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론!! 집사! 권사! 장로! 교역자!

[스크랩] 하나님께 인정 받는 사역자 - 2

하나님아들 2013. 6. 29. 12:19

5. 사역의 바른 방향

 

디모데전서 6:20-21

20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21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1)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디모데후서 1:13-14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집중하는 것은 뭔가에 사로 잡히거나 매료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집중은 가장 단호한 의지적인 노력이다. 뇌와 관련한 것으로서 영적인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연상되는 생각들을 다스리는 것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집중이라는 훈련을 해서 얻는 것이다. 당신의 연약한 부분을 무관심 가운데 방치해 두지 말라. ,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지 말라. 하라! 하면 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사역의 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바울이 제시하는 사역 방향은 성경에 담긴 진리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설교자는 웅변가나 달변가를 꿈꿔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하나님께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마태복음 23, 마가복음 7장을 읽어 보라. 우리 주님께서 혐오하시는 그 가혹한 음성을 들어보라. 웅변가들은 청중들의 마음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켜 어떤 일을 하게 한다. 그러나 복음의 설교자는 청중들이 끝까지 안 하려고 버티는 것을 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자신들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설교자의 사명은 죄를 드러냄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감상적이거나 시적이기 보다 오직 하나님의 예리한 말씀으로 청중을 수술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설교자는 청중들을 감동시키기 위하여 보냄을 받는 자들이 아니다. 그 설교자, 참으로 멋진 생각을 가지고 있던데요. 이러한 칭찬은 설교자들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설교자는 인간의 영혼 가운데 역사하는 사탄 및 그의 간계를 드러내야 한다. 설교자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혼을 탐사하시는 그 자리까지 사람의 마음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설교자가 청중의 영혼의 깊이를 측량할 수 있는 정도는 하나님께서 그 설교자의 영혼을 탐사한 만큼 가능하다.

          설교자는 청중들의 처한 상황에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진리를 성경으로부터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조금도 두려움이 없이 그 상황에 적용되는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 오늘날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만지작거리며 윤기만 내려고 한다. 설교자가 이러한 자세를 가질 때 그는 하나님의 진리로 청중들의 현실 속에서 아무런 역사를 일으킬 수 없다.

          설교자는 자신이 설교하는 성경 내용의 문맥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말라기 2:13절을 보자.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제단을 가리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봉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이 구절의 문맥을 알아야 이 내용을 알 수 있다. 곧 문맥이 이 내용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설교를 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악한 기질과 숨겨진 죄성이 있다. 어떠한 경우라도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발생한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만들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공감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너그러우시고 친절하신 분이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이러한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그에게 아직 포기하지 않는 비밀스러운 것이 있는 것이다.

설교자는 사람을 감상적으로 다루어서는 안된다. 감상으로는 사람의 깊은 영혼까지 닿을 수 없다. 당신은 설교자로서 그 사람의 문제의 뿌리까지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설교를 통하여 사람의 문제의 뿌리를 다룰 때 듣는 사람은 반감이나 고통 또는 분노를 느끼게 되어 있다.

예수님의 복음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갈급함을 야기시키지만 또한 동시에 엄청난 분개를 일으킨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탐색하고 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복음의 메시지를 견딜 수 없어 한다. 그럼에도 사역자가 가져야 할 자세는 단호하게 복음을 통하여 사람들의 영혼 깊은 뿌리까지 고집스럽게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을 치유할 수 없다.

          당신이 정한 설교 본문으로부터 가능한 많은 상세한 내용들을 끄집어 내라. 특히 주요 의미가 무엇인가를 전달하려고 애쓰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거룩함이란 뜬 구름 같이 애매할 것이다. 그러나 사역자는 언제나 거룩함의 메시지를 마음 속에 두고 설교해야 한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 12:14). 매 구절에서 거룩을 말하라. 분명하고 확실하게 복음이 말하는 거룩을 삶에 적용하게 함으로 청중이 핑계할 것이 없도록 해야 한다. 신앙적인 차원에서 거룩을 갈구할 뿐 아니라 각자의 영혼의 삶에서 거룩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각, 상상, 그리고 그들의 모든 구체적인 삶 가운데서 거룩을 추구하도록 설교하라. 당신이 택한 본문에서 이러한 내용을 끄집어 내고 그 적용을 절대로 놓치지 말라. 본문을 사색의 도구로 삼지 말라. 그럴 경우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례히 대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2) 무엇을 위하여 집중하는가?

