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먼저 되라
1) 주인의 기준에 순응함
누가복음 6:40
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사역자의 기준은 예수님 자신이다. 나는 예수님을 내 사역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가? 나는 내 자신을 언제나 주님을 기준으로 하여 평가하는가? 우리 앞에 놓인 단 하나의 기준은 우리 주님이시다. 기도할 때나 생각할 때나 주님만이 나의 이상적인 기준으로 우리 마음 속에 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어떠한 것이라도 이 기준을 흐리게 해서는 안된다. 복음을 설교할 때만 예수 그리스도를 높여서는 안된다. 우리의 영혼 깊은 곳에서 예수님을 항상 높여야 한다. 만일 내 생각과 마음과 영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 고정되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이상들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은혜 가운데 자라나게 된다. 사역자의 삶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가 더욱 그의 삶에서 높아지는 것이다. 사역자의 마음 속의 동기는 감상이 아니라 언제나 주를 향한 열정이다. 또한 사역자의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열정은 성령의 열정이어야 한다. 주께서 나를 위하여 해 주신 것이 많기 때문에 생기는 나의 열정이 되어서는 안된다.
사역자로서 계산적인 마음을 갖는 것은 언제나 천박한 것이며 비성경적인 것이다. 사역자의 삶의 단 한가지 자세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오직 예수님이요, 그분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죄가 하나님의 사역을 막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위 옳다는 여러 주장들이 주의 사역을 막는다. 이러한 주장들은 어떤 지점에 이르면 예수님의 주장과 부딪히게 된다. 만일 이러한 갈등이 생기면 무조건 예수님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참조, 눅 14:26).
2) 주인의 주권에 성별됨
디모데후서 2:21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집에 있는 그릇은 그것이 지음을 받은 목적대로 주인에게 쓰일 때 그 그릇에게 영광이 된다. 사역자는 주인에게 쓰임받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그 단 한가지의 목표를 위하여 자신을 성별시켜야 한다. 곧 주께서 원하시는데로 나를 사용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당신이 주를 섬기려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의 섬김을 모방하지 말라. 그러한 모방은 당신에게 실패가 될 것이다. 당신이 주를 섬기려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음성을 들으며 섬기고 있는가? 우리는 이 땅에 오직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하여 존재하고 있다. 곧 주인의 쓰임에 합당한 그릇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지 내 스스로 선택하려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나를 사로 잡으셨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다. 선천적 재능은 우리의 섬김과 관계가 없다. 따라서 “오, 내 재능은 이 일에 맞지 않구나” 라고 말하지 말라.
일년에 한 학생만이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면 주님께서 이 대학을 유지시킬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역자 주 - 런던에 위치하였던 바이블 훈련 대학을 말한다. 1911-1915년까지 존재하였던 성경 대학으로서 챔버스가 총장으로 있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문을 닫게 되었다.) 조직체로서 대학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이곳은 학문적인 곳이 아니다. 이곳은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들의 삶에 역사하시는 곳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에 역사하고 계신가? 아니면 당신은 어떤 종교적 틀과 개념에 의하여 사로잡혀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길 원하신다. 사역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전적으로 주를 의지하는 것이다.
3)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온전하여짐
디모데후서 3:14, 17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당신은 성경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가? 주인을 온전히 섬기려면 성경에 깊게 빠져야 한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성경의 어떤 부분만 애용한다. 그러나 사역자는 성경을 전반적으로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으로부터 계속적인 교훈을 주시길 원하신다. 메시지를 준비할 때 갓난 아기의 영적 우유만 만들어내지 않도록 주의하라. 먼저 그 메시지가 당신의 영혼을 영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계속 배우는 자가 되라. 지름길로 달려가려 하거나 성급하게 깨달으려 하지 말고 당면한 인생의 문제에 대하여 성경이 진리를 보여줄 때까지 계속 성경을 붙들고 연구하라. 기억하여야 할 것은 어떤 진리들은 우리가 그 진리를 감당할 수 있는 영적인 성품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깨달을 수 없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영적 통찰력은 언제나 우리의 영적 성장과 비례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하나님께서 사역자의 마음 속에 넣어주신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이 생명은 영적인 천진함으로부터 계속 자라나 마침내 영광스러운 실질적인 성품이 된다.
