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 에베소서

[스크랩] 하나님의 전신갑주

하나님아들 2014. 5. 25. 22:03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당신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마귀로 하여금 틈을 주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보혈을 뿌리게 될 때 당신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었기때문에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것이 쉬어진 것이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었기때문에 마귀로 하여금 틈을 주지 않은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보혈을 뿌릴 때에 당신의 전신갑주는 더욱 강력한 전신갑주로 변화될 것입니다.

 

당신이 마귀의 공격을 막았다 할지라도 영원히 막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당신은 하나님과 영원토록 동행해야 합니다. 한 순간의 틈을 허용할 때에 당신의 전신갑주 또한 부서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강력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날마다 입어야 합니다.

 

바울은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6:10-11)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게 될 때 주님 안에서 주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질 것입니다. 또한 능히 마귀의 궤계를 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 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 6:15]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 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 진리의 허리띠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허리띠'는 우리의 삶의 중심을 의미합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차라는 것은 우리의 삶에 예수님을 중심에 두고 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인생의 중심에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인생의 중심에 두고 삽니다. 재물을 중심에 두고 사는 사람이 있고 자녀를 인생의 중심에 두고 살아 갑니다. 명예와 성공을 인생의 중심에 두고 살아갑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인생의 중심에 두고 살지 않는 사람은 우상숭배자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특별한 악인만 행하는 죄는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우상숭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섬기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우선적으로 섬기는 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우선적으로 섬기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우상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하는 사람을 너무나 싫어하십니다. 누구든지 우상숭배하는 자는 자손 삼 사대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 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사람들은 왜 자신에게 좋지 않는 일이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왜 가족들에게 좋지 않는 일이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좋지 않는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때때로 원치 않는 질병이 찾아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암에 걸리며 교통사고로 죽음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착하던 자녀가 불량배가 되는 일도 있습니다. 인생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며 문제의 무덤에 갇혀 살아갑니다. 이런 좋지 못한 일이 우상을 섬긴 죄로 인해 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물론 모든 인생의 문제가 우상숭배 죄로 인해 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우상을 섬기는 죄에 대한 형벌은 반드시 찾아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손 삼 사대까지 내려갑니다.

 

성경에 적혀진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개 여기지 마십시오. 그런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당신이 예수님 외에 그 어떤 것을 예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더 좋아하고 더 섬긴다면 이미 당신은 우상숭배 죄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 당신은 결코 '진리의 허리띠'를 차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2. 의의 흉배


바울은 '의의 흉배를 붙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여기서 '붙이다'는 헬라어 <엔뒤오>로써 '옷을 입다'를 뜻합니다. 결국 바울의 말은 '의의 흉배를 입으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righteousness)' '세상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세상적인 의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적인 의는 세상 사람들이 의롭다 여기는 의를 말하지만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의롭다 여기시는 의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의롭다 여기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성경에는 사람들로부터 의롭다 여김을 받는 세 가지 덕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는 세상 사람들이 의롭게 여기는 세 가지 덕목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 보면 '기도, 금식 그리고 구제'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기도'는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유대인은 하루 세차례 성전에 나아가 기도했습니다. 탈무드에 따르면 유대인은 하루 세차례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전 9시와 정오, 그리고 오후 3시에 각각 성전에 나아가 기도를 드렸습니다. 성전에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은 공회에서 드릴 수 있었으며 공회도 참여할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사람은 성전을 향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갔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3:1]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또한 유대인은 '금식'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금식은 빼놓을 수 없는 의로움이었습니다.

금식하지 않는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 될 수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2일이나 금식을 하였습니다.

결국 1년에 100일 정도를 금식한 것입니다. 물론 그들의 금식은 두끼에 해당되었습니다. 저녁식사를 조금 일찍 먹고 그 다음날 저녁식사때 밥을 먹으면 되는 금식이었기때문에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금식과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식의 중요성을 언급하셨지만 일주일에 두번씩이나 금식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셨음에도 사람들로부터 의롭다 여김을 받기 위해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렇게 금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들은 일주일에 이틀을 금식합니다. 때로는 20일을 금식하기도 하고 40일을 금식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평생에 40일 금식을 100여차례나 한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에게 보이려는 금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책망하셨습니다.

 

"[ 6: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 6:17]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 6:18]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한 '구제'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구제는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시는 주님을 향해 회당장이 "[ 13:14]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고 싫은 소리를 했습니다. 이는 회당장이 구제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회당장도 구제를 확실하게 지켰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식일의 법까지 어기면서 구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 6:5] 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고 말씀하시면서 안식일의 법보다 병든자를 온전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와 금식, 그리고 구제'는 유대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지만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행위가 돼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는 '기도와 금식, 그리고 구제'를 유대인이 했던 것처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한다면 특별히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사람들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멈춰야 합니다. 차라리 행하지 않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이렇듯 사람들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는 덕목과는 달리 하나님으로부터 확실하게 의롭다 함을 받는 덕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의롭다 여기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여기십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입니다.

 

"[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3. 복음의 평안 신발

 

'평안'은 헬라어 <에이레네>입니다. '에이레네'의 뜻은 '평안'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평안을 위한 어떠한 노력이나 의지가 포함된 평안이 아니라 완전히 평안을 유지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말은 누군가를 미워하지만 애써 평안을 유지하는 그런 평안이 아니라 미운 사람 자체가 없는 완전한 평안을 말합니다. 고통 중에 애써 평안을 유지하는 그런 평안이 아니라 그 어떠한 고통이 없는 평안을 말합니다.

