벌도 없는 하사엘이 왕위를 차지 했다"는 앗수로 비문이 있는 것을 보면 그는 비천한데서 왕위에 까지 오른 사람인 것 같다. 아람왕 벤하닷은 일찍이 엘리사를 잡기 위하여 군대를 동원했었으나 이제는 병중에 있으므로 엘리사의 도움을 받고자 사자를 보내었다. 이처럼 어느 인간이라도 젊고 건강할 때에야 예수님을 외면할 수 있겠지만 인생의 죽음의 목전에 이르면 예수님을 찾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기"(히9:27)때문이다.

1. 하사엘과 엘리사

왕의 명령을 받은 하사엘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 묻는다. 왕의 병이 죽을 병인가를 묻자 엘리사 선지자는 저가 병으로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가르쳐 준다. 왕이 물은 것은 병이 어떻게 될 것이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이 낫는다고 대답한 것으로 왕과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러나 병으로 죽지는 않을 것이지만 다른 어떤 사건으로 죽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2. 정녕 죽으리라

세상만사는 믿음의 눈으로 보면 너무나도 뻔한 답이 보인다. 검으로 일어 선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것도 진리이다. 왕의 병이 낫는다고 해도 그는 정녕 죽을 것이었다. 하사엘이 그 반역의 주인공이라는 것 까지도 하나님은 엘리사에게 알게 하셨다. 엘리사는 하사엘을 쏘아보다가 울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잠시 환상을 보여 주셨다는 것이다. 소름끼치는 장면이 선지자의 눈에 비쳐졌다.

3. 저가 대신하여 왕이 되리라

그가 벳하닷을 죽이고 왕이 된 뒤에는 벤하닷보다 더 잔인하게 이스라엘을 칼로 죽이며 어린아이를 메어치고 아이밴 부녀를 가르게 될 것을 이야기 하고 하사엘은 "당신의 개같은 종이 무엇이관대 이런 큰 일을 행하겠냐"고 하지만 하나님의 예언은 빗나감이 없으니 그가 왕을 젖은 이불을 왕에게 덮어 암살한 뒤에 결국 그일을 저지르고 말게 된다. 사탄 역시도 그의 종말을 알면서 마지막까지 발버둥치며 하나님과 성도를 대적하고 있다.

여호람의 실정

(왕하 8:16-29)

여호람은 그의 아버지 여호사밧과 함께 섭정을 시작하였다(1:17, 3:1 창조). 그의 나이 삼십이세에 왕이 되어서 아합왕의 길로 가며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다. 그는 아합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 하였고 여호와 보시기에 많은 죄를 지었다.

1.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여호람의 불신과 범죄함이 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속히 심판치 아니하신 것은 다윗 임금과 세우신 언약 때문이다. 그 언약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의 연고로 그 등불을 다윗에게서 옮기지 않겠다고 하셨던 약속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 때문에 식언치 아니하시고 인자가 아니시기 때문에 후회가 없으시다.

2. 여호람의 죽음

여호람이 하나님 앞에서 실정을 하자 그를 에돔 사람의 손에 붙이셨다. 그리고 립나까지도 배반하여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났으나 저가 그들을 다시 찾을 힘이 없으므로 찾지 못하였다. 이 일후에 여호람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으니 이는 저가 높은 지위에서 하나님께 영광돌릴수 있는 삶을 살수 있었으되 오히려 여호와의 영광을 가리며 산 자가 되었음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3. 아하시야의 등극

아하시야가 그의 아비 여호람을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나 그 역시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하였다. 그는 아합의 집의 사위였다. 아하시야는 병중에 있던 이스라엘왕 요람을 방문하는 동안에 혁명군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다. 이것은 악인의 길에 동행하는 자는 그 악인이 받는 재앙에도 동참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자리에 앉지도 않는다(시1:1).

예후의 등장

(왕하 9:1-20)

엘리사는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선포하기 위해서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을 보냈다. 그때 예후는 군대 장관으로 아람과 대결하기 위해서 길르앗 라못에서 주둔하고 있었다. 젊은 선지자는 예후를 밀실로 인도하여 기름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선포했다.

1. 혁명

예후에게는 아합과 이세벨의 정권을 전복시키고 여호와의 종교를 재건하는 사명이 주어졌다. 이로써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받은 세가지 예언은 다 이루어진 셈이다. 엘리사의 예언은 아합과 이세벨의 우상 정권을 전복시키고 여호와 신앙을 부활시킨다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이를 위해서 국외로부터 침입할 자로 아람의 하사엘을 택했고, 국내에서 혁명을 일으킬 자로 예후를 택정했던 것이다.

2. 예후 왕조

하사엘과 예후는 둘다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8:12, 9:33). 이 혁명의 성공으로 여호와 종교를 국교의 위치에 다시 올려 놓은 것은 통쾌한 일이었으나 정치적으로는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 넣는 감이 없지 않았다. 예후왕조는 100년간 지속되었으나 그중 40년은 아람의 침공에 시달려야 했다. 아무튼 하나님의 섭리는 예정하신 대로 진행되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진실한 신자는 언제나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3. 미치게 모나이다(20절)

전차대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파수꾼은 그것이 예후의 병거인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예후는 그처럼 과격했다. 엘리사도 선지생도에게 기름을 붓고는 아무것도 간섭치 말고 속히 나와서 돌아오라고 했다. 이것은 그의 혁명이 광적 이었음을 암시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예언(7-10절)을 성취함에 있어서 이런 자를 세우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람과 아하시야의 최후

(왕하 9:21-37)

요람과 아하시야가 함께 연합하여 아람왕과 싸우다가 예후가 회군하여 요람과 아하시야에게로 돌아오자 두 왕은 예후를 맞이하러 나갔다. 전쟁의 상황을 묻고자 함이었기 때문이다.

1. 나봇의 밭에서

요람과 아하시야는 대항도 해보지 못하고 예후의 손에 죽었다. 그들이 이렇게 쉽게 죽임을 당한 것은 아합왕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특별히 나봇의 토지에서 죽은 것을 주목해야 하는데 열왕기상 21:19에서 이미 예언되었던 하나님의 뜻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2. 네 어미 이세벨(22절)

"음행"이라는 표현은 여호와를 믿는 백성으로서 가나안 바알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의 우상주의를 가리킨다. 실제로 바알 종교는 창기들과 함께 광란을 즐겼으며 마술과 최면등이 사람들의 육체적 쾌락을 자극시켜 마음을 빼앗는 그런 종교였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니 이는 심판 받아 마땅한 죄라고 하겠다.

3. 이세벨의 말로(36절)

왕궁에까지 들어오니 이세벨이 화장을 하다가 예후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예후는 이세벨을 처형하려고 할 때에 용감히 처형할 자를 찾으니 내시들이 예후의 혁명군편에 가담하여 이세벨을 창밖으로 던져 버리니 그녀가 피가 뛰고 사지가 흩어져 죽고 말았다. 이세벨의 시체는 개들이 와서 먹었으니 예후가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사람 엘리야로 말씀하신바라"고 했으니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라 마지막날에 그분의 심판 앞에 드러나지 아니할 죄가 하나도 없으리라고 예언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사랑해야 한다.

요람과 아하시야의 최후

(왕하 9:21-37)

요람과 아하시야가 함께 연합하여 아람왕과 싸우다가 예후가 회군하여 요람과 아하시야에게로 돌아오자 두 왕은 예후를 맞이하러 나갔다. 전쟁의 상황을 묻고자 함이었기 때문이다.

1. 나봇의 밭에서

요람과 아하시야는 대항도 해보지 못하고 예후의 손에 죽었다. 그들이 이렇게 쉽게 죽임을 당한 것은 아합왕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특별히 나봇의 토지에서 죽은 것을 주목해야 하는데 열왕기상 21:19에서 이미 예언되었던 하나님의 뜻이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2. 네 어미 이세벨(22절)

"음행"이라는 표현은 여호와를 믿는 백성으로서 가나안 바알 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의 우상주의를 가리킨다. 실제로 바알 종교는 창기들과 함께 광란을 즐겼으며 마술과 최면등이 사람들의 육체적 쾌락을 자극시켜 마음을 빼앗는 그런 종교였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니 이는 심판 받아 마땅한 죄라고 하겠다.

3. 이세벨의 말로(36절)

왕궁에까지 들어오니 이세벨이 화장을 하다가 예후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예후는 이세벨을 처형하려고 할 때에 용감히 처형할 자를 찾으니 내시들이 예후의 혁명군편에 가담하여 이세벨을 창밖으로 던져 버리니 그녀가 피가 뛰고 사지가 흩어져 죽고 말았다. 이세벨의 시체는 개들이 와서 먹었으니 예후가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사람 엘리야로 말씀하신바라"고 했으니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라 마지막날에 그분의 심판 앞에 드러나지 아니할 죄가 하나도 없으리라고 예언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사랑해야 한다.

