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전신갑주 2 -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엡 6:10-18)
오늘은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한 에베소서 6장 말씀 두 번째 시간으로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바울 당시 기독교는 그야말로 끊임없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러한 혼란은 수백 년이 지나도록 계속되었고 그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은 당시 이러한 연약한 신앙을 가진 성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염려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그들에게 닥칠 고난과 어려움이 얼마나 클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성도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사단은 교활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세상이 창조되었을 당시 사단은 감히 자신을 드러내지도 못하고 아담과 하와를 몰래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였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어느 샌가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사람들을 유혹하고 미혹하는 존재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이제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유혹하고 십자가에서 죽이는 단계에 까지 발전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사단은 그 자신을 하나님과 맞설 존재로 드러내면서 사람들을 통해 교회와 성도를 무참히 공격하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활한 사단의 역사 가운데 우리 성도는 한시도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주 안에서 강건케 되고 무장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는 마귀의 먹잇감이 될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상황에서 오늘 말씀을 함께 나누기에 앞서서 다시 한번 우리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 보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 안에서 강력한 영적 무장을 하고 있습니까? 혹시 아직도 육신과 정욕의 노예가 되어 영적인 무지함과 나태함과 무기력함을 가지고 그들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껍데기뿐인 성도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윗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형통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가 잠시 방심하였을 때에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사단의 유혹에 그대로 노출되어 쓰러지고 마는 영적 패배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다윗은 그의 심령 깊은 곳까지 상처를 입어야 했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시편 32:1-4)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과연 여러분 자신은 어떠합니까? 나는 괜찮겠지, 안전하겠지, 아무 문제 없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나태함과 무기력함이 들어오지는 않았는지, 사단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주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서 성경이 말씀하는 영적 싸움의 필수품인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여섯 가지로 구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4절의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흉배’, 15절에는 ‘평안의 복음의 신’, 16절의 ‘믿음의 방패’, 17절에는 ‘구원의 투구’와 ‘하나님의 말씀의 검’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전신갑주는 사도 바울 당시 로마 군인들이 갖추었던 장비들을 빗대어 설명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군은 세계를 정복한 막강한 군대였습니다. 로마군은 ‘군단’ 단위로 조직되었고, 한 개 군단은 4800명의 보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들은 엄격한 훈련을 받은 최고의 군사들로서 그들 자신을 보호할 전신갑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군단이 약 30여 개가 존재하였고 이들 수만도 약 15만 명 정도 되었는데 그들 뒤에는 전쟁에서 죽거나 낙오된 사람들을 채울 군단의 몇배나 되는 보충부대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로마 최고의 병사로 구성된 로마 군대였지만 그들은 자신의 용맹만을 믿고 자신을 보호하는 철저한 무장에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철저한 무장만이 전쟁에서 나를 보호하고 승리할 수 있는 방법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바울은 성도들이 영적 싸움을 싸우는데 있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나 자신을 잘 지키고 보호하는 전신갑주임을 강조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여섯가지의 장비 중에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단 하나 뿐이며 나머지 다섯은 보호용 장비입니다.
오늘은 그 중 첫 번째로 진리의 허리띠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성도는 성실과 정직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의 진리라는 말의 헬라어 원문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나 계시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진리라는 말과는 달리 그것을 수식하는 정관사가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본문에서 말씀하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계시라기보다는 성실이나 정직함의 의미로 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마지막 6번째 도구로 말씀의 검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본문의 진리는 말씀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리의 띠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 세상에서 거짓과 기만을 일삼는 사단에 맞서서 싸워 이겨야 하는 성도에게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정직과 성실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거짓에 대항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과 불법을 일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 불법을 몰아내기 위해 불법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당장은 나약하고 무능해 보이지만 거짓과 기만을 이길 가장 큰 능력은 정직함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왜 기독교가 이토록 나약해졌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누구보다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할 성도들이 성공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온갖 거짓과 불법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때로 교회도 나서서 이러한 불법을 방조하고 조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당장의 유익과 성공과 성장을 가져다 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사단에 대항해야 할 우리의 능력을 상실케 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교회와 성도들이 정직함과 성실함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백화점을 운영하는 스튜어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매장을 방문한 그는 새로 출시된 신상품에 대하여 직원들에게 솔직한 평가를 요구했습니다. 직원들은 모두가 상품에 대해 색상이 눈을 끌긴 하지만 이렇다 할 특색도 없고 바느질은 허술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한 중년 손님이 들어와 그 신상품을 관심 있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러자 눈치 빠른 점원은 잽싸게 손님에게 그 상품을 과장해서 칭찬하면서 구매할 것을 권유했고 그 손님은 그 상품을 사기로 결정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스튜어드는 그 신사에게 다가가더니 “손님, 이 상품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닙니다.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좋은 상품이 들어왔을 때 꼭 알려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위에 서 있던 직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손님도 의아해 했지만 곧 스튜어드의 양심적인 상술에 감탄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스튜어드의 정직함은 곧 큰 힘이 되어 회사가 크게 성장하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이 사회는 세금을 성실히 내고, 뇌물을 제공하지 않고, 법을 잘 지키는 것이 기사거리가 되고 화제 거리가 되는 거짓과 불법이 판을 치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은 끝까지 정직함과 성실함을 잃지 않으며 손해가 오더라도 그러한 신념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정직과 성실로 허리의 띠를 띠우게 될 때 모든 거짓을 패하고 모든 모사와 기만은 철저히 패하게 되는 결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만약 성도로서 이러한 불법과 거짓에 합하여 헛된 삶을 살아간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거짓과 불법이 판치는 세상에서 영적 싸움을 싸울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렇기에 우리는 진리의 허리띠, 즉 정직과 성실의 허리띠를 띠고 정직과 성실로 무장하여 영적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2. 항상 진리로 무장하여 깨어 있으라.
