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

하나님아들 2024. 3. 10. 21:06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

 

(하나님의 역사의 기초가 되고 특징이 되는 몇 가지 중대한 원칙들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이야기해서,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인간의 창조를 시작하기 전에 특정한 일들을 생각하셨고, 의도하셨고, 결정하셨습니다.)

 

 

 1. 예정론 연구의 필연성(필요성) 

 

 

 

창조의 교리를 상고하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상고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하라고 우리에게 지시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우리에게 말씀하기 전에 하나님의 모든 활동의 특성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역사를 행하시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정확하게 상고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역사를 행하시는 방법을 먼저 상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기초가 되고 특징이 되는 몇 가지 중대한 원칙들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이야기해서,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인간의 창조를 시작하기 전에 특정한 일들을 생각하셨고, 의도하셨고, 결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상고 순서가 이른 곳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제의 창조에서 어떤 일을 행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영원한 의향과 계획 중에 특정한 일들이 결정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에 있어 이 교리는 우리의 지력의 범위를 초월하는 삼위일체의 교리와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삼위일체의 교리에서 본 바와 같이 단지 어렵다는 이유로 이 교리를 피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을 격려하기 위해 약속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약속은 이렇습니다: 즉 이 기본적이고 예비적인 교리들이 극히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영원자의 생각을 다루고 있고, 우리의 유한한 이해력과 우리의 미약하고 보잘것없는 지력의 범위를 넘는 일을 상고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인간에 대한 교리와 창조와 구원에 대한 교리는 당연히 훨씬 쉽다는 것입니다.

 

 

1) 성경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임.

이 교리에 여러분의 주의를 요구하는 나의 첫 번째 이유는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 교리가 성경에 계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분명히 우리는 이 교리를 상고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 전도의 진정한 문제가 하나님의 교리에 우리가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관적인 경험과 주관적인 구원에 너무 흥미가 많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에 대한 이 중대한 교리를 망각합니다. 그리고 이 점이 우리의 많은 불행과 문제들의 원인입니다. 우리가 무한하신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더 경배하게 됩니다. 

 

 

2) 오류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임. 

우리가 이 교리를 상고해야 하는 또 한가지 이유는 이 교리가 우리를 많은 오류로부터 지켜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세월에 걸쳐 사람들을 타락시킨 대부분의 오류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마땅히 깨달아야 하는 만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3) 가장 큰 위로의 교리이기 때문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교리에 주의를 요구하는 마지막 이유는 이 특별한 교리보다 더 큰 위로를 주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시간의 세계를 지나가고 있는 보잘것없는 피조물에 불과한 나의 배우에 이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이라는 교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더 큰 위안을 주는 것이 없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합니다.

 

2. 이 교리에 접근하는 자세

 

 

1) 편견과 모든 종류의 파벌 정신을 제거하는 일.

2) 부정적인 명제 : 철학적으로 이 주제에 접근해서는 안됨. 

3) 긍정적인 명제 : 겸손하게 접근해야 함. 

우리는 이 주제에 겸손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또한 경외감을 가지고 접근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주제에 믿음으로 그리고 우리의 한계를 기꺼이 인정함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우리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접근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찾고 탐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린이와 같은 심령을 가지고 나아가서 우리에게 계시되는 것을 받아 들어야 합니다. 덧붙여 말한다면, 성경의 계시를 넘는 질문들을 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은 성경에 계시되지 않은 것들에 대해 기꺼이 질문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주어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나는 그 이상을 알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계시로 만족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 심원한 교리에 접근해야 합니다. 



 

3. 진술 

 

1. 첫 번째 원칙 : 

하나님께서는 영원부터 자신의 피조물들에 대한 불변의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부정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어떤 일이든지 마음 내킴이 없이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활동에는 절대로 불확실한 일이 없습니다. 이 말을 다른 형태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뒷궁리 하시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전지하시고 편재하시다고 동의한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뒷궁리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우발적이거나 우연적이거나 불확실거나 뜻밖의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에 대해, 인간들에 대해, 구원에 대해, 이 세상의 전체 생활에 대해,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해, 궁극적인 운명에 대해 명확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성취하신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의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일은 확고하고 확실하고 불변적이고 절대적입니다. 