예후의 악행

(왕하 10:28-36)

하나님은 한 인생을 들어 회개치 않는 자들을 징벌하는데 사용하시지만 그 자신도 회개치 않고 잔악하면 하나님의 벌을 면할 수 없게 된다고 하신다(슥1:15).

1. 예후의 실수

그가 바알 선지자들을 죽인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잘한 일이다. 하지만 바알을 섬기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하심으로 회개시켜야 마땅했다. 율법을 낭독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들을 몰살한 것은 그의 행함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노와 열심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과 의논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다.

2. 예후의 신앙

여호와 신앙을 위한 예후의 열심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 제단을 헐지 않은 것은 여전히 그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고 있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즉 그가 우상주의를 타파하려고 한 것은 신앙적 순수성에서라기 보다 자신의 왕권과 정치적으로는 경찰정치를 펴기위한 한 전략이었음을 드러낸 것이라 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세우시지 않으면 어떤 정권도 무너지고 만다.

3. 예후에 대한 예언

하나님은 그의 행위에 대해 사대동안 그의 왕위가 계승될 것이라고 하셨다. 실제로 그는 사대, 백년간 나라를 다스렸는데 그의 통치기간은 결코 평탄하지 못했다. 이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제한적인 복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토도 줄었고(32절) 많은 침략가운데 시달린 것이 그것이다. 하나님은 섬기되 몸과 마음과 정성, 성품과,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섬길 때 모든 좋은 복으로 우리에 보상해 주시지만 우리가 그분을 온전히 섬기지 아니할 때는 많은 곤고가 찾아오게 된다.

요아스의 즉위

(왕하 11:1-21)

아하시야는 병중에 있던 이스라엘왕 요람을 방문하려고 갔다가(8:29) 예후에게 죽임을 당했다(9:27). 그의 모친 아달랴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로서 여호람의 아내였다. 그녀는 아하시야를 이어 그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왕자들 즉 그의 손자들을 다 죽였다. 그리고 바알 종교를 진흥시켰다. 이는 북왕국의 바알종교가 예후에 의해 멸절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할 목적으로 더욱 광적으로 바알 우상을 전파하였던 것이다.

1. 요하스의 도망

그 많은 손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여호람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였는데,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침실에 숨겨 6년동안 몰래 키웠다. 아무리 나무를 베더라도 그루터기는 남는 것처럼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여 모든 선을 이기는 것 같아도 여호와의 능력은 다시 세상을 회복시키신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건이다.

2. 하나님의 일꾼들

하나님은 아직 다윗 왕가를 버리지 아니하셨다. 왜냐하면 다윗을 통하여 약속된 메시야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달랴의 행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가증한 일이었다. 그 암흑같은 시기에도 여호야다와 가리사람 백부장같은 일꾼을 숨겨 놓으셨는데 하나님은 항상 자신을 위해 쓰실 일꾼을 예비해 놓으시고 사용하셔서 영광을 드러 내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일꾼을 보내 주소서 기도할것이다.

3. 왕이 된 요아스

요아스는 말씀대로 언약을 세워 왕이 되고 아달랴는 죽임을 당한다. 끊길뻔 했던 다윗왕통이 회복되었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와 같이 떨어지면 다시 하늘로 돌아감이 없는 것처럼 여호와의 그 말씀도 한 번 선포되면 이루지 않고서는 없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말씀을 깨닫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요아스의 시대

(왕하 12:1-21)

요아스는 왕이 된 후에 이전까지 횡행했던 바알숭배를 제하였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2절). 하나님께서는 선하고 믿음있는 왕을 세우셔서 그 백성을 축복하시는데 우리를 위해서도 한 왕을 예비하여 기름 부으시고 보좌에 앉히셨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 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분이시다.

1. 교훈을 받은 요아스

예후가 왕이 된지 칠년 째에 요아스가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나라를 다스렸는데 그의 나이 칠세였다. 그는 왕이 되었으나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고 그 말씀따라 정직히 행하였는데 하나님도 그를 인정하셨다. 이처럼 어릴 때부터 여호와의 도와 교훈을 받으면 늙어서도 그것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2. 성전 수리

그때에 아직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이 중앙집권화 되지 않아서 백성들이 산당을 지어 놓고 그곳에서 제사를 드렸는데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었다. 요아스는 이를 위해 다시금 성전을 깨끗이 하고 수리하는데(대하24:4-14) 이는 나태해진 백성들의 신앙을 회복하는 일이 되었다. 요아스왕의 성전 수리는 아사왕이 성전의 단을 수리한 이후에(대하15:8) 처음 있는 일로써 하나님의 성전은 주의 몸이 되며(엡1:22-23)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인 교회가 되는 바(엡2:21-22) 오늘날 우리 성도들도 교회의 정결과 봉사 충성을 위해 늘 깨어 있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3. 요아스의 죽음

아람왕 하사엘의 성전 약탈과 신복의 모반에 의해 요아스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역대기 저자는 요아스의 비참한 죽음을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인데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보았다(대하24:23-24).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또 그곳에서 큰 상급을 받기 위하여 호리라도 남김없이 죄를 회개하고 죄를 버리는 삶을 살아야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는 것을 명심하자.

여호아하스의 통치

(왕하 13:1-25)

유다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가 왕이 된지 이십삼년째에 예후가 죽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었다. 그런데 이 왕이 또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을 범죄케 했던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짓고 회개치 아니하였다. 악인은 항상 그 죄의 중함을 모르고 죄의 길로 가니 이는 그의 눈이 감기워졌기 때문이다.

1. 시달리는 이스라엘

여호아하스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은 저희를 내어 버려두셨으니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여호와를 모시기 싫어하는 자는 내어 버려두사 붙잡아 주지 아니하신다(롬1:28). 아람왕 하사엘과 그 아들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늘 노략질하여 나라가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었다.

2. 여호아하스의 회개

그때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부르짖자 하나님은 그의 회개를 받으시고 구원자를 보내셔서 아람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어 저희들의 장막에서 편하게 거하게 하셨다. 하지만 그 은혜를 무시하고 여호아하스는 또 다시 여호와께 범죄하여 더 큰 심판을 받게 된다. 죄인이라도 회개하는 모양만 갖추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3. 엘리사의 죽음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든다. 그러자 이스라엘왕 요아스가 저에게 내려와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하니 엘리사가 그에게 활을 쏠 것과 화살로 땅을 칠 것을 명한다. 이는 요아스의 믿음과 눈물을 보고 축복해 주기 위함이었는데 연유를 모르는 지혜없는 왕은 세 번만 치게 된다. 믿음이 크지 못했다는 것이다. 엘리사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크게 이길 것이라고 말하고 잠이 든다. 우리의 상황이 어렵더라도 믿음은 항상 크게 가질 것이니 하나님은 항상 믿음있는 자를 사랑하시고 입을 벌리는데로 축복하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한다.

아마샤의 시대

(왕하 14:1-29)

유다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이스라엘왕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 이년에 왕이 되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지만 그 조상 다윗의 믿음까지는 되지 못하였으니 믿음은 큰 믿음도 있고 작은 믿음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큰 믿음을 갖도록 힘써 기도해야 할 것이다.

1. 아마샤의 선정

아마샤도 부친 요아스처럼 정직히 행하였다. 하지만 산당을 제하고 성전 중심의 신앙을 백성들이 갖도록 하는데 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왕이 된 자는 항상 정치적인 득실을 따지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신앙에 올무가 되고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믿음 부분에 대해서는 축복하셔서 에돔을 쳐 이기게 하셨다.

2. 형제간의 싸움(2-14절)

이스라엘 요아스와 유다왕 아마샤가 충돌하여 전쟁이 일어나는데 전쟁의 원인은 아마샤의 교만(10절)때문이었다. 그 결과 유다는 이스라엘에게 패하고 말았다. 성경은 거듭거듭하여 교만의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무엇보다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는 높이신다고 하셨다.

