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스크랩] 행복한 가정을 위한 메세지4 (온가족이 함께하는 행복가정주일)- 행복한 나의 가정

하나님아들 2018. 10. 21. 18:17

설교 오디오 듣기

 

행복한 나의 가정

(잠언 4:8)


2005. 5. 29 늘푸른 주일 낮

  가정의 달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은 가정에 대한 말씀을 결론의 시간입니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이라는 책의 제일 마지막 테마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링컨의 신앙은 어머니 낸시의 신실한 믿음에 깊은 뿌리를 둔 것이었다. 그는 꾸준히 성경을 읽고 기도함으로써 균형 잡힌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났다. 링컨은 어머니의 유언대로 신앙인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철저히 술과 담배를 멀리했으며, 불의와 뇌물의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십계명을 삶 속에서 엄격하게 실천하며 믿음을 키웠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충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고 아침마다 성경을 묵상 하고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이런 링컨이 출석한 뉴욕 애비뉴 장로교회의 역사를 보면 “링컨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성경을 통해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 했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뉴욕 애비뉴 장로교회에 매 주일 출석했습니다. 그는 주일 예배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기도회에 자주 참석하여 기도드리곤 했습니다.”라고 그의 신앙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번은 링컨이 출석하고 있는 뉴욕 애비뉴교회 담임목사가 주일 예배를 마친 후 일하게 광고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 교회는 당분간 집회를 중단합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전쟁으로 사상자가 너무 많이 생겨 교회를 병원으로 개조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이 광고를 들은 링컨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걸리 목사님 지금 나라가 어려움에 처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는 교회가 필요하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겨야 합니다. 저는 교회를 병원으로 개조하는 조치에 대해서 찬성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링컨을 만나서 그와 대화를 나눠 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그가 취한 결단과 행동들이 확신 있는 믿음과 신앙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신앙과 인격은 모든 사람들을 포용할 만큼 겸손한 모습이었다고 추억한다. 한마디로 링컨은‘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즉‘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우리의 삶이 높아지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면 우리는 자동으로 높아집니다. 그러나 세상은 어떻습니까? 내가 높아지려면 남을 밟고 올라가야 합니다. 내가 살려고 남을 죽여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지 않으려고 살아남으려고 다른 사람을 무차별하게 죽이고 사는 세상입니다. 그래야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기도도 안 하고 말씀도 안 읽고 예배도 안 드리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높인다고 말 할 수 있나요? 지금 여러분의 영적 상태 신앙의 태도를 살펴보세요. 정말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믿지 않는 자들과 별반 다름없이 세상적인 방법으로 높아지려고 발버둥 치고 있지는 않은 지요.


  누구나 행복한 부부관계를 꿈꾸며 삽니다. 그러나 누구나 행복한 부부관계를 만들지는 못합니다. 누구나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삽니다. 그러나 누구나 행복한 가정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누구나 자녀들이 잘되기를 꿈꾸며 삽니다. 그러나 누구나 잘된 자녀로 인해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링컨이 그렇게 높아진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높였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했던 그의 믿음이 그를 높였습니다. 행복한 부부, 행복한 가정, 행복한 자녀의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두 가정의 이야기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롯의 가정입니다.

  큰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교향을 떠나온 롯은 재산이 많아짐으로 큰아버지와 분가를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롯은 눈에 좋아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 당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그 땅은 결국 심판의 땅이요 저주의 땅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해야 합니까? 진학을 선택하고, 배우자를 선택하고, 직장을 선택하고, 살 집을 선택하고 나의 삶에 필요한 그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선택을 합니까? 롯처럼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 롯은 눈에 좋아 보이는 땅을 선택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실패입니다. 그 땅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땅이었습니다. 사람이 보기엔 좋은 땅이 하나님 보시기에도 악한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당을 심판하시기로 작정을 하시고 천사를 보냈습니다. 그 천사가 롯에게 이 땅의 심판을 예언합니다. 그 말을 들은 롯이 자기 딸들과 정혼은 사위들에게 이 소식을 전합니다. 그런데 그때 이 사위들의 반응을 보세요.

  창 19:12-14. 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13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 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두 가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하나는 장인어른은 농담도 잘 하셔라는 사위들의 반응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지금껏 우리가 이렇게 마음껏 누리고 먹고 마시고 아무 탈 없이 살았는데, 너무도 평화롭고 너무도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멸망이라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그 뜻이거든요. 그런데 이 사위들의 반응이 오늘 우리의 반응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면서 심판을 이야기 하면 지옥을 이야기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게 어디 있느냐?”그럽니다. 믿는 사람들조차도 “그렇게 살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그러면 “아이고 목사님 그런 재수 없는 소리 하지마쇼. 내 지금껏 할 짓 못할 짓 다하고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살아왔어도 잘만 살았습니다. 심판이 어디 있고 지옥이 어디 있습니까? 괜히 교인들 겁주려고 그러지 마시고 교양 있고 듣기 좋은 설교나 하쇼”그럽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삶은 그렇게 흥청망청 살아갑니다.


