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지기 훈련과 목회전략
차례
제1장 청지기 훈련에 대한 이해
1. 청지기 훈련 동기
2. 청지기 훈련의 의의
3. 청지기 훈련의 필요성
제2장 청지기 훈련의 방향 설정
1. 기독교 신앙 정체성 확립
2. 사회 변혁의 주도적 임무 수행
3. 평화 통일의 주역
4. 환경 보전의 주도자
5. 청지기 의식 고취
제3장 청지기 훈련을 위한 조명
1. 성경의 렌즈
2. 역사의 렌즈
3. 문화의 렌즈
4. 성령의 렌즈
제4장 청지기 훈련의 실제
1. 청지기의 의미
2. 청지기의 구분과 임무
3. 청지기 훈련과 방안
제5장 청지기 훈련과 신앙 갱신
1. 신앙 의식 구조 형성 배경
2. 세속적 의식 구조에 의한 신앙 문제점
3. 세속적 신앙 의식 구조 사상
제6장 청지기 훈련을 통한 신앙 갱신 과제
1. 예배 갱신
2. 교회 공동체 윤리 의식 회복
3. 사회 윤리 의식 고양
4. 창조 질서와 환경 보전 실천
5. 국가에 대한 의무와 봉사
제7장 청지기 훈련 평생 프로그램
1. 청지기 훈련과 목회
2. 청지기 훈련의 공동 목표
3. 청지기 훈련 과목
4. 청지기 훈련과 프로그램 운영
5. 청지기 훈련과 평생 프로그램
제8장 청지기 훈련을 통한 신앙 갱신을 위한 제언
1. 목회자의 갱신
2. 청지기 선출의 신중성
3. 청지기 훈련을 위한 평생 프로그램 개발
4. 총회 차원에서 청지기 훈련원 상설 운영
5. 청지기 신앙 의식화 훈련저자 호태석 목사의 약력
목사(장로교:합동)
연세대 연신대학원 졸업
미국 Fuller 신대원 졸업(목회학박사)
성결대학교 신대원 교수(청지기 훈련)
국내외 교회 청지기 훈련 사경회강사
청지기훈련원 원장
서울가나교회 개척시무
제1장
청지기 훈련에 대한 이해
1. 청지기 훈련 동기
한국 교회는 선교 1세기를 맞이하는 동안에 눈부신 발전과 성장을 가져왔다. 그 결과 전체 인구 중 기독교 인구가 25%나 차지한다. 이런 통계는 세계 교회가 부러워하는 선교 역사인 것이다.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가 이렇게 성장한 것은 많은 고난과 연단속에서도 순교적 신앙을 지킨 선배들의 순교의 피가 뿌려졌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은총을 내리셨기 때문이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한국 교회는 지속적인 성장을 계속하여 역사의 마지막 시점에서 선교의 종주국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 성장의 모습은 긍정적인 안목에서만 본다면 자랑과 긍지가 된다. 그러나 교회 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무수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사회 일각에서는 교회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은 것이 현실이다. 교회는 언제까지 이들의 비판을 도외시할 것인가?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의 신앙 형성과정에는 무엇보다도 샤머니즘에 입각한 세속적인 의식구조가 깔려있기 때문에 신앙 양태는 현실주의 물량주의, 이기주의가 교회 안에 만연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결과 개인들은 신앙과 생활의 부조화 현상을 드러내고 자기중심주의, 기복주의, 물량주의에 젖게 되었으며,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 윤리가 실천되어야 하는데 적극적인 사고 방식에 입각한 이기주의와 성공주의로 흐르고 있다. 그 결과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자기 모순에 빠져 한국 교회는 열병을 앓고 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신앙의 정체성을 회복할 때가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신앙 의식 구조를 갱신’해야 한다. 여기에는 이론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삶의 능력과 실천력을 배양시켜 주는 청지기 훈련이 절실히 요청된다.
이에 대하여 정일웅 교수는 “기독교교육은 진정한 인간의 인격적 변화와 함께 관련된 신앙적 삶의 질적인 교육을 자기 과제로 수행할 때이다.
특히 종교 다원적 문화 환경 속에서 우리 크리스찬의 신앙적 인격에는 더욱이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만큼 상대를 인정하는 인격이 요구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대립적 차원의 시각이 전환되어 세계관과 인간관과 가치관의 적나라한 비교종교적 차원의 끊임없이 대화를 통하여 스스로의 진리 선택에 결단을 가지는 방향으로 기독교교육은 그 방법론적 전환을 꾀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제는 말씀과 생활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청지기 훈련을 통하여 신앙 갱신과 성숙을 가져와 사회 변혁자로서 청지기상을 정립시켜 나아가야 한다.
2. 청지기 훈련의 의의
청지기 훈련의 목적과 의의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청지기 의식을 일깨워줌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은사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충성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데 있다.
아울러 청지기 훈련은 말씀과 생활이 조화를 이루어 일치가 되도록 한다. 내면적이면서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경건으로 이루어지게 하며 외면적이면서 수평적으로는 교회생활에서 충성하게 하고,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게 하는 실천적 훈련이다. 즉 청지기 훈련은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7-8)라는 말씀대로 경건훈련으로써 청지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하면서 삶의 실천력을 배양시켜 주는 것이다.
3. 청지기 훈련의 필요성
루소가 “식물은 재배에 의해서 자라고, 가축은 사육에 의해서 길러지며,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 성장한다.”라고 하였듯이, 필자는 “하나님 교회의 청지기는 훈련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청지기 훈련이 없이는 신앙 갱신과 성숙, 기독교 신앙 정체성 확립과 기독교 가치관 형성이 어렵다.
그러면 훈련의 필요성을 다음의 몇 가지로 열거하기로 한다.
(1)하나님의 요구
1) 하나님의 명령과 실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에덴 동산의 청지기로, 만물의 청지기로 세우시고 명령하셨다. 구약성경의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개인을 선택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셔서 청지기 훈련을 시키셨다.
개인적 선택과 훈련을 보면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을 들 수 있고, 또한 이스라엘 전체를 훈련시키셨다. 그리고 그 자녀들에게도 지속적인 훈련을 명령하셨다.(신4:1-2; 6:1-9)
구약의 역사는 에덴 동산에서 시작하여 가나안을 정복할 때까지 ‘훈련으로 일관된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예수님의 명령과 실천
예수님께서 공생애 시작 즈음에 갈릴리 바닷가에 가셔서 고기잡는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셨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마4:19-20).
그 이후 예수님게서 열 명의 제자를 더 부르셨고 열두 명의 제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을 훈련시키셨다. 그리고 주님께서 마지막 대 유언으로 다시금 제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청지기 훈련을 시킬 것을 명령하셨다.(마28:18-20).
3) 성령님의 명령과 실천
성령께서는 은사의 수여자로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고 계신다.(고전12:4-11) 특히 성령께서는 가르치는 자에게는 가르치는 은사를 통해 청지기 훈련을 잘 하도록 역사하고 계시며, 또한 훈련을 받는 이에게는 각자의 은사를 통해 청지기로서 경건한 삶을 살아가도록 역사하고 계신다.
보다 더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청지기 훈련을 성령께서 직접적인 교사로서 배후에서 역사하고 계신다.
(2)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
신앙은 생명력이 있는 것이므로 언제나 성장하는 것이다.(마13:1-23)
1) 영성의 성장
바울은 영성을 십자가와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이라고 하였으며, 복음서에서 예수께서는 여성을 하나님 나라와 회개로 말씀하셨고,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은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대 수도사 베네딕트는 영성을 안정, 복종, 겸손이라고 하였고, 프랜시스 바하시스는 그리스도의 사랑, 복음 그리고 교회라고 하였다. 또한 루터는 영성을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게 여겨주시는 은혜’라고 하였다.
이처럼 영성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존재하는데 이것들을 모두 종합해 보면 하나님을 향한 신앙 성숙이라고 할 수 있다.
2) 말씀과 삶의 조화
지금까지 우리는 말씀과 삶의 부조화로 인해 생활에 열매가 없었다. 즉 성령의 열매가 없어 청지기로서의 삶의 가치를 나타내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미온적이고(계3:14-16), 세상 사람에 대하여는 위선자가 되어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모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말씀 묵상과 더불어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3) 신앙 갱신
신앙은 정지상태에 있으며 퇴화되고 무기력하게 되며 또한 도전해오는 세속문화에 접목되어 동화되어 버리고, 곧 세속주의에 빠져버리게 된다. 세속주의라는 것은 “세상에 신앙을 양보하자”는 것으로서 세상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이다.
청지기는 말씀을 통한 변화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켜 나가면서 세상에 대해서도 변화의 주도자가 되어야 한다.
4) 공동체 삶의 실천
첫째, 교회에서의 공동체 윤리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개인 이기주의가 교회에까지 침투되어 공동체 의식이 희박해져 가고 있다. 말세에 처한 우리 교회는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 사회에서의 책임 윤리(마5:39-44; 롬12:14-15; 마5:13-16)
(3) 시대적 요청
오늘날 역사는 굉장히 빠르게 변화되어 가고 있다. 미래 학자들의 공통적 견해에 의하면, 미래 사회는 고도의 기술 사회, 고도의 공해사회, 고도의 경쟁 사회, 고도의 긴장 사회, 비인간화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변화되는 세상에서 청지기적 삶을 살기 위한 훈련이 없이는 전쟁터에 무기 없이 나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주크(Zuck)박사는 훈련의 필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① 성경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필요성
② 평신도 지도자 양성의 필요성
③ 교회 구성에 있어서의 어린이분과 조직의 필요성
④ 미혼자에 대한 사역의 필요성
⑤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필요성(천재, 영재, 장애자)
⑥ 외부에 파급되는 생동적 필요성
⑦ 철저한 가정교육의 필요성
⑧ 새로운 교육 방안을 지향할 필요성
⑨ 사회적 변화에 민첩한 교회 봉사의 필요성(도시화의 인구급증, 여가 증대, 기계화, 부도덕, 세속주의)
⑩ 교리와 생활 조화의 필요성
즉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신앙의 주체성 확립과 도전해 오는 문화에 대하여 응전하기 위한 신앙 훈련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제2장
청지기 훈련에 방향 설정
1. 기독교 신앙 정체성 확립
오늘날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의 위기는 자아 확립의 위기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삶의 의미와 목적으로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청지기 훈련은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을 통해 청지기로서의 존재 의미를 일깨워 주고 기독교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해야 한다.
2. 사회 변혁의 주도적 임무 수행
세상을 향한 교회 또는 이웃을 위한 크리스찬의 봉사적인 행동실천의 과제를 말한다. 교회는 복음을 통해 사회를 새롭게 변혁시켜 나아가야 하는 책이 있다. 청지기의 사회봉사는 첫째는 하나님의 명령 수행이며 둘째는 영혼구원에 있다.
3. 평화 통일의 주역
이제는 민주화 시대를 맞이하여 통일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교회는 국가에 대해서 비판적이면서도 건설적인 방향을 모색할 때다. 한국 교회는 앞으로 예언자적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융통성 있게, 특히 평화 통일이 민족적 과제인 만큼 정부와 온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창의적인 비판을 거듭하면서 합의의 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4. 환경 보전의 주도자
자연 통치의 위임을 받은 청지기는 자연과 분리되어 자연을 착취하는 존재아 아니다. 기독교적 청지기 정신은 자연을 가꾸고 보호하고 보전하는 것이다.
