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제19장 11~13절 / 백마를 타고

하나님아들 2014. 4. 18. 17:14

제19장 11~13절 / 백마를 타고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를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19:11-13)


요한에게 다시 보이는 것은 심판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상 재림을 위하여 어두움의 세력과 마지막 결전을 벌리는 내용이다. 그가 흰 말을 타고 천군들을 거느리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모습은 어두움의 세력들에게 그가 누구인가를 보이시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하늘이 열리면서 원수들을 멸하기 위해서 전쟁이 시작되는 내용이다. 이일은 어두움의 세력이 감금당하고 지상 재림을 시점으로 세계는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세상이 된다.


참으로 오랜 기다림이 이루어지는 장면이다. 영계 면으로 볼 때는 수십 억년동안 어두움의 세력이 우주공간까지 장악했던 것을 허물어뜨리는 전쟁이 되기 때문이다. 인류 면으로 볼 때는 아담이후로 어두움의 세력에게 붙잡혀서 눈물과 고통과 죽음이란 것을 깨뜨리는 전쟁이 되기 때문이다. 이 단원에서 11-13절까지는 심판주에 관한 내용과, 14-16절까지는 지상 재림을 위하여 오시는 전쟁에 관한 내용으로 분리되어 있으므로 대지를 여섯으로 나누어서 상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본다.


①. 백마를 탄 심판주(11)

②. 심판주의 모습(12)

③.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13)

④. 흰말타고 오는 하늘의 군대(14)

⑤. 만국을 심판하시는 권세(15)

⑥.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16)


백마를 탄 심판주


“보라, 백마와 그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11)


하늘이 열리고 백마를 타고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이견이 없다. 그렇지만 각론에서 다른 해석들은,

ⓐ. 어떤 이는 ‘하늘의 군세의 대장으로 오시며, 흰말은 승리의 장수의 말이며, 충신과 진실에 관해서는 그의 이름이 충신과 진실이시기 때문에 그는 공의로 심판하실 수 있다’고 해석하였고,

ⓑ. 다른 이는 ‘백마는 승리와 성결을 상징하며, 심판주로 오시는 그리스도는 충성되고 진실하신 이름이 있으므로 공의로 심판하신다.’고 해석하고,

ⓒ. 또 다른 이는 ‘하나님께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였고, 그 입에서 나온 말씀이 참이었으므로 공의로 심판하여 싸우더라.’는 해석들이 있다.


백마와 탄자; 어떤 이는 그리스도께서 타고 오시는 흰말은 승리와 성결의 ‘상징’이라 하였는데,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상징은 무엇이며, 그리스도께서 직접 오시지 않는다는 말인가? 백마는 하얀(λευκὸ?-르코스) 말(ἵππο?-힢포스)이다. 타고 오시는 말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오심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오신다. 그분은 인류를 구원시키시기 위해 말씀이 육신으로 초림 하셨던 분이시다(요1:10-). 천국복음을 남겨놓고 떠나시기 이전에 어두움의 세력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스스로 부활하신 분이시다. 다시 오마고 약속하신 그 약속대로 오시는데(요14:3), 천군과 함께 흰말을 타고 원수들을 멸하려 오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충신과 진실 된 이름; 충신은 충성하는 신분을 말한다. 예수님만큼 충성스러운 분이 없다. 지상의 사람들이 충성스럽다 하더라도 예수만큼 충성하신 분은 없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신 분은 그리스도시다. 십자가를 짊어지신 것도 하나님의 뜻에 충성함이다. 예수님께서 인간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은 것도 하나님의 뜻에 충성함이다. 말씀을 전할 때도 하나님의 뜻대로 충성스럽게 증거하였다. 그러므로 심판주로 오시는 그리스도에게 예수라는 이름 외에도 충신( πιστὸ?-피스토스)과 진실(ἀληθινό?-알레디노스)라는 이름을 보았다 한다. 둘 다 형용사로 되었으며 충신은 받드는 신뢰를 말한다. 그리고 진실은 말과 행위에서 거짓이 조금도 없음을 말한다.


공의로운 심판을 위한 싸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왕국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시려면 반드시 악을 멸해야 되는 심판을 싸움이라 했다. 악을 멸하려면 하나님의 정의라는 싸움으로 악을 심판하신다. 공의(δικαιοσύνή-디카이오수네)는 정의를 말한다. 그리고 동사 심판(κρίνει-크리네이)은 공정함으로 누구도 이견을 못하는 심판이 공의롭다는 말이다.


이 심판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는 신앙고백에 근거한다. 영으로 산자들은 여러 형태로 이미 하늘나라로 갔고, 육으로 산자들도 대 환난을 통하여 심판을 받고 하늘나라로 갔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심판은 악한 영들과 그것들을 추종하며, 영으로 죽은 자들에게 해당되는 심판이라는 뜻이다.


