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이해하는 요한계시록(4) - 계시의 시작(계 1:9-10)
[9] 나 요한역시 당신들의 형제요, 그 환난과 그 왕국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에 동참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님 안에 있을 때에 내 뒤에서 나는 나팔 같은 같은 엄청 큰 목소리를 들으니 (계 1:9-10)
요한은 자신을 편지 수신자들의 형제라고 소개 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촌 동생이었습니다.(이종사촌)
열 두 사도들 중에 한사람이었습니다.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눅 6:13)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행 6:2)
그리고 형 야고보와 더불어 예수님의 특별한 제자 3인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제자였습니다.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 13:23)
형 야고보는 사도들 중에 최초로 순교 당한 뼈대 있는 가문입니다.
세상적으로는 내 새울 것이 없지만, 하나님 안에서 내세울 것이 엄청났지만, 다른 믿음의 성도들과 자신을 구별하지 않고 형제라고만 말 합니다.
형제라는 단어는 상하, 지위의 차이를 전혀 알 수없는 관계를 말 합니다.
엄청난 겸손의 표현입니다.
그 환난과, 그 왕국과, 예수그리스도의 인내에 동참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장차 예수님의 영광에 함께 동참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 다시 오신 이후에 일어 날 일이고, 이 땅에서는 환난과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동참하다>라는 단어의 뜻은 공동참가자, 동료, 동반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들만 영광에도 동참하게 됩니다.
고난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증거 때문에 밧모 섬으로 유배 당했습니다.
당시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순교 당했습니다.
밧모섬은 대표적인 유배지였습니다.
요한이 순교 당하지 않고 유배의 처벌을 받은 것은 아래의 세 가지 이유 중에 한가지 일 것입니다.
첫째는 너무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가벼운 처벌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 때 사도 요한의 나이는 적어도 70을 훨씬 넘었을 것입니다.
둘째는 지방 총독의 특별한 대우였을 수도 있습니다.
셋째는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남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살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가 순교 당하지 않고, 살아남았기 때문에 신약 성경이 완성 됩니다.
아마도 요한복음은 요한 계시록을 기록한 이후에 기록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종말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마 24-25장, 막 13장, 눅 21장에 종말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저는 세 번째 이유를 따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관자 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증거 때문에(계 6:9)
핍박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도들과 요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들 외에도 이름 없는, 셀 수 없는 많은 성도들이 초대교회 때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성도들의 환난 때에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계 6:9절에도 나옵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계 6:9)
그들이 배도하지 않고, 순교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있었기 때문이고 또 그것에 대한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식으로(단지 아는 것으로) 끝 난다면...
그 믿음을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 말하고, 그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 말하고, 그 믿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야고보서 2장)
예수님의 가르침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증거'는 하나님(말씀)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증거<헬라어: 말튀리아>는 확증, 증거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큰 환난이 이르기 전에 말씀<로고스>과 말씀에 대한 확증(증거)<말튀리아> 이 두 가지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주의 날에...
안식일(샵바트,삽바톤)을 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안식은 안식일이라 정확하게 기록했습니다.
인류 역사의 마지막 날, 즉 주님 재림의 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큐리오스 헤메라>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행 2:20)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 5: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살후 2:2)
이 날이 안식 후 첫째 날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안식을과 구별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안식 후 첫날에 모이기도 했습니다.
인류역사의 마지막 날과 주일을 구별하기 위하여 다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인류 역사의 마지막 날인 주의 날은<큐리오스 헤메라>를 사용했고, 주일은<퀴리아코스 헤메라>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내가 성령님 안에 있을 때에...
한글 성경에는 '성령에 감동하여'라고 번역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어 성경은 ‘성령님 안에 되었다’입니다.
약간 의역을 하면 ‘성령님 안에 있을 때’라고 번역 됩니다.
(흠정역도 그렇게 번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 하신 이후 오순절 날 성령님께서 각 사람에게 들어오셔서 채우셨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충만하다 <헬라어: 플레도>는 ‘채우다’,‘가득 채우다’라는 뜻입니다.
자기 안에 성령님이 들어오신 것입니다.
성령님 입장에서 능동적이고, 사람의 입장에서는 수동적입니다.
사람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닌 성령님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 진 것이었습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이 약속이 성령님을 통해 이루어 졌습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이 우리 안에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 하는 것도,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도,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것도...
성령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절대 불가능합니다.
요한이 계시를 경험하기 전에 성령님께서는 요한을 성령님 안으로 끌어 들이셨습니다.
나팔 같은 엄청 큰 목소리를 들으니...
한글 성경에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으로 번역 되었습니다.
헬라어에서 아주 큰 크기를 말하는 <메가스>가 사용 되었습니다.
나팔 소리가 아닌 나팔 소리같이 엄청나게 큰 목소리(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그 목리는 주님으로부터 난 것이었습니다.
이 기록은 출애굽기 19장 16-19절의 사건과 상당부분 일치 합니다.
이 때 모세는 율법을 받습니다.
요한은 계시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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