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 신학
1. 현대인의 세계관
Luther : How can I get a gracious God ? 현대인 : 내세, 구원, 은총 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행복(well being 잘 사는 것)이 주관심사가 되었다. here and now ! 에 관심 그래서 오늘날 신에 대한 질문도 그 초점은 중세나 종교 개혁 시대와는 다르다.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이 관심이 되기보다 도대체 Where are you, God?을 질문. F. Nietzche. The Joyful Wisdom “God is dead.” God remains dead! And we have killed him ! 모든 형이상학의 종막을 선언 - Platon 이후 유지되어온 감각세계와 초감각 세계의 분리가 더 이상 의미 없는 것으로 됨. 즉 과거에 real 한 것으로 여겨졌던 초월적인 세계가 unreal, ineffective하고 모든 능력을 상실하였다. 결국 The process of secularization has largely been completed, and is the accepted characteristic of our whole life and existence.
2. 세속화 신학
일반적 경향 : 세속화 신학은 소위 신정통주의 신학과 달리 인간의 문화와 역사의 가능성에 대하여 적극적인 평가를 내린다. 현대의 세속적 삶의 방식(mode)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새롭게 그 의미를 이해하려한다. 세속화 신학자들은 현대적인 삶의 점증하는 세속성(secularity; secularism과 구분되는)을 호의적으로 바라본다. 이들 중 급진적인 학자들은 현대의 세속성은 성서적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성서적 신앙은 신화적인 세계관을 타파하였다고 주장한다.
1) 고가르텐(F. Gogarten)
고가르텐은 인간 이성의 성숙과 세계의 세속화(달리 표현하자면 세상의 세상화)에 대하여 조직적으로 사고하였다. 세속화의 근본 근거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체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세상은 불가능 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세속화는 전적으로 기독교 이후의 현상이라고 한다. 그는 이스라엘과 함께 자연과 사회 질서의 제의적 성격은 파괴되고 인간의 역사성이 인식되었다고 주장하였다. Reality는 천상의 것으로 생각되기보다 in this worldly, historical terms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그는 칭의론(신 앞에 있는 인간의 문제)을 확대하여 신과 세계 사이의 인간을 주제로 삼았다. - Luther의 경우(인간의 영원한 운명, 오는 세계, 천국과의 관계, 영원한 운명)와 달리 그는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문제 삼았다. 인간은 신에게 속했을 뿐 아니라 세상 안에 있다는 것이다. 신 없는 인간 없듯이 세상없는 인간도 없다.
그런데 인간과 세계의 성숙은 예수그리스도가 성자(聖子)이고, 그가 성자로서 신을 계시한 사실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예수님이 신의 아들이라는 것은 형이상학적 교리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성서적이고 역사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신으로부터 신적 속성을 받아서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보냄을 받고 아버지에게 순종함으로써 아들이 되는 것이다. 역으로 아들이 신을 아버지로 계시하심으로써 인간은 신과 세계에 대하여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신화적 세계 질서는 무너졌다. 우주는 신성을 잃게 되었다. 전에는 우주의 원동력을 신처럼 떠받들었는데, 사실은 그것이 인간의 원죄다.
예수님은 순종하는 아들이 됨으로써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도록 한다. 따라서 우리는 신과 세계에 대하여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인간은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의 주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됨을 인식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고 세상은 세상이 된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됨은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하나님을 섬김을 의미한다. 세상이 세상으로 된다는 것은 인간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를 누리며 상속자로서 세상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고전 6:12)(고전 3:23) 그런데 세상을 세상으로 대우하고 다스림은 이성(理性)의 문제다. 인간은 세상일을 이성으로 다루어 세상을 세상답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정치가, 법률가, 역사가, 의사 등은 각기 자기 분야에서 자신의 일에 충실할 뿐 인간의 영역을 넘어설 필요 없다.