심판주의 모습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12)


심판주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는 모습은 두렵고 떨리는 모습이다. 요한이 본대로 첫 번째는 눈에 있고, 다음은 머리가 되겠고, 마지막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이름이다. 불꽃같은 눈에 대하여는 1장14절과 2장18절의 내용이다. 불꽃같은 눈(ὀφθαλμοὶ-옾탈모이)은 모든 존재들의 심령을 살피심이다. 따라서 공의로운 심판을 위해서는 반드시 옳음과 옳치 않음을 보시는 눈이시다. 불꽃(φλὸξ-프로스)은 불처럼 타오른다는 뜻이다. 심판주의 눈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빛이 되고, 불신자들이나 악한 자들에게는 죄에 대한 심판의 불꽃같은 눈이다.


머리에 많은 면류관; 머리에 면류관이 많다는 뜻은 무엇을 의미는 것 일까? 여기에 개한 기존의 해석들은,

ⓐ. 어떤 이는 ‘머리에 면류관이 많다는 뜻은 모든 왕들을 지배하시며, 모든 성도들을 지배하시는 절대적인 권세를 표하신다.’ 하였고,

ⓑ. 다른 이는 ‘세상의 모든 왕들을 지배하시는 절대적인 권세라’하였다.


면류관으로 표기된 디아데마(διαδήμα)는 스스로 쓰는 면류관이고, 여호와께서 주시는 면류관 στέφανόs가 아니라 διαδήμα라 한 것은 이미 6장 2절에서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받은 것을 스스로 쓰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쓴 면류관은 στέφανόs 라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다는 뜻은 구원시킬 권세, 멸망시킬 권세, 축복 줄 권세, 저주할 권세, 심판할 권세, 사죄할 권세, 등 모든 권세가 심판주에게 많다는 뜻이지, 어떤 이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왕들을 지배하는 그런 권세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더라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13)


피 뿌린 옷; 과 말씀(λόϒο?)이라는 이름은 참으로 귀한 의미가 담겨진 내용이다. 피 묻은 옷에 대하여 원수들을 진멸한 피를 보이시는 표시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의 피냐 하는 두 가지 해석이 있으나, 원수를 멸하는 전쟁에서의 피라고 이사야는 이렇게 말한다.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 틀을 밟는 자 같으뇨, 만민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 구속할 해가 왔으나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히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내가 노함을 인하여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을 인하여 그들을 취케 하고 그들로 선혈로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사63:2-6)


이사야는 하나님의 날에 심판주가 포도즙 틀을 밟을 때에 원수들의 선혈이 뿌려졌다 하였고, 요한은 심판하러 오시는 심판주의 옷에 피가 뿌려졌다(βεβΰμμένον αἵματι-베븜메논 하이마티) 한다. 이 피는 14장에서 ‘땅의 포도를 거두어서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1600스다디온에 퍼졌다’ 했다. 그러므로 심판주의 옷에 뿌려진 피는 십자가사건 때 묻은 피가 아니라, 지상재림 때 악을 멸할 때에 뿌려진 피가 된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름; 요한이 본 심판주에게 예수라는 이름 외에 어느 누구도 알 수는 없고 다만 그리스도이신 심판주만이 알 수 있는 ‘이름(ὄνομα-오노마)’를 보았다. 어째서 어린양이신 심판주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까? “그 이름 쓴 것이 있으니 자기 밖에 알 수 없다”는 뜻은 심판이라는 단어 속에 숨겨진 뜻이 있다.


그리스도에게 여러 가지 권세가 주어진 것은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다’ 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저가 귀신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요10:10) 한데서 예수님 외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세 있는 이름을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16절에서 설명 된다.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 요한이 본 심판주는 피가 뿌려진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더라.’는 말은 포도주 틀에 들어있는 포도송이를 사정없이 짓밟아 터뜨리듯이 ‘맹렬한 진노로 심판하는 권세’는 하나님의 말씀(λόϒοs)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심판하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으므로 심판자(κριτήs-크리테스)라는 칭호를 말한다. 이 칭호에는 권세(κρἰμα-크리마)가 포함된다.


그래서 요한은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다’ 하였고, 이것이 심판자에게 주어진 권세다. 요한은 계속해서 이름을 알 수 없었음을 증거한다. 이 단어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의 내용이다(요1:1). 그러므로 심판주로 오시는 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는 말이다.


하늘군대와 흰말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14)


이제부터 마지막 전쟁이 시작된다. 이 전쟁으로 심판이 끝나고 천년동안 세상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다. 그렇지만 이 전쟁에서 짐승과 거짓선지자들은 유황으로 타는 불 못으로 던져짐을 당하고 나머지는 하늘의 군대들이 진멸시키고 전쟁은 끝난다. 이 전쟁이 마지막 전쟁이요 아마겟돈(Αρμαϒεδών)으로 불리는 전쟁이다. 이것이 마지막 심판인데 이 심판이 끝나야 성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 희고 깨끗한 복장으로 군장되었다. 하늘(οὐρανῷ-아로라노우)은 1.2.3.층 하늘나라를 말하며 군대들(στρατεύματα-스트라트마타)은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천군을 말하는데 이들은 일반 천사들과는 다르다. 세상에서도 여러 직종이 있듯이 하늘나라의 천사들도 각기 다른 직종으로 봉사한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오는 군대들은 하늘나라의 군대라는 뜻이다.