3. 요아스와 아마샤의 죽음

유다왕 아마샤의 죽음은 이스라엘왕 요아스의 죽음(15-16절)에 비해 매우 비참하게 묘사되고 있다. 무리한 이스라엘 원정에서 대패한 뒤 종교, 정치, 경제등 사회전반에 걸쳐 심각한 위기를 맞게된 아마샤는 모반으로 인해 라기스로 피하다가 살해 되었다(19-20절).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릴 때 하나님도 자신의 백성을 버리고 돌아보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사랴의 유다통치

(왕하 15:1-38)

유다왕 아마샤의 아들 아사랴(웃시야)가 이스라엘왕 십육세에 왕이 되었는데 그는 자그마치 오십년을 왕위에 있었다. 그 역시 부친 아마샤의 길을 갔는데 왕들은 항상 교만한 죄를 저질러 하나님앞에 징벌을 받게 된다(삼상13:13, 15:22).

1. 예후왕가의 멸망(8-12절)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말씀하신 예언(10:30)이 성취되었는데, 예후가의 4대왕 스가랴가 야베스의 아들 살룸에 의해 피살됨으로 약 140년에 걸친 예후가의 이스라엘 통치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이후 북이스라엘은 거듭되는 반역과 암살로 회복이 불가능한 멸망의 길로 치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 하셨다.

2. 이스라엘의 네 왕

세상 역사가 다 그렇겠지만 열왕들의 역사도 암살과 반역으로 점철된 역사이다. 지배층이 되려는 끝없는 인간의 욕망으로는 이세상에 영원히 평화가 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지금도 상층부로 올라가기 위해 피땀을 흘린다. 그러나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니 다 썩어질 것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엣 것을 사모하고 땅의 것을 버리라고 말씀하신다.

3. 요담의 통치(32-38절)

유다왕 웃시야의 아들 요담의 선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선대의 왕인 아마샤 웃시야와는 달리(14:10, 15:5) 교만하지 않은 요담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성전의 윗문을 건축했다(35절). 하지만 그 역시도 산당은 제거하지 못했는데 그 역시도 민심을 더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로지 오직 영과 육을 동시에 멸하시는 하나님만 두려워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람이나 지위, 물질을 더 두려워 하는 것은 즉각 회개해야 할 일이다.

아하스

(왕하 16:1-20)

르말랴의 아들 베가 십칠년에 유다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될 때 이십세였다. 그는 이전의 어떤 왕들과 비교도 안될만큼 사악한 왕이었다(대하28:1-4). 특히 그는 어린아이를 우상에게 제물로 바치지 말라는 말씀을 거역하고 어린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악행을 범했다(레18:21).

1. 파멸의 길

이러한 아하스의 죄는 파멸을 초대하였다. 아람과 이스라엘의 연합군이 쳐들어 왔으니 이는 그때 당시 대대적인 반 앗수르 동맹체제를 구축하려는 이스라엘과 아람의 제안을 아하스가 거부하고 오히려 친앗수르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이는 성전의식이 결여된 아하스의 인간적인 꾀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사7:3-9, 8:5-8) 자기 파멸적인 행위였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파멸할 자인 것이다.

2. 아하스의 배교 행위

앗수르의 원조를 요청하러 아람의 수도 다메섹에 갔던 아하스가 그곳 우상의 형태를 모방을 한다. 이러한 적당주의 신앙과 혼합주의는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것이다. 교회 안에는 그 어떤 인간적인 타협이나 발상으로도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복음의 신성이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복음의 순수성을 버리면 저주를 받는 것이다. 그 복음의 핵심은 누구라도 회개하고 예수만 영접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요1:12). 그러므로 이 복음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게 되는 것이다(갈1:9).

3. 아하스의 시대

아하스는 전형적인 사단의 속성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을 미혹하여 더 나아가 우상들을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과 또 복음에 다른 말들을 갖다 붙여서 할 수만 있다면 믿는 자 까지도 넘어 뜨리려고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우는 사자와 같은 대적 마귀들을 향해서 싸울 것을 각오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 싸우는 자는 그 능력을 덧입고 강건해 진다.

갈렙의 배짱

(수 14:12)

유초등부 친구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전에 퀴즈를 하나 내 볼께요. 쉬우니까 다 맞출 수 있을꺼예요. 가나안 땅을 정탐한 정탐꾼은 12명이에요. 맞지요. 그런데 그 12명의 정탐꾼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능히 이길 수가 있다"고 자신있게 말한 믿음의 용사는 누구, 누구일까요? 여호수아와 갈렙이요, 맞았어요. 우리 ○○교회 유초등부 친구들은 모두 성경 박사인 것 같아요. 그러면 목사님이 오늘 갈렙의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 해 드릴테니까 잘 들어보세요.

1. 갈렙은 여호수아를 찾아 왔어요.

여호수아 장군이 이끈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가나안땅을 정복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 땅을 제비뽑아 나누어 주게 되었는데, 그때 갈렙이 여호수아를 찾아 왔어요. 왜, 찾아왔는지 알아요? 그것은 45년 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헤브론땅을 기업으로 받기 위해서 온 거예요. 그런데 이 헤브론 산지에는 아직도 엄청나게 크고, 힘이 장사인 무시무시한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었어요.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이 험한 헤브론 산지를 점령하지 못한 거예요. 그 땅을 차지하고자 갈렙은 여호수아를 찾아 왔어요.

갈렙은 믿음의 배짱이 있었던 사람이에요. 우리 친구들도 이것을 알아야 되요. 믿음의 배짱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랑도, 하나님의 능력도 많이 받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너무 너무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늘나라에도 가기가 힘들어요. 믿음의 배짱이 있었던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후에 이렇게 말을 했어요. "여러분들, 가나안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의 밥입니다. 우리는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배짱이 있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 왔어요.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가 없어요. 가나안 사람들은 너무 너무 큰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그들과 비교할 때 메뚜기밖에 안되요. 이젠 죽었어요" 하고 부정적으로 보고했던 나머지 열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벌을 받아서 가나안땅도 밟아 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어요.

2. 갈렙은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하였어요.

사실, 갈렙은 "네 발을 밟는 땅을 영원히 갈렙과 그 자손들에게 주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에 가나안의 어느땅도 가질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기름지고, 아름답고, 경치 좋은 땅을 원할 줄 알았던 갈렙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포의 대상인 아낙 사람들이 살고있는 헤브론 산지를 원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아이구, 거인들이 사는 저 헤브론 산지를 누가 점령할지, 걱정이야"하고 두려워 떨고 있는데, 이제 나이가 85세나 된 갈렙 할아버지가 그 무시무시한 아낙사람들이 살고있는 헤브론 산지를 점령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큰 배짱이에요. 이것은 갈렙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아마 갈렙에겐 가나안땅을 정탐할 때부터 저 험하고 힘든 헤브론 산지를 점령해서 나와 나의 자손들의 기업으로 삼아야지 하는 꿈이 있었을 거예요. 우리 친구들도 어렸을 때부터 꿈을 가져야 되요. 나는 앞으로 커서 무엇이 될 것인가? 그 꿈을 가지고 주님 안에서 전진해 나갈 때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는 거예요.

현재 미국의 대통령이 빌 클린턴인데, 이 클린턴 대통령도 고등학교 3학년때 최우수 학생으로 뽑혀서 백악관에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어요. 그때 클린턴은 "나도 나중에 대통령이 되어야지"하는 꿈을 가지게 되었는데, 30년이 지나서 그 꿈이 이루어 졌어요.

92년까지 통계자료를 보니까 역대 노벨상 수상자가 620명인데, 우리나라 사람은 슬프게도 한 사람도 없었어요. 미국이 203명, 영국이 84명, 독일 71명 순으로, 일본사람도 7명이나 있었어요. 그런데 머리 좋기로 세계에서 소문난 우리나라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은, 어려서 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분명한 꿈이 없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거예요. 우리 친구들도 늦지 않았으니까 지금부터라도 커다란 꿈을 가지세요. 갈렙은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헤브론 정복의 꿈을 믿음의 배짱으로 이루고야 말았어요. 헤브론땅은 갈렙에 의해 정복을 당하고 갈렙과 그의 후손들의 기업이 되었어요.

