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세 가지를 사야 회복된다. 계 3;14-22.

하나님아들 2020. 9. 17. 13:15

세 가지를 사야 회복된다.   계 3;14-22.

 

마르틴 루터 종교 개혁 500주년 해이고 그 달입니다.

성경 마지막 책 요한 계시록은 7 교회를 대표적으로 선택하여 계시를 주며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밧모섬에서 순교한 요한에게 예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요한이 썼지만 모두 예수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교회는 칭찬만 하였고 어떤 교회는 책망도 하고 칭찬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7 교회 중에 라오디게아 교회에게만은 칭찬은 한 마디도 없이 책망만 하였습니다. 책망하는 말씀을 들어 보십시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라오디게아 교회는 가장 악한 교회의 상징입니다.

칭찬할 것이 없는 교회입니다. 성령이 없는 교회입니다. 믿음도 없고 행함도 없고 구제도 없습니다. 기도도 없고 사랑도 없고 헌신도 없는 죽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책망만 있는 교회였습니다.

라오디게아의 뜻을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라오스는 백성, 민중, 대중이라는 말입니다.

디게아는 의견, 생각이라는 의미입니다.

라오디게아는 백성의 의견, 민중의 생각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의견, 하나님의 생각이 지배하는 교회가 아니라 사람들의 의견이 지배하는 교회입니다.

 

책망

라오디게아 교회가 무엇을 책망 받았나요? 오늘 날 우리에게도 책망하고 계시지 않나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주님은 우리를 다 보고 계십니다. 다 알고 계십니다. 다 속여도 주님만은 속일 수 없습니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교인이기도 하고 세상 사람이기도 합니다. 영의 사람이기도 하고 육의 사람이기도 합니다. 믿음이 있는 것같기도 하고 없는 것같기도 합니다. 회색분자라고 합니다. 검지도 희지도 않습니다. 불교 수도승들에게 부처는 출가할 때에는 행사의(行四衣)를 실행하라고 가르쳤습니다.

1. 옷은 주어 모은 천으로 만든 누거기를 입을 것.

2. 음식은 탁발에 의지할 것.

3. 주거는 나무 밑에서 할 것

4. 약은 소 오줌을 발효하여 사용할 것.

주운 천으로 기워 옷을 만들어 입다보니 여러 색깔이었습니다. 그래서 검은 먹물을 드려 입었습니다. 입고 빨래하다 보면 물이 빠져서 회색이 된 것이 승복입니다.

불교는 검지고 희지도 않습니다.

기독교는 뜨겁지고 차지도 않습니다. 이를 속어로 크리스탄이라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크리스챤이고 예배 마치고 나면 사탄입니다.

 

또 하나 책망받은 것이 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자기 자신은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주님 보시기에는 곤고합니다. 가련합니다. 가난합니다. 눈이 멀었습니다. 벌거벗고 챙피를 당하고 삽니다. 이것이 라오디게아 교회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교회가 교회다워지기 위하여는 세 가지를 사라라고 명령하시고 계십니다. 죽은 교회가 살아나는 비결이 있습니다. 안 좋은 교회가 좋은 교회되는 길이 있습니다. 책망받던 교회가 칭찬받는 교회로 탈바꿈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세가지를 사면 됩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3:18)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흰 옷을 사서

안약을 사서

 

1.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불로 연단한 금은 정금입니다. 순금입니다. 금은 성경에서 믿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금이 믿음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비유할 때는 꼭 금과 함께 비교합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23:10)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7)

 

모두 믿음을 금과 비유한 말씀들입니다. 금을 사라는 말씀은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타락한 교회가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금을 사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시며,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이며, 성령님이 나의 보혜사임을 믿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55:1-3)

 

이사야는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금을 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같은 것입니다.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였는 데 그것이 믿음입니다.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구약에서 소제를 드릴 때 포도주를 부었습니다. 소제는 곡식을 볶아서 기름을 칠하여 드리는 것이기에 다른 동물제사와 달리 피가 없습니다. 그래서 꼭 포도주를 부었습니다. 피를 의미하는 포도주입니다. 이렇게 드리는 제사를 전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젖은 말씀입니다.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3)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5:12-13)

 

금 다시 말하면 포도주와 젖을 살 때는 돈없이 값없이 사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두 가지를 하면 포도주와 젖을 살 수 있습니다. 금을 돈없이 값없이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돈 들지 않는 두 가지를 하여야 합니다.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나아와 들어야 합니다.