하늘 군대의 군복; 희고(λευκὸν-르곤) 깨끗한(καθαρόν-카다론) 세마포(βύσσινον-브씨논)를 입고 있다. 세마포는 하나님 보좌로부터 발사되는 거룩한 빛의 영향으로 입혀진다고 앞에서 설명하였다. 이 뜻은 하나님 자신의 성결로 인하여 보좌는 빛으로 장식된다. 따라서 하늘나라의 모든 존재들은 깨끗하기 때문에 희고 깨끗한 빛으로 옷이 입혀진다. 그러므로 하늘의 군대들도 흰 세마포 옷으로 군복을 입었다는 뜻이다.


하늘 군대가 탄 백마; 흰 말(ἵπποιs-힢포이스)에 대하여, 어떤 이는 앞에서 그리스도께서 타고 오는 ‘흰 말을 승리와 성결의 상징’이라 하였는데, 그러면 천군들이 타고 오는 말은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 앞의 것이 상징이라면 여기서도 상징이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천군들의 상징은 무엇인가? 어째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생각하지 못하며, 보좌에서 발사되는 빛의 영향을 생각하지 못하고 말과 그 색깔을 상징으로 해석하였을까?


하늘의 군대들이 타고 오는 흰말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로 하늘나라의 말들이다. 또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실제로 하늘의 군대들이다. 또한 성경은 분명히 ‘백마를 탔다’ 하였지 ‘상징’이란 말은 없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나,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는 말도 없다. 그러므로 하늘의 군대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스트라트마타 엔 투우 아로라노우(στρατεύματα ἐν τῷ οὐρανῷ)’는 ‘하늘 안에 있는 군대’ ‘하늘과 더불어 있는 군대’들로 번역된다. 따라서 천군들이 타고 오는 흰말들은 상징이아니라 실제로 하늘나라에 있는 하얀 말들이다.


만국을 심판하는 권세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15)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칼; 심판주 그리스도는 만국을 치기위한 무기로는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칼뿐이다. 본문은 이한 검(ῥομφαία ὀξεία-롬파이아 오써이아)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검(ῥομφαία)은 일반 칼(μἀχαιρα-마채이라)과는 다르며 군인들이 쓰는 대검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 칼은 문자적인 칼이 아니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권세가 예리한 검과 같다는 뜻이다.


이 뜻이 앞에서 말한 ‘말씀(λόϒοs)’에 있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드실 때 말씀으로 만드셨다. 이 말씀이 성자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심판주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무엇이든지 그 말씀대로 된다. 따라서 어두움의 세력도 그의 입에서 명령하면 그대로 따라야 된다. 그러나 사탄은 순순히 말씀에 따르지 아니한다. 그것은 유황으로 타는 불 못이 얼마나 무서운 형벌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보좌를 빼앗으려다 실패한 앙심으로 성자를 십자가로 죽였다.


그런데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를 하늘나라로 끌어올려 감으로 인하여 실패하였다. 이제 그리스도가 나타났으므로 끝까지 싸우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는 많은 천군들을 거느리고 직접오실 때 말씀의 칼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다. 이 내용은 앞에서 설명한 이사야서 63장의 말씀에서 더욱 확실하게 인식시킨다.


만국을 치겠고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검은 말씀(λόϒο?)이다.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또 장차 심판하신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리라” 한데서 이해를 돕는다(살후2:8). 그러므로 철장으로 모든 것을 부수듯이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어두움을 멸한다는 뜻이다.


왜 하나님은 진노하시나?;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라 하였다. 왜 하나님은 이렇도록 진노하시는가? 맹렬한 진노는 저들이 저항하기 때문이다.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를 기억하신지라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한 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18:5-6). 이처럼 하나님이 기억하신 불의를 심판하시는 것이다. 이 심판은 이사야서 63장 2-6절에서 옷에 믿은 피로가 입증한다.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16)


포도즙 틀을 짓밟듯이 철장권세로 만국을 치실 때에 피로 물든 옷을 입으신 그리스도의 옷과 다리에 쓰인 이름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님이라 한다. 앞에서는 ‘이름 쓴 것이 있는데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다’하고, 다음에는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고 여기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다.

번째는 스스로 계시는 아버지께서 모든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 이름의 권세는 그리스도 자신만의 이름이다. 그러기에 나사렛 예수의 이름 앞에서는 파도가 잠잠하고 광풍도 순종하는 것이다. 또한 귀신도 그의 이름의 권세에 순종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만물을 창조하신 이름이요, 만물을 섭리하시는 이름이요, 인류를 구원시키고, 세계를 심판하시는 이름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모든 것은 당신의 말씀에 따르며 순종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님이라는 말씀이다.


출처 : churchofpraise
글쓴이 : 장죠셉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