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논문 소논문

요한계시록의 일곱 Macarism 에 관한 연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 학 과 신약학전공 이 철 규

하나님아들 2023. 4. 11. 15:29

제 2012 년도 석사학위(Th.M.) 청구논문

 

요한계시록의 일곱 Macarism 에 관한 연구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 학 과 신약학전공 이 철 규

 

요한계시록의 일곱 Macarism 에 관한 연구

이 論文을 碩士學位 論文으로 提出함 20011 년 11 월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신 학 과 신약학전공 이 철 규 iv 논문개요 초림과 재림 사이,

이미와 아직(Already not yet) 사이의 긴장된 이 땅에서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종말적 사고이다.

 

요한계시록은 이런 관점에서 읽혀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을 단지 미래를 열어주는 신비한 책으로만 간주함으로써 오늘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지 못하는, 우리와 너무 먼 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왔다.

 

본고에서는 묵시문학이 단지 종말적 이슈나 천상의 비밀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이슈들을 현재에 연결시켜 오늘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 착안하였다.

계시록 안에는 묵시문학의 특징 중 하나인 지혜문학의 전통이 간직되어있다. 조건성을 내포한 명령문과 조건절의 형태를 갖는 권고문들, 그리고 지혜문서에 나타나는 여러 지혜적 표현들이 그러한 증거가 된다.

본 연구는 지혜문서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일곱 macarism 에 대한 연구이다.

이 속에 담겨있는 지혜전승을 찾아 요한계시록이 단지 종말과 미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어떤 자세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알려주는 위로와 권면의 목적을 지닌 책으로 윤리적 주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먼저 본문 연구를 위한 배경 연구로 묵시문학으로서의 요한계시록이 차지하는 의미와 특성을 알아보며 묵시문학의 지혜전승적 요소를 찾았다. 또 지혜문학의 신학적 주제적 특징을 살펴 계시록에 나타나는 지혜전승적 요소를 찾아내 요한계시록이 지혜문학적 요소가 있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나아가 지혜문학적 표현 중 하나인 macarism 의 문학적 특징을 살펴 보고 이 속에 담긴 종말론적, 윤리적 사상을 탐구하였다. 일반적인 관점으로 묵시적 특징은 역사의 우주적 조망과 궁극적 시공간 조망을 주는 반면, 예언적 서신서적 특징은 말씀이 전달된 공동체의 현재 상황에 집중하게 된다.

이런 이중성으로 시간과 공간의 지평을 밖으로 팽창시켜주고 동시에 안으로는 현재적 의미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묵시문학의 지혜 전승적 요소는 윤리적 해석에 무게 중심을 더욱 실어준다. 지혜전승의 문학적 요소는 계시록에서 지혜전승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요한계시록에서 기본적 문학양식인 격언과 훈계 모두의 흔적들을 v 발견할 수 있는데 격언에서는 ‘복이 있도다’격언이 macarism의 형태로 전승되었고 훈계에서는 명령문과 동기절이 어우러진 문장형태가 요한계시록 2-3 장에서 많이 발견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지혜전승적 서술을 가진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이러한 배경 연구를 바탕으로 주해를 통해 요한계시록의 일곱 macarism의 종말적 윤리적 해석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일곱 macarism 의 배열에서 발견된 독특한 6+1 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각의 절을 주해함으로 윤리적 권면이 요한계시록 저자의 핵심 메시지임을 밝혀냈다. 교차대구를 이루는 여섯 macarism 속에서 A, A’→B, B’→C, C’로 이행할수록 저자의 메시지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사상은 일곱째 macarism 과 주제적인 연결고리를 가지며 절정을 이루게 된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macarism 의 주해를 통해 얻어진 사실은 먼저 A-A’에서 독자들에게 말씀을 지키라는 실천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BB’에서 조금 더 나아가 그렇게 말씀을 지키다 보면 필연적으로 부딪치는 주변 상황과의 갈등을 예상하고 죽기까지 인내하여 첫째 부활에 참여하라고 촉구한다.

이러한 권면을 받은 독자들이 느낄 부담감을 C-C’에서 해결해준다. 죽음을 각오하고 환란과 핍박을 인내하는 자는 혼인잔치에 참여할 예복을 지키는 것이 되며, 이로써 신랑 되신 어린 양의 신부이자 동시에 하객으로 초청받아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하면 마침내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를 위해서 부단히 신앙의 인격을 정결하게 유지하라는 저자의 윤리적 실천적 권면이 담겨있다.

이상과 같이 계시록의 주 기능은 권면에 있음을 알아냈다. 요한계시록은 심판의 시기에 관한 미래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주된 수사적 기능이 아니라 종말론적 틀 안에서 현재를 미래적 관점에서 보고 또 그런 관점에서 살도록 촉구한다.

 

vi ABSTRACT The apocalyptic awareness is required of the humanity dwelling amidst the era between the First Coming and the Second Coming of the Lord—in other words between Already and Not Yet. Notwithstanding, the book of Revelation needs to be interpreted on the above perspective, the book has been just regarded as the foretelling writings hardly suggesting good lives. This paper was originated from the notion that apocalyptic literatures not only deal with those apocalyptic issues and heavenly secrets but also need to be linked to the daily lives. The book of Revelation bears tradition of wisdom literatures, for the book has imperative sentences with motive clauses, numerous expressions of exhortations based on the format of conditional phrases, and phrases of wisdom expressions easily found in the wisdom literatures. This study is about a research on the Seven Macarisms in the book of Revelation; thus, the study aims to list wisdom tradition in the whole book and to exhibit that Revelation was written to not only offer apocalypse and future but also provide recommendable attitudes in living under the purpose of consoling and advising. In order to found the background, the study focused on the meanings and the properties of the book of Revelation as an apocalypse and listed the elements of wisdom tradition. Furthermore, throughout the comparison between the theological and the thematic properties of the wisdom literatures and that of Revelation, this paper reveals that the book of Revelation has properties of wisdom literatures. Furthering the notion, the paper studies on the literary properties of Macarism—one of the wisdom literature expressions—and the apocalyptic and the ethical philosophies Macarism has. Apocalyptic properties—one of the most representative generic features of Revelation—certainly have the universal and the vii ultimate spatio-temporal views on the history. Simultaneously, the prophetic and the epistolary properties let readers focus on the contemporary situations of the community when and where the message was transmitted. These perspectives are compatible so that they provide both expansion in spatio-temporal limitations and elaboration in daily life meanings. In addition, wisdom tradition factors of apocalyptic literatures enlighten ethical interpretations as well. Foremost, the book of Revelation has a couple of typical literary formats of the wisdom tradition, saying and admonition: the former, rhetoric begun with ‘Be blessed’, the latter, imperative sentences with motive clauses. Based on the background study, the exegesis of the Seven Macarisms of the book of Revelation embodies the eschatological and the ethical interpretations. Furthermore, throughout the analysis of the Seven Macarisms, the “six plus one” pattern and the chiastic arrangement of the first six were uncovered. Hence, analysis of these structures and seven verses verifies the core message of the author himself to be ethical exhortation. The first Six Macarisms with the chiastic structure—from A,A’ to C,C’ via B,B’— clarifies the message of the author in progression. The message of the chiastic structure links with the climatic message of the Seventh Macarism thematically. In this exegesis, A,A’ presents the practical guide line of adherence to the word of God. The conflict with the milieu is, nonetheless, inevitable while obeying the word of God. For that reason, B,B’ calls to participate the first resurrection by being faithful to death. In accordance, C,C’ presents the hope to be called to the marriage as the bride and as the guests, so that they may enter the gates into the city and have the rights to the tree of life. For this purpose, the author urges to keep clean character of faith and exhorts ethically. Therefore, the main purpose of the book of Revelation is not only to inform us about the time of future judgment but also to exhort us ethically to live in the eschatological perspective seeing the present with the view of future.

 

viii 헌 사 정직과 성실이라는 유산을 물려주시고 주님의 품 안에서 안식하고 계실 부모님을 기억하면서 2011년 12월에 ix 감사의 글 신앙과 삶의 일치(Integration), 이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클리쉐(cliché 낡고 진부한 표 현)일지 모르지만 치과의사인 나로서는 결코 쉽게 넘어갈 수 없는 것이었다.

Integration(일치, 유착)! 치과의사들만큼 이 단어를 실감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뼈 속에 심겨진 임플란트가 제대로 유착되지 않으면 음식을 씹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불편만 초래하다가 제거된다.

이렇듯 유착되지 못하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임플란트는, 결국 죽은 것으로 간주되고 뿌리 뽑힌다.

우리의 삶과 신앙의 일치라는 문제도 제 기능을 하는지 여부를 통해 성패를 결정하 는 치과 임상에서처럼 이렇듯 중립지대가 없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을 안고 본교에 들어온 지 벌써 6년의 시간이 흘렀다. 의료윤리학이라는 막연 한 공부 방향만 설정하고 들어왔다가 2년 동안의 평신도를 위한 세계관 과정을 통하여 윤리학은 신학의 임상학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사람의 행동은 어떤 생각에 의해 변화될까 라는 질문으로 방향이 바뀌고 이 질문에 대한 충분한 답을 얻지 못한 채 공부를 접기에는 아쉬움 이 너무 컸다.

그 아쉬움과 열정 하나로 Th.M. 과정에 겁 없이 도전하였다.

이필찬 교수님을 통해 만난 요한계시록은 나에게 커다란 축복이었다.

그의 가르침을 통하여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종말적 인식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윤리적 삶의 모티브임을 알게 되었다. 요한계시록에 내 모든 질문을 던져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빠르게 삼 년 반의 시간이 지났다. 교수님을 비롯한 웨신의 여러 교수님들께 깊이 감사 드린다. 열악한 환경 속 에서도 견지하시는 학문적 열정과 진지함은 나를 충분히 자극하고도 남았고 언제나 성실하게 질 문에 답해주시는 진정한 스승이셨다. 아울러 신앙과 삶의 일치 라는 삶의 자세를 견지하도록 계기를 주신 두 분께 감사를 드린 다.

 

먼저, 말씀으로 강단에서 늘 동기를 부여해주시고 마음을 뜨겁게 해주시는 신반포 중앙교회 김성봉목사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 분을 통해서 이생을 넘어 영생에 잇대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배웠다. 또한 코람데오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의 자세가 어떠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x 그리고 나의 선배이시며 동료이신 이대경박사님께 감사를 드린다. 일터에서는 부부처럼 늘 동고동락하지만 삶의 자세와 비전에 대해서는 언제나 앞서가는 나의 역할 모델이시다. 그의 비전 을 쫓아가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나에게는 버겁지만, 우리가 진료실에서 틈틈이 나눈 수 많은 신 학적 토론은 언제나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두 분의 삶과 신앙의 일치된 모습은 늘 본 받 고 싶다. 그리고 기쁨과 슬픔의 일상을 함께 나눈 구역 식구들에게 감사를 돌린다. 구역장으로 충분 히 섬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함께 마음 써주시고 격려와 기도로 응원해 주셨기에 논문 막바지에 힘을 쏟을 수 있었다. 내게 선한 영향을 끼치신 분들의 삶을 제대로 전달해드리지 못함 을 항상 죄송하게 생각한다. 진료와 학업을 병행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해준 사랑하 는 아내에게 말할 수 없이 감사한다. 함께 뜻을 나누는 사람으로의 이해심과 그리고 때로는 학부 모와 같은 격려와 권면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여러 번 포기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주께서 우리 부 부의 삶에 개입해 주셨듯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자녀들도 만나주시고 그들의 삶을 인도해주시 기를, 그리고 주께서 앞으로 남은 삶의 여정을 보람된 길로 이끌어 주시를 기도한다.

 

끝으로 윤리적 관점에서 요한계시록과 종말론을 바라보는 연구들이 앞으로 보다 많이 진행 되어 한국교회가 미혹하는 세력을 능히 이겨낼 뿐 아니라 교회가 삶과 신앙의 일치를 회복하는데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한다.

 

xi 목 차 논문개요 ……………………………………………………………………………………………………

iv Abstract …………………………………………………………………………………………………

vi 헌사 ………………………………………………………………………………………………………

viii 감사의 글 …………………………………………………………………………………………………

ix 제 1 장 서론 ………………………………………………………………………………………………

1 제 1 절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

1 제 2 절 연구 대상 및 방법 …………………………………………………………………………

4 제 2 장 본문연구를 위한 배경연구 …………………………………………………………………

6 제 1 절 묵시문학으로서의 요한계시록 …………………………………………………………

6 제 2 절 묵시문학에 대한 고찰 ……………………………………………………………………

12 제 3 절 지혜문학에 대한 고찰 ……………………………………………………………………

14 제 4 절 Macarism에 대한 고찰 ………………………………………………………………

22 제 3 장 본문연구 ………………………………………………………………………………………

29 제 1 절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macarism의 의미……………………………………………

29 제 2 절 일곱 macarism의 구조 ……………………………………………………………………

33 제 3 절 본문주해(1): 지키는 자의 복(1:3[A]; 22:7[A’])…………………………………

36 제 4 절 본문주해(2): 죽음 그리고 부활(14:13[B]; 20:6[B’]) …………………………

47 제 5 절 본문주해(3): 옷 그리고 혼인잔치 (16:15[C]; 19:9[C’])……………………………

59 제 6 절 본문주해(4): 절정-두루마기를 빠는 자의 복(22:14)…………………………………

67 제 4 장 결론 ……………………………………………………………………………………………

77 참고문헌 ………………………………………………………………………………………………

79 xii 표 목 차 표 1. 일곱 macarism과 일곱 교회에 주는 메시지와의 관계 비교 ………………………… ………

31 표 2. 일곱 macarism에서 발견되는 교차대구구조 ……………………………………………………

34 표 3. 일곱 macarism의 6+1 구조 ……………………………………………………………………

35 표 4. 1:3과 22:7과의 관계…………………………………………………………………………

38 표 5. τηρέω (지키다) 동사의 용례 ………………………………………………………………………

43 표 6. 14:13과 20:6과의 관계 ……………………………………………………………………

50 표 7. 16:15과 19:9과의 관계 ……………………………………………………………………

61 표 8. 14:13과 19:9의 구조적 유사성 …………………………………………………………

62 표 9. 생명나무 모티브의 해석학적 전통 …………………………………………………………………

72 제 1 장 서론 본 장에서는 본 논문의 동기와 목적과 관련된 기본적인 사항을 다루고자 한다.

 

1절에서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macarism1을 통해 지혜전승을 고찰하고 윤리적 주해를 시도하려는 본 연구의 필요성과 방향을 제시하고 2 절에서는 계시록 해석의 역사와 장르에 관한 이슈들을 소개하며 연구 대상이 되는 계시록 본문의 특징과 이에 대한 연구 방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제 1 절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을 정리한 우르시누스(Z. Ursinus)는 제 1 문에서 ‘사람이 사나 죽으나 그의 유일한 위로가 무엇인가?’라고 묻고 ‘사나 죽으나 나의 몸과 영혼이 신실하신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답한다. 2 계시록 저술 당시의 상황이나 현재나 모든 인생들의 가슴을 찌르는 참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지혜로운 질문이고 답이다. 또 보스(G. Vos)는 영원이 현 세계로 침투하여 현 세계와 종말의 세계가 교차하는 지점에 우리가 살고 있으며 1 Macarism 이란 ‘복 되다, 행복하다. 행운이다’ 등의 의미를 갖는 헬라어 μακάριος 에서 유래된 것으로 μακάριος 로 시작하여 관계대명사로 수식해주는 문장구조를 가지며 진술이나 기원의 내용을 담고 있다. 라틴어 beatus에서 유래된 beatitudes라는 표현이 일반적으로는 많이 사용되며 우리말로는 지복(至福), 팔복 등으로 번역되나 일관되고 적절한 번역을 찾기 어렵다. 본고에서는 비록 beatitude 가 익숙한 용어이지만 산상수훈의 팔복으로 오해될 가능성이 있어서 보다 학술적인 용어인 macarism을 사용하려고 한다. 2 Z. Ursinus,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원광연 역 (서울: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2006), 61. 2 이러한 종말론적 긴장 속에서 종말론적 삶의 방식을 수행하며 하늘의 도덕적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교회가 세워졌다고 밝힌다. 3 초림과 재림 사이,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된 이 땅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종말적 사고와 이에 따른 삶의 방식이다. 요한계시록은 이런 관점에서 읽혀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을 단지 미래를 열어주는 신비한 책으로만 간주함으로써 오늘 우리의 삶과 너무 멀리 동떨어진 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 왔다. 이러한 현상은 요한계시록 해석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실체를 좀더 파악할 수 있다. 초대교회 이후로 요한계시록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나타났다. 4 특히 2 세기 초반에 이르러 계시록 해석의 논쟁은 역병처럼 번졌다. 말시온주의(marcionism)를 비롯하여 알로기파(Alogi), 예루살렘의 키릴(Cyril of Jerusalem) 등은 계시록을 읽는 것을 금하였다. 전천년주의자인 칠리아스트(Chiliast)와 몬타니스트(Montanist)의 주장에 입각하여 로마의 카이우스(Caius of Rome)는 계시록의 적실성을 공격하였다. 이러한 공격은 동방에서 더 심했는데 이는 계시록이 영지주의 이단인 케린투스(Cerinthus)파 산물일 것이라는 의심 때문이었다.

5 그리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묵시문학에 관해 무지한 자들이 오용의 유산을 남겼다. 그들은 스스로의 주장에 권위를 부여하고 여기에 미래주의적 환상을 섞어 안전과 적절한 보응에 갈급하던 무리들에게 퍼부었다. 이 유산의 영향을 받아 다비(J. Darby)는 계시록을 현재의 사건을 해석하는 열쇠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들은 주해(exegesis)가 아닌 자기해석(eisegesis)으로 무장하였고 린제이(H. Rindsey)에 이르러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6 스웨트(H. Swete) 7가 2세기 이후의 요한계시록 해석의 역사를 간략히 요약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요한계시록 해석은 과거론적, 역사주의적, 미래론적 그리고 상징주의적 해석의 네 종류로 3 W. A. Elwell and J. D. Weaver, 20 세기 복음주의 성경신학자들, 장세훈 역 (서울: 이레 서원, 2001), 139. 4 W. C. Weihrich, ed., Ancient Christian Commentary on Scripture XII Revelation (Downers Grove: IVP, 2005), xx. 5 D. E. Hatfield, “The Function of the Seven Beatitudes in Revelation,” (Ph.D. diss.,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1987). 6 H. Lindsey, The Late Great Planet Earth (Grand Rapids: Zondervan Press, 1970).

7 H. B. Swete, ed. The apocalypse of St. John, 2d ed.,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07), cciii. 3 나뉜다.

