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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목사 그는 누구인가?

하나님아들 2013. 6. 29. 00:46

 

목사 그는 누구인가?

 


 

 

김옥남 목사 (전주중앙교회)

에베소서 4:11-12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 목사, 그는 슈퍼맨이 아닙니다.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어린아이가 슈퍼 멘에 도취해서 책보를 둘러쓰고 고층건물 옥상에 올라가 “슈퍼맨―”하고 소리 지르면서 뛰어 내렸다고 합니다. 목사도 자신이 슈퍼 멘이나 되는 듯 착각이 일어 날 때가 있습니다. 성경에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겠다... 병자가 오면 의사처럼 병 고친다, 귀신들린 자가 오면 축귀의 영력을 가진 자처럼 귀신 쫒는다, 정신이상자가 오면 정신과 의사처럼 정신병 고친다, 가르칠 때 보면 교사요, 농사라면 유기농의 전문가를 자쳐하고, 시위현장에 나타나면 시민운동가가 됩니다. 찬양하면 찬양의 대가요, 예언하면 영락없는 예언자입니다. 목사는 자신을 슈퍼맨으로 착각하기에 적당합니다. 목사 자신보다도 교인들이 목사가 슈퍼맨이 되기를 강요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슈퍼맨이 아니고 한 연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바울처럼 찌르는 가시를 가지고 고통 할 수도 있는 인간, 베드로처럼 비겁 할 수도 있는 인간입니다. 엘리야처럼 못 먹으면 배고프고, 물 안 먹으면 목마르고, 잠 못 자면 피곤 할 수 있는 인간입니다. 한 시간 앞도, 내일 일도 모르는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부르면, 이 땅에 흙 한줌 남기고 갈 수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갈대같이 연약하고, 호롱불처럼 바람에 날리면 꺼져 버리는 인간입니다. 어떤 성도는 목사님도 감기 들고 병이 날수 있느냐? 고 하지만, 목사도 감기들 수 있고 몸살 날 수 있고 암에 걸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는 병나면 안 됩니다. 교인이 은혜를 못 받습니다. 처음에는 문병도 오지만 조금 지내면 수군수군 합니다. 목사가 은혜가 없어서 병 낫다고 말입니다.

목사, 그는 하나님 앞에 서고 보면, 모세처럼 나는 입술이 둔한 사람입니다. 에레미아 저럼 나는 어립니다. 이사야처럼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입니다. 베드로처럼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 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그 나름대로, 부흥이 안 되는 교회는 그 나름대로, 목사의 어깨는 항상 무거워지기 마련입니다. 목사는 두려운 자리에 서 잇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과 바꾼 소중한 교회를 맡기셨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목사는 고독한 자리입니다. 그는 몇 사람의 목사도 아니고, 특정한 그룹의 목사도 아닙니다.
전 교회의 목사입니다. 원래 만인(萬人)의 연인은 고독한 법입니다. 교인과 마음에 있는 이야기도 나눌 수 없습니다. 어떤 후배 목사가 자기 교회 출석하는 고등학교 선배 집사와 속에 있는 이야기를 했다가, 결국 그 선배의 배신으로 그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속을 너무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히스기야가 병에서 구원받고 너무 기쁜 나머지 바벨론에서 온 축하사절단에게 궁권 안에 모든 것을 안보여준 것 없이 다 보여 주었다가 이사야의 예언대로 다 뺏기는 불운을 훗날에 당했습니다.

목사는 영적으로 대단히 예민한 자리입니다. 간교한 사탄이 어떻게 공격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성의 유혹, 돈의 유혹, 명예의 유혹이 목을 조이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명한 목사 하나 넘어트리면 교인 수백 명 천명 넘어지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싸움에서 대장하나 죽으면 병사는 금방 오합지졸입니다.

목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웃고 울어야 합니다. 어떤 성도를 위해서는 정말 기뻐해 주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성도를 위해서는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을 나눠야 합니다.
그래서 차 속에 넥타이는 여러 개 가지고 다닙니다.