3. 갈렙의 믿음

8절에 보면 갈렙은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고 말을 하고 있어요. 90%만 좇은 것이 아니라, 100% 완전히 좇았다는 말이에요. '온전히 좇았다'는 말의 뜻은 이런 거예요. 배가 바다를 항해할 때 배가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있어요. 육지의 자동차가 가는 길을 육로라고 하고요, 하늘의 비행기가 가는 길을 항로라고 해요, 그리고 바다에서 배가 가는 길을 해로 또는 항로라고 하는데, '온전히 좇았다'는 말은 '배가 항로를 따라서 똑바로 조금도 벗어남이 없이 항해를 하는 것'을 말해요.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똑바로 나아갔어요. 믿음이 있는 사람은요 이곳 저곳 기웃거리거나 머뭇거리지 않아요. 예배드리러 나오는데 곧장 안오고 중간에 오락실에 들리고, 떡복이 집을 기웃거리면 예배에 지각하거나 결석할 수밖에 없었요.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어느때까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느냐"고 책망을 하였어요. 우리 ○○교회 친구들은 오직 하나님과 나를 위해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갈렙이 85세의 나이에도 믿음의 배짱을 가지고 헤브론 땅을 점령한 것처럼 믿음이 넘치는 친구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나안 여인의 믿음

(마 15:28)

우리 친구들도 이 노래를 다 알거예요.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니은혜" '어머니 은혜'라는 노래예요. 하나님 다음으로 높은 사랑이 바로 어머니의 사랑인데, 오늘 우리 친구들이 읽은 성경 말씀에는 귀신들린 딸을 너무 너무 사랑한 가나안 여인이 나와요.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 이방의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간절히 부르짖었을 때 예수님의 응답을 받았어요. 가나안 여인의 믿음에 대해서 3가지로 살펴 보겠어요.

1. 큰소리로 외치는 믿음이었어요.

예수님 앞으로 나온 가나안 여인은 자기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큰 소리로 외쳤어요. 한 번, 두 번 외친게 아니라 계속적으로 예수님께 부르짖었는데, 22절에 보면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말이 중요한 말이에요. 이 말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을 통해서 보내주실 이스라엘을 구원해 줄 메시야 즉, 구세주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우상 단지들이 판을 치는 가나안땅에 사는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히 알았어요. 참으로 놀라운 믿음이지요. 우리 친구들, 한 번 생각을 해 보세요. 하나님을 믿기가 거의 불가능한 이슬람 국가나 불교국가에서 예수님만이 나를 구원하는 주님이 된다고 믿는 그리스도인을 한 사람 발견한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에요. 누구를 통해서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히 알았어요. 그러면 이 가나안 여인은 왜 그렇게도 간절히 예수님께 부르짖었을까요? 그것은 그 여인의 딸이 아주 못된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에요. 우리 친구들, 우리가 조금만 아파도 예를 들어 감기나, 두통이 있어도 엄마가 얼마나 걱정하세요. 그런데 이 여인은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려서 제 정신이 아니니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그러니까 계속 따라가면서 외쳤던 거예요. 어머니의 사랑이 참으로 크지요.

우리 친구들도 잘 아는 미국의 제 16대 링컨 대통령, 이 링컨 대통령의 어머니가 누구냐면 낸시였어요. 링컨의 어머니인 낸시는 믿음이 너무 너무 좋은 어머니였어요. 어머니 낸시는 틈만 나면 어린 링컨에게 성경을 읽어 주었는데, 그만 링컨이 10살 때 전염병에 걸려서 죽게 되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유언이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우리 친구들, 잘 들어보세요. "에이브야! 네가 훌륭히 자라는 것을 보지 못하고 떠나니 이 에미가 가슴이 아프구나! 에이브야, 내가 너에게 마지막으로 남겨 줄 것은 이 책밖에 없구나. 이것은 성경이란다.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인데, 비록 낡았지만 우리 집의 큰 가보란다. 내가 1백 에이커의 땅을 물려주는 것보다 이 성경책 한 권을 네게 물려준 것을 진정 기쁘게 생각하는구나. 너는 늘 성경을 읽고 이 진리의 말씀대로 살아다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다오."

얼마나 훌륭한 어머니예요. 가보로 성경을 물려준 어머니, 그러한 어머니가 있었기에 링컨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2. 예수님께 경배하는 믿음이었어요.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계속적으로 부르짖었는데도 이상하게 예수님은 한마디도 대답을 하지 않으셨어요. 사랑의 예수님이 왜 그러셨을까요? 그것은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어느 정도나 되나 시험해 보시기 위해서 그러신 거예요. 이제 하도 가나안 여인이 소리치니까 제자들이 참을 수 없어서 예수님께 말을 하는 거예요.

"예수님! 저 여자가 우리들 뒤에서 소리지르니까 보내 주세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 소리지르는 저 여자 때문에 못 견디겠어요. 저 여자의 소원을 들어 주셔서 보내시든지 아니면 야단을 쳐서 보내세요"라는 말이에요. 그때 예수님은 충격적인 말씀을 하세요.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쉽게 말해서 가나안 여인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니까 나와 상관이 없다는 말씀이에요. 보통 사람같으면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막 욕을 해대고 돌아갔을 거예요. 그러나 가나안 여인은 그렇지가 않았어요. 오히려 더 겸손한 자세로 예수님 앞으로 와서 무릎을 꿇고 절하면서 자기를 도와 달라고 했어요. 예수님을 경배하는 믿음인데, 예수님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모습이에요.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이런 믿음이었어요. "나의 딸을 고쳐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어요.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해도 예수님으로부터 한 발자국도 물러날 수가 없어요."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최고로 존경해야 될 분으로 알고 주님 앞에 절을 하며 자기의 소원을 말했어요.

3. 가나안 여인의 믿음은 부스러기라도 감사하는 믿음이었어요.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라고 하시며 개로 비유하였는데도, 가나안 여인은 "주님! 그 말씀이 옳지만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잖아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얼마나 큰 믿음이에요. "부스러기라도 주님 주세요. 저는 그것도 감사해요, 예수님"

우리 친구들 보면 엄마나 아빠가 선물을 사 주셔도 좋은 것이 아니면 감사하지 않잖아요. 옷도 백화점에서 안 사오면 안 입고, 학용품도 최고급 아니면 안쓰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친구는 외제 옷이 아니면 안 입는 친구가 있는데 그런 친구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아요. 우리 친구들! 가나안 여인을 보세요. 부스러기도 감사하는 믿음을 가지니까 예수님께서 어떻게 해 주셨어요. 시작할 때 우리가 읽었지요. "네 믿음이 크도다"하는 칭찬과 함께 귀신들린 딸이 깨끗이 고침을 받았어요. 자그마한 것에 감사하는 친구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셔서 큰 것을 주시고 큰 일을 맡겨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고 부스러기라도 감사하는 믿음의 친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 바울

(빌 3:7-8)

지난 3월달에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유망주인 유도 국가대표 선수인 정세훈이란 선수가 체중감량을 무리하게 하다가 그만 세상을 떠났어요. 평소 체중이 77-78kg이었는데, 65kg으로 줄이다가 몸에 이상이 와서 세상을 떠났는데, 운동 선수들이 왜 그렇게 생명을 걸고 체중을 조절하고 또 혹독한 훈련을 하는지 알아요. 그것은 '금메달을 위하여' 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런거예요.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몸과 마음과 생명과 영혼을 다 바친 한 사람이 나와요. 그 사람이 누구냐면 바로 사도 바울이에요.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랑할 것이 많았던 사람이에요. 공부도 뛰어나게 잘했지요. 정통 유대인으로서,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었어요.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급수로 치면 1등급에 속하는 뛰어난 신분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그러한 세상의 자랑거리가 오히려 믿음에 방해가 되었어요.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 세상적인 자랑거리를 다 버리고요, 아예 잊어버렸어요. 그리고 누구만을 위해 살았냐면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어요. 그러면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해 어떻게 살았는지 3가지로 살펴보기로 하겠어요.

1.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하게 생각했어요.

바울은 세상의 공부를 많이 했어요. 세상 공부에 관해서는 이스라엘 나라 안에 바울을 당할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박사보다 뛰어난 왕박사라고도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예수님을 만나서 주님에 대해 아니까 세상의 지식이 유치하기 짝이 없었어요. 8절에 나오지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이라"고 했는데 '가장 고상하다'는 말은 '가장 뛰어나다'는 말이에요. 왜냐하면 이 세상에 참된 진리는 오직 하나인데, 그 진리가 누구시냐면 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세상공부도 물론 잘해야 되겠지만, 그 밑바탕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가 없다면 그 공부는 헛것이 되는 거예요.

우리 친구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영어단어 3만 단어를 외우고, 어려운 분수를 푼다고 예수님이나 구원에 대해 알 수 있어요. 오히려 세상 지식은 많이 알면 알수록 교만해져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있어요. 그리고 그런 지식은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비하면 보잘 것이 없는데, 우리 친구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더욱 많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2.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 버렸어요.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뛰어난 세상지식, 바리새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 로마 시민으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율법적으로 흠이없는 그 모든 자랑거리를 그리스도를 위해 잃어버렸어요. 포기했다는 말이에요. 우리 친구들, '잃어버렸다'는 말은 자신의 실수나 도둑 맞을 때 쓴다고 알고 있지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 많은 자랑거리를 기쁨으로 자진해서 버렸어요.

