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2장 13절 - 사탄의 위가 있는 버가모 교회

하나님아들 2014. 4. 18. 16:13

 

사탄의 위가 있는 버가모 교회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어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데라.(2:13a)


   첫 번째 배경은, 버가모 지역의 종교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옛날에 버가모가 치열한 전쟁을 치르게 된 일이 있었다. 그때 승패가 걸려있는 전쟁에서 버가모는 종교적인 미신(제우스)라는 신상을 세웠다. 제우스 신상을 가져다 놓고 전쟁에서의 승리를 빌었다. 그 후에 버가모는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것은 자신들이 세워놓은 제우스신의 도움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해발 240m 높은 산위에 제우스신전을 만든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버가모 지역에 들어갈 때, 육로나 수로에서도 볼 수 있는 위치에 제우스신전을 세워놓았다. 그리고 신전 안에는 항상 불을 밝혀놓고 볼 수 있도록 했던 제우스신전 자체가 사탄의 자리라는 것이 첫 번째 배경이다.


  두 번째 배경은, 버거모가 우상 하나를 만들었다. 버가모에서 나오는 생수가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데 큰 역할을 했었다. 이 샘물은 만병통치의 물이라면서, 물을 주관하는 신으로 뱀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뱀 신의 이름을 버가모의 상징으로 정했다. 뱀 신이 능력이 있다고 주변 도시들 에게 알렸다. 버가모에 오기만하면 버가모가 섬기는 뱀 신은 어떠한 병도 고쳐준다. 이러한 소문을 듣고 모든 곳에서 사람들이 와서 뱀 신 앞에 절하며 제물을 봉헌하여서 버가모 자체 가지고 있는 두 번째 신이 뱀 신전이 사탄의 위가 있다는 배경이다.


   세 번째 배경은, 로마황제 가이사 숭배가 강력하게 대두되는 신이였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탄의 위라는 말은, 로마행정부가 강요하는 가이사 황제숭배에 대한 말씀이다. 제우스신에 대하여는 백성들이 실증을 느끼며 타락했다. 그리고 뱀 신에게 절하고 재물을 드리고 제사하고 돌아가 보았으나 낫지도 아니하고 계속 죽기만 했다.


   그런데 특별히 이 계시록을 쓰게 될 당시에 제일 강력하게 두드러지게 나타난 로마황제 숭배가 최고에 달했다. 로마행정부가 버가모에서 1년에 한 번씩 연례행사로 벌리는 행사 때는 모든 시민은 로마황제 상 앞에 경배하도록 하였다. 신들 중에서 가이사를 주라 부르도록 강요하는 황제숭배 제도는 누구든지 황제를 주라고 부르는 자에게는 증표를 하나씩 주었다. 이 증표만 가지면 종교에서 자유가 있었고 경기장이나 극장이나 상가 등에 자유롭게 통행하는 특권이 주어졌다.


   신자들은 호구책으로 자유로운 통행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이사 황제상 앞에 가서 주라고 부를 수 없다.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주라고 부를 수 없다는 신앙으로 살아야 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로마황제 숭배의 중심지가 되는 버가모가 사탄의 자리라고 기록된 것은, 예수님 대신에 가이사가 주라고 앉아 있는 황제숭배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귀의 짓을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를 주라하지 말고 황제를 주라하여라. 그렇게 하면 너희가 자유로 운 통행권을 얻게 된다. 그러나 만일 황제를 주라하지 아니하고 거부 한다면 너희를 용납하지 않겠다면서, 군인들이 칼을 겨누면서 위협했다 한다. 1년에 한 번씩 그러한 절차가 있기 때문에 버가모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많은 괴로움이 있었다. 그들은 황제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주라고 불러야 하는가? 아니면 황제에게는 주라 할 수 없고 오직 예수만이 나의 주라고 해야 하는가? 이러한 틈바구니 속에서 믿음이 강한 사람은 나는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사람은 신앙이 흔들려서 황제도 주라 부르고 예수님도 주라고 불러서 편안하게 살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흔들린다는 것이다. 이런 교회에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가를 보여주는 내용인 버가모 교회상이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2:13b)


