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경주자 성경: 히12:1-3절

하나님아들 2020. 4. 29. 15:34

경주자 성경: 히12:1-3절

 

 

인생을 전쟁터로 보는 눈이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말에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요, 내일의 문제는 이기는 것이요, 모든 날의 문제는 죽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또 하나는 인생을 배움터, 즉 학교로 보는 눈입니다. 민족시인 윤동주는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배움의 길”이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인생을 운동 경기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달리는 선수라는 것입니다. 복장을 가볍게 하고, 참고 달려야하는데 중요한 꼴인 점이 예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구름 같은 증인(청중)들이 있습니다.(1절)

우리를 보고 있는 구름같이 둘러싼 사람들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승리의 면류관을 쓴 사람들로써 믿음으로 살다간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역사상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신앙의 사람들이 있었음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경주자로 달리는 것은 혼자서 뛰는 고독한 경주가 아니라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간 길을 가는 것으로 검증된 길이요, 분명하고 확실한 길이라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왜 우리의 신앙생활을 운동경주에 비유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께로 달려가는 성격이 있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목적에 가까워진다, 는 것입니다. 둘째는 경주를 거치지 않고는 영광도 없고, 면류관이 없기 때문에 경주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수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깁니까, 그것은 기록이요, 금메달이요 명예입니다. 선수는 소속 팀이나,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내놓고 달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몰라주면 선수는 소속팀도 떠나고, 심지어 나라도 떠납니다.

 

안현수 선수는 올해 28세입니다. 국가대표로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대회에서 1000m·1500m 개인과 5000m 계주에서 금메달, 500m에서 동메달을 획득, 이 대회 쇼트트랙 남자부 전 종목에서 메달을 딴 선수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의 선수로는 올림픽 대회에서 한 번에 가장 많은 메달을 딴 선수입니다. 2003년~2007년 세계 선수권 5연속 제패 등 쇼트트랙 역사상 가장 화려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빙상연맹과의 갈등, 소속팀 해체, 국가대표 선발전 탈락 등으로 어려운 처지에 빠진 안현수는 2011년 대한민국을 떠나 러시아로 이주하여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고 러시아 국가대표로 2014년 소치동계 올림픽에 러시아 대표로 출전하여 메달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제 소치 동계 올림픽에 안현수는 빅토르 최라는 러시아 이름으로 자신에게 무한 한 기대를 걸고 있는 러시아 국민들을 위해서 금메달에 도전을 하게 될 것입니다. 청중들은 선수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대가 무너지면 선수는 버림을 받습니다. 영국에서는 축구장에서 자기편을 격렬하게 응원합니다. 그러나 원하던 팀이 패배를 하면 난동을 부리고 축구장에서 분노를 폭발시키는 일이 잦아지면서 축구장의 난동꾼들을 훌리건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실재로 1985년 벨기에 브뤼셀 헤이젤 경기장에서 열린 영국 리버풀과 이탈리야 유벤투스의 경기에서 양측 응원단이 충돌했는데, 39명이 사망한 사건이 훌리건의 대표적인 난동 사례입니다. 이것은 경기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경기하는 사람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우리를 보고 있는 구름 같은 증인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할 뿐 아니라. 최상의 기록을 내야할 이유가 됩니다.

 

에티오피아에 아베베라는 마라톤 선수를 맨발의 왕자라고 했습니다. 그는 1960년 로마 올림픽 때 맨발로 뛰어서 금 매달을 땄습니다. 기적 같은 일입니다. 전 세계가 인간승리라고 극찬했습니다. 4년 후 도쿄올림픽 때는 운동화를 신고 뛰어서, 또 우승했습니다. 그는 우승 기념으로 자동차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자동차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중상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달리는 모습을 못 보게 돼 아쉬워했습니다. 그런데 4년 후,그는 런던 장애인올림픽에서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올림픽에서도 달려서 또 우승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대에 보답을 하였습니다.