10. 언제든지 쓰임 받기 위하여
일반적인 격언)
(1) 만일 당신이 교육이 부족하다면, 먼저 그 부족한 면을 깨달으라. 그 후 그 부분을 보완하라.
(2) 당신에게 부족한 훈련이 무엇인지 깨달으라.
1) 정신적 습관을 개발하라.
디모데전서 4:13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세상에서도 빼어나기 원하면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하나님을 위한 사역에 있어서 덜 집중하는가?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주님께 더욱 귀히 쓰임받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 지식을 추구할 것을 결심하라.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온전한 도구로 준비되라. 성경은 아무리 읽어도 과할 수 없다. 그러나 왜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잊지 말라. 모든 것보다 성경을 대할 때 “성령을 받고 성령을 인정하고 성령을 의지할” 필요를 잊지 말라.
2) 끊임없이 최상을 목표로 하라.
디모데전서 4:16
16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설교란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정하신 방법임을 기억하라. (참조, 고전 1:21). 하나님 앞에서 시간을 가지고 최고의 이상적 설교를 만들라. 그러나 자신의 이상에 도달하지 못하였을지라도 신경쓰지 말고 계속 노력하라. 절대로 설교가 실패하였다고 말하지 말라. 꾸준히 노력하고 적용하면 처음에 어려웠던 것들도 언젠가 쉽게 하게 될 것이다.
지적으로 대충하려는 유혹을 피하라. 철저한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을 “성령을 의지하는 것” 이라고 속이지 말라. 마태복음 10:19-20절을 잘못 적용하지 말라.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영적인 일에 부주의한 것은 하나님 앞에 범죄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3) 개인적인 은사에 집중하라.
디모데전서 4:14
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주의 사역자로 친히 준비되기 위해서는 가능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의탁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께서 당신에게 주신 은사에 집중하라. 당신의 생각을 성경 읽기와 성경 연구로 훈련시키라. 당신이 소화해 낸 모든 내용들은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가능한 성경을 많이 읽어서 성경이 언제나 당신의 생각과 입술에 가득차게 하라. 절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것은 가장 위대한 자원은 성령이시며 그분만이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준비되어야 하는 것은 설교뿐만 아니라 설교자 자신이다.
4) 영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자신을 강권하라.
디모데전서 6:11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구원 및 죄사함의 체험을 한 이후에 신앙이 정체될 수 있다. 당신의 마음을 항상 깨어있게 하고 생동감이 넘치도록 하라. 당신의 마음이 소생되면 다시 잠들지 않게 하라. 뇌는 쉴 필요가 없다. 단지 뇌가 하는 일을 바꿀 필요가 있다. 지능을 사용하는 일은 계속 뇌를 사용할 때 최고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더 많이 사용할수록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뇌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의 뇌가 최정상으로 동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녹슬지 않도록 항상 뇌를 청소하고 아무 때나 원하는데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정상 상태에 있게 하라.
5) 하나님과 계속 교제를 나누라.
디모데후서 4:2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하나님을 의식 세계 속에서 느끼는 것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식하는 가운데 느끼는 강렬한 희열의 상태를 계속 머물게 할 수도 없다. 황홀경을 추구하지 말라. 당신의 삶에 오직 한가지 목적 외에는 다른 모든 것들을 부수적인 것들이 되게 하라. “나의 유일한 목적은 나의 입술과 삶으로 예수님을 전파하는 것이다. 이 목표 외에 다른 어떤 관심도 나를 장악하도록 허용하지 않겠다.” 이러한 마음 자세를 가질 때 다른 모든 것들이 한가지 목적을 향하여 연결되게 된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딤후 4:2). 절대로 낙심하지 말라.
