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3~4절 / 어린양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신자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 하리이다 하더라.”(15:3-4)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시온에서 “새 노래”(계14:3)를 부를 수 있는 성도들이 극히 적은 수이듯이, “어린양의 노래”(계15:3)를 부를 수 있는 적격자는 예수를 믿는 모든 신자들이 아닙니다. “새 노래”는 어린양의 신부들만이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듯이, “어린양의 노래”도 대환난에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성도들만이 부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유리와 같은 바닷가에 서서 부르는 이 노래의 의미를 상고하면서 의와 거룩한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지구정부가 강요하는 통치자 숭배사상과 지구주민 신분증(666)을 거부하고 죽임을 당한 신자를 믿음을 이긴 자라 하였다. 믿음에서 이긴 자들이 ‘불이 섞인 유리바다가’에 서서 구원을 시켜주신 어린양에게 감사의 찬양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저들이 부르는 노래를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라 하였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아올 때에, 앞에 펼쳐진 홍해로 다 죽임을 당하는 줄로만 알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세의 노래에 대하여 홍해를 건너고 애굽 군병과 병거를 수장시켰을 때에 불렀던 구원의 노래라고 해석했다(출15장). 모세의 노래는 그가 죽기 전에 지어서 백성들이 부르게 하였었다. 그러므로 홍해사건은 모세가 죽기 40년 전이므로 유리바닷가에서 부르는 노래(계15:3~4)는 모세의 노래가 아니다.(신31:22)
모세의 노래에 대하여 모세 자신이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하라”(신31:19)하면서, 모세가 “당일에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쳤더라.”(신31:22)하였다. 그리고 신명기 32장 1-43절까지 쓰인 노래가 모세의 노래라 하였으므로, 홍해를 건널 때 불렀던 모세의 노래는 아니다.
대환난에 남겨져서 지구정부 통치자 숭배제도와 666표 문화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박해를 받고 소망이 끊어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육신이 죽임을 당할 때 하나님의 자비와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었기에 어린양에게 감사함으로 찬양하는 노래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가르쳐주었던 노래(신31:19~22) 처럼 어린양에게 감사와 찬양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어린양의 노래에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주심을 깨달아야 된다. 어린양의 노래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 몇 가지는 이렇다.
①.첫 번째로 어린양의 노래는, 7장 10절에서 노래하는 의미를 말한다.
②.두 번째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를 주 하나님이시며 전능하신 자라하였다.
③.세 번째로 어린양이 구원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다는 것이다.
④.네 번째로 어린양을 만국의 왕이라 하였는데, 이는 만왕의 왕임을 말한다.
⑤.다섯 번째로 주의 길은 의롭다
⑥.여섯 번째로 적그리스도의 이름이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예수의 이름에 있음을 말한다.
⑦.일곱 번째로 적그리스도정부 통치자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만을 영화롭게 해야 된다
고 말한다.
⑧.여덟 번째로 거룩함은 하나님 아버지와 어린양만이 거룩함을 말한다.
⑨.아홉 번째로 어떤 인간도 의로울 수가 없고 오직 어린양만이 의로우시다.
⑩.마지막으로는 만국이 다 와서 주께 경배해야 되는데, 어두움의 권세에 사로잡힌 자들은 적그리스
도정부 통치자를 경배하다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되었음을 말한다.
어린양의 노래; ‘불러 가로되’는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주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하였다(7:10). 지구상에 하나님의 심판으로 혼돈(Chaos)상태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나타나서 자기가 메시아라고 속이면서 인류를 구하겠다고 장담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속으면서 적그리스도정부 통치자를 구주로 생각하고 그를 따랐지만 결국은 인간의 삶이 육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이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돌이켜 볼 때, 자신들을 구원시키신 분이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이기에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어린양 앞에서 큰 소리로 그리스도 예수에게 감사하며 찬양하는 노래가 어린양 의 노래라는 말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 구절에 대하여 이사야는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이사야가 증거 한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입증시키는 노래이다(사9:6). 짐승의 사상을 받아들인 자들은 어린양이신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전능자가 아니라, 지구정부 통치자를 전능자요 하나님이라고 속였는데, 믿음을 이기고 유리바닷가에 서서 보니 어린양이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깨달았음을 고백하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있다.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다: 욥은 “하나님이 기이하게 음성을 울리시며 우리의 헤아릴 수 없는 큰일을 행하시느니라.”(욥37:5)하였다. 하나님은 못하심이 없으시다. 이러한 전능자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만 억매여 살다가 대환난을 당하였을 때, 살 소망도 없었다. 지구정부주의자들이 시행하는 제도 사회(Systemic community)에서 짐승의 이름으로 계수되는 666표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였다.
