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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8장 1~2절 / 환난을 경고하는 나팔소리

하나님아들 2014. 4. 18. 16:48

 

 제8장 1~2절 / 환난을 경고하는 나팔소리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8:1-2)

 

  오늘은 제8장의 말씀이다. 제6장에서 여섯째 인까지 일시에 떼어지고, 제7장에서는 대환난의 총체적인 서술로 기록되었다. 이제 제8장으로 넘어와서 일곱째 인이 떼어지면서 첫째나팔 재앙으로 연결된다. 일곱 천사들이 나팔을 손에 들고 재앙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하늘은 고요한데 지상에 쏟아질 재앙은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는 고요뿐이다. 이러한 고요는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겠지만(살전5:3), 하늘에서는 재앙의 나팔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반시동안쯤이 지상에서 실제로 얼마만큼 긴 기간인지는 우리로서는 알지 못한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해석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①어떤 이는 ‘새로운 환난을 대기하는 중이라’하고, ②다른 이는 ‘안식도 아니고 심판의 중간상태도 아니라 두려운 일들이 터질 것을 내다보고 잠시 기다리는 순간의 정적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해석보다 고요함이 주는 시대적인 배경으로 공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고요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맥상으로 보면 재앙을 위한 고요함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앞뒤를 살펴보면 이 고요함은 희비가 교차되는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이다. 반시 동안쯤의 고요함은 심판주 어린양이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는 공중강림을 위한 고요함이다. 그러므로 고요함은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그리스도의 공중강림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의 무덤이 열려서 부활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는 신실한 신자들이 어린양의 신부로 데려감을 당하고, .휴거에서 탈락되는 자들에게 대환난이 임하고, .지구정부 출현과 666제도 시대로 바꾸어지는 분기점의 고요함이다. 그러므로 이 고요함은 어떤 사람에게는 영광의 기쁨으로 이어지고, 어떤 사람에게는 저주의 고통으로 통곡하는 눈물로 이어지는 고요함이다.

 

  먼저 기쁨으로 영광의 자리로 올라가게 될 사람들에게는 영의 눈이 떼어지면서 자기를 보호하는 천사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자비와 사랑과 은총에서 이루어진다. 아무리 신실하고 의롭게 살아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보좌 앞까지 올라갈 수 있는 수준의 거룩함까지는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족하고 허물된 부분을 완전하게 씻겨주기 위하여 천사의 도움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적어도 여러 날 동안은 천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어느 부분이 깨끗하지 못하며, 또한 까마득히 잊어버린 잘못까지 천사가 알려주고 기억나게 하며, 회개의 진척까지 알려주어서 구름위로 끌리어 올라갈 수 있는 단계에까지 천사들이 돕게 하려는 것이다.

 

  이들은 만사를 떠나서 오직 자신의 성결함으로 거룩하게 되기 위하여 천사와 이야기하면서 부족하고 허물된 부분들을 씻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간이다. 이 사람들은 첫 열매인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그리스도에게 붙어있었던 신실하고 거룩하고 의로운 성도들이다(고전15:23). 이들은 영과 혼과 육신이 흠이 없도록(살전5:23) 날마다 자신을 깨끗하게 관리한 행실이 인정받아서 빛나고 깨끗한 의의 세마포를 입고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성도들이다.’(계19:9)

 

  두 번째는 대환난이란 저주의 고통으로 애통하며 눈물을 흘려야 될 사람들 중에서 휴거에서 탈락됨을 통곡하는 사람과, 애초부터 휴거를 모르거나, 잘못된 사상을 받아드린 탓으로 탈락된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눈물만 흘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환난이라는 고통은 동일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도 동일하기 때문에 저들에게는 심판이란 저주로 통곡하게 된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린양의 신부가 되겠다고 준비를 했는데도 자신의 주위에서는 천사와 대화하며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서 허물들이 씻기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는데도 자기에게는 천사도 보이지 않고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답답함은 무엇이라 할 것이며, 그 안타까움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통곡뿐이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마25:10-12)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리하리라. 아멘”(계1:7)

  

‘문은 닫힌지라’ 휴거의 문이 닫혔다. 대 환난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는데 그 문이 닫혀버렸다는 말이다. 무엇으로 이 답답함을 해결할 수 있는가! 집을 다 내어주거나 재산뿐 아니라 온 세상을 다 준다할지라도 답답함은 해결할 수 없다. 그들은 애통함을 달랠 방법이 없기 때문에 통곡하는 것이다.

 

  그러면 준비하지 않았던 신자들은 어떠할까? 준비하라 할 때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역시 관심이 있을 수 없다. 준비하라고 일깨워주던 사람들을 향하여 비방했고, 이번에는 통곡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비방하며 미쳤다고 할 것이다. 저들은 항상 남을 비방하고 정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저들은 대환난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고 휴거의 축복이 어떤 것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저들은 배우지 못했고 혹이 배웠다할지라도 잘못 배웠기 때문에 스스로 당하면서 체험하기 전에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때 가서 보자’는 생각과 말을 한다.


출처 : churchofpraise
글쓴이 : 장죠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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