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가장 강력한 기도

하나님아들 2024. 12. 11. 00:07

누가복음 22장 39-46                                      

제목 : 가장 강력한 기도

 

본문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40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41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본문 주제관찰
①감람산 겟세마네 기도는 예수님께서 가르쳤던 기도를 총 집약하고 있다.
②누가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기도에 집중한다.
③간절하고 집중적인 기도하는 예수님과 기도하지 못하는 제자들

 

1. 가장 강력한 기도는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이다(39-40절). (적용적 해석 : 가장 강력한 기도는 규칙적인 시간을 정하고 하는 기도이다)

 

①감람산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에 습관적으로 기도하심
②유대인들의 기도 하루 세 번-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
③다니엘-하루 세 번 기도(단 6:10)
(결)가장 강력한 기도=습관을 좇아 기도
①성경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링컨
②루터-바쁘기에 하루 3시간을 기도
③스펄전이 목회하던 교회-런던 메트로폴리탄 교회


(결)가장 강력한 기도=습관을 좇아 기도
①제자들도 좇았다-제자들도 처음에는 기도했다
②돌 던질 만큼-기도는 외로운 싸움이다.
③예수님 새벽 미명에 홀로, 밤이 맞도록 홀로 기도
(결)가장 강력한 기도=홀로 외로운 싸움의 기도

 

2. 가장 강력한 기도는 내 원대로의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되는 기도이다(41-42절). (적용적 해석 : 가장 강력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기도이다)

 

①아버지의 뜻을 확인하는 기도
②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기도
③아버지의 뜻-이 잔(십자가 고난의 잔)


(결)가장 강력한 기도=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
①감람산 오르기 전날 밤 유월절 식사-잔과 떡
②구약-잔 축복과 저주의의 상징-두 가지
③♬찬 431장 내 주여 뜻대로 슈몰크 목사
(결)가장 강력한 기도=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
①아버지의 뜻대로 기도할 때 주의 사자-천사가 도왔다
②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롬8:26-27)
③가장 강력한 기도는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이다
(결)가장 강력한 기도=성령이 내주하는 기도

 

3. 가장 강력한 기도는 힘쓰고 애쓰는 기도이다(43-46절). (적용 : 가장 강력한 기도는 간절한 기도이다)

 

①힘쓰고 애쓰다-온 힘을 다해 싸우는 것을 의미-전쟁을 치루는 것과 같은
②예수님의 기도 영적인 전쟁
③땀이 핏방울-많은 양의 응고된 핏덩이
(결)가장 강력한 기도=힘쓰고 애쓰는 기도
①겟세마네-기름 짜는 틀
②감람나무 열매-네 번의 기름을 짜낸다
③조종대의 손-캐더린 폴라드 카터


(결)가장 강력한 기도=간절한 기도
①히5:7-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할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의 소원을 올렸다
②제자들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예수님에 대한 염려와 슬픔 가운데 잠들었다
③시험에 들지 않도록-시험-누가복음에서 시험은 다 사탄과 관련되어 있다. 예수님과 사탄과의 대결
(결)가장 강력한 기도=시험을 물리치는 기도

 

 복음서 중에서 예수님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그린 복음서는 누가복음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기도를 가장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기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와 달리 제자들은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독하게 기도하지 않았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기도의 사람들이 되었는가? 마찬가지로 우리도 기도하기 싫어합니다. 기도하며 변화를 바라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권세 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에 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로 돌아가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감람산 기도는 예수님이 가르쳤던 기도를 총 집약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기도가 있는데 그것은 오늘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기도입니다. “가장 강력한 기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1. 가장 강력한 기도는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이다(39-40절). (적용 : 가장 강력한 기도는 규칙적인 시간을 정하고 하는 기도이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죄 지은 사람들을 살리시려고 중재에 나섰습니다. 중재자, 중보자로 하나님과 중재로 나서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예수님은 기도하러 감람산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오셔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 되면 감람산으로 가서 기도하시고 쉬었습니다(눅 21:37). 감람산은 마태와 마가는 구체적으로 감람산 중턱에 위치한 겟세마네 동산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한결같았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서서 늘 기도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병자들을 치료 후에 사람들이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고 할 때에도 몰래 군중들을 빠져 나와 산으로 기도하러 가시곤 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이 기도였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던 제자들에게 주기도를 가르쳐주시기도 했습니다.