 

 

2010년 중국에서 국가 대항 바둑대회가 있었습니다. 각 국에서 5명이 출전하는데 우리나라는 이창호 한 기사만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승하려면 5명의 기사와의 대결을 모두 이기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일본과 중국의 대표들을 연파하고 기적 같은 우승을 했습니다. 한 기자가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인생을 즐기고 싶습니다.” 바둑 인생 10여 년 동안 세계 1인자 자리를 지키기 위해 새벽 3시, 4시경에나 잠을 잤다는 그의 노력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말해주는 대답입니다. 그를 향한 전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수많은 눈들이 있습니다. 당신을 향한 구름같이 많은 관중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달려라, 그런 말씀입니다. 실망을 시키지 마십시오. 당신은 이제 혼자가 아니고,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입니다. 수많은 증인들이 보고 있답니다. 그러므로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2. 고비가 있습니다.(2절)

등산을 시작하면 처음 2-30분이 가장 힘듭니다. 평상시 운동을 하던 사람은 그 고비를 극복을 하고 자신의 페이스를 찾습니다. 그런데 평상시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은 산을 딱 오르면 갑자기 숨이 막히고, 어지럽고, 빙빙 돕니다.(도락산: 기성총무 우순태목사) 제가 2년 전에 한 겨울에 운두령 계방산(1577m)을 처음 따라 갔습니다. 올라가는데 힘이 너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였나요, 악착같아 앞장서서 올라갔지요, 그리고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어떻나요. 지금은 문제없습니다. 연습이 되고 훈련이 되었습니다.

춘천마라톤 대회는 매년 송암동 스포츠타운을 출발해 의암호를 도는 국제공인코스 에서 열립니다. 2시간 26분12초로 여자 한국기록을 세운 권은주씨가 말합니다. “20~25㎞에서 첫 번째 고비가 온다, 하프 마라톤까지만 경험한 초보자들에게 여기서부터는 '미지의 구간'이다. "아직도 20㎞나 남았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고, 두세 번 정도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더구나 춘천 댐을 향해 2㎞ 정도 이어지는 오르막은 더욱 힘들다.”

 

 

이혼 사람의 4-50%가 결혼 4-5년차입니다. 갈등기를 극복을 못한 것입니다. 일도, 운동도, 사랑도, 인간의 삶도, 심지어 신앙생활도 고비가 있습니다. 하기 싫고, 다니기 싫고, 사는 것이 무의미 해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 무슨 일이든, 반드시 고비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고, 만사가 귀찮은, 꼭 죽을 것만 같은 그런 시기 말입니다. 추락하는 시기, 위기의 순간, 이때를 이기면 됩니다.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비는 많은 이야기(story)를 만들어 냅니다, 고비가 많을수록 이야기가 풍성해지고, 이야기가풍성한 사람이 삶도 풍성하게 됩니다, 이 고비를 넘기고 나면 또 하나 멋진 이야기가 탄생합니다. 아프리카 어느 곳에는 묵직한 돌을 짊어지고 가야만 건널 수 있는 강이 있다고 합니다. 왜냐면 이강 물결이 너무 세서 그냥 건너면 떠내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시험의 강을 건너고 고비를 이겨야 합니다.

 