바라는 것이 있었다면 지구정부통치자를 숭배하고 찬양하며 그들이 강요하는 지구주민신분증이 되는 666표를 받지 아니하고는 살수 없는 사회였다. 그러나 두 증인으로서의 사역자들의 가르치는 대로 그런 것을 거부하며 죽임을 당하였다. 그런데도 아무런 고통 없이 영혼이 하늘나라, 곧 유리 같은 바닷가에 섰을 때는 신기하고 기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국의 왕이시여: 이는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심을 고백하는 내용이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저희가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계17:14)라고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이심을 설명한다. 또한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함에서도 입증시키시므로 어린양을 만왕의 왕이시라고 찬양 드리는 것이다.
주의 길은 참되다: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하셨다. 하늘나라로 가는 길은 예수를 통하지 아니하고는 갈수 없으므로 예수만이 영생을 주는 길이시다. 모든 인간은 다 거짓되고 속되었지만 예수만은 진실하게 구원을 시키시므로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만이 진실한 의가되므로 참된 길이라는 것이다.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저들이 죽임을 당하기 전에는 지구정부통치자가 두려움의 존재였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거나, 그의 이름의 수를 받지 않을 때는 사정없이 처벌하였다. 그리고 지구주의자들이 시행하는 지구계엄령(Global martial law)에 따르지 아니하면 가차 없이 처벌하는 지구정부통치자의 이름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더 두려운 이름은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이다. 예수의 입에서 말 한마디만 하면 지구정부도 망하고, 예수의 입에서 한 마디만 하여도 적그리스도정부 통치자도 죽이는 이름이 어린양의 이름이라는 말이다. 사탄도 마귀도 귀신들도 다 예수님의 이름을 두려워한다. 믿는 성도들이 어두움의 권세를 쫓아낼 때도 예수 이름으로 승리하는 것은 그것들이 예수 이름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증거한다.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1:16) 또한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19:15)하였으니 예수 이름이 더 두렵다는 고백이다.
영화롭게 하라: 말라기 선지자는 어린양은 하나님이시며 전능하시므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말2:2)고 영화롭게 하라 하였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면 영혼의 축복을 받게 되지만, 마음에 예수를 두지 아니하고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적그리스도정부 통치자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그것에게 경배하였으나,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쏟아지므로 유황으로 타는 불 못이라는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된다. 그러나 어떠한 고통과 박해가 있을지라도 적그리스도정부 통치자를 영화롭게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마음에 두고 예수를 영화롭게 함으로서 구원을 받고 유리바닷가에 서서 어린양에게 감사하며 찬양의 노래를 한다.
주만 거룩하시다: 아무런 흠 없이 깨끗함이 거룩함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거룩하심에 대하여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계시고 하늘보다 높이되신 자라”(히7:26)하였다. 거룩함은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내재적인 결과이다. 마음의 생각에 시기와 미움과 불평과 질투 같은 악함이 있고, 더러움이 있으면 결코 거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악함이나 더러움이 없으시므로 어린양은 거룩하신 분이라고 찬양한다.
주만 의로우시다: 거룩함은 내재적인 결과이나, 의는 외적인 행위로 나타나는 결과이다. 그러므로 의는 사람이 행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옳음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다”는 뜻은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심판은 공평하시므로 의롭다는 뜻이다. ‘의’에는 상 주심과 벌하심으로 나누어진다.
만물은 하나님이 만드셨고, 그분이 주인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해야할 의무가 피조물에게 있다. 그러나 조물주가 심판하는 권세를 제2위격인 그리스도에게 위임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아오는 자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셨으니 어린양이 하시는 일이 의롭게 나타났다고 찬양하는 것이 어린양의 노래다.
만국이 주께 경배한다: 시편기자는 “주여 주의 지으신 모든 열방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리이다”(시86:9)하였다. 마지막 때는 삶을 얻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주께 경배하게 된다. 대환난 때는 사람들이 지구정부 통치자 곧 짐승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였지만, 구원의 은총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경배 드려야 될 대상은 적그리스도정부 통치자가 아니라, 보좌에 앉아계시는 하나님과 어린양이시라고 찬양하는 노래이다.
이 단원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어떠한 상황일지라도 짐승에게 경배하거나 짐승의 이름으로 계수되는 666표를 받지 말아야 된다는 교훈이다. 그런 것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과 어린양이신 예수의 이름을 마음에 간직해야 된다는 교훈이다.
그리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짐승정부가 강요하는 제도에서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주님의 경고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13:8)하셨음을 깨닫고 날마다의 삶에서 예수 이름만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야 된다. 그 길만이 사는 길이요 믿음으로 이기고 벗어날 수 있다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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