예수님 생애 마지막 십자가 상에서도 하나님 아버지께 내 영혼을 부탁하며 기도한 후 운명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기도의 삶을 사셨습니다. 기도의 삶을 사시고 기도를 가르쳐주시고 기도를 실천하신 예수님을 배우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 오르면서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습관적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예수님의 기도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지상에서의 습관적으로 하시던 기도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다니던 직장이 내일이면 정년 퇴직을 한다. 아니면 자신이 하던 일에서 은퇴를 한다고 하는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평소 자신이 하던 일들을 그만둘 때의 아쉬운, 서운함, 미련과 또 불안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늘 하시던 기도를 그만 두어야 한다는 것은 이 차원이 아닙니다. 기도를 끝내면 제자 중 하나가 자신을 팔 것이라는 사실을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저주의 부인과 제자들의 비겁함 배신과 십자가에서 벌어질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심히 화가 나 있거나 불안한 상태에서 기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 씩씩대기만 하지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마음이 불안한 상태에서도 기도가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습관적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기도의 습관을 들이시기를 축원합니다.

유대인 남자들은 성인이 된 만 13세부터는 하루에 세 번 정해진 기도 시간을 꼭 지켜야만 했습니다. 오전 9시와 오후 3시, 그리고 낮 12에 하던 일을 중단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 장애인을 고쳐 준 것도 오후 3시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던 시각이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메대 바사의 다리오왕 때 다니엘이 총리가 되어 다스릴 때입니다. 세 명의 총리 중 두 명의 총리와 방백들이 다니엘을 고소하고자 했으나 허물이 없었습니다. 이들이 생각해 낸 것이 삼십일 동안 왕 이외에 누구든지 어느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금령을 내렸습니다. 이들은 다니엘이 평소 기도하던 습관을 알았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덫을 놓은 것입니다. 다니엘은 무모하게 그 덫에 걸려들었습니다. 습관을 좇아 다니엘은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알고도 평소대로 하루 세 번 기도했습니다.

단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다니엘이 강심장입니까? 왕의 명령을 어긴 사람은 사자굴속에 던져 넣는다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즐겨 들어가기를 좋아해서 평소 하던 습관을 좇아 기도했나요?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한 줄 믿습니다. 기도하면 죽을 것 같은 상황인데도 살아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앞에 놓인 변개할 수 없는 어인이 찍힌 문제 앞에 굴복하지 않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그 어인을 봉할 줄 믿습니다. 사자굴에 떨어지는 위험이 있어도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사자입을 봉할 줄 믿습니다.

기도 없이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스펄전이 목회하던 런던 메트로 폴리탄교회의 지하는 예배시작 전에 예배를 위하여 수많은 교인들이 간절히 기도하곤 했습니다. 스펄전이라는 명 설교자가 그냥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교인들의 기도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교인들의 습관적이고 규칙적인 기도의 불이 타 올랐기에 금세기의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여의도 순복음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습관적으로 규칙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철야기도와 새벽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김삼환 목사님의 명성교회가 새벽기도로 30년을 쌓아왔습니다. 새벽기도하면 명성교회 아닙니까? 기도 없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 없이 부흥하고 기도 없이 개인이 잘 되는 것은 이제 내려가는 일 밖에 없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인 링컨은 성경과 기도로 일과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습관적입니다. 규칙적입니다. 루터는 “만일 내가 아침 두 시간씩 기도하지 않았다면 마귀가 그 때 승리하였을 것이다. 내게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매일 세 시간씩 기도하지 않고서는 지낼 수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시간씩 기도 하십니까? 바뻐서 기도를 못하십니까? 두 시간씩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바뻐서 시간이 없습니까? 세 시간씩 기도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바쁜 일이 있으면 제일 하지 못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런데 역사에 남은 사람들은 바쁠수록 기도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말씀과 더불어 기도의 습관이 체질화 되어야 하는 줄 믿습니다. 아멘!

예수님은 눈앞에 다가온 십자가 사건을 두고 제자들도 함께 기도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기도하러 갔습니다. 예수님과 달리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늘 기도하시던 예수님과 동고동락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운명적인 그날 밤 예수님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도를 할 때에도 제자들은 영적인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저는 주장합니다. 이들은 기도의 습관이 몸에 배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기도는 습관이 되지 않고는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할렐루야! 기도하는 시간이 고역스러운 시간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즐거운 시간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가장 귀한 시간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습관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도하는 시간이 고통스럽습니다. 기도하는 일이 즐거운 시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기도해야 되죠. 기도하면 됩니다!