원예사들은 기름진 땅이 아니라, 꼭 모래땅에 꺾꽂이를 합니다. 영양분이 적기 때문에, 식물의 뿌리가 “살아야 돼, 살아야 돼” 하며 모든 힘을 발휘해서 영양분을 찾아 밑으로 자라게 됩니다. 그러므로 꺾꽂이한 것을 살리려면 모래땅에 심어야 한다. 는 것입니다. 대관령에 횡계가 있는데 여기 황태 덕장이 있습니다. 대관령이 어떤 곳입니까, 겨울이면 밤에는 영하 10도에서 20도까지 기온이 내려갔다가 낮에는 다시 햇빛이 비칩니다. 그러니까 황태가 매일 얼었다 녹았다 하기를 봄까지 반복합니다. 이렇게 한겨울을 지내고 나면 황태는 윤기를 띠고 육질이 부드러워집니다. 이때 황태는 맛있는 고급 품이 되고 육질이 연해지는 것입니다. 황태는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최상품이 됩니다. 우리 인생에는 모래땅이나 대관령의 겨울 같은 시기가 반복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명품 신앙이 되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 인생경주의 고비에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떻게 대처하느냐, 에 따라 그것이 발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침몰하는 이유가 될 수 도 있다, 는 사실입니다. 똑같은 위기일지라도 어떤 사람은 믿음을 대응하고, 변화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절망으로 빠져들어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6세에 어머니를 폐병으로 잃고, 18세에 아버지가 농노들에게 살해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결사대에 가담했다, 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36세에 결혼하였지만 아내가 43살에 결핵으로 죽었고, 아들이 추위로 죽습니다. 자신마저도 간질병으로 고생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위기에 파멸하지 않고 신앙으로 이기면서 백야,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많은 명작을 남겼습니다. 죄와 벌은 그의 나이 44살 때 쓴 것입니다. 가장 큰 위기를 당할 때였습니다. 빚쟁이에게 시달려 4년 간 도망 다닐 때이고 아내가 죽고, 형도 갑작스럽게 죽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으로 그 위기를 극복하고 죄와 벌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문명의 흥망성쇠는 위기에서 비롯되며, 위기를 잘 이겨낸 민족은 흥하지만, 도전에 굴복하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한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기업도, 한 가정도, 한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고비는 끝없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때 신앙인은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때야 말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요셉도 노예로 팔려가는 위기를 만났고, 모세도 도망자 신세로 위기를 만났으며, 히스기야도 병 가운데 죽음의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 때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34:10)" 이때야 말로 기도할 때요, 곁가지를 치고 봄을 준비할 때입니다.

 

3. 결승점이 있습니다.(2절)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소원 세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는 첫 소원을 말했습니다. "저를 여성들로부터 사랑받는 사람 되게 해주세요." 그 날부터 아름다운 여자들이 수없이 나타났습니다. 사랑하지 않곤 배겨내지 못하는 미인들. 그들이 그를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는 반대로 미인들로부터 시달림을 받아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그는 하나님께 두 번째 청을 넣고 말았습니다. "저들로부터 나를 구하소서. 나는 저들의 사랑 공세에 지쳤나이다." 그의 주위는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이제 그에게 소원을 풀 기회란 딱 한번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을 부릴 수 있는 높은 자리를 달라고 할 것인가?, 돈을 많이 벌게 해 달라고 할 것인가?, 오래오래 살게 해 달라고 할 것인가?" 그 외에도 많고 많은 소원들이 그의 머리를 어지럽혔습니다. 이것을 청하자니 저것을 놓치기 싫고 저것을 청하자니 이것이 놓치기 싫고. 그는 이 일로 신경쇠약이 되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한 가지 남은 것을 이렇게 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하겠는지 그것을 가르쳐 주소서." 인간은 이와 같습니다. 모른다는 것입니다.

화살을 쏠 때 표적이 있습니다. 총을 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돌멩이를 들어서 던질 때에도 던질 곳이 있고 목표가 있습니다. 운동경기는 더욱 그렇습니다. 모든 경기는 목표가 있고 방향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 인생경주는 목표가 어디며 도달해야하는 결승점이 어디 일까요, 우리가 술 취한 사람이 길을 가듯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가 있고 결승점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앞을 향해서 나아가는 순례자요 경주자입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달리는 목표는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달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 결승점이요. 내 인생의 종착점입니다.