1. 주의 종을 죽이는 교회


   버가모 교회에는 충성된 증인으로 안디바가 있었다. 안디바는 버가모 교회들의 감독이었다. 안디바 감독은 로마황제를 주라고 시인하면 살려준다는 위협을 뿌리치고, 예수 외에는 주라 할 수 없다는 믿음을 지켰다고 한다. 그는 믿음을 지켜야 되기 때문에 신앙의 정절을 굽히지 아니하다가 물이 없는 가마 속에 넣어져서 새까맣게 볶아서 죽였다 한다. 안디바는 검은 재가 되고 죽기까지 ‘나는 가이사 황제를 향하여 주라 할 수 없고, 오직 예수만이 나에게 주가 될 뿐이다’며 믿음을 지키면서 화형으로 죽었다 한다.

 

   안디바 감독의 순교는 버가모 교회가 지닌 장점이다. 버가모 교회는 승리하였다. 외부로부터 오는 무서운 핍박과 로마의 정치적인 압력까지 이기고 승리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 너희가 나를 향하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사탄의 위가 있는 그 곳에서 안디바가 죽임을 당할 때에도 너희가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한 것을 내가 안다고 좋은 점을 소개하신다.


   신자는 안디바의 믿음을 받으라는 말씀이다. 아무리 어려운 핍박이 와도 예수를 버려서는 안 된다. 또한 사탄은 언제나 교회의 중진급 인사를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마귀들은 교회 성도들 중에서 항상 교회를 불평하는 사람에게 들어가서 그 사람을 이용한다. 뿐만 아니라 높은 자리를 탐하는 교만한 사람에게 들어가서 그를 이용하여 주의 종을 꺾으려하거나 목자를 교회에서 몰아내려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안디바처럼 불에 태울지라도 주님을 붙잡고 믿음을 지켜야 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마귀의 올무에 걸려서 믿음을 저버리고 주님께서 세우신 목자에게 항거하거나 헐뜯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사람은 마귀의 역사를 하는 사람이라고 경고하신다. 로마는 점령하는 곳마다 못된 짓을 많이 했었다. 교회를 헐어버리고 목자를 죽이면서 못된 짓을 한 로마를 하나님께서 쳐서 망하게 하였다.


   두 번째로 버가모 교회 안에 들어온 것이 비 진리다. 외부로부터 무서운 핍박과 박해가 들어왔을 때에도 이겼는데, 내부에서 일어나는 비 진리와 이질적인 교리가 신자들에게 들어왔을 때는 막지 못했다. 내부에서 일어난 비진리란, 곧 발람의 교훈이 들어왔고, 니골라 당의 교훈이 들어왔다. 이러한 두 가지 문제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다. 버가모 교회를 통하여 보여주는 중요함은, ‘너희가 교회 안에서 핍박의 바람은 잘 막아내는 신앙은 좋았다. 그러나 비 진리를 막는 일에는 실패했다’ 이런 것을 주님께서 가르쳐주신다.


   그러므로 버가모 교회가 주는 교훈은 외부에서 오는 핍박과 박해도 이겨야 되지만, 잘못알고 배우는 비 진리도 막아야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서 오는 비난이나 핍박도 이겨야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시험도 이겨야 된다. 이것을 막지 못하면 교회에는 큰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는 비진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목자는 철저하게 지키고, 신자는 진리의 눈을 떠야 된다. 버가모를 통하여 두 가지를 교훈한다.


2. 발람의 교훈을 가르치는 교회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2:14)


   첫 번째는 민수기 22장에서 25장까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발람의 교훈은 두 가지로 나누게 된다. 하나는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서 이스라엘 을 넘어뜨리는 방법이다. 발락왕은 이스라엘 방백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던 일이다. 발락왕은 방문한 방백들을 왕궁에 모아놓고 우상에게 절하게 하고 나아가서는 우상제물을 방백들로 먹도록 했던 일이다.


