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신학 요약 자료
Ⅰ. 서 론
클라스 루니아는 이렇게 말했다. " 거의 모든 현대 신학은 어느 정도까지 어떤 철학 체계에 기초하고 있다. 비록 그들이 성경만이 우리의 깊은 인간 문제에 해답을 준다고 선언하지만, 이 신학들은 대체로 성경으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도록 하지 않는다. "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면서도 그 영역이 우리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부분이기에 유명한 학자 또는 유명한 학파의 해석을 의지하는 편이다. 이제 지금까지 신학사에 있어 한 부분을 차지했던 여러 주장과 학자들의 견해를 토대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 본 론
1919년 이전 - 현대신학은 1919년 칼 바르트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학사상의 새로운 바람이라 할 수 있는 소위 바르트의 ' 코페르니쿠스적 ' 혁명은 이미 200년 전 계몽주의의 왕자인 철인 임마누엘 칸트에 의해 비롯되었다. 칸트는 " 이성(理性)이 물질세계를 휘어잡는 데는 만능이며 그 이상의 것에 대하여는 무능력하다는 현대인의 자신(自信)내지 확신 "을 체계화하였다. 칸트는 1784년 새 계몽운동의 욕구를 종합하여 말하기를 계몽이란 사람이 스스로 둘러 쓴 미성숙에서 헤어나오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이러한 칸트의 영향은 19세기뿐만 아니라 20세기에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1919년 이후 - 1919년은 칼 바르트가 쓴 주석으로 인해 현대의 신학과 이 신학에 끼친 결정적인 영향들을 평가하는 시발점이 되겠다. 그 주석의 원칙들을 살펴 보면,
1. 자유주의에 대한 신정통주의의 반역이 초기 바르트의 현저한 특징이다.
2. 그가 주장한 새로운 계시관은 계시를 주장하면서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과 완전히 일치시키지 않고 구별하였다.
3. 변증법적이라는 새로운 신학 진술법을 창도했다.
4. 하나님의 절대적인 초월성을 새롭게 환기시키려 하였다.
5. 신학계에 역사에 대한 새로운 무관심을 표명했다.
신정통주의 - 바르트 이외의 사람들의 저작에 흔히 " 신정통주의 " 라 불리는 운동이 형성되었다. 그 중에 에밀 부룬너가 바르트를 제외하고는 이 학파중 널리 알려진 분이다. 이 운동은 정화하는 불처럼 작용하여 급기야는 바르트 자신의 저서도 1921년 이후에 정화를 받아 나아갔다. 그가 입장을 바꾸고 반격을 가하고 하는 중에 그는 이 운동의 가장 저명한 대변인이 되었다. 그러면 이 운동내에서도 바르트와 부룬너가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도 있지만 저변에 강하게 흐르는 공동체계가 있어 소개하려한다.
1. 신정통주의의 주제중 하나는 계시의 개념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계시는 " 위로부터 수 직적이다 " 라고 주장한다.
2. 계시 곧 하나님의 말씀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3.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이우심의 두 상태가 시간적으로 앞서고 뒤따른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4. 보편 구원의 가능성에 대한 애매한 태도는 신정통주의 가운데 가장 논쟁을 일으키는 바다.
양식비평 - 불트만의 방법 마틴 디벨리우스가 쓴 " 복음의 양식사 "에서 양식비평이란 이 운동의 이름이 나왔다. 불트만은 그가 집필한 " 공관복음서 전승사 "란 책으로 쉬미트와 디벨리우스와 함께 신약 성서학의 양식사(樣式史)적 방법론을 확립시켜 놓았다.
1. 양식 비평은 성경을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생애와 교훈의 신빙성있는 기사로 믿을 수 없다고 전제하고 출발한다.
2. 복음서들은 무엇보다도 초대교회의 편집의 산물이라는 것이 양식비평의 기본적인 가정이다.
3. 양식비평의 목적은 기록된 복음서들 배후에 있는 구전들의 역사를 분석하는 것이다.
4. 이 수법의 첫 단계는 복음서 안에 있는 문서, 시간, 장소 등의 표시는 비역사적이며 믿을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5. 이 작업이 끝나면 각각의 구절들은 이적이야기, 변론적인 교훈, 예언, 명언 등으로 분류된다. 이 각각은 특유한 고전된 형식이 있다.
