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개혁주의란 무엇인가?

하나님아들 2024. 2. 24. 20:19

개혁주의란 무엇인가?              

 

조성재 목사 (하늘뜻섬김교회)

 

 

1. "오직 성경"과 관련된 고찰

 

일반적으로 개혁주의라 할 때는 '칼빈주의'를 말한다.

그리고 정치형태로는 '장로주의'를 표방하고, 정신에 있어서는 대개 '하나님의 절대주권사상'이고,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것으로 그 특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것을 대한 예수교 장로회 헌법(대신)에서는, "우리는 성경을 교회의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며, 제신조 중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선언하면서, "우리는 교리적 면에서 역사적 개혁주의요, 교회사적 면에서 전통적 정통주의이며, 보수주의"고, 교회정치에는 장로주의 체제가 성서적 교회의 고유한 정체(正體)라고 믿는다"고 나타내고 있다.1) 대한 예수교 장로회 헌법.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1992) , pp. 17-19; 대한 예수교 장로회 교회선언

 

여기서 본고와 관련해서 보다 깊이 있게 논의되어야 할 것은 "오직성경"이 표명하는 성격에 관한 문제다.

만일 "오직성경"을 외치는 자를 모두 개혁주의자로 본다면, 그 때의 "개혁주의 신학"은 포괄적인 의미의 개혁주의 신학이 된다. 혹은 자유주의 신학과 대조되는 정도의 보수적인 신학을 의미하는 것이 될 것이다.

 

 초대교회의 이단들도 성경을 자신들의 논거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이나, 17세기 도르트회의 당시 항론파들(Remonstrants)이 아르미니우스(Jacob Arminius, 1560-1609) 교리를 그럴 듯 하게 주장하려고, 자신들의 규칙으로서 "오직 성경"만을 받아들인다고 하였던 점2) 조석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주기도 해설, 안양대신대원, 1997, p. 2. 그리고 이후 독일 경건주의자들에게도 이와같은 방식으로 성경을 사용하였던 것을 볼 때, "오직 성경"을 말한다고 해서 모두 개혁주의 신학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3) 황창기. op. cit. p. 24.

 

여기에 공통되는 양상은 역사적으로 정리된 정통적 교리를 터부시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을 중시한다는 미명하에 신학적인 전제-혹은 신앙고백서를 제쳐두고 단편적인 성경표현에 근거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성경으로 돌아가되, "성경으로 되돌아가는 운동"만으로 엄밀한 개혁주의가 표상되는 것은 아니다 4) 김영규, 엄밀한 개혁주의와 그 개혁정신(교회론 부자료), 안양대 신대원, 1998, p.118. 누구나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설명하고, 그것의 논쟁점에 대해서 최종적인 확증을 표현할 때는 "성경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으로 호소하는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성경으로 돌아가는 자의 신학이 문제인 것이다. 바로 그렇게 말하는 자의 신학이 성경적이지 않을 수 있다. 즉 성경적이라고 말하는 자의 신학이 개혁주의적이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오직성경"이라는 모토를 내걸었다면, 그것이 표방하는 바가 원리적으로 개혁주의내에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여기에 칼빈, 베자를 통해 17세기 개혁신학들로 이어지는 신앙고백의 신학적 내용과 입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것이 선결과제로 남게 된다 5) 칼빈이후 대표적인 16, 17세기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다음과 같다.

Theodor Beza(1519-1605), J.J.Grynaeus, Hieronvmus Zanchius, B.Copus, Pierre Biret(1511-1571),

Guido de Bres(1522-1567), Petrus Dthenus(1532-1588), Caspar van der Heyden(1530-1586),

Pierre de Cologne (Petrus Colonius, 1530-1571), Jean taffin, Herman Moded(1520-1603),

Adrianus Saravia(1532-1613), Johannes a Lasco, F. Junius, Daniel de Dieu(1540-1607),

Johanes Fontanus(1545-1615), Wernerus Helmichius(1551-1607),

Petrus Matyr Vermiglius, Musculus, Petrus Boquinus(Pierre Bouquin), Zacharius Ursinus,

Casper Olevianus, Johann Heinrich Alsted(1588-1638), Heinricus Antonides Nerdenus(1546-1614),

Johanes Maccovius(1588-1644), Rivetus, Festus Homnius, Heinrich Alting(1583-1644),

W. Amesius, Herman Ravensberger(1586-1625), Samuel Maresius(1599-1673),

Giberus Voetius(1588-1676), Georg Sohnius(1551-1589), Christoph Pezel, Mattius Martini,

 Lugwig Crocius, J,Jak. Grynaeus(1540-1617), Amandus Poranus(1561-1610), Thomas Cartwright,

Walter Travers, Edgerton, Barber, Gardiner, John Fobes(1588-1638), John Knox, Andrew Melvil 등이다.