 

디모데후서 2:23-26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빚으실 때 성경의 중심 원칙과 어울리는 그러한 원칙들을 인간의 속성 안에 넣으셨다. 따라서 당신이 택한 본문으로부터 인간의 타락하기 전에 소유하였던 속성과 일치하는 의미들을 끄집어 내도록 하라. 그렇게 함으로 당신이 택한 본문이 청중의 마음 속에 선명하게 임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의 삶의 영역 속에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그 후 그들의 삶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기준을 제시하라.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 후 결론을 내리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반드시 그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당신은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새로운 영이 당신에게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성령을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참조, 11:13).

          당신의 메시지가 효력이 있으려면 청중들이 그 메시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해야 한다. 예를 들면,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서 있는 청중들에게 요한복음 3:16절을 제시할 경우 그 내용은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 주제가 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 이유는 말씀과 청중이 서로 다른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사람들도 비록 강력 범죄자들은 아닐지라도 허물과 죄로 죽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은 이 세상 신에 의하여 가려져 있어서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고 있다. 바로 이러한 청중 가운데 우리의 메시지가 파고 들어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오직 우리가 성령께 의지할 때, 성령께서는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죄악과 죄성을 보게 하신다. 복음을 선포하면 그 배후에서 하나님의 구속이 사람들의 영혼 속에서 창조적으로 역사한다.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 가운데 역사하시면 그들은 그들이 전에 보지 못하였던 기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 12:32). 예수 그리스도가 높여지면 성령께서는 그들의 마음 가운데 주님을 필요로 하는 마음을 창조하여 내신다.

 

6. 배우는 학생이 되라

 

디모데후서 2:15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1) 사역의 실질적인 면

 

고린도후서 11:9

9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

 

디모데전서 4:13

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데살로니가전서 2:9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오늘날 복음을 위한 사역에 있어서 어려운 점은 지금 이 시대는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따지려 한다는 점이다. 이성적 사고는 일반적으로 거룩한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을 나누어 생각한다. 활동과 공부를 따로 분리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거룩한 분야 및 세속적인 분야, 활동과 공부로 나누시지 않으셨다. 일반적으로 학생이라는 신분을 생각할 때, 학생은 혼자 앉아서 사색하는 방법으로 공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개념이다. 그리스도인의 생각은 사색을 통하기 보다 활동 가운데 만들어진다. 그 이유는 우리는 오직 활동 속에서만 바른 분변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색적인 차원에서 공부한다. 다른 어떤 사람들은 계속적으로 활동만 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삶 속에서 이 두 가지를 결합시킨다.

          사람들은 사역자를 특별한 신분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사고 방식도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 주님은 목수였다. 바울은 천막을 만드는 자였다. 당신이 외딴 곳에 숨어서 주님을 위해 살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 것이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 3:6). , 당신의 삶의 모든 분야와 모든 사건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어떤 부분을 특별히 개발시키시기 위하여 특별한 상황으로 당신을 이끄실 것이다. 이때 당신 자신의 고집스런 생각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망쳐놓지 않도록 주의하라.

          하나님을 섬길 때 또 다른 위험은 기질대로 섬기려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우리의 기질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주어진다. 성령께서 은사를 주실 때, . 주님, 저는 그런 은사를 원치 않습니다 라고 말하던지 나는 그 일을 위하여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어요 라고 말함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당신의 무기력한 생각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 그러한 생각은 불신앙의 결과일 뿐이다. 당신이 어릴 때에 어떤 훈련을 받지 못했다고 하여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용하실 수 없으실까? 당신 자신의 생각을 의지하지 말고 모든 범사에 주를 인정하라. 이러한 믿음이 우리 주님께 대단히 중요하다.