 

 

2. 두 번째 원칙 : 

하나님의 계획은 일어나는 모든 일과 모든 종류의 사건들을 포함하고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특정한 결과들을 결정하셨다고 믿는다면, 여러분은 그 결과에 이르게 하는 모든 일도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시점에 창조를 결정하셨고, 시간에 따라 어떤 시점에 세상의 종말이 일어나도록 결정하셨다고 믿는다면, 만일 종말이 확실히 결정되었다면, 그 종말로 인도하는 모든 일도 결정되어야 합니다. 
만일 모든 일이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면, 그 일들에는 필연적으로 자유로운 활동, 자유롭게 자발적인 행위자들의 자발적인 활동들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진술입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가 뜻하시는 대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계획을 따라 예정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1:10-11).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16:33).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19:29).

한 마리의 참새가 땅에 떨어져 죽습니다. 여러분은 "우발적이고 우연적인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는 말씀에 이어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10:30)라고 말씀하십니다. 전혀 우연적인 것으로 보이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들이 하나님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입니다. 

 

 

악한 일들도 하나님의 예정안에 있는 것임. 

 

 

더 비범하고 인상적인 일이 있습니다. 성경은 심지어 죄악된 행동들도 하나님의 지배안에 있다고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예수살렘에서 한 설교를 들어보십시오 : "이 예수가 버림을 받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을 따라 미리 알고 계신 대로 된 일이지만, 여러분은 그를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2:23). 그 다음에 베드로는 사도행전 4:27-28절에서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나타냅니다: "사실,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가 이방 사람과 이스라엘 백성과 한패가 되어, 이 성에 모여서, 주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대적하여,  주님의 권능과 뜻으로 미리 정하여 두신 일들을 모두 행하였습니다.". 이들의 무서운 죄도 하나님의 의도에 의해 미리 결정되었던 것입니다. 

요셉의 예 : "그러므로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보내셔서, 바로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고, 바로의 온 집안의 최고의 어른이 되게 하시고,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신 것입니다."(45:8).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의 원인이 아니심.

 

하나님께서는 어떤 의미에 있어서도 그리고 절대로 악의 원인이 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한 행위자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 그 다음에 자신의 지혜롭고 거룩한 목적을 위해 그 악을 압도하십니다. 죄의 발생을 허용는 하나님의 결정은 죄를 제한하고 죄가 한정되는 정확한 방향과 죄가 지향하는 정확한 결과를 결정하여 죄의 결과들을 선으로 바꿉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명백하게 우리를 가르칩니다.

 
요셉의 예 :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나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50:20).

가롯유다의 예 : 유다의 행동은 자유롭고 자발적이었음에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계획의 일부분이었던 것입니다.

 

 

3. 세 번째 원칙 : 

하나님의 모든 결정들은 무조건적이고 주권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결정들은 결코 인간의 행동들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결정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행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지식에 비추어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결정들은 완전히 무조건적입니다. 하나님의 결정들은 하나님 자신의 뜻과 하나님 자신의 거룩하심 외에는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는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와 이 땅의 모든 거민에게 뜻대로 하시지만, 아무도 그가 하시는 일을 막지 못하고, 무슨 일을 이렇게 하셨느냐고 그에게 물을 사람이 없다."(4:35).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11:25-26).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1:5).

나는 여러분에게 에베소서의 첫 장 상반부를 주의 깊게 공부하라고 추천합니다. 그곳에서 말씀하는 바를 자세히 관찰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은 항상 "그 기쁘신 뜻대로"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완전히 은혜입니다. 
이 교리가 로마서 중에서도 심원하고 중대한 9장에서 가장 명확하게 진술되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특별히 11절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을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 지속되게 하시며,". 바울의 논증은 하나님께서 형이 동생을 섬기도록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 중 아무도 아직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9:13)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질문1 : 하나님의 결정은 사람의 행위에 의존하는가?

여러분은 이렇게 질문할지 모릅니다 : "왜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셨을까요? 그들이 행한 일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그들이 임신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택하시고 에서는 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행위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으로 주권적입니다. 바울의 말을 다시 들어봅시다. :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9:14).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불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도 금하십니다. 하나님께 불의가 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었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사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9:15-18). 