6. 이런 방법론의 결과는 최소한 매우 회의적이다. 불트만에게는 역사적인 근거는 주로 예수의 가르치심에 있고 그의 하신 일의 기록에는 없고 더구나 그의 품위 묘사에는 없다.
비신화화 : 불트만의 메시지 - 불트만의 가장 큰 영향력은 1941년 " 신약성서와 신화론 "
이라는 강연으로 발휘되었으며, 제 2 차 세계대전 이후에 신학계와 교계에서 " 비신화화(非神話化) " 문제에 대한 1년여에 걸친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 비신화화 작업은 마침내 (오해를 불러 일으켜서) " 다른 어떤 복음도 안 된다 " 는 기치(旗幟)아래에서 60년대에 생긴 복음주의 운동에서 부정적인 상징이 되었다. 불트만은 예수의 이적과 기사 이야기를 역사가 아닌 신화 곧 자신들을 더 잘 이해시키기 위하여 이런 신화를 창작한 사람들의 사고 형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학의 시대에 복음을 효과있게 전하려면 신약에서 이 신화를 벗겨내고 그 뒤에 있는 원래의 목적을 발견해 내어야 하는 데 이 발견해 내는 과정이 " 비신화화 "이다.
구 속 사 - 현금 서구 신학에 이 말의 충분한 의미를 준 사람은 스위스 신학자인 오스카 쿨만 박사다. 그는 불트만의 실존론적 성서 해석을 신약성서에 대한 잘못된 접근이라 보고, 하나님의 계시 행동의 " 객관적 사건들 " 즉 역사에 주목하고자 했다. 여기에서 역사란 " 계시 "의 역사, " 구원 "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신학성서의 신학은 구속사의 신학이다.
쿨만의 입장에 의하면 모든 구속사는 그리스도론이다. 그는 " 신약성서의 그리스도론 "에서 논의의 주제를 바꾼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핵심에 들어가고자 했다. 즉, 그리스도론은 구속사이다. 이러한 신약성서의 그리스도론이 예수의 자의식(自意識)과 제자들에 대한 예고(豫告), 제자들의 부활절 경험, 공동체 예배에서의 주(主)의 경험에서 추적될 수 있다고 보았다. 쿨만의 구속사 신학은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요한 크리스티안 콘라트 폰 호프만의 신학과 게르하르트 폰라트의 신학에서 그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세속화 신학 - 이 새로운 신학적인 추세의 대변자는 존 로빈슨 박사다. 그의 베스트 셀러 " 하나님에게 솔직히 " 는 새로운 주격과의를 부흥시켰다. 로빈슨의 작품은 " 저 위에 계신 " 하나님의 관념은 시대에 뒤졌고 무의미하고 틀렸다는 확신으로 출발한다.
1. 세속화 신학자들은 이 세상의 문제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주된 관심사이어야 한다고 한다.
2. 우리의 신학도 이 세속화 정신을 표현해야 한다고 한다.
3. 교회와 세계의 구별은 철폐되어야 한다고 한다.
4. 세속화 신학에는 초자연주의를 최소한으로 감축시키려는 노력이 있다.
상황윤리 - 감독교회 사회윤리학 교수 조셉 플래처가 그의 베스트 셀러인 " 상황윤리 "를 출판했을 때 가장 크게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1. 상황윤리는 자체를 여러면에서 " 종래의 윤리 "와 대조시킨다. 옛 도덕의 규율과 원칙에 대한 반작용으로 새 도덕은 사람에서 출발하여 원칙보다 인격에 우선권을 준다
2. 새 도덕은 그 이름이 표현하듯이 " 상황 " 곧 현금의 철학자들이 " 실존적인 존재 "라 부르는 것을 강조한다.
3. 행위의 궁극적이요 유일한 표준은 윤리적인 준칙이 아니고 자아가 없는 희생적인 아가페의 사랑이라 한다.
4. 이 아가페의 사랑은 좋아하든지 않든지 상관없이 이웃의 선을 원하는 것이다.
