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6~8절 / 어린양의 결혼식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19:6-8)
세번째 할렐루야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즐거운 날이요,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날이다. 또한 우리 주 그리스도와 어린양의 신부들인 성도들은 더없이 기쁘고 즐거운 날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였을 때, 바깥 어두운 데에(βήμα) 있는 자들과 음부(ᾄδηs)에 있는 자들을 제외하고 다(πάντεs) 어린양의 혼인식에 초청받은 하객들이다. 이 하객들이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자”한다. 이날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기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날이므로 모든 존재들이 기뻐하고 즐거움으로 참여하는 날이다.
요한에게 들리는 소리는 허다한 무리들이 즐겁고 기쁨으로 찬송을 부르는 내용이 이 단원이다. 그리고 이 단원의 뜻은 깊고 오묘한 진리가 담겨진 내용이다. 하늘나라에서 들려오는 찬송은 14장의 시온 산에서 어린양의 신부들이 부르던 찬송을 압도하는 찬송이다. 1,2,3층천의 모든 존재들, 천사들까지 해당되지 않음이 없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들은 하나도 빠짐이 없기 때문에 ‘다’라는 무리가 즐거이 부르는 찬송이므로, 찬송에 담겨진 의미로 상고해야 된다.
기쁨과 즐거움의 의미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5)
보좌의 소리는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한다. 먼저 정리가 되어야할 주제가 어린양의 혼례식에 참여하는 대상이 누구인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하나님께 찬송하라는 것은 앞에서의 대접재앙을 끝마침에 대한 전능자의 영광을 찬미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 의미에서의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뜻이다. 먼저는 아담 이후로 지구사회에서 어두움의 권세가 인류를 장악하고 있었다(엡2:2,6:12,요1:5). 하지만 전능자가 쏟으신 대접재앙으로 어두움의 세력을 멸하시고, 어린양이 통치권을 장악하게 되었음을 기뻐한다(계11:15). 다음은 어린양의 혼인예식에 대한 기쁨이다. 이 단원에서 믿는 신자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
“임금이 손을 보러들어 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더라.”(마22:11-13)
이 말씀은 어린양의 혼인예식에 초대받을 수 있는 하객의 조건을 말한다. 요구조건에 대하여 마태는 혼인식에 참여할 수 있는 예복이라는 흰 세마포를 입었느냐 한다. 누구든지 벌거벗은 자는 바깥 어두운데라는 연단장으로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고통을 당하지 아니하고 어린양의 혼례식에 하객으로 참여하려면 흰 세마포(λίνον) 옷을 입어야 된다고 요구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도와 인간의 생에 대한 목적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실 때 무엇을 얼마나 많이 하였나를 보시지 아니하시고 어떤 마음으로 하였나를 보신다.
1.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심이니라.”(엡2:10)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을 설명하였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목적부터 설명되어야 어린양의 혼인예식이 주는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의 의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ἀϒαθόs-아가토스) 일을 하라”(엡2:10)는 것이다. 안( ἐν-엔)이라는 뜻은 ‘함께’ ‘더불어’로 해석됨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예수의 일을 하는 것이 예수 안이라는 말이다.
사람의 생은 목적을 삶(Life)이냐, 소유(Possess)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생의 목적을 ㉠삶으로 살 때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면서 그것을 얻고 사랑을 공유하면서 자기를 성화시켜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소유로 살 때에는; 양식(良識)이라는 좋은 식견을 활용하여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려하는 것이다. 그것을 쟁취하려고 다른 사람을 분석(약점 등을 조사)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 사람의 약점을 찾아내서 그를 정복하려는 일이다. 따라서 빼앗고 죽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는 있으나, 저마다 나아가는 길은 다르다. 따라서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왔느냐?’는 물음에 우리는 좋든 싫든 반드시 대답해야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생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가? 생각할 문제다.
2.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엡3:9-11)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이 뜻은 하나님은 ‘우리’라는 교회의 무리를 통하여 당신께서 계획해 놓으신 하늘나라의 비밀을 공개하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선한 일이 무엇인가를 말씀하는데, 그 내용은 교회의 일원인 우리가 하나님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비밀(μυστηρίον-무스테리온)한 경륜(οἰκονομία-오니코노미아)을 전하는 일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요구되는 의무와 책임을 말한다. 감추인 하나님의 비밀은 인류를 구원시키시려는 것이고, 경륜은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 방법은 하나님과의 교제(Fellowship)를 말하며, 이것이 예배인 것이다. 그리고 교제를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따르는(Follow-up)행위를 말하는데 이 행위가 영혼구원을 위한 것이다.