 

8 첫째, 과거론적 해석이란 계시록의 예언을 저자의 시대에 완성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일부 과거론자는 계시록의 끝 부분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나 대개는 과거에 이미 성취된 것으로 해석한다. 이들은 예언자가 당시의 직전 시점의 역사적 패턴이나 리듬(이것이 미래에 재현되리라고 믿는)을 찾아내려 하였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계시록에 나오는 환상 들은 A.D. 66-70 년의 유대전쟁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67-70 년에 일어난 전쟁은 3 년 반 동안 진행되었고 이것은 11-13 장의 세 환상과 연관된다고 보았다. 9 둘째, 역사주의적 해석은 계시록이 역사의 진행과정을 미리 기록한 책으로 간주하는 해석으로 역사적 성취는 현재와 미래에 걸쳐 전개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과거론자와 달리 저술 시대의 역사적 사건과 본문을 연관시키려 하지 않으며 계시록을 통하여 보편적인 인류 역사의 원칙을 찾으려 한다. 셋째, 미래론적 해석은 책의 대부분 예언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며 4 장 이후의 내용을 그리스도 재림 직전 까지를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넷째, 영적(이상주의적, 상징주의적)해석은 계시록이 개개의 사건을 지칭하기 보다는 그리스도와 사탄의 대결 같은 영적 투쟁 등을 상징하는 커다란 드라마로 이해한다. 많은 주석가들이 계시록 환상에서 연대기적 틀을 찾으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예를 들면 피오렌자(E. Fiorenza)는 계시록이 역사연속(historical-successive)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고 이미지와 환상 안에서 공동체의 현재 시간을 종말적 시간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역사-연대기적 사건 전개로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며 프리젠트(P. Prigent)는 본문의 시간적 연속을 나타내는 언어를 문자적으로 보면 안되고 요한이 현재는 박해 받지만 하나님께서 마침내 승리하신다는 관점을 전달하려 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10 이러한 요한계시록의 네 가지 관점은 다양한 해석들을 생산하였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요한계시록 본문 자체가 원인을 제공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먼저 요한계시록은 다른 책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표현 방식과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요한계시록의 본문 서두에 계시(또는 묵시 1:1), 예언(1:3), 편지(1:4)라는 표현으로 인해 본문을 세 장르로 분류할 수 있는 8 네 종류의 관점에 따른 비교주석은 S. Gregg, Revelation, four views: A parallel commentary, (Nashville: T. Nelson Publishers, 1997)를 참조하라. 9 M. Gilbertson, God and History in the Book of Revelation: New Testament Studies in Dialogue with Pannenberg and Moltman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2003), 46. 10 Ibid., 52-53. 4 가능성을 열고 있기 때문이다. 서신과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은 묵시라는 수단을 통해 우리에게 강력하게 호소한다. 요한계시록의 장르와 함께 묵시문학의 정의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있었지만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본고는 묵시문학이 단지 종말적 이슈나 천상의 비밀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비록 보이지 않지만 미래와 현재의 숨겨진 실체를 통하여 현재를 바로 바라보게 하여 현상이 실재와 다름을 알게 해준다는 사실에서 착안하였다. 계시록 안에는 지혜문학의 전통이 간직되어있다고 보여지는데 조건성을 내포한 명령문과 조건절의 형태를 갖는 권고문들, 그리고 지혜문서에 나타나는 여러 지혜적 표현들이 이에 해당된다. 본고는 지혜문서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일곱 macarism 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이 속에 담겨있는 지혜전승을 찾아 요한계시록이 단지 종말과 미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어떤 자세로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알려주는 위로와 권면의 목적을 지닌 책으로 윤리적 주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 2 절 연구대상 및 방법 본 연구는 전술한대로 요한계시록에 기술된 일곱 개의 macarism 속에 담겨있는 지혜전승을 찾아 본문 주해를 통하여 윤리적 함의를 찾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는 먼저 본문 연구를 위한 배경 연구로 묵시문학으로서의 요한계시록이 차지하는 의미와 특성을 알아보며 묵시문학의 지혜전승적 요소를 찾는다. 또 지혜문학의 신학적 주제적 특징을 살펴 계시록에 나타나는 지혜전승적 요소를 찾아내 요한계시록이 지혜문학적 요소가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나아가 지혜문학적 표현 중 하나인 macarism의 문학적 특징을 살펴 보고 이 속에 담긴 종말론적, 윤리적 사상을 밝히고자 한다. 또한 쿰란 문서에서 발견된 macarism(4Q525)의 종말적, 윤리적 사상을 밝혀 해석학적 전통을 찾고자 한다. 5 본론에서는 이러한 배경 연구를 바탕으로 주된 연구인 요한계시록의 일곱 macarism 주해를 통해 종말적 윤리적 해석을 찾아내려고 한다. 일곱 macarism 의 배열에서 발견된 독특한 6+1의 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각의 절을 주해함으로 윤리적 권면이 요한계시록 저자의 핵심 메시지임을 밝혀내고자 하는 것이 본고의 주된 목적이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연구의 흐름과 지면의 한정으로 인해 일곱 개의 macarism 전문을 모두 주해하기 보다는 핵심적인 부분에 한정하여 주해하려고 한다. 제 2 장 본문연구를 위한 배경연구 본 장에서는 본문 연구에 앞서 준비 단계가 되는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먼저 제 1 절에서는 계시록 장르의 논쟁에 대한 쟁점들을 점검하며 묵시문학으로서의 요한계시록이 갖는 의미를 살펴본다. 제 2 절에서는 묵시문학의 위치와 기원을 살펴보고 묵시문학의 특징들을 알아보면서 그간에 소홀히 다뤄졌던 묵시문학 속의 지혜전승적 요소들을 살펴본다. 제 3 절에서는 지혜문학의 문학적, 신학적, 주제적 특징들을 살펴보며 이러한 특징들이 어떻게 계시록으로 전승되었고 어떤 형태로 남아있는지 알아본다. 제 4 절에서는 지혜문학적 표현 중 하나이며 본문연구에 필요한 macarism 의 문학적 특징을 살펴본다. 이를 위해 단어연구와 구문론, 기원, 구약적 배경과 초기 유대 문헌에서의 사용 그리고 쿰란 문서에서 집단적으로 나타난 macarism 의 특징과 의미를 살펴본다. 제 1 절 묵시문학으로서의 요한계시록 본 절에서 장르에 대한 고찰, 묵시문학에 대한 이해가 계시록을 바르게 해석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본다. 나아가 요한계시록의 장르에 대해 고찰해보고 묵시문학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장르 구별에 중요한 논점임을 살펴본다. 세계성서학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이하 SBL로 표기)장르 프로젝트(SBL Apocalypse Group Genre Project)를 주도한 콜린스(J. Collins)는 문학 장르를 ‘인식될 만하고 결속성 있는 글의 유형을 보여주며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독특한 특징에 의해 구별되는 문서화된 7 텍스트들’로 정의한다. 11 또 장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장르는 존재론적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역사적 발전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둘째, 고정된 것이 아닌 현상학적으로 보아야 한다. 셋째, 사회학적 배경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으며, 넷째, 장르는 저자와 독자의 의사소통적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다섯째, 장르는 저자와 독자와의 관계 속에서 공통의 기대치를 중심으로 탄생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르와 해석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게 된다. 12 요한계시록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곱 교회를 향한 회람 서신의 형식을 갖는다. 한정된 수신자에게 보내진 여타 서신에 비해 내용상 구체적이라기보다는 포괄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독특한 방식으로 일곱 교회 각각의 상황에 맞는 메시지로 시작하여 일곱 개의 다른 관점으로 읽힐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 그리고 메시지에 공통된 후렴 메시지를 붙여(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공통의 관심사로 묶을 수 있게 배려함으로 후대의 교회들에게도 변화하는 역사적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원리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13 또한 계시록을 예언서로 보는 사람들은 구약 예언서의 특징대로 역사와 신앙의 관계성의 관점으로 보려 한다. 예를 들면 현재를 염려하고 신적 개입을 희망하는 것이다. 힐(D. Hill)은 계시록이 묵시적 특징을 갖지만, 예언자의 역사에 대한 주된 태도는 구속사적이며 따라서 계시록은 예언서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4 마짜페리(F. Mazzaferri)는 보다 엄격한 정의를 제안하는데 묵시로 분류되려면 윤리적이어야 하며, 공간적 시간적 이원론과 깊은 비관주의, 결정론적 역사관으로 특징 지어지는 임박한 종말의 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계시록은 묵시로 분류할 수 없으며 그 근거들로는 첫째, 계시록이 제시하는 역사에서 그리스도 사건의 주된 역할은 예언서의 구속사 전승으로 회귀하는 것이며 둘째, 요한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있는 점도 익명성이 특징인 묵시와 일치하지 않고 셋째, 묵시문학의 특징인 비관주의 세계관이 보이지 않으며 넷째, 계시록에 나타나는 결정론은 피상적이며 오히려 계시록의 역사관은 묵시문학과 거리가 먼 조건성(conditionality)이기 때문이다(2:16, 2:21). 이러한 근거로 그는 계시록은 묵시문학이라기 보다는 전통적 예언서의 근사치(proximate classical 11 J. J. Collins, “Introduction: Towards the Morphology of a Genre,” Semeia 14 (1979). 12 이달, 요한계시록의 장르와 해석 (서울: 글누리, 2008), 46. 13 R. Bauckham, The Theology of the Book of Revelation, 이필찬역 (서울: 한들출판사, 2000), 31-37. 14 D. Hill,“Prophecy and Prophets in the Revelation of St John,” NTS 18(1972): 401-18. 8 prophecy)라고 결론 내린다. 15 피오렌자도 계시록을 묵시적 예언서(apocalyptic-prophetic)라고 분류하며 역사를 종말론적으로 끌어 올리는 특징 때문에 묵시문학과 가까우나 동시에 십자가 사건을 통한 구속을 선포하는 특징은 예언적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16 그러나 보캄(R. Bauckham)에 의하면 요한계시록은 오랜 사색과 기록을 통해 철저하게 문학적 창조로 변환된 작품으로, 요한계시록을 예언서로 본다 하여도 대부분의 초대 기독교 예언의 자연 발생적 구술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밝힌다. 17 예언서와 유대묵시를 구별하는 주된 차이는 그것이 역사와 신앙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다. 러셀(D. Russell)은 유대묵시는 구약 예언서에서 발생하여 정치적 또는 역사적인 국가의 절망적 압제 속에서 나타난 문학이라고 정의한다. 18 이사야 24-27장, 에스겔 38-39장 등의 구약 예언서 문구는 유대묵시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폰 라트(G. von Rad)는 지혜문학에서 그 원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대해 반론이 적지 않지만 묵시가 단지 예언에서 발생했다는 가설을 바꾸려는 그의 시도는 중요하다. 이것이 묵시가 단지 종말적 이슈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천상적 비밀 지식을 현재에 연결됨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일반적으로 유대묵시는 비관적 세계관과 결정론적 역사관을 갖고 있다고 규정하는 것만으로는 유대묵시의 복잡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19 묵시가 지상 역사에서 선택됨을 옹호하고 다소 비관적 관점을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에녹 1서 58:2, 바룩 2서 74:1-4) 지상의 현재 역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볼 수는 없다. 따라서 비관적 세계관 보다는 신적 개입에 의존하는 것이 중심 주제가 된다. 다니엘서를 포함한 후기 묵시문학들은 요한에게 있어서 예언으로 보였을 것이다. 즉 요한에게 있어서 예언과 묵시의 구별이 현대 신학자들의 주장만큼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20 그러면 요한계시록의 어떤 점이 묵시라고 불리는 고대 종교적 문학 장르에 속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묵시문학에 대한 관심의 고조로 묵시문학의 장르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할 15 F. D. Mazzaferri, The Genre of Book of Revelation from a Source-Critical Perspective (Berlin & New York: de Gruyter, 1989), 이달, 198 에서 재인용. 16 E. S. Fiorenza, The Book of Revelation: Justice and Judgment (Philadelphia: Fortress, 1985), 138. 17 R. Bauckham, The Theology of the Book of Revelation, 이필찬역 (서울: 한들출판사 2000), 19-21. 18 D. S. Russel, The Method and Message of Jewish Apocalyptic (London: SCM Press, 1964), Gilbertson, 73 에서 재인용. 19 Ibid., 73. 20 R. Bauckham, The Theology of the Book of Revelation, 21-26. 9 필요성이 점차 대두되자 SBL에서 콜린스의 주도로 장르 프로젝트를 시도하였다. 그는 묵시문학을 하나의 장르로 보지 않고 양식 비평적 관점에서 하나의 혼합 구성물로 보는 폰 라트의 견해를 비판하며 묵시문학의 장르 구분에 필요한 종합적 범례를 제시하였다. 21 그는 묵시문학에 대한 포괄적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묵시문학은 서사적 틀을 갖는 계시문학의 장르로 그 계시가 천상적 존재로부터 인간 수신자에게 전달되는데 이를 통해 초월적인 실재가 드러난다. 그 초월적 실재는 종말적 구원을 예견한다는 면에서 시간적이며, 초자연적 세계를 포함한다는 면에서 공간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21 J. J. Collins, “Introduction: Towards the Morphology of Genre,” 3. Semeia 14 (1979). 콜린스는 이 논문에서 다양하게 인식되는 묵시문학의 범위를 한정하기 위해 정의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시기적으로는 B.C. 250-A.D. 250 년, 장소적으로 동부 지중해 지역까지, 형식적으로는 반복 등장하는 요소들은 물론 하부 장르에 속하거나 개별 작품에만 있는 독특한 요소들까지, 내용적으로는 역사적 개관을 가진 묵시문학과 우주적 변화를 포함하는 천상 여행 유형의 묵시문학까지를 망라한다고 정의한다. 그는 종합적 범례(master paradigm)를 계시의 방법(형식)과 계시된 내용으로 구분하고 각각을 세분하여 총 28 개의 요소를 묵시문학의 특징으로 규정하였다. 콜린스의 이런 연구는 어떤 묵시문학 연구보다 포괄적으로 그 가치가 인정되나 하나의 장르를 정의하는데 너무 많은 요소를 어떤 우선 순위를 가지고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콜린스가 제시한 범례(master paradigm)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종합적 범례 계시의 형식 1. 계시의 수단 1.1 눈으로 본 계시 1.1.1 환상 1.1.2 현현 1.2 귀로 들은 계시 1.2.1 강화 1.2.2 대화 1.3 천상 여행 1.4 천상의 책 2. 천상의 중개자 3. 인간 수신자 3.1 가명성 3.2 수신자의 상태 3.3. 수신자의 반응 계시의 내용 내용(시간의 축) 내용(공간의 축) 윤리적 권면 결론적 요소 4. 기원론 5. 역사 6. 지식을 통한 현재적 구원 7. 종말론적 위기 8. 종말론적 심판/파멸 9. 종말론적 구원 4.1 신적 기원 4.2 윈시적 사건 5.1 과거에 대한 회상 5.2 사후 예언 7.1 박해 7.2 여타의 종말론적 대변동 8.1 죄인/무지한자 8.2 세상 8.3 저승적 존재 9.1 우주적 변화 9.2 개인적 구원 9.2.1 부활 9.2.2 다른 형태의 사후생명 10. 피안적 요소 10.1 피안적 세계 10.2 피안적 존재 11. 윤리적 권면 12. 수신자에게 주는 지침 13. 서사적 결론 종합적 범례 10 콜린스는 그의 정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초월성(transcendence)’이라고 지적한다. 이 초월성에 대한 강조는 현재에 대한 의미상실, 소외감을 반증한다고 해석된다. 22 보캄은 요한계시록이 묵시문학 전승에 서 있음을 보여주는 두 가지 증거로 첫째는 이러한 초월적 관점이고 둘째로는 유대묵시문학이 가지는 관심인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공유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 23 묵시문학은 유대교와 기독교 심지어는 영지주의와 그리스-로마 문학에서도 발견되는데 유대교 묵시문학의 경우 역사와 정치적 종말론에 관심이 많으며 영지주의의 것은 공간적 축으로 강조점이 이동하며 그리스-로마 묵시문학은 철학적 논문이나 시적 구상을 통해 메시지가 전달된다고 한다. 반면 초기 기독교 묵시문학은 윤리적 권면이 다른 것보다 강조되고 있음이 특징이라고 한다. 24 피오렌자는 요한계시록이 가명성과 사후 예언이 결여된 점이 다른 묵시문학과 구별되는 점이라고 강조하면서 콜린스와 다른 입장을 표명한다. 즉 윤리적 권면/훈계를 강조하는 점이 요한계시록을 묵시문학 보다는 예언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근거라고 주장한다. 25 그러나 다음 절에서 다루겠지만 묵시문학의 지혜문학적 특징을 살펴본다면 왜 묵시문학이 윤리적 권면과 훈계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콜린스는 디아스포라 묵시문학에 속하는 에녹 2 서, 바룩 3서, 아브라함의 유언서를 예로 들면서 이들의 공통점이 윤리적 권면을 중요하게 취급하면서 동시에 ‘지혜’에 관심을 가지며 특히 솔로몬 지혜서와 유사한 사고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26 이와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1979 년에 열린 웁살라 콜로키움(Upsala Colloquium)에서 묵시문학의 사회적 기능과 배경이 연구되었으며 특히 초월적 관점을 통해 압제 받는 의인들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기능이 있다고 보고 되었다. 27 오니(D. Aune)는 1986년 열린 SBL 에서 헬홀름(D. Hellolm)이 제시한 사회적 기능에 근거한 ‘격려와 위로’를 인정하지 않는 22 이달, 71. 23 R. Bauckham, The Theology of the Book of Revelation, 23. 24 이달, 72. 25 D. Hellholm, ed., Apocalypticism in the Mediterranean World and the Near East (Tubingen: Mohr, 1983), 295-316 에서 E. S. Fiorenza 의 “The Phenomenon of Early Christian Apocalyptic. Some Reflection on Method.”를 보라. 26 Ibid., 531-548에서 J. J. Collins, “The Genre Apocalypse in Hellenistic Judaism.”를 보라. 27 The Upsala Colloquium on Apocalypticism은 1979년에 헬홀름이 주축이 되어 1975-78년에 열린 세계성서학회 묵시문학 장르 프로젝트(SBL Apocalypse Group Genre Project)를 평가하기 위해 열렸고 이에 대한 보고는 Apocalypticism in the Mediterranean World and the Near East 을 통해 이뤄졌다. 11 대신 텍스트 자체가 제공하는 문학적 기능에 유사한 기능이 있다고 본다. 즉, 묵시문학의 초월적 메시지가 인식과 행위를 수정하도록 격려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묵시문학은 기본적으로 이념적, 윤리적이라고 정리한다. 28 본 절에서 요한계시록의 장르에 관한 이슈들을 다루었다. 요한계시록의 잘못된 해석의 역사는 주로 장르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장르 논란 중 묵시냐 예언이냐에 관한 논의는 계시록이 초월적 관점으로 상황을 보느냐, 아니면 현재의 삶에서 윤리적 이념적인 삶의 태도에 계시록의 메시지를 적용할 수 있느냐로 이어지는 예민한 문제가 될 수 있다. 피오렌자가 지적했지만 예언서 29 로 볼 때 독자는 이 말씀을 통해 자기의 삶의 자리를 점검해보는 윤리적 권면으로 생각하지만 묵시라고 볼 때는 현재의 상황을 초월적 관점으로 보게 되므로 윤리적 이념적 해석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뒤에 다루겠지만 묵시문학의 지혜전승적 요소는 권면과 위로의 사회적 기능에 더불어 이념적 윤리적 메시지가 있음을 알게 해준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을 묵시적 관점으로 본다고 해서 단지 초월적으로 해석하거나 윤리적 해석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 요한계시록은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조건성(회개할 기회 같은)과 익명성 및 사후 예언성(vaticinia ex eventu)의 결여 등이 있지만 그리스도 사건의 중심성이 결국 묵시의 특징을 갖게 한다. 묵시와 예언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계시록은 역사에 대한 묵시적 관점을 갖게 한다. 일반적인 관점으로 묵시적 특징은 역사의 우주적 조망과 궁극적 시공간 조망을 주는 반면, 예언 및 서신서적 특징은 말씀이 전달된 공동체의 현재 상황에 집중하게 한다. 이런 요한계시록의 이중성은 시간과 공간의 지평을 밖으로 팽창시켜주고 동시에 안으로는 현재적 의미에 집중하게 한다. 여기에 요한계시록에 녹아있는 지혜전승적 요소를 찾는다면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윤리적 권면과 위로의 메시지를 찾아내는 기초가 될 것이다. 28 1983-1987 에 걸쳐 세계성서학회는 SBL Seminar on Early Christian Apocalypticism 의 주제로 연속적인 세미나를 열고 그 결과물을 1986년 Semeia 36호에 발표하였고 Aune의 논문도 여기에 수록되었다. 29 Prophecy 라는 표현을 예언이라 번역하는 것에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좀더 정확한 표현은 선지서, 선지적이라는 표현이 타당하다. 12 제 2 절 묵시문학에 대한 고찰 본 절에서는 70인역 구약성서 배열을 따라 묵시문학이 예언문학의 일부로 읽혀졌던 사실을 지적하고 묵시문학의 기원을 살펴 묵시문학의 올바른 위치를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묵시문학과 지혜전승과의 관계를 통해 묵시문학 속에 자리잡고 있는 지혜전승의 특징을 고찰해본다. 1. 묵시문학의 위치 일반적으로 구약의 욥기, 잠언, 전도서 세 권의 책을 지혜문학으로, 다니엘서를 묵시문학으로 분류한다. 이 네 권의 책은 히브리어 구약성서의 성문서에 속한다. 이 중에서 지혜문학은 헬라어 성서인 70 인역에는 시가서로 분류되어 역사서와 예언서 사이에 위치한다. 