5. 고전적인 기도교 윤리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이에 대조적으로 플래처는 " 목적만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고 말한다.
소망의 신학 - 새 신학운동이라 하기엔 너무 이를지 몰라도 유르겐 몰트만의 책 " 소망의 신학 " 의 제목과 논제는 이미 학계의 신경을 건드렸다.
1. 몰트만의 " 미래파 신학 "을 이해하는 열쇠는 하나님이 시간의 과정에 굴복한다는 사상이다. 하나님은 약속으로만 소망중에만 임재하신다
2. 몰트만에 의하면 모든 기독교 신학은 종말론에 의하여 형성되어야 한다.
3. 복음적 신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종말론에 밀접히 관련시킨다.
4. 사람은 그의 미래를 피동적으로 기다려서는 안된다. 그는 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5. 몰트만에 의하면 세상에는 하나님이 창조시에 주신 일정한 형식이나 구조가 없다. 미래는 자유를 말하며 자유는 상대성을 의미한다.
6.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이 우주적이고 사회적인 화목을 이루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역사의 신학 - 마인쯔 대학의 젊은 신학 교수 올프하르트 판넨베르그는 " 역사의 신학 " 또는 " 부활의 신학 " 이라 불리는 새로운 신학의 경향을 이뤄냈다.
1. 몰트만과 같이 판넨베르그는 역사와 신앙의 기본적인 문제로 돌아가기를 주장한다.
2. 하나님의 계시는 사람에게 직접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항상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온다고 주장한다.
3. 그리하면 보편적인 역사만이 계시의 매개체가 되고 역사 전체가 하나님의 교사(敎師)다
4. 역사의 의미는 그 중심에서가 아니요 그 종국에 가서야만 발견케 된다.
5. 몰트만과는 달리 대체로 부활을 비신화화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진화론의 신학 - 예수회(會) 과학자요 신비가인 피에르 떼이야르 드샤르당 신부의 사후에 그의 생존시에 출판이 금지됐던 책들이 나오므로 소위 " 진화론의 신학 "이 대두됐다.
1. 떼이야르 사상의 출발점은 진화(進化)다. 지구는 최소한 50억년전에 형성되었고 그 때 이래 진화의 과정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2. 이 진화의 과정은 그가 " 복잡화 성향(性向)의 법칙 " 이라 부르는 법칙을 따라 진행된다. 진화의 초기 단계인 중권에서 부터 암석권 -> 대기권 -> 생물권 -> 정신권(인간화) 으로 발전하고 이 진화과정에서 스스로를 인식하며 사람은 선두에 서게 된다.
3. 진화론의 이 단계에서 미래의 과정을 예고하는 데, 전 진화과정의 마지막은 하나님안에서 만물이 초인격적으로 통일되는 그가 오메가 포인트라 부르는 데로 합치는 것으로 보았다.
4. 이 진화과정의 중심이요 그 내적 원리는 그리스도라 한다.
5. 중심인 그리스도, 오메가 포인트에로의 이 운동은 사랑의 과정이다.
과정(過程)신학 - 화이트 해드는 그의 과정 철학을, 세계는 동력적이요 항상 병하며 생성은 존재를 포함한다는 사상을 중심으로 전개시켰다. 하트 쇼온은 그것을 더 발전시켜 하나님은 과정 자체라 한다. 즉 궁극적인 범주가 존재가 아니고 생성이다.
1. 과정신학자들은 우주위에 초월하신 존재라는 성경적인 신관을 거부한다. 그 대신 그들은 만사가 하나님안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항상 역사와 자연의 모든 것 가운데 나타난다.
2. 하나님의 창조는 계속적인 진화과정이요 질서와 인간이 그 미래를 결정하는 자유의 공존이라 한다.
3. 과정신학의 하나님은 " 인격적으로 정리된 연속적인 경험들 .."이며 인간 경험에서 얻은 유추에 근거하여 요청된 지적개념으로 본다.
4. 과정신학은 그 신론에 있어 성경적 색체를 나타내려고 애쓰지만 그 체계의 기초가 되지 못하고 겉치레 밖에 못된다.