 

4. 네 번째 원칙 : 하나님의 결정들은 효과적이라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인 주님이시고 전지전증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들은 절대로 실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심하시고 결정하신 일은 무오하게 성취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께서 결심하시고 정하신 일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 무엇도 좌절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결정들은 모든 일들에서 하나님의 가장 지혜로우시고, 인자하시고, 거룩하신 본성과 완전히 일치합니다. 나는 이점에 대해 논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이야기해서 하나님에게는 모순이 없습니다.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질문2 : 하나님께서는 왜 악을 허용하시는가?

서론에서 내가 여러분에게 경고한 바와 같이, 이 땅에서 유한하고 죄악된 심령을 가지고 살고 있는 여러분과 나는 문제들에 봉착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죄를 허용하기로 결정하셨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한 가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를 허용하기로 결정하셨다는 사실을 압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허용하지 않으셨다고 죄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모릅니다. 그러나 영광중에 하나님을 마주 뵈올 때, 우리는 그 모든 이류를 명확하게 알 것입니다.

 

 

두가지 단언

 

 

두가지 우리가 확신할 수 있고 단언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죄의 원인이 아니십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1:13).

둘째로, 하나님의 목적은 모든 일에 있어 하나님의 피조물들의 행동방식 및 본성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다른 말로 이야기 해서 비록 우리는 조화시킬 수 없지만 궁극적인 조화가 있습니다. 



 

질문3 : 하나님께서 정하신다면 우리의 행위에는 책임이 없지않은가?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결정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행하는 일에 우리가 책임이 있다고 하실 수 있을까요? 여기 대답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감히 말대답을 합니까? 만들어진 것이 만드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토기장이에게는, 흙덩이 하나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귀한 데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데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보이시고 권능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시면서도, 멸망받게 되어 있는 진노의 그릇들에 대하여 꾸준히 참으시면서 너그럽게 대해 주시고,  영광을 받도록 미리 준비하신 자비의 그릇들에 대하여 자기의 풍성하신 영광을 알게 하시고자 하셨더라도, 어떻다는 말입니까?"(9:20-23).

 

 

여러분은 물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어떻게 이 두가지 사실을 조화시킵니까?" 나는 조화시킬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내가 아는 것은 성경이 이 두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 인간은 어떤 의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자라는 사실과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들이 모든 일을 지배한다는 사실입니다. 



 

5. 마지막 원칙 : 인간들과 천사들의 구원, 그리고 특별히 인간과 천사들 중 일부의 구원이 창세 이전에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내어쫒지 아니하리라" (6:37). 
"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6:44).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13:48). 
"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살후2:13).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1:9).
 

질문4 : 예정하심은 불공평이 아니냐?

"나는 이해 못하겠다. 그 말은 내가 보기에 모순되고 불공정한 것 같다. 만일 당신이 나에게 이 결정들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불공평한 것같다"라고 질문한다면, . 질문자에게 바울은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9:19)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어서 ", 사람아, 그대가 무엇이기에 하나님께 감히 말대답을 합니까? 만들어진 것이 만드신 분에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실제의 특정한 인물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아니라 가상의 논쟁 상대자를 지칭하는 대명사임, 29:16; 45:9)  토기장이에게, 흙 한 덩이를 둘로 나누어서, 하나는 귀한 데 쓸 그릇을 만들고, 하나는 천한 데 쓸 그릇을 만들 권리가 없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을 보이시고 권능을 알리시기를 원하시면서도, 멸망받게 되어 있는 진노의 대상들에 대하여 꾸준히 참으시면서 너그럽게 대해 주시고, 영광을 받도록 예비하신 자비의 대상들에 대하여 자기의 풍성하신 영광을 알리시고자 하셨더라도, 어떻다는 말입니까? "(9:20-23). 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대답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경의 대답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생각에 싸움을 걸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얼마나 하찮은지, 얼마나 유한한지, 타락의 결과로 얼마나 죄악되었는지 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영광에 이를 때까지 궁극적인 깨달음을 유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일관되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원한 결정에 대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결심하시고 결정하신 바에 대해 명백하고 명확하게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시간에 속한 이곳에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의 전부입니다. 

 

 

특히 무엇보다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렇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결정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 대해 결정하신 것은 정확하고 안전하고 확실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무엇도 누구라고 하나님의 손에서 여러분을 빼앗거나 여러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보류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엄 앞에 허리를 굽힙시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앞에 낮아 집시다. 하나님께서 은혜롭게 주시기를 기뻐하신 계시에 복종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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