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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의 예수님 (마 1:18-23)

하나님아들 2024. 12. 11. 00:01

 임마누엘의 예수님 (마 1:18-23)

 

성탄절을 보면 성탄절 그 자체만 있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성탄절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공휴일입니까? 예수님의 탄생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요즈음은 더 약화된 느낌입니다. 성탄 트리도, 캐롤도 삭막한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탄절에 유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성탄절에 가장 큰 슈퍼스타는 산타크로스입니다. 어떻게 보면 산타크로스는 적그리스도요, 이단의 최대 교주일 수도 있습니다. 본의가 아니지만 관심을 온통 예수님에게서 빼앗아 산타인 자신에게로 돌리고 예수님으로부터는 점점 멀리 떨어지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탄주일입니다. 어떻게 지내야 하겠습니까? “성탄절 그래, 성탄절, 성탄절이 성탄절이지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해?” 과연 성탄절이 성탄절이기에 성탄절로 끝내야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성스러운 탄생을 기념하는 날을 맞이하여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아울러 살펴보기로 합니다.

 

오늘 주목할 단어는 ‘함께(with)’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을 네 글자로 표현하면 ‘동고동락’입니다. 함께 괴로워하고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함께 하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함께 하지 못하면 사는 맛이 반으로 줄어듭니다. 사람들과 함께 하지 못해도 그러한데 하나님과 함께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노아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창 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니까 사람들은 120년도 안 돼서 거의 다 죽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해주십니다. 노아와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창 6:18,19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하게 하되.” 하나님은 함께 하셔서 구원해주십니다. 인간 대대로 그 구원의 증표를 주셨는데 무지개입니다. 창 9:12,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오늘은 하나님께서 진정 우리와 ‘함께’ 하시는지 구약과 신약 성경 가운데 대표적인 몇 사람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노아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야곱과도 함께 하셨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해가 져서 돌을 베개로 삼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들은 말씀입니다.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은 홀로 빈털터리로 갔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약속대로 수많은 처자와 함께 거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야곱 이후에 유명한 사람은 요셉입니다. 요셉은 야곱보다 더 못했습니다. 그러나 노예로 따로 떨어져 살았지만 하나님은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이 꼬이고 잘못되어 가는 것 같았지만 가는 곳곳마다 하는 일마다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창 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 다음으로는 모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호렙 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애굽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구해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팔십 노인으로 힘이 없어 자신의 몸도 가누기 어려워 지팡이를 의지하고 다니기에 자신이 없어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냅니까?(출 3:11)”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출 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자 강건해지고 능력도 받아서 혼자 몸이 아니라 이스라엘 이백만 명의 자손을 이끌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해낼 수 없는 여건이라도 할 수 있게 하십니다.

 

모세 다음으로는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있습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요단강을 건너서 약속한 땅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수 1: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은 이처럼 함께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마귀는 분열을 일으켜 자꾸만 떨어지게 만들지만 하나님은 자꾸만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애쓰십니다.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그 이후로는 사사들이 통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사들과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삿 2: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사사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갈 때 킹메이커 역할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무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무엘과도 함께 하셨습니다. 삼상 3: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이와 같이 하나님은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이 하나님의 선지자로 세워져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삼상 3:20,21).

 

사무엘 선지자 다음에 나단 선지자가 활약하였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유명한 왕의 시대에 선지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다윗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밤에 나단 선지자에게 나타나셔서 “다윗 왕에 가서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삼하 7:8,9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하나님께서 함께 한다는 것은 이처럼 위대한 일이요 아름다운 일입니다. 사람들과도 함께 하면 좋은데 하물며 하나님과 함께 하면 얼마나 더 좋겠습니까? 아가서는 그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아 2: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일어나 함께 가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입니까?

