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쉽게 이해하는 요한계시록(11) - 사데교회(계 3:1-6)

하나님아들 2014. 5. 3. 13:43

쉽게 이해하는 요한계시록(11) - 사데교회(계 3:1-6)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써라! 하나님의 일곱 영들과 일곱 별들을 가지신 그 분이 이것들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들을 아노니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너는 죽은 자로다.

[2] 깨어라! 그리고 그 남아있는 죽으려 하는 것들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들의 채워진(가득 채워진) 것들을 찾지 못하였노라.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고 회개하라! 만일 깨어있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너에게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결코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 몇 이름들이 네게 있어 흰 것들을 입고 나와 함께 걸으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이기 때문이라.

[5] 승리하는 자는 흰 옷들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그 분의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그 분 앞과 그 분의 그 천사들 앞에서 인정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지어다!”(계 3:1-6)


사데 교회가 있던 지역 이름의 뜻을 지금은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삶>인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이름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십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이름은 <삶>인데, 그들의 영적 상태는<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데 지역은 무역에 적합한 지정학적 특징과, 강과 평야, 직물제조, 금세공 등을 통해 부를 누리는 부요한 지역이었습니다.


교회 역시 재정적으로 부족함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교회에 책망만 하십니다.

칭찬이 없습니다.

일곱 교회들 중에서 칭찬이 없고, 책망만 있는 교회는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두 교회의 공통점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책망은 없고, 칭찬만 있는 두 교회가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그 두 교회의 공통점은 풍요롭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궁핍한 교회였고, 빌라델비아 교회는 능력이 적은 교회였습니다.


사데교회!

이름의 뜻이 <살았다>입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죽었다>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죽은 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을 통해 교회에 하신 말씀을 근거로 우리는 죽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행위의 부족함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행위의 가득 채워진 것들(온전한 것들)을 찾지 못하였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말씀을 받았고, 들었습니다.(계 3:3)

그러나 행함에는 인색했던 것입니다.

들어서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그리고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이와 같이 행함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분리 되어서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몸에서 영혼이 분리 되면, 죽은 몸이 됩니다.

그것처럼 지식과 행함이 분리 되면 죽은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믿음의 목적은 영혼 구원입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9)

그러나 그 죽은 믿음으로는 영혼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 2:14)


<<명령들!>>

주님은 사데 교회에 다섯 가지를 명령하셨습니다.

깨어라...

사데 교회를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 원하신 것은 깨어 있으라는 것 이었습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를 통해서 마지막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깨어있지 못함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굳게 하라...

사데 교회는 거의 죽어가고,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 조금 남은 것 마저 죽기 전에 굳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생각하라...

받은 것들과 들은 것들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는 것임을 뒤에 이어지는 지키라는 명령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지키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말씀을 읽고, 듣는 목적은 지키기 위함이 되어야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경우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데교회는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책망 받았습니다.


회개하라...

진정한 회개는 자신의 죄를 정직하게 자백하고, 인정하고, 애통해 하며, 결국에는 행동을 돌이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행동의 변화 없는 죄의 자백과 죄에 대한 인정만으로는 회개라 말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회개 기도만 해도 모든 것이 종료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깨어있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는 마지막 때의 성도들에게 깨어있으라고 여러 번 명령하셨습니다.

(마 24:42, 마 25:13, 막 13:33, 막 13:35, 막 13:37, 눅 12:37, 눅 21:36, )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어있지 못하고, 또 믿음이 죽어 있다면,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깨어있는 자들에게는 그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4)


옷을 더럽히지 않은 소수의 성도들은?

말씀을 따라 옳게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 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 19:8)

그들이 바른 믿음(알고 행하는)으로 살아가는 의인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주님께서 그들에게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우지 않을 것과, 흰 옷들을 입게 될 것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그 이름을 인정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결론!>>

사데 교회는 말씀을 들어서 아는 것은 많지만, 행함이 거의 없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주님 오시기 전에 그 믿음이 완전히 죽게 될 지도 모릅니다.

또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에게 주님은 깨어있으라고 여러 번 명령하셨지만, 그들은 깨어있지 않았습니다.

그 대로 간다면, 그들은 도적같이 임하시는 주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주님 맞이할 준비도 없이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의 여러 교회와 성도들을 봅니다.

목사들은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깊은 설교를 하지만, 성도들의 삶은 변화가 없고,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기 위하여 더 깊이 연구하여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 하지만, 갈급함은 채워지지 않고, 더 수준 높은 설교만을 찾게 됩니다.

그 갈급함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 채워 져야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고, 더 친밀한 교제가 형성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기독교 역사상 지금처럼 잘 연구 된 설교를 들을 수 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의 삶에 변화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도에게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들을 은사주의, 또는 신사도라 말하며 정죄합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들도 사단적인 것이라 정죄 합니다.

그러면서도 오직 말씀만을 강조 합니다.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순종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하나 됨을 경험해야 하는데, 의무감으로 참석합니다.

목사의 설교가 예배의 중심에 있고, 그것이 예배의 거의 전부로 생각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사데 교회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성경구절 몇 개가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듣기만 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갑니다.

"나더러 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행치 않은 자는 모르고 행치 않은 자들보다 더 많이 매 맞습니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7-48)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믿음으로 주님오시는 그 날 구원 받기에 합당합니까?


우리가 말씀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릴 때(불순종 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버립니다.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3)

출처 : mongolia
글쓴이 : 마라나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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