5. 청지기 의식 고취
지금 한국 교회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즉 사회가 교회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러한 위기가 초래되었는가?
첫째, 신앙의 정체성 상실
둘째, 물량주의
셋째, 독선과 이기주의 및 배타주의
넷째, 교파 분열(장로교만 해도 140여개 교단, 장로교 총회만 해도 135명, 비근한 예로 각 교단마다 교단 신학교의 존재 의미를 부여하면서 신학교를 세웠는데, 무인가 신학교까지 합쳐184개의 신학교가 있다.
다섯째, 교파 확장(교세)에만 관심을 갖는 성장제일주의
여섯째, 사회 봉사를 외면한 집단 이기주의
위와 같은 문제점은 결국 사회를 책임지고 나아가야 할 교회가 사회를 외면함으로써 교회로서의 공신력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청지기 훈련을 통하여 수직적 믿음과 수평적 사랑의 조화를 이루어 신앙의 정체성과 더불어 청지기 의식을 일깨워 줌으로써 하나님앞 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청지기의 사명을 다하게 해야 한다.
제3장
청지기 훈련을 위한 조명
청지기 훈련은 기독교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하여 실천적이고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경건 훈련이다. 그러기에 청지기 훈련은 다음의 렌즈들에 의해 조명되어질 때 청지기 훈련으로서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그것은 성경의 렌즈, 역사의 렌즈, 문화의 렌즈, 성령의 렌즈이다.
필자가 성령의 렌즈를 강조하는 것은 성령께서도 청지기 훈련의 주도적 역할을 하고 계신 주체자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동반하지 않는 훈련은 바로 인본주의와 세속주의적인 교육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1. 성경의 렌즈
청지기 훈련은 말씀을 기초한 철저한 훈련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신앙생활, 교회생활, 사회생활 등을 성경의 렌즈로 날마다 조명함으로써 언제나 성경에서 해답을 찾는 삶을 찾아야 한다.
2. 역사의 렌즈
역사의 렌즈는 과거의 렌즈이다. 성경의 진리의 책이지만 해석자에 다라서 다양하게 해석되며 성경적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전 이해와 개인의 경험이 다분히 포함되게 된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혹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미명 아래 많은 환상과 잘못을 저질렀음을 성경이 보여주고 있는 바 우리는 지난날의 과오를 살펴 오늘의 교훈으로 삼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3. 문화의 렌즈
오늘의 문화는 우리의 도덕적 풍토를 변질시켰고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현대 문화에 눈을 감지 말고 성경적인 렌즈로 오늘의 문화를 조명하여 우리의 신앙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즉 문화의 비복음적인 도전을 말씀에 입각한 훈련을 통해 방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한 우리는 세상 문화에 대해 무조건 배타적인 자세를 가지면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세상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도구로 문화를 이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문화의 변형자로서 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켜서 이 땅에 그리스도인의 문화가 꽃피도록 해야 한다. 우리 나라 국민 중 25%가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문화를 정착시키지 못한 것을 깊이 회개해야 한다.
로마 제국은 콘스탄틴 대제 때 기독교 인구가 불과 8-9%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독교를 제국의 국교로 공인케 하는 저력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볼 때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4. 성령의 렌즈
성령의 역사 없이는 청지기 훈련도 없다. 우리에게 아무리 좋고 다양한 훈련 방법과 프로그램이 있다고 할지라도 진리의 영이 되신 성령님께서 지혜를 주시지 않으면 천국의 비밀을 깨달을 자가 없다.
성령의 궁극적 사역은 무엇인가?
(1) 중생과 구원을 얻게 하심
중생은 사람 안에 새 생명의 원소를 심고 영혼의 주관적 성향을 심화시키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이다. 중생도 독점적으로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사역이다. 이것은 우리의 심정 밖으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직접적 사역이요, 성령의 동작으로서 인간은 피동적일 뿐이다.
중생은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구속사역(엡1:14), 새 창조 사역이다.(고후5:17).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약속이며(겔11:19, 요6:45), 영원한 뜻이다.(시 33:11, 잠19:21, 사46:10)
중생은 지, 정, 의의 변화를 가져다 준다.(고전2:14, 시42:1, 살후3:5) 이와 같은 체험을 통해 중생자는 주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의지가 굳세어진다.
또한 중생의 결과 믿음을 통해 구원 얻고(엡2:8),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요1:12),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요일5:4), 환난에서 승리하고(벧전1:5-6), 천국 소망을 갖고(벧전1:3, 롬8:24)사랑을 실천하게 된다.(요일4:19-21)
(2) 능력을 부여함
어떤 상황에서든 능력을 나타내는 능력의 원천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리 힘으로는 그것을 해결하기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때도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3)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함
성령을 좇아 사는 사람은 성령을 충만히 받게 되므로(엡5:15) 내적 심령의 성숙과 더불어 삶의 현장에서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갈5:22-23).
성령의 열매는 전적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청지기가 성령에 의해 살 때에 필연적으로 맺는 열매인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저절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인도와 역사하심으로 훈련을 받은 자들이 맺는 가장 이상적인 삶의 열매이다.
(4) 증인된 삶의 실천(행1:8)
전도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능력 있게 전할 수 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하셨듯이 성령께서는 전도자로서 증인된 삶을 살도록 하게하는 원동력이 되신다.
제4장
청지기 훈련의 실제
1. 청지기의 의미
청지기는 주인의 집에서 주인의 의도에 따라 주인을 섬기고 주인을 위해 일하는 자이다. 또한 주인의 주권 하에서 집안의 가사와 재무를 비롯하여 자녀와 종들까지도 관장한다. 오늘날 현대어로 말하면 지배인 또는 관리자라고 일컬을 수 있으므로 청지기는 주인의 대리자이다.(벧전4:10, 창43:16,19; 44:1,4)
그러므로 주를 믿고 구원을 얻은 모든 신자는 하나님 앞에 부름받은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집(교회)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받은 은사를 충분히 활용하여 충성하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또한 교회의 모든 청지기는 주인되신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2. 청지기의 구분과 의미
교회의 모든 직분을 청지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성경 여러 곳에 청지기의 역할이 나타나 있는 것과 동시에 벧전 4장10절의 ‘선한 청지기’라는 말씀 속에서 규명되어지고 있다. 그러면 교회 안의 청지기 직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1) 직분의 다양성
1) 목사
① 목사의 의의(총회출판국 편, 헌법참조)
② 목사의 자격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학식이 풍부하며 행실이 선량하고 신앙이 진실하 며 교수에 능한 자여야 하며, 모든 행위가 복음에 합당하여 범사에 존경과 성실함을 나타내야 한다. 또 목사는 자기 가정을 잘 다스려야 하며 외부의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아야 한다.
③ 목사의 직무
첫째, 기도, 강도, 찬송, 성례, 축복, 교육훈련, 심방, 치리권등.
둘째, 복음전파와 구령 사업
셋째, 교회를 설립하고, 교회 일꾼을 세울 권리
넷째, 문서활동을 통해 복음 전파에 유익하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교육지도자로서 총회, 노회, 지교회에 관계되는 기독교교육기관에서 청빙을 받으면 교육하는 일로 시무할 수 있다.
2) 장로
① 장로의 의의
장로의 직분은 요셉 때에도 있었다.(창50:7) 모세 때에는 백성의 대표로 장 로를 세워 백성의 다툼과 소송 문제를 재판하게 했는데 그 수가 70인이었 다.(출18:21-25, 민11:16-25) 신약에서는 유대인의 회당제도에서 유래되어 장로는 질서 유지의 책임을 맡았다.
초대교회는 장로에 의한 정치혀태였으며(행11:30) 다시 그것이 이방 교회에 확대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장로의 역할은 목사와 협력하여 교회를 치리하는 데 있다.(딤전5:17, 롬12:7-8)
② 장로의 직무
첫째, 교회의 신령적 관계를 총괄한다.
둘째, 도리 오해나 도덕상 부패를 방지한다.
셋째, 교우를 심방하여 위로, 교훈, 간호한다.
넷째, 교인의 신앙을 살피고 기도한다.
다섯째, 특별히 심방할 자를 목사에게 보고한다.
장로는 무슨 일에든지 목사를 주체로 하고 협동한다.
3) 집사
① 집사의 의의
집사직은 장로직과 구별되는 직분이나 무흠한 남자 교인으로 지교회의 교 회의 택함을 받고(공동의회 2/3찬성)목사에게 안수받는 교회의 항존직이다. 집사가 항존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근거는(행6:1-6) 교회의 재정을 맡고 구 제를 해야 하는 일 때문이다.
② 집사의 자격(딤전3:8-13)
③ 집사의 직무
집사의 직무는 목사와 장로와 협력하여 빈핍한 자를 권고하며 환자와 갇힌 자와 과부와 고아와 모든 환난당한 자를 위문하되 당회의 지도 아래서 행하며 교회에서 수금한 구제금과 일방 재정을 수납, 지출한다.
4) 권사
① 권사의 의의와 유래
권사 직분은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으며 외국 교회에도 역시 존재하지 않 고 다만 한국 교회에서 필요에 의해 세워진 직분이다. 한국 장로교회의 통 상적인 예로는 “권사는 여자로 하되 안수받지 않은 종신직”이라고 볼 수 있다.
② 권사의 자격
여신도 중에서 만 50세 이상된 입교인으로 흠없이 다년 간 교회에 봉사하고 공동의회에서 2/3이상의 투표수를 얻은 자라야 한다.(감리교, 성결교에서는 남․녀 공용된 직문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나이도 40세부터이다.)
③ 권사의 직무
당회의 지도대로 교인을 방문하되 병환자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인을 돌아보는 일이다. 심방과 기도가 중요 임무이다.
5) 서리집사
① 서리집사의 의의
집사후보생으로 집사 직분을 배우며 교회 봉사의 경험을 쌓는 기간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또한 여자 서리집사의 경우는 권사 후보생으로 교회 봉사와 건덕을 위한 제반 경험을 쌓는 기간으로 볼 수 있다.
② 서리집사의 자격
안수집사와 거의 동일하다.
6) 구역장
① 구역자의 의의
구역은 작은 교회라는 소그룹 집단으로 구역 식구 간에 서로 배우고 친교하는 지역 속의 교회라고 볼 수 있다. 구역장은 교회에서 흩어진 청지기들을 구역 단위 속에서 신앙을 결속시켜 나가게 하는 팀장이다.
② 구역장의 자격
구역장은 교회에서 신앙이 돈독하고 가르치기를 잘하며 통솔력이 있는 자로 목사 혹은 당회가 남녀를 선정하여 구역을 살피면서 봉사하게 한다.
③ 구역장의 직무
구역의 성장과 신앙 갱신과 성숙을 위해 기도하며 가르치기에 힘쓴다.
특히 구역 내의 모든 식구들을 위해 기도하고, 구역의 식구들을 보살피면서 이상 유무를 파악하여 부지런히 심방하고, 유고의 가정을 도와 주면서 담임 목사에게 보고하고 구역의 교사로서 책임감 있게 일해야 한다.
7) 권찰
① 권찰의 의의
권찰은 직분이라기보다는 직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이유는 대부분 교회의 직분자가 맡은 직무로서 구역 청지기들을 보살피면서 위로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② 권찰의 자격
권찰은 신실한 신앙을 갖고 신앙의 체험을 한 자로서 구령의 열정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특히 권면의 은사를 받은자로서(롬12:8)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할 수 있는 신앙의 성품을 소유한 자여야 한다.