5. 과정신학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인정한다는 말을 그의 초자연성과 절대적인 초월성을 부인함으로 스스로 부인한다.
6. 과정신학은 하나님의 사랑을 택한 자인 예수를 통하여 온 인류에게 퍼지는 우주의 법칙으로 변질시킨다.
존재의 신학 - " 신학자의 신학자 "라 불리는 폴 틸리히는 그의 체계의 철학적인 기초를 실존주의에 많이 두고 있다.
1. 종교는 어떤 신념들 혹은 특정한 관습들의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종교를 재정의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관심이 있을 때는 궁극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을 때다.
2. 우리의 궁극적인 관심은 우리로 존재나 비존재가 되도록 결정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은 어떠한 존재도 사물도 아닌 그 이상이다.
4. 죄를 존재와 존재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란 기준에서 재정의한다.
5. 그리스도는 멀어진 것이 극복된 상징이요, 하나님과의 연합을 파괴하려는 모든 소외의 세력이 그 안에서 소멸된 " 새 존재 "의 상징이다.
6. 중생은 새 존재를 가져오는 자로서 " 예수안에 나타난 새로운 현실속으로 끌려들어온 상태가 된다. 이와 같이 하여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새 존재는 인생의 궁극적인 관심과 모든 존재의 근거에 대한 추구의 해답이 된다고 한다.
신비주의 - 가장 단순하고 본질적인 의미의 신비주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인식, 하나님의 임재의 직접적이며 친숙한 의식을 강조하는 형태의 종교다.
1. 그 중심되는 특징은 성경이외의 특별계시를 믿는 것이다.
2. 객관적인 표준을 잃고서 신비주의는 주관주의와 정서주의를 고조한다.
3. 보통의 기성교회를 헐며 한 지도자 중심이다.
4. 종종 신기한 것을 강조하며 특별한 은사를 강조한다.
5. 종말론을 제한된 의미로 강조한다.
경건주의 - 1675년 독일의 루터교 목사 빌립 스페너가 라틴어로 " 심중의 소원 "이라는 책자를 발간함으로 이때부터 경건주의가 탄생되었다.
1. 생명없고 비인격적인 종교에 대한 산 신앙의 항의로서 일어났다.
2. " 교회내의 작은 교회들 "이란 모임을 만들어 성경연구를 하며 영적성장을 위하여 상호부조를 하였다.
3. 기독교가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을 실행하는 종교이므로 선행은 그 신앙의 외적 표현이 되었다. 외지 선교사업은 경건운동의 특징이었다.
세대주의 - 다아비로 시작된 " 세대주의 "라 불리는 해석법은 복음주의 측에 속히 퍼졌고 무디가 창설한 학교는 이 교훈의 중심지가 되었다.
1. 세대주의자들은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과는 달리 항상 꼭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고집한다.
2. 모든 구약예언은 여자적으로 풀이해야 되므로 구약의 이스라엘과 신약의 교회간에 아무 관계도 인정치 않는다.
3. 인간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역사는 일곱의 다른 세대들의 역사라고 한다. 그 중 가장 긴 세대를 율법세대라 본다.
4. 소위 율법세대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계시가 없었다고 한다.
5.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전했던 나라는 신령한 나라가 아니요 구약 다윗 왕국의 지상적인 회복이었다고 한다.
6. 마지막 날에 대환란 전에 교회는 비밀한 가운데 공중으로 끌어올려 예수를 영접할 것이라 한다.
근본주의 - 광범한 의미에서 근본주의는 단순히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 곧 초자연적인 복음의 변호와 전파에 대한 또 하나의 이름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특수한 역사적 운동으로서는 좀 더 좁은 의미를 가졌다.
1. 역사적 운동으로서 근본주의의 여러 특징들에 대한 비판은, 성경적 신학과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편에 확고부동하게 서는 근본주의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일치한다는 점을 흐리게 하여서는 안된다.
2. 후기 근본주의를 그 기질과 운동의 성격이 독특함으로 독특한 이름을 불러 그 경향을 초기 근본주의와 구별함이 옳다고 하는데도 일리가 있다.