(김영규, op. cit, pp. 20-38/헤르만 바빙크, 개혁주의 교의학Ⅰ, 김영규역,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6, pp. 207-246.참조바람)

 

동일한 원리에서 "칼빈주의" 역시 그렇게 재고되어야 한다.

개혁주의는 칼빈의 정신을 그대로 잇는 역사적 독특성 속에 놓여 있다. 그러나 칼빈의 신학적 통찰 뿐만 아니라 그 본류를 잇는 여러 개혁신학자들, 그리고 그 정신의 결정문서인 16,17세기 신앙고백서를 살피지 않고서는 칼빈의 신학과 칼빈주의(개혁주의)를 올바로 이해 할 수 없게 된다. 칼빈은 개혁주의의 출발점은 되어도 그 결과물은 아니다. 칼빈만을 붙잡는 형태의 신학은 개혁주의의 독특성보다는 개혁주의의 다양성 속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6) 죤 레이스는 "개혁주의란 무엇인가?"에서 개혁주의 전통을 기독교 공동체의 진정한 유형들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의 수용에 있어서 비판가능성을 말한다.(오창윤 역, 반석문화사, 1992, pp.33-37)

 

그는 미국적 상황속에서 칼빈을 기준으로 개혁주의를 논하고 있으나, 다분히 그 성격이 포괄적이거나 현대적이다. 그가 실은 '부록'을 보면, 대표적인 개혁주의 신학서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많은 부분이 18세기 후반 이후의 것들이고, 한정적으로 17세기의 서적들을 소개하고는 있지만 그것마저 아르미니우스-그는 아르미니우스에 대해서 "칼빈의 예정론, 특히 네델란드 고마루스(Gomarus)와 제네바의 칼빈의 후계자 베자(Beza)가 주장한 예정론의 과장된 형태를 완화시킨 인물"(p50)로 표현하므로 그가 파악하고 있는 개혁주의가 첨예한 성격이 못됨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나요하네스 코케이우스등의 것을 그 목록에 포함한 5권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코케이우스도 개혁주의내에서  활동했던 인물이지만, 17세기의 그 방대한 자료들 중 대표적인 5권안에 들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신학분파들이 칼빈주의의 이름으로 들어와 있으며, 더 나아가 개혁주의를 곡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7) 예를들면, 1967년 미합중국 장로교회의 새 고백서를 내기 위한 수정위원회의 위원장이었던 E.A.Dowey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대한 평가가 그 좋은 예일 것이다. 그에 의하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칼빈의 신학과 질적으로 다르고 종교개혁의 원리로부터 벗어난 것이라고 해석했다.(김영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967년)과 헤르만 바빙크의 신학, 개혁주의성경연구소 하계세미나, 1998, p.1-각주 재인용)

    

또 다른 예를 든다면, 칼빈과 칼빈주의에 대한 불연속성을 말하는 학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롤스톤(Holmes RolstonⅢ)은 행위언약을 언급하지 않고 은혜언약을 강조하는 칼빈의 언약사상은 그의 사후 80년 후에 만들어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변질되었다고 하였다. 즉 칼빈의 "기독교 강요"2권 11장에서 옛언약과 새언약의 본질적 통일성에 의한 하나의 은혜언약을 언급한 반면에, 웨스트 민스터신앙고백서는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을 구별하여 칼빈의 견해로부터 이탈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견해는 헬름(paul Helm)과 릴백(Lillback)에 의해 반박되었는데, 헬름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발전된 언약 사상에서 등장하는 용어들이 칼빈에게서 발견되지 않는다 해도 언약에 대한 근본적인 이념들의 배아적인 형태들이 발견되므로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사이에 연속성이 있다고 보았다.(이은선, 칼빈과 칼빈주의 논쟁, 안양대신대원 논문집 제2집, 1997, pp 162-164) 만일 통용되는 개혁주의가 개혁주의만의 독특하고 첨예한 통찰들이 없는 형태라면, 우리는 그것을 "포괄적인 개혁주의"로 구별해서 이해함이 좋을 듯하다.