11. 설교자의 의무
고린도전서 1:26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설교자는 그의 부르심이 다른 모든 부르심과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설교자의 인격이 메시지에서 베어 나와야 한다. 웅변가는 청중에게 맞추어 말을 하고 그들을 열광시킨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설교자는 무엇보다 먼저 청중이 듣기 거북해 하고 들으면 분노하게 되는 복음의 메시지를 가지고 다가가야 한다. 그러나 복음은 사람들이 거부하더라도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으로 임할 것이다. 인간의 깊은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 있다. 따라서 사람이 구원 받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의 요새가 성령에 의하여 공격 당하고 점령되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그들은 구원을 받아야 하며 성령의 충만을 입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설교자들은 그들 가운데 함께 살면서 그들에게 성령으로 충만한 삶이 어떠한지 보여주어야 한다. 설교자는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와 함께 그 메시지와 병행되는 증인된 삶을 가지고 사람들을 찾아가야 한다. 모든 증거 중에 가장 위대한 증거는 “내재하시는 증거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사람에게 없는 것을 가지시고 위로부터 내려 오셔서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사람과 같이 되셨다.
1) 복음을 향한 의무
베드로전서 1:25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복음은 게으른 군중들에게는 너무 깊고 오묘하지만, 산만한 사색가들에게는 어리석게 느껴질 만큼 간단하다.>
복음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라면 우리는 설교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어떤 개인적인 논리나 신조나 경험을 주장하기 위하여 단에 서는 것이 아니다. 오직복음을 제시하기 위하여 단에 선다. 만일 개인적으로 복음을 체험한 적이 없다면 복음을 설교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상당히 많은 설교자들이 고급 문화의 유산은 될 수 있어도 주님의 사역자들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전까지는 복음을 듣기 싫어한다. 그들에게는 복음을 향한 괜한 분개함이 있다. “거듭남이나 거룩함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충 좋은 이야기만 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지금 어떤 대상들에게 말씀하시는지 알고 계십니까?” “아주 쉬운 것만 설교하시기 바랍니다.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설교는 졸립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일 당신이 사람의 기준에 맞추려 한다면 당신은 절대로 복음을 설교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복음은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다. 그러나 주님을 향한 우리의 의무는 복음을 설교하는 것이다.
2) 교회를 향한 의무
에베소서 5:27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 교회는 세상을 이끌거나 세상을 흉내내서는 안된다. 교회는 세상과 맞부딪칠 수 밖에 없다. 교회의 특징은 초자연적이라는 점이다. >
교회는 세상이 갈급해 하지만 분개하는 메시지를 가지고 세상과 맞부딪쳐야 한다. 그 이유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태어났기 때문이다.모든 시간과 영원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모든 계획인 십자가가 있다 (참조, 갈 6:14). 세상이 썩어지면 세상은 교회를 탓한다. 그러나 세상이 번영하면 교회를 미워한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제시하는 기준을 없앨 수만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오면 세상은 교회가 말하는 절대 기준을 필요로 하게 된다. 설교자는 주님의 기준을 낮추려는 것들을 향하여 강력하게 대항할 수 있어야 한다. 설교자들에게는 말씀으로 세상을 대항할 수 있는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특권이 있다. 우리는 경력을 쌓기 위하여 이 길로 온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상과 맞부딪치도록 부름을 받았다.
교회는 세상이 무시할 수 없는, 그리고 교회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그러한 제어력을 소유하고 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이다.
3) 공동체를 향한 의무
요한일서 5:19
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 당신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속죄의 사역 안에서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갖게 될 수 없다. >
우리 주님께서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야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가르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든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게 하실 수 있다.
절대로 청중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나님의 복음을 희석시키거나 축소시키지 않도록 주의하라. 더하거나 감하지 말고 과감하게 복음을 전하라. 하나님께서 주의 진리인 복음을 친히 보호하실 것이다.
12. 설교자로서 본문을 통하여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똑똑한 척 하지 말라. 대신 신중 하라.
논쟁을 하지 말라. 대신 구별된 말씀이 되게 하라.
자만하지 말라. 대신 집중하라.
1) 똑똑한 척 하지 말라
당신이 본문을 선택하지 말고, 본문이 당신을 택하게 하라. 영리함이란 다른 사람이 하는 것보다 뭔가를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영리함을 늘 감추도록 하라. 성령께서는 영리한 것을 원치 않으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역자 안에서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역사하길 원하신다. 이때 성령은 언제나 가장 단순한 방법을 사용하신다. 당신의 인격적인 생명이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숨겨져 있지 않으면 당신의 자연적인 재능이 계속 당신을 이끌 것이다. 그러나 사역자는 이러한 삶을 지속하면 안된다. 그럴 경우 하나님의 징계를 초래할 뿐이다. 본문이 당신을 선택할 때 성령께서 내적으로 당신에게 감동을 줄 것이며 그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 본문과 씨름하는 가운데 당신의 회중을 향한 메시지를 이끌어 내도록 하라.