그리하여 인간이 세상에 대하여 바른 관계를 갖게 되자 세상도 변한다. 신화적 세계가 역사의 세계로, 경배의 대상이 이성의 지배 영역으로 변한다. 세상의 세속화 인간 이성의 자율화, 현대 과학과 기술에 대한 세계 지배가 나타났는데 이것은 모두 그리스도의 계시가 세상을 탈신격화 함으로 일어난 것이다. 그리스도교 이전 희랍사상은 철학과 과학을 발전시켰으나 그리스도교 이후에야 세상이 완전히 탈신격화 되었다.
2) Harvey Cox
하비 코스는 세속화(Secularization)의 뿌리를 성서적 신앙에서 찾는다. 성서적 세계관은 세계의 비신격화, 정치의 비신성화, 가치의 상대화를 이루었다. 자연의 힘, 사회제도, 이데올로기에 대한 우상 숭배적 경배가 성서의 창조 교리와 역사이해에 의하여 무너졌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의 혹독함으로부터 해방되고, 실용적인 사회 정책을 발달시키게 되었다. 그 결과 전적으로 세속적이고, 실용적이고 가변적인 현대 도시인의 생활방식이 생겨났다.
세속화 신학자들이 이해하는 인간은 - "Contemporary man is neither religious nor anti religious; he is simply unreligious or secular. 우리는 이러한 무 종교성, 종교성의 결여를 한탄할 필요 없다. 그것은 인간이 정령주의적, 신화적, 더 나가서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버린 것일 뿐이다.
3. Dietrich Bonhoffer(1906-1945)
나를 따르라, 신도의 공동생활, 기독론, 윤리학, 옥중서간에서 그는 현대 세계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의미, 오늘의 삶 가운데서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문제에 대하여 탐구하였다.
그는 세속화 신학의 선구자다. 옥중에서 처형을 기다리며 쓴 옥중서신(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은 단편적인 사상의 조각이어서 체계화하기 힘들다. 그러나 The key to Bonkoeffer's discovery was his positive assessment of secularization as a sign of man's emergence from a self inflicted, immature dependency on religion.
*의도 : 본 훼퍼는 생애 말기에 그의 옥중서신에서 종교시대가 끝나간다고 하면서 이러한 추세가 그리스도교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 질문하였다. What does that mean for Christianity? 그에게 있어서 종교는 본질적으로 세상의 삶으로부터 하나님을 분리시키는 것, 저 세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분리시키는데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본 훼퍼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신앙에 대한 이해를 비판하였다. 즉 삶이란 이 세상적인 것을 피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신앙을 저 세상과 연결시키는 경향을 비판하였다.
기독교는 인간지식이 발달함에 따라 세상을 설명하고 해석하게 되자 신의 자리를 확보하기에 고심하였다. 그래서 신은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초월적인 세계, 죽음이후의 세계와 연관 지어 제시되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점점 더 이 세상과 관계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에 놓이게 되었고, 복음은 인간의 약한 면에 관계되었다. 종교는 인간을 감독하고 어린애 취급했지만, 이제 현대 세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과 행동에 책임지도록 요구받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종교 없는 기독교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음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고통에 참여함을 뜻한다.
종교적 인간은 인간의 이해가 끝에 이르러서 인간의 자원이 바닥났을 때, 그것을 메꾸는데 신을 활용한다. 그래서 God becomes superfluous as a deus ex machina. 본 훼퍼는 신이 인간의 한계 상황, 형이상학적 수수께끼에 적당히 해답으로 게시되고 있음을 간파하였다. 진실로 본 훼퍼는 하나님이 삶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에, 인간의 약함, 고통, 죽음에 대한 절망 속에서 할 수 없이 의지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명과 번영에서 만나지고 관계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랐다.
* 세속화 추세가 그리스도교에 갖는 양면성
① 교회의 불신실, 복음을 잘못 표현하는데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응징이다.
② 동시에 세속화는 미래에 있을 교회의 황금시대를 보여주는 신호등이다.