우리 친구들 '잃어버린다'라는 말 속에는 귀한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어요. '돈을 잃어 버렸다', '지갑을 잃어 버렸다', '반지를 잃어 버렸다'는 말은 하지만 '걸레를 잃어 버렸어' '쓰레기를 잃어 버렸어' 라는 말은 안해요. 세상적으로 귀하고 아까운 것들에 대해 '잃어버린다'는 말을 쓰는데, 사도 바울은 그 귀한 것들을 스스로 다 잃어버렸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로 좋으신 예수님을 주셨어요. 8절에 나오지요.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게 되었어요. 우리 친구들도 마찬가지예요. 세상의 자랑거리들을 예수님을 위해서 버릴 때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갈 수가 있어요. 이제부터는 공부 잘하는 것, 얼굴 예쁜 것, 돈 많은 것 뽐내지 마시고, 그렇게 좋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고, 진리되신 예수님을 자랑하시기 바래요.

3.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생각했어요.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은 후로는 세상의 것들이 가치없게 느껴졌어요. 배설물처럼 생각했는데, 이 말은 예수님과 이 세상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이지, 세상의 것이 쓸모 없다는 말이 아니에요.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집이 없이 이곳 저곳 떠돌던 거지에겐 판잣집도 천국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1등 복권에 당첨되서 45평짜리 멋진 아파트를 장만했다고 해 보세요. 그전에 천국으로 생각하던 판잣집 쳐다보지도 않아요.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게 되니까 이전에 뽐내고 으시대던 자기의 지식, 명예, 특권 등을 다 배설물처럼 여겼어요.

우리 친구들! 배설물이 무엇이지요? 가장 더러운 것을 말해요. 콧물, 가래침, 소변, 대변등 사람의 몸밖으로 나오는 것을 말하는데, 예쁜 미스 코리아라고 방귀를 끼면 달콤한가요? 대통령이라고 가래침에 향기가 날까요? 모든 배설물은 다 더럽고 추하기 짝이 없는 거예요. 이 배설물에 미련을 두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어요.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본 후에 자신의 작품을 내려다보면서 "그냥 보내기에 너무 아까워"하는 사람 있나요. 없지요. 사도 바울은 세상적인 것에 한마디로 미련이 없었어요. 예수님이 너무 좋기에 세상의 것이 우스웠어요. 그래서 예수님을 위해서 기쁜 마음으로 버릴 수가 있었어요.

우리 유초등부 친구들도 예수님을 위해서 세상의 자랑거리를 버리고, 예수님을 아는 것을 최고의 자랑으로 여기며,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활하는 친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복음

(롬 1:16)

옛날에 최권능 목사님이란 아주 믿음 좋으신 분이 계셨어요. 이 목사님은 매일같이 이 동네, 저 동네 다니시면서 외치시는 말씀이 있었어요. 무슨 말씀이냐면 "예수천당 불신 지옥"이란 말이었어요. 쉽게 말하자면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가지만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이에요.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너무 너무 좋은 이름 예수님, 이 예수님을 다른 말로 하면 복음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복된소식, 기쁜소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의 복을 받을 수 있고, 예수님을 믿어야만 참된 기쁨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이 생명의 복음에 대해서 4가지로 살펴보기로 하겠어요.

1. 복음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요(8절).

사도 바울은 8절 말씀에 보니까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에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을 했어요. '믿음이 전파된다'는 말은 '복음이 전파된다'는 말인데, 바울은 이제 복음의 비밀이신 예수님이 이방의 로마에서도 전해지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어요.

복음에 대해 감사한다는 것은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한다는 마음이에요. 미국 사람들은 조금만 친절을 베풀어도 '댕큐'란 말로 감사를 표현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웬만큼 친절을 베풀어도 감사할 줄 몰라요. 그러니까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마음이 적고, 감사의 기도가 부족해요. 감사 중의 최고의 감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에 대한 감사예요. 우리 친구들은 매일같이 생명을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 생명의 복음을 믿어야 되요(12절).

생명이신 예수님은 말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야 되요. 믿어도 100% 믿어야 되요. 유명한 줄타기 곡예사인 블론딘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블론딘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널 때 관중들은 손에 땀을 쥐고 지켜 보았어요. 이제 블론딘이 다 건너자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어요. 그때 블론딘이 자신은 한 사람을 등에 업고도 건널 수 있다고 말하면서, 앞에 있는 신사에게 "당신은 내가 그것을 하리라고 믿습니까?" 물어 보았어요. 그러나 그 신사는 "그럼요, 믿고 말고요"라고 대답했는데, 그래서 그 신사보고 내 등에 업히라고 말하자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신사는 대답했어요. 그것은 온전히 믿지를 못한 거예요. 참된 믿음은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예수님이 나를 위해 돌아가신 것을 믿는 믿음이에요.

3. 우리는 복음의 빚을 지고 있어요(14절).

우리 친구들! 빚이란 무엇이에요? 상대로부터 빌려쓴 것으로 반드시 갚아야 될 책임이 있는 거예요. 소크라테스가 죽으면서 한 유명한 말이 있어요. 제자인 크리톤에게 "옆집에서 닭 한마리를 꾸었는데 나대신 꼭 갚아 주거라" 하는 유언을 하고 죽었어요. 우리 친구들이 볼 때는 어이가 없는 유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빚이란 그만큼 불편하고, 불안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친구들도 누구한테 1000원이나 2000원 빚져 보세요. 갚기 전까지는 마음이 불안하지요. 우리는 하나님이나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무슨 빚이냐면 복음의 빚이에요.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라"고 하였으며, 로마서 8장 12절에 보면 "우리가 빚진 자"라고 말을 하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심으로 우리는 생명을 얻었어요. 즉, 생명되신 예수님을 나누어 줘야 될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골로새서 1장에 보면 그리스도인이란 비밀의 전파자들이라고 하는데, 비밀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란 말이에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예쁜 사람이나 미운 사람이나, 똑똑한 사람이나 미련한 사람이나 누구에게든지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거예요.

우리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구원의 복음을 믿게 하신 것은 나만 구원받으라고 그러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에요.

4. 복음을 부끄러워 해서는 안되요(16절).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반대로 해석하면 '복음을 자랑한다'는 말이에요. 예수님 믿는 사람이 복음을 자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어떤 친구들을 보면 복음을 부끄러워해서 성경책을 안가지고 다니거나 감춰서 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식사할 때 부끄러워서 기도도 안하고 밥을 먹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에요.

우리 친구들! 형이나 누나 또는 친척 중에 잘 생기거나, 공부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많이 자랑하지요. "우리 형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 서울대학교에 다녀", "우리 이모가 얼마나 예쁜지 알아, 미스코리아 보다 더 예뻐" 이런 자랑보다 더욱 크고 놀라운 자랑거리가 우리에겐 있어요. 그것이 무엇이냐면 죽은 자를 살리시는 생명의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에요.

이 예수님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셔서 생명의 복음을 많이 나누어주는 전도의 대장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어린이

(살전 2:4)

우리 친구들! 교회 안에는 많은 어린이들이 있지요. 그런데 그 친구들을 두 그룹으로 나눌 수가 있어요. 하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친구들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친구들이에요.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친구들은 이렇게 주일날 예배드리러 나왔으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최고 목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예요. 그래야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는데, 이 시간 우리 친구들이 어떻게 해야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3가지로 살펴보겠어요.

1. 탐심을 벗어 버려야 되요(5절).

우리 안에는 크고 작은 탐심들이 있어요. 돈에 대한 탐심이 있지요. 공부나 친구, 또 인기에 대한 탐심이 있어요. 이 탐심이란 말은 '더욱 더 많이 갖고 싶어하는 마음' 또는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열렬한 마음'을 말해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이러한 탐심을 벗어버려야 해요.

친구가 차고 있는 멋진 시계나, 들고 있는 예쁜 지갑이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서 가지고 싶을 때 그것은 탐심이에요. 아빠가 용돈을 20,000원을 주셨는데 더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그것도 탐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 내가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는데, 나하고만 친구해야 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도 탐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탐심을 벗어버리기 위해서는 우리 친구들이 예수님을 열심히 믿어서 큰 믿음을 가져요. 믿음이 크면 탐심은 깔려서 죽고,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욕심없는 마음이 될 수 있어요.

2. 사랑하는 사람이 많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세요(8절).