③ 권찰의 직무
구역의 중간 보고자로서 구역 식구의 애경사가 있으면 구역장과 교역자에게 보고한다.
8) 전도사
① 전도사의 의의
전도사는 당회의 추천으로 노회가 고시하여 자격을 인정하면 유급교역자로 당회나 목사가 관리하는 지교회의 사무를 보조케 한다.
② 전도사의 자격
신학교나 신학대학원 재학중이거나 졸업한 자로서 노회에서 고시를 통해 인정하되 특별한 경우는 이 한계에서 벗어난다.
③ 전도사의 임무와 권한
미조직 교회(당회가 구성되지 못한 교회)에서는 당회장의 허락으로 말씀을 선포하면서 제직회 때 임시회장이 될 수 있다.
9) 전도인
① 전도인의 의의
신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어도 당회의 임명으로 불신앙자에게 전도하도록 세우는 데 의의가 있다.
② 전도인의 자격
신앙이 본이 되는 사람으로 당회에서 임명한다.
③ 전도인의 직무
전도사와 같은 구령의 열정으로 당회의 지도 아래 심방을 비롯하여 불신자들에게 전도하는 유급사역자이다.
10) 교사
① 교사의 의의
은사를 받은 자로서 입교된 장년과 어린이 신앙 교육에 일조한다.
② 교사의 자격
무엇보다 신앙과 성경 지식을 고루 갖춘 자로서 가르치는 영이 되신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은 자여야 한다. 특히 교사의 직분을 맡은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직분과 은사의 소유자이다.
③ 교사의 직무
기독교교육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배워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돕는 데 있다.
11) 성가대원
① 성가대원의 의의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한다.
② 성가대원의 자격
은사를 가진 자로되 구원의 감격을 체험한 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 찬송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려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는 자여야 한다.
③ 성가대원의 직무
찬양은 예배의 중대한 요소이며 성가대원은 예배를 돕는다.
이상과 같은 교회의 모든 직분을 맡은 자들은 하나님의 부름받은 일꾼이요, 청지기이다. 이처럼 각자가 맡은 직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는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라고 가르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일을 맡은 청지기라고 할 수 있다.
즉 청지기라는 말은 ‘오이코노모스’로서 ‘집안 관리자’라는 뜻이며 ‘계획하고, 단속하고, 관리한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그의 구원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세우신 모든 성도들에게 청지기 사역을 맡기셨다.
그러기에 베드로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라고 권면하였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모든 크리스찬은 하나님 앞에서 부름받은 청지기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직분자, 성도들은 총체적인 명칭으로서 ‘하나님이 청지기’이다.
(2) 청지기의 자격
1) 영적 자격
청지기는 최우선 과제로 영적인 면이 갖추어져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직업적이고 외적인 면을 보시기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영적인 면을 보시고 선택하셨다.
① 믿음이 충만한 자
참된 믿음이란 중생에 기초하여 깊이 뿌리를 박고 성령의 잔액을 받아 가꾸어지는 자가 맺는 결실의 신앙이다.(마13:20-21, 골 2:7) 결국 믿음이 충만하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자신의 중생 체험과 구원 체험이 확실한 것을 의미한다. 구원얻는 믿음을 가진 청지기는 하나님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큰 역사를 이루어 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청지기는 말씀에 입각한 바른 믿음 아래 자기 구원에 대하여 확신해야 한다.
② 성령이 충만한 자
예수를 믿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의 열매는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하여-사랑, 희락, 화평
둘째, 이웃에 대하여-인내, 자비, 양선
셋째, 자신에 대하여-충성, 온유, 절제
궁극적으로 청지기로서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을 할 때에 인간의 지식과 재능과 지혜로는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슥4:6) 성령 충만을 받은 청지기만이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권능에 의해 청지기의 궁극적 임무인 복음 전파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빌3:13-14)
③ 지혜가 충만한 자
사도행전 6장 3절에 나오는 지혜는 세상에 속한 자연적 지혜(고전1:20, 고후1:12, 약3:15)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약3:17, 마12:42)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눅2:40, 엡3:10)등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청지기의 영적 자격에서 보는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참으로 고상하며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야고보 사도는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는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약3:17)라고 말하고 있다.
지혜의 충만함은 하나님을 바로 하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 미디안 사람을 치기 위해 용사로 부름받은 300명에게는 남다른 지혜가 있었으며(삿7:5-7), 성막을 만드는 데도 지혜있는 브사렐과 오홀리압을 택하여 쓰셨다.(출31:1-6) 모세시대에 송사를 처리하도록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울 때도 재덕을 겸비한 자를 선정하였다.(출18:21-27)
지혜는 하나님의 일을 보다 더 효과적이고 바르게 완수하도록 만든다.
④ 칭찬듣는 자
칭찬이란 ‘증거를 받는다’, ‘입증된다’, ‘인정된다’ 등의 뜻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증거를 받은 자이다. 신앙적으로도 은혜가 충만하며 인격적으로도 신앙과 생활의조화를 통해 외부의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게 된 자들이었음을 나타낸다. 사실 교회의 청지기로서 신앙과 인격과 생활에 균형이 잡힌 자가 피택될 때 복음에 대한 신뢰도가 더욱 확실해질 수 있다.
2) 윤리적 자격
① 디모데서의 윤리(딤전3:1-11)
청지기 자격은 자기 자신의 인격이 올바르게 형성되어 남에게 덕을 나타나내고, 물질생활에 대해서는 깨끗하고 가정생활도 원만하여 타인에게도 신뢰감을 주고, 교회를 다스릴 때 인정을 받는 것으로 나와 있다. 더 나아가서 사회적으로도 평판이 좋아 기독교의 본분인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 하는 청지기의 윤리적 삶의 태도가 나타나 있다.
② 디도서의 윤리(딛1:5-9)
감독은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청지기로서 진리의 교훈으로 잘 가르치고 권면할 뿐만 아니라 거짓 교훈에 대하여 진리를 변호하며 수호해야 할 책임이 있으므로 진리의 말씀을 바로 알고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굳게 붙잡을 것을 교훈한고 있다.
③ 베드로서의 윤리(벧전5:1-3)
첫째, 자신을 먼저 잘 다스리고,
둘째, 가정을 잘 다스릴 것이며,
셋째, 교회를 잘 다스리고
넷째, 외부의 사람들에게도 신뢰감을 주고 인정받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3) 공적 자격
① 하나님의 인정
청지기는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청지기 직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겼던 인물이 사도 바울이다. 자신은 철저히 종의 입장에서 부르심을 받았고 택정함을 받았음을(롬1:1) 밝히며 또한 그리스도의 일꾼(청지기)이라고 강조하고 있다.(고전4:1) 이와 같이 자신의 청지기 직분을 ‘신적 의식’을 갖고 보았기에 온전한 헌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은 청지기로서 쓰임받음에 대하여 그릇을 비유로 들어 설명하였다.(딤후2:20) 깨끗한 그릇이라야 주인으로부터 쓰임을 받듯이 청지기 역시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이 죄씻음을 받고 거듭나고 깨끗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시고 사용하신다는 결론을 지었다.
② 가정에서의 인정(시127:1)
무엇보다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라야 한다. 이것은 가정으로부터의 인정을 뜻한다.
신앙의 위인들은 모두가 가정에서의 신앙교육 전통에 의해 자녀들에게 신앙을 계승하였는데, 대표적으로 아브라함의 가정, 이삭의 가정, 야곱의 가정 등을 들 수 있다. 신앙의 위인들은 가정의 청지기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가정에서 존경과 신뢰를 얻었다.
③ 교회에서의 인정(행6:3)
청지기로서 교회에서 인정받아야 하는 까닭은 교회는 공동체적 삶의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교회는 성도의 사랑과 교제가 있는 곳이므로 서로에게 존경과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④ 사회로부터의 인정(딤전3:7)
기독교인들은 하늘나라의 시민인 동시에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과 무관할 수 없다.(벧전2:12) 그러기에 청지기들은 세상과 사회에 대하여 모범적인 시민이 되어야 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마5:13-16) 이러한 실례를 요셉에게서 볼 수 있다. 요셉은 옥중에서도 모범수로서 같은 처지에 있던 죄수들을 도와 주었다. 결국 그의 친절과 사랑과 덕에 의해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다.(창41:40-46) 청지기다운 청지기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 밖에서도 덕과 모범을 통해 사회와 외인들에게도 인정받는 것이 요구된다.
3. 청지기 훈련과 방안
(1) 청지기 훈련의 목표
그 동안 한국 교회에서 이루어진 청지기 훈련의 전형적인 스타일은 부흥회였다. 그런데 1990년대부터는 미국에서 일어났던 제자화훈련(Marking discipleship)이 도입되어 교인들을 상당히 활성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부흥회와 제자 훈련을 통해서 교육되고 있는 현상을 볼 때 여전히 성직자의 역할이 지배적임을 알 수 있다. 사회의 흐름은 수직적인 관계보다는 수평적 관계를 더 원하고 있기에 이것을 교육으로 보편화시키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러므로 21세기를 향한 책임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의 이론 위에 실천적인 훈련이 강행되어 지금까지의 구태의연한 신앙과 세속적인 의식구조를 갱신하여 청지기적 살을 살아가도록 청지기 훈련을 통해 실천력을 배양시켜 주어야 한다.
1) 바른 신앙과 정립
하루 속히 갱신되어야 할 문제점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두드러진 것이 현실 도피적이고 지나친 내세주의적 사상과 기복신앙과 교파주의와 개교회주의이다. 이러한 영향은 전통적인 세속적 신앙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무속 신앙에 젖은 샤머니즘 사상이 수천 년 동안 한국인의 정신문화를 지배해 왔으며 자연히 한국인의 전통인의 의식 구조를 형성시켜 왔다.
둘째, 불교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바 불교는 약 1700년 간이나 한국인의 정신문화를 지배하여 왔다.
셋째, 불교의 몰락 이후 유교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인본주의적이고 요행주의적인 의식구조를 형성시켜 왔다.
그러므로 청지기 훈련을 통해 세속적인 신앙 의식 구조를 갱신하여 올바른 신앙관을 정립시켜 나가야 한다.(엡4:22-24)
2) 바른 교회관 정립
일반적으로 교회라 하면 물량적이고 외형적이며 가시적인 건물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이 한국 개신교 교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교회를 현상적으로만 보는 것은 바른 교회관을 갖지 못한 결과이다. 성경적인 교회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불러 모으신 청지기들로서 개인이 교회의 기초가 되면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가 모인 공동체이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선택 속에서 택정함을 입은 청지기는 다 구원의 자녀들로서 교회의 기초요, 하나님의 내적인 부르심과 성령의 인치심으로 교회가 되는 것이다.
3) 기독교 윤리관 정립
신앙 형태가 말세주의, 기복주의, 개인적 이기주의에 빠지면 참 종교로서의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신앙과 윤리의 균형을 잃어가고 있기에 기독교 윤리 부재의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무신론자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고, 열심히 헌금하고, 열심히 기도하교, 교회 안에서는 훌륭한 교인인데 교회 밖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없고 윤리가 없다. 이것이 한국 교회 기독교인들의 실상이다.
기독교 윤리는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 갱신과 자기 희생의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므로 청지기 훈련이 요청된다.