목사자식이 대학에 붙었다고 너무 좋아하지 못합니다. 교인 가운데 대학시험에 떨어진 자식 때문에 울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자식이 대학에 떨어졌다고 너무 슬퍼하지 못합니다. 교인 가운데 자식이 대학에 붙어서 기뻐 뛰어오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밤낮 쫓기는 자리입니다. 주일 설교 듣기 위해 몰려 올,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부지런한 목사는 일주일이면 설교를 20번은 해야 합니다. 늘 공부해서 설교 준비를 했지만 싱겁다, 짜다, 맵다, 먹던 것 또 준다, 길다 짧다, 불평입니다. 100 사람 1000사람 입맛을 맞추기에는 너무 힘이 듭니다. 교인은 새 설교를 듣기 원합니다. 그런데 사실 새 설교는 없습니다. 저는 가끔 설교 원고 없이 강단에 올라갔다가 안절부절 하는 악몽을 꿀 때가 종종 있습니다.

목사는 신뢰를 못 받으면 죽는 자리입니다. 신뢰는 리더십의 무게를 결정합니다. 믿고 따를 수 있을 때 사람들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 정도만 가지고도 목사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입니다. 한 교회에서 2, 30년 동안 목회를 해야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목사는 도덕적 책임과 영적인 부담감을 늘 짊어지고 삶니다.

목사는 남을 위해 늘 기도하는 사람 같지만, 남의 기도의 도움으로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
한 목회자는 이렇게 시를 썼다고 합니다. “속적 새야 너는 목회도 않으면서 밤새우는구나,
고목나무야 너는 목회도 안하면서 속이 다 썩었구나.” 하나님은 스스로 강하고 유능하다는 사람을 다 그대로 놓아두시고, 오히려 불완전한자, 허물도 있는 자를 목사라고 세워 놓았습니다.

목사의 직무는 얼핏 보기엔 일을 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빈둥빈둥 하는 것만 같기 만합니다. 목사는 일해도 별 흔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목사에게 방심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남들은 출퇴근 시간이 있지만, 목사에겐 출퇴근 시간하고는 아무런 인연도 없습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끝없는 긴장 속에 나날을 지새우는 것이 목사들입니다. 어느 친구 장로님이 자기교회 목사 흉을 보더군요. 늘 집에만 있다고……. 그래서 너희 교회 목사님 사무실이 있느냐고 했더니 없답니다. 사무실을 집보다 더 좋게 만들어 봐, 그러면 목사님은 늘 사무실에 있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목사는 늘 가난해야 경건하고, 낮은 수준의 차를 타야 검소한 것이고, 목사는 늘 친절해야 사랑이 있는 목사라고 해서 압박을 해 옵니다. 허리가 굽은 원로 목사님의 허리를 만지면서 평생 하나님 앞에 허리 굽히고 성도들 앞에 허리 굽히고 사니 앞에 허리 굽히다 보니 이렇게 굳었군요 했더니 그 말 맞답니다.

목사의 자식들도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너는 목사의 아들이니까 그런 짓은 하지 말라. 너의 아버지는 목사님이시니 참아라…” 는 식의 충고 때문입니다. 목사의 자식도 목사가 되어야하는 강요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목사의 자녀는 유년기도 없이 애 늙은이가 되어야 합니다.

목사 부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옷을 잘 입어도 못 입어도 시비 감입니다. 열심히 목회를 도우면 너무 설친다고 합니다. 조용히 있으면 무능하다고합니다. 말을 많이 하면 수다스럽다고 합니다. 말을 안 하면 교만하다고 합니다. 똑똑한 목사 부인 모시면 교회가 어지럽습니다. 여자 교인들이 시기해서 그렇습니다. 목사도 목사 부인도 바보처럼 살아야 합니다. 봐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른 척. 우리 집 사람처럼 밖으로 안 똑똑하고 조용하고 말없는 아내가 된 것이 천만 다행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모릅니다.