데살로니가 전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은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항상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있었어요. 8절에 보면, "사모하여 목숨까지도 주는 것을 즐겨한다"고 했어요. '사모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인데, 그 당시 그 말은 주로 어린나이로 세상을 떠난 자식을 그리워해서 무덤에 적어 놓을 때 썼어요. 그러니 우리 친구들도 생각해 보세요. 우리 친구들처럼 어린 나이로 하늘나라에 갔다고 해 보세요. 엄마, 아빠가 얼마나 보고 싶어하고, 그리워하고, 생각하겠어요.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자기 자식처럼 애정을 갖고 사랑하며, 돌보았어요. 사도 바울은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어요. 사도 바울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많이 하고, 더 좋아했던 사람이에요. 솔직히 우리 친구들, 사랑받는게 좋아요, 주는 게 좋아요. 받는 게 좋지요.

우리 친구들이 왜 엄마, 아빠를 좋아하고 할머니, 삼촌, 이모를 좋아해요. 그것은 그분들이 나를 사랑해 주기 때문이에요. 사랑에도 급수가 있다면 높은 사랑은 받는 사랑이 아니라 주는 사랑, 베푸는 사랑이에요.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랑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어요. 그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가슴깊이 알았기에 사도 바울은 주님의 그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거예요.

우리 친구들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믿는다면 사람들에게 실천을 해야 되요. 내 마음에 들지 않고, 예쁘지도 않고, 공부도 못해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해야 되요. 예수님을 정말 사랑하는 친구들은 자존심이 사라지고, 가슴에서 사랑의 샘이 넘쳐 흐르게 되요. 그래서 미운 사람도 예뻐 보이고, 곰보 자국도 보조개로 보이게 되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매일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늘려 나갈 때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몰라요. 우리 친구들, 이 시간에 곰곰이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나는 과연 사랑하는 친구와 미워하는 친구가 몇 대 몇이나 될까, 20대 10인가, 아니면 30대 10인가? 아니면 미워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 많은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많이 만들어 나가시기를 바래요.

3. 복음을 열심히 전파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세요(9절).

우리 친구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요? 그것은 예수님을 전하는 복음전파예요. 4절을 보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다"고 사도 바울은 말을 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복음의 사명을 맡기셨다는 것인데, 그것은 사도 바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에요. 여기 서 있는 저나 우리 친구들 모두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할 사명을 맡기셨어요.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했어요. 그러니 우리 친구들이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아요. 내 집, 내 동네, 내 학교, 우리나라를 빨리 전도한 다음에 아시아, 아프리카의 믿지 않는 나라에까지 가서 예수님을 전해야 되요. 그래야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유초등부 친구들은 세상의 욕심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의 크신 사랑으로 무장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어 주는 친구들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

(딤후 1:7)

우리나라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요. "공짜를 좋아하면 머리가 벗겨진다" 우리 ○○교회 유초등부 친구들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아요. 대머리인 친구들이 하나도 없네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짜를 되게 좋아하는데, 물건 선전하는 기간이나 슈퍼마켓이나 큰 가게가 처음 문을 열 때 조그만 선물을 하나씩 주지요. 그러면 아이들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이 특히, 아줌마들이 몰려와서는 공짜 물건 받기 위해 몸싸움을 하지요. "나부터 주세요", "이 줄부터 먼저 주세요" 어떤 아줌마는 한 번 받아 놓고 치사하게 또 받으려고 해서 망신당하는 적이 있어요. 세상의 그런 시시한 것도 서로 받으려고 몸싸움을 벌이는데, 하나님께서는 싸우지 않아도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아주 아주 좋은 것을 주신다고 말씀하세요. 3가지 선물인데 우리 친구들 잘 들어보세요.

1. 능력을 주세요(7절).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시는데, 이 능력이란 복음을 전하는 능력을 말해요. 8절을 한 번 볼까요.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능력이 바로 예수님을 전하는 능력을 말해요. 우리 친구들이 하나님을 잘 믿으면 우리 친구들이 하나님의 선물을 받게 되는데 첫 번째 선물이 바로 예수님을 전하는 능력의 선물이라는 거예요. 사실, 우리 친구들 전도가 어렵지요. 그것은 우리가 아직 능력의 선물을 충만하게 받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이 능력의 선물을 많이 받은 사람은 전도를 말로 하지 않고요, 행동으로 보여 줘요.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게 어떤 것이냐면 예수님처럼 희생하고, 낮아지고, 섬기고, 진실하게 사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모습을 보고 안 믿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서 교회에 나오게 되는데, 성프란시스라는 유명한 하나님의 사람이 그렇게 전도를 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어요.

옛날에 일본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어떤 할아버지가 병들어 죽게 되었어요. 그 할아버지는 재산이 많았는데, 자식이 없어서 유산을 교회나 절에 맡기려고 했어요. 그래서 각각 교회의 여 전도사님과 불교의 보살을 청했어요. 먼저 여전도사님이 그 할아버지의 집에 왔는데, 그 전도사님은 할아버지에게 전도를 잘 하였어요. "할아버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을 믿어야지 하늘나라에 가세요. 그리고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어요" 그리고는 할아버지의 집을 떠났어요.

그 다음날이었어요. 이번에는 불교의 보살이 왔는데 이 보살은 부처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안 청소를 하고 열이 나는 할아버지 머리에 얼음 찜질을 해 주고요, 죽을 끓여서 먹여주는 등 하루종일 봉사하고는 밤에 갔어요. 그러니 이 할아버지가 누구를 믿고, 어디에 재산을 기증했겠어요. 예수님을 전하는 복음의 능력은 말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에요. 말로 진수성찬을 아무리 먹여 줘도 행동이 나타나지 않으면 능력이 없는 사람이에요.

2. 사랑하는 마음을 주세요(7절).

하나님께서는 우리 친구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주세요. 하나님이 주시는 그 사랑을 소유할 때 우리가 다른 사람을 진짜로 사랑할 수가 있어요. 이 사랑이라는 말속에는 자기 희생과 섬김의 마음이 들어가 있어요.

우리 친구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 무엇인지 알아요.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에요. 이 십자가 사랑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사랑이에요. 또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예수님의 사랑은 섬김의 사랑이에요. 우리 친구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선물을 많이 받게 되면 예수님처럼 친구들을 위해 희생하고, 도와줄 수 있는 마음이 되요. 배고픈 친구들에게 말로만 "용식아 배고프지" 하는 것이 아니라 빵 하나라도 사주게 되고요, 몸이 아픈 친구를 보면 하나님께 그 친구가 빨리 건강해지도록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수가 있게 되요. 또 나를 못살게 굴고, 욕하는 친구도 사랑할 수가 있게 되요.

3. 근신하는 마음을 주세요(7절).

본문의 '근신'이라는 말은 절제하는 마음을 말해요.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안에 사는 우리 친구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절제하는 마음을 주세요. 이 절제하는 마음이 없으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결코 성공할 수가 없어요. 몇 달전에 애틀랜타 올림픽이 있었는데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절제를 해야 되요. 훈련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는 보통 사람들보다 잠도 덜 자야지요, 술도 마셔서는 안되지요, 담배도 피워서는 안되지요, 사랑하는 부모님이나 애인도 조금 만나야지요, 얼마나 절제할 것이 많은지 몰라요. 특히, 권투나 유도, 레슬링등 체급 경기나 날씬해야만 되는 체조나 싱크로나이즈 쉼잉 선수들은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어요.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과일이나 우유만 먹을 때도 많은데 그러니 운동선수들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운동선수로서의 성공과 실패는 절제하는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이 되어져요.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하느냐 아니면 마귀에게 패배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모든 일에 절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어요. 예를 들어 음식도 절제하지 못하고 맛있다고 많이 먹어 보세요. 배탈이 나서 주일날 교회도 못 나왔다면 마귀에게 패한 거예요. 또 TV가 재미있다고 절제하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보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교회에 못나왔다면 이것도 마귀에게 진 거예요. 우리 친구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근신하는 마음, 절제하는 마음을 충만히 받아서 믿음의 대장들이 되어서 예수님을 널리 널리 전하는 우리 친구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평강의 복

(요 20:19)

유초등부 친구들!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요? 물론 믿음이지만, 믿음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면 마음의 평강이에요. 태산만큼 큰 금덩어리를 준다고 하더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바로 마음의 평화예요. 마음의 평화가 얼마나 중요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들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세번씩이나 말씀하셨겠어요.