4) 기독교 가치관 정립
현대 사회는 가치관의 혼돈 시대가 되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퇴폐 풍조와 물질 만능주의가 만연해 있는데, 이는 한국 사회의 저변에 깔려있는 가치관으로 인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소유와 소비, 향락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 사회는 병들어가고 있다. 더욱이 돈이나 권력이 가져온 외면적 가치를 중히 여기므로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시키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시대적 조류에 편승하여 신앙을 가진 청지기들조차도 영적인 것보다는 세속적인 것, 믿음보다는 물질에 더 가치를 두고 추구하기 때문에 결국은 물질 만능주의, 기복주의, 개인주의에 빠지는 오류에 젖어 있다. 청지기 훈련은 이러한 잘못된 가치관을 과감히 갱신하고 성경에 입각한 기독교 가치관을 심어줌으로써 이 땅에서도 하나님 제일주의를 추구하는 신앙을 심어주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5) 기독교 역사관 정립
기독교 역사관이란 인간 역사의 발전 과정을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 즉 시간과 영원과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역사관이다. 사람들에게 역사의식이 없을 때 과거에 대한 교훈과 미래에 대한 방향이 설정되지 않으며 현실에만 집착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 역시 역사의식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과거의 아름다운 보수신앙과 순교적 삶의 모습을 외면하고 또한 미래에 있어서도 삶의 방향과 좌표가 설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청지기 훈련은 기독교 역사관을 심어주는 훈련이다. 인간의 개인적 삶, 국가의 흥망성쇠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기독교 역사는 구속사로서 궁긍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역사이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청지기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줌으로써 미래 지향적인 신앙을 통하여 과거의 고난과 영광을 깊이 되새기고 현재의 모든 사건을 성경의 렌즈로 조명하여 교훈을 심어주어 오늘의 신앙과 생활의 모순과 괴리 등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과 갱신을 해야 한다.
청지기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신앙 안에서는 공동체 윤리의 실천과, 세상과 사회에 대해서는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는 이중적 청지기의 삶이 이루어짐으로써 결국은 양자가 일치된 삶을 사는 것이 기독교 역사관 정립이다.
6) 기독교 문화관 정립
기독교 문화의식이 강한 청지기는 세속적 문화의 유혹을 이기게 된다. 오히려 기독교 문화관이 정립된 청지기는 신앙의 주체성을 통해 세속 문화에 대하여 신앙 안에서 배격하면서 변혁시켜 나가면 기독교 문화를 창출해 나아가는 것이다. 기독교 문화는 복음이 현 삶의 현장에 정착되는 것을 말한다. 또한 더 나아가서 기독교 문화는 세속 문화에 대하여 변혁의 자세로 대처해 나아가는 것이다.
7) 성경적 청지기상 정립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부름받은 청지기들이다. 하나님께서 청지기 개인에게 은사와 직분을 맡겨 주셨다.(벧전4:10) 또한 신자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교회와 사회 안에서 행할 수 있는 은사를 갖가 받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교회에서 봉사해야 하며 나아가서는 세상에서도 청지기적 삶의 자세로 봉사해야 한다.(마25:14-30)
오늘날 교회 안에는 청지기 의식이 없는 자들이 수없이 많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귀한 은사들을 녹슬게 하고 있다.
(2) 청지기 훈련의 방법
1) 실물을 통한 훈련
P.R.Wendt는 실물(시청각) 교육의 효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주제에 관해서 사실을 가르치라.
둘째, 오래 기억이 남는다.
셋째,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넷째, 어휘의 성장을 도모한다.
다섯째, 의견과 태도를 바꾸라.
여섯째, 사고와 문제 해결을 하도록 자극하라.
일곱째, 기술의 학습 능률을 촉진하라.
2) 극적(dramatic)방법을 통한 훈련
예수님의 극적인 훈련의 방법으로는 최후의 만찬식과 세족식을 들 수 있다.(요13장)
더 나아가서 예수를 팔려고 계획한 가룟 유다에 대해서는 무서운 책망보다는 떡 한 조각을 주심으로써 회개를 촉구하시는 방법을 사용하셨다.(요13:30)
교회에 화평스러운 분위기를 강조하면서 이 방법을 통해 훈련시킴으로 현장감 있고 상당히 현실적이면서 깊은 감동을 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3) 비유를 통한 훈련
비유라는 말의 뜻은 “비교하기 위해서 한 사실을 다른 것과 같이 놓는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 50번 사용되었으며 공관복음에는 48번, 히브리서에 2회 기록되었다. 비슷한 말인 ‘비사’가 요한복음에 세 번 나타나 있다. 예수께서는 독특한 비유법을 사용하심으로써 폭넓은 지적 범주를 가르쳐 주셨고 깊은 진리를 포괄적으로 깨닫게 하셨다. 비유법은 설교에나 청지기 훈련에 자주 사용하는 예화를 통해 진리에 대한 교훈을 실감나게 해주고 있다. 특히 예화를 사용할 때의 주의점은 모두가 사실적이면서 현장감 있는 것, 시대를 초월하는 교훈적인 것이어야 한다.
4) 강화법(discourse)을 통한 훈련
예수께서 강화 설교를 하신 것에 대해 Horne는 ‘우리들에게 한 것’, ‘무리와 제자들에게’, ‘제자들에게’ 또는 ‘열두 제자들에게만 한 것’ 등을 포함하여 60여 가지를 열거하였다. 예수님은 이런 강화에 의해 많은 사람들에게 큰 교훈과 감동을 주셨다.
강화법의 효과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
① 훈련 주제와 제목을 명확히 할 것
② 청지기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체계를 세울 것
③ 중요한 내용을 반복할 것
④ 이해의 여부를 점거하기 위하여 질문할 것
⑤ 훈련 시간을 적절히 조정할 것
⑥ 도입시에 흥미롭게 이끌어 갈 것
⑦ 구체적 실례를 들 것
청지기 훈련 교사는 훈련에 임하는 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상황이 적합성 여부에 따라 훈련 내용을 전개해야 하며, 무엇보다 훈련교사가 내용을 준비해야 한다.
5) 토론식(conversation)방법의 훈련
이것은 개인을 상대로하여 대화식으로 가르치는 방법이다.
대화식 방법을 통한 교육에는 말을 잘 해야 하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 줄 수도 있어야 한다. 또한 예수님의 대화에는 훌륭한 기질, 관대한 성품, 솔직성, 동정심, 열정, 진지함, 겸손이 포함되어 있다.
간단 명료, 의미 심장, 직설적이고 분명, 인격적, 교육의 대상에 따라 차이를 둠. 교훈적이고 의사 소통이 활발. 눈길을 사용함으로써 목적을 달성시킴. 반응적. 용감. 훈계와 책망이 있음. 경이적. 친밀감. 평판을 불러일으킴. 기쁨을 주시는 동시에 아픔을 주심. 독백일 때도 있고, 대화일 때도 있는데 주심과 취하심이 병행됨. 눈치와 재채가 있음. 비타협적임. 고결함. 친구를 만드는 동시에 원수도 만드심. 고무적임.
이러한 토론식의 교육 방법은 개인 전도 및 현대 교회의 소그룹에 적용되고 있으며 청지기 훈련도 이 방법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어떤 주제를 놓고 서로 의견을 좁혀 나갈 수 있으며 때로는 설득력 있게 감동을 줄 수가 있다.
토론식의 교육 방법에서 기대되는 것이 여섯 가지로 나타나 있다.
① 스스로의 사고를 높이고 스스로 생각하는 태도
② 자기 의견을 상대방에게 명확히 발표하고 전달하는 태도
③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태도
④ 스스로의 존엄성을 이해하고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태도
⑤ 논의를 거듭하여 얻어진 이상 그에 복종하고 협력하는 태도
⑥ 남의 의견을 들음으로써 자기의 인식을 확대하고 심화하는 태도
청지기 훈련시에 현실적인 사회 문제를 놓고 서로가 토론하여 성경적인 답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실례로 기독교인의 주초, 낙태, 환경, 전쟁, 인종 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여 실질적인 훈련 효과를 낼 수 있다.
6) 질문식 방법의 훈련
예수께서는 제자들 및 청중들에게 질문식의 교육을 수없이 하셨다. 예수님의 질문 교육은 154가지나 된다. 예수님은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하려고 하는 사람의 영혼을 안정시키려는 것이며, 자극하고 생을 더 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교육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질문하셨다.
질문 교육 방법의 장점
① 동기를 부여한다.
② 과거의 체험을 일깨워준다.
③ 흥미를 유발시킨다.
④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내리게 한다.
⑤ 실제 생활에 적용하게 한다.
⑥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접촉이 쉽다.
⑦ 교육의 결과를 점검할 수 있다.
⑧ 반복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제는 청지기들의 교육 수준도 상당히 축적되어 있으므로 청지기 훈련에는 ‘문답식 교육과 훈련’이 요청된다고 볼 수 있다. 질문식 방법을 많이 이용함으로써 훈련 받은 자들에게 깨우침과 확신을 주고 질문의 대답자들에게는 자신감을 불어놓어 주고 있다. 질문교육 방법을 한 사람에게 질문하여 나오는 답을 통해 여러 청중들에게까지 주입시켜 주는 효과가 있기도 하다. 아쉬운 점은 질문에 선뜻 응하는 자들에 적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까지 우리는 주입식 교육만을 받은 결과로 자기의 표현력이 미숙하다는 점이다.
7) 상담을 통한 훈련
성경은 산상수훈이나 다락방 설교 외에는 병든 자를 하나하나 고쳐주시는 일, 아니면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나서 대화하신 일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교훈을 주어야 더 효과적인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작은 자 하나에게 진리를 나누어 주는 일에 모든 정령을 쏟으신 교육과 훈련은 상담을 통한 교육과 훈련의 좋은 본이 되기도 한다.
제5장
청지기 훈련과 신앙 갱신
1. 신앙 의식 구조 형성 배경
첫째, 샤머니즘이요 둘째, 불교 셋째, 유교였다. 이러한 세속적인 종교들이 한국인의 심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그 결과 기독교로 개종한 후에도 기독교 신앙생활 속에 세속적인 종교의식 바탕이 배어 있으므로 신앙생활에 비복음적이고 이질적인 요소가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 샤머니즘
1) 샤머니즘의 의미
'Shaman'은 무당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무당 종교 또는 무교라고 일컫는다. Shaman이란 말은 17세기 후반의 서구 민속학자들이 중앙아시아의 유목 민족들 사이에 퍼져 있는 비교적 보편적인 종교현상을 발견하고나서 그를 Yenisei 강 연안 Baikai지방의 퉁그스족들의 토속어 Shaman이라는 말로 통칭했던 것이다. 이러한 Shaman들의 종교적 체제를 ‘Shamanism'이라고 한다.
2) 샤머니즘의 특성
샤머니즘의 신관은 정령 숭배의 원시 종교로서 범신론이다. 이것은 내적이거나 내세가 없으며 현실적이고 육체적인 신관일 뿐이다. 다만 신령과의 수직 관계가 있을 뿐 수평적인 사회적 관계가 결여되어 공동체 의식이 없다. 더 나아가서는 신앙의 주체적인 신앙 결단이 없이 무당으로 하여금 재앙을 물리칠 것과 복을 빌어달라고 의뢰하여 버린다. 이것은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한 결과요, 운명론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또한 의타적인 운명론에 빠져 있으므로 진취성이 없고, 개혁과 창조성이 없으므로 고루한 보수성에 정체되어 있다.
