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궤 안의 보물[19] 성경: 히브리서9:1-10절 오늘 읽은 본문은 옛 언약의 불완전성과 한시 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 당시 성막의 위치와 구조를 설명하는 것으로 말을 시작합니다. 성막은 땅에 있었고(1절),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으며, 지성소는 일 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이 들어가서 자신과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6-7절) 그러나 그런 제사와 제물로는 인간을 온전케 하지 못했다, 는 것입니다.(8-9절) 그 이유는 땅에 있는 성막 제사는 근본적인 죄 문제는 해결하지 못함으로 새 언약에 의한 완전한 제사와 제물이 올 때까지 그림자와 같은 역할만 감당하는 것이며 새것이 오면 폐기될 제한 적인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법궤는 조각 목으로 만들고, 전체를 금으로 씌우고, 순금의 덮개가 놓여지고, 속죄소로 불렸습니다. 금 고리 넷을 달아 메고서 이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길이는 2규빗 반(120cm), 높이와 넓이는 각 1규빗 반(68cm)으로 된 궤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중요한 사건이나 의식에 제사장에 메고서 백성과 함께 이동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신앙에 의해서입니다. 요단강 건넘(수 3:1-4:18), 여리고의 공격(수6:6-)등의 때, 이 궤는 백성의 선두에 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윗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고, 성전 지성소에 두어지고(왕상8:1), 희생의 피가 뿌려지는 때에 죄는 용서되고 하나님과 백성과의 관계는 회복되었습니다. 구약에 가장 중요한 장소가 지성소이고,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궤이며 그 안에는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만나를 담은 항아리, 아론의 싹 난 지팡이, 그리고 십계명 두 돌 판입니다. 오늘 법궤의 세 가지 물건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절대성을 믿고 예수님마저도 부인한 사람들이지만 정작 그 모든 것의 핵심이요. 본질이 되는 법궤를 잃어버린 사람들이며, 그 안에 있는 세 가지 보물은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이것과 함께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신앙마저도 다 날려버린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법궤 안의 보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1. 만나 항아리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음식과 떨어지래야 떨어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어머니 모유에서부터 시작하여 갖가지 음식을 먹다가 스스로 먹지 못할 때가 되면 죽는 것이 인간입니다. 사람이 70년을 산다고 가정하면 일평생 먹는 음식은 3톤 트럭으로 약 9대분(약27톤)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것을 먹는 시간을 계산하면 평생 51,864시간이고 6년이나 됩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영국의 '토마스 파'는 한 평생 농부로 살았고, 130세 때까지도 보리 탈곡을 할 정도로 건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국 황제가 그를 초청해 좋은 음식을 대접하자 그로 인해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합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먹었던 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나옵니다. 이 만나는 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먹는 것 때문에 원망 할 때 하늘로부터 비같이 내린 양식(출16:4)이며. 깟씨 같고,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습니다(출16:31).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먹을 것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매일 한 사람이 한 오멜 (한되2.2L)씩 모으도록 하고, 다음 날까지 보존되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출16:16). 그러나 6일에는 갑절의 식물 곧 두 오멜씩 거두어서 안식일까지 2일을 먹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만나는 광야 생활 중에 계속 내렸고,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후, 길갈에 진치고, 그 땅의 소산물을 먹게 될 때 그 만나가 그쳤습니다.(수5:10-12). 하나님은 이 만나를 항아리에 담아서 법궤에 보관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 백성을 광야에서도 죽지 않고 살게 하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을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고, 돈을 벌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싶어도 주일 날 가계 문을 닫을 수 없어서 교회에 못나온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예수 믿으면 식구들 다 굶어 죽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핑계요, 하나님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입니다. 인생을 자신의 노력으로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공은 노력의 산물이라는 생각하면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열심히 인생을 계획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삽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안 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멀지 않아 경험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틀은 결코 바꿀 수 없다는 운명론적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운명이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기 때문에 모든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팔자로 받아들이며 나약한 인생을 삽니다. 그러나 인생은 노력으로 다되는 것도 아니고, 운명이 인생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닙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삽니다. 무엇이 축복입니까, 사람들은 부요와 건강과 장수와 성공 같은 물질적인 것을 축복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축복의 한 면일 뿐입니다. 진정한 축복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체험하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척박한 광야에서 죽지 않고 40년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매일 만나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농사를 하지 않는 새들이 살고 있습니다. 누가 심지 않고 키우지 않는 들판의 꽃들이 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키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새들보다 꽃보다 얼마나 더 중요한가 하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통해서 광야에서 자신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었습니다. 죽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광야를 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만나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오늘의 양식입니다. 