  여러분 솔직히 말해봅시다. 정말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 다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막 살수 있습니까? 정말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일거수일투족을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계심을 믿는 다면 이렇게 함부로 살 수 있습니까? 우리도 다 롯의 사위들처럼 심판의 경고를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메시지를 농담으로 여기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사실을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지 마세요. 마 3:10에서 세례요한은 가식으로 가득 찬 유대인들을 향해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언제 우리의 삶에 날벼락과 같은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끄제 저희 형수의 둘째 오빠가 일하던 중 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산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그때 70이 넘으신 사둔어르신께서 그렇게 착하고 효심 깊고 신앙 좋고 교회에도 부모에게도 충성하던 아들인데 우리 집안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고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다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비록 불의의 사고를 당하긴 했지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믿고 믿음 안에 살았기에 천국에 가셨습니다. 그러나 경고를 무시한 체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은 지금도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느냐 안다니느냐가 보다도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교회만 백날 왔다 갔다 한다고 해서 구원 받는 거 아닙니다. 마당만 밟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롯의 사위 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농담으로 겼기에 그 믿음대로 우할 불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또 한 가지 생각은 평소 사위들에게 비춰진 장인 롯의 신앙의 모습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평소 사위들의 모습에 비친 장인의 신앙이 진지하고 참되었다면 사위들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까요? 평소에 사위들에게 보인 장인 롯의 신앙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사위들이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긴 것이 아닐까요?


  지금 여러분의 자녀들 눈에 여러분의 신앙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지금 여러분의 자녀들이 여러분의 신앙의 모습을 보고 어떤 평가를 내릴 것 같습니까? 자신 있으십니까? 당당하십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나의 신앙을 배우라고 말할 수 있으십니까? 혹시 자녀들에게 신앙인으로 아버지로 어머니로 보여서는 안 될 모습을 매일 같이 보여주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내 자녀들이 잘되고 행복하길 바라십니까?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자식의 신앙을 보면 내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녀들을 보면 여러분의 신앙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롯은 다행히도 아브라함의 기도덕분에 사위들을 제외한 온 가족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의 현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마누라가 대형 사고를 치고 맙니다.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뒤를 돌아보아서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잘못된 신앙이 결국 아내를 잃고 말았습니다.


  물론 자기의 신앙은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런데 가족의 신앙은 가족 구성원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아내들이 교회를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도 부족한데 남편들이 매일 같이 속 썩이고 그래서 아내들의 마음을 뒤엎어 놓으면 아내들도 온전한 신앙위에 설 수 없습니다. 그저 돈만 많이 벌어다 주면 된다는 그런 단순 무식한 생각 하지 마세요. 돈이 중요하지만 여자는 돈보다도 남편의 사랑과 애정 그리고 따뜻한 보살핌을 먹고 산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아내의 얼굴표정에 민감한 남편들 되시기 바랍니다. 어디 아픈 곳은 없나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과 애정 따뜻한 보살핌 없이 돈만 벌어다 주면 여자는 타락합니다. 남편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신앙도 식어집니다. 그러면서 가정은 망해가는 겁니다. 남편은 순간 좀 잘못된 길을 걸어도 가정에 그렇게 큰 영향이 없지만 아내가 한번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 그 가정은 주체할 수 없는 멸망의 길도 치닫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아내의 타락은 전적인 남편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방황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남편이 타락가면 안 됩니다, 아내의 손을 잡고 함께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롯의 가정의 비극은 결국 남편인 롯의 책임이었습니다.


  둘째, 노아의 가정입니다.

  심판이라고 하는 전제는 롯이나 노아나 같습니다,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는 것고 같습니다. 그런데 그에 따른 태도는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더 이상 그 땅의 죄악을 볼 수 없어서 40일간 비를 내려 땅을 심판하시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아와 노아의 가족은 살리시려고 방주를 지으라고 하십니다. 그 명령을 들은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방주를 짓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보면 참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리 성경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산꼭대기에다 지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방주를 그 주변의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지었습니다. 물론 성경에는 노아가 산꼭대기에 방주를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창 7:17-18절을 보면 비가 사십일 동안 내려 물이 땅에 많아져 방주가 물위에 떠올랐다고 한 것으로 보면 분명히 노아는 배를 높은 산 위에 지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산 위에 지으라고 하지 않으셨는데 노아는 배를 산위에다 지었을까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지 않습니까? 배는 강이나 바닷가에서 만들어야지 배를 산꼭대기에 만든다니요.