3) 샤머니즘의 특징
무교는 일반 종교와는 달리 일정한 조직체를 가지거나 특정 장소에 모여 공동체로서의 집회는 가지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무당(박수)과 단골과의 개인적 관계를 가질 뿐이다. 그러나 무교가 인간의 생사 화복에 대하여 도움을 주고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가르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교의 범주 안에서 무교가 가르치는 내용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① 신관
무교가 믿는 신들은 다신론적 신이며, 그 신들은 어떤 도덕적 품격을 가진 신이 아니라 단순히 비물질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무교의 신들은 병을 고친다든가 미래를 예언할 능력을 가진 신은 아니다. 모든 죽은 사람의 영도 신이 되어 무당의 초대의 대상이 된다.
② 인간관
자연과 영들에 의하여 지배되는 매우 무력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현세에서나 죽은 후에 복된 삶을 살려면 최선을 다하여 모든 신들에게 재물을 바치고 그 신들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무당이 전해주는 신탁에 의해 살아야 한다.
③ 무당과 박수의 위치와 역할
무당과 박수는 신내림을 체험한 후에는 초인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신탁을 받아 신도에게 전달해 주는, 이를테면 신과 인간의 중간에서 때로는 중보자로서, 때로는 징벌자로서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한 번 신내림을 체험하고 무당이 되면 그는 죽을 때까지 그 특권을 가진다. 그리고 그는 신인(神人)세계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무당은 미래를 점치는 일을 많이 한다. 그때 무당은 동양철학의 근간인 팔쾌, 육효, 오행사상을 이용하여 개인의 길흉 화복을 예고한다. 이와 같이 무당은 네 가지 일을 위주로 한다. 즉 치병, 사제, 예인, 저승으로의 인도자 역할이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기능에는 보편 타당성이 없다.
④ 역사관과 국가관
무교에는 뚜렷한 역사관이나 국가관이 없다. 주로 개인의 길흉 화복을 점쳐 주면서 다가오는 불행과 재화를 방지하고 피하는 길을 알려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의욕적으로 국가를 좋게 건설한다든가, 어떤 역사의식을 가지고 그 방향으로 역사를 창조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또는 뚜렷한 문명관을 가진 것도 아니다. 현재까지 무교는 민속신앙으로서 일종의 생활 수단으로 이용될 뿐이다.
4) 샤며니즘의 영향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사람들은 현세적 기복주의 신앙에 빠지게 되었다. 기독교의 복의 개념은 누구나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약속된 복을 받는 것이다. 성경의 복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다같은 영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단 구약은 지상의 물질적인 것과 장수, 부귀, 자녀 등의 표현으로 나타났고, 신약은 산상보훈에 나타난 대로 심령적인 것이다. 그러나 다함께 하나님 나라를 초점으로 한 구속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외면한 현세적 축복만을 강조하고 기대하는 것은 무속적이요 세속적인 것이다.
(2) 불교
1) 불교의 의미
불교는 A..D. 372년(고구려 17대 소수림 왕 2년)에 중국의 승려 순도가 불경과 불상을 가지고 들어와 고구려, 백제, 신라에 퍼져 약 1700년 간 한국인의 정신 문명을 지배하여 왔다. 불교는 인간 석가모니가 도달한 'Buddha(진리, 깨달음)‘가 되는 길을 가르치는 종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수양과 노력의 성과로 불타가 될 수 있다. 불교는 생성과 소멸의 순환의 일체를 인간의 고뇌와 번뇌의 결과라고 본다. 그러므로 이러한 고뇌의 세계에서 벗어나 고뇌 없는 극락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인간의 구원이요, 깨달은 자가 곧 불타가 되는 것이다.
2) 불교의 특성
불교는 자력 구원과 현실 도피주의자로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허무로 보며 인간의 모든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하는 부정의 자세를 견지한다. 불교는 인간 세계를 부정적 시각으로만 보기 때문에 염세주의에 젖어 있다. 고려와 조선 불교의 특색은 종교 혼합사상으로서 불교의 타락으로 샤머니즘과 융합하였으며 음양, 오행, 풍수지리 등과 혼합되어 미신으로 전락하였다.
불교의 혼합 절충주의로 한국 기독교는 혼합 종교의 본거지가 되었으며, 동방교, 전도관, 새일교 등이 생겨났는데 이들의 예배와 생활은 완전히 세속과 차단된 비윤리적 생활이었다.
3) 불교의 영향
불교는 현실에 대해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인생관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현세의 모든 것을 허무한 것으로, 인간의 생의 가치와 의미를 허무로 돌리면서 타계를 사모하는 타계주의를 가져왔다. 이런 의식 구조 속에서 수용된 기독교도 인생 허무와 타계주의 사상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더구나 설교자들의 설교가 복음적 축복인 속죄, 화해, 용서, 화평을 외치기보다는 유교적인 윤리 사상과 불교적인 인과응보 사상의 유산을 받아 설교를 하고 있다.
(3) 유교
1) 유교의 의미
유교는 공자의 철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윤리체계이다. 한국인의 의식 구조 형성에 결정적 요인을 제공한 것이 샤며니즘과 유교이다. 샤머니즘은 우리의 역사와 더불어 한결같이 살아온 민간 신앙이었으며 조선 오백 년 간이나 한국인의 정신을 지배해 온 생활 종교이자 사상이었다.
2)유교의 특성
유교의 특성은 ‘효’ 사상이다. 유교의 효는 죽은 조상에 대한 제사가 주종을 이룬다. 죽은 조상을 섬기는 것을 효의 태도로 여겨 제사 제도가 전래되고 있다. 이들이 죽은 조상을 신으로 섬기는 제사는 인격적인 신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현실주의로서 인간관계의 질서를 도모하는 윤리관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영혼, 사후문제는 관심이 없으며 다만 현실의 윤리 체계가 중요시된다.
인간적인 윤리 체계만을 중시하므로 가족 중심의 생활이 우선시되고 그러다 보니 가족 이기주의가 만연하게 되었다. 가족 중심주의로서 사회공익, 국가 공익의 관념이 결여되고 결국은 작당 파쟁의 원인을 제공하는 결과가 되었다. 더 나아가서는 자아 확립의 주체성의 결여로 모든 것이 가족과 연계되어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보수적 전통에 싸여 있다.
3) 유교의 영향
한국인의 심성 형성에 있어서 유교의 외면적 윤리는 일종의 체면과 얼굴을 존중하고 수치를 당하지 않으려는 윤리이다. 이러한 체면과 형식주의는 우리 기독교 신앙에서도 하나의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외형주의를 가져왔으며, 또한 유교의 편협한 이기주의가 사로 사랑하고 용납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자기를 희생하는 기독교의 진리를 희석시키게 되었다. 더욱 두드러진 현상은 교파의 난립과 교회의 분파 작용의 초래이다.
6. 세속적 신앙 의식 구조 사상
(1) 무교 신앙 의식 구조와 사상
1) 현세 중심적 기복 사상
무교의 축복관은 무당이 신령과 교제를 함으로 그의 힘을 빌어서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온다고 믿는 것에서 비롯된다.
현실적인 복만을 추구한다면 신앙은 복을 받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기에 무교는 단지 축복을 받는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축복 개념은 무교의 축복 개념과는 달리 현세적이고 개인의 공리적인 복보다는 영적인 것으로서 영혼 구원과 더불어 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 회복을 이루는 것이다.
2) 성(聖)과 속(俗)의 이원화
무교는 거룩과 세속을 완전히 구별하여 이원화시키고 있다. 저들의 거룩은 신령의 임재와 굿판으로 제한시키고 있다.
무교는 인격의 변화 없이 생활과 별개로 거룩의 이분법을 가르치고 있으나 기독교는 그와 반대이다. 무엇보다 인격적인 변화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청지기의 삶은 신앙과 생활의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3) 생사관
무교를 믿는 사람들은 운명론에 젖어 있다. 그리고 사주 팔자를 타고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자신의 운명을 개선해 보려고 노력하다보니 무당을 찾아가서 굿판을 벌이고 점도 쳐보는 것이다.
4) 굿판의 제물과 복의 함수 관계
무속 신앙은 굿을 통하여 신령 앞에 많은 제물을 바침으로써 신령으로부터 많은 복을 받는 것으로 믿는다. 현세적인 기복사상이기에 이들은 당연시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서 수여된 것으로써 우리가 감사하기 때문에 몸, 마음, 물질을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조건 없는 희생과 헌신을 드리는 종교이다. 다만 우리가 여러 가지로 헌신하는 것은 감사에 대한 보답 행위이지 결코 축복을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그러므로 청지기들의 모든 헌신과 충성은 이미 받은 축복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2) 불교 신앙 의식 구조와 사상
1) 현실 도피 사상
불교는 세상의 모든 것이 공허하다는 것으로 현실에 대하여 허무와 공허만 느끼는 염세주의에 젖어 있으면서 현실 도피 사상에 빠진 허무주의다.
불교는 인생 자체를 고행과 허무로 보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책임과 윤리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자기 수양을 위해 속세를 떠나 출가하는 것이다.
2) 자력 공로 사상
불교에는 자신의 고행을 통해 무엇을 얻고 해결해 보려는 자기 공로 사상이 깔려 있다. 즉 자신의 수양을 통해 목적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저들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인 ‘나’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고후5:17)이 되었으며 내가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써 존재 가치가 부여되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는 범죄한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오직 예수! 오직 은혜! 오직 성령!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이다.
3) 혼합절충주의
불교도 전래로 내려오는 무교와 융합 또는 혼합하여 점차 저급해지고 미신적으로 되어갔다. 고려 말에는 승려들의 타락과 세속화가 가속화되면서 음양, 도참, 점술 등과 결탁하기에 이르렀다. 점차 사찰 입구에 장승(수호신)이 세워지고 사찰 안에도 산신각 등이 세워지게 되었다.
결국 불교는 무교와 많이 섞여 혼합절충주의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으로 인하여 한국은 혼합 종교의 본거지가 될 정도로 통일교, 전도관, 새일교, 동방교 등 사이비 신흥 종교, 이단 종파들이 생성되었다.
그 결과로 정통 기독교 안에도 알게 모르게 혼합주의 사상이 침투해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실인즉 기독교는 여타 어떤 것들과도 양보와 타협을 할 수 없는 진리의 종교이다. 다만 우리가 저들과 대화하려는 것은 선교적인 차원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나아가면서 기독교의 유일성을 제시함으로써 기독교의 절대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행4:12,요14:6, 롬12:1-2)
(3) 유교 신앙 의식 구조와 사상
1) 형식주의(의식주의)
유교의 인(仁)의 실천 방법이 바로 예(禮)로 형식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면에 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형식은 무시될 수 없으나 유교의 형식은 인간 체면, 겉치레, 과대 포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형식주의에 치우치다보니 체면과 외형에 치우쳐 위선적이 되고 물랴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의 당면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리 부재의 형식, 인간 중심이 된 외형주의, 인간의 성취 동기만을 중시하는 물량주의에 빠져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인간의 인기 중심에 편승되어 가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한국 교회의 실정이다.
2) 권위주의
유교의 가족제도는 가부장적이기 때문에 가장은 집안의 수장으로 받들어지며 모든 식구가 그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 이것 역시 형식주의에서 전락된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권위쥐는 질서 유지를 위하여 명령과 복종을 요구할 뿐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유교의 잔재인 권위주의가 팽배해져 가고 있다. 권위주의 내면에는 바로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 실례로 직분이 갖는 본래의 섬김의 의미를 잊은 채 부리고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는 모습이 교회 안에 비일비재하다. 교회의 직분은 계급이 될 수 없다. 다만 직분은 청지기의 자세로 오로지 교회를 위해서 섬김과 봉사를 실천하라고 주어진 것일 뿐이다.