이는 지혜문학이 시문학으로 읽혀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반면 묵시문학인 다니엘서는 예언서들 사이에 위치하므로 예언서로 읽혀야 함을 암시한다. 70 인역 구약성서 배열 전통을 따르고 있는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실제로 지혜문학이 시문학의 형태로 읽혀진 반면 묵시문학은 예언문학의 일부로 읽혀져 왔다. 30 구약성서 학계에서 구약성서의 통일성을 저해하는 이질적인 요소로 간주되던 지혜문학과 묵시문학은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서 고대 근동의 지혜문학의 발견과 소위 아래로부터의 신학이 강조되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31 천사무엘은 묵시문학의 복잡한 형성 과정을 단순히 전승 경로로만 설명하려는 것은 지혜문학이나 예언문학의 상호 관계성을 이해 하는데 방해가 되는 환원주의적 사고라고 비평한다. 32 한국 교회는 이러한 전통을 따라 묵시문학의 해석이 예언서 쪽으로 무게 중심이 편중되었으며 요한계시록의 해석 또한 이러한 영향 아래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 묵시문학의 기원 30 천사무엘, “지혜문학과 묵시문학의 관계,” 한국기독교 신학논총 32 집(2005): 49-67. 31 천사무엘, “구약성서의 지혜문학과 창조신앙,”기독교문화연구 2 (1997): 312-315. 32 천사무엘, 지혜전승과 지혜문학 (서울: 동연, 2009), 84. 13 폰 라트가 묵시문학의 모체가 지혜문학이라고 주장함으로 시작된 묵시문학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많은 논란과 함께 학문적 진보를 가져왔다. 33 그는 예언문학과 묵시문학에는 역사관의 차이가 있다고 봤다. 즉 전자는 구원에 대한 희망을, 후자는 염세주의적 비관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둘 사이에 종말론이라는 공통의 관심이 존재하나 해결 방식과 역사관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므로 예언문학에서 묵시문학으로 발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묵시문학의 태동이 예언문학을 배제한 지혜문학에 기원한다는 그의 주장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시문학과 지혜문학의 관계에 대한 그의 통찰은 묵시문학의 균형적 연구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34 폰 라트의 지혜 개념이 불분명한 점이 또 다른 비판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가 지혜 전승에서 지혜 개념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묵시문학의 지혜 개념 분석을 위해 잠언의 지혜 개념을 바로 적용한 점이다. 뮐러(H. Müller)는 지혜전승을 잠언이나 집회서 등의 궁중-학교 지혜(courtly-school wisdom)와 꿈이나 징조를 해석하는 신탁지혜(mantic or oracular wisdom)로 구분하며 묵시문학은 신탁지혜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묵시문학의 지혜는 잠언이나 집회서에서 찾을 수 있는 귀납적 지혜가 아닌 계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신탁지혜로 간주된다. 35 이러한 학문적 논란을 토대로 묵시문학과 지혜문학의 관계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묵시문학의 기원은 어느 한 전승의 산물이 아니라 다양한 전승들이 결합된 새로운 장르라는 점과, 둘째, 묵시문학의 예언전승을 강조한 학자들은 묵시문학의 종말론을 강조한 반면 지혜문학과의 관계성을 강조한 학자들은 우주적인 묵상의 면이 강조된 점, 셋째, 묵시문학의 지혜는 잠언, 집회서 등의 귀납적 지혜가 아닌 계시를 통한 신탁지혜라는 점, 넷째, 묵시문학의 본성을 이해하려면 신구약 중간기의 다양한 묵시문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36 이상에서 묵시문학의 위치와 기원을 살펴보았다. 묵시문학은 다양한 전승경로를 가진 복합적 장르라는 점과 묵시문학에는 신탁지혜에서 기원한 지혜전승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따라서 33 G. von Rad, 구약성서신학, 허혁 역 제 2 권(서울: 분도출판사, 1977), 301-321. 34 천사무엘, “지혜문학과 묵시문학의 관계,”: 49-67. 35 H. P. Müller, Mantische Weisheit und Apocalyptik, in Congress Volume Uppsala 1971(Leiden: Brill, 1972), 268-271. 천사무엘, 지혜전승과 지혜문학, 87 에서 재인용. 36 천사무엘, 지혜전승과 지혜문학, 90. 14 묵시문학의 올바른 해석을 위해서는 균형 있는 선지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혜문학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할 것이다. 제 3 절 지혜문학에 대한 고찰 본 절에서는 지혜문학의 내용상의 특징, 신학적, 주제적 특징을 살펴본 뒤 지혜전승 속에 나타나는 문학적 요소들을 찾아본다. 이를 바탕으로 계시록에서 발견되는 지혜 전승의 흔적들을 추적하고 분석해본다. 1. 지혜문학의 내용상의 특징 천사무엘은 지혜문학의 내용에는 세가지 특징이 있다고 정리한다. 첫째, 지혜문학이 가르치는 주된 관심은 지혜이고, 둘째, 지혜문학에는 비지혜문학의 공통적 주제인 족장시대, 출애굽, 광야, 가나안 정복, 다윗 왕조 등 고대 이스라엘 역사와 이와 연관된 주제인 구속사적 신앙고백이 언급되지 않으며, 셋째, 인간의 이성, 경험, 사색을 통해 얻어진 우주의 창조 질서에 대한 관심이 모아진다고 한다. 37 이러한 특징들은 지혜문학에 잘 용해되어 일반적 도덕성을 고양하며 윤리적 훈계와 권면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지혜문학이 비지혜문학과 꼭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먼저 바인펠트(M. Weinfeld) 38는 잠언이나 고대 근동의 지혜문학에 나오는 현자들의 가르침이 신명기에 반영되어있으며 또 신명기에는 하나님 경외사상이 강조되는데 이것은 37 Ibid., 16. 38 M. Weinfeld, Deuteronomy and Deuteronomic School (Oxford: Clarendon, 1992), 297. 15 지혜문학과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39 또 그는 신명기의 하나님 경외는 단지 언약에 대한 충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문학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도덕성(general morality)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40 천사무엘은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구약성서의 많은 책들에서 지혜문학적 요소가 발견되고 지혜전승이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이질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지혜문학의 내용이 더 이상 비지혜문학의 내용과 대립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41 뒤에 논의하겠지만 이러한 지혜문학의 하나님 경외 사상을 동반한 도덕성과 윤리성은 권면과 책망의 형태로 요한계시록에 잘 이어지고 있다. 2. 지혜문학의 신학적 특징 지혜문학의 신학적 특징은 세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로 신정론(theodicy)으로 지혜문학이나 비지혜문학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인과응보사상이 욥기와 전도서에 이르러 벽에 부딪히게 되며 인과 응보 사상에 대한 회의주의가 나타나 악은 왜 승승장구하고 의인은 왜 고통 받는가라는 신정론적 질문을 던지게 된다. 둘째로 창조신앙이다. 세상과 우주는 하나님이 창조했고, 창조 질서에 맞게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보편주의(universalism)이다. 배타적인 이스라엘 신앙을 넘어 우주의 보편적 진리를 찾고 그 안에서 하나님을 이해하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관심을 강조하는 신앙이다. 이러한 신학들이 지혜문학에서 강조되고 있다. 42 이러한 지혜문학의 신학적 특징은 요한계시록에서도 발견된다. 창조신앙은 새 창조의 모티브로 이어지며 보편주의의 경우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경계를 넘어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으로 흘러 넘치는 구원적 보편주의로 계승된다. 또 본문연구에서 언급하겠지만 신학적 주제 중 신정론적 특징은 요한계시록을 구성하는 중요한 이슈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3. 주제적 특징- 둘 사이의 선택 39 신명기에서 하나님 경외 사상은 신 4:10; 5:26; 6:2,13,24; 8:6; 10:12,20; 13:5; 14:23; 17:19; 28:58; 31:12-13 에서 발견되며, 지혜 문헌에서 하나님 경외는(잠 1:7;9: 10; 15:33; 욥 28:28; 시 111:10) 지혜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40 Ibid., 274. 41 천사무엘, 지혜전승과 지혜문학, 40. 42 Ibid., 52. 16 로싱(B. Rossing)은 묵시문학에 나타나는 지혜 주제인 양자 선택의 문제를 연구하였다. 그녀에 따르면 양자 선택이라는 주제는 여인의 이미지로 의인화된 시각적 대비로 나타나는데 선한 여인의 경우 우아하며 강하고, 흰 겉옷(garment)을 입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반면 악한 여인은 화려한 홍색, 자색 옷에 금이나 보석 치장을 한 것으로 묘사된다. 때로는 양자선택이 두 길, 또는 두 개의 도시로 대비되고, 나아가 보좌에 앉아 다스리는 이미지고 악녀의 경우 짐승 이미지로 묘사된다고 한다. 43 두 길이라는 주제는 두 여인의 이미지로 의인화 되어 잠언 1-9장에 잘 나타나는데 이러한 여인 이미지 대비는 계시록의 두 도시 환상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또 그녀는 히브리어 성경에 둘 사이의 선택이라는 주제는 신명기 30:15-20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시한 두 길(사망과 생명, 축복과 저주)에서 시작되었고 이 전통적인 본문은 잠언 1- 9장의 여인 이미지의 윤리적 대비로 이어졌을 것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전승은 외경과 쿰란 문서에서도 발견된다. 44 벤 시라에는 토라와 동일시 되는 지혜가 독자를 초청하고(집회서 15:2-6)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약속하는 것으로 그려지며(집회서 24:19) 신명기 30 장의 두 길 선택의 구도가 여기에도 나타난다(집회서 15:15-18). 일반적으로 잠언 1-9 장에서 ‘길, 여인’등의 표현으로 양자 택일 주제가 표현되나 계시록의 바벨론과 새 예루살렘의 두 도시 환상에서‘길’이라는 표현이 없다고 해서 양자 택일의 주제가 배제된 것으로 볼 수 없다. 45 이렇게 이진법적(선/악, 지혜로운 여인/음녀, 여인의 유/무, 길의 유/무) 선택 구도는 수신자들로 하여금 대조적인 두 항목 중에서 윤리적 선택을 하도록 권면한다. 4. 지혜전승의 문학적 요소 구약성서 지혜문학의 기본적 문학양식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격언(saying)과 훈계(admonition)이다. 46 격언은 경험과 관찰을 통해 얻어진 교훈을 직설법으로 간략하게 표현한 43 B. R. Rossing, The Choice between Two cities: A Wisdom Topos in the Apocalypse (Cambridge MA : Harvard Univ., 1998), 55-58. 44 잠언, 전도서, 욥기, 벤 시라 등의 지혜문서가 쿰란에서도 발견되는데 “Sapiential work A”를 포함한 지혜문서와 복 지혜문서(Wisdom text with Beatitudes 4Q525)등이 발견된다. 4Q184 에는 음녀의 간계와 4Q185 에는 지혜로운 여인이 묘사된다. 4Q185 의 지혜로운 여인은 벤 시라에서 토라를 지혜로 묘사하는 것과 비슷하다. 45 Rossing, 75. 46 R. E Murphy, Wisdom Literature (Grand Rapids: Eerdmans, 1981), 4-6. 17 것으로 속담, 금언 등을 포함한다. 격언은 내용에 따라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경험적 격언(experiential saying)과 교훈적 격언(didactic saying)이다. 격언의 형태는 문학적으로 다양하다. 주된 형태를 살펴보면 1)“…하는 것이 좋다” 형태의 격언(The “good” saying), 2)“…하는 것이 더 낫다”형태의 격언(The “better” saying), 3)숫자 격언(The “numerical” saying), 4)“주께서 미워하신다” 형태의 격언(The “abomination” saying), 5)“복이 있나니”형태의 격언(The “blessed” saying) 등의 형태를 갖는다. 47 훈계(권면)는 바람직한 행동 방식을 명령법으로 분명하게 나타내는데, 동기 유발을 위해 행동의 이유(왜냐하면)나 결과(그리하면)가 덧붙여지기도 한다. 그 외에도 비유(삼하 12:1-4; 사 5:1-7), 수수께끼(삿 14:14), 우화(삿 9:8-15; 왕하 14:9), 알레고리(잠 5:15-23), 지혜 찬양시(잠 1:20-33; 8장, 욥 28 장) 등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권면은 지금 행하고 있는 일들을 지속하도록 격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나 간혹 수신자로 하여금 발신자가 신봉하는 것을 따라 행동을 바꾸도록 하기도 한다. 잠언 1-9 장은 이러한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권면의 형태적 특징은 명령문과 동기절(motive clause)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힐데브란트(T. Hildebrandt)는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권면의 공식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48 The admonition architectonic formula is: ± (call to listen) ± (condition: “if”) + (imperative) + (motivation) ± (summary instruction). 이에 가장 적절한 예문으로 잠언 3:5-6 을 들고 있다(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라명령, +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동기). 문장에 따라서는 둘 이상의 명령문을 갖거나 금지명령을 갖기도 하며 계시록 2-3 장에는 이러한 구문 형태를 갖는 절들49 이 많이 나타난다. 50 47 1)의 예로 잠언 17:26; 19:2; 24:23, 2)의 예로는 잠언 3:16; 16:32, 전 4:9, 3)의 예로 잠언 30:21-23, 29-3, 4)의 예로 잠언 11:1; 20:10; 16:5, 5)의 예로 잠언 28:14; 14:21, 시편 128:1 등을 들 수 있다. 48 http://faculty.gordon.edu/hu/bi/Ted_Hildebrandt/OTeSources/20- Proverbs/Text/Articles/Hildebrandt-Proverb-Genre-2005.htm 49 계시록 2:5, 7, 10, 11, 16, 17; 3:3, 19. 50 요한계시록에서의 구약 사용에 관하여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게제라 사와(gezera sawa, 각각의 구절을 해석하기 위해 동일한 단어들과 구들을 사용하는 후기 랍비 주석 방법)라는 방법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18 보캄에 의하면 요한은 구약을 이해하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성서 본문들 사이의 문자적 일치를 관찰함에 의존한다. 같은 말씨 혹은 구들을 포함하는 본문들은 서로를 해석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결국 요한이 자신의 책에서 사용했던 것처럼 성경은 같은 종류의 내적 크로스 레퍼런스의 네트워크를 포함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요한은 자신이 공부했던 예언서들과 동일한 예언적인 영감 하에 글을 쓰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병행 구문을 사용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고 이 때문에 계시록 본문 해석에 이 주석적 기법을 적용해야 한다(R. Bauckham, The Climax of Prophecy, 29). 이런 점을 고려하면 요한계시록에는 잠언 사용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2-3 장의 서신구조에서 그러한 예들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요한계시록 2-3 장의 서신 부분은 구약의 예언 서신 구조를 갖지만 (대하 21:12-15; 렘 29) 동시에 신탁 구조를 갖기 때문(B. Witherington III, The Indelible Image: The Theological and Ethical Thought World of the New Testament Vol. 1. The Individual Witness (Downers Grove: IVP Academic, 2009), 755.)으로 보인다(사 13-23; 렘 46-51; 겔 25-32; 암 1-2). 일곱 교회를 향한 서신의 일차적 기능은 수신자의 행동을 바로잡도록 권하는 것이며 동시에 핍박 가운데 위로와 소망을 잃지 않도록 하는 위로와 권면의 목적을 가진다. 이런 배경 속에서 잠언적 용례들은 의미를 갖는다. 계시록 2-3 장에서 잠언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예를 찾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는 생명나무라는 표현을 들 수 있다(계 2:7, 잠 3:18). 먼저 문자적 유사성으로 ξύλον ζωῆς( ץ ֵ֣ע ים ִּ֑יַ ח(은 생명나무라는 의미로, 창세기와 잠언 그리고 계시록에서만 각각 4 절씩 발견된다(창 2:9; 3:17, 22, 24; 잠 3:18; 11:30; 13:12; 15:4; 계 2:7;22:2, 14, 19). 잠언에서는 3:18 을 제외한 나머지 3 절은 δένδρον ζωῆς 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MT 에서는 동일한 단어 ים ִּ֑יַ ח ץ ֵ֣ע 가 사용된다. 사용상의 희귀성으로 보아 계시록의 생명나무는 창세기와 잠언이 말하는 생명나무를 인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계 2:7 에서 생명나무의 과실로 번역된 원문은 (ἐκ τοῦ ξύλου τῆς ζωῆ) ‘그 생명나무로부터의 것’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는 잠 11:30 (ἐκ καρποῦ δικαιοσύνης φύεται δένδρον ζωῆ)에서 사용된 동일한 전치사를 사용하고 있는 점이 잠언이 사용되었을 뒷받침하고 있다. 주제적 유사성으로는 창세기 2-3 장의 생명나무는 에덴동산의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으나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낙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계시록은 실낙원의 회복과 인류가 하나님 임재 안에 거하게 되는, 이미 개시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래상을 담고 있다. 낙원 παράδεισο(계 2:7)은 창 2:8, 15 등에서 ‘동산’으로, 전 2:5, 아 4:13에서는 ‘담이 둘러진 공원(walled-park)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담으로 두르다는 뜻의 pairidaiza 라는 페르시아 단어를 기원으로 한다(S. S. Smalley, The Revelation to Joh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of the Apocalypse (London: SPCK, 2005), 64.). 반면 잠언의 생명나무는 증거로서의 역할을 한다. 즉 지혜, 의인의 열매, 소원이 이루어짐, 온순한 혀 등을 언급하며 이런 것들이 생명나무라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창세기에서 보여졌지만 사라진 낙원과 그 곳에 있는 생명나무를 현실의 세계에서 맛 볼 수 있는 실천적인 모색을 잠언에서 제시하고 있다. 마르쿠스는 지혜문헌에서는 기존의 신비적 용어들이 세속적 용어로 바뀌었으며 생명(life)이라는 단어도 건강(health)에서부터 영생(immortality)까지 폭넓게 사용된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잠언에 사용된 생명나무는 비록 영생의 의미가 드러나지 않아도 신비한 나무의 다른 모습들이 숨어있다고 주장한다(D. N. Freedman, Vol. 6: The Anchor Yale Bible Dictionary (New York: Doubleday 1996), 658-659.). 그러나 초기 유대 문헌에 이르러 생명나무에 불멸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발전하며 이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부활된 생명을 가진 자에게 주어진 것으로 변화한다.‘새 창조의 나무의 것을 먹음’(바나바 행전 11:10-11)을 세례로, 축복받은 자를 낙원의 나무로(솔로몬 찬송 11:16-24)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는 경건한 자의 것(솔로몬 시편 14:2) 등으로 묘사되며 종말적 소망을 띄게 된다. (레위언약 18:10–11; 솔로몬 시편 14:2–3, 10; 에즈라 4 서 8:52; 에녹 2 서 8:3) 이러한 흐름을 따라 계시록 2:7에 이르러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것을 먹음’은 죄 사함과 하나님의 친밀한 임재의 그림으로 그려진다. 따라서 본문의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하나님의 구원적 임재로 해석된다고 빌은 주장한다(G. K. Beale, 235). 오니에 따르면 생명나무에 관한 유대교 해석 전통에는 두 흐름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창세기 2:9; 3:23-24 에서 출발된 종말론적 접근으로 heavenly paradise 에 있는 생명나무는 ‘영생의 향유’를 의미하며 대표적인 예는 레위언약 18:11 이다. 이는 계시록 2:7 과 문자적 유사성을 가지며 계시록 2:7 은 19 계시록에는 지혜 전승의 문학적 요소에서 ‘복이 있나니’ 형태의 격언(blessed saying)과 동기절을 가진 훈계(권면) 형태의 지혜문학적 표현이 모두 발견된다. 본고에서는 이중에서 ‘복이 있나니’ 형태의 격언을 취하여 심도 있게 연구하려고 한다. 5. 계시록에 나타나는 지혜전승의 흔적들 피핀(T. Pippin)은 요한계시록에서 묵시와 지혜의 연결고리를 찾고자 시도하였다. 그녀는 계시록에서 지혜를 지칭하는 네 구절(5:12; 7:12; 13:18; 17:9)을 찾아내어 윤리적 관점에서 이에 대한 주해로 추정된다고 본다. 둘째로는 ‘선택된 공동체 은유’(as a metaphor for the elect community)로 이는 잠언에 잘 드러나는데 창세기 전통과 구별되며 관사를 갖지 않는다는 특징을 언급한다. 마카비4서 18:16에는 잠언 3:18을 직접 인용하며 이런 용례를 보인다. 선택된 공동체를 나무에 비유하는 Cosmic tree motif 는 이사야 60:21 과 시편 1:3 에서 기인한 것으로 이 해석 전통은 1QH 8:5-6 과 솔로몬시편 14:3, 솔로몬찬송 11:16-21 로 이어진다고 오니는 주장한다. (D. E. Aune, Vol. 52A: Word Biblical Commentary : Revelation 1-5:14. Word Biblical Commentary (Dallas: Word, Incorporated, 2002), 152-154.). 다음으로는 사랑하는 자를 책망함이라는 표현을 들 수 있다(계 3:19; 잠 3:11-12; 13:24). 먼저 문자적 유사성으로는 잠언 3:12 과 문자적으로 완벽한 일치를 보이는 곳은 히브리서 12:6 이다. 그러나 계시록 3:19 의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고 징계함(φιλῶ ἐλέγχω καὶ παιδεύω)이라는 구문에서 책망과 징계가 동시에 나타나는 문장은 LXX 에서 8번 나타나며(시 6:2; 37:2; 93:10; 140:5 잠 9:7; 집회서 18:13; 렘 2:19; 계 3:19) 명사형(παιδεία)가 4회 (잠 3:11; 지혜서 1:5; 합 1:12; 히 12:5) 나타난 것을 포함하면 모두 12 회 사용된다. 이 가운데. 사랑하는 아들을 징계하는 구절(ἀγαπῶν παιδεύει)은 잠언 13:24 에도 나타나지만 이 경우는 ἐλέγχω(책망함) 동사가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잠언 3:11-12 절이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고 징계한다’는 내용이 나오는 유일한 예가 된다. 이러한 개념은 솔로몬 시편 (10:1-3; 14:1)에서도 사용된다. 주제적 유사성으로는 잠언 13:24에서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물리적인 매질로 표현된다. ‘사랑하는 자에게 가해지는 여호와의 징계하심’도 신적인 아버지가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신명기 8:5 과 욥기 5:17-27; 33:15-30에도 동일하게 표현된다. 