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쉽게 이해하는 요한계시록(10) - 두아디라교회(계 2:18-29)

하나님아들 2014. 5. 3. 13:43

쉽게 이해하는 요한계시록(10) - 두아디라교회(계 2:18-29)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써라!”그 분의 눈이 불꽃같고, 그 분의 발이 빛난 구리와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것들을 말씀하셨습니다.

[19] “내가 너의 그 행위들(수고들)과 그 사랑(아가페)과 그 섬김과 그 믿음과 그 인내를 아노니 너의 마지막 행위들(수고들)이 처음 것들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것들이 있노라. 스스로 선지자라 말하는 그 여자 이세벨을 네가 허락함이니, 가르쳐 내 종들을 미혹하여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들을 먹게 하는 도다.

[21] 또 내가 그녀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녀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 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녀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녀와 함께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들의 그 행위들을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녀의 자녀들을 죽이리니, 모든 교회들이 나는 마음들과 마음 중심들을 살피는 자인 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희들 각자의 행위들을 따라서 갚아 줄 것이다.

[24] 그러나 두아디라에 남아있는 사람들, 그 교훈(가르침)을 받지 아니한 다수에게, 소위 사단의 깊은 것들을 알지 못하는 너희들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25] 그러나 너희들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그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그리고 승리하는 자와 끝까지 나의 그 행위들을 지키는 그에게 민족들 위에(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쇠막대기를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28]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그리고 내가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 귀 있는 자는 성령님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계 2:18-29)


두아디라 교회에 소개 된 예수님의 모습은 눈이 불꽃같으신 분이십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성도들의 행위들을 살펴보신다고 해석하면 됩니다.


칭찬!

두아디라교회는 많은 칭찬을 받은 교회입니다.

그들의 행위들과 사랑(아가페)과 섬김과 믿음과 인내를 칭찬 받습니다.

그리고 또 마지막 행위들이 처음 것들보다 많다고 칭찬 받습니다.

에베소교회 다음으로 많은 칭찬을 받은 교회입니다.


책망!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허락한 것을 책망하십니다.

이세벨은 두아디라교회에서 종들(성도들)을 가르쳐서 미혹했습니다.

한글성경에는 <꾀어>라고 번역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마 24장에서는 미혹으로 번역 되었습니다.

마지막 때의 맥락에서 본다면, 미혹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 됩니다.


미혹 당한 결과 행음(우상숭배)하게 되고,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게 됩니다.

종들(성도들)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강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이세벨!

이세벨은 시돈왕 엣바알의 딸이었으며,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의 아내였습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왕상 16:31)


그 여자는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그 자리에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세웠습니다.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일백 인을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께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왕상 18:13)

"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인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왕상 18:19)


또 그 여자는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으로 고민하는 것을 보고, 아합왕이 그 포도원을 빼앗을 수 있도록 가르칩니다.

술수에 매우 능합니다.

"그 아내 이세벨이 저에게 이르되 왕이 이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왕상 21:7)

"이세벨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포도원을 취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왕상 21:15)


아합 왕이 그 여자를 허락함으로 인하여 북 왕국 이스라엘 전체가 우상숭배에 들어갑니다.


이세벨의 영향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여자의 딸을 통해 남왕국 유다에도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아하시야왕의 아내 아달랴가 이세벨의 딸입니다.

"아하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더라"(왕하 8:26)


아달랴는 다윗으로부터 이어지는 다윗의 자손들을 진멸합니다.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그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씨를 진멸하였으나"(왕하 11:1)


그리고는 남왕국 유다를 6년 동안 직접 다스립니다.

이 때 기적적으로 요아스가 살아 남습니다.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하여 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치 않게 한지라"(왕하 11:2)

"요아스가 저와 함께 여호와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왕하 11:3)


아달랴는 여호와의 전의 모든 성물들 조차도 바알에게 바치게 하였습니다.

"이는 그 악한 여인 아달랴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전을 깨뜨리고 또 여호와의 전의 모든 성물을 바알들에게 드렸음이었더라"(대하 24:7)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이세벨의 영향력은 예후를 통해 정리 됩니다.(왕하 9, 10장)

예후는 유다 왕 아하시아의 형제들(이세벨의 외손자들) 42명도 죽입니다.(왕하 10:12-14)

남왕국 유다에서는 제사장 여호야다를 통해 정리 됩니다.(왕하 11장)

구약성경을 통해 살펴보면, 이세벨과 그 자손은 영적으로(특히 우상숭배) 엄청나게 나쁜 영향력을 미친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합 왕의 아내였던 그 악한 여자 이세벨과 두아디라 교회에서 허락한 자칭 선지자를 동일시합니다

둘의 공통점은 우상숭배입니다.


이세벨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심!

21절에서 주님은 자칭 선지자 이세벨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세벨은 돌이키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세벨을 침상에 던지기로 결정 하셨습니다.


침상에 던질 것이요...

이 말은 질병으로 고통을 줄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질병은 일어날 수 없어서 침상에 누워 있게 될 큰 질병을 뜻합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도 마지막까지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회개 촉구!

그 여자와 함께 음행하는 자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에 던지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난에 던지실 권세도 있고, 환난에서 지켜 주실 권세도 있습니다.(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을 큰 환난에 던지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돌이키기를 간절하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큰 환난을 겪게 되고, 첫째 부활이 아닌 둘째 사망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않은 성도들은?

그들에게는 약속을 주십니다.

그들이 두아디라 교회 내에서 다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다른 짐으로 지울 것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현재 상태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많은 칭찬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대신 있는 것을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명령하십니다.(25절)


그 말을 돌려서 생각 하면, 두아디라 교회도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주님 다시 오실 때 때 이 땅에 존재할 교회입니다.

굳게 잡고 있으면,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26-27절)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인내하기만 해도 왕의 권세를 받습니다.


이 약속은 계 20:4절의 말씀과 연결 됩니다.

또 계 22:5절의 말씀과도 연결 됩니다.

자칭 선지자 이세벨의 가르침, 그것은 짐승의 우상과, 짐승의 표를 말하는 것입니다.


<< 결론! >>

마지막 때에 성도들이 속아서 하게 될 음행(우상숭배)과 우상에게 바쳐졌던 재물을 먹는 것은 실제가 아닌 상징입니다.

교회 안에서 실제 우상숭배 할 성도들은 없습니다.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는 것과, 짐승의 표를 받는 것입니다.


자칭 선지자 역시 실명이 아닌 상징입니다.

두아디라교회에는 속아서 짐승의 표를 받는 성도들이 소수 있었습니다.

속아서 받는 것도 안 됩니다.


거짓 교사(선지자)들은...

교회에서 짐승의 표는 상징이고, 성도들의 구원과 아무 관계없다고 가르칠 것입니다.

또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 행위와 관계없다고 가르칠 것입니다.

또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고 가르칠 것입니다.

그것이 발람의 교훈이고, 또 니골라 당의 교훈이며, 이세벨의 가르침입니다.


행위는 필요 없다?

본문에서 행위라는 단어가 다섯 번 나옵니다.

어떤 행위는 주님이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며, 좋은 약속이 있습니다.(19절, 26절)

어떤 행위는 멸망이 예약되어있습니다.(22절)

우리의 행위대로 갚아 주십니다.(23절)

주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를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십니다.


지금 우리의 행위는 어떠합니까?

우리 주님 곧 오십니다!

출처 : mongolia
글쓴이 : 마라나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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