존 채프먼 수도사의 신앙 편지 중 “기도의 유일한 길은 기도하는 것이며 기도를 잘 하는 길은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를 많이 할 수 있도록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는 시간만은 양보하지 맙시다. 습관들이기까지가 문제입니다. 사탄 마귀는 끊임없이 기도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규칙적이고 시간을 정하여 기도할 때 예수님처럼 가장 강력한 기도의 힘이 나오는 줄 믿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사탄이 할 일이 없어 교회 꼭대기에서 졸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규칙적인 기도, 습관적으로 기도도 몸에 배여 사단을 피곤하게 만들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본 받아 습관적으로 기도의 장소에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기도는 외로움의 싸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돌 던질 만큼 떨어져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영적 전쟁인 이 기도의 장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손이라도 잡고 합심기도라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인데요. 그러나 예수님은 늘 외로운 싸움을 합니다. 새벽 미명에 혼자서 한적한 곳에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눅 6:12-13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하나님의 기도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사도를 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거의 11-12시간을 기도하고 있음을 봅니다. 다. 예수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주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눅 11:1-2).

이처럼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였다는 기사가 다른 복음서에 비하여 많이 나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처럼 습관을 좇아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홀로 외로운 싸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로운 영적인 씨름, 몸부림 끝에는 반드시 축복이 있음을 믿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가장 강력한 기도는 내 원대로의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되는 기도이다(41-42절). (적용 : 가장 강력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기도이다)

 

예수님의 기도 내용은 십자가, 고난의 잔과 관련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기도해도 답답한 이유가 아버지의 뜻을 알지 못해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큰 아픔과 시련이 올 때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 괴롭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겨야하는지 가슴 아플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면 그 뜻대로 기도하면 좋은데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어 답답합니다. 때로는 기도해도 전혀 기도에 대한 응답이 없어 답답해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장 강력한 기도는 내 뜻대로의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기도입니다. 내 뜻대로 내 고집대로 기도가 이루어지기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도가 있기를 원합니다. 한 차원 높은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는 주기도를 몸소 실천한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아멘!

그런데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묻기보다 나의 기도 제목들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도 하나님 중심의 기도로 전환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몸부림치는 영적 싸움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구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한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인 예수에게 잔을 마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아야 할 잔은 자기 백성의 구원을 위해서 마실 저주와 진노의 잔입니다. 즉 십자가의 형벌을 말합니다.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가장 치욕스럽고 잔인한 형벌은 십자가 형이었습니다. 육신을 입은 예수님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신하여 받게 될 진노의 잔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누가 고통을 달게 받으며 수치와 상처를 입기 원하겠습니까? 될 수 있으면 위험한 일은 피하고 싶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고통처럼 인간을 두렵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물질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우리 생활에 불편함과 두려움을 줍니까? 육체적으로 시시각각 다가오는 고통은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팔이 다쳤을 때 수술 후 밀려오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요즈음은 통증클리닉이 병원에서 같이 운영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육체적 고통은 두려워합니다. 정신적인 수치와 모멸감의 고통은 또 다른 스트레스를 가져다 줍니다. 그러나 인간의 최고의 고통은 죽음으로부터의 고통입니다.