법궤 안 지성소에서 만나는 하나님, 어떤 경우라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애급을 떠난 사람들, 홍해를 건너듯이 세례를 받고 교회로 들어 선 사람들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방법으로도 그들의 먹이시고, 책임을 지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차 경주 장면으로 유명한‘벤허’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 벤허는 예수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유대인으로 설정돼 있습니다. 그는 유대 사회의 귀족에서 반역자로, 노예로, 로마 장군의 양자로 신분이 바뀌는 극적인 삶을 삽니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예수님의 뒷모습을 보여 주지만 그분의 얼굴은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벤허의 인생에서 고비 때마다 찾아와 그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벤허는 당시에 깨닫지 못하다가, 많은 사건을 통해서 나중에 자신의 삶에 참된 인도자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보물이며 무엇이 중요합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인도하시고 책임을 지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 이것을 믿는 사람이 신자요,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광야를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늘로부터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보물입니다. 2. 아론의 싹 난 지팡이 광야에서 백성의 대표자들인 족장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왜 너희들이 백성들 위에 있고 우리 위의 있는 지도자냐”하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각 지파에서 12개의 지팡이를 내게 합니다. 다음 날 그중에, 레위지파의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난 것입니다.(민17:8) 이것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아론혈통에서 대 제사장이 나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이 아론의 지팡이를 증거 궤 앞에 보전하여 제사장권의 증거로 했는데(민17:10). 이후에는 언약궤 안에 넣어 두었습니다(히9:4). 이 지팡이는 하나님이 시대마다, 조직 마다 세우신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애급과 그 인근 가나안 땅에 칠년 대흉년이 들었을 때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십니다. 폐르사의 아하수에로 왕 3년에 유대인들이 몰살을 당할 위험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에스더를 세워서 그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고, 아론을 세워서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어떤 때는 5천명이 넘기도 하였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바다에 배를 타고 말씀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중에서 12명을 제자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또 그중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더 정성을 더 쏟았습니다. 나중에 이들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순교자의 길을 갔습니다. 이들에 의해서 교회가 세워지고 오늘 우리들도 그들의 순교의 희생 때문에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세워서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모세를 세워서 출 애급을 시키고 아론을 세워서 제물을 드리고, 여호수아를 세워서 아말렉을 물리치게 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인정하고 사용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춘천교회에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929년 미국에 대공황이 시작되었습니다. 대공황의 근본원인은 불신이었습니다. “곧 대공황이 온다!”는 소문이 돌면서 불신이 커졌고, 사람들이 예금을 찾아 현금으로 보관했고, 물건을 마구 사재기했습니다. 그러자 은행 자금이 바닥나고 공장은 돈을 구하지 못해 하나둘 쓰러졌습니다. 공장이 쓰러지자 물건 값은 폭등했고,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했고, 사람들을 절망에 빠졌고, 자살자와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그때 한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 믿음과 미소를 전했습니다. 그가 바로 루스벨트 대통령입니다. 그는 매일 저녁 시간 ‘노변담화’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끊임없이 역설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여러분! 믿음을 가지세요. 우리는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서로를 믿어주세요.”대통령의 눈물겨운 호소가 국민들에게 먹혀 국민들이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믿고 은행에 돈을 맡겼습니다. 돈이 돌면서 공장이 돌아갔습니다. 믿음으로 마음의 불황을 극복하자 환경의 불황도 극복했습니다. 그 뒤 미국은 더욱 빨리 경제를 일으켜 최강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사람을 움직입니까, 어느 날 저녁 아인슈타인이 물건을 가지러 실험실에 갔다가 늦은 시각까지 열심히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대학원생을 발견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그 학생에게 물었다. "자네는 이 늦은 시간까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 그러자 학생이 "실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낮에는 뭘 하나 ?" "역시 실험을 합니다." "그럼 하루 종일 실험만 하나 ?" "네, 교수님." 겸손하게 대답하는 학생의 표정에는 아인슈타인으로부터 칭찬을 기대하는 눈치가 역력했습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자네는 도대체 생각은 언제하나 ?"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을 바꾸거나 새롭게 하려고 할 때에는 희생이나 위험이 따릅니다. 손가락질을 당할 수도 있고, 사람에게 실망을 느끼고, 심적인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앞장선다는 것은 외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가가 아닙니다.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주일 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듣기만 하는 사람은 성령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성경말씀을 듣고 설교를 들으면서 남의 이야기처럼 깊이 없이 들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한다면 생각을 하고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 하십시오, 나에게 하시는 주님의 말로 받겠습니다. 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여기서 에스더가 나오고, 사무엘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3년 동안이나 직접 들었지만 자기 마음에 맞는 말만 들으려했던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가롯유다였습니다. 그는 결국 예수님을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듣고 생각해보지 않으면 새로운 행동이 나올 수 없습니다. 듣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말씀이 설교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 참된 리더가 참 일꾼이 필요한 때입니다. 