 

'신을 신다'는 말은 헬라어로 <휘포데오>인데 이는 '밑에 매다(bind under)'의 뜻입니다. 이것은 마치 신발 밑에 어떤 것을 붙여서 신발과 함께 묶어 다니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이러한 원어의 뜻과 함께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6:15)의 뜻은 아무런 고통이나 방해요소가 없는 완전한 평안의 상태를 유지한 상태로 예수님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고후 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신'처럼 살지 못합니다. 배우자가 나를 가리켜 "원수"라 말하고 이웃이 나를 가리켜 "사기꾼"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사신'이 아닌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대사가 어떤 나라에 파송되어 좋지 못한 일을 행하여 대사로서 한 나라를 먹칠하게 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진정한 대한민국의 대사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었으니 매사에 평안을 유지하면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의 복음은 더 이상 평안의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기치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기치는 복음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음란짓을 행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음란한 것이 될 것입니다.

 

4. 믿음의 방패

 

'믿음'은 방패와 같은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믿음이 있는 자는 그 어떠한 문제를 겪지 않습니다. 문제가 없어서 문제를 겪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집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특별히 사랑하여 그에게 복을 허락하시어 평탄한 길을 허락할지 모르지만 본질적으로 우리는 똑같은 마귀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오히려 믿는 자일수록 마귀의 더욱 심한 공격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마치 문제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모습을 가리켜 "..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6:16)라 표현하였습니다. '화전'은 불화살을 의미합니다. 그냥 화살도 맞으면 죽는데 불화살은 맨화살보다 훨씬 강력한 공격인 것입니다. 불화살은 독화살과 같아서 스치기만 해도 심한 상처를 당하게 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다면 모든 불화살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물이 있어 불화살을 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특수무기가 있어서 불화살을 꺾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방패역할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 주실 때는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가능한 것입니다.

  

5. 구원의 투구

 

바울은 "구원의 투구를 쓰라"( 6:17)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내용이 성경에 두 군데 나오는데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는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라고 나와 있습니다.

 

구원의 투구는 소망이 필요합니다. 믿는 사람은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 할지라도 천국의 소망이 있을 때 모든 어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립니다. 죽음도 천국의 소망을 막을 수 없고 그 어떠한 환란도 소망을 꺾을 수 없습니다.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강력한 사람입니다. 마귀를 겁내지 않습니다. 승리하신 주님을 믿기 때문에 주님의 능력을 고스란히 전이받은 자입니다. 하지만 구원의 소망이 없는 자는 귀신에게 붙잡혀 살아갑니다. 투구가 없으니 각양 더러운 귀신들이 머리를 통해 들어올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심령이 병들고 모든 소망이 끊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의 투구를 쓰게 될 때 그 어떠한 귀신도 들어오지 못할 것입니다.

 

6. 말씀의 검(성령의 검)


말씀은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것은 마치 수류탄과 같습니다. 안전핀을 뽑아 던지면 금방 터집니다. 수류탄이 터지면 죽는 것은 귀신들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강력한 무기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될 때 그 어떠한 귀신들도 우리에게 근접치 못합니다.

 

"[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습니다. 살아 숨을 쉴 뿐만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며 강력하게 역사합니다. 말씀 자체가 곧 생명입니다. 그래서 마치 칼처럼 예리하여 사람의 영혼육을 찔러 쪼갭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은 뻗어 나가는 레이저총과 같습니다. 말씀의 총에 맞은 귀신은 구멍이 뻥 뚤린채 달아납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것마다 이뤄집니다.

 

귀신들을 향해 강력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십시오. "내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들은 떠나갈지어다!" 이렇게 선포할 때 실제로 귀신은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 내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 누구의 몫도 아닙니다. 누군가 당신의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줄 것이라고 기대치 마십시오. 당신에게 붙은 귀신은 당신이 쫓아내야 합니다.

 

예수님도 가만히 계실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며 쫓아내지 않을 때 예수님도 그 어떠한 도움을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이 선포함으로 쫓아낼 때 비로소 예수님도 당신을 도우실 것입니다.

 

나는 환상 중에 나를 공격하는 악한 무리를 만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것은 떠나갈지어다"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면 내 말은 곧 권세있는 말이 되어 악한 귀신을 쫓아냅니다. 악한 귀신은 기도 중에도 나를 방해합니다. 수없이 많은 산만한 생각들로 나를 공격하기도 하고 나의 약점을 들춰내면서 기도하지 못하게 공격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 쫓을 때 그들은 더 이상 아무런 반항도 못한채 떠나갔습니다.

 

당신은 준비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입으십시오. 잠잘 때에도 벗지 마십시오. 더럽고 추악한 죄로 전신갑주를 잃지 마십시오. 전신갑주가 날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광택나게 하십시오. 집을 갉아먹는 개미처럼 당신의 전신갑주를 닳게 하지 마십시오. 명심하십시오. 늘 귀신들은 당신의 전신갑주를 벗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글 / 이다윗목사

출처 : 샘물이의 삶
글쓴이 : 샘물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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