호주 의사인 테일러 박사는 ‘목사 살해’라는 제목의 연구 논문을 출판 했습니다. 그는 호주의 루터교 목사들을 상대로 조사 연구하였는데, 목사들의 건강은 몹시 나쁘며, 수많은 병을 가지고 있고, 목사들의 수명은 짧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과로와 교인들로부터 끊임없이 받는 정신적 압박과 운동 부족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는 목사들에게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규칙적으로 운동할 것과 자기를 동정해 줄 수 있는 친구를 갖도록 권고하였습니다. 목사를 최고로 존경하는 방법은 억지로라도 휴식을 주어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목사는 인간을 위하여 이미 헌신한 사람들이므로 그들이 더 빨리 달리도록 떠미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고, 오히려 너무 달리는 그들을 붙잡는 것이 존경의 방법이 라고 했습니다.
그나마 목사에게 들어가라 나가라 하면 정말 죽고 싶을 것입니다. 밥 먹을 데 없어 이런가 싶고, 처자식 대리고 갈데 없어 이러나 싶고, 차라리 당장 고만두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입니다.

목사는 인간의 의지나 힘으로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령 받으러, 성령 주마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해야 할 직업입니다. 목사에게 가장 큰 저주는 성령 받지 않고 목사직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목사, 그는 하나님의 일을 맡았어도 자기 힘이나 자기 지혜로 일할 수 없어 하나님이 주실 힘을 구하기 위해 기도의 다락방을 떠날 수 없는 사람입니다.


2. 그러나 목사, 그는 그리스도의 일군입니다.(고전 4:1-5)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했습니다. 목사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일하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이라 함은 오직 그리스도께만 종속되어 그분의 시중을 드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인의 뜻을 받아 주인의 재산과 사람들을 관리하는 관리인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하나님이 신임하고, 중요한 일을 위임해 주었기에 뿌듯한 긍지를 느끼는 사람입니다. 목사, 그는 어떤 일을 맡아 하면서 조금 벅차고 힘이 들더라도 그 일을 맡긴이가 나를 인정해 준 것을 생각 하면서 오히려 용기를 가지는 사람입니다.

목사,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신임하여 하늘의 비밀을 맡겨 주셨다는데 대하여 진정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 주신 비밀의 내용은 '복음'입니다. 이 비밀은 우리의 죄를 씻어내고 자유롭게 하는 비밀입니다. 이 복음은, 특별히 어린 아이와 같이 순결하고 겸손한 마음의 소유자들에게만 알려지는 비밀입니다. 목사는 이 자리가 너무 크기에 결코 양보 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일본이 한국 기독교에 대해 신사 참배 강요하던 때, 악독한 일제 당국은 평양 산정현교회 주기철 목사를 잡아 가두고도 부족하여, 목사 사임서 까지 강요했습니다. 이에 궁한 일본 경찰당국은 당시 평양 노회 장이었던 최지화 목사를 불러 주목사를 파면하라고 엄명했습니다. 경찰의 압박을 받은 노회장 최 목사가 주 목사에게 간청했습니다. "교회 사면하면 주 목사도 평안해지고, 산정현 교회도 평안해지고, 평양 노회도 평안해지겠으니 제발 사면해 주시오." 그러자 주 목사는 말했다. "내 목사의 성직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 하나님이 그만두라 하시기 전에는 절대로 사면할 수 없습니다."고 버티었습니다.


3. 목사, 그는 꿈꾸는 사람입니다.
목사는 아이디어로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목사는 하늘나라의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복을 받아 행복해 지는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을 데리고 하나님 나라에 가는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목사는 남에게 금을 줄 수 없어도 금보다 귀한 믿음을 주고 싶고, 지식을 줄 수 없어도 은혜를 받게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하나님과 단 둘이 앉아야 할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혼자 있을 때,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고, 바울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혼자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외로이 혼자 서는 고독이 있는 사람이 참 목사입니다. 목사가 외롭다고 사람을 찾고, 바뻐서 기도 할 시간이 없고, 성경 읽을 시간이 없고, 책 읽은 시간이 없다는 것은 목사의 죽음입니다.