그러나 이는 훈계와 바로잡음의 수단이지 징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행위를 바로잡는 회개가 촉구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이는 잠언 3:12 의 3 인칭 표현이 계시록 3:19 에서 1 인칭으로 바뀌어 승귀하신 그리스도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엄중하나 따뜻한 권면의 표현으로 바뀐 것과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잠언적 화법은 지혜문헌의 공통 주제인 교육적 훈련의 일환으로 자녀의 안녕(well-being)을 위하여 사랑과 관심에 근거한 교육과 체벌이 필요하며 이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에 적용된다. 계시록에서는 그리스도가 성도들에게 환란과 핍박의 깊은 의미를 설명하는 차원으로 기술된다 (D. E. Aune, Revelation, 260). 요한 저자는 구약을 인용할 때 MT 와 LXX 를 동시에 사용하며 또한 한 문장 안에서도 구약의 여러 문장이 혼합되어 사용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계시록의 구약 인용을 연구하는 데는 주의 깊은 관찰을 필요하다고 빌은 말한다(G. K. Beale and D. A. Carson,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Use of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Baker, 2007), 1089.). 특히 선명하게 구약이 인용되고 있는 심판, 환란, 우상숭배, 전쟁, 배교 등과 달리 2-3장에 일곱 교회에 보내는 권면의 메시지에 숨어있는 잠언의 사용을 찾는 것은 많은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해석이 그 동안 심판의 메시지에 너무 집중함으로 신비적, 종말적 해석의 편중으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야기된 것을 생각해볼 때 서신서의 본래 목적인 권면과 훈계의 메시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20 분석하였다. 51 그녀의 분석에 따르면 지혜의 출처는 하나님과 어린 양이며 보좌로부터 지혜가 나오고 보좌가 지혜의 가장 높은 자리임을 보여준다. 또한 짐승을 분별하기 위해 지혜가 필요하며 제국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는 갈등 관계이다. 지혜의 다른 양상은 지혜와 대립관계인 음녀 이세벨이다. 잠언 1-9 장처럼 음녀(strange women)는 위험하기 짝이 없으며 이것이 계시록에 나타나는 여자의 위협이며 성적으로 공격적인 여성이 가장 위협적이다. 그녀를 추종하는 것은 무저갱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 된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macarism 은 45 회 나타나는데 대부분이 지혜문서에서 나타난다. 52 로싱은 계시록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두 개의 지혜문헌 형태인 macarism 과 악덕 목록(vice list)은 지혜문학이 계시록의 윤리적 권면에 미친 영향에 대한 증거가 되며 또한 계시록 장르 분류의 난점을 해소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주장한다. 53 테리엔(S. Terrien)은 또한 macarism이 권면과 축하, 경고, 훈계의 용도로 사용되며 여러 형태가 혼합되어 있음이 관찰되고 시편에 광범위하게 녹아 들어있다고 보고하였다. 또 그는 이를 지혜 핵심어(sapiential keyword)라고 부른다. 54 또 귈리히(R. Geulich)에 의하면 지혜제의적 배경에서 macarism 은 선언적이며 이를 통하여 추구할 모델이나 목표가 제시될 경우 윤리적 논조가 우세하고 예언적 묵시적 구조에서 macarism 은 미래적 변호와 보응에 대해 선언적이지만 직면한 위기에 대한 확신과 격려를 주며, 종말적 논조가 우세하다. 55 계시록은 책 전체의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일곱 번의 macarism 선언을 사용한다. 특히 요한계시록의 서언은 첫째 macarism(1:3)으로 종결되는데 이는 예배에서 요한의 편지를 회중 앞에서 읽는 자와 이 예언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들에게 축복을 선포하는 내용이다. 바니(U. Vanni)는 1:3 에서 읽고 듣는 행위를 중시하여 계시록의 예전적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로싱은 바니 등이 간과한 ‘지키다’(τηρέω)라는 단어는 윤리적 구조를 제공하는 전형적인 지혜문학의 51 Leo G. Perdue, Bernard B. Scott, and William J. Wiseman, eds., In Search of Wisdom: Essays in Memory of John G. Gammi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3), 285-295. 52 D. N. Freedman, ed., The Anchor Yale Bible Dictionary (New York: Doubleday, 1996), 629. 53 Rossing, 79. 54 Leo G. Perdue, Bernard B. Scott, and William J. Wiseman, eds., In Search of Wisdom: Essays in Memory of John G. Gammie, 55. 55 Hatfield, 41. 21 증거가 된다고 주장한다. 56 앞에서 언급했지만 계시록의 일곱 macarism 중 첫째와 여섯 째 에서 ‘지키다’ 라는 단어가 수미쌍관(inclusio) 57을 형성하고 있음을 통해 계시록의 관심은 전례적인 것보다 윤리적인 행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술하였듯이 macarism 외에 지혜전승적 요소로 악덕 목록(9:21; 21:8, 27; 22:15)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또 다른 권면적 특징을 보여주는 예가 된다. 이런 예는 지혜서 14:25-26, 마카비 4 서 1.26-27 등을 들 수 있다. macarism과 악덕 목록은 이것 또는 저것(either/or)의 수사적 표현과 함께 1 세기 요한계시록을 듣는 청중들에게 양자 선택의 기로에서 윤리적 선택을 권하는 강력한 권면이 된다. 58 본 절에서 지혜문학의 내용상, 신학적, 주제적 특징을 살펴보고 또 지혜전승의 문학적 요소들과 계시록에 나타난 지혜전승의 흔적들을 알아보았다. 지혜문학의 신학적 특징으로 신정론, 창조신앙, 보편적 진리들이 있으며 주제적 특징으로 둘 사이의 선택이라는 주제는 지혜문학의 전형적인 특징이며 동시에 요한계시록에서도 이 모티브를 그대로 사용한다고 보여진다. 지혜전승의 문학적 요소는 계시록에서 지혜전승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기본적 문학양식인 격언과 훈계 모두, 요한계시록에서 이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격언에서는 ‘복이 있도다’격언이 macarism 의 형태로 전승되었고 훈계에서는 명령문과 동기절이 어우러진 문장형태가 요한계시록 2-3 장에 많이 발견된다(각주 49, 50 참조). 그 외에도 τηρέω 동사는 윤리적 구조를 제공하는 지혜문학의 증거가 되며 이 단어가 1:3과 22:7에서 수미쌍관을 형성하며 사용되는 것을 보아 요한계시록은 지혜전승적 서술을 가진다고 보여진다. 이는 요한계시록의 해석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것으로 여겨진다. 56 Rossing, 80. 57 첫째와 일곱째가 아닌 첫째와 여섯째가 수미쌍관을 이루는 요한계시록 일곱 macarism은 6+1 의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이유는 본론에서 다루기로 한다. 58 Rossing, 82. 22 제 4 절 Macarism 에 대한 고찰 본 절에서는 macarism 의 단어 연구 및 구문론 연구를 통하여 macarism 표현의 특징을 살펴본다. 이어 macarism 의 기원과 구약적 배경, 그리고 초기 유대 문헌에 사용된 macarism 의 특징들, 그리고 쿰란 문서에 나타난 macarism 의 사상과 의의를 연구하여 요한계시록의 macarism으로 해석학적 전통이 어떻게 전승되었는지를 살펴본다. 그리하여 전례적 기원을 가진 macarism 이 권면과 훈계의 명제적 진술을 거쳐 종말론적 윤리적 개념으로 변화했음을 탐구하고자 한다. 1. Macarism 의 단어 연구 히브리어 성경에는 아쉬리(יֵ רְׁ שַ א(와 바룩(ךְוּרָּב(의 두 단어로 나타나는데 전자는 “the happiness of …” 또는 “the fortunate things of …”를 의미하고, 후자는 “blessed, extolled, 또는 praised”로 번역된다. יֵ רְׁ שַ א 는 LXX에서 μακάριος와 εὐλογητό 로 번역된다. MT 에서 사용된 45회 증례 중 오경에는 신명기 33:29에 유일하게 나타나고 선지서에 4 회(사 30:18; 32:20; 56:2; 단 12:12), 열왕기상에 2 회(10:8)사용된다. 나머지는 성문서에 나타나는데 역대하 9:7, 욥기 5:17, 전도서 10:17, 시편에 26 회(1:2; 2:12; 32:1,2; 33:12; 34:8; 40:5; 41:2; 65:5; 84:5, 6, 13; 89:16; 94:12; 106:3; 112:1 119:1; 127: 5; 128:1, 2; 137:8,9; 144:15(2 회); 146:5) 잠언에 8 회(3:13; 8:32, 34: 14:21; 16:20; 20:7; 28:14; 29:18)가 나타난다. 총 45 회 중 4 회에서만 이인칭으로 나오고(신 33:29; 시 128:2; 전 10:17; 사 32;20) 나머지 모두 삼인칭으로 사용된다. LXX 에는 15 회가 더 나타나는데 μακάριος, μακαρίζω 가 히브리어 יֵ רְׁ שַ א를 대신해서 사용되며 이미 사람에게 존재하는 복된 상태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고전 그리스어에서는 물건이나 가치가 축복의 근거인 반면, LXX 에서는 사물이나 상태가 아닌 사람에 사용된다. 59 2. Macarism 의 구문론 59 Hatfield, 39. 23 멀린스(T. Mullins) 60의 연구에 의하면 전형적인 macarism 의 문장구조(syntax)는 네 구성 성분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이 구성 요소들은 1)칭송(ascriptive word/Μακάριο), 2)칭송의 대상(the objective of the ascription/ 관계 대명사 ὁ οἱ + 분사), 3)칭송의 이유(the reason for the ascription), 4)논평(commentary)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의 macarism 이 모두 이러한 구성 요소를 갖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창세기 30:13은 (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네 구성 요소 중 1)과 2)로만 이루어졌으며 배열도 일정하지 않다. 또한 신명기 33:29은 본문에 앞서 긴 논평이 먼저 나온 다음에 그 이유가 진술된다(cf. 사 30:18; 잠 14:21; 16:20 20:7; 29:18 도 논평이 다른 요소 앞에 위치한다). 이러한 구문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일정한 문장구조를 속에 권면하고 칭송 또는 축복하는 주제를 잘 담고 있다. 3. Macarism 의 기원과 구약적 배경 macarism 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성례적 기능을 갖는 제의에서 축복공식(blessing-formula)이 변형되었거나, 도덕적 권면을 제공하는 지혜 정황에서 유래되었거나 또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인사, 축하의 의미일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지혜전승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충성 모티브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61 이것이 교회 예전에서 중요한 이유는 세례, 성찬, 찬송 중에서 전례적 중심성을 차지할 뿐 아니라 이들을 한데 묶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의 승천 이후 믿음 공동체 내에서 신적 임재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62 구약적 배경에 대해 살펴보면, macarism 의 기원에 대한 설이 분분하지만 포로기 이전에 유대교의 예배 의식 중 하나로 63 지혜 격언(wisdom saying) 형태의 송영(ascriptive words)이거나 종교적 또는 권면을 담은 명제적 진술(propositional 60 T. Y. Mullins,“Disclosure: A Literary Form in the New Testament,” Nov. T. 7 (1964): 44-50. 61 Ibid., 41. 62 Hatfield, 72. 63 창세기 9:26; 24:27; 출애굽기 18:10 의 기도문에 baruk 이 사용되는 것을 보아도 고대 유대교 예배의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 24 statement)로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멀린스는 이에 대해 macarism 은 사람의 어떤 특별한 행동이나 태도에 주어지는 칭송이라고 주장한다. 64 이는 미래의 행동에 대한 예견과 축복으로도 행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시편 41:1; 105:3; 111:1; 118:2 등이 이에 해당된다. 한편 케세르(W. Käser)는 명제적 진술이 반드시 종교적일 필요는 없으며 일반적인 권고라고 주장한다. 시편 28:14; 41:1; 94:12; 잠언 3:13; 8:34; 16:20; 29:18 등이 좋은 예가 되는데 이런 진술을 듣는 자에게 복이 선포하는 내용을 좇도록 도전한다. 65 Macarism의 다른 형태는 아가서와 말라기서에 기록된 antimacarism이라 불리는 것이다. 66 이는 초기 유대 문헌인 에녹1 서 103:5-6 에서도 발견된다. 67 풍자적이고 아이러니한 의미로 상식적 기준으로는 복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축복으로 선포하는 것으로 찬양의 형태지만 경멸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4. 초기 유대 문헌에 나타난 macarism 초기 유대 문헌은 대략 B.C 200 년에서 A.D. 100 년 사이에 작성된 문서로 집회서, 에녹1.2 서, 바룩2서, 토빗, 마카비서, 솔로몬시편, 지혜서, 시빌리안 오라클, 쿰란 문서 등이 포함된다. 초기 유대 문헌에서 발견되는 macarism 은 대부분 히브리 정경의 지혜서에서 말하는 현세적 축복과 달리, 신실한 자에게 임하는 구원이란 내세의 미래적 삶을 말한다. 이러한 축복 사상 즉, 비관적 현재와 낙관적 미래라는 이 사상이 신약에 이르러 산상수훈에서 미세하게 반영되고 있다. 초기 유대 문헌의 이러한 사상은 고난의 미덕을 미래에 역전될 희망으로 바꾸어 놓는다. 집회서의 저자는 불행은 죄의 결과이며 고난은 정의에 의한 복수라는 유대 사상을 64 T. Y. Mullins,“Ascription as a Literary form,” NTS 19(1972-73): 195. 65 W. Käser,“Beobachtungen zum Alttestamentlichen Makarismus,” ZAW 82(1970): 225. Nwachukwu, Beyond Vengeance and Protest, 20 에서 재인용. 66 아가서 6:9 에서 남자가 연인의 아름다움을 복되다고 호칭하며 말라기 3:15 에서 교만한 자가 아이러니하게 복된 자로 불린다. 67 5 Woe to you, ye sinners, when ye have died, If ye die in the wealth of your sins, And those who are like you say regarding you: "Blessed are the sinners: they have seen all their days. 6 And now they have died in prosperity and in wealth, And have not seen tribulation or murder in their life; And they have died in honor, And judgment has not been executed on them during their life." (1En 103:5- 6) 25 반영한다. 68 그러나 의로운 자가 불의하게 당하는 고난 상황 속에서 그가 목표를 잃지 않고 입술로 죄짓지 않는 것이 복되다고 선포한다. 현세적 축복을 칭송하는 지혜자의 복(macarism of wise, sapiential macarism)으로 불리는 것들은 집회서에 흔하지 않다. 그러나 번영이나 지혜의 선물은 축복의 증거로 간주 한다(집회서 25:8-9).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4세 치하의 유대인 박해로 인해 이 세상에서의 행복이란 단지 환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의인은 변덕스런 세상에 의해 고난 받을 수 있으나(마카비4서 1:10) 하나님으로부터 훈련(discipline) 받는다는 믿음으로 스스로 축복 받은 것이라고 여긴다. 마카비4서에 의하면 사람이 진정한 지혜를 붙잡음으로 죄의 길로 가지 않고 불사의 삶, 즉 순교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마카비4서 7:15; 10:15; 21:1; 18:13). 이 순교는 가장 고상한 축복으로 간주된다. 솔로몬 시편의 저자에게 고난은 인격을 형성하는 교육적 가치가 있다고 본다(3:8; 18:4). 따라서 훈련으로 의인이 좌절하기 보다는 환란에 대해 인내하며, 인내로 인해 성품이 형성되기 때문에 훈련은 참 지식을 알게 해주는 방편이라고 여기게 된다. 이러한 사상의 기반 위에 유대인들이 처한 박해와 대면하면서 종말론적 macarism이 발전했다. 이러한 종말론적 macarism은 미래적 행복에 바로 인접한 박해의 결과물이며 이 행복에 대한 열망이 macarism에 투사된 것이라고 마이어(A. Meier)는 주장한다. 69 따라서 종말론적 축복은 핍박과 고난이라는 현재의 질서가 역전되기를 기대하는 소망이 있다. 이것은 현세적 행운과 도덕을 칭송하는 지혜축복(wisdom macarism)과 대조된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고난 받는 자들은 미래에 그들의 의가 변호 받는 때가 온다. 70 따라서 묵시문학에서 의인의 행복은 종말적 시기로 연장된다. 71 그러나 이것은 목가적 또는 68 Sir 14:1-2 “Happy are those who do not blunder with their lips, and need not suffer for their sins. Happy are those whose hearts do not condemn them, and who have not given up their hope: 69 A. Meier, A Marginal Jew: Rethinking the Historical Jesus, Vol. II (New York: Doubleday, 1991), 324. 70 D. W. Davis and C. D. Allison,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tthew, Vol. II (Edinburgh: T&T Clark Limited, 1988), 432. 71 2Blessed are ye, ye righteous and elect, For glorious shall be your lot. 3And the righteous shall be in the light of the sun, And the elect in the light of eternal life: The days of their life shall be unending, And the days of the holy without number(1 En 58:2-3) 26 원시적 회복 개념의 종말이 아니며 묵시적 종말은 위기의 시기 이후에 찾아오는 평화의 시기이다. 72 5. 4Q525 에 나타난 macarism 쿰란 제 4 동굴에서 다섯 개의 macarism 을 가진 히브리어 조각 사본이 발견되었다. 이는 macarism 을 가진 지혜 문서로 알려져 있다. 이 조각 사본은 처음 스타키(J. Starcky)에 편집이 맡겨졌고 퓌에쉬(É. Puech)에 의해 출판되었다. 퓌에쉬는 비교적 큰 조각 사본인 4Q525 2.ii.1-6 가 다섯 개의 시리즈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앞 부분은 소실되어 1-2개가 더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하였다. 다섯 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정결한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것과 비방 하지 않음 2. 지혜의 말씀(규정)을 떠받드는 사람을 축복함과 사악한 길을 피함 3. 지혜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을 칭찬함과 어리석은 길을 피함 4. 거짓된 마음이 아닌 정결한 손으로 지혜를 찾는 사람을 축복함 5. 지혜와 “최고의 율법”을 병행하여 고통과 번민 중에라도 지혜의 가르침에 열심과 기쁨으로 헌신된 자를 찬양함 이 중 마지막인 line 5 는 시편 1 편과 매우 흡사하고 line 1~4 는 시편 15:2-3과 유사하다. 퓌에쉬는 4Q525 의 저술 시기를 B.C. 200 년으로 보았으며 지혜문서로 분류하였는데73 이는 루(J. Roo)가 언급하기를 “4Q525 와 잠언, 벤 시라 등의 전통적 유대 지혜서와 놀랍도록 유사성이 발견된다” 고 하였기 때문이다. 74 이 문서에는 잠언과 전도서로부터 내려오는 지혜문서적 가치를 큰 변화 없이 잘 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퓌에쉬가 쿰란 문서와 시편 15 편, 집회서 14.20-27; 15.1-10, 마태복음 5.3-10 에서 발견했듯이 문장 구성과 형태는 견고한 macarism 시리즈의 장르를 보이는데 이는 B.C. 150-30 년 헬레니즘시대나 헤롯-로마 시대의 것으로 보려는 주장에 대한 좋은 반론이 된다. 72 O. O. Nwachukwu, Beyond Vengeance and Protest: A Reflection on the Macarism in Revelation (New York: Peter Lang, 2005), 30. 73 F. Manns and E. Alliata, ed., Early Christianity in Context. Monuments and Documents (Jerusalem: Franciscan Printing Press, 1993), 356. 74 S. E. Porter and C. A. Evans, eds., The Scrolls and the Scriptures: Qumran Fifty Years After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7), 345. 27 4Q525 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브루키(G. Brooke)의 관찰대로 4Q525 는 종말론적 언어를 포함하고 있으며 75 둘째, 정결(purity)을 강조하는 공동체 윤리와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성전과 동일시하는 공동체 중심의 세계관과 윤리의식을 통하여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정결은 이 공동체 윤리의 핵심으로, 그 정결 정도를 공동체가 비준하였다. 이러한 이원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윤리는 공동 생활을 강조하고 일과 학습에서 관리와 통제를 받았으며 돈과 재산은 공동체에 귀속되었다. 공동체 규칙은 형제에 대한 의무와 존경을 강조하였으나 공동체 밖의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는 어떠한 윤리적 의무사항도 요구되지 않았다. 이러한 윤리는 세계사를 각 회원의 삶이나 분파의 운명과 결속된 것으로 보는 운명결정론 (determinism)의 지원을 받고 있다. 76 4Q525 가 갖는 의의에 대해 살펴보면 첫째, 4Q525 는 쿰란문서 중에서 교육수단으로서의 지혜와 율법(חכמה and תורה(를 함께 연구 하는데 중요한 문장으로 여겨진다. 77 이 본문은 율법을 공부한다는 것은 지혜를 얻는 수단이거나 율법을 묵상하게 하여 지혜를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어 율법 공부를 권장하는 교육적 의의를 갖는다. 둘째, 본문의 내용은 잠언과 집회서와 유사하여서 독자로 하여금 윤리적 행동을 일깨우게 된다. 이는 공동체가 악의 시대를 살아갈 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권면을 가지고 있어 윤리적 의의를 갖는다고 평가된다. 78 4Q525 는 지혜 문서의 전통을 따라 작성된 것으로 지혜와 토라가 통합되는 시기의 전후에 저술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구약에 75 G. J. Brooke, “The Wisdom of Matthew’s Beatitudes (4Q525 and Matt 5:3-12),” Scripture Bulletin 19, (1989): 37, 특히 line 5 의 경우 “압제의 때”(time of oppression), “공포”의 날(days of terror)등을 언급하는데 아마도 “in a time of oppression”(be-‘et tsu-qah)는 “in an oppression/distress of times”(uve-tsaq ha’itim )을 반향하는 것으로 이는 지극히 묵시적인 표현으로 종말론이 존재하는 근거로 사용된다. 반면 비비아노(B.T. Viviano)는 비록 징벌과 심판이 함축되어있지만 종말적 심판이라기 보다는 개인적 어리석음의 결과로 보아 4Q525 에는 종말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B. T. Viviano,“Beatitudes Found Among Dead Sea ScroIIs,” Biblical Archeology Review 18 (1992): 53-55). 76 L.H. Schiffman & J.C. VanderKam, ed., Encyclopedia of the Dead Sea Scrolls, vol. 1(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273. 77 F. Manns and E. Alliata, eds., Early Christianity in Context: Monuments and Documents, 115-78, 353-68. 