3) 이기주의
유교의 윤리체계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라고 하였다. 이것은 1차적으로 자신과 가족을 생각한 것이므로 결국은 개인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유교의 이기중의 파벌과 파란의 결과로 본래의 공동체가 산산이 무너진 채 자기 중심적인 경향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에 대하여 서정운 교수는 “하나는 자기를 포함한 가족 중심주의고, 다른 하나는 교회의 집단 이기주의”라고 하였다.
이러한 논제가 입증해 주듯이 청지기들의 신앙생활에는 자기 가족의 이익과 축복에 대한 염원이 다분하며, 또한 교회의 이기주의는 자기 교회 중심적인 신앙생활로 그저 자기 교회 안에서만 열심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 신앙인으로서 이웃과 사회에 대하여는 마음의 빗장을 질러 놓고 우물 안 개구리식 신앙으로 이웃과 사회에 대한 책임 윤리를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우리 기독교인 청지기들 자체가 세상에서 설 자리를 좁혀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서 나와 더불어 이웃, 교회와 더불어 사회를 생각하는 성숙한 청지기의 삶의 자세가 요청되며, 지역 사회를 위해서 무엇인가 봉사하는 교회상을 지향해 나아가야 한다.
(4) 타종교에 대한 우리의 자세
우리 기독교는 문화의 변혁자로서 주도록 임무를 가지고 세상으로 파고 들어가야 한다. 즉 한민족의 세속적 문화 속에 누룩의 정신으로 침투하여 세속문화를 기독교 복음으로 변혁시켜 나감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문화의 창출자, 변혁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세속 종교에 대하여서 선교적인 차원에서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 기독교의 청지기들은 기독교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저들에게 인식시켜 주는 능동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제 6장
청지기 훈련을 통한 신앙 갱신 과제
1. 예배 갱신
(1) 예배의 정의
정규남 교수는 예배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과 보호에 대한 감사를 믿음과 감사의 순종으로 보답하는 신앙 행위”라고 정의하였다. 즉 기독교의 예배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고 신앙생활에서 그 구원의 감격과 감사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삼위일체 하나님께 올리고,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신앙 행위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제사에 대한 응답으로서 구원받은 인간이 자발적으로 응답을 드리는 믿음의 행위이다.
(2) 예배의 성질
Bruce Leafblad는 예배의 성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다섯 종류로 구분하였다.
첫째, 예배는 하나님의 의해 시작된다.
둘째,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셋째, 예배는 하나님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넷째, 예배는 하나님을 위하여 드려야 한다.
다섯째, 예배는 하나님의 의해서 규정된다.
우리는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를 전통에서보다는 성경에서 배워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한다면 우리는 주님과 주님의 말씀이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규정하시도록 해야만 하는 것이다.
(3) 예배의 문제점
예배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 국 교회의 예배는 예배의 본질을 무색하리만큼 비복음적이고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다분히 내포되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사고는 수천 년 간 뿌리깊게 내려온 샤머니즘과 약 1,700년 간 내려온 불교와 조선 500년의 종교적 영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샤머니즘의 사상은 기독교의 순수한 정신과 예배행위에 배치되는 것이다.
1) 예배 신학의 부재
예배가 기독교 신앙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면 신학이 그 예배의 지배 이념이 되어야 한다. 신학이 없는 예배는 감상적이고 유약하게 된다. 즉 예배 없는 신학은 함께 결합되어야 하고 그 가운데서 청지기들의 믿음이 유도되고 생활이 생동감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라는 명령에 사랑과 복종과 헌신으로 응답하는 것이며 전인격이 하나님과 만나서 변화를 받고 갱신되며 하나님의 계시에 날마다 새롭게 응답하는 것이다.
또한 예배는 그리스도 사건의 재현이며, 기독교의 전 주제의 극적인 것이고, 하나님의 구속사적 내용의 요약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그리스도의 성업을 기념하는 일이며,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를 부르는 것이며, 하늘의 예배에 참여하는 종말론적 현상으로 창조의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배에는 두 기둥이 있어야 하는데, 말씀의 요소와 성례적 요소가 조화되어야 한다.
2) 예배 초점의 전도
예배 행위의 궁극적인 초점은 하나님께 맞추어져야 한다.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산 제사가 바로 예배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예배는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준다. 설교를 듣는다는 자세, 성가대 찬양을 감상한다는 자세, 예배를 보러 간다는 등의 의식에서 하루속히 깨어서 예배의 모든 것이 내가 주체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주체라는 인식을 하루빨리 가져야 한다.
(4) 갱신의 실제
1) 예배신학 의식 부여
우리 한국 교회의 신앙 의식 구조는 샤머니즘, 불교, 유교의 영향 아래 세속적 의식 구조 체계를 이룬 심성에서 신앙이 형성되었기에 예배라는 것이 한낱 축복의 수단으로 몰이해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예배신학이 절실히 요청된다.
① 예배에 합당한 분이신 하나님
②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는 참 예배의 중심이시다.
③ 예배자에게 필요한 신앙은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시인하는 것이다.
④ 성경은 교회의 생명책이며, 교회의 구원과 생활의 안내서이고, 하나님의 약속이므로 예배는 성경 중심이어야 한다.
2) 세속적 의식 요소 극복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에 대한 공동체적 응답의 행위가 되도록 개인주의적인 세속적 요소를 배제해야 한다. 또한 설교 내용의 혁신과 예배의식의 의미 회복, 적극적인 예배자들의 참여 순서 확대 등 다양한 방법의 시도가 요청된다.
3) 말씀과 성찬의 병행 실시
예배의 기본적 요소는 말씀과 성찬이다. 특히 개신교회의 예배는 설교 중심으므로 성찬을 격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즉 말씀과 성찬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 불완전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칼빈은 변질된 중세의 미사를 말씀과 성례전의 소박한 균형이 이루어진 성찬 예배로 대치시키려고 애썼고 다른 개혁자들도 성찬 이론을 수립하여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 문제는 소수를 제외한 개신교에서는 성찬이 없는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그것도 1년에 겨우 한두차례 실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찬은 하나님께 대한 복종이며 따라서 선교에 대한 복종을 새롭게 한다. 이것은 최고 은혜의 수단으로 다른 의식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인간에게 주시며 또한 인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말씀과 성찬의 병행을 위해서는 예배 시간이 조정되어야 하고 순서가 규모있게 짜여져야 한다. 이에 대해서 가흥순은 “설교 시간을 줄일 것, 성찬 순서를 압축시킬 것, 분급 방법 개선”의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4) 예배와 생활의 일치운동
예배와 생활은 불가분리의 관계이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으로, 하나로 보아야 한다. 예배는 가장 열정적이고 강력한 기독교인의 생활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기독교인의 생활이 예배이다.(요4:24, 롬12:1-2) 그러기에 거룩한 제단 앞에서의 행위만이 예배가 아니라 청지기의 전 생활이 예배 자체인 것이다. 즉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부여된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과 사상, 기술적 방법까지 예배 행위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청지기들의 예배와 생활의 단절은 교회와 세상과의 이원적인 생활에서 온 것이다. 예배와 생활이 단절되면 교회는 무력해진다. 따라서 예배와 생활을 일치시켜 교회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어야 한다. 그러므로 청지기는 예배와 생활이 일치되도록 부단한 노력과 훈련이 요청된다.
5) 가정예배 실천
예배 갱신의 일환으로 예배 훈련이 필요하다. 교회에서 드리는 것이 예배의 전부가 아니고 우리 생활 자체가 예배가 되도록 하기 위해(롬12:1-2) 날마다 가정에서 예배가 실천되어야 한다. 가정예배는 교회 예배의 연속이다. 가정예배는 신앙 위인들의 에배 원형이며(창4:3-7) 교회 공동예배의 훈련이다. 결론적으로 영성 훈련은 가정예배 실천에서 시작된다.
2. 교회 공동체 윤리 의식 회복
(1) 교회의 의미
교회는 단순히 하나의 조직이나 기관이 아니라 유기체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상호관계를 맺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이다. 즉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개인적 개념이 아니라 공동체적 개념을 지니고 있다.
구약의 공동체 개념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공동체 개념이고, 신약의 공동체 개념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그리스도인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개념이 있다. 즉 구약은 하나님께서 선택한(만드신)공동체,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개념이다.
(2) 교회의 본질
1)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공동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공동체로 부르셨는데, 거기에는 세 가지 기본적 사상이 담겨 있다.
첫째, 교회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둘째,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선택되었다.
셋째,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인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서 그 역사를 찾을 수 있으며 그 선택은 하나님의 은총이며 부르심이다.(창12:2)
이 선택된 백성에게는(벧전2:9-10) 하나님과의 계약관계(출6:4-5)가 성립디어 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민의식을 심어 주셨다.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선민의식이 강한 공동체였다.
또한 신약에서의 선민 공동체는 예수님이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과 부활의 복음을 듣고 모인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신약에서의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는 부활을 증거하는 종말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교회는 칼빈에 의해 강조되었다. 칼빈은 “교회란 가시적 교회만을 의미하지 않고 이미 죽은 자를 포함한 모든 하나님의 선민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초는 하나님의 숨겨져 있는 선택이다. 하나님의 선택이 교회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의 절대적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라고 했다.
그러기에 교회는 이 세상의 조직이 무너져도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의 선택에 의하여 존립되므로 동요되거나 파멸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교회가 영원 불변하신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었기에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지체가 찢기는 것을 허락지 않듯이 신자들이 자기에게서 멀어지는 것도 허락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교회의 품속에 머물러 있는 동안 진리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을 우리도 확신한다는 것이다.
2) 그리스도 몸의 지체로서의 공동체
바울은 교회를 말할 때 ‘그리스도의 몸’이요(고전12:12), 그 몸의 머리는 그리스도라고 하였다.(엡1:22-23)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 되심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8)라는 구절에서 말씀하셨듯이 그리스도가 교회를 세우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주가 되신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즉 몸이 머리의 지배를 받듯이 교회도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라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진정한 교회가 아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요한계시록 2장 9절에 나타난 유대인들의 교회를 ‘사단의 회’라고 책망하셨다.
교회의 지체 개념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몸의 개념으로 유기적 통일성을 가르쳐 준다.
둘째, 지체로서의 교회 개념은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주격을 말해 준다.
셋째, 동시에 교회의 피조성을 가르친다.
넷째, 몸이 머리에 붙어 있어야 하듯이 교회도 그리스도께 바로 속할 때 통일을 이룰 수 있으므로 교회 연합의 성격을 가르쳐 준다.
다섯째, 지체의 신비성은 교회의 신비적 성격을 가르쳐 준다.
이처럼 교회를 몸에 비유한 것은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와 지체 된 청지기들과의 불가분의 연합성, 일치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같은 지체로서 한 교회로서 통일성과 연합성을 갖고 있다.