외로우면 하나님의 위로를 구해야 합니다. 압박 받으면 하나님의 지원을 구해야 합니다. 목사는 학위가 필요한 것 아니라 재충전이 필요합니다.


4. 그러나 목사, 그는 혼자 일 할 수 없습니다.
  목사는 동역자를 필요로 합니다. 목사와 같이 꿈을 꿀 장로, 권사, 집사가 있어야 참 행복 합니다. 목사만이 하나님의 일 하지 않습니다. 장로도 집사도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목사의 독선은 자기만이 하나님의 귀염둥이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요사이 선지자들은 다 변질해 버렸고, 어떤 선지자는 순교했고, 하나님 섬기는 자는 나 혼자 남았습니다. 그런데 나마저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그런 소리 말아라,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을 맞추지 않은 자 7000명을 남겨 두었느니라.”

그래서 목사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도 감히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목사는 다른 은사를 받은 분과 힘께 일할 때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목사가 받은 은사만 좋은 것이 아니라, 목사와는 다른 은사를 받은 자와 함께 할 때,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스스로 능력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구원이 어디에도 나타나고, 구원의 능력이 누구를 통해서든지 나타납니다. 목사는, 다른 동역 자와 평신도 동역 자와 함께 일하는 일꾼입니다. 동시에 목사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고린도전서 3:5-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 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집이니라.” 목사, 그는 하나님과의 동역이니만큼 일에 성실성을 잃어서는 아니 되는 사람입니다. 목사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계시니 태만을 부릴 수 없습니다. 주님도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하신 것은 바로 이 정신에서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목사는 하나님과 동업(同業)인 만큼 낭비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혼자서 해서 벌어들인 것 같으면 그 이익을 내 혼자서 먹거나 낭비를 해도 상관없겠지마는, 참 일꾼은 하나님이시니 일의 성과에 대한 칭찬과 영광은 혼자서 차지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동업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자기의 뜻을 맞추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하시는 일의 목표가 창조, 보존, 치유입니다. 목사의 가장 중요한 일은, 죄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믿어 구원받게 하시는 일입니다.

목사, 그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져 쓰이는 도구일 뿐입니다. (롬15:18)

목사에게는 엄밀하게 말해서, 내 양도 없습니다. 교인을 내양이라고 생각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양일 뿐 입니다. 목사는 오직 하나님의 양을 먹이는 목자 일 뿐입니다. 목사에게는 어느 것도 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목사가 하나님의 손에 들려져 쓰이고 있는 한, 아무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빼앗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미리암이 모세에게 허물이 있다고 하여 비판 하다가 문둥이가 되었고, 고라의 무리가 모세를 반역하다가 땅이 갈라져서 흙 속에 묻혔으며, 아이들은 엘리사를 대머리라고 놀리다가 암곰에게 물렸습니다. 목사, 그는 자신이 자신을 보호 할 힘도 없는 사람입니다. 뿔도 없습니다. 예리한 이빨도 없습니다. 무장도 해지 당했습니다. 하나님이 보호자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보증이 되시고, 성령이 지키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악(惡)한 사람의 손에서 목사를 보존 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쓰이는 분을 도우면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도움 받으신 것으로 간주하셔서, 엘리야를 대접하는 수넵 여인을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목사는 사람에게 칭찬받기 위해 일해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목사가 사람의 인기에 영합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성령의 능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목사는 교회가 잘되고 커졌다고, 자만심을 가져도 안 되고, 교회가 안 된다고 의기소침해서도 안 됩니다. 목사는 마치 포도원에 마지막에 채용된 일꾼처럼 삯도 묻지 않고 일하는 충성스러운 사람일 뿐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동업자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밭에 품앗이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일하면 하나님이 우리 일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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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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