  그런데 우리가 더 깊이 주목해야 할 사실은 노아가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듣고 산꼭대기에 방주를 만들 때 그의 세 아들과 가족의 반응입니다. 성경에 역시 그 아들의 반응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방주를 다 만들고 그 방주 안에 들어간 사람들을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 7:13.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노아의 세 아들 그리고 며느리 아내 온 가족이 다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만일 여러분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기도원 다녀오셔서 온 가족을 모아 놓고 하나님 비로 이 땅을 심판한다고 하시면서 배를 만들라고 했다 우리 이제 배를 만들자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다. 그건 할 수 있겠죠? 그런데 배를 만들러 금강이나 대천 앞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저 계룡산 꼭대기로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이고 우리 아버지 기도 많이 하시더니 이상해 지셨네. 노망 드셨네.” 그리고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말리고 하다하다 안 되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던지 아버지 버리고 도망가던지 그럴 겁니다.


  그런데 노아의 가족들은 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온 가족이 방주 안에 들어간 것으로 보아서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겁니다. 방주의 크기가 추구장 보다 더 큽니다. 길이가 135m, 높이가 15m, 폭이 25m 그러니까 방주의 크기로 보나 그 당시의 장비나 기술력으로 보나 한두 달 만든 것이 아니라 적어도 몇 년 은 거렸을 겁니다. 그 기간동안 가족들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겠습니까? “아니 아버지 이 산꼭대기에 만든 배가 뜰만큼 정말 비가 온기는 오는 겁니까? 아버지 하나님께 다시 한번 확인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거 우리 정말 미친 짓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갈등 속에서도 온 가족이 방주로 들어갔다고 한다면 노아의 가족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아버지의 믿음을 신뢰했다는 증거가 아닙니까? 노아의 신앙은 그 가족들에게도 진실 되게 보여 졌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 그로인해 받은 가정의 구원. 그리고 육신의 따른 삶을 살아가 소돔과 고모라에서 비참한 가족의 멸망을 당한 롯. 분명한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삶과 신앙에 대한 분명한 답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노아는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와 함께 신앙의 길을 걸어갈 줄 아는 사람이었고 자녀들을 믿음 안에 양육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가정의 행복 누가 지킬 수 있습니까? 누가 우리를 높이십니까?


  성경이 만든 사람 워너메이커의 저자는 워너메이커의 삶에 대해 이렇게 평가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은밀히 보시고 사람을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신다. 하나님은 워너메이커를 높여주셨다. 가난한 가정에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를 하나님은 가장 높여 주셨다. 세상의 최고의 백화점 왕, 체신부 장관, 세계 최고의 주일학교 설립자, 세계 주일학교 연합회 총재, 가장 존경 받는 위대한 시민으로 그리스도도인들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까지 만인의 귀감이 되도록 높여 주셨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워너메이커의 삶에서 귀중한 깨달음을 얻어, 성경의 기초 위에 자신을 세우고, 가정을 세우고, 교회와 직장과 사회에서 충성하고 봉사하여 위대한 신앙인, 위대한 시민으로 곳곳에 세워지길 꿈꾸어 본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높인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높아졌습니다. 세계사의 위대한 인물들은 거의 대부분이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높이시어 당신의 존재를 나타내셨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아브라함 링컨,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 석유 왕 록펠러, 강철 왕 카네기 이들은 모두 오늘의 미국이 있게 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공통점 몇 가지가 있습니다. 모두가 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을 읽어준 좋은 신앙의 어머니가 있었고 그 어머니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을 지키며 교회에서 봉사하라,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라, 그리고 목사님 존경하라”고 가르쳤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의 인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김동한 전도사, 세계적인 의학자 원종수 권사, 한국 상담학의 대부 정태기 교수, 네 손까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야, 위대한 목회자들. 이 분들의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었고 이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철저한 주일성수, 온전한 십일조, 목회자에 대한 존경의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높이셨습니다.


  저에게는 강렬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교회에서 세계를 뒤흔들 믿음의 지도자가 배출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고 했는데 그 영웅이 우리교회에서 탄생되길 소원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며 높아지기를 소원합니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부모에게 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 모든 부모님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그날의 영광을 바라보며 함께 기도하며 자녀들을 양욱하고 훈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출처 : 홍이석목사
글쓴이 : 홍이석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