 

귀와 발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귀와 발을 사용하는 데 돈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면 믿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값없이 돈없이 믿음을 살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세상에 가장 귀중한 것들은 돈없이 값없이 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기입니다. 공기는 무료입니다. 15명 타는 잠수함에서 하루 산소만드는 데 600만원이 든다고 잠수함속에서 들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산소를 사서 사용하라고 하셨으면 한달 산소값만 1200만원입니다. 4식구라면 산소를 사는 데만 5천만원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두 번째 필요한 것이 물입니다. 물도 값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태양빛이 무료입니다. 태양 빛을 사용하는 데 돈을 내라면 우리는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구원받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천국가는 무료 티켇이 믿음인 데 믿음은 무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같이 타락한 교회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예수 전도단을 만든 로닝 커닝함은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산 길을 가다 보니 사자가 쫓아 옵니다. 급히 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나무위에는 큰 구렁이가 있었습니다. 입을 벌리고 내려 옵니다. 밑에는 사자가 으르렁 거립니다. 그런데 사탄이 와서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있습니다. 점점 나무가 기우러져 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참 믿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곧 죽을 것같은 상황에도 낙심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물가운데로 지날 지라도 물이 침몰치 못 하게, 불 가운데로 지날 지라도 불이 거스리지 못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2.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교회가 교회다우려면, 성도가 성도다우려면 흰 옷을 입어야 합니다. 흰 옷은 세마포옷입니

. 세마포옷은 성결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결하여야 합니다. 거룩하여야 합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 하리라”(12;14)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성결하여야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잘 나가던 사람들이 성결하지 못 하여 수치를 당하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봅니다. 챙피합니다. 부끄럽습니다. 교회는 흰 옷을 사야 합니다. 그리고 수치를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흰 옷을 어떻게 사나요?

계시록은 흰 옷을 사는 방법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7:9-14)

 

흰 옷을 입은 자들은 두 가지를 한 사람들입니다.

1. 큰 환란에서 나온 자들이 흰 옷을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입혀주셨습니다. 작은 환란이 아닙니다. 큰 환란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어떤 환란이 온다 하더라도 이겨야 합니다. 나와야 합니다.

2.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어서 희게 한 사람들입니다.

더러움은 비누로 씻지만 죄는 예수피로 씻어야 합니다.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찬송을 부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환란을 이기고 예수피로 씻은 사람이 흰옷을 입습니다. 안 좋은 교회는 믿음을 사야 합니다. 환란을 이기고 흰 옷을 입어야 합니다.

 

평안북도에 불신 부모 밑에서 태어난 한 처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예수쟁이를 재수없다고 싫어하는 부모였습니다. 그 밑에서 예수님을 알고 만나고 나니 신앙생활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딸에게 말했습니다.

교회에 나가면 너는 내 딸이 아니다. 교회에 나가지 말아라.”

토요일 아버지는 그 딸을 못나가게 하기 위해서 밭에 가서 목화대를 뽑으라고 말했습니다. 주일을 앞두고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 날 밤 이 처녀는 주일 성수를 할 것인가 아버지 뜻을 순종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일은 주일 날이고 아버지 말씀도 순종해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옵니까?”

그 때 부모님들이 잠든 뒤에 가서 뽑으면 되겠다는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밤에 목화밭에 가서 목화대를 뽑았습니다. 밤이 무서웠으나 믿음으로 이기고 밤을 지새우며 새벽까지 뽑았습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 준비를 다 하고 아버지께 교회에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화를 내면서 호통을 쳤습니다.

목화대 뽑아야지. 가기는 어디를 가느냐?”

딸이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어젯밤에 다 뽑았습니다.”

다 뽑았다는 말에 아버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 딸은 교회로 갔습니다. 아버지가 밭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목화대를 다 뽑아서 한 쪽에 쌓아 놓았는 데 목화 솜에 피가 묻은 흔적들이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버지는 감동을 받고 눈물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한 달 후에 도지사로부터 딸이 근로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밤 새워 일하는 근면한 딸을 보면서 순찰헌병이 상부에 보고했기 때문입니다. 이 일로 부모는 딸의 효성에 감동되어 예수를 믿게 되었고 온 교인들도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환란을 통과한 믿음입니다.

타락한 교회, 타락한 성도들은 금을 사야 합니다. 흰옷을 사야 합니다.

 

3.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라오디게아 교회같이 안 좋은 교회는 믿음을 사야 합니다. 그리고 거룩을 사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 더 살 것이 있습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여야 합니다.

타락한 교회는 영의 세계를 보지 못 합니다. 그래서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 하여야 합니다. 눈을 떴다고 다 보는 것 아니며, 눈을 감았다고 못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너희 못 듣는 자들아. 들으라.