세속화는 이 세상을 포기하는 개인주의적 경건과 형이상학적 초자연주의로부터 해방된 종교 없는 그리스도교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그의 세속화 신학이 체계적으로 정리 발전되지는 못했으나 그의 의도는 다음과 같은 표현에 잘 나타나있다.
Our coming of age forces us to a true recognition of our situation vis-a vis God. God is teaching us that we must live as man who can get along very well without him. The God who is with us is the God who forsakes us.(막 15 :34) The God who makes us live in this world without using him as a working hypothesis is the God before whom we are ever standing. Before God and with him we live without God. God allows himself to be edged out of the world and on to the cross.
그는 종교 없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적합한 하나님 개념은 God in his powerlessness and suffering for others, the Crucified 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리스찬의 삶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되어야 하고, 고통하시는 하나님의 부름을 따라 이웃을 섬기는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 교회는 세상을 지배함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을 돕고 섬김으로서 이 세상의 사회적 삶에 참여하여야 한다.
Our relation to God is not a religious relationship to a supreme Being, absolute in power and goodness, which is spurious conception of transcendence, but a new life for others, through participation in the Being of God. The transcendence consists not in tasks beyond our scope and power, but in the nearest things to hand. God in human form.... man existing for others, and hence the Crucified.
하나님의 초월성은 this worldly transcendence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추상적 논증(사유)이나 신비적 숙고(contemplation)에서가 아니라 타자를 위한 구체적 삶속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세상의 삶이 되어야 하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고난 받는 하나님 편에 가담해야 한다. 교회의 사명은 세상을 위한 종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Bonhoffer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학자들이 1960년대에 등장하였다. H. Cox, J.A.T. Robinson, J.J. Altizer, W. Hamilton, Paul Van Buren
* 세속화 신학자들의 공통적인 이해(각기 다른 의견에도 불구하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이 세상"에 대한 확인. 세속 문화야말로 그리스도인의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 세상" "내세"에 무관심하다. 종교행위(기도, 예배)가 아니라 민주화, 반전, 가난의 방지 등이 신앙과 예배를 표현하는 가능한 길이다.
2. 우리 지식과 판단의 기준은 이 세상의 실제적 경험이 되어야하며, 우리의 판단이 교회 , 성서 등 타율적인 권위에 근거할 수 없다. 교회나 성서가 규범적 권위로 받아드려질지라도 그것은 개인의 자율적 이성과 경험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3. 역사적 예수는 as the paradime of "this-worldly transcendence"라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된다. 급진적 세속화 신학자는 고전적 그리스도론 보다 남을 위해 산 사람으로써의 역사적 예수님에 관심을 기울인다. William Hamilton- 이웃의 문제와 고난에 동참함으로 우리는 예수가 된다고 말한다.
4. 급진주의 신학은 우리시대의 unreality of god의 경험을 깊이 느낀다. 결국 신 죽음의 신학으로 귀결되었다.
신 죽음의 신학에 대한 여러 이해들을 보면
ⓐ 신의 죽음이란 의미는 God is "absent", "silent", "eclipse"의 뜻이다. 인간의 삶과 기술에서 하나님이 부재상태로 되는 현실을 가리킨다.
ⓑ Gabriel Vahaniam -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을 문화 이식, 하나님의 사육(길들이기)로 가르쳐 하나님을 문화적 우상으로 받들었다. 그런 대용품 하나님은 죽었다. 참다운 성서적 하나님을 기대하라
ⓒ W. Hamilton, H. Cox. Robinson ← Bonhoffer가 말했듯이 인간의 약함과 의존성의 투사(Freud)로써의 하나님은 참다운 신이 아니다. 제트기 이륙 때 안전을 구하거나 시험 때 찾는 신,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답을 대신하는 손쉬운 해결책으로 활용되는 신은 죽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런 신 없이 살기를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을 사용하여 성숙하게 살도록, 세상을 다스리도록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것이다.
ⓓ Paul Van Buren
하나님이란 말이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공허한 말이다. 하나님이란 말은 하나님을 초월적 존재로 받아드린 지나간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반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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