이제 마음의 문지방을 부수고 나는 그것만은 할 수 없어요. 이 부분만은 제게 재능이 없다는 것을 주님도 아시잖아요 라는 무기력한 생각들을 고치라. 예수님의 진실한 제자가 되려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는 것이다. 즉 자신은 재능이 많다고 착각하면서 주님을 신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무기력한 삶과 정신없이 바쁜 삶, 우왕좌왕하는 불안정한 삶을 깨뜨리고 나오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얼마든지 힘차게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무력함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2) 가난과 사역

 

고린도후서 8:9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삶의 본을 보이시기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것이 아니다. 주께서 가난하게 되신 이유는 주께서 세우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분명하게 알려 주시기 위함이었다. 진정한 기독교는 하나님께 우리의 소유를 드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각 개인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관계를 맺도록 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다. 현재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의 소유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예수님의 제자는 소유에 있어서 부자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풍성한 자들이다. 자발적인 가난은 예수님의 특징이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 9:58). 모든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들의 가난은 매우 중요한 주제였다. 오늘날 우리는 가난을 부끄러워하며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런지 외적 가난 속에서의 내적인 영적 부요에 대하여 거의 들을 수 없다. 바울과 예수님처럼 자발적으로 가난하여진 자들도 찾아볼 수 없다. 가난의 두려움은 언제나 우리로부터 영적인 등뼈를 뽑아낸다. 즉 가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과 복음의 편에 서지 못하는 무기력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님을 붙들고 주님과의 관계를 강하게 하라. 죽도록 가난하여질지라도 주님과의 관계를 놓치지 말라. 주께서는 사람들을 얽어 매는 이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우셨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떠나실 수 있었다.

 

3) 하나님의 섭리적인 뜻

 

잠언 3:5-6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사람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정산하게 된다.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하라. 당신의 기질에 따라 주를 섬기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가 당신을 이끄는 데로 하나님을 섬기라. 하나님의 종들은 뭔가를 깨달아 알기 전에 그 깨달음과 관련된 체험이 있어야 한다. 즉 당신은 체험을 통하여 배우게 된다. 따라서 체험이 먼저이며 그후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체험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신다. 우리는 각각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는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내게만 필요한 체험들을 따로 허락하신다. 그 특별한 체험은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나눌 수 있는 깨달음들을 허락한다.

하나님께서 당신과 관련하여 무슨 일을 하실지 걱정하거나 궁금해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이는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당신이 신경 쓸 일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들 가운데서 영적인 깨달음을 얻도록 하실 것이다. 모든 섭리 가운데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는 생명으로 사는 것을 배우도록 하라.

 

7.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영적 진단)

 

1) 왜 나는 사역하길 원하는가?

 

로마서 10:15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복음의 사역자는 보냄을 받아야 한다. 스스로 선택하여 사역자의 길을 떠나면 안된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각 개인의 결정에 따라 사역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이 일을 해야겠다. 그러나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요구 때문에 사역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요구에 의하여 사역자가 되는 것은 비정상적인 것이다. 사실 구원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 한 사람 마저 영적으로 공급하지 못하는 실정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친히 보내실 때까지 기다리라.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첫째, 내 자신이 너무나 연약하며 무능하다는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려면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것을 하셔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당신은 이러한 깨달음이 있으며 그 깨달음을 확신하고 있는가? 혹시 감상적으로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둘째,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거룩함을 보게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해야 한다. 보냄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가장 안일함을 느끼는 곳으로부터 주님께서 우리를 끄집어내셔서 주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보내시는 것을 의미한다. 주님의 사역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깨달을 뿐 아니라 자신의 철저한 부적절함과 자격 미달을 깨닫는 자이어야 한다. 보통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실 것이라고 전혀 기대조차 못하던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주의 종으로 부르시고 사역자로 보내시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철저하게 탐색하게 하신다. 그후 바울이 말한 것을 이해하게 하신다.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고후 13:4).