마음의 평화, 굉장히 중요한 말이에요. 아무리 돈이 많고 얼굴이 미스코리아 같이 예뻐도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이 많으면 살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우리 친구들도 시험을 못봐서 엄마, 아빠께 야단맞을 걱정하거나, "너는 고릴라같이 못생겼어", "돼지같이 뚱뚱해" 그래서 화가 잔뜩 나 보세요. 살고 싶지가 않지요.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요, 이제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잡혀 돌아가시자 도마를 제외한 열 제자들이 안식후 첫날, 즉 오늘날의 주일날 저녁 때에 한자리에 모였어요. 그런데 제자들은 두려움과 근심, 슬픔으로 가득차 있었어요. 왜 무서웠냐면 유대인들이 혹시 "너희들도 예수와 한패지"하고 붙잡아 가면 어떡할까 걱정이 되어서 두려웠어요. 그리고 근심한 것은 그렇게 믿고 따르던 예수님이 돌아가셨으니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로 앞날에 대해서 근심했어요. 또 3년 동안 주님으로 믿고 섬기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슬펐겠어요. 그중에서도 제자들은 혹시 유대인들이 우리도 잡아가서 죽이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가장 컸어요. 그래서 문들을 꼭꼭 닫고 모였어요. 그래도 제자들을 칭찬할 점은 예수님이 안계신데도 모였다는 점이에요.

이제 예수님이 나타나시자 제자들의 모든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평강이 그 마음속에 가득하게 되었어요. 그러면 어떠한 사람들이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릴 수 있는지 3가지로 살펴보기로 하겠어요.

1.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이 평강을 누릴 수 있어요(요14:27).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하셨어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진짜 평안, 진짜 기쁨을 누릴 수가 있어요. 아무리 시험에서 1등하고, 멋지게 생일 잔치를 했다고 하더라도 몇 달이나 몇 년동안 항상 기뻐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가 있나요. 안되지요. 그렇지만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을 항상 누리며 생활하기 때문에 항상 기쁘고, 항상 평화스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어요.

오늘날 겉은 정상적으로 보여도 마음이 병든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몰라요. 요즘에는 초등학교 다니는 학생들도 정신병이 많다고 하는데 우리 ○○교회 친구들은 한 사람도 없어서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현재 미국에는 500만명 이상의 우울증 환자들이 있다고 해요.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는데, 왜 그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평화가 없는지 알아요. 그것은 예수님을 그 마음속에 모시지 않고 마귀를 따라가기 때문이에요. 마귀는 마음에 병을 주고, 인간을 파괴시켜 버리는 나쁜 존재에요.

2. 성령이 충만해야 평강을 누릴 수가 있어요(22절).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어요. 성령님도 하나님이신데, 이 성령이 마음속에 충만한 사람들은 항상 기쁜 마음으로, 평강의 마음으로 생활할 수가 있어요.

우리 친구들! '충만'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 컵에 물이 가득차서 흘러 넘치는 상태를 말해요. 컵에 물이 밑바닥에만 있으나, 넘치도록 있으나 컵에 물이 있는 것은 똑같지만 그 차이는 엄청나지요. 마찬가지로 성령을 그 마음속에 모셔도 충만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에요. 성령충만한 사람은 항상 평강과 기쁜 마음으로 생활하니까 마귀가 공격을 해도 끄떡없지만, 충만하지 못한 사람은 마귀의 공격에 금세 무너져서 불안, 근심, 걱정, 낙심으로 가득차게 되는 거예요.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오는데, 9가지 열매중에 세번째가 무엇인지 알아요. '화평'이에요. 이 '화평'이 바로 평강이란 말이에요. 성령의 열매인 화평이 우리 마음속에 있을 때 참된 평강을 누릴 수가 있는데, 화평의 열매를 맺도록 성령 충만한 친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는 사람이 평강을 누릴 수가 있어요(23절).

남을 용서해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은 이미 그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고, 성령이 충만한 친구라고 할 수 있어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원수라도 용서할 수가 있어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알지요.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저들을 용서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하셨어요.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평강을 누릴 수가 있어요. 다른 사람이 잘못을 했을 때 용서해 주지 않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예수님을 잘 믿고 있는 친구가 아니에요. 화를 잘 내는 사람은 결코 평강을 누릴 수가 없어요 마귀의 공격 무기중에 하나가 사람으로 하여금 화를 내게 해서 싸우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들어서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어요.

우리 유초등부 친구들은 항상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고, 남의 잘못을 보고도 너그럽게 용서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주님이 주시는 평강의 축복을 매일같이 누리며 사는 친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깨끗한 사람이 되자

(딤후 2:20-21)

몇년 전에 미국의 한 경매장에서 조선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백자 그릇이 도자기로서는 세계 최고 가격인 24억 6천만 원에 팔려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어요. 도자기 그릇 하나가 웬만한 공장 건물보다도 더 비싼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수십억짜리 그릇이 있는 반면에, 시장에 가면 몇백원만 줘도 살 수 있는 싸구려 그릇이 있어요.

본문에 보면 여러 가지 그릇들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그릇에다 비유할 때가 있어요.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앞을 보지 못하고 있을 때 주님께서 아나니아라는 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도행전 9장 15절에 보면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사도 바울도 고린도 후서 4장 7절에서 인간을 질그릇에 비유했고요, 이사야 선지자, 예레미야 선지자도 하나님은 토기장이고 우리는 진흙으로 만든 그릇으로 비유하고 있어요.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그릇에다 비유하고 계실까요? 목사님 나름대로 3가지로 살펴보니까 이런 것 같아요. 첫째는, 그릇은 인간만큼이나 가지 각색이라는 사실이에요. 우리 친구들 집안을 살펴보세요. 접시 그릇부터, 뚝배기 그릇, 유리그릇, 꽃병, 밥그릇, 도자기 그릇, 물 컵에 이르기까지 많지요. 그릇 시장에 한 번 나가 보세요. 별의별 그릇들이 많이 있어요. 사람도 보세요. 접시같이 속이 좁아 터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뚝배기같이 듬직한 사람이 있고, 개밥 그릇처럼 지저분한 사람이 있고요, 유리같이 깨끗한 사람, 도자기같이 우아한 사람등 가지각색이에요.

두번째는 그릇은 사람만큼이나 잘나고 못난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어요. 멋있고 화려한 것과 못생기고 보기 싫은 것이 겉으로 봤을 때, 구별하기가 너무 쉬워요. 누구나 탐을 내는 번쩍번쩍 빛나는 금그릇이 있는 반면에, 길가에 굴러 다녀도 쳐다보지도 않는 찌그러진 양은 그릇이나 깨진 그릇이 있어요. 또 수십 억에 팔리는 도자기 그릇이 있는가 하면, 몇백원도 안되는 사기 그릇이 있어요. 사람도 보세요. 단, 한편의 영화에 출연해도 몇 억을 받는 스타형 인간이 있는 반면에, 하루종일 구걸해도 천원도 못버는 장애형 인간이 있어요.

세번째는 그릇도 사람처럼 깨지기 쉽다는 거예요. 사기나 유리 그릇들은 놓았다 하면 쨍그렁이에요. 엄마나 언니들이 설거지 하다가 많이 깨뜨린 것을 보았을 텐데, 우리 인간도 마음이 쉽게 깨져요. 100번 "예쁘다, 예쁘다" 소리를 들어도, 한번만 "너 못생겼어"들으면 집에 와서 자기 얼굴을 이리 저리로 보고는 속상해서 잠을 못자는 게 우리 인간이에요.

20절에 보면 큰집에는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이 있어서 귀히 쓰는 것이 있고, 천히 쓰는 것이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큰집이란 교회를 말하는데,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신자들이 있는데, 오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금이나 은이나 나무나 진흙으로 만든 외적인 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21절에 나오는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에요. 아무리 금이나 은, 다이아몬드로 수놓은 그릇이라도 그 그릇이 깨끗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지 않으신다는 말씀이에요. 하나님의 일꾼의 기준은 잘나고 똑똑한 것이 아니라 깨끗함이라는 사실이에요. 그러면 깨끗한 사람이 되면 받게 되는 세 가지 축복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어요.

1. 거룩한 사람이 되요(21절).

우리가 예수님을 나를 구원하시는 주님으로 믿을 때, 우리는 모두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매일같이 깨끗한 삶을 살아서 그 거룩함을 유지해야 되요.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몸과 마음이 깨끗해야 되는데, 거짓과 더러운 마음을 버려야 되요. 거짓말이나 하고, 남을 미워하고, 질투하고, 싸우기나 하는 사람들은 거룩한 사람이 될 수가 없어요. 우리 유초등부 친구들은 항상 말도 좋은 말, 깨끗한 말만 하고, 행동도 아름답고 깨끗한 행동을 해야되요.