성경에는 허리띠에 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특별히 출애굽기 12:11을 보면 출애굽을 준비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유월절 규례를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밥을 먹되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밥을 먹던 도중에라도 여호와의 신호가 발하면 즉시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이 말씀에서 허리띠는 준비되어 있고 깨어 있어서 어떤 상황에 즉시 대비할 수 있는 심적 상태와 깊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에 근거하여 성도들에게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베드로전서 1:13)라고 말씀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눅 12:35)고 명하시면서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눅 12:36-38)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리로 무장하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할 이유는 바로 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진리로 허리 띠를 띠고 근신하고 깨어 사단의 모든 공격에 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우리 신앙의 궁극적 목표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깨어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과연 이처럼 주의 날을 기다리는 충실한 종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천군천사와 함께 이 땅에 재림하실 때, 주님을 맞이할 장소가 술집이나 나이트 클럽이나 게임장이나 파티장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 무릎꿇는 기도의 처소나, 예배의 장소, 찬양의 장소이기를 원하십니까? 진리로 항상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이경이나 혹 삼경에 주님께서 재림하신다 해도 깨어 불을 밝히고 문을 열어 인을 맞이하는 신실한 종의 모습으로 주를 맞이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어둠의 공격도 결코 두렵지 않을 것이며 결코 그들이 우리를 이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으로 항상 깨어 있으십시오. 그리고 사단의 공격에 대비하십시오. 주님 오실 날을 고대하며 기다리십시오. 주께서 오실 때 허리에 진리의 띠를 띠고 주를 맞이하는 신실한 종에게 큰 축복과 영광으로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3. 진리로 균형잡힌 삶을 살라.
마지막으로 허리띠는 옷을 지지해 주고 지탱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로 있었던 옷은 오늘날 여성들이 즐겨 입는 원피스와 비슷했습니다. 정교해 재봉술이나 재단 기술이 없었던 당시에는 이처럼 대략적인 규격만을 맞춘 원피스 형태의 옷을 입고 그 중간인 허리를 허리띠로 묶어 옷이 흘러내린다든지 벗겨지는 것을 면하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허리띠는 이처럼 옷을 지탱하고 몸에 단단하게 고정되게 하는 역할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말씀은 “진리로 우리의 삶을 고정시키고 진리 안에서 균형잡힌 삶, 진리에 고정된 삶을 살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마가복음 1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는데 그 중 한명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왔던 사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청년은 결국 무리들에게 잡히게 되었는데 급한 나머지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웃기는 청년을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마가는 사도행전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그는 바나바의 조카로서 바울의 제1차 전도여행 당시 바울의 수종자로서 전도의 보조자나 시중드는 자의 자격으로 그와 동행했지만 도중에 중도 하차하였고 그것이 발단이 되어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분열되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마가복음에서 그가 베 홑이불을 두르고 가다가 벗은 몸으로 도망하였다는 말씀은 결코 하나의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당시 마가가 어떠한 영적 상태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며 또한 그 말씀의 결과가 바로 전도 여행의 중도 하차와 그를 통한 교회의 분열로 나타난 것입니다.
여러분,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여 우리가 단단히 붙잡고 있는 모든 진리의 말씀에서 우리가 떨어져 나가게 하려 합니다. 넘어지고 쓰러져 그대로 영적 실패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탄의 영적 공격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리되신 하나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리로 그 마음이 무장(武裝)이 되어 있는 사람은 사탄의 모든 공격을 무력화(無力化) 시킬 수 있으며 그들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리가 내 몸에 고정되어 진리를 따라 균형잡힌 참된 삶을 살아가고자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사단의 공격에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온전한 싸움을 싸워 나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진리에 대하여 목청을 높이지만 자기는 진리대로 살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사람들을 “거짓 선지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진리를 가르치고, 진리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자신은 진리대로 살지 않습니다. 진리가 짓밟히는 현장을 보면서도 가슴 아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했고, 자신을 변호(辯護)하는 일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던 모세였지만 불의한 일에 대하여, 비진리에 대하여는 목소를 높였고 분을 내었습니다. 그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했던 주님조차 불의의 현장을 보았을 때 주님은 손에 채찍을 드셨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진리를 말하고 외치는 자뿐 아니라 그것을 내 삶에 고착시키고 진리의 삶을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성도가 되고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성령의 전신갑주 중 그 첫 번째로 진리의 허리 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적 군사로서 우리는 정직과 성실로 무장하고 깨어 영적싸움을 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진리로 내 삶을 지탱하고 견고히 세우고 진리로 균형잡힌 참 성도의 삶, 참 영적 군사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실로 진리의 허리띠를 매십시오. 진리로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무장하십시오. 그래야만 영적 싸움의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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