3. 이 신 근본주의 단계는 초기 근본주의의 위험점 곧 칼 헨리가 " 근본주의자의 축소 " 라 부르는 그 점을 확대 시켰다.
4. 근본주의가 신학적으로 광범하게 다양한 견해의 융합이었기 때문에 그 결과 신학연구에 깊이 몰두하는 일이 결여되었다.
5. 경건주의와 세대주의의 영향으로 " 하나님의 뜻 전체 "를 축소시키고 기독교 계시를 문화와 사회생활에 연관시키려 하지 않는 경향이었다.
6. 근본주의가 주장하는 교회내의 불신에 대한 성경적인 징계의 요구 및 교회의 순결성에 대한 성경적 호소는 비성경적인 부정주의와 독고주의로 악화될 위험성이 있다.
신근본주의 - 20세기 초두 미국에서 일어난 근본주의 운동으로 여러 가지 양상의 반응과 입장들이 나타났는 데, 이 모든 일로부터 새로운 혼합 혹은 옛 요소들의 배합상의 변화로 인하여 " 보수 " 신학내에 새로운 경향이 생겼다. 이 변천을 신 근본주의라 부르고자 한다.
1. 초기 근본주의와 같이 신근본주의는 복음을 전파하고 옹호하기를 도모한다.
2. 근본주의와 더불어 성경적인 기독교를 강하게 표방하나 " 교리적인 상이점을 논하는 데는 의도적인 유예기간 "을 선포한다.
3. 신근본주의는 개인적인 종교경험을 강조하는 경건주의적 경향을 보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의 사회적 문화적 명령은 무시한다.
4. 진화론에 대한 정당한 불신은 때로 과학 일반에 대한 불신으로 변한다.
5. 기존의 교단들 내의 자유주의를 지적하며 보수주의자 간의 단합 협동을 촉구한다.
6. 초기의 근본주의를 따라 성경적인 교회론을 강조한다.
7. 개인적 및 사회적 윤리문제는 궁극적으로는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개개인이 초자연적 중생을 경험하여야만 해결된다고 정당하게 주장하였다.
신복음주의-그 메시지 1948년 퓰러 신학교의 해롤드 오켕가 박사는 신학계에 " 신 복음주의 " 라는 새 단어를 도입했다. 이 신어는 과거의 근본주의에 복음주의 신학의 새 면을 관련시키고 동시에 과거의 어떤 요소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려는 시도였다. 근본주의와 같이 신 복음주의도 항의에 근원을 둔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항의가 자유주의 신학과 아울러 복음주의 신학에도 똑같이 강하게 하였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새로운 논의의 중심지들이 서부의 복음주의자들 중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칼 헨리 같은 사람들은 사회적 책임에 대한 보수주의의 새로운 인식을 촉구했다. 신 복음주의는 또한 비보수주의 신학자들과의 친교의 문제를 두고 토론을 열었다. 이 새 경향내에서 다수가 자유주의 및 변증법적 신학자들과 대화할 의사가 있음을 표시했다.
신 복음주의자들에 대하여 일어난 가장 격심한 토론 제목은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이었다. 다시금 카넬의 견해들이 많은 소요의 중심이었다. 여기서도 카넬은 신 복음주의의 정조(情操)의 전형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은 자연히 그 운동전체를 그와 함께 정죄하게 된다. 그러나 카넬의 이 면에서의 견해가 신 복음주의 중심의 좌편에 치우친 것이라고 가정할지라도 신복음주의가 영감과 무오성간의 간격을 더욱 더 넓히고 있는 듯 하다는 것을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신복음주의 - 그 실패 라이트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신복음주의 " 내의 다양성을 감안할 때, 가장 현명한 일은 신복음주의가 신학이라기 보다 한 기운(氣運)이요, 기질(氣質)이요, 신학적 입장이라기 보다 한 성향이라고 보는 것이리라.
신 복음주의가 해결치 아니한 문제와 신 복음주의가 기독교를 절충할 위험중에 있는 듯 보이는 점들을 살펴 보면,
1. 신 복음주의 권내의 지도자들이 성경의 권위와 영감에 대한 복음주의의 토론을 재개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이 토론의 진로는 순전히 유익하지 못했다.