 

이 사랑을 아가서에서 노래한 다음에 곧바로 이사야서가 등장합니다. 이사야 7장 14절을 보면 드디어 메시야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 예언대로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성취되었습니다.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마태복음 1장 23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 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귀한 단어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진 것 없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해낼 수 있고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탄절이 되어도 이것을 놓쳐버리면 다른 것을 얻을 때가 더 즐거울 수 있습니다. 산타가 선물을 주면 더 기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계속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깨닫고 그 예수님을 믿으시고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친히 오셨습니다. 오실 때 거창하게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제국의 황태자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포로가 된 조그마한 나라에 오셨습니다. 그 나라 가운에서도 수도인 예루살렘도 아니었습니다. 한 허름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서 나사렛이란 시골동네에서 사셨습니다.

 

사역하실 때에도 유명한 사람들만 찾아다니지도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기피하는 곳에 가셨습니다. 마 9:10,11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님은 깨끗한 사람, 스마트한 사람에게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골라서 오시지도 않으셨고 골라서 만나지도 않으셨습니다. 차별하지 않고 모든 죄인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름대로 죄인의 죄를 사해주시고 죄인을 구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본문 1장 21절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은 이처럼 자신의 영달을 위해 오시지 않으시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시고 아낌없이 그 모든 것을 주셔서 구원해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 임마누엘의 예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부활승천하시면서 남기신 말씀입니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할 일 끝~”이라고 하시면서 뒷짐 지시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항상 함께 있겠다는 약속대로 함께 하십니다.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들에게 주 예수님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의 손길이 함께 하셔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행 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이처럼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은 너무나 귀한 일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주님께로 돌아와서 큰 무리가 더하여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주님과 함께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그 어떤 교회도 주님의 손길이 함께 하시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우리 성도가 되시고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시대의 유명한 사도로 바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바울과도 함께 하셨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할 때 예수님께서 밤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행 18: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임마누엘의 예수님은 이렇게 늘 함께 하셔서 함께 행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주님과 더욱 더 잘 함께 할 수 있을까요? 한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빌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하나님은 잘 순종하는 사람과 더욱 함께 하시기에 우리도 잘 순종하면 됩니다.

 

오늘 우리는 노아,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사사, 사무엘, 다윗,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 바울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신 사람, 하나님과 함께 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공통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순종 가운데 어떤 순종을 특히 잘하였습니까? 생명을 구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올해의 메시지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분들의 공통점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부자가 되기 위해, 건강하기 위해, 유명해지기 위해, 많이 배우기 위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고 잘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았는데 결과는 그 모든 것을 얻었지 않았습니까?

 

오늘날 그런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인, 기업인, 공직자, 교회와 사역자와 성도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을 많은 간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을 구하고 복음을 전파하는데 목숨을 걸었더니 자신도 모르게 위대해져 있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과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살았더니 그렇게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그런 대열에 합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2×2=5”라는 잘못된 곱셈공식을 사용하지 않고 “2×2=4”라는 올바른 곱셈공식을 사용한다면 됩니다. 잘못된 공식으로는 수학문제를 풀 수 없습니다. 잘해보려고 하지만 인생살이 내내 잘 풀지 못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공식을 사용하면 술술 잘 풀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올바른 공식을 사용한다면 우리 역시 공식대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형통하기 위해서 모든 것이 더해지는 것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면 안 됩니다. 그저 먼저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셔서 해결해주시는 것을 믿고 말씀대로 약속대로 먼저 생명을 살리고 예수님을 전파하는 일에 힘쓰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더욱 더 우리와 함께 해주십니다. 그렇게 되면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통해 더 많은 생명을 살리게 되고 그 일에 쓰임을 받다보면 위대한 일들이 우리에게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정리합니다. 성탄절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성탄절이 성탄절이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해버릴 것입니까? 우리는 성탄절이 단순한 성탄절이 아니라, 누구의 성탄절도 모르는 성탄절이 아니라 임마누엘의 예수님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해주십니다. 성경을 마치면서 남긴 말씀이 그렇게 말해줍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절과 4절입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제 마지막으로 이 인사를 드리면서 마치려고 합니다. 살후 3:16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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