          종종 사역자의 삶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한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였는데 어느날 철저히 실패로 마치게 된다. 그러면 사역자는 완전히 부서지고 깨어지며 낙심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서부터 서서히 역사하시기 시작하신다. 네 수고가 무너진 것을 토대로 하여 내가 너를 나의 사역자로 온전케 만들겠다. 이제 일어나 먼지를 털어라. 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제 말해 주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의 사역자로 사용하시기 전에 철저하게 우리를 비천한 자리까지 몰아가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주님, 제게는 선한 것이 전혀 없습니다 라고 외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때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신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시지 않으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다고 뭔가를 하면서 사실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할 때가 많다. 현대인들의 인내의 부족이 기독교 사역에도 틈타 들어오더니 이제는 사역자들마저 주께서 그들이 무엇을 하길 원하시는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2) 나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시편 91:1

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아무도 당신에게 전능자의 그늘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 줄 수 없다. 당신 자신이 그것을 찾아야 한다. 전능자의 그늘을 찾게 되면 거기에 머물라. 주의 그늘 아래에 있을 때는 어떠한 악도 당신에게 발생할 수 없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서 당신이 얼마나 심도 깊은 시간을 보내느냐에 따라 사역자로서 얼마나 잘 준비되는가가 결정된다. 하나님과의 만남의 깊이는 감정이나 느낌, 또는 특별한 때와 장소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얼마나 하나님만을 중심으로 하여 주님과 깊은 시간들을 보내는가와 관련한다. 당신의 영적인 삶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그 어떠한 것도 조금도 허락하지 말라. 주님과의 사귐과 어울리지 않는 입술의 표현을 삼가라. 또한 바르게 살지는 못하면서 바른 말만 하는 자리에서 나오라. 그렇지 않으면 사역자는 가장 심각한 위선자로 비쳐지게 될 것이다. 아마도 당신은 지금보다 몇 개월 전, 또는 몇 년 전에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잘 표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만을 말함으로 말을 삼가게 된다. 대신 가장 높은 곳에 계신 그분을 만나는 비밀 장소와 시간을 더욱 마련하게 된다.

          이 시대에 아주 슬픈 일은 종종 사역자들이 사역자가 아닌 사람보다 훨씬 더 못난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실 사역자들이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보다 더 많은 짜증과 걱정과 초조함을 나타날 때가 있다. 이는 참으로 수수께끼 같은 일이다.

 

3) 심판에 대하여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베드로전서 4:17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베드로는 고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하나님의 집이 어디에 있는가? 내 몸 속에 있다 (고전 6:19). 하나님의 자녀로서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그 이유를 아버지께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종종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설명할 수 없는 고난을 허락하실 때도 있다. 이때 주께서는 당신의 가장 깊은 마음 속에 모든 것이 다 괜찮다고 알려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벧전 4:19).

고난은 징계 및 훈련을 위한다. 훈련되지 못한 미성숙한 성도가 징계를 받게 되면 징계를 멸시하거나 또는 그 징계가 사탄으로부터 왔다고 말하기 쉽니다. 혹은 하나님께서 꾸짖으실 때 절망 및 실신을 하거나 또는 땅굴을 파고 숨어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징계를 받을 때 히브리 기자의 말을 기억하자.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 12:5). 고난의 또 다른 경우는 주께서 고난을 당하심 같이 주의 고난에 동참하는 경우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고후 1:5).

          이러한 모든 고난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되도록 해야 한다. (역자 주 - 고난을 거부하지 말고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수천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결과적으로 아무런 영적 성장을 얻지 못하게 된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역자라면 주님의 그늘 아래서 사는 법을 배우도록 하라. 주님의 그늘 아래서 당신은 매일 하나님의 연단이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피하여가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심 같이 고난을 당하면 우리는 바른 길에 서 있는 것이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3). 우리는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받는 법을 배워야 한다. 종종 고난이라 하면 신체적으로 받는 고난만을 생각하거나 또는 하나님을 위하여 뭔가 중요한 것을 포기하는 것을 고난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개념은 아주 미천하고 어리석은 생각들이다.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서 우리가 지나는 고난을 통하여 우리는 내 자신에 대한 나의 모든 권리를 주께 양도해야 한다. 그러할 때 고난 가운데서도 언제나 기쁨과 평강과 만족이 찾아온다. 그러나 주의하지 않으면 그것들은 표면에만 머물게 된다. 이러한 기쁨이나 평강과 만족들은 고난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만드는 보충적인 역할을 한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완벽하고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 자리까지 가려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해야 한다.