감람산에 오르시기 전 날 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같이 하셨습니다. 유월절 식사는 통상 유대인들이 출애굽을 기념하는 식사였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으로 알려진 예수님의 식사는 인류의 구원을 이루는 이제 성취될 그런 역사적인 식사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예수님은 포도주 잔을 돌리며 죄용서를 위해 흘리는 새 언약의 축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제자들은 이 잔을 받음으로 구원의 복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대신 저주와 진노의 잔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성만찬을 기념하면서 우리가 예수님이 주셨던 잔과 떡을 마시고 먹을 때 구원의 축복에 참예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강력한 기도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저주의 잔을 마셨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신의 뜻을 좇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좇았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축복의 잔을 마시고 대신에 예수님이 저주의 잔을 마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잔은 구약에서 축복과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혹은 전 민족이 축복의 잔을 마실 수도 있고 저주의 잔을 마실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적 고통과 함께 정신적인 고통, 그리고 죽음이라는 고통에 직면해 있는 잔을 피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 잔을 마시지 않고 구원 받을 길이 있다면 그 길을 허락해 달라는 간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단서를 붙였습니다. 예수님은 본성적으로 죄를 싫어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이제 인류의 온 죄를 짊어지셔야했습니다. 실로 예수님이 마시기를 원치 않는 잔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잔을 원치 않은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은 아버지와 지속적인 교제를 누리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잠깐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과 교제를 박탈당해야 상황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교제가 끊기고 버림받아야 하는 처지의 진노의 잔을 마시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제일 두려워한 것은 육적인 고통보다도 영적인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택한 것은 내 원대로 마옵소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원문에 보면 내 원대로-델레마-영어 딜레마- 양자 택일에 있어서 나의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해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여태까지는 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세상 욕망에 사로잡힌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기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가장 강력한 기도한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하시를 축원합니다.

1618년에 시작된 유럽의 신구교전쟁은 1648년 전쟁이 끝나기까지 30년 동안 유럽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신구교의 대립은 여전했고 건물은 폐허가 됐으며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독일 인구 1천 6백만 중 6백만명이 살아 남았습니다. 전쟁으로 의기 양양해진 카톨릭은 개신교 탄압을 시작하였습니다.

개신교 루터교회의 벤자민 슈몰크 목사님이 거의가 다 카톨릭교회로 돌아가 그 넓은 지역에 유일한 통나무 움막이요, 종탑도 없는 흙벽의 교회 하나만 허락되었습니다. 도심지에는 교회를 세울 수도 없고 카톨릭교회 신부 허락 없이는 장례식도 치룰 수 없게 되었습니다. 슈몰크 목사님은 조사 두 명과 함께 36개 마을이나 되는 넓은 교구를 카톨릭 신부들의 눈치를 살피며 돌봐야 했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슈몰크 목사님은 과로로 쓰러졌고 중풍병과 오른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백내장으로 실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넓고 넓은 교구를 심방하며 살펴야 했습니다.

카톨릭교회와 루터교회 사이에서 방황했던 교인들도 목사님의 뜨거운 사랑에 녹아져 돌아오게 되었고 서로 부둥켜 안고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먼 곳까지 찾아가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했고 신자들은 목사님의 건강이 어서 회복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사랑으로 얽힌 교회는 크게 부흥했습니다.

1704년 어느날 병약한 슈몰크 목사님 부부가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 보니 집은 불타 버렸고 연기만 나고 있었습니다. 집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신없이 아들들의 이름을 부르며 잿더미를 파헤쳤습니다. 그러나 잿더미를 파헤쳐 보니 불행하게도 그의 사랑하는 두 아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새까맣게 탄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그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비통한 마음으로 울부짖었습니다. 견딜 수 없는 아픔과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도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당신의 일을 하면 제 가정과 제 자식을 지켜 주셔야지 왜 불이 나게 했으며, 제 자식들을 죽게 만듭니까? 하나님 그러실 수 있습니까?”

그는 엉엉 울었습니다. 땅을 치며 통곡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 느날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보이지 않는 주님의 손이 그를 감싸 안았습니다. 주님의 영이 그 마음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내가 준 아들을 너에게 선물로 주었다. 너는 네 자식으로 인해서 그렇게 슬퍼하면서, 마음 아파하면서, 내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고 그가 죽었을 때의 내 마음과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겠니! 나는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고 외면했다. 차마 볼 수가 없어서 구름과 어둠으로 덮었노라!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이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아픔이 얼마나 컸는지 그 십자가의 고통과 하나님의 사랑과 나의 위로를 전하고 증거하여라”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작사한 곡이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 입니다.

♬찬 431장 내 주여 뜻대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내 뜻대로가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기도할 때 주의 사자가 도울 줄 믿습니다. 너무나 간절한 기도로 말미암아 기진맥진한 예수님을 천사가 와서 도왔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천사가 와서 도왔다는 기록은 성경에 유래가 없는 독특한 사건입니다. 기도할 때 천사가 와서 기도 응답을 전한 경우는 성경에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천사가 나타나 기도를 돕는 경우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예수님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할 때 천사의 도움을 받은 것입니다. 천사의 도움으로 예수님의 기도가 더욱 간절해지고 애절해 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할 때 천사가 와서 도우는 줄 믿습니다. 아니 기도할 수 없는 처지에 있을지라도 성령께서 도우시는 줄 믿습니다.