너희 맹인들아. 밝히 보라 .

맹인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내가 보내는 내 사자 같이 못 듣는 자겠느냐. 누가 내게 충성된 자 같이 맹인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맹인이겠느냐.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하지 아니하며 귀가 열려 있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42:18-20)

 

못 듣는 자들아. 들으라는 것입니다. 못 듣는 자가 어떻게 듣습니까? 맹인들아 밝히 보라는 것입니다. 맹인이 어떻게 봅니까? 모두 영적인 말씀입니다. 귀가 있지만 듣지 못 하고, 눈이 있지만 보지 못 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야 합니다. 라오디게아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 합니다. 그래서 안약을 사서 바르라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눈은 뜨고 있는 데 보이지 않습니다.

 

열왕기하 6장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람과 전쟁할 때 이야기입니다. 아람 왕이 밀실에서 전쟁 작전을 짰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 작전 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도청기가 없어도 영의 귀가 열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람은 이스라엘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엘리사가 그 비밀을 다 알고 미리 대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람 왕은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복들을 불러 물었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의 내응이 된 것을 내게 고하지 아니하느냐?”

그 때 신복중에 한 명이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

왕은 당장 엘리사를 잡아 가두어 놓고 전쟁을 하여야 전쟁을 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어디에 있는 지 찾았습니다. 도단성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아람왕은 전쟁을 중단하고 엘리사를 잡으려고 도단성으로 갔습니다. 수많은 병사들을 동원하여 도단성을 둘러 쌌습니다. 엘리사의 사환이 아침에 일어나서 나가보니 도단성을 아람군대의 말과 병거가 둘러 싸고 있었습니다. 사환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당황하여 엘리사에게 가서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 때 엘리사가 사환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그리고 엘리사는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의 이런 들으시고 사환의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영안이 열렸습니다. 불말과 불병거가 보였습니다. 조금 후 아람 군사들이 엘리사를 잡으려고 덤벼 들었습니다. 엘리사가 기도하였습니다.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나님은 엘리사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눈이 멀어 버렸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눈먼 사람과 눈 뜬 사람과의 싸움은 이미 승리를 정해놓은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눈을 뜨고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안약을 사서 발라 영적인 눈을 뜨고 영의 세계를 보라는 것입니다.

 

하네다 공항 옆에 시골 교회 하나가 있었습니다.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조그만 교회였습니다. 일본이 올림픽을 치루느라고 도시 계획을 다시 하다가 교회 자리가 도로로 편성이 되었습니다. 수 십억의 보상금이 나왔습니다. 임원회가 열렸습니다. 이 많은 돈을 어디에 사용할 것이냐에 대한 회의였습니다. 모두가 성전이 헐렸으니 성전을 짓자는 데 간단하게 합의되고 있었습니다.l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니 하나님의 성전을 크게 그리고 아름답게 짓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대로 돈이 남으니 얼마나 축복이냐는 분위기였습니다. 그 때 집사님 한 분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성전이 헐렸으니 성전을 짓자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돈은 하나님이 거져 주신 것이니 거져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다 고아원, 양노원등 불우한 곳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성전은 그리 크게 짓지 않아도 됩니다. 발전지역이 아닙니다. 시골입니다. 교회는 우리 실정에 맞게 자그마하게 지으면 됩니다. 우리가 성전 건축 헌금을 드려서 지어야 합니다.”

집사님이 이 말을 할 때 처음에는 사람들이 놀랐지만 모두가 동의하였습니다. 그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방법이라고 박수를 쳤습니다. 그렇게 하였습니다. 보상받은 돈은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 헌금을 드려서 지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그리고 남다른 것을 볼 줄 아는 집사님 한 분에 의하여 그 교회 역사는 달라졌습니다. 남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보는 눈입니다.

 

그러면 안약을 어떻게 살 수 있을 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5:8)

 

뜨겁고 차갑고는 손가락으로 만져 봅니다.

맵고 짜고 달고 시고는 혀로 맛봅니다.

음식은 입으로 먹어 봅니다.

음악은 귀로 들어 봅니다.

강하고 약하고는 손으로 두드려 봅니다.

경치는 눈으로 봅니다.

냄새는 코로 맡아 봅니다.

하나님은 마음으로 봅니다. 그런데 마음이 청결하여야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영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20:12)

 

종교 개혁 500주년의 귀중한 달입니다. 교회를 개혁하여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같이 책망만 받는 교회가 칭찬받는 교회로 탈바꿈되어야 합니다. 안 좋은 교회가 좋은 교회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좋은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세 가지를 사야 합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3:18)

 

그리고 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3: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