3. 기쁜 날에 하객들로 초청받은 무리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6a)
먼저 어린양의 혼인식에 초대(Invitation)를 받은 자들의 신분과 대상이 설명되었다. 청함에는 두 가지로 분리시킨다. 어린양의 신부로서의 택함(ἐκλεκτόs/Chosen)받은 자들과, 하객으로 청함(καλέω/Calling)을 받은 자들로 구분된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허다한 무리는 청함을 받은 하객들이다. 이들이 초청받게 된 근원은 원죄에서 사함 받고 믿음으로서 죄의 권세를 이기고 ‘구원을 얻었다.’ 따라서 육신의 권세를 이기고 ‘구원을 이루었다.’ 이것을 성화라 한다.
그러한 성화 과정을 마치고 죄가 다스리는 현재라는 존재를 벗어난 것이 죽음이며, 이들이 하나님의 초청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 허다한 무리들은 ‘예복을 입은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세마포를 입지 않고 벌거벗은 자들은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데 내어 던짐을 당하고 어린양의 혼인식에 초청받지 못하고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는 신분은 제외시키는 것이다.
4. 기쁜 날의 주인공과 하객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7)
혼인식의 주인공은 어린양과 그의 신부들이다. 이날은 어린양의 혼인날이라고 설명되었다. 혼례식의 주인공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어린양으로서 신부들을 맞이하는 혼인날이다(사61: 10-11). 어린양의 신부들은 시온 산에 어린양과 함께 섰던 144,000명의 구속받은 자들(14:1)의 혼인날이다. 이들은 땅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처음 익은 열매로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다(계14:4,고전15:23,살전4:17). 그러므로 즐겁고 기쁨으로 어린양의 혼인예식에서 초청받고 찬송을 부르는 무리들은 1,2,3,층의 모든 존재들이 어린양과 그의 신부들의 혼인을 축하는 날이다.
세 번째 할렐루야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6)
요한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당신을 사랑하던 신부들과 혼인예식을 베푸는 자리에 하늘나라의 모든 존재들이 즐거움과 기쁨으로 축가 로 부르는 찬송이 7-8절이다. 그들의 찬송은 할렐루야로 시작한다. 여기에 관한 기존의 해석들은,
ⓐ. 어떤 이는 ‘어린양의 혼인예식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저들이 당했던 핍박을 극복하고 승리한 후에 기뻐하는 즐거움의 환성이다’라고 하였고,
ⓑ. 다른 이는 ‘먼저는 통치권에 대한 기쁨이고, 다음은 어린양의 혼인으로 기뻐한다는 두 가지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세분해서 어떤 신자들이 어린양으로부터 영광스러운 그의 신부로 택함을 받았는지를 상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객들이 불러주는 축가에서 그 의미를 찾게 되는데, 축가의 가사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어린양에게 영광을 돌리고, ⓑ약속한 혼인기약이 되었고, ⓒ어린양의 아내가 예비 되었고, ⓓ세마포(βύσσινο?)를 입도록 허락받은 이유, ⓔ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βύσσινο?)를 입어야 되며, ⓕ성도로서의 옳은 행실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분류하게 된다.
1.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영광을 돌리세.”(7a)
그는 하나님(θεὸs)을 말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이신 어린양의 혼례식을 베푸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즐거운 날이요 기뻐해야 할 날이기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자”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축가의 시작은 할렐루야로 시작되었지만, 구체적인 본론은 신랑으로 묘사되는 어린양이 그의 아내를 맞이하는 날을 이루어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δόξαν)’이 있다는 것이다.
2. 어린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고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7b)
어린양(ἀρνίον-알니온)은 예수에 대한 순종의 애칭이다. 혼인(ϒάμοs-가모스)은 혼례를 말한다. 기약(ἡμέρα-헤메라)은 날을 말한다. 혼인날로 정한 날자가 됐다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날의 기약(期約)이다. 이제 그날이 되었으므로 성자 어린양의 혼례식이 진행되는 날이라는 뜻이다. “이르렀다(ἕρχομαι-엘쵸마이)”는 약속된 날의 임박함이 아니라, 도달된 꼴인 시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다”는 말은 ‘어린양의 혼례식이 진행된다.’로 해석되어야 한다.