78 B. Nitzan, Education and Wisdom in the Dead Sea Scrolls in Light of their Background in Antiquity. Tel-Aviv University (http://orion.mscc.huji.ac.il/symposiums/10th/papers/nitzan.htm) 28 희미하게 제시되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복된 삶에 대한 가치관이 제 2 성전기에 이르러 군집(collection)을 이루며 구약 해석의 전통을 이어받아 견고한 문학적 구조로 통합되어 4Q525 에 모인다. 여기에는 구약의 토라, 잠언, 시편에서 제시되었던 가치관이 당시의 시대상황에 용융되어 제시됨은 물론 종말적 상황이 묘사되면서 그들의 묵시적 종말론이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4Q525 에서 당시 공동체에 요구되던 다소 현세적인 윤리적 가치관이 신약에 이르러 종말론적 윤리관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사상들은 초기 기독교 사상과 저술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여지며 요한계시록의 일곱 macarism 에서 이러한 종말론적 윤리관으로 이어지게 된다. 본 절에서 macarism 의 단어와 구문론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macarism 의 기원은 지혜전승 속에서 하나님 앞에서 삶을 다짐하는 모티브에서 유래되었으며 구약의 유대교 예배 의식 중 하나로 지혜 격언(wisdom saying) 형태의 송영이거나 종교적 또는 권면을 담은 명제적 진술로 출발하였다. 이렇게 전례적인 기원을 갖는 macarism 은 초기 유대 문헌에서 히브리 정경의 현세적 축복 개념에서 내세의 미래적 삶을 칭송하는 진술로 변화된다. 또 의인이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훈련이라는 사상이 대두되며 순교는 가장 고상한 축복으로 여겨진다. 이런 사상의 기반 위에 유대인들의 박해 상황과 함께 종말론적 macarism 으로 발전된다. 쿰란 문서 4Q525 에 집단적으로 나타나는 macarism 에는 지혜 중심적이지만 약하게나마 종말론적 언어를 포함하고 있으며 공동체 중심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따라서 공동체 윤리의 핵심으로 정결이 강조된다. 이러한 사상은 신약에 이르러 산상수훈에서 종말론적 특징이 두드러지게 된다. 4Q525는 교육적 의의와 함께 공동체가 악의 시대를 살아갈 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적 권면을 보여주는 의의를 가진다. 이러한 종말적이며 동시에 윤리적인 macarism 사상은 요한계시록에서도 발견된다. 제 3 장 본문연구 본 장에서는 배경연구를 통해 얻어진 사실을 토대로 요한계시록의 일곱 macarism 에 대하여 본문을 연구한다. 먼저 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macarism 의 의미를 살펴보고 다음에 일곱 macarism 이 어떠한 배열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다음으로 이 배열 구조를 토대로 일곱 macarism 의 본문 주해를 통해 저자가 이러한 구조를 통해 전하려 하고 또 강조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연구해본다. 제 1 절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macarism 의 의미 보캄은 계시록의 주요 부분은 복잡하게 연결된 정교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하나의 도식으로 구조를 적절히 표현하기 불가능하나 이러한 문학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 반복되는 구, 숫자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열쇠가 되므로 이러한 ‘특별하고 복잡한 문학적 구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그 중에 가장 의미 있는 숫자인 일곱(series of Sevens)은 여러 곳에 발견되는데 30 대표적인 것이 일곱 인, 나팔, 대접의 심판 시리즈의 문학적 장치라고 말한다. 79 요한은 일곱 개의 macarism을 본문에 골고루 흩어 놓으며(1:3; 14:13; 16:15; 19:9; 20:6; 22:7,14) 완전수인 7을 사용함으로 이 책에 쓰여진 것들을 듣고 지키는 자들에게 충만한 축복을 표현한다. 80 일곱 macarism 은 천사를 통해 요한에 전달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적절히 반응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복을 하나하나 설명하므로 이는 계시록 메시지의 요약이라 할 수 있다. 81 따라서 일곱 macarism 에 대하여 관찰 하는 것은 계시록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일곱 macarism 은 계시록 2-3 장에서 일곱 교회에 주는 메시지와 아주 놀라울 정도로 유사점을 보일 뿐 아니라 일곱 교회에 주는 메시지의 이슈들을 강화한다. 이들의 상관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곱 macarism 7 coming/victor sayings 교회/주제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사데/듣고 지킴 14:13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서머나/죽음 16:15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3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3:18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사데/도둑 라오디게아/벌거벗음, 부끄러움 19:9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3:20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라오디게아/먹다, 잔치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2:11 이기는 자는 둘째 서머나/둘째 사망 79 R. Bauckham, The Climax of Prophecy: Studies on the Book of Revelation (Edinburgh T&T Clark Ltd, 1993), 1-38. Bauckham 은 그 외에 ‘그리스도’, ‘다시 오심’, ‘전능하신 주’, ‘아멘’, ‘선지자’,’보좌에 앉으신 이’ 등이 일곱 번 나타난다고 한다. 80 Bauckham, The Theology of the Book of revelation, 26-27. 81 Bauckham, The Climax of Prophecy, 29-30. 31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22:7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빌라델비아/말씀, 지킴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2:7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에베소/생명나무 표 1. 일곱 macarism 과 일곱 교회에 주는 메시지와의 관계 비교. 82 1:3의 읽는 자와 듣고 지키는 자에게 임하는 이중적 축복은 공적으로 낭독되는 전례적 구조를 보여준다. 특히 ‘듣는 귀’ 테마는 여기에서 처음 언급되며 이후 아시아 일곱 교회에 반복해서 사용되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표현(2:7, 11, 17, 29, 3:6, 13, 22)으로 사용된다. 이와 유사하게 보는 것들에 대해 분별을 촉구하며 실재(reality)를 바로 보라는 권면도 사용된다(13:9-10; 14:12). 요한은 22:7 에서 독자와 청자를 격려하여 예언의 말씀을 지키라고 권면함으로 순환 고리를 마무리 한다. 83 요한은 일곱 교회를 향한 메시지를 통하여 그가 본 것을 알려 줌으로써 교회 공동체를 격려하며 위로하듯이, 일곱 macarism 를 통하여 그들이 처한 고난(2-3 장, 12 장), 핍박(2:10,13; 6:9-11; 11:7-11; 12:17), 이단의 위협(2:2-6, 14, 20; 3:9; 13:12-17)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변호해주신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며 하나님의 정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제시해준다. 일곱 macarism 에는 성도의 종말적 승리와 새 왕국에서 맞이할 축복이 제시되어 있으며(14:4; 19:9; 20:6) 또한 윤리적이며 신앙 고백적인 진술이 담겨있다(1:3; 16:15; 22:7, 14). 따라서 요한은 묵시가 단지 읽혀지기만(reading text) 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되기(working text) 원하였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macarism 은 축복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 임하는 저주(woe)가 따르는 구조를 갖는다. 그러나 계시록 저자는 각각의 축복에 반대가 되는 저주를 배치하지 않으며 독자들이 각각의 축복과 그 반대로 행할 때 임할 저주를 능히 추론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82 M. Wilson, Charts on the Book of Revelation: Literary, Historical, and Theological Perspectives (Grand Rapids: Kregel, 2007), 60. 83 J. L. Resseguie, The Revelation of John: A Narrative Commentary (Grand Rapids: Baker, 2009), 64-64. 32 계시록의 macarism은 기독교 신앙고백(homologia posteos)은 물론 1세기 당시 성도들의 신앙적 열망을 알아내는 실질적인 단서가 된다. 84 계시록에 나타난 macarism을 한데 묶어 관찰한 최초의 시도는 바이데르(W. Beider) 85에 의해서였다. 그의 연구가 기여한 바는 실로 크지만 내용과 정황을 제대로 분석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평가된다. 뒤를 이어 욜키(G. Yorke) 86와 햇필드(D. Hatfield) 87의 연구가 있었으나 큰 진전을 보이지는 못했다. 그 후 크루즈(V. Cruz) 88 의 연구로 그간 부당하게 간과되었던 계시록의 macarism 이 주목 받게 되었으나 복음서의 macarism 에 비해 적절히 연구 되지는 않았다. 근래에 들어 느와추쿠(O. Nwachukwu)의 심도 있는 연구가 발표되었다. 그는 이 연구를 통해 하나님께서 보응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 계시록 저자의 주된 메시지라고 강조한다. 89 그의 연구는 역사적, 문학적, 신학적 통찰을 제공했다는 의미가 있으나 일곱 macarism 의 연결된 구조를 찾기 보다는 각각의 macarism 을 나열하듯이 주해하였다는 것이 연구의 한계이다. 본 절에서 요한계시록에 일곱 macarism 의 의의를 살펴보았다. 일곱 macarism 은 저자가 일곱 시리즈를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는 문학적 장치임을 알았으며 이는 일곱 교회에 주는 메시지와 일치한다. 일곱 macarism 은 그리스도의 계시에 적절히 반응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복을 하나하나 설명하므로 이는 계시록 메시지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다. 84 Nwachukwu, Write What You See, 4. 85 Loc.cit. 86 G. L.O.R. Yorke, “The Seven Beatitudes of the Book of Revelation: A Call to Practical Christian Living.” (Ph.D. diss., McGill University, 1985). 87 D. E. Hatfield, “The Function of the Seven Beatitudes in Revelation” (Ph. D. diss., 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1987). 88 M. Shuster and R. Muller, eds., Perspective on Christology (Grand Rapids: Zondervan, 1991), 269- 283. 89 Nwachukwu, Write What You See, xv. 33 제 2 절 일곱 macarism 의 구조 본 절에서는 필드(D. Field)가 제시한 일곱 macarism 에서 발견되는 6+1 의 구조를 소개하고 90 그 중 여섯 macarism 안에 존재하는 교차대구(chiastic structure) 구조에 대해 살펴본다. 또 이 구조가 갖는 해석학적 의의는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그를 통해 요한계시록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6+1 의 구조와의 관련성을 분석해본다. 일곱 macarism 은 요한의 예언에 대한 적절한 반응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설명하는 것과 그렇게 반응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으로 구성된다. 읽고 듣고 지키는 것(1:3; 22:7), 죽기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14:13; 22:14), 주의 다시 오심에 준비하는 것(16:15) 등이 전자에 속하며 후자에 해당 되는 것으로는 수고를 그치며(14:13), 어린 양 혼인잔치에 참여하며(19:9),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생명 나무를 취하는 것(22:14) 등이 된다고 분석한다. 91 보캄은 일곱 심판 시리즈의 구성을 4+3 으로 분석한다. 그 중 처음 두 그룹(인, 나팔 재앙)의 경우 여섯째와 일곱째 사이에 삽입구를 포함하고 있어 4+(2+삽입구+1)의 구조를 갖는다고 해석한다. 또 그는 대접 심판에서도 삽입구의 기능을 갖는 예언적 신탁인 16:15이 삽입구의 기능을 갖는다고 분석한다. 92 그러나 보캄의 4+3 또는 4+2+1 의 구조 분석은 그 배열의 의미와 마지막 하나가 남는 것에 대해 적절히 설명해주지 못하는데 특히 7 개의 macarism 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이에 대해 필드의 연구는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훌륭한 해법을 제시한다. 그는 인, 나팔 재앙에서도 그러하듯이 요한계시록의 여러 곳에서 일곱은 여섯과 하나(6+1)의 구조를 가지며 앞의 여섯은 아래와 같이 교차대구 구조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93 90 D. Field. “The Seven Blessings of the Book of Revelation-a Brief Exegetical Note,” Foundation 53 (Spring 2005): 20-26. 91 Bauckham, The Climax of Prophecy, 29-30. 92 Ibid., 30-31. 93 Loc. cit., Field 는 이러한 6+1 의 구조를 엿새 동안의 창조와 이어지는 안식일에서처럼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34 첫째부터 여섯째 macarism A.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B.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C. 16: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C.’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B.’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A.’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일곱째 macarism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표 2. 일곱 macarism에서 발견되는 교차대구구조 그는 이러한 교차대구에서 주제적 연결성을 발견하는데 첫째와 여섯째의 복으로 구성된 A-A’ 는 말씀을 지키는 자의 복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누가복음 11:28(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의 내용과 관계가 깊으며, 둘째와 다섯째의 복인 B-B’는 표면적으로는 죽음과 부활, 안식과 다스림이라는 주제적 연결고리를 가지며 내면적으로는 인접 문맥 속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는데 둘째 복(B)은 성도들에게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을 경계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참고 지키라는 권면 이후에 선포되며 다섯째 복(B’)은 죽음을 무릅쓰고 믿음을 지킨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린다는 것을 설명한 후 선포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발견한다. 끝으로 셋째와 넷째 복의 C- 35 C’는 어린 양 혼인잔치에 초대 받은 자들인데, 이들은 벌거벗고 부끄럼을 당하는 음녀의 도성인 바벨론이 아닌 예수님의 신부 된 도성인 새 예루살렘이 되며 또 성도의 행실 즉 세마포를 깨끗하게 지킨 자들이다. 권면을 따라 말씀을 듣고 지키되(A-A’) 죽기까지 말씀을 지키는 자가 안식과 다스림의 축복에 이르게 되므로(B-B’) 벌거벗은 음녀로부터 구별되도록 스스로 행실을 지켜 정결함을 유지하여 혼인잔치에 임하라는(C-C’) 말씀으로 이해된다. 교차대구 구조의 교차점인 C-C’에 이르러 메시지의 핵심이 드러난다. 그것은 근신하여 신앙의 품격을 지킬 것과 신랑 되신 어린 양과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 메시지는 6+1 의 절정에 해당되는 것(climactic one)인 일곱째 복(22:14)이 결론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엿새 동안의 만족스러운 창조가 끝난 후 일곱째 날을 복되고 거룩하게 구별하여 안식일을 정하신 것처럼 22:14 에서 거룩한 전쟁과 승리, 종말적 연회, 새 예루살렘 입성, 혼인잔치로 특징 지어지는 전쟁의 완결과 새 창조 그리고 종말적인 안도감은 바로 진정한 축복의 완성인 안식으로 성취된다. 계시록의 중심 주제는 성도의 최종적 희망인 일곱 복으로 표현되어있으며 그 중 절정에 해당되는 일곱째 복은 어린 양을 신실하게 따른 자에게 주어지는 거룩한 성에서의 안식을 뜻한다고 필드는 주장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아래와 같이 도식화 할 수 있다. 3.(16:15) 깨어 옷을 지키는 자 4.(19:9)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자 2.(14:13) 주 안에서 죽는 자 1.(1:3) 말씀을 지키는 자 5.(20:6) 첫째부활에 참여하는 자 6.(22:7) 말씀을 지키는 자 7.(22:14) 옷을 빠는 자, 생명나무, 성에 들어 갈 권세 표 3. 일곱 macarism의 6+1 구조. 36 본 절에서 일곱 macarism 의 6+1의 구조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 과거의 연구에서는 일곱 macarism 의 배열에 관해 특별한 발견이 없었기 때문에 일곱 macarism 에서 저자의 핵심 메시지를 찾는데 곤란함이 있었다. 그러나 필드가 제시한 이 구조를 통해서 저자의 일곱 macarism 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윤리적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 말씀을 지키라는 권면(AA’)은 죽음과 부활의 삶으로의 초대(B-B’)로 이어지며 이를 위해 신앙의 품격을 지켜내고 혼인잔치에 참여하기(C-C’)를 권하는 것이다. 이는 영원한 안식, 생명나무에 도달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이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윤리적이고 실천적인 가르침이다. 요한에게 있어서 오직 목회적 관심사는 성도들이 이 글을 읽고 일곱 macarism을 통해 제시되는 삶을 살아내기를 바랐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제 이 6+1 의 구조에 맞춰 일곱 macarism 을 주해하고자 한다. 제 3 절 본문주해(1): 지키는 자의 복(1:3[A]; 22:7[A’]) Μακάριος ὁ ἀναγινώσκων καὶ οἱ ἀκούοντες τοὺς λόγους τῆς προφητείας καὶ τηροῦντες τὰ ἐν αὐτῇ γεγραμμένα, ὁ γὰρ καιρὸς ἐγγύς.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1:3) καὶ ἰδοὺ ἔρχομαι ταχύ. μακάριος ὁ τηρῶν τοὺς λόγους τῆς προφητείας τοῦ βιβλίου τούτου.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22:7) 1. 구조와 정황 1:3 에는 멀린스가 언급한 macarism 의 네 구성요소가 모두 갖춰져 있다. 그러나 이 문장에는 칭송(ascriptive word/Μακάριος)과 칭송의 대상(object of the macarism /ὁ ἀναγινώσκων 37 καὶ οἱ ἀκούοντες καὶ τηροῦντες)의 수가 일치하지 않고, 또 읽는 자(단수)와 듣고 지키는 자들(복수)의 수가 일치하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는 많은 지적이 있어왔다. 이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으로는 전례적 낭독을 들 수 있다. 이는 말씀을 읽는 자(단수), 듣는 자들(복수), 지키는 자들(복수)의 세 구성 요소에게 축복이 동등하게 선포된다. 이들 구성요소로 인해 학자들은 이것이 전례적 예배 상황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바니는 계시록의 적어도 일부는 예전-드라마(liturgy-drama)형태로 진행되었을 것으로 보며 바르(D. Barr)는 축하예전(liturgical celebration)안에서 구술 제시(oral presentation)되었을 것으로 본다. 94 보캄도 계시록이 구술 공연(oral performance)을 위해 쓰여진 문학 작품으로 본다. 95 계시록이 낭독되고 다수의 청중이 들었을 것이라는 구술성(orality)은 본문의 여러 곳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원 청중들은 낭독된 분문을 해독함으로 구조와 의미를 파악했을 것이다. 비록 60분 가까운 공중 낭독이 현대인 들에게는 낯설게 보이겠지만 구술과 암송이 일반적이던 당시의 문화적 상황에서 청중들의 집중력은 상당했을 것이다. 96 계시록의 구술성은 계시록 해석의 중요한 요소이다. 예전 안에서 드라마적 재현은 예수의 구원과 심판이 임하는 것을 생각하게 하고 예배를 통하여 청중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통치를 인식하고 힘을 내게 하는 의미가 있다. 암송자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언급할 때 듣는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베풀어질 메시아 연회에 동참을 준비하게 된다. 97 바르는 계시록을 듣는 자들이 잘 기억할 수 있도록 계시록에는 세 가지의 낭독기법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는데98 첫째는 숫자이다. 숫자는 청중들에게 담화의 진행 정도를 알게 해준다. 특히 계시록 전반부에서 4 와 3 의 구조를 갖는 것이 그러하다. 둘째는 장소와 이미지이다. 하강과 상승의 장소 이동과 각각에서 그려지는 용, 짐승, 어린 양 등 각종 이미지들은 청중들에게 계시록의 순서를 재 구성할 수 있게 해준다. 셋째로는 각각 다른 사건과 연결되는 두루마리가 세 차례 소개 되는 것이다(1:11; 5:1; 10:2). 일곱 macarism도 이런 구술성에 비춰볼 때 청중들에게 삶의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를 94 D. L. Barr, Tales of the End: A Narrative Commentary on the Book of Revelation (Santa Rosa: Polebridge, 1998), 171-175. 95 Nwachukwu, Beyond Vengeance and Protest, 75. 96 Hatfield, 72. 97 Ibid., 74. 98 Barr, 6-9. 38 따라 살기를 권면하는 저자의 의도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1:3과 22:7과의 관계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3 22:7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발화자가 예수 발화자는 불분명하나 문맥상 예수로 추정 계시록 전체 문맥에서 서론의 기능 전체문맥에서 결론의 기능 전례적 낭독에서 첫 송영의 기능 끝 송영의 기능 권면의 근거: 임박성(때가 가깝다) 임박성(속히) 윤리적 권면의 메시지(지키다) 윤리적 권면의 메시지(지키다) 표 4. 1:3 과 22:7 과의 관계. 22:7은 1:3이요약된 표현으로서 서로 수미쌍관을 이루는 것으로 보아 저자의 목회적 중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충성심을 고양하고 박해의 때를 이겨내도록 권면한다. 99 계시록의 에필로그인 20-22 장에는 전술한 내용들이 반복되는 곳이 많다. 이렇게 뒤섞인 듯한 배열을 보이는 현상에 대해 게쉬터(V. Gaechter)는 계 22:6-11은 본래의 계시록에 없고 첨가된 것으로 보며 100 찰스(R. Charles)는 소위 “예언자의 흩어진 조각(disjecta membra of the PoetSeer)”이라 불리는 내용들이 있어서 에필로그 내와 또는 계시록의 다른 부분과 짝을 이루는 문장들이 많이 있다고 주장한다. 101 그러나 오니는 요한이라 불리는 동일 인물인 저자-편집자에 의해 편집된 것으로 본다. 