롬 8: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천사보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여 간구하는 기도는 더 강력한 힘이 있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뜻대로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간구할 때마다 큰 역사가 일어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가장 강력한 기도는 애쓰고 힘쓰는 기도이다(43-46절). (적용 : 가장 강력한 기도는 간절한 기도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장 강력한 기도는 힘쓰고 애쓰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힘쓰고 애쓰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를 위해 싸우는 용사와 같은 자세로 기도하셨습니다. “힘쓰고 애쓰셨다”에 해당하는 원어는 전쟁용어입니다. 또한 운동경기에 쓰이는 말이었습니다. 성경에서 8번 나왔습니다.

눅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딤후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예수님의 기도가 전쟁을 치루는 것과 같이 온 힘을 다하는 기도였음을 봅니다. 예수님의 힘쓰고 애쓰는 기도는 인류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결정적인 전투기도였습니다. 눈앞에 둔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 기도하는 영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는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전쟁에는 피흘림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영적인 전쟁을 치르느라 기도 중 땀이 피가 되어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힘쓰고 애쓰는 기도 없이 사단 마귀와의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저는 특별히 차를 탈 때마다 힘쓰고 애쓰는 기도를 합니다. 차 번호 6288-0688이었으면 좋았는데... 6288하면 부족-0288하도록 영도 팔팔하도록 힘쓰고 애써 기도합니다.

운동선수가, 전쟁에 나간 군인이 힘쓰고 애쓰지 않으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단마귀와의 기도 전쟁에서 승리하여야지 우리 삶의 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힘쓰고 애쓰는 기도로 말미암아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았다고 했습니다. 핏방울이란(쓰롬보스 하이마토스- qrovmbo" ai{mato")약간 피흘림이 아니라 많은 양의 응고된 핏덩이를 말합니다. 땀이 응고된 핏덩이처럼 땅에 계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이 기도가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한가를 원색적인 표현을 통하여 생생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영적인 힘쓰고 애쓰는 기도로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영적인 기도가 드려진 것은 메시지가 숨어있습니다. 겟세마네는 틀을 뜻하는 “가트”와 감람나무 기름-올리브기름을 뜻하는 “슈마님”이 합쳐진 복합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올리브기름을 짜는 틀이 있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올리브기름을 쥐어짜는 것처럼 심령을 쥐어짜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올리브기름은 네 번을 짭니다. 첫 번째 기름을 짤 때는 제일 가벼운 무게추를 올려놓고 기름을 짭니다. 이것은 성전에서 기름으로 사용하는데 촛대를 밝힙니다. 왕이나 선지자들을 에게 기름부을 때 사용합니다. 처음 짜고 남은 찌꺼기를 더 무거운 무게추를 사용하여 다시 기름을 짜내는데 이 기름은 가정에서 식용으로 사용합니다. 성서시대부터 현제까지 이스라엘의 대표 수출품으로 명성을 이어왔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올리브기름은 기쁨과 축복의 상징이었습니다.

시편 45:7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부어 왕의 동류보다 승하게 하셨나이다

두 번째 기름을 짜고 남은 것을 조금 더 무거운 추를 이용하여 세 번째 기름을 짭니다. 가정용 등불과 여자들의 화장품, 약품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나올 것 같지 않은 찌꺼기에서 더 무거운 무게추를 이용하여 네 번째 기름을 짭니다. 이 마지막 기름은 잿물을 부어 비누로 사용했습니다. 올리브-감람나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땔감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네 번에 걸쳐 짜고 남은 찌꺼기조차 버리지 않고 땔감용으로 사용합니다.