2) 신중하라.
다른 사람에 의하여 발견된 것들은 그것이 당신에게 재발견되기까지 당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음을 기억하라. 당신의 눈을 잘 볼 수 있도록 돕는 여러 지적 도구들을 삼가라. 대신 그러한 도구들을 분변하는 능력과 말씀을 스스로 깨닫는 능력을 키우라.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마땅한 설명을 찾아낼 수 없을 때에만 다른 사람의 설명을 참조하도록 하라.
3) 논쟁을 하지 마라
논란이 되는 본문을 선택하지 말라. 그러할 경우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논쟁이 될 만한 본문을 택하는 것은 경솔한 마음에서 나오는 무모한 행동이지 하나님을 의식한 담대함이 아니다. 기억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부르셨다. 물론 어떤 사람은 논쟁을 통하여 자신의 지적 실력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천명 중에 한 사람도 이를 통하여 영적 유익을 얻지 못한다. 절대로 당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비난하지 말라.
4) 구별된 말씀이 되게 하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지 결코 잊지 말라. 당신이 어떠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에 의하여 어떻게 변했는지를 잊지 말라.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에 의하여 깨닫게 된 것들을 당신의 표현으로 다시 말해 보도록 하라. 그 진리가 당신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주님께 역사하실 기회를 드리라.
5) 자만하지 말라
자만이란 자신의 관점만을 중요시 여기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무시하는 자세이다. 바울은 말한다.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롬 12:16). 자만은 하나님께서 나를 개인적으로 다루신 방법을 하나의 표준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을 강요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체험의 표준이 아니라 진리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 사역자가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될수록 그는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6) 집중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려는 끈질긴 노력은 정신적으로 매우 피곤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말씀하도록 할 때 그 말씀은 우리를 새롭게 한다. 반면 게으른 자들은 힘든 성서 해석보다는 많은 수고가 필요없는 영적 해석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을 먹이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설교자는 기록된 계시를 다루는 자들이지 기록되지 않은 영감을 다루는 자들이 아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성경을 취하지 말라.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려는 것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이 깨달아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 순종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종하는 즉시 하나님의 말씀은 열릴 것이다. 사역자의 분위기는 주께서 말씀을 주시는 특별한 때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때에도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분위기여야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지 않으시면 스스로 괜찮다고 속이지 말라. 마치 숨이 막힐 때 뭔가가 잘못된 것처럼 당신에게 영적으로 뭔가 잘못된 것이니 빨리 치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당신을 인도하시는 것은 언제나 예외적인 사건임을 기억하라.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상적인 삶으로 나타나셨다.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라. 당신의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아무 것도 끼어들지 못하게 하라. 그러나 주님을 더 알게 하는 것이 있다면 뭐든지 환영하라.
13. 가장 중요한 것을 첫째로 하라
1)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성 (Absoluteness)
빌립보서 2:8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사역자는 예수님께서 예수님 자신에 대하여 설명하신 것 외에 예수님을 다르게 설명하려는 자들에게 조그마한 틈이라도 주어서는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인자(사람의 아들)”라고 부르셨다. 이 의미는 사람의 대표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완벽성을 하나님의 완벽성으로 이해하지 말라. 서로 같은 것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거룩은 완벽한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은 어떤 대항 세력을 이기며 성장하는 거룩이 아니다. 그러나 인자(사람의 아들)가 보여주신 거룩은 대항 세력을 물리침으로 표현되는 거룩이었다. 즉 예수님의 거룩은 불순종과 순종의 선택 가운데서 순종을 선택함으로 만들어진 전인격적인 거룩이었다. 주님의 순종이 저절로 되어지는 기계적인 순종이 아니었음을 기억하라.