최초 구두 전승이나 기록된 것은 A.D. 60 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최종 편집은 도미티안 치세의 끝 무렵 또는 트라얀 치세 초기에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102 22 장의 소재는 특별히 주의 재림의 임박성(22:7,10,12,17,20), 계시의 신뢰성과 신성한 기원(22:6,16,18-19,20), 보상과 징벌(22:7,11,12,14-15)의 주제가 다뤄지며103 이런 이유로 99 M. Shuster and R. Muller, eds., Perspective on Christology, 279. 100 V.G. Gaechter, “The Original Sequence of Apocalypse 20-22,” Theological studies 10(1949): 485-521. 101 R. H. Charles,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St. John, Vol. II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20), 214. 102 D. E. Aune, Revelation 17-22, Word Biblical Commentary Vol. 52C (Dallas: Word, 2002), 1205. 103 F. J. Murphy, Fallen is Babylon: The Revelation to John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8), 473. 39 계시록의 결론으로 타당하다. 본문의 발화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21:9 에서 시작되는 천사가 고지하는 담화의 연속으로 볼 때 본문에 이르러 담화가 단절되긴 하지만 본문의 화자는 해석해 주는 천사를 통해 전달된 말씀을 예수께서 다시 한번 명확히 하시는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항상 천사는 그를 보내신 자가 위임한 권위 내에서 발화하기 때문이다(창 19:21, 22; 말 3:1; 계 22:13). 종말적 왕국의 환상에 뒤따르는 하나님 말씀은 진실하고 참되다는 선포(19:9; 21:5; 22:6)가 뒤따르며 요한은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되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선포를 ‘정당성 공식(legitimation formula)’ 또는 신탁의 결론부에 붙이는 ‘예언적 서명’이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화자가 누구인지 밝히고 이어서 권면하고 확증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이 모두는 진술의 진정성을 강화 시킨다. 이러한 좋은 예로 헬마스의 목자 6.33.1 과 계시록 22:6-7, 18-20 을 들 수 있으며 계시록 2-3 장의 일곱 교회를 향한 메시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반복되는 선포도 이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오니는 지적한다. 104 καί 는 여기서 담화표지(discourse marker)로 사용되는데 임박한 주의 재림에 관한 진술을 도입한다. 미래 시제로 해석하는 오니를 제외한 대다수의 학자들은 ἔρχομαι 를 현재형으로 해석하나 계시록에는 미래의 주의 재림에 관한 표현이 모두 현재형으로 기록된다(3:11; 16:15; 22:12,20). 오니가 지적한 대로 하나님의 현현은 마법사가 이방 신에게 지금 속히(ἤδη ἤδη, ταχὺ ταχύ,)오라고 명령하여 부르는 것과 본질적으로 달리 예언자를 통해 주의 오심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105 2. 본문 이해 가. 읽는 자(1:3) 전술 한 대로 읽는 자는 단수로 듣고 지키는 자는 복수로 표현 된 것은 당시의 예배 형태를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듣는 것과 지키는 것의 2 중의 분사 사용(ἀκούοντες, τηροῦντες)은 유대적 예전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지 미래적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104 D. E. Aune, Prophecy in Early Christianity and the Ancient Mediterranean world (Grand Rapids: Eerdmans, 1983), 332. 105 Aune, Revelation, 1184-5. 40 계시록이 쓰여진 것이 아니고 쓰여진 말씀을 지키고 살라는 권면의 목적이 강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예는 성경 여러 군데에서 발견된다. 106 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여 말씀을 지키는 것을 강조한다(계 12:17; 14:12). 22:7에 읽고 듣는 것을 생략하고 지키는 자만 언급된 것은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은 지키기 위한 예비 조건으로 이해된다. 107 첫째 macarism 이 일곱째가 아닌 여섯째와 수미쌍관 구조를 이룬 다는 사실은 6+1 의 구조와 여섯 안에서의 수미쌍관 구조로 보는 필드의 분석을 지지해준다. 첫째와 여섯째 macarism 의 대응 구조는 전례적 낭독 속에서 1:3이 모인 회중을 위해 기원하는 것이라면 22:7 은 회중이 흩어지기 전에 선포되는 축복에 해당된다. 이는 계시록이 공동체 회중 앞에서 낭독되었기 때문에 이 축복과 윤리적 권면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게 선포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108 나. 시간의 임박(1:3) Macarism 의 논평으로 진술되는 ὁ γὰρ 이하에는 윤리적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제시되는데 καιρὸς ἐγγύς(때가 가깝다)는 1 절의 ἐν τάχει(속히)와 연결되어 시간적 긴박성을 나타낸다. 이는 다니엘서 2 장에서 제시되었던 말일이 개시되었음을 일깨워준다고 빌(G. Beale)은 지적한다. 109 그러나 때가 가깝다라는 문구는 이미 실현된 종말이면서 동시에 미래에 완성될 종말을 표현하며 22 장에 제시된 미래적 완성을 염두에 둔 이중적 종말론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110 힘든 상황 속에서 변화를 갈구하는 당시 독자들에게 묵시문학은 시간의 임박성에 대해 강조한다. 이러한 임박성은 저자가 처한 당시 상황이 더 악화 될 것이라는 확신이 배어있다. 이런 접근은 성경에 드물지 않게 나타나는데 이사야 46:13; 사도행전 1:7; 고린도전서 7:29; 로마서 106 G. E. Ladd, 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John (Grand Rapids: Eerdmans, 1972), 23. 출 24:7; 느 8:2; 눅 4:16; 행 13:15; 15;21; 25:21; 골 4:16; 고후 3:15; 살전 5;27; 딤전 4:13 등에서 동일한 예가 발견된다. 107 Nwachukwu, Write What You See, 89. 108 Hatfield, 78. 109 Beale, 185. 110 이필찬, 42. 41 13:11; 베드로후서 3:12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시간의 임박성은 순종의 모티브를 제공하며 인내하도록 용기를 북돋우게 된다. 111 스웨트는 종말 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종말의 전파는 사람들의 이미 형성된 성품을 변화시키는데 이는 언젠가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고 더 이상 배교로부터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날이 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112 따라서 에베소,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교회에게 시간의 임박성이 배교로부터 돌이킬 중요한 모멘트가 되고(2:5, 16, 21-25; 3:2-4). 서머나,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마귀가 기승을 부리고 불신자가 징벌을 당할 시간이 다가옴을 의미하며(2:10; 3:10). 라오디게아 교회에게는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는 시간이 다가옴을 뜻한다(3:20). 물론 시간의 임박성은 교회를 향한 실천적 의미 이외에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20:13-15), 추수의 때(14:15-20), 바벨론의 멸망(14:8; 18:2),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의 패배(19:17-20:3), 성도들이 주와 함께 다스리는 때(20:4-6), 하나님 왕국의 도래(21:2-4)도 의미한다. 이렇게 시간의 임박성은 윤리적 함의 외에도 구약 예언서에서는 주의 날, 신약에 이르러서는 파루시아(parousia)로 표현되는 종말론적 의미도 내포한다. 그러나 이미 신자들이 복음서를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 보응이 이루어졌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요한에게 시간의 임박성이란 하나님이 이 세상과 함께 하고 있음을 자각하도록 일깨워 스스로를 점검하도록 부르는 것이다. 113 오스본(G. Osborne)은 본문의 초점은 종말의 시기가 아닌 윤리적인 것에 맞춰져 있다고 단언한다. 달리 표현하면 시간의 임박성에 비추어 하나님을 향해 단호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살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114 다. 지키는 자(1:3; 22:7) 111 Nwachukwu, Beyond Vengeance and Protest, 102. 112 H.B. Swete, The apocalypse of St. John, 2d ed.,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07), 301. 113 Ibid., 104. 114 G.R. Osborne, Revelation,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2), 59. 42 1:3에는 이 예언의 말씀(λόγους τῆς προφητείας)이라는 표현이 22:7에서는 이 책의 예언의 말씀(τοὺς λόγους τῆς προφητείας τοῦ βιβλίου τούτου)으로 변하며 βιβλίου 가 첨가된다. 22:7을 제외하고는 βιβλίου 가 προφητεία 와 함께 사용되지 않는다. 이 연결된 표현은 22 장에 들어와서야 사용된다(22:7,10,18,19). 22:7의 βιβλίον 은 13:8 을 비롯하여 여러 곳의 βιβλίον 이나 βιβλαρίδιον(10:2,9,10)과는 의미가 다르다. 이 책의 예언(τῆς προφητείας τοῦ βιβλίου τούτου)이라는 표현은 환상이나 직관 등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요한에게 전달된 계시 전체를 일컫는 표현이다. τηρέω(지키다)동사는 신약성경에 64절에서 총 70회 사용되는 단어로 요한복음에서 16 회, 요한서신에서 7 회, 요한계시록에서는 11 회 사용된다. 요한복음의 저자와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일치하는지 여부에는 논란이 있지만 다른 복음서나 서신서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빈도를 보인다. τηρέω 의 의미는 크게, 첫째,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보호하는 것, 둘째, 사람이나 사물을 적절한 상태로 보존하고 보관하는 것, 셋째, 순종과 준수를 지속하는 것 등이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τηρέω 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계명과 관련해서는 순종하고 준수하는 의미로 사용되며 하나님이 사람에 대해서는 보호하고 보존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115 지켜야 할 내용들은 '기록한 것', '내 말', '받은 것과 들은 것', '인내의 말씀', '하나님의 계명', '예수에 대한 믿음', '자기 옷', '예언의 말씀' 그리고 '이 두루마리의 말씀' 등으로 다양하다. 이는 저자가 독자에게 윤리적 순종과 결단을 촉구하며 권면하는 요한계시록의 중심 단어라 할 수 있다. 추기(追記 Excursus):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τηρέω (지키다) 동사의 용례 구절 지켜야 할 것 지켜야 할 이유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예언의 말씀 때가 가깝기 때문에 2:26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주의 일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준다 3: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받은 것, 들은 것 기억하고 도둑 같이 이를 것이다 115 BDAG 43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내 말을 내 이름을 배반치 않음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인내의 말씀을 시험의 때를 면하도록 너를 지키겠다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하나님의 계명을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하나님의 계명 예수에 대한 믿음 16: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자기 옷을 복 있다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예언의 말씀을 복 있다 22:9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두루마리의 말 함께 종이 됨 표 5. τηρέω (지키다) 동사의 용례. (가) 공동체의 순종(1:3) 듣는 것과 지키는 것은 분사형태로 정관사 (οἱ ἀκούοντες καὶ τηροῦντες)가 한번 붙어 있는 것은 단일 그룹을 의미하는 (BDR§ 276)것이다. 116 이는 저자가 교회 공동체가 예배를 위해 모여 크게 낭독하는 장면을 염두에 두고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듣는 것과 지키는 것은 중언법적 표현으로 듣고 지키는 것을 강조하는 즉, 순종을 강조하는 것으로 신적 명령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을 선택함으로 임하는 저주를 명시한 계시록 22:18-19을 상기시킨다. 순종해야 할 예언의 말씀은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계시라기 보다는 윤리적 순종이 요구되는 신적인 계시(드러냄)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빌은 설명한다. 117 순종해야 할 이유는 ‘때가 가까움’ (ὁ γὰρ καιρὸς ἐγγύς)때문이다. 이는 1절의 ‘속히’(ἐν τάχει)될 일이기 때문이라는 표현과 연결된다. 이는 다니엘서 2장의 개시된 종말 관점을 발전시킨 것으로 이 구절은 22:7의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는 표현으로 이어진다. 이는 22:10 에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는 표현으로 다시 한번 반복된다. 임박성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데 9 절의 이미 시작된 환란을 의미할 수도 있고 (cf. 1:9; 2:9, 22; 3:10)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는 최종 심판을 위한 최후의 재림을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118 3 절에 나타나는 윤리적 확신의 기초는 3b 의 종말의 속성인 “이미 그리고 아직”(already-and-notyet)에 근거하는데 이는 22:7과 논리적으로 연결되어있다. (나) 이김의 아이러니(2:26) 116 Aune, Revelation, 7. 117 Beale, The book of Revelation, 184. 118 Ibid., 184. 44 두아디라 교회에 주어진 ‘이기는 자’와 ‘지키는 자’의 병행 사용은 다른 교회 공동체에 주어진 ‘이김의 공식’과 다르다. ‘이기는 자’는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자로 이러한 중복 표현은 두아디라 교회가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음을 말해준다(이필찬, 166.). ‘이기는 자’에 사용된 이기다(νικάω/ conquer, overcome)는 12:11; 15:2, 그리고 로마서 8:35-37 에 사용되는 것으로 아이러니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심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으로 3:21(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계시록 5:5-6을 살펴보면 5절에서 장로 중 한 사람이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울지 말라고 위로하는데 6절에는 그가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상은 요한복음 16:33b(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에서도 발견된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성취되는 아이러니이다. 이와 같이 성도의 환란을 묘사하는 로마서 8:36-37 을 보면 계시록 5:5-6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일찍 죽임을 당하심으로 이기신 어린 양’처럼 우리의 환란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는 것’이다. 이런 사상을 반영하여 페쉬타(Syriac Peshitta) 번역본에는 계시록 2:26-28의 성도의 이김과 그리스도의 승리를 아버지의 손에 의해 훈련되어 ‘깨트려짐’으로 묘사한다(Beale, 270.). 일곱 교회들은 타협 유혹에 직면하게 되었고 그 중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유혹에 굴복하게 된다. 따라서 ‘이기라’고 외치는 것은 타협을 중단하고 인내하라는 뜻이 된다. 이는 νικάω(이기다)는 2:6 과 2:15 에 나오는 니골라당 (Νικολαϊτῶν)과 언어유희를 이루는 점을 보아서도 그러하다. 119 ‘이기다’의 이러한 용법은 마카비 혁명 순교자들이 비록 지상의 관점으론 패했지만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함으로 고난과 죽음을 당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폭군을 이겼다고 선언하는 해석학적 전통에 근거한다(마카비 4 서 1:11; 6:10; 7:3; 9:6, 30; 11:20–21; 16:14; 17:12–18). ‘이기다’라는 단어는 짐승이 성도를 ‘이길 경우’는 물리적인 고난을 가함을(11:7; 13:7)의미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리스도와 성도는 이러한 고난을 인내하고 그들의 신앙을 지켜냄으로 ‘이긴다’(5:5-6; 12:11; 15:2; 17:14). 이러한 ‘νικάω’동사의 이중적 용법은 다니엘서 7:21에 종말의 대적자가 성도를 핍박하는 장면에서 유래된 것이나 요한 저자는 이것을 계시록 11:7과 13:7에서 채용하여 사용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와 성도들에게 뒤집어 사용한다(17:14). (다) ‘이기다’와 ‘지키다’의 관계 주격 분사인 ὁ νικῶν (the one who overcomes)은 내용상 참으로 믿는 자의 지속적인 성품을 담고 있다. 이어지는 분사 ὁ τηρῶν (the one who keeps)은 앞의 ‘이기는 자’와 병행구를 이루며 이를 설명한다. 즉 이기는 것은 주의 일(τὰ ἔργα μου)을 지키는 것으로 주께서 십자가에서 이기신 그 일을 믿음으로 지켜내는 것이다. 같은 의미를 이중적으로 강조하는 예들은 12:17과 14:12-13에 더욱 발전적으로 묘사된다. 이기는 것은 성도의 총체적인 믿음 생활의 승리이며 요한일서 5:4-5 에서 잘 나타난다. νικάω 동사의 요한일서의 모든 용례는 버가모와 두아디라 교회처럼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공동체를 지켜내는 것이다. 이러한 발전은 계시록 21:7-8에서 더 확장되는데 이기는 자는 상속자가 되지만 이기는 자의 대조 그룹인 두려워하고 믿지 아니하고 살인하고 음행하며 점술가들과 우상숭배하는 자들은 영원한 벌을 받게 된다. (라) 무엇을 기억하고 지켜야 하는가?(3:3) 이필찬은‘기억하라’는 것은 ‘어떻게’ 받았고 들었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으로 모든 교회가 그러하듯이 복음의 전승과 들음의 과정을 통해 사데 교회에도 그리스도의 구원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점을 기억하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따라서 이 명령은 에베소 교회 공동체에게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라’(엡 2:5)와 동일한 형식으로 이해된다고 말한다. 120 그러나 스몰리(S. Smalley)는 일반적으로 how 로 해석되는 πῶς 는 본문에는 목적어를 취하는 τήρει(pay attention to) 동사로 인하여 what 로 119 Ibid., 270. 120 이필찬, 187. 45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121 본문은 지금 사데 교회가 처한 불완전한 행위에서 돌이켜 복음의 본질을 기억하고 지키기를 요구하는 것이므로 스몰리의 해석에 타당성이 있다. 따라서 사데 교회에 요구되는 명령 속에는 십자가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발견된다. 본문은 전반부에 주어지는 3중 권고(기억하고, 지키고, 회개하라)가 만약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 심판을 위해 오신다는 조건적인 위협이 가해진다. 122 이는 3:2의‘네 행위가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는 질책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간곡한 권고를 지키라는 것은 거의 죽은 것과 다름 없는 신앙상태에서 일어나 심판에 이르지 않게 하려는 뜻이다. (마) 말씀(계명)을 지키다(3:8) 말씀을 지키다 (τηρεῖν τὸν λόγον)는 표현은 3:10 과 22:7에도 나타나는데 요한복음에도 유사한 표현이 자주 반복되며(요 8:51, 52, 55; 14:23, 24; 15:20; 17:6; 요일 2:5) 누가복음 11:28에서 φυλάσσειν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라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또 요한일서 2:3-5에는 계명을 지키다(τηρεῖν τὰς ἐντολάς)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말씀을 키는 것과 계명을 지키는 것은 동일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דבד)dābār)도 말씀과 계명으로 혼용되는 것과 유사하다. ‘말씀을 지키는 것’과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것’은 대구법적 표현으로 전반부는 긍정, 후반부는 부정으로 동일한 내용을 부연하거나 강조하는 것이며 내용상 같다. 따라서 말씀을 지키는 것은 그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것을 포함하거나 같은 것이 된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인하는 것은 신앙을 거부하는 것이 된다(눅 12:9-10; 마 10:33; 딤후 2:12). (바) 지킨 자를 지키심(3:10) 본문에 τηρέω 동사는 두 번 반복 사용되는 데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으므로 내가 너를 지키겠다’고 함으로 언어적 유희를 사용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과 예수님께서 지켜주시는 것은 속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 교인들의 신실한 행동에 대한 예수님의 신실한 반응을 드러낸다. 123 인내의 말씀: ὁ λόγος는 복음적 메시지로 사용될 때 흔히 예수의 고난과 죽음과 관련된다(Aune, 238).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나도 너를 시험의 때로부터 지킬 것 이다.’는 것이 이 요절의 핵심인데 ‘나의 인내의 말씀’은 ‘인내’(τῆς ὑπομονῆς)를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내가 인내한 것에 대한 말씀’ 즉 ‘예수 자신의 인내에 관한’ 말씀 (the word about Jesus’ own endurance) 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Beale, 289.). 10절은 ‘내 말씀을 지켰고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8절을 요약한다. 이 요약은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신실하게 인내하였듯이 이를 본받아 증인으로의 본분을 지켰다는 것으로 강조점이 주어진다. 예수께서 핍박과 고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증거했고 인내의 절정인 죽음에 이르도록 충성하였듯이 빌라델비아 교인들도 예수에 관한 초대 교회 케리그마에 충성스러웠다. 따라서 믿는 자들의 인내는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인내를 모델로 삼아 따라가는 것이다. 124 14:12 에는 이 믿음을 지켜내는 것을 성도의 인내라고 격려한다. 