3) 친교의 현장으로서의 공동체
교회는 친교의 현장이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관계는 대화의 관계요 친교의 관계였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과의 대화 창구가 단절되었고 친교의 관계가 갈등으로 변하였다. 하나님의 물으심에(창3:9; 4:9)인간은 응답을 상실하였다. 오히려 인간의 언어는 하나님께 대항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대화를 혼돈케 하시고 친교를 상실케 하셨다.(창11:1-7)이러한 친교의 상실과 단절의 회복을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말씀으로서 육신이 되어 대화적 관계로 오신 것이다.(요1:1-14)
교회는 세상에서의 어떤 혈육이나 이익 추구에 의해서 구성된 집단이 아니다. 온전히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 속의 은혜를 체험한 청지기들이 모여서 주님을 머리로 하여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사랑의 집합체이다.
여기에는 ‘너와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만이 존재한다. 사도행전 2장 42-47절에서는 교회가 사랑과 친교의 공동체임을 원론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3) 교회 공동체 회복의 실제
종교개혁자들은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이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한국 교회도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이유는 한국 교회가 물량적인 성장주의에 파묻혀버렸기 때문이다.
1) 말씀 회복운동
오늘날 한국 교회는 시대의 조류에 편승한 결과 세속주의와 물량주의에 빠져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잃어버렸고, 교회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는 비극과 위기감에 빠지게 되었다.
왜 이런 위기에 빠지게 되었는가? 말씀의 본질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2) 성찬식을 통한 친교 의식 강화
교회의 공동체 형성을 위해서는 성찬식이 계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공동체 윤리 의식의 강화를 위해서는 종전보다는 성찬식을 좀더 강조하며 실천하여야 한다.
여기서 기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희생 사건을 실제화하여 교회가 하나님께 감사의 헌신과 중재의 기도로 유일한 헌신을 드리는 예배 의식적 행위이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성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말씀과 성찬이 병행되는 예배를 실천하여 예배에 임하는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고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설교와 성찬식 사이의 균형 있는 조화를 위해서 한국 교회는 교회 전통의 유산으로 발전시켜온 교회력을 창조적으로 활용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력의 적용은 메시지의 준비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그 교회력의 리듬에 따른 성찬식 예전의 실천도 가능하게 한다. 성찬식 본래의 예배의식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말씀과 성찬식 예전의 분급방법에 대하여 적절한 개천책이 요청되고 있다.
3) 선교 공동체 의식 개발
교회는 이 세계로부터 구별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세계와 하나되는 공동체만이 선교적이 될 수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택, 그의 부르심, 거듭남 그리고 개종으로 인하여 모인 신앙인들의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 가운데 살며 죄의 용서함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의식적인 결단을 하고 주님 안에서 새 삶을 살며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선교 공동체이다.
3. 사회 윤리 의식 고양
사회라는 뜻을 가진 영어 ‘society'는 ’결합하다‘라는 의미와 라틴 어 ’socius'에서 나온 말인데,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현대 교회에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더 이상 사회에 대하여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교회는 지역사회와 담을 샇고 유리되어서는 안 되며 또한 교회는 지역사회에 침몰되는 무기력한 교회가 되어서도 안 된다. 분명한 것은 교회가 지역사회 속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고(마5:13-14)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 자들에 대하여 선한 사마리아 인의 사명을 감당하며 더 나아가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청지기는 영혼 구원과 사회 변혁의 중요성을 깨닫고 사회 윤리를 실천함으로써 사회 윤리 의식이 고취되어 점진적으로 사회 변혁의 주도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
4. 창조 질서와 환경 보전 실천
(1) 자연환경 파괴 원인
첫째, 현대 사회의 가치관 혼란
현대인들은 소유와 소비, 향락에 삶의 의미를 두고 있다. 많이 소유하고 많이 소비하고 즐기려는 잘못된 소유욕의 가친관에 의해 자연 환경은 파괴되었다. 보다 더 새로운 것을 생산하고 더 많이 갖고자 할 때에 더 많이 소모할 수밖에 없으며 그럼으로써 환경을 오염시키고 훼손하였다.
둘째, 세계 열강들의 경제적, 군사적, 정치적 확장욕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를 일으키는 다른 한 가지의 근본 원인은 자연과학과 과학기술의 이면에서 작용하고 있는 기업들과 국가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팽창욕에 있다. 기업을 더 크게 팽창시키며 자국의 경제력과 군사력과 정치력을 확장시킴으로써 다른 국가들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소비하며 다른 국가들을 지배함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얻고자 하는 세계 열강들의 팽창욕 때문에 자연을 무참하게 파괴하며 오염시키고 있다.
(2) 보전의 필요성
1) 세계는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2) 세계의 소유권과 처분권은 하나님께만 있다.
3) 모든 생명은 고유의 가치와 권리가 있다.
(3) 보전을 위한 실천 방안
‘다스리라’, ‘땅을 정복하라’ 하신 말씀에 대하여 바른 해석이 있어야 한다. ‘다스리라’라는 말의 뜻은 억압하고 파괴하라는 의미가 아니고 다스림을 받는 자의 행복을 위하여 돌보라는 뜻이다. 또한 ‘정복하라’는 말의 뜻은 인간에게 축복하신 모습 그대로 잘 가꾸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본능의 남용으로 국가 간의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을 유발하고 경제 분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제7장
청지기 훈련과 평생 프로그램
1. 청지기 훈련과 목회
(1) 목회철학 수립
목회는 신앙을 지도하는 사역이므로 목회자의 신앙과 목회철학이 수반되어야 한다. 목회철학을 수립하는 데에는 성경 말씀의 초점과 지도자로서 역사의식을 가지고 목회하는 자세와 더 나아가서는 매일 부딪히는 삶의 현장에서 문화의 변혁자가 되게 하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2) 훈련에 대한 동기 부여
오늘날 한국 교회의 실정을 바라본다면 안타깝기가 그지 없다. 많은 청지기들이 신앙의 경각심을 망각한 채 잠자고 있는 처지이다. 그러기에 옥한흠 목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불행하게도 많은 교회에서 평신도가 잠을 자고 있다. 엄청난 저력을 가진 거인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느 교회나 열심히 헌신하는 약간의 평신도 그룹들이 있다. 그들의 봉사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가는 그들을 통해 지금까지 한국 교회에 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보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와 같은 탁월한 평신도의 대부분이 교회 조직상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소위 통상적인 봉사활동을 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중에서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소수의 모범적인 평신도마저 교역자의 옷자락을 받들어 주는 소극적인 시녀 역에서 더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평신도의 역할마저도 극히 적은 소수의 독점물이 되고 있고 나머지 신자들은 그런 현상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정체 현상에 빠져 있는 청지기들에게 목회자는 훈련이 요청되고 있음을 알리면서 청지기들 스스로가 훈련에 임하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청지기 훈련의 공동 목표
(1) 신앙과 교회 갱신
청기지 훈련의 초점은 청지기들의 신앙 갱신과 교회 갱신에 두고 있다.
(2) 신앙 성장
신앙은 끊임없이 성장하여 열매를 맺어야 한다. 신앙 성장은 사도 바울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라고 하였듯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그 목표를 두고 있다.
신앙 성장의 목표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빌2:5) 신앙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훈련이 요청되고 있다.
(3) 직분자 제자리 찾기 운동
무엇보다도 교회의 중직(장로, 안수집사, 권사)은 교회로부터 신임 투표로 세워지는 것이므로 자기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한다. 권리보다는 의무를 더 감당하고, 주장보다는 순종을 실천하며, 인기보다는 덕을 나타내고, 목사의 목회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벧전4:10, 갈6:6)
3. 청지기 훈련 과목
(1) 훈련의 원리
1) 구원의 확신
청지기 훈련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되는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해야 한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에서(엡1:3-7)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써 모든 죄를 씻음받고 구속함을 얻은 것을 말한다. 이는 청지기로서 가장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죄악과 멸망에 있을 때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 속전의 대가가 지불되었다. 이 속전의 대가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피와 관련이 있다.(엡1:7, 골1:14, 행20:28, 롬3:24-26)
그러므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한 것이기에 인간의 그 어떤 공로도 삽입될 수 없는 것이다.(엡2:8-11)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해주는 것은 청지기 훈련의 기본이다.
2) 믿음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엡2:8)로서 하나님께서 구원얻는 자들에게 무조건 주셨다. 믿음은 선택받고 부름받아 중생한 죄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역이니 이로써 죄인이 그리스도에게 연합되고 그리스도와 모든 혜택을 받아들이고(요1:12) 시간과 영원에서 그에게 의지한다. 이는 마음에 좌소를 두고 중생한 생명에 뿌리를 가진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복음의 씨를 심어주신 후에야 사람이 능히 믿음을 갖는 것이다. 즉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얻는 은혜인데 이로 말미암아 복음 중에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예수를 영접하고 그에게만 의지해야 한다.
올바른 믿음이란 인생관 확립, 세계관 확립, 가치관 정립에 영향을 준다. 특히 청지기들의 기독교 가치관은 개인주의보다 공동체 윤리 실천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생명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자라서 열매를 맺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히11:6)
3) 예배
예배는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으로서 청지기들에게 삶의 원동력이 된다. 또한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기초적 행위이며 청지기들의 삶의 본질에 속한 것이다.
즉 기독교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 자신의 인격적인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인격적인 믿음 안에서의 사랑어린 응답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청지기들의 삶의 전부가 되므로 믿음으로 드려야 되며 믿음과 삶의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청지기는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바로 예배가 생활이 되어야 한다.(롬14:8)
4) 전도
D. Watson은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도록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도록 하고 그 친교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왕으로 섬기도록 하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교회 성장도 전도가 필수적이다. 전도는 주님의 지상 명령(마28:18-20)이다. 전도는 반드시 성령의 능력이 수반되어야 열매를 맺게 된다.(행1:8)
5) 친교
교회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친교가 이루어지는 곳이면서 사람과 사람의 친교가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개인주의가 팽창되어 가는 오늘날, 현대 교회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친교는 공동체 윤리의 근거를 이루는 방편이 된다.
6) 봉사
봉사는 기독교의 거룩한 사업의 하나이다. 이제부터는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찾아가서 정신적, 물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 주고 실천하는 봉사 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7) 영성 훈련
기독교의 영성은 삶의 궁극적 실체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한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요,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의 만남이다. 이 만남은 삶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목적 의식을 갖게 하며 또 삶에 대한 새로운 정서적 수용을 체험케 한다.
또한 영성은 새로운 이해와 내면적 수용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해 준다. 그리하여 궁극적 실체, 자신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관념적 이해 속에서 자신의 삶을 제3자들에게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청지기들의 영성은 우리가 믿고 따르는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인격과 정신을 본받아 살며 그의 성품을 우리들 속에 형성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청지기들이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자신의 삶으로 수용하는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영성 훈련이다.
영성 훈련은 자기 갱신과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과 초월적인 은혜로서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경험을 얻게 하며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와의 끊임없는 신령한 교제를 지속시킨다. 결국 영성 훈련은 지금까지의 구원, 믿음, 예배, 전도, 친교, 봉사 등이 통합적으로 되는 것이다. 영성 훈련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임재와 동행하심이다. 청지기의 삶은 자기의 육체의 소욕을 포기하고 자신을 성령의 인도하심에 절대 굴복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영성 훈련에 있어서 목표는 세 가지 방향으로 지향되어야 한다.
첫째,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훈련으로 기도 훈련, 금식 훈련, 말씀 공부 등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갖는다. 자칫 잘못하면 신비주의에 빠지며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둘째, 외면적 훈련으로 고독, 순종, 섬김 훈련은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를 바르게 형성하도록 해준다.
셋째, 공동체 훈련에 있어 성숙한 훈련 모습으로 예배 훈련과 친교 훈려늘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그 음성대로 살도록 순종하는 능력을 부여하기도 하는 것이다.