현대는 과학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인공위성으로 자기가 원하는 지역을 찍으면 바로 앞에서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그림이 나타나게 되있어요. 확대하면 기어다니는 벌레의 숫자도 하늘에서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야외에 있게 되면 숨을래야 숨을 수 없는 시대라고 할 수 있어요.

말도 그래요. 미국이나 러시아의 첩보부대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이 지구상의 어느 곳이라도 도청을 할 수가 있어요. 도청장치를 설치하는 것은 옛날 방법이고, 지금은 벽이나 유리를 통과하는 마이크로 전파를 목표물에 발사하면, 그 전파가 목표대상과 충돌하여 듣고 싶은 사람의 목소리를 전달해 준다고 해요. 지금 우리 친구들이 소근소근대는 이야기 소리도 그들이 원하면 사무실에 앉아서 다 들을 수가 있어요. 우리 친구들 놀랍지요.

하나님 앞에만 비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 앞에도 우리가 완전히 노출되어 있어요. 그러나 깨끗한 사람은 누가 보든 안보든 겁날 것이 없어요. 죄를 짓거나, 나쁜 마음먹은 사람이 감추려고 하지, 죄없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숨길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은 우리 친구들의 마음이 깨끗하기를 원해요. 왜냐하면 깨끗한 사람만이 거룩해 질 수가 있기 때문이에요.

2. 하나님의 일꾼 시험에 합격한 사람이 되요(21절)

21절에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된다"고 하는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일꾼 시험에 합격해서 언제든지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해요. 우리 친구들, 회사나 공무원 시험을 봤는데, 시험에 합격했어요. 그렇다고 내일 바로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 봤어요. 없지요. 시험에 합격해도 집에서 좀 더 기다린 다음에 출근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믿는 우리 친구들도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하나님의 선한 일꾼으로서 예비되어서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언제든지 주님의 일을 할 수가 있어요.

3. 하나님께서 귀히 쓰는 그릇으로 사용하세요(21절).

요즘 보면 교회안에 박사, 사장, 장군, 배우, 미스 코리아등 멋있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금이나, 은, 나무와 진흙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를 보세요. 겉으로 볼 때 금은 참 멋있고 귀해요. 모든 금속 중에 최고의 위치를 금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러나 그러한 금도 깨끗하지 못하면 주인이 사용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무더운 여름철에 목이 아주 말라서 물을 따라 먹으려고 하는데, 앞에 금그릇과 유리 그릇이 있으면 먼저 금그릇에 손이 갈 거예요. 그런데 금그릇 안을 보니까 먼지가 쌓여 있고, 벌레도 죽어 있고 아주 더러웠어요. 그러면 아무리 금그릇이지만 물을 따라 먹겠어요. 안 먹을 거예요. 오히려 깨끗한 유리 그릇에다 물을 따라 먹을 거예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인간의 외적인 아름다움이나 재능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얼마나 깨끗하고 진실한가를 보시는 분이에요.

비록 내가 겉모습이 아름다운 금그릇이 아니고 초라한 질그릇이라도 속상해 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보시기 때문에 항상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믿음 생활을 잘하면 하나님께서 귀한 그릇으로 사용해 주실 거예요. 아무리 세상에서는 "내가 제일 예쁜 사람이야", "내가 제일 돈이 많아", "내가 제일 똑똑해" 하고 큰소리치는 금그릇같은 사람이라도 그 마음이 죄로 가득찬 더러운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버림받을 수밖에 없어요.

비록 겉모습은 질그릇과 같이 보잘 것 없어도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믿음 생활을 잘해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신앙의 금그릇이 되는 것이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에요. 우리 유초등부 친구들은 항상 정직하고, 항상 깨끗한 마음을 가져서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신앙의 금그릇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혜를 구하자

(약 1:5)

유대인들처럼 지혜를 존중하는 민족이 없어요. 탈무드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요. 어떤 사람이 랍비를 찾아와서 물어 보는 거예요.

"랍비여, 쌍둥이가 태어났는데 그만 몸이 붙어서 태어났다면 한 아이로 보아야 합니까, 아니면 두명의 아이로 보아야 합니까?" 참, 대답하기 곤란하지요. 이때, 랍비가 지혜롭게 대답을 합니다. "왼쪽 아이를 꼬집었을 때 왼쪽 아이뿐 아니라 오른쪽 아이도 '아야'하고 아파한다면 그 쌍둥이는 하나이지만, 꼬집었을 때 꼬집힌 왼쪽 아이만 아파한다면 이는 두 사람이니라" 참으로 지혜로운 대답이지요. 우리 유초등부 친구들도 보면 지식은 많은데 지혜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지식이란 산수나 영어등 주로 공부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을 말하지만, 지혜란 생활을 해 나가면서 그때 그때 해결해 나가는 힘을 말해요. 그러니까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고, 무식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우리 친구들 '2 4는 2분의 1이다' 너무 쉬운 산수 문제지요. 어느 동네에 4형제가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옆집 아줌마가 사과 2개를 주면서 똑같이 나눠 먹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산수는 맨날 100점 받으면서도 사과 2개를 넷이 똑같이 나누어 먹는 방법을 몰라서 서로 싸우더니 결국엔 엄마한테 혼이 나고 말았어요. 이런 친구들은 지혜가 부족한 친구라고 말할 수가 있어요. 사과를 반씩 잘라서 먹으면 네 사람이 공평하게 먹을 수 있는데, 그 형제들은 지혜가 없는 친구들이었요. 그러면 지혜를 구하는 것에 대해서 3가지로 살펴보기로 하겠어요.

1. 이 세상에 완전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우리 인간이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IQ 200을 넘지 못해요. 100도 안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혹시 그런 친구들이 있어도 조금도 걱정하지 마세요. 솔로몬 임금님도 처음부터 그렇게 머리가 좋았던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후에 '지혜의 왕'이 되었던 거예요.

오늘날의 시대를 보면 지식은 옛날보다 많아진 것 같은데, 지혜는 오히려 적어진 것 같아요. 특히,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너무 부족한 것 같아요. 세상 지식만 믿고 까불다가 하나님을 멀리 하는데, 우리 인간이 아무리 많이 알아도 하나님에 비하면 태평양 바다에 떠다니는 플랑크톤 한 마리만도 못한 지식에 불과해요. 또 인간의 지혜도 우주 공간에 떠다니는 먼지 알갱이 만큼이나 보잘 것이 없어요. 오직 완전한 지혜를 가지신 분은 하나님 밖에는 안 계셔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모든 것을 아시고, 이 세상을 다스려 나가시는 분이 하나님으로서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실 때 우리가 참된 지혜자가 될 수 있어요.

2. 하나님께서는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세요.

하나님께 우리 친구들이 지혜를 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신다는 말이에요. 이 말을 거꾸로 해석하면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영철아, 왜 너는 지혜를 구하지 않느냐"하고 꾸짖으신다는 말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 친구들이 지혜를 구해도 좋은 지혜를 구해야지,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지혜를 구해서는 안되요. "하나님, 돈 많이 버는 지혜를 주세요", "모든 친구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이런 지혜는 하나님이 안들어 주세요. 그런데 우리 친구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야단치지 아니하시고 흔들어 넘치도록 많이 주세요. "하나님, 하나님의 일을 더 잘하려고 합니다. 저에게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주세요" 이런 기도를 하면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안주시겠어요.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주셔도 넘치도록 많이 주시는 좋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래요.

3.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구해야 되요.

우리 친구들이 한 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구해야 되요. 예를 들어 우리 친구들이 아빠한테 무엇을 사달라고 해 보세요. "아빠, 제가 초등학생이지만 영어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카세트 녹음기 하나 사주세요. 사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야 아버지가 "우리 아들이 나를 믿는구나. 그래 카세트 아니라 컴퓨터도 사주마" 이렇게 되는데, 의심해 보세요. "아빠, 아빠가 저에게 카세트 사 주실지 의심이 나네요. 제가 이렇게 말은 하지만 안 사주실 것 같아요. 그렇죠 아빠" 해 보세요. 아빠가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알았다. 아들아, 이 아빠가 그 정도도 못사줄 것으로 의심하다니, 알았다. 안 사주마" 그렇게 되는 거예요.

우리 친구들이 기도하면 찰떡같은 믿음으로 의심없이 구해야 되요. 의심하면서 구하는 친구들은 마치 바다 물결처럼 이리 흔들, 저리 흔들하는 친구들로서 "해 주실까, 안해 주실까" 의심하는 두 마음을 품은 친구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으세요. 우리 친구들이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구할 때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얻을 수가 있어요. 우리 유초등부 친구들은 하나님께 많은 지혜를 구해서 지혜의 챔피온들이 되어서 주님의 일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호두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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