보호하심: 어떤 학자들은 그리스도가 믿는 자들을 물리적으로 보호를 할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건드리(R. Gundry)가 지적했듯이 본문을 제외하고 신약에서 유일하게 τηρέω 동사가 전치사 ἐκ 와 함께 사용된 요한복음 17:15(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에서 ‘저들을 보전하기를’keep them from (τηρήσῃς αὐτοὺς ἐκ)의 예를 볼 때 예수께서 성도들을 물리적으로 환란에서 거둬 들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영적인 보호’해주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125 요한은 본 절에서 성도가 ‘환란의 때를 통과’할 때 121 S. Smalley, The Revelation to John: A Commentary on the Text of the Apocalypse (London: SPCK, 2005), 82. 122 Beale, 274. 123 이필찬, 199. 124 R. L. Thomas, Revelation : An Exegetical Commentary 1-7 (Chicago: Moody, 1992), 283. 125 R. H. Gundry, Church and Tribulation: A Biblical Examination of Posttribulationism (Grand Rapids; Zondervan, 1973), 54–61. 46 영적으로 보호하심을 받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다니엘서 12:1, 10의 ‘많은 사람이 유혹을 받고 정결케 되지만 악인들은 악을 행한다’는 사상에 기인한다. 이는 3:10 의 유혹이 신자들은 정결케 하며 강하게 하고 다른 자들에게는 신적인 징벌이 임한다는 이중적 효과를 암시한다. 126 (사) 옷을 지킴(16:15) 본 절의 묘사는 예수님의 재림을 묘사할 때 주로 사용되는 마태복음 24:42-44; 데살로니가전서 5:2; 베드로후서 3:4,10과 같다. 마태복음 24:42-44은 주님의 갑작스런 오심을 설명하고 데살로니가전서 5:2 과 베드로후서 3:4.10 은 ‘주의 날’이라고 명시하여 재림의 때를 가리킨다. 도적 모티브의 초점은 갑작스런 주님의 오심에 성도들이 대비하고 깨어있어야 한다는 점과 깨어서 자기 옷을 지키는 것의 목적은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여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벌거벗은 수치를 보이는 것’은 우상숭배에 동참하거나 하나님께 범죄한 이스라엘과 다른 이방 나라들을 정죄할 때 사용된 용어로 본문은 ‘짐승을 숭배하지 않고 성도로서 거룩한 신분을 유지하며 구원받는 자가 복 있다’고 해석되며 옷을 지키는 것은 성도의 본분을 지키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빌은 옷을 타협하지 않음 또는 성도의 의로운 행동의 상징이며 어린양의 혼인잔치(19:8-9)에 필요하며 벗음은 의가 없음을 뜻한다고 보았다. 127 갑작스런 그리스도의 오심은 구원과 심판을 위해서이다. 구원은 준비한 자들 위함이고 심판은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임한다. 벌거벗음과 부끄러움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히브리어 הָוַרֶע는 (벌거벗음, 성기)라는 단어는 LXX 에 8 번 αἰσχύνη(부끄러움, 창피)로 번역되었다. 128 본 절은 도적 모티브를 제시함으로 갑작스런 주님의 오심에 대비하고 있으라는 내용이다. 새 창조의 날에 항상 대비하지 않고 오늘을 사는 것은 의복과 같은 신앙적 인격이 없이 벌거벗고 다니는 것이 되며 예상치 않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3. 맺는 말 1:3 의 첫째 macarism 은 계시록의 기원과 전파 경로를 언급하는 모두진술(opening statement)로서, 직면한 고난을 이겨내는 자들에게 포기하지 말 것과 승리하여 이겨내는 자들을 복되다고 한다. 시간의 임박성을 언급하는 것은 종말적인 관련보다는 주로 윤리적 의도에 기인한다. 이러한 윤리적 확신은 종말의 “이미 그리고 아직”이라는 성격에 기인한다. 독자들이 요한의 윤리적 권고에 따라야만 하는 이유로 주께서 구속의 사역을 행하신 일과 또 장래에 행하실 일을 병행 제시하고 있다고 빌은 설명한다. 129 22:7 에서는 주의 오심이 임박했음 그리고 말씀을 신실하게 지킴에 대한 보응이 강조된다. 본문은 1:3 과 수미쌍관을 이루어 다시 한번 강조함으로 저자의 목회적 중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배경연구에서 언급했지만 로싱의 지적대로 τηρέω 동사는 윤리적 구조를 제공하는 전형적인 지혜문학의 증거이다. 126 H. Alford, Greek Testament (Chicago: Moody, 1968), 586. 127 Beale, 836. 128 Aune, 896. 129 Beale, 185-86. 47 Macarism 의 특징에 대한 귈리히의 연구에 의하면 지혜 제의적 배경에서 macarism 은 선언적이어서 윤리적 논조가 우세하고, 예언적 묵시적 배경에서 macarism은 직면한 위기에 대한 확신과 격려로 종말적 논조가 우세하다. 이런 과점에서 A-A’에 나타난 macarism 을 살펴보면‘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다’라는 표현에서는 예전적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지혜 제의적 배경으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이 경우 해석은 윤리적 논조가 강하다. 반면 임박성과 관련해서는 종말적 논조가 우세하다. A-A’의 문장 구조 속에 나타나는 macarism은 양자 모두의 지혜 전승을 함유한 표현으로 간주된다. 저자는 τηρέω 동사를 통해 공동체에게(1:3) 말씀에 대한 충성심(3:8,10; 22:7)을 고양하고 박해의 때를 인내하고(14:12) 이겨내도록 권면한다. 그리고 말씀을 지키는 것이 이기는 것임과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 복이 있음을 선포함으로 그러한 윤리적 삶을 살기를 권면한다. 제 4 절 본문주해(2): 죽음 그리고 부활(14:13[B]; 20:6[B’]) Καὶ ἤκουσα φωνῆς ἐκ τοῦ οὐρανοῦ λεγούσης· γράψον· μακάριοι οἱ νεκροὶ οἱ ἐν κυρίῳ ἀποθνῄσκοντες ἀπ᾽ ἄρτι. ναί, λέγει τὸ πνεῦμα, ἵνα ἀναπαήσονται ἐκ τῶν κόπων αὐτῶν, τὰ γὰρ ἔργα αὐτῶν ἀκολουθεῖ μετ᾽ αὐτῶν.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14:13) μακάριος καὶ ἅγιος ὁ ἔχων μέρος ἐν τῇ ἀναστάσει τῇ πρώτῃ· ἐπὶ τούτων ὁ δεύτερος θάνατος οὐκ ἔχει ἐξουσίαν, ἀλλ᾽ ἔσονται ἱερεῖς τοῦ θεοῦ καὶ τοῦ Χριστοῦ καὶ βασιλεύσουσιν μετ᾽ αὐτοῦ [τὰ] χίλια ἔτη. 48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20:6) 1. 구조와 정황 14:13 의 구조와 정황을 살펴보면 먼저 요한에게 하늘로부터 기록하라(γράψον)는 음성이 들린다. 계시록에서 12 회 사용되는 이 단어는 계시록 전체를 기록하라는 것 외에 일곱 교회에 주는 메시지에 사용되며 바벨론 멸망, 새 창조 등과 같이 종말적 상황 속에서 극적인 반전과 주의를 환기 시키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130 14:13 은 전형적인 구조를 모두 가지는 완전한 macarism이다. 칭송(ascriptive word)에 해당되는 복수 주격의 서술 형용사 μακάριοι 로 시작하나 이 앞에 축복의 근원을 밝히는 짧은 문장이 선행한다. 즉 보는 것을 기록하라고 명령하는 하늘 음성이 언급된다. 관계대명사와 분사는 이 문장에서 주 안에서(ἐν κυρίῳ)라는 표현에 의해 분리되어 있으며 이들은 명사구 οἱ νεκροὶ 와 동격이다. 다른 것들과 달리 이 문장은 이중 논평(double commentary)을 갖는데 첫째는 ἵνα 이하이고 둘째는 γάρ 이하이다. 131 요한의 사고 속에는 죽임 당한 사람이란 믿음을 증거하다가 죽임 당한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2:13; 6:9; 11:7-11; 14:1-5). 세 천사의 메시지는 예언자로 하여금 믿는 자들의 미래가 어떠할 지를 계속해서 알려준다(14:6-11). 그러나 이 환상 여행은 갑작스런 천상의 소리, 즉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의 운명을 알려주는 음성에 의해 중단된다. 첫째 축복에서 제시된 선포가 본문에서 점차 형태를 갖추게 되는데 7:13-16 에 묘사된 흰 옷 입은 순교자의 모습으로 점차 변해간다. 이 macarism의 연결고리를 생각한다면 1:3의 첫 번째 축복은 단순한 구두 선포이나 본문에서는 말씀을 따라 죽기를 다짐하는 부르심으로 변화된다. 12:7-10, 17 에 설명된 용의 패배는 비록 교회가 지금은 핍박 받지만 어린 양의 보혈에 의지하여 승리할 것을 요한에게 확신시켜 주었다. 14:13 의 이러한 메시지는 박해가 임박한 서머나,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는 메시지를 상기시킨다(2:10; 3:10). 이는 인, 나팔 심판으로 상징되는 종말적 심판의 정황 속에서 주 안에서 죽는 자가 구원 받음을 확신시켜 주는 메시지가 된다. 14:6-12에서 첫째 천사는 ‘영원한 복음을 130 이필찬, 628. 131 Nwachukwu, Write What You See, 117. 49 가지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를 경배하라’하고 둘째 천사는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음’을 선포하며 셋째 천사는 ‘우상에게 경배한 자가 하나님의 진노에 처할 것’을 경고한다. 이 macarism 은 세 천사의 메시지의 결론이 된다. 요한은 짐승을 경배한 자가 당할 쉼 없는 고난과 주 안에서 죽는 자의 안식을 대비 시켜준다(14:10-11; 20:10, 14-15). 132 본문은 6:10에 언제 우리의 피를 갚아주시겠냐는 순교자들의 탄원에 대한 응답이다. 이는 지혜문학의 세 신학적 특징 중 신정론적 특징을 보여준다. 왜 악인은 승승장구하고 의인은 고통 받는가라는 신정론적 질문에 잠시 안식하고 있으라는 말씀이 주어지고(6:11) 그 연장선상에서 본문이 진행된다. 성도의 고난이 복된 이유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에게 예비된 안식이 있기 때문이다. 의인에게 예비된 안식에 관해서는 지혜서 4:7, 이사야 57:1-2, 바룩 2서 85:9에 묘사되고 있다. 이 안식은 다니엘서 12:13(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네 몫을 누릴 것 임이라)에서 다니엘에게 약속된 것으로 마지막 부활의 날까지 쉬라는 명령을 연상시킨다. 70인역에는 부가적인 약속이 제시되는데 ‘너는 안식하라 그리고 끝 날에 네가 영광 가운데 서게 되리라’라고 되어 있다. 다니엘서에 제시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세워짐과 연단을 받으며 스스로 정결하게 할 것을 권면하는 것과 안식에 대한 약속은 성도의 환란(13:10,12), 인내(14:12), 순교 그리고 순교자에게 약속된 안식으로 이어지는 본문의 정황과 맥을 같이한다. 133 또 본문과 관계성을 보이는 6:11 에는 순교자들에게 흰 두루마기와 잠시 동안의 안식이 제공된다. 그러나 6:11 의 안식은 일시적인 반면 7:13-15 과 14:13, 그리고 21:2-7 로 이어지는 안식은 영원한 안식으로의 시작이다. 이러한 안식은 일곱째 복에서 제시되는 거룩한 성에 들어감과 생명나무를 얻는 최종적인 안식으로 연결된다. 20:6의 구조와 정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장 1-3절과 4-6절의 사건은 천 년이라 불리는 동시기에 발생하는 것으로 이는 문자적, 연대기적인 숫자가 아니다. 134 4-6 절은 1- 3 절과 7-10 절 사이에 삽입되어 A-B-A’의 구조를 가진다. 이는 A 와 A’에는 천 년 동안 무저갱에 사탄이 갇히게 됨과 무저갱에서 나와 교회 공동체를 향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 사이에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는 교회 공동체의 정황이 대조되고 강조된다. 순교자들의 영혼이 보좌에 132 Ibid., 118. 133 Beale, 769. 134 Ibid., 995. 50 앉아있는 장면인 20:4 은 6:9(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과 구조적 의미적으로 강한 연결을 보인다. 먼저 구조적으로는 서로 짝을 이루거나 동일한 출처를 가진 것으로 해석될 정도로 유사성을 보인다. 그 문자적 유사성을 살펴보면 첫째,‘내가 보니’(εἶδον)라는 말로 환상이 시작되고 둘째, εἶδον의 목적어로 모두‘순교자의 영혼’을 취하며 셋째, 순교의 이유가 둘 다 διά로 시작되는 원인을 설명하는 절을 가지며 넷째, 원인절의 순서가 도치되었지만 동일한 내용으로 구성되며 끝으로 διὰ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과 διὰ τὴν μαρτυρίαν 이 관용적으로 모두 사용된다. 135 6:9 과 20:4 의 순교자에 대한 묘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공식적인 성도들의 탄원이 처음 나타나는 6:10에 대한 응답의 성취로, 또는 6:11에 암시된 응답의 확장으로 보는 견해로 나뉘나136 중요한 것은 본문이 신원에 대한 응답이라는 것이다. 14:13과 20:6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4:13 20:6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 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 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주안에서 죽는 죽음으로의 부르심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심에 초대 죽음 후의 예비된 안식 부활 그리고 제사장, 왕 표 6. 14:13 과 20:6 과의 관계. 2. 본문 이해 가. 주 안에서 죽는 죽음(14:13) 순교자들이 부르짖는 심판과 보응의 호소(6:10)와 로마제국의 교회를 향한 핍박이 임박함(11-13 장)에 대해 요한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순교 당한 자들이 하늘에서 안전하게 거한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다. 본문은 주 안에서 죽는 자가 복되다고 표현하는 135 Aune, 1088. 136 Beale, 997-998. Beale 은 응답의 확장으로 Fiorenza 는 응답의 성취로 해석한다. 51 첫째 문장으로 성도의 인내와 순교가 헛되지 않다고 선언한다. 이는 바울 서신(고전 15:17-22; 살전 4:14-16)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이 절망할 일이 아니라 기뻐할 일 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확신을 심어주는 선포이다. 그러나 모든 죽은 자가 복되다 하지 않고 주 안에서 죽는 자가 복되다고 선포한다. 이는 주 안에서 죽는 죽음과 함께 주 밖에서 죽는 죽음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또한 지혜문학의 주제적 특징인 둘 사이의 선택 모티브와 연관이 있다. 주 밖에서 죽는 자의 운명이 14:10-11 에 고난 가운데 쉼이 없음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에녹1 서 103:1- 15에서 영적으로 죽은 자인 악인과 고난을 당하는 의인의 운명을 비교한 것과 유사하다. 전자의 경우 스올로 내려가 비참해지나 후자의 운명은 기쁨 가운데 살고 하나님 앞에서 기억된다. 저자는 지혜문학의 주제적 특징인 둘 사이의 선택에서 저주 받은 죽음의 길이 아닌, 하늘 음성이 권하는 복된 죽음의 길로 초청한다. 주 안에서 죽는 죽음이란 그리스도 죽으심과 연합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14:12). 나. 지금 이후로(14:13) 지금 이후로(ἀπ᾽ ἄρτι)라는 표현은 신약성경에서 단 6 회 나오는 단어의 조합으로 5 회는 복음서에 나온다(마 23:39; 26:29, 64; 요 13:19; 14:7). 이들은 모두 미래의 성취와 관련되어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 구절이 복되다(μακάριοι,), 죽는(ἀποθνῄσκοντες,), 이르시되(λέγει) 중에서 어디로 연결되는지 불분명하다. 이에 대한 최소 다섯 가지 견해가 있는데 첫째, (주 안에서 죽는) ‘죽은 자들’로 연결된다는 견해. 둘째, ‘요한이 기록하는 당시 이후로 죽는 자들’로 보는 견해. 셋째, ‘요한에게 환상이 전해진 이후로 죽는 자들’이라는 견해. 넷째, ‘그들의 죽음 이후로 복되다’고 보는 견해. 다섯째, 모든 일반적인 죽은 자들로 연결된다고 보는 견해. 즉, ‘죽은 자들은 지금 이후로 복되다’고 보는 견해 등이다. 만약 ἀπ᾽ ἄρτι가 축복 선언의 결론처럼 이해된다면 ‘지금 이후로 죽는 자들이 복되다’고 해석되며 이 경우 어떤 그룹의 죽음은 복되고 어떤 그룹의 죽음은 복되지 못하다고 해석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이는 단지 ‘믿지 않는 자들이 안식 없는 죽음에 들어가는 것’에 반해 ‘믿는 자들의 안식이 시작되는 죽음의 시점이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빌은 주장한다. 137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예로 에즈라4서 7:92- 137 Beale, 769. 52 99 에서 의인의 죽음의 보응으로 ‘그들에게 안식이 있으며 그들이 지금 이후로 안식을 이해할 것이다.’라는 문구를 찾을 수 있다. 또 빌은 그리스도인의 안식에 근거하여 ‘지금’이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때로 보는 견해도 소개한다. 이렇게 보면 ‘구속사역으로 인한 시대의 변화 이후로 복되다’라고 해석된다. 여하튼 ἀπ᾽ ἄρτι의 결론 짓는 기능은 불신자들은 심판 받지만 모든 성도가 완전한 안식에 들어가는 예언의 성취로 이해된다. 138 서머나 교회를 향한 권면(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과 관련해서 보면 ‘지금 이후로’는 ‘복되다’와 ‘죽는’을 모두 한정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경우 본문은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임 당하는 자들은 복되다.’고 해석된다. 비록 ‘지금 이후로’가 교회에 새로운 위기가 시작됨을 알리는 표현이 되나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근거하여 신앙을 격려 받게 된다. 오니는 일곱의 macarism 중 셋만이(14:13; 19:9; 22:7) 조건절이 따르지 않고 독립절로 이뤄졌고 단지 선포가 제시하는 의미를 확장한다고 설명하면서 본문중의 신탁의 내용은 주 안에서 지금 이후로 죽을 자들의 상황을 염려하는 것으로, 본문은 이미 죽은 자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이고 위기에 직면하여 가까운 장래에 순교 당할 처지에 놓은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139 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14:13) 본문은 ἵνα 와 미래동사가 결합하여 목적절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ἵνα ἀναπαήσονται ἐκ τῶν κόπων αὐτῶν)구조 및 의미상 6:11(잠시 동안 쉬되 ἵνα ἀναπαύσονται ἔτι χρόνον μικρόν)과 유사하다. 주 안에서의 ‘안식’은 불신자가 겪게 될 고통인 ‘밤낮 쉼을 얻지 못함’과 대비된다. 평행되는 6:11 은 환란 가운데 죽임 당한 영혼들에게 쉼의 상징으로 흰 두루마기가 수여된다. 140 본문은 그리고 히브리서 4:1-11 에 기술된‘안식의 신학’과 병행관계를 보인다. 히브리서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않는 자에게 안식이 약속되는 것과 안식에 들어가는 자는 자기의 일을 138 Loc. cit. 139 Aune, Prophecy in Early Christianity and the ancient Mediterranean world, 283. 140 Osborne, 545. 53 쉰다(κατέπαυσεν ἀπὸ τῶν ἔργων αὐτοῦ)는 구절과 언어적 유사성을 보인다. 141 κόπος 는 투옥, 박해 등을 상징하며 수고, 지치고 힘든 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일, 임무 등의 의미를 갖는 ἔργον 과 의미가 다르다. 주 안에서 죽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수고로부터 벗어나 안식이 주어진다. ἀναπαύω 는 생물학적 휴식의 의미가 아니라 수고와 환란이 그친다는 의미이다. 요한은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안식과 짐승에게 경배한 자들에게 밤낮 쉼을 얻지 못함을 비교하고 있는데 이는 에녹1서 100:5과 희년서 23:31에 의인이 안식의 잠을 자는 것과 유사하다. 142 본문이 제시하는 안식은 핍박과 고난이라는 현재의 질서가 역전되기를 기대하는 소망이 반영된 종말론적 미래적 행복이다. 이는 초기 유대 문헌에서 나타난 종말론적 행복이 반영된 macarism 이 전승된 것으로 여겨진다. 라.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14:13) γάρ 이하의 문장으로 주 안에서 죽는 자가 복된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것은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의 행위가 그들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행위(ἔργα)라는 단어가 2-3장 (2:2, 19; 3:2, 15)에서 자주 사용되는데 본문은 2-3 장과 주제적 연결을 보이고 있다. 본문은 문맥상 삽입된 것으로 보이며 이 삽입은 최종편집 단계에서 삽입되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오니는 주장한다. 또 그는 랍비 문서에서 본문과 평행을 보이는 구절이 에즈라 4서에서 많이 나타난다고 밝힌다(7:7, 35, 77; 8:33). 143 본문은 행위 구원에 대한 논쟁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물론 20:12,13 에서 명백히 죽은 자는 심판을 거쳐야 하고 그들의 행위가 기록된 책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기록이 있지만 행위로 구원을 보장받는다는 주장을 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144 크루즈는 행위(ἔργα)가 구원의 근거로 언급되지 않고 그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지 여부를 141 Loc.cit. 142 Nwachukwu, Write What You See, 126. 143 Aune, Revelation, 839. (1) 4 Ezra 7:35 (rsv), “And recompense shall follow, and the reward shall be manifested; righteous deeds shall awake, and unrighteous deeds shall not sleep”; (2) 4 Ezra 7:77 (rsv), “For you have a treasure of works laid up with the Most High; but it will not be shown to you until the last times”; and (3) 4 Ezra 8:33 (rsv), “For the righteous, who have many works laid up with thee, shall receive their reward in consequence of their deeds. 144 R. H. Charles,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John, Vol. I (New York: Chalres Scribner’s Sons, 1920), 371-372, Nwachukwu, Write What You See, 127 에서 재인용. 54 확인하는 기능을 갖는다고 한다. 145 본문의 정황에서 짐승과 바벨론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인내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를 믿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 자들에게 행위와 믿음이 분리 될 수 없고 믿는 바 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 본문으로 손쉽게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단정을 내릴 수 없다. 146 오히려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앞 절인 14:12 와 평행관계를 보이는 13:10b(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를 통해 명확해진다. 우상 숭배를 거부한 성도들에게 핍박이 가해지는 상황 속에서 인내하여 믿음을 지키라고 권면하는데 이는 곧 죽음으로 믿음을 지키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14:13 에 이렇게 죽은 자 즉,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의 죽음이 복되다고 칭송 받는다. 본문은 영벌에 처할 악인의 운명에 대비하여(14:9- 11) 성도가 하늘에서 흰 두루마기를 입고(6:13-17) 기뻐하며(14:13) 모세의 노래(15:3)를 부르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즉 본문은 환란에 인내하고 그 결과 죽음을 맞이하는 성도들에게 영원한 안식이 따르게 됨을 말한다. 인내의 윤리와 이의 결과로 따르는 안식을 말해준다. 마.