   두 번째는 방백들을 돌려보내지 아니하고 모압에 있는 창녀들을 불러들이고 이스라엘 방백들에게 한 여자씩 붙여주어서 방백들로 하여금 그날 밤에 음란죄를 짓도록 했던 일이다. 그것도 부족했던지 여자들을 이스라엘 진중 천막 안으로 끌어들였다. 하나님이 이것을 보시고 무섭게 진노를 하셨다. 하루에 24,000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방백들과 백성들이 떼 죽임을 당하게 하였던 일이 발람의 교훈이다.


   마귀가 무기를 쓸 때 어떤 무기를 쓰는가를 교훈이다. 처음에는 외부로부터 압박을 가해본다. 그러나 신자들이 죽일지라도 신앙을 잘 지키면 마귀는 이것으로는 안 되겠다 싶으면 신앙의 본질을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두 번째 술책이 사람들이 음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우상에게 절 하게하고 그 제물을 먹도록 한다. 여기에서 신자는 철저하게 깨달아야 할 것은 음행이 있으면 그 교회는 망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우상에게 절 하게하고 그 제물을 먹는 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가 된다. 교회 안에 음행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교회는 바로 설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욕정을 참지 못해서 아무도 모르게 가만히 행한 음행일지라도 하나님은 아신다. 그러한 사람으로 인하여 교회는 성령이 떠나면 그 교회는 성장할 수 없다. 사람들은 더러움 때문에 교회를 떠나게 된다는 교훈이다. 신자들의 육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집이요 성령의 전이요 그리스도의 몸이다.


   거룩한 육신이 더렵혀지는 것을 하나님은 좋아하시질 않으신다. 성령도 기뻐하지 않으시고 예수님도 그런 곳에는 함께하시지 않으신다는 경고의 말씀이다. 이러한 악행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 징계는 그런 육신은 병으로 병신이 되게 하고 가정은 어려움을 당하게 하시고 교회는 성장치 못하게 하신다는 교훈이다. 그러기에 바울은 “이런 자 는 교회에서 내어 쫓으라”고 교훈한다.(고전5:13)


3.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는 교회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2:15)


   니골라 당의 교훈에 대하여는 에베소교회에서 공부했으므로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 당시에 버가모 교회 신자들 중에서 음란 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러한 악습에 대하여 안디바 감독은 책망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악을 회개할 생각은 아니하고 로마정부에 안디바 감독을 고발했다. 고발의 내용은 안디바가 황제예배를 반대하는 설교로 가르친다는 내용으로 은밀히 고발했다. 사실 안디바는 황제예배는 우상숭배이므로 절대로 황제예배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변명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자신들의 죄를 감추고 모면하기 위해서 어두움의 권세와 합세하여 목자를 희생시킨 사건이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이러한 잘못이 있을 때 목자는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악행에 대하여 책망한다. 그럴 때 회개하지 아니하고 목자의 비행이나 설교를 책잡고 목자를 교회에서 내어 쫓는데 이것이 곧 니골라 당의 교훈에 해당된다. 그러면 이러한 일이 과연 옳은가?


① 구원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악행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대 환난으로 버리시지 않으시는가? 출애굽기 32장 33절의 교훈은 무엇이라 하는가?


②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무렇게 살아도 되는가? 그러면 계시록 2장 22절과 19장 7-8절은 무엇이라 하는가?


③ 영만 천국가고 육체는 천국에 못 가는가? 그렇다면 로마서 8장 23절에서 말하는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림은”과 데살로니가서 5장 23절의 경고는 무엇인가?


   버가모 교회는 외부로부터 오는 핍박에 대해 죽음을 감수하고 이겼는데 잘못된 교훈은 막지 못하였다. 우리는 마지막 때 이런 비 진리, 이 러한 음란은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책망 받지 않고 들림 받기 위해서는 누구도 이런 일에 빠지면 안 된다는 교훈이다.▣

출처 : churchofpraise
글쓴이 : 장죠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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