 

길을 잃거나, 방향을 모르고 달리거나 걸으면 고생은 고생대로하고 조난을 당하거나 죽습니다. 산에서 생명을 잃는 사람은 거의 다 갈 길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돌아갈 곳, 자신이 갈 방향을 바로 하는 것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우리의 목표가 되고, 인생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10억을 번다든지, 집을 산다든지, 학위를 받는다던지 하는 것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런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도움을 주는 보조자처럼 생각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하나님이 되고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소망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예수님을 위한 것이 되도록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플로렌스 채드윅이란 여성 수영선수가 1950년에 13시간 20분 만에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수영해 건넜고, 1951년에는 16시간 22분 만에 영국에서 프랑스로 수영해 건넘으로 영국 해협을 양방향을 건넌 최초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1952년 7월 4일, 그녀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카탈리나 섬에서 롱비치까지 34킬로의 수영 도전을 시도했습니다. 출발 후 15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몸은 찬 바닷물로 거의 얼었습니다. 게다가 짙은 안개로 건너편 땅을 볼 수 없었고, 심지어는 안내 선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어들은 주위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T. V를 통해서 그녀를 격려했고, 배 위에서는 어머니와 트레이너가 목표지점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포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목표를 800미터 남겨두고 포기했습니다. 몇 시간 후, 그녀는 방송 리포터에게 말했습니다. “만약 땅만 보였어도 저는 해낼 수 있었을 거예요.” 실패의 제일 원인은 피로나 추위가 아니라 목표를 볼 수 없게 앞을 가린 안개였습니다. 목표를 모르면 낙오자가 됩니다. 목적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낙오자가 되고 결국 어두움으로 가는 인생입니다. 목표가 어디인가, 하는 것은 생명처럼 중요한 일입니다.

 

속도 무제한 고속도로인 독일의 아우토반에서 52중 추돌 사고가 발생했다고 지난 달 19일 영국 데일리메일이 인터넷 판이 보도했습니다. 이 사고로 세 명이 죽고 35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사고는 고속도로 'A31 아우토반'에서 일어났습니다. 경찰은 사고 당시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지만 추돌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인지 아직 알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07년 여름에는 아우토반에서 260중 추돌 사고가 발생해 66명의 사상자가 나기도 했습니다. 대형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독일 내에서는 아우토반 고속도로에 속도제한을 두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잘 보이지도 않는데 빨리 간다, 면 죽도록 달리면 어떻게 됩니까, 사고가 납니다. 죽습니다. 여러분은 결승점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결론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인 유교의 대학자 성삼문은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세조에게 참살을 당할 때 죽음을 눈앞에 두고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 하고 : 둥 둥 둥 북소리는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고

回首日欲斜(회수일욕사) 하니 : 고개 돌려보니 해는 서산으로 지는데

黃泉無一店(황천무일점) 에 : 황천 가는 길에는 주막 한 칸 없다 하는데..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 랴? : 오늘밤에는 어디에서 잠자지?

하는데 목이 뎅강 날아갔습니다. 이것을 보면 유교는 사람에게 천국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종교가 아닙니다.

논어 선진 편에 보면 ‘계로’라는 제자가 공자님에게 죽음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季路問事鬼神(계로문사귀신)하니 : 계로가 귀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 물으니,

子曰未能事人(자왈 미능사인)인데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직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데, 焉能事鬼(언능사귀)리오 :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

敢問死(감문사)하니 : 감히 죽음에 대해 묻겠습니다.

曰未知生(왈 미지생)인데 : 아직 사는 것도 제대로 모르는데..

焉知死(언지사)리오 :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이것을 보면 유교는 죽음과 내세에 대해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종교가 아닙니다.

한편, 불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고오타마 싣달타(석가모니)는 돌아가실 때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제자들이 아직 우리가 진리를 알지 못하니 진리를 가르쳐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는 이 말씀을 남기시고 80세의 일기로 운명하였습니다. “너 자신을 등불로 삼아 진리를 찾으라”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 인류의 큰 스승들은 참으로 진실했습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였고. 자신이 말해 주지 못하는 것에는 침묵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천국 가는 길을 묻는 제자들에게 밝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하셨습니다.

조영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