   

 2. 한국에서의 일반적 개혁주의 이해에 대한 의문(疑問)

 

 특히 오늘날 국내에서 통용되는 개혁주의 신학을 이해하려 함에는 더욱 어려운 점이 있다.

한국에서의 개혁주의는 그 원류(原流)부터 다양성을 안고 시작하였다.

이후 박형룡 박사까지의 초기 한국 장로교회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대략은 김영규 교수의 "17세기 개혁신학"(안양대 신대원, 1996, pp. 2-6)에 있는 것을 발췌, 요약한 것임을 밝힌다. 이하 각주에서는 '17C'로 표기한다.

 

1907년 9월 17일 한국에는 갑작스럽게 최초의 장로교 독노회(the independent Prosbyterian Church)가 설립되었다. 이 때를 전,후해서 한국을 향한 모교회들의 선교정책은 '하나의 복음주의 교회(one evangelical Church)의 형태, 즉 "한국 그리스도교회"(the Church of Christ in Korea)를 만들려는 분위기 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 공동성경번역사업과 합동찬송가를 만드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같은 합동운동은, 이미 독노회가 세워지기 몇 년 전부터 감리교의 집회운동이 장로교회 안에서 일어난 이후, 한국교회부흥의 모범이 되었고, 그 신학의 근저에서는 사실상 감리교와 장로교가 구별되지 않는 형태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한국선교의 모교회는 당시 한국교회상을 1901년 미국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오순절 운동과 같은 것으로 판단하였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 교회연합운동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장로교 선교회(영어공의회)는 1908년 독립적인 형태의 장로교를 세우려고까지 계획했었다. 그러나 그와같은 합동의 운동은 독노회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주춤하게 된다. 이 때 한국 장로교 독노회가 채택한 것이 인도 장로 교회의 단순한 고백형태인 12신조인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고백은 개혁주의의 독특성이 가려진 형태로써, 예정론에 있어서 유기론에 대한 고백이 없고, 그리스도의 제한속죄에 대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교파를 가릴 것 없이 단일교회 형성을 바라던 그 당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선교지 신학의 한계이며, 유아기 교회로써 역사적 개혁주의에 대한 분별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그 당시 미국 북장로교 상황을 살펴보면 보다 더 분명한 점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데, 다름 아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대한 수정작업(1902-1903)으로 표상되는 그 시대의 연합적인 성격이 그것이다. 그 때의 한국 선교의 모교회들은 교회부흥과 선교운동으로부터 온건하고 진보적인 입장을 수용하는 분위기였고, 수정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그것의 반영이다. 간략하게 살펴보면, 성령에 대한 고백과 하나님의 사랑과 선교에 대해서 34장과 35장을 첨가하였고,7) 박일민, 개혁교회의 신조, 성광문화사, 1998, p.467

16장, 8) Ibid. p. 466. "비록 그 자체는 찬양할만 하고 유용한 것이라고...."

22장 9) Ibid., p. 467. "맹세를 함으로 자기를 구속하지 말아야 한다."

 25장 10) "주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를 그리스도의 대리자나 교회의 머리라고 주장하면 비성경적이고 부당하며..."을 수정하였는데, 맹세거절에 대한 죄를 부정하고(22장 3절), 카톨릭 입장을 적그리스도로 하지 않고 비성경적이라고 고백하였고(25장 6항), 이방인들이 선이 있음을 인정하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처럼 무시해서는 않되며, 그것을 찬양할 가치가 있고, 유용하다(16장7항)는 식으로 수정하였다.