무거운 무게추가 감람나무 열매위에 올려져 누를 때 바구니 옆에서 기름이 흘러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힘쓰고 애쓰는 기도는 온 인류의 죄의 짐을 짊어지고 누르는 중압감으로 인하여 힘씀이 애씀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중압감-올림픽 피겨 김연아 선수 미국 NBC 해설자 아무도 노력하지 않고 멀리 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기도 역시 힘쓰고 애써야지만이 멀리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멀리 갈 수 있는 힘스고 애쓰는 기도로 우리도 승리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에 힘쓰고 애씀이 필요했던 것은 바로 죄의 무게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죄의 무게가 아니라 온 인류의 죄를 친히 감당해야 했던 무게입니다. 마치 감람나무 열매의 기름을 짜듯이 한 개, 두 개, 세 개, 그리고 네 번의 무게추가 짓누르듯 예수님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올 것 같지 않은 마지막 남은 찌꺼기까지 짜내듯 겟세마네 기름 짜는 틀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온 몸을 짜내어 찌꺼기가 될 정도로 피땀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찌꺼기마저 땔감으로 사용되었듯이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자신의 몸을 전부 불태우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의 몸이 부서지고 가루가 되어 나오는 힘쓰고 애쓰는 기도는 하나님께 외면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배우기를 축원합니다. 힘쓰고 애쓰는 기도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조종대의 손(Hand on the Helm)이라는 책은 캐더린 폴라드 카터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있었던 이로 영국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의 책입니다.

1940년 9월 영국 수상 처칠은 독일 나치의 공습이 임박했다는 첩보를 받았습니다. 200대 이상의 나치 폭격기들이 영국을 공격하기 위해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단지 26대의 비행중대만이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 땅에서 발진했습니다. 상대가 되지 않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거대한 독일 비행군단이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습니다. 185대의 비행기가 연기 속에 격추되었습니다. 모든 이론적인 가능성을 물리치고 영국의 공군비행대가 기적적으로 전투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추락한 전투기의 나치 조종사들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러 명의 조종사들에게 단지 2대의 전투기가 공격해 오는데 퇴각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두 대라고요? 한 조종사가 말했습니다. 수 백대였어요. 다른 독일측 공군 장교는 도대체 영국상공에 내보낸 이 많은 전투기들이 어디서 났습니까? 이 사건을 조사하던 영국군 수사관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독일군들이 만난 비행기는 영국의 낡고 작은 몇 대의 구형 모델이 전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이 영국공군비행대의 전투기로 가득차 있다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포로가 된 독일 수사대 장교와 영국 수사관은 독일 공군조종사들을 혼동시킨 이유를 알았습니다. 독일 나치 수사대 장교는 매일 저녁 빅벤 시계탑의 시계가 9시를 알리는 종을 치면 당신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비밀무기를 사용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나무 강력해서 우리는 어떤 무기로도 그에 대할 할 수 없습니다.

빅벤(영국 런던 국회 의사당 거대한 시계탑) 시계가 9시를 치게 되면 강력한 무기가 작동합니다. 그것은 빅벤 시계가 9시를 알리는 매일 저녁, 대영제국과 멀리 떨어져 있는 영국령의 모든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기도한 시간이었습니다. 전쟁이 한창 진행 된 2차대전 기간 영국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매일 저녁 9시가 되면 빅벤 시계탑에서 울리는 시간 침묵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가장 강력한 기도가 전달된 것입니다. 기도하는 국가는 망하지 않습니다. 간절한 기도가 나라를 살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장 강력한 기도, 간절한 기도는 힘쓰고 애쓰는 기도입니다.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육체에 계실 때에-그가 육체로 사는 날 동안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지상사역 모든 기간 중에 심한 통곡과 눈물의 기도를 드리고 있음을 봅니다. 예수님의 힘쓰고 애쓰는 땀과 피의 기도와 달리 기름짜는 틀의 동산에서의 제자들은 잠들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염려와 슬픔가운데 잠이 들었던 것입니다. 단지 걱정 근심은 기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런 문제 해결이 될 수 없습니다. 힘쓰고 애쓰는 기도만이 승리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잠들어 있는 이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고 두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시험에 드는 것은 반드시 사탄과 연관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사탄과의 시험에서 항상 승리하셨습니다. 사탄은 광야에서 40일 금식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사탄은 간접적으로 사람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시험하셨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 유대인들 심지어 제자들까지 시험의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마지막은 십자가의 시험이었습니다.

우리도 늘 사탄이 주는 시험에 늘 들 수 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고 깨어있기를 축원합니다. 힘스고 애쓰는 강력한 주의 기도로 시험을 물리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감람산 기도뿐만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쳐서 간절하고 애절한 땀과 피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처럼 습관적인 기도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장 강력한 기도는 내 뜻대로 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기도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힘쓰고 애쓰는 땀과 피의 기로로 말미암아 여적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