2. 신 복음주의 진영내의 지도자들은 교회론의 연구를 고려할 것을 요구해 왔다. 특히 그들은 교제와 분리 문제에 대한 새로운 검토를 촉구했다.
3. 신 복음주의는 과학과 성경의 관계를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결과는 일률적이거나 항상 유익하지만은 아니하였다.
4. 신 복음주의는 사회적인 필요에 대한 확실한 반응과 성경적 사회윤리를 촉구한다.
5. 신 복음주의는 자증하시는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하는 변증을 하지 않는다.
개혁신앙 - 원래 " 개혁 "이란 말은 16세기에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를 지배했던 오류와 폐단들에 대하여 항의하여 일어난 교회들의 성격을 묘사하였다. 넓은 의미에서 그 용어는 종교개혁의 모든 교회들에 적용할 만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한 목적 곧 교회 생활의 넓은 영역에서나 개인 신자 생활의 사사로운 영역에서나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살 것을 고백하였기 때문이다. 근래에 와서 그 용어는 훨씬 제한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보통신학에서 전적 부패, 무조건적 선택, 제한,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이란 다섯 항목의 교리와 동일시된다.
개혁신앙은 트리니티 크리스찬 대학의 칼빈 씨펠드 박사가 " 3대 성경적 사실 "이라 부른 것에 의하여 16세기 유럽에서 활약하였고, 20세기 세계에서도 자기의 소임을 다한다. 그것이 없이는 우리는 단지 " 보수하는 신앙 "을 가질 뿐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1. 교회는 개인 신자들의 집합이 아니요, 한 몸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백성이며성령의 교통이다.
2. 신약교회 생활은 전(全)생활을 포괄하였다.
3. 신령한 생활은 교회 생활 이상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역사를 강력히 받아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산 편지가 되었다.
Ⅲ. 결 론
지금까지 1919년 이전부터의 신학 사조를 비롯해 여러 신학의 흐름에 대해 대략적으로 살펴 보았다. 저마다 새로운 출발점을 가지고 나름대로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펼쳐보였으나 큰 울타리 안에 속한 자로서 공통된 원리를 찾아 볼 수 있다. 다소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궁극적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당히 대립하려 하지 않는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귀기울이려는 열심에 있어서는 모두 같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성경이 우리의 생활과 생각을 좌우해야 되겠다. 각자가 받은 은혜도 크고 성령을 통해 증거된, 믿음의 확신들이 서 있는 주장이라 할지라도 역사의 저편에 사라지는 해석들이 얼마나 많았겠나 생각해 본다. 항상 역사는 승자의 것이기에 뒷받쳐주는 증빙자료가 없거나 믿고 따라주는 후학들의 연구와 발전이 없다면 인정받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현재 우리의 모습도, 20세기 신학에 폭풍우 같이 몰아 쳤던 바르트와 같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름은 남겼지만 그리스도의 신성에 그 거룩함에 이르기보다는 그것을 줄기로 다른 여러 곁가지가 번성할 수 있도록 열어놓은 것 같다. 뻗쳐 나갔던 곁가지로 인해 줄기의 소중함을 깨닫는 다면 더 바랄것이 무엇이랴! 하지만 무엇이건 열어놓게 되면 곧 개방하게 되면 좋은 것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함께 여러 안 좋은 것까지 들어오게 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분별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간혹 나만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들켰나 하고 싶을 정도의 주장들도 있었고 " 아하 이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구나 " 하는 신학사조들도 있었다. 그리고 또 그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비평도 기분 나쁘게만 들을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됐다. 신학에 대한 체계가 어느 정도 서지 않은 사람이라면 혼란에 빠지거나 아니면 다른 주장을 배척하는 이단에 빠질 수 있는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현대 신학을 시작할 때 신학에 대한 역사로 보고 또 지난 과거와 현재를 안다면 쉽게 되풀이되는 실수에도 미리 방어가 되지 않겠나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살펴 본 신학자들의 주장도 또 그 세대를 주름잡았던 신학사조도 성경을 기본으로 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성경연구에 더 힘을 쏟아야 하겠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묵상과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본 받는 다면 세상의 이러저러한 바람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믿음으로 해 나갈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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