 

특히 3장 11) Ibid. p. 466 "선교운동에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서 "... 멸망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결정의 교리는 하나님의 어떠한 죄인의 죽음도 원하시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거저 주실 구원을 준비하신 것과 조화되게 주장되어야 한다..."과 10장 12) Ibid. "우리는 유아 때에 죽은 모든 이들이 은혜의 선택 안에 포함되며, 그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중생되고 구원함을 받는다고 믿는다."에 관한 해석으로 선언문을 첨가되었는데, 영원한 작정교리는 온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온 세상의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유화, 구원의 은헤가 만인에게 미친다는 교리와 조화한다는 선언이었고 따라서 하나님은 어떤 죄인의 죽음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 하나님은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들을 위한 충분한 구원을 제공하셨고, 그 구원을 모든 이들에게 적용하시며, 복음안에서 모든 이들에게 제공하셨다는 선언이었다. 10장 3항에서는 유아로 죽은 자는 누구나 은혜의 선택안에 포함되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을 통하여 그가 기뻐하신 때와 장소, 및 방법에 의해서 중생되고 구원받는다고 선언한다. 이는 아르미니우스보다 더 진보적인 웨슬레주의에 가까운 선언이며, 결과적으로 가장 근본적인 교리에 있어서 감리교와 장로교는 구별되지 않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모교회의 상황이 직, 간접적으로 한국교회에 반영되었던 것이다.

 

 더욱이 주의할 것은 이후에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한국장로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에서(1920년대 이후), 박형룡 박사의 자유주의에 대한 싸움은 교회의 보수적인 경향을 지키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싸움의 대결구도와 주제가 박형룡박사의 스승인 메이쳔의 근본주의적인 신학에서의 자유주의와의 싸움과 비슷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13) 김영규, 17c, op. cit, pp. 4-6 ; 박형룡 박사의 출판물인 "신학난제"와 근본교리들"과 메이쳔의 출판물인 "신앙이란 무엇인가?(1928)", "바울종교의 기원(1921), "기독교와 자유주의(1923)"의 구조 비교 분석 참조.

 

따라서 그를 통해 유지될 수 있었던 보수적인 신학성향은 비록 자유주의 신학에 양보하지 않은 정통신학의 내용과 선에 일치한 것이라 할지라도, 개혁주의의 독특성이나 개혁주의 자체에 대한 깊은 연구는 사실상 어려웠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곧 한국 장로교회는 엄밀한 개혁주의의 노선을 깊이 있게 소개 받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의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의 신학적 토양에서 어떠한 신학입장을 쉽게"개혁주의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결국 최근에 신학의 어떤 현상이나 분과를 연구함에 있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그 연구 주제 자체보다는 개혁주의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그것에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한국에서 보스의 성경신학을 개혁주의 성경신학이라 할 때,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신학방식을 주도면밀하게 연구하고, 그 위에서 보스의 성경신학을 검증해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드러난 그 방식안에서는 그것이 얼마나 개혁주의적인가를 규정할 아무런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개혁주의는 역사적으로 이미 주어진 신학이다.

   

 3. 엄밀한 개혁주의의 준거들  14) 김영규, 17c., dp. cit. 6-16 : 본고는 "역사적 정통 개혁신학의 바른 노선의 요점"의 순서를 그대로 따라 서술하였다.

 

그러면 엄밀한 의미에서 개혁주의의 독특성은 어떤 요소로 요약될 수 있는가?

다음 사항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가에 따라서 개혁주의 노선이 결정된다.

 

  1) 예정론과 관련해서 제한속죄

 일반적으로 예정론에 대해 수용하는 입장을 개혁주의라고 본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그렇게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대개 도르트회의의 결정과 관련해서 생기는 일반적인 오해가운데 하나는, 그 논쟁의 핵심이 예정의 시기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15) 예를들면 그러나 개혁주의 안에서의 문제의 핵심은 예정론 자체도 아니고, 예정론의 내용에 관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누구를 위해서 죽으셨는가의 문제이다. 개혁주의의 입장은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택자들을 위해서 죽으셨다고 고백한다.16) 김영규, 17c, op. cit, pp. 6-8

 