우리는 그리스도를 역사적 인물로 보아야 한다. 그분은 공상 세계에 나오는 요정 같은 존재가 아니라 실제 사람이셨다. 주님은 이 땅에서 사람으로서 제한된 삶을 사셨으며 당시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사셨다. 주님은 자신의 의식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선택하셨으며 불순종을 거절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할 때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는 존재, 곧 하늘에서 떨어져 기적을 행하는 초인으로 나타내는 것은 전혀 복음이 아니다. 복음이 제시하는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신 분으로서 우리와 똑 같은 삶을 사셨고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몸을 소유하셨다. 하나님이신 주님은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던 것이다. 사람이 되신 주님께서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아무라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셨다. 이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속성을 완벽하게 취하셨던 분이셨다.
2) 성경의 완벽성
베드로전서 1:16-21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성경이 사람에게 주는 교훈은 언제나 전인격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즉 성경의 교훈은 마음으로 응답해야 하는 것이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종종 당신은 “이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지만 점점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 때가 있다. 그 이유는 순종하지 않고 머리로만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마음으로부터 순종해야 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지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 분변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나의 영적인 성품이 내게 임하는 하나님의 계시를 결정한다.
성경은 현자(지혜자)들의 예리한 추측들이 아니다. 성경은 초자연적인 계시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다룰 때는 언제나 순종 또는 불순종의 문제가 따른다. 오늘날 여러 설교자들이 주관적인 신학(subjective theology)을 외치고 있다. 그 내용은 인간의 내면 속에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가르침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철저하게 비성경적이다. 성경이 제시하는 복음은 계시의 완벽성에 근거를 둔 것으로서 사람의 상식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깊은 내면에서 뭔가를 펌프질하여 꺼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외부로부터 새생명이 들어와야 함을 의미한다.
설교자는 오직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해야 하며 그 계시를 신뢰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그 계시를 주신 분의 성품을 우리가 믿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의 모든 계시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고 그 계시 가운데 주님의 자취를 남기셨다.
3) 죄와 거룩의 절대성
계시록 21:7-8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죄와 거룩은 긍극적으로 절대적이다. 중간은 없다. 우리 주님께서는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근본적인 죄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 7:21-23). 많은 사람들이 이 계시를 전혀 모르고 있다. 사람의 삶 가운데 죄와 거룩은 반드시 등장한다. 죄는 우리 중에 몇 사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만일 사람이 절대적으로 거룩하지 않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선하게 보여도 부정한 사람이다. 죄는 모든 것의 뿌리에 놓여 있다. 비록 죄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밖으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기에 결국 그 정체를 드러낸다. 성경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결코 안전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죄라고 불리는 무서운 반역의 세력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 7:23).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마음 속의 악의 가능성에 대하여 뻔뻔할 정도로 무지하다. 상식과 주님의 말씀이 상충하게 되면 절대로 상식을 믿지 말라. 당신의 설교가 인간의 속성 안에 있는 달콤한 순진함에 호소하는 것인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근거로 하는 것인지 확인하라. 당신의 설교로 인하여 한 사람이라도 성경의 세리처럼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절규하게 되면 이때 당신은 당신의 설교를 통하여 한 영혼을 얻은 것이다. 이러한 사건은 전우주적인 사건임을 잊지 말라. 그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마침내 깨닫게 된 것이며 자신은 죄악으로 가득찬 부정한 사람이기에 구원이 필요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무도 선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무엇보다 당신 자신이 선하지 않음을 알고 있으라.
자연적인 선함은 언제나 무너질 수 밖에 없으며 따라서 실망을 안긴다. 왜 그러한가? 그 이유는 성경이 말하길,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렘 17:9).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생케 하시는 역사를 통하여 우리 안에 심겨 놓으신 것이 아니면 우리 안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신뢰하지 말라. 또한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도 그 사람 안에 있는 새 생명 외에 아무 것도 신뢰하지 말라.
당신이 서는 단은 하나님의 진리를 제시하기 위한 엄숙한 단이다. 그 단은 외로운 단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당신의 복음의 메시지를 향하여 분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언제나 강렬한 갈급함을 야기시키지만 동시에 강렬한 분개를 야기시킨다.
사람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단에 서도록 하라. 사람을 사랑하면 부정과 죄악을 연약함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며 거룩을 단순한 갈망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면 부정한 것을 마귀적이라고 부를 것이며 거룩은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선포하게 될 것이다. 참된 설교자가 되려면 언제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면하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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