3. 준비를 끝낸 어린양의 신부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7c)
아내(ϒυνή-구네)는 정혼(약혼)날부터 혼인날까지 일정한 기간 동안에는 아내가 되기 위하여 예비하는 신분으로 지내는 기간이다. 그 기간 동안에는 신부가 되려고 준비하는 기간이 예비기간이다. 그리고 예비기간이 끝나고 혼인날부터는 아내로 불린다. 예비하였으니(ἑτοιμάξω-헤토이마쪼)는 ἡτοίμασεν의 현재완료이므로 아내로서의 혼례식에 들어갈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뜻이다.
4. 신부가 입은 결혼 드레스
“그(신부)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8a)
어린양의 신부로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βύσσινοs)를 입도록 허락받음은 내재적인 성품의 거룩함과, 외재적인 선한 행위로서 허락받게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행위는 없고 입으로만 믿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무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외재적인 선행은 내적으로 거룩함이 없으면 결코 선행이 나타나지 아니한다. 따라서 선행이 없으면 결코 내적으로 거룩함이 없다는 양면성이므로 어느 한 부분만으로서 온전한 믿음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 안’은 ‘더불어’ ‘함께’라는 의미다. 그리고 바울은 거룩함과 의로운 사람은 살든 죽든 예수와 함께 사는 자라 하였다.
“내 안(ἑν)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15:4a)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τώ κυρίῳ ξώμεν),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τώ κυρίῳ ἀποθνήσκομεν)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8)
τώ κυρίῳ ξώμεν는 ‘주와 함께 주의 일을 하며 산다.’로 해석되어야 한다. 또한 τώ κυρίῳ ἀποθνήσκομεν는 ‘죽어도 주와 함께 주의 일을 해야 한다’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나 죽으나’는 생의 수단이며, 그 수단은 행위를 말한다. 때로는 ‘믿기만 하면 된다.’ 하겠지만, 심판주 그리스도는 우리가 지음을 받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생의 수단에 따르는 행한 대로 상주고 행한 대로 벌하시기 때문에 “너의 행위대로 정죄 받고, 행한 대로 심판받고, 행위대로 영벌을 받으리라” 하셨음을 오해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네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물으시기 때문이다.
5.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은 신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허락 하셨은즉,”(8:b)
형용사 깨끗함(καθαρόν-카다론)은 빛으로부터 주어진다. 근원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오며, 성도의 내재적인 성품과 외재적인 행위에 반영되어진다. 내재적인 성품의 성결함은 거룩함으로 나타나고, 외재적인 행위는 선행의 의로 나타난다. 이러한 성결한 성품과 선한 행위가 온전한 사람의 일반적인 영적 옷이 리논(λίνον)이다. 그러나 어린양의 신부들의 세마포는 브씨논( βύσσινον)이므로 거룩한 존재들에게만 입혀지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서 주어지는 특별 은총이다. 하늘나라의 모든 존재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빛으로 옷(λίνον)을 입고 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변화(다볼)산에서 하늘나라에서 온 모세와 엘리야를 만났을 때, 희게 변한 모습을 보이셨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던 아침에도 빛나고 깨끗한 옷을 입은 두 천사도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입혀진 옷이었다. 또한 승천하던 때에도 천사의 옷도 희고 깨끗하였다. 고넬료 집에 왔던 천사도 희고 깨끗한 옷을 입었다. 이러한 빛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발사되는 빛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하객들은 일반 세마포(λίνον)를 입게 되고, 신부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βύσσινον)를 입는 것이 다르다.
6. 행실이 옳아야 신부가 된다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8c)
어린양의 아내들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도록 허락받은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것이 내재적인 성품과 외재적인 행위에서 행실(ἁϒίων-아리온)이 옳았기(δικαιώματα-디카이오마타) 때문이다. ‘아리온’은 ‘아로게(ἀϒωϒή)’의 완료형이므로 어린양의 아내로 인정받고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도록 허락된 것은 생의 목적을 ‘삶’에 두었기 때문이다. 살아도 예수님과 더불어 예수님의 일을 하며 살았다는 뜻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롬14:8) 하였다. 또 야고보는, “너희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2:22) 하면서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약2:24), 그러므로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도 성도들의 옳은 행실은 행위로서 나타내야 됨에도 불구하고 믿기만 하면 된다는 무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요한은 어린양의 아내로 인정받을 성도들의 옳은 행실은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저 안에 거한다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2:3-6)하였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이유는 진리로 살지 아니하고 비 진리로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자라면 자기도 예수님께서 행하신대로 행하라는 경고시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눅6:46) 하셨음을 기억해야 된다.
요한은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14:4-5) 이런 신자들은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라 한다. 또한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은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15:23)이러한 신자들이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어”(고전15:51)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진 자들”(살전4:1-17)이 어린양의 아내 된 자들이다.