 일반적으로 칼빈 시대에 알려져 있는 절충형태의 이해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 위해 충분히 고통받고 죽으셨으나 다만 그 효력에 있어서 택자에게만 유효하다고 하는 것이다. 17) 칼빈. 요한일서 주석. 한철하외 공역, 성서교재사, 1995, p 195. 그러나 이러한 도피성발언에 대해 칼빈은 그의 요한일서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함이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의 주석에서 강하게 직언한다. 그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에서 문제제기를 하면서 "그러나 여기서 바로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니, 곧 모든 세상의 죄가 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모든 유기자들과 심지어는 사단까지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구원 가능성을 확대하는 이유로 삼는 환상적인 우리들의 허황한 꿈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을 하지 않겠다. 그런 무도한 자들의 망설은 논의할 가치 조차 없다... 왜냐하면 요한의 목적은 이 축복을 전 교회에 공통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두'라는 단어를 사도요한이 사용하였다 해서 곧 그것 자체가 유기자까지 모두 포함시키는 것은 아니며, 다만 모든 믿는 사람들과 지구 위의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 그런 선택받은 사람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18) 칼빈. 요한일서 주석, op. cit., pp. 193-194

 

  2) 언약의 통일성

본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요소이며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용할 것인데, 개혁주의 내에서의 언약의 통일성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실체의 통일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실체의 하나되심을 통해 근본적으로 그의 사역과 모든 경륜이 통일성을 유지하게 된다. 따라서 그것은 어거스틴이 역사를 이해함에 있어서 통일적 경륜 방식으로 이해 했던 것과 같다. 19) 김영규. 17c, op. cit., pp.

9-10.

 

  3) 기독론과 관련해서 육체 밖의 로고스 존재

"유한이 무한을 받지 못한다"(finita non recipiunt infinita)

 루터주의와 구별되는 개혁주의만의 독특성이 있는 기준선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문제를 두고 루터주의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육체 안에서 실제적인 통일성을 주장하되 육체밖에는 로고스가 없는 것으로 주장하지만, 개혁주의는 육체 안에 인격적인 통일성을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육체 밖의 로고스를 인정하는 입장이다. 20) Ibid. pp. 10-11 이 문제는 후에 성만찬 논쟁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21) 루터주의에서는 육체와 신성이 실제적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부활이후에 그리스도의 몸은 로고스화 된다.따라서 이 땅 어느 곳에나 편재하며, 성만찬시 그리스도의 편재하신 몸이 떡과 함께(떡 옆에, 떡 아래에, 떡 위에) 있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장면이나, 사도신경에서의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심을 상징으로 이해하게 된다.

 

  4) 개혁주의는 장로회 정치원리를 표방한다.

그리스도의 열쇠는 성직자 개인(uni)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직자 회 자체(unitati)에 있다.  

 이 논쟁의 핵심은 교회의 열쇠가 누구에게 있는가에 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에라스투스주의와 회중주의(독립파)가 각각 참여하였는데, 에라스투스주의는 그 열쇠를 관원에게 속한 것으로 주장하였고, 회중주의에서는 베드로 개인을 통해서 회중 자체에 주어졌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개혁주의의 결정문서인 웨스트민스터총회에서는 둘 다 장로교 정치원리에 의해 거부되었지만 더 치열한 싸움은 회중주의와의 싸움이어서, 장외에서까지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당시 사무엘 러더포드를 비롯한 전유럽 개혁주의자들이 회중주의 교회 정치형태를 그 근원에 있어서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과 소키니우스주의자들의 주장이라고까지 비판하였다.22) 김영규. 17c, op. cit., pp.

11-13 근본적으로 개혁주의는 장로교 원리에 입각한다.

 

  5) 세속정치에 대한 저항권 - 교회의 독립

 칼빈에게 있어서 저항권은 교회 안에서의 저항권을 인정하고 관원에 대한 저항권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 방식에 있어서는 '오직 성경'으로 저항하는 것 이외에는 인정하지 않았다. 세상과는 정치형태로는 구별되지 않으나 삶의 원리에 있어서 구별된다. 하나님의 왕국은 속성과 목적면에서 독립적이며 원리적으로 구별되기 때문에 그 나라의 형태가 민주주의든 공화정이든 중요하지 않다.  23) Ibid., p.13 오직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왕이시요 머리이시라는 고백이 원리적으로 개혁주의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24) Ibid., p. 14

 