4. 청지기 훈련과 프로그램 운영
(1) 준비 단계
1) 훈련의 준비 상황
전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총체적 훈련이므로 홍보물을 제작하여 나누어 주며, 주보에도 게재한다. 또 “청지기 훈련 며칠 전”이라는 홍보물을 게시판에 부착하기도 한다.
2) 훈련의 시기
1년에 상, 하반기도 나누어 정초(제직 임명과 더불어 새로운 부서의 일꾼이 되었으므로 새로운 결단과 각오를 가지게 함)와 여름 휴가철(휴가를 겸하여)에 실시함이 효과적이다.
3) 진행 방법
대회장 제도를 두어 훈련을 총괄할 수 있도록 하며, 훈련의 진행 업무를 총체적으로 관장하고 시행할 수 있도록 부교역자를 상임 총무로 선임하여 추진하게 한다.
① 등록 및 출석 카드를 교회 주보에 끼워서 배부
② 각 구역별로 구역장이 인도자가 되어 토론과 친교의 시간을 갖는다.
③ 참여 의식을 높이기 위해 출석, 봉사, 모범 등의 부문으로 나누어 모든 사람들이 받을 수 있도록 시상을 한다.
(2) 실천 단계
1) 제1차 청지기 훈련(겨울)
① 훈련 개요
일시: 1994년 1월 3-6일(4일간)
장소: 서울 가나교회 교육관
총주제: 선한 청지기가 되자
성경:베드로전서 4장 7-11절
② 훈련 시간표
<새벽시간>
․첫째날: 군인처럼 충성하자(딤후2:1-4)
ⓐ 선한 싸움을 싸울 것(딤후4:7)
ⓑ 고난을 감수할 것(딤후4:7)
ⓒ 사생활을 초월할 것(딤후2:4)
ⓓ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할 것(딤후2:4)
ⓔ 명령에 복종할 것(딤후2:4)
ⓕ 절대 충성할 것(계2:10)
ⓖ 전신갑주를 입을 것(엡6:10-17)
․둘째날: 경기장의 선수처럼 충성하자(딤후2:5)
ⓐ 법(규칙)을 잘 지킬 것(딤후2:5)
ⓑ 벗어버릴 것(히12:1)
ⓒ 달려갈 것(빌3:14)
ⓓ 절제할 것(고전9:24-27)
ⓔ 상급을 바라볼 것(히12:12)
․셋째날: 기둥처럼 충성하자(갈2:9)
ⓐ 곧을 것
ⓑ 견고할 것
ⓒ 굵을 것
ⓓ 다듬어질 것(딤전4:7-8)
․넷째날: 그릇처럼 쓰임받고 충성하자(딤후2:20-21)
ⓐ 토질이 좋을 것(고후5:17)
ⓑ 열처리가 되어야 할 것(잠17:3)
ⓒ 단단할 것(행4:17-20)
ⓓ 깨끗할 것(딤후2:21)
<낮 시간>
․첫째날: 선한 청지기는 누구인가(벧전4:9-11)
ⓐ 청지기의 의미(갈4:2)
ⓑ 청지기의 명칭(막10:45)
ⓒ 일꾼(고후6:4)
ⓓ 섬기는 자(막10:45)
ⓔ 사역자(고전3:5) ․둘째날: 선한 청지기가 되려면(행 6:1-7)
ⓐ 영적 자격(행6:3-5)
ⓑ 윤리적 자격(딤전3:1-11, 벧전 5:1-3)
ⓒ 공통적 자격(삼상 17:6, 행13:22)
․셋째날: 선한 청지기가 하는 일(막10:45)
ⓐ 섬기는 일(막10:45)
ⓑ 종이 될 일(막10:45)
ⓒ 공궤(행6:2)
ⓓ 심부름(고후6:4)
ⓔ 주인의 대리자(마24:45-47)
<밤 시간>
․첫째날: 선한 청지기와 충성(딤전1:12-17)
ⓐ 마음을 드려라(마22:37-40)
ⓑ 물질을 드려라(시50:14)
ⓒ 몸을 드려라(롬6:13)
ⓓ 시간을 드려라(엡5:16)
ⓔ 은사를 들려라(벧전4:10)
․둘째날: 선한 청지기의 교회생활(시 122:6-7)
ⓐ 교회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벧전 2:9-10)
ⓑ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엡4:4; 5:23-30)
ⓒ 성령의 전(엡2:21-22)
ⓓ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고전12:12-27)
․셋째날: 선한 청지기의 충성 원리(민18:7)
ⓐ 하나님께서 세우심을 믿어라(출32:1-2)
ⓑ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의 주인이심을 기억하라(창1:1)
ⓒ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았음을 기억하라(창1:28)
ⓓ 모든 것을 주님 뜻대로 사용하라(벧전4:10)
ⓔ 결산의 때가 있음을 기억하라(마25:14-30)
ⓕ 상급을 바라보라(계2:10)
ⓖ 충성의 초점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임을 기억하라(고전10:31)
․넷째날: 선한 청지기와 상급(계22:10-13)
ⓐ 은혜와 평강을 얻음(빌1:1-2)
ⓑ 아름다운 지위 얻음(딤전3:13)
ⓒ 교회 부흥(행8:12-13)
ⓓ 가정 축복(시128:1-6)
ⓔ 더 큰 일 받음(마25:21)
2) 제2차 청지기 훈련(여름)
① 훈련 개요
일시: 1994년 8월 1-3일(3일간)
장소: 도사리 교회(강원도 소재)
총주제: 복있는 가정
찬송: 305장
성경: 시편 128편 1-6절
② 훈련 시간표
<새벽시간>
․첫째날: 가정의 기능(1)(창1:27-28)
ⓐ 성적 기능
ⓑ 생식 기능
ⓒ 자녀 양육 부양 기능
ⓓ 교육의 기능
․둘째날: 가정의 기능(2)(창1:27-28)
ⓐ 경제적 기능
ⓑ 보호적 기능
ⓒ 휴식의 기능
ⓓ 오락의 기능
ⓔ 종교 보전의 기능
<낮 시간>
․첫째날: 제사 문제 (눅16:19-31)
ⓐ 제사의 목적
ⓑ 제사의 문제점
ⓒ 제사는 우상 숭배
ⓓ 기독교인과 추모예배
․둘째날: 기독교의 효도(출20:12)
ⓐ 효도의 근거(출20:12)
ⓑ 효도의 방법(엡6:1-3)
ⓒ 효도의 축복(잠19:23)
ⓓ 효도의 실제(여행, 옷, 용돈)
<밤 시간>
․첫째날: 행복한 부부와 가정-남편의 십계명(128:1-6)
ⓐ 아내를 귀중히 여기라(창2:21-25)
ⓑ 아내를 연약한 그릇처럼 여기라(벧전3:7)
ⓒ 칭찬에 인색하지 말라(아1:15)
ⓓ 작은 일에도 관심을 가지라(잠18:16)
ⓔ 아내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 주어라(잠18:16)
ⓕ 아내를 인격적으로 사랑하라(엡5:25)
ⓖ 아내를 다른 여성과 비교하지 말라(골3:19)
ⓗ 아내를 기다리게 하지 말라(마19:5)
ⓘ 밝은 인상으로 귀가하라
ⓙ 천국까지 동반하는 의식을 가지라(벧전3:7)
․둘째날: 행복한 부부와 가정-아내의 십계명(시128:1-6)
ⓐ 남편을 왕처럼 모시라(벧전3:6)
ⓑ 돕는 배필이 되어라(창2:18)
ⓒ 남편을 만족시켜 주어라(창2:24)
ⓓ 지혜를 발휘하라(잠14:1)
ⓔ 불평을 늘어놓지 말라(잠15:1)
ⓕ 남편의 비밀을 지켜 주어라
ⓖ 남편을 다른 이와 비교하지 말라(잠18:22)
ⓗ 다툼에서는 일단 양보하라(잠21:19)
ⓘ 남편의 수고를 인정하라
ⓙ 순종과 복종의 자세를 가지라(엡5:22, 골3:18)
(1994년은 가정의 해이므로 가정에 대한 주제로 훈련하였다.)
3) 훈련의 인도방법
새벽에는 경건한 분위기에서 호소력 있게 강의를 하여 청지기로서의 결단을 하게 한다. 낮시간에는 주제에 따라서 좀 자유로운 방법으로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대화식 강의를 실시한달. 또 밤시간에는 부흥회로서 은혜를 말씀을 전하고 구역 식구 간에 친교의 시간을 나눈다.
제8장
청지기 훈련을 통한 신앙 갱신을 위한 제언
1. 목회자의 갱신
목회자는 바른 신학 위에 목회철학을 수립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본주의 사상과 시대적 조류에 편승하여 목회를 하게 되고 결국 인본주의에 빠져 물량주의에 젖고 역사의식을 상실한 채 방황하게 된다.
그 결과 ‘표피성과 조급성’이 작용하여 이기주의와 성장제일주의와 번역신학에 치우치에 되고 영성보다는 외향적이고 물량적인 것에 비중을 두는 비극을 맛보게 된다.
그러므로 지도자인 목회자가 변화되고 갱신되고 성경으로 돌아가는 일이 급선무이다. 목회자의 갱신 없이는 교회 갱신, 사회 변혁도 없다.
2. 청지기 선출의 신중성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소명의식을 갖고 다양하고 오랜 교육을 받는 것에 비해 교회의 중직들은(장로, 안수집사, 권사, 집사) 지교회 교육 프로그램 외에 별다른 기능적 훈련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 실정이다. 지교회 프로그램이라야 성경 공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프로그램이 지속되지 못한다. 앞으로 한국 교회 갱신과 성숙을 위해서는 교회 중직 청지기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으로 훈련시켜야 하리라고 여겨진다.
훌륭한 조련사는 개, 원숭이, 돌고래, 앵무새까지도 훈련을 시켜 사람을 즐겁게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모든 제직들도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자기 갱신과 성숙을 가져오지 않으면 교회의 일꾼이 아니라 방해꾼이 될 수 있다.
그 증거는 한국 교회 문제의 99.9%는 평신도가 아닌 제직을 통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훈련 없이 소명감 없이 타성에 젖어 일하려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3. 청지기 훈련을 위한 평생 프로그램 개발
청지기 훈련의 평생 프로그램은 실천력을 배양시켜 나가는 교육과정과 내용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의 교육은 지식 위주이었기에 머리로 아는 것은 많아도 실천력이 미약하였던 절름발이 교육이었다.
4. 총회 차원에서 청지기 훈련원 상설 운영
신앙의 문제는 어느 한 개인이나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의 문제이다.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한국 교회의 고질적인 병폐 중의 하나가 신앙과 인격이 부조화된 자를 교회 일꾼으로 임명한 것이다. 그 결과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실정이다. 총회에서도 중직들에 대하여 제도적인 훈련 계획을 세워서 철저히 교육시키고 훈련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직분별, 기능별로 훈련을 통하여 직분자로서 자기 위치에서 충성을 다하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이런 제도적인 훈련 계획은 각 교단에서 정책을 세워 실시함으로써 교회의 문제도 최소화시켜 나갈 수 있다고 본다.
5. 청지기 신앙 의식화 훈련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창조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고전10:31) 그러므로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삶의 목표를 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 모든 교인들에게 크리스찬은 청지기라는 의식을 심어주어야 한다.(벧전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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