하나님의 참된 말씀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9-10)
사람들은 어린양의 결혼식에 관해서 여러 다른 견해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천사는 그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고 하였으니 다른 이론을 제기할 수 없다. 그렇지만 결혼이란 주제에는 견해가 없을지라도 각론에서는 달리 해석되었듯이 여기서도 같은 경우가 된다.
①.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하객으로 청함을 받은 자들의 신분.
②.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
③. 천사에게 하는 경배문제.
④. 예수의 증거.
1.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누구인가?
어린양의 잔치에 청함(καλέω-칼레오)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두 가지 설로 있는데,
ⓐ. 어떤 이는 ‘하늘나라에 올라간 성도들의 전체’라 하였고,
ⓑ. 다른 이는 ‘어린양의 신부들 만’이라는 설로 나누인다.
전자는 하늘나라로 올라간 모든 성도들이 다 어린양의 신부가 되기 때문에 전체 성도들이라는 해석은 옳지 않다. 후자는 그리스도의 강림 때에 부활과 휴거에서 탈락된 자들은 신부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이 청함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견해다.
먼저 잔치(δείπνον-데이프논)가 무엇이냐 부터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잔치는 경사 날에 음식을 차려놓고 손님을 청하여 즐긴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잔치(δείπνον)에 손님을 부름이 청함(καλέω)이라는 뜻이다. 한문에서 ‘청할 청(請)’자는 ‘부른다.’ ‘초대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헬라어 ‘칼레오’는 손님으로 부른다(καλέω)는 뜻이다. 하늘나라에 올라간 전체의 성도라기보다는 혼례당사자인 신부를 제외한 전체로 해석되어야 옳을 것이다. 신부들은 어린양과 함께 부르는 자요, 하객들은 무리라는 부름을 받은 자들이다.
이것이 마태복음 22장 말씀의 이해를 돕는다. 왕이 아들의 혼인식에 오라고 많은 사람들을 청했다. 그들은 청함을 받고도 오지 않으므로 하인들을 보내어 다른 사람들을 오도록 하였다. 이처럼 천사가 말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은 손님으로 온 무리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혼인식을 축하하는 무리들은 택함받은 신부가 아니라, 청함 받은 하객들이다. 그러면 어째서 이들에게 ‘복이 있다’ 하였을까? 세 그룹으로 나누어서,
①. 먼저는 그리스도의 공중강림 이전에 예수 믿는 신자들중에서 영적 옷을 깨끗하게 관리했던 부류인데, 이들은 1,2,3,층천에 거하는 자들이다.
②. 다음은 그리스도의 공중강림 이후에 어린양의 신부가 될 수 없었던 부류로서 역시1,2,3,층천에 거하는 자들이다.
③. 마지막은 대환난기 동안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하고 짐승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죽임을 당한 부류인데, 이들이 7장에서 인간의 능력으로 능히 셀 수 없는 무리들이 1층천에만 거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음부나 연단장에 가지 아니하고 각자의 거룩함과 의로움에 따라 천국에 거하기 때문에 유황으로 타는 불 못에 가지 아니하므로 복이 있다는 뜻이다.
2.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란 의미
“이것은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라 하기로.”(9c)
이는 앞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혼인예식이나 축가를 부르는 무리들이나 그들에게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초청된다는 말씀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형용사 참되신(ἀληθινόs-알레티노스)은 겉과 속이 맞아 거짓이 없고 진실하다는 뜻이다.
3. 천사에게 하는 경배문제
“내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10a)
요한이 천사에게 경배하려 할 때 천사가 그리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는 말은 하나님이외에 그 누구에게도 경배해서는 안 됨을 강조하는 말이다. 불신자들은 말할 필요가 없고,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제사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시다. 그리고 특별히 가톨릭에서 기도할 때 성모 마리아에게 간구하는데, 이것도 잘못이라는 경고시다. ‘오직’은 강조를 나타내므로 하나님 외에 그 누구에게도 ‘경배(προσκυνέω-프로스쿠네우)’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4. 예수의 증거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형제들과 같이.”(10b)
천사는 요한에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증인인 것처럼 자신도 증인(μαρτυριαν-말투리안)일 뿐이라 한다. 그리고 증인은 보고 들은 그대로 전달되는 대언자일뿐이다. 그러므로 천사는 앞에서의 모든 내용들이 성자이신 어린양을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요한을 통하여 온 세계에 산재된 인류에게 전달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또한 천사는 자신을 예수님의 말씀을 대신 전달하는 심부름을 맡은 영적존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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