6) 율법의 제3사용과 관련해서 주일성수와 예배의식들

칼빈이 제4계명 안식일 준수를 도덕법 25) 루터주의에서 성경을 율법과 대조로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게 개혁주의에서는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율법이 복음과 동일하게 유익하며 삶의 규범으로 우리에게 남는다. 곧 율법의 의식법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폐하여졌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으로 이해한 이래 개혁주의 전통에서도 동일하게 그와 같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26) 신원균. 칼빈이 제시한 율법의 제3사용이 신앙고백서에 끼친 영향 고찰, (안양대신대원 졸업논문, 1997)을 참조하라 mr. Bound는 안식일에 관한 논문에서 주일은 유대인의 안식일처럼 지켜져야 하며, 그 법은 도덕적이고 영원한 법이라 하여 주일을 세속화하는 스포츠나 오락게임을 버릴 것을 말하였다. 27) 김영규. 17c, op. cit., p. 15 이와 동일하게 윌리암 구찌(William Gouge)는 사도행전 20장 7,11절의 주석근거로 24시간 주일

성수를 강조하였다. 28) Ibid., p. 16

 

이상은 개혁주의(Reformed)를 준거하는 중요한 요소들이자 칼빈을 이어가는 개혁주의의 핵심이다.

우리는 이러한 점들에 대해서 좀 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개혁주의는 이미 역사적으로 형성된 보배와 같은 신학유산이다.

그러므로 개혁주의를 말할 때, 시대가 변함에 따라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개혁하고, 바꾸어 나아가는 것으로 개혁주의를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이해할 때에는 이미 개혁주의가 아니다. 개혁주의는 무언가를 변혁하고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교회 중에 남겨둔 그 깊고 풍성한 신학적 보고를 연구하고 다시 찾아내서 사도들과 믿음의 선진들이 동일하게 걸어갔던 그 길을 묵묵히 그 원리에 따라 걸어가는 것이다. 민일 그의 생이 그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개혁주의는 허망한 것이 된다. 지금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새것이 아니라 옛것을 바로 찾는데 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항상 개혁해야 한다는 사실과 역사적으로 개혁된 것을 구별할 필요가 있으며  29) 김영규. 엄밀한 개혁주의와 개혁정신, op. cit., p. 45.

 

 그것에 대한 오해를 조심해야 한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개혁주의의 피상성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17세기의 풍부한 신학적 유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흔히 17세기가 고백주의, 메마른 정통주의 등의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되는데, 필자의 판단으로는 두 가지 가정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한가지는 17세기를 직접적으로(혹은 원전으로부터) 전혀 접해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 평가자가 다른 부류에 속한 역사가로써 개혁주의 밖에서 개혁주의를 피상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는가 싶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개혁주의라는 용어를 자신의 신학함에 사용하려면 먼저 우리의 보고가 얼마나 알차고 풍성한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개혁주의는 없고 타인에 의해 각색된 포괄적인 개혁주의 혹은 오도된 개혁주의만이 우리에게 남게 될 것이다.

 

 4. 맺음말

개혁주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매우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이상의 내용을 감안하여 굳이 표현하자면 성경 전체의 통일성을 통해 드러난 '진리로 먹고 마시는 생의 원리'가 개혁주의 핵심이라 말할 수 있겠다. 곧 말과 생각에서뿐만 아니라 삶의 전과정에서도 "진리"를 따라가는 자의 신앙정신이 개혁주의 신학의 기본이 아닐까! 칼빈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하나님을 이해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억측에 따라 하나님을 상상하는"자들의 모든 형태의 봉사와 예배는 하나님 앞에 가치 없는 것이라 하였다. 그에 따르면 우상이란 어떤 객체가 아니라 인간의 자신의 허영과 욕심을 객관화 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한 자기 망상에 사로잡힌 자의 예배와 경건은 하나님 앞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확고하게 말하고 있다. 30) 칼빈, 기독교강요 Ⅰ, 4장 중에서 (생명의 말씀사, 1995)

 

 그런 의미에서 참된 경건과 겸손은 오직 성경 진리를 아는 자에게 있다. 우리는 칼빈 이래 많은 개혁신학자들이 걸어간 좁은 길을 걷고자 소망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전생애를 통해 성경 진리를 드러내고 보존하였던 것처럼, 드러난 진리는 우리의 남은 생을 통해 증명되어야 할 것이다. "개혁주의자"라는 별칭은 살아서 듣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진리로 먹고 마시며 생(生)을 마감한 자리에서 후대가 내려주는 평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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