누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바로 당신입니다. 언제까지 다른 사람의 뒤만 쫓아다니고, 다른 사람의 눈치나 보겠습니까, 스스로 일어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세위서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를 구원하고 일으켜 세웁니다. 여기에 응답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무엇이 보물입니까. 금이냐 은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입니다. 많은 족장들 중에 하나님이 인정한 사람은 아론이었고 아론은 모세와 함께 출 애급 민족을 이끌고 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여서 그를 백성들 앞에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왜 하나님은 아론을 선택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쓰시고 싶은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지팡이에 싹이 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보물입니다. 그래야 내 교회가 되고 내 하나님이 되고 내 삶이 됩니다.
3. 십계명 두 돌판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열 가지 명령으로, 율법의 기본이 된 것이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근본적인 말씀이 나타나 있습니다. 십계명은 인간이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하지 않으면 안 될 최고의 말씀을 열 가지의 문장에 담고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이 주어지고서부터 3천년 이상이나 경과된 오늘에 있어서까지도, 그 훌륭함은 조금도 감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십계명이 전 세계에 준 영향은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기를 원했고, 하나님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한번만 만나면 나는 생명을 그분에게 바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확인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대 성경에는 하나님을 보고 살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처럼 모습이나, 형상으로 가지고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을 생각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하나님을 지키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면 하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읽는 것입니다. 시내산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계명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십계명 1계명 하나를 어기고 버릴 때 그들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끝까지 그것을 고치지 않을 때 그들은 나라를 잃고 노예가 되고 죽어가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인격과 존재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유명한 바바라 월터는 저널리스트이자 텔레비전에서도 매우 인기가 있는 여자입니다. 그 남편도 유명한 기자이자 컴퓨터 전문가입니다. 이렇게 완벽한 여자와 남자가 부부가 되었다면 남보다 더 잘 살아야 할 텐데 이들은 이혼을 했습니다. 이 여자와 이혼한 남자는‘이제는 좀 더 새로운 인생을 찾아야겠다. 나에게 가장 잘 맞고 적합한 사람을 찾아봐야겠다’며 컴퓨터 통신에 광고도 내고 사람들의 추천도 받아서 컴퓨터에 많은 여자들의 리스트와 자료들을 입력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그 여자들 가운데 자신과 잘 맞고 어울리는 사람을 순위별로 살펴본 결과 10위까지 리스트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위 중 가장 적합한 결과로 나온 1위의 여인은 바로 자기와 이혼했던 바바라 월터가 나왔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다른데 혹은 밖에 있다, 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일학교에 문제가 있다, 이렇게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 한사람도 전도한 일이 없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목사님이 잘하시면 우리 교회가 더 부흥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교회 부흥을 위해서 자신이 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 집이 잘되고 아이들이 훌륭하게 되길 바라면서 자신이 훌륭한 부모인가를 스스로 물어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있습니다. 십계명을 주시고, 그것을 법궤 안에 넣게 하신 하나님 뜻이 무엇입니까, 그 십계를 돌에 새겨서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변하지 않는다, 나는 너희들과 가까이 있다, 이제 너희들이 응답할 차례고 너희들이 결정할 일이라는 메시지가 아닙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같습니까, 결심을 하겠습니까? 이것이 세 번째 보물입니다. 결론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울 때 부르고 싶은 이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머니의 이름을, 어떤 사람은 친구의 이름을, 또 어떤 사람은 애인의 이름을 부르고 싶어 합니다. 소월은 '초혼‘에서 산산이 부서진 이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을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국권을 상실한 조국의 이름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월의 초혼처럼 우리가 넋을 놓아 그렇게 그리운 이름을 불러도 상황이 변하지 않을 때, 문자 그대로 우리가 부르는 이름은 허공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이름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인생의 한계를 경험할 때 정말 불러야 할 이름이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 이름은 바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자존자이십니다. 그는 한번 약속하면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동일하신 영원자이십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요 산성이십니다. 우리가 그 이름으로 기도할 때 인생의 총체적인 전망을 얻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인생의 진정한 안식을 경험합니다. 성경적 의인은 여호와를 자기의 하나님으로 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의인의 주인은 바로 의 자체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의인은 주인이신 여호와를 부르며 하루를 시작하고 여호와를 부르며 하루를 닫습니다. 여호와가 그의 소망이요 여호와가 그의 안전이십니다. 인생이 힘들 때 우리는 지체 없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오늘 법궤 안에는 우리를 책임지시는 만나가 있습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지팡이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십계명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도 인간적인 걱정을 계속할 것입니까, 그래도 고집부리고 곁길로 자기 생각대로 살 것입니까, 여러분 그래도 결심 없이 아멘 없이 교회 다닐 랍니까, 오늘 만나는 지팡이는 십계는 우리게 주시는 하나님의 보물입니다. 조영호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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