 

8. 가장 주된 사명

 

1) 주님의 권하심으로 인한 부담

 

고린도후서 5:11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바울은 복음 전파의 부르심에 대하여 말할 때마다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고전 9:16). 이는 내 스스로 조용하고 안정된 가운데 복음을 전파하기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강요 및 강한 필요에 의한 부담 때문에 복음을 전파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바울의 삶의 주된 특징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의하여 사로 잡혀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그 사명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고린도전서 9:22-23절은 바울의 마음 속에서 뗄래야 뗄 수 없었던 부담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물론 바울의 복음 사역이 항상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참조, 17:32). 그럼에도 사역의 실패가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참조, 28:23-24). 예수님을 증거하려는 바울의 열심이 너무나 간절하여 종종 정신 나간 사람처럼 간주되기도 하였다. (참조, 26:24). 한편, 재미있는 사실은 종교적으로 광적인 사람들은 바울이 너무 정신이 온전하다고 비난하였다 (참조, 고후 5:13).

          하나님을 위한 사역자는 어떠한 어려움이 오더라도 견딜 각오를 해야 한다. 또한 사역자는 모든 잘못된 것을 선한 것으로 바꾸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사역자의 마음에는 복음에 대한 강한 강권이 있어야 한다. 사역자들은 일반인들이 전혀 애착을 갖지 않는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 이유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함이다. 우리는 주님의 사역자로서 단 한가지 부담만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사람들을 설득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오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또한 누구를 만나든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성경이 계시하는 사실을 그대로 알려주어야 한다.

 

2) 사역자의 인격 중에 가장 위엄 있는 능력

 

고린도후서 5:14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바울은 자신이 꼼짝달싹 할 수 없을 만큼 그리스도의 사랑에 사로 잡혀있다고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갇혀 있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사로 잡혀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음성을 듣게 되면 당신은 그 음성을 분명히 알아 듣게 된다. 성령께서 당신의 마음 가운데 자유롭게 활동하시는 것을 느낀다.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자신을 던져야 한다. 그것이 열매를 맺는 비결이다. 자신의 결벽(whiteness)을 추구하는 자들은 쉽게 바리새인으로 바뀐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힌 자는 언제나 하나님의 거룩과 능력의 자취를 남긴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면 그때 우리의 주요 간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이루셨는가 하는 것이다. 그 때 그렇게 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면 이러한 간증은 다 제쳐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게 된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내 증인이 되리라 ( 1:8).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는가에 대한 증인이 아니라 (이는 가장 초보적인 증거이다) (예수님) 증인이 되는 것이다. 내 증인이 된다는 뜻은 (예수님) 대신 당신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며, 이제 당신이 당하는 모든 사건들, 곧 칭찬과 비난, 핍박과 위로 등을 내게 (예수님) 발생하는 것처럼 취하는 삶을 말한다. 예수님의 인격적 능력의 엄위에 사로 잡히지 않으면 결코 우리는 이러한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바울이 말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합니다. 마치 신기한 열병에 든 것처럼, 또한 이상한 질병이 있는 것처럼, 나는 이렇게 행동하게 됩니다. 따라서 당신은 나를 미친 사람 또는 냉정한 사람이라고 부를지 몰라도 나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나는 단 한가지 목적만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바로 사람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선다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날 설교자들은 어떻게 하면 많은 청중을 사로 잡을 것인가에 대하여 대단한 열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자의 목적은 청중을 많이 얻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목적은 오직 주의 복음이 분명하게 제시되는 것이어야 한다.

성령께서 강권하시는 동기가 아니라면 절대로 설교할 생각조차 하지 말라. 성령의 강권하시는 동기는 언제나 그리스도 밖에 없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2).

 

 

출처 : 개혁주의 마을
글쓴이 : 참된 개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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