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누구인가(20:6)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전에 먼저 4 절에 언급되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살펴보는 게 순서이다. a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b 그(것들)위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심판(하는 권세)가 그들에게 주어졌다 c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의 영혼들(이었다) d 그들은 아무도 짐승과 그의 우상을 경배하지도 않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로 e (다시)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다스린다. 4 절의 구조를 분석하면 먼저 a, c 는 요한이 직접 본 내용의 묘사로 Καὶ εἶδον의 목적어로 목적격 명사인 보좌, 영혼들을 취한다. b, d, e 는 a, c 의 내용을 보충 설명한다. 4 절에서 등장하는 세 그룹을 살펴보면 a,b - 보좌에 앉아 심판하는 권세를 받은 자들, 145 M. Shuster and R. Muller, eds., Perspective on Christology, 275. 146 이필찬, 631. 55 c –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의 영혼들, d -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않고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도 않은 자들이다. 이들 세 그룹의 상호 관계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나뉜다. 147 ① a,b = c,d 두 그룹을 동일한 순교자들로 보는 견해로 d 는 c 를 설명해주고 이 d 가 a, b 를 보충 설명하는 것으로 본다. 순교자들을 24 장로처럼 보좌에 앉아 심판하는 권세 받은 교회 공동체의 대표로 간주하는 견해이다. ② a,b ≠ c,d 보좌에 앉은 이들을 교회 공동체 전체로 이해하고 a,b 의 정체성을 c,d 를 통해 규명하는 견해로 교회 공동체는 순교적 정신을 가진 자들의 모임으로 본다. ③ a,b = 교회 공동체 전체로 보며 c 와 d 는 교회 공동체의 두 구성 요소를 설명하는 견해로 교회의 두 구성요소는 순교자와 잠재적 순교자로 이해한다. d 의 관계대명사 οἵτινες 가 선행사를 가지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본다면 c 와 d 는 서로 다른 존재이므로 ③의 견해를 지지하게 되나, 선행사를 가진 것으로 본다면 선행사는 τὰς ψυχὰς가 가장 유력하므로 d는 c를 설명하므로 ①과 ②를 지지하게 된다. 또한 전자처럼 c와 d를 각각 다른 그룹으로 본다면 13:15(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를 설명하기가 곤란해진다. 따라서 동일한 그룹의 다른 설명으로 간주하는 것이 옳다고 보여진다. 148 이필찬은 첫째 부활이 일차적으로는 순교자들에게, 이차적으로는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되고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중생하여 생명을 얻는 상태라고 해석한다. 149 본문은 6 절에서 첫째 부활에 참예한 자들에게 복이 있고 거룩하다고 말한다. 이는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에게 임한 은혜와 그들의 거룩한 하나님 백성의 속성을 규정한다. 복이 있는 이유는 영원한 심판인 둘째 사망이 그들에게 권세를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 무엇이 첫째 부활인가?(20:6) 147 이필찬, 849. 148 R. H. Mounce, The Book of Revelation,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97), 365. 149 이필찬, 852. 56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5 절(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을 근거로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 천년이 차면 물리적으로 부활 한다고 믿는다. 만약 5 절에서 악인이 부활한다면 4 절의 순교자들도 물리적으로 부활한다. 알포드(H. Alford) 150의 자주 인용되는 주장(두 부활에서 먼저 것은 영적인 부활로 둘째의 것은 문자적 부활인 무덤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언어의 의미는 상실된다)과 같이 문스(R. Mounce)도 동일한 단어가 같은 문장에서 다르게 해석되려면 타당한 설명이 있어야 하나 이러한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151 첫째 부활에 대한 언급은 계시록 20 장을 제외하면 신약 어디에도 없다. 계시록 이외에는 의인에게는 영생의 부활, 악인에게는 영원한 사망의 부활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요 5:28-29) 부활에 숫자를 붙여 명명하는 곳은 없다. 다른 곳에서는 숫자를 붙이지 않은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언급되며(단 12:2; 행 24:15; 고후 5:10; 에즈라 4서 7:32; 에녹1 서 51:1-2) 또 의인의 부활만 언급된 곳도 있다(마카비 2 서 7:9; 솔로몬시편 3:12; 요 3:36; 눅 14:14; 롬 6:5; 8:11; 고전 15:21). 152 첫째 부활은 먼저 언급된 둘째 사망에 대한 대응으로서 언급된 것으로 여겨진다. 첫째라는 의미의 πρῶτος는 헬라어에서 자주 ‘전자(former’πρότερος)라는 의미로(BDF§62) 또는 일정 시간이나 공간 또는 집합에서 어떤 시리즈에서의 첫째의 의미로 사용된다(Louw-Nida,§ 60.46). 두 번의 부활 개념은 논란이 있다. 크랲트(H. Kraft)는 계시록에는 오직 한 번의 부활만 언급된다고 하며 포드(M. Ford)는 첫째 부활의 의미를 ‘부활에 참여하는 첫째 그룹’의 의미라고 주장한다. 계시록에도 복음서나 서신서에도 부활의 순차가 언급된 곳은 없다. 랍비 문서에서도 첫째, 둘째 부활에 대한 개념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153 첫째 부활은 둘째 부활을 예상하게 하지만 이에 대한 명백한 언급은 없다. 둘째 사망은 2:11; 20:6,14; 21:8에서 언급된다.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 둘 사이의 연결은 다소 불분명하다. 두 번의 부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자비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 어거스틴(Augustine)은 요한복음 5:25(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과 연관하여 나머지 죽은 150 H. Alford, Greek Testament (Chicago: Moody, 1968), 732. 151 Mounce, 366. 152 Nwachukwu, Write What You See, 216. 153 Aune, Revelation, Vol. 52C, 1090. 57 자들이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 자로 해석하여 천년 동안 살아나지 못하다가 육체의 부활이 있을 때 생명의 부활이 아닌 심판의 부활 즉, 둘째 사망을 맞게 된다고 해석한다. 154 선택적 부활과 보편적 부활: 문스는 첫째 부활은 선택적 부활로서 부활을 즐길 첫째 그룹으로 해석하며, 둘째 부활은 우주적 부활로 해석한다. 155 그 외에 첫째 부활을 그리스도의 부활로 해석 156하거나, 요한의 언어 유희에 근거하여 첫째 부활을 성도의 죽음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157 순교자의 승리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견해 들이 있다. 158 빅토리누스(Victorinus), 어거스틴(Augustine), 이그나티우스(Ignatius), 저스틴(Justin) 등의 대부분의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은 첫째 부활을 영적인 것으로 둘째 부활을 육체적인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계시록에서 둘째 부활에 대한 언급은 없고 20:12-13에 근거하여 해석된 것이다. 159 본문에 의하면 악인은 부활하지 못한다. 다만 심판 날 불러일으켜져 역설적으로 둘째 사망을 맞이한다(요 5:29; 계 20:12-15). 반면 의인은 첫째 부활에 살아나 통치를 함께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이런 면에서 첫째 부활은 믿는 자 즉,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20:4),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의 승리를 상징한다. 160 일반적으로 ἀνάστασις는 죽음에서 삶으로 다시 일어남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람의 이전 위치에서 일어나 떠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BDAG). 이런 의미로 보면 첫째 부활은 이전의 비참함으로부터 옮겨져 그리스도의 지도 하의 새로운 자리로 옮겨짐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의 본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요한은 기대하고 있다(21:3; 22:4-5).161 첫째 사망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는 모든 인생이 처한 영적인 죽음으로 추정된다. 둘째 사망도 첫째 부활의 정황에서 설명 가능한데, 적대적 세력이 불 못에 던져지는 선택적 멸망으로 추정된다(20:14; 21:8). 첫째 부활은 로마서 6:9(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의 그리스도의 부활 모델에 근거한다. 154 Augustine, The City of God, translated by Marcus Dods, (Digireads.com Publishing, 2009), 20.9. 155 Mounce, Revelation, 370. 156 N. Shepherd, “The Resurrection of Revelation 20.” WTJ 37(1974-75): 34-43. 157 M. Kline, “The First Resurrection.” WTJ 37(1974-75): 366-75. 158 R. Summers, “Revelaiton 20: An Interpretation,” Review & Expository 57(1960): 181. 159 Nwachukwu, Write What You See, 217-218. 160 Ibid., 218. 161 B.J. LeFrois, “Eschatological Interpretation of the Apocalypse,” CBQ 13(1951): 20. 58 3. 맺는 말 주 안에서 죽는 자(οἱ νεκροὶ οἱ ἐν κυρίῳ ἀποθνῄσκοντες)라는 표현은 ‘주 안에서 죽는 죽은 자들’(the dead who die in the Lord )이 정확한 표현이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일차적으로는 순교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요한의 시대에 그리스도인 들이 잠재적으로 죽음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신실하게 살다가 자연사하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으며 순교적 자세로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로 확대할 수 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되다는 하늘의 음성에 대하여 성령께서 동의하신다. 이것은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은 자는 밤낮 쉼을 얻지 못하지만(11 절) 이에 비해 주님을 섬기다 죽는 자들은 잠시 고난 받으나 곧 수고를 그치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 때문이다. 복이 있다고 선언하는 근거는 γὰρ 이하에 설명되는데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뒤따르기 때문으로 그 행위는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한 무리들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버리지 않은 신실함을 잃지 않은 것이다. 162 따라서 본문이 권면하는 바는 죽음을 무릅쓰고 믿음을 지키는 신실함이다. 6:10의 순교자들의 ‘어느 때까지 우리의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십니까’라는 부르짖음에 11 절에 흰옷을 주시며 잠시 동안 쉬되 죽임을 당하는 수가 차기까지 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지혜문헌의 신학적 특징인 신정론적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본문에서‘지금 이후로’라는 표현을 통해 핍박이 임박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마치 서머나 교회에 고지된 ‘장차 받을 고난’처럼 박해가 임박했으나 인내하며 믿음을 지켜 내라고 권면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본문은 짐승을 경배하는 자에게는 쉼이 없으리라는 경고를 주며 반면 주 안에서 죽는 자는 복되다고 선포함으로 성도들을 격려한다. 성도가 인내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께서 인내하셨기 때문이고(3:10) 또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지키는 것이며 동시에 이기는 것(2:26)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본문은 14:6 에서 공중에 날아가는 천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선포하는 영원한 복음의 결론에 162 Ibid., 631. 59 해당된다. 죽음으로 믿음을 표현하는 행위가 믿음의 조건이 되지 못하지만 진실된 믿음의 표현이며 이러한 핍박과 환란을 인내하며 지켜나가는 것이 성도의 윤리이다. 느와추쿠는 첫째 부활에 대해서는 요한이 즐겨 사용하는 대비되는 개념을 병행하는 기법 안에서 이해하는 게 좋다고 제시한다. 그 예로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사망(20:4-5 vs 10), 성도의 다스림과 사탄의 붙잡힘(20:2 vs 5), 첫째 하늘(땅)과 새 하늘(땅)(21:1), 사탄의 오랜 전쟁 준비와 성도에 의한 빠른 정복(20:8-9a vs 9b), 땅과 하늘이 사라짐과 죽은 자가 나타남(20:11 vs 12), 생명의 책과 사망의 책(20:12 vs 15) 등이다. 이런 대비를 통해 부활자체의 독특함과 반대됨을 강조한다. 첫째 부활은 다스리는 권세(3:21; 20:4-5; 눅 22:30)로 귀결되며 둘째 사망은 파멸로 이어진다. 163 또 그는 요한이 부활의 전개 방식을 설명하려 하지 않으며 단지 성도가 잘 참고 이겨내는 것의 유익, 주의 약속에 따른 순교자의 새로운 지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사탄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어린양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승리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164 따라서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은 순차적인 것이 아닌 지혜문학의 주제적 특징인 둘 사이의 선택의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 저자는 성도들에게 둘째 사망의 멸망의 길을 가지 말고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하는 첫째 부활의 복된 길을 가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제 5 절 본문주해(3): 옷 그리고 혼인잔치(16:15[C]; 19:9[C’]) 163 Nwachukwu, Write What You See, 230-231. 164 Ibid., 219. 60 Ἰδοὺ ἔρχομαι ὡς κλέπτης. μακάριος ὁ γρηγορῶν καὶ τηρῶν τὰ ἱμάτια αὐτοῦ, ἵνα μὴ γυμνὸς περιπατῇ καὶ βλέπωσιν τὴν ἀσχημοσύνην αὐτοῦ.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6:15) Καὶ λέγει μοι· γράψον· μακάριοι οἱ εἰς τὸ δεῖπνον τοῦ γάμου τοῦ ἀρνίου κεκλημένοι. καὶ λέγει μοι· οὗτοι οἱ λόγοι ἀληθινοὶ τοῦ θεοῦ εἰσιν.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19:9) 1. 구조와 정황 16:15의 구조와 정황을 살펴보면 본문은 macarism의 일반적 4구성 요소를 보이지 않으며 주님의 재림하심, 재림 방법에 대한 서언으로 시작된다. 특히 주석에 해당되는 ἵνα μὴ 이하 구절은 부정적 목적구(~하지 않도록)를 보인다. 본문의 내용은 16장의 여섯째와 일곱째 대접 심판 사이에 위치하여 주님의 다시 오심이 얼마나 갑작스럽게 임할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문은 앞뒤 문맥과의 관련성이 적고 내용상 승귀하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이지만 화자가 정확히 명시되지는 않았다. 본문에서 3:3의 도적 모티브가 사용된 것으로 볼 때 여기서 유래된 권면성 삽입구로 여겨진다. 이런 이유로 오니는 본문은 2차 개정판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165 본 절은 3:18b(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의 이미지를 발전시킨 것으로 라오디게아 교회가 종말적 긴급함을 가지고 회개해야 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파루시아의 때 벌거벗음을 보이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권면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심판을 피하도록 마지막 박해에 저항하고 부단히 경계하라는 말씀으로 해석된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으로 부끄러운 우상숭배가 드러나 음녀 바벨론와 동일시될 것이다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벌거벗음은 우상숭배 또는 의롭지 못한 행동이며, 옷은 ‘명예가 훼손되지 않음’또는 ‘성도의 의로운 행동’이다. 이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19:8-9)에 참여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성도의 신앙 인격과 그에 걸맞는 품행으로 이해된다. 16:15과 19:9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65 Aune, Revelation, 896. 61 16:15 19:9 16: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화자가 내용상 승귀하신 예수이나 불분명 천사가 화자 옷과 도적 모티브 혼인잔치 모티브에 식탁교제와 옷의 모티브가 내포됨 표 7. 16:15과 19:9과의 관계. 19:9 의 구조와 정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본문의 앞에(17:1-19:8) 묘사된 바벨론 멸망은 교회와 순교자들의 오랜 탄원이 받아들여진 결과이다. 슬픈 현실이 밝은 미래로 바뀌기를 바라던 갈망이 이제는 성도들을 어린 양의 종말적 혼인잔치에 초대받음으로 실현된다. 19:1- 10의 할렐루야 찬양은 17-18장의 바벨론 멸망에 대한 하나님 심판의 진실성과 정당성, 하나님의 통치,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찬양한다.‘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이 복이 있다’는 표현은 3:20의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는 표현과 동일한 맥락으로 친밀한 식탁교제를 뜻한다. 이는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누릴 수 있는 완전한 연합을 의미하며 치열한 영적 전투에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이러한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복을 누리게 된다. 166 14:13 과 19:9 의 구조적 유사성에 대하여 오니가 비교한 바에 의하면 1)도입부, 2)받아 적으라는 명령, 3)macarism 의 소개, 4)둘째 도입, 그리고 5)추가 언급되는 형식이 매우 흡사하다고 지적한다. 167 14:13 19:9 καὶ ἤκουσα φωνῆς ἐκ τοῦ οὐρανοῦ Then I heard a voice from heaven, καὶ Then λεγούσης saying, λέγει μοι he said to me, γράψον γράψον 166 이필찬, 800. 167 Aune, Revelation, 1031. 62 “Write, “Write μακάριοι ‘How fortunate μακάριοι ‘How fortunate οἱ νεκροὶ οἱ ἐν κυρίῳ ἀποθνῄσκοντες are the dead who die in the Lord. οἱ εἰς τὸ δεῖπνον τοῦ γάμου τοῦ ἀρνίου are those who to the wedding feast of the Lamb ἀπαρτὶ λέγει τὸ πνεῦμα, Truly, says the Spirit, καὶ λέγει μοι Then he said to me, ἵνα ἀναπαήσονται ἐκ τῶν κόπων αὐτῶν, that they might rest from their labors, οὗτοι οἱ λόγοι ἀληθινοὶ “This is the true message τὰ γὰρ ἔργα αὐτῶν ἀκολουθεῖ for their works follow τοῦ θεοῦ εἰσιν. from God.” 표 8. 14:13 과 19:9 의 구조적 유사성. 17-22장의 구조는 두 번의 결론을 갖는 이중적 결론 구조를 갖는다. 보캄은 바벨론과 새 예루살렘이 대비되는 17:1-19:10 과 21:9-22:9 은 병행관계가 해석의 중요한 열쇠라고 설명한다. 168 이들은 동일한 장면으로 구성되며 주제의 유사성을 보인다. 모두 macarism으로 결론 맺어지는 점과(19:9 vs 22:7), 천사를 경배하려 하지만 천사가 거절하는 장면(19:10 vs 22:8-9), 천사가 확증함(19:9 vs 22:6), 천사와 요한의 정체성이 함께 종 된 자임을 나눔(19:10 vs 22:9) 등이 동일하거나 유사하다. 19:9-10 은 22:6-9 과 짝을 이루며 내용의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넷째 macarism 인 본문(19:9)이 둘째(14:13)와 여섯째(22:7)와 각각 형식상 그리고 내용상 유사성을 보이는 점과 19:9이 가지는 전후 문맥상 의외성으로 인해 본문은 텍스트 안에서 솔기(seam)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169 이는 필드가 주장한 6+1 의 구조와 여섯 안에서의 교차대구 구조를 지지하며 따라서 본문은 바벨론 멸망에 비하여 혼인잔치에 초대 받은 자들에 대한 축복은 비교할 수 없이 복된 것이라고 결론 짓는 기능과 어린 양을 따른 성도들의 역전된 상황을 소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일곱 개의 macarism 에서 저자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결론적인 해석이며 중심 사상이라고 추정된다. 2. 본문 이해 168 Bauckham, The Climax of Prophecy, 339. 169 Aune, Revelation, 1031-32. 63 가. 주님의 다시 오심(16:15) 계시록에는 오심이 반복해서 언급된다(1:4,7,8; 2:5,16; 3:11; 4:8; 16:15; 22:7, 12,20). ἔρχομαι와 동의어인 ἥκω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관련해서 적어도 16회 사용되며 3회는 구약의 표현법인 ὁ ὢν(1:4,8; 4:8)을 포함하고 있다. 주의 다시 오심은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시간 제약 없는 일반적인 오심(2:25; 16:15; 22:7), 시간 제약이 있는 일반적인 오심(2:16; 3:11; 22:20), 보응과 관련 있는 법률적인 오심(1:7; 11:18; 22:12), 반어적 오심(2:5, 16; 3:3), 성령, 신부, 듣는 자들에 의해 제안된 오심(22:17)이다. 첫째와 넷째의 특징은 예기치 못함이고, 둘째는 긴급성, 셋째는 두려움, 다섯째는 예측 가능함이 특징이다. 이 모두를 통해 요한이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었다고 느끼는 다양한 상황이나 사건을 설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요한은 이러한 경고를 통해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이 아니고 정말 가까이에 와 계신 것을 알려 구약 선지자들이 주의 날을 준비하라고 말한 방식으로 믿는 자들에게 깨어있도록 주문한다. 170 나. 깨어있음, 옷을 지켜 수치를 당하지 않음(16:15) 예수 전승에서 도둑의 비유는 그리스도의 예기치 않은 다시 오심에 대한 것이다. 파러(A. Farrer)는 한 사람이 옷을 벗어 두고 잠들자 도둑이 들어와 훔쳐가고 이 사람은 벌거벗게 된다고 가정하나, 171 반면 보캄은 한 사람은 옷을 입고 깨어있으며 다른 사람은 옷을 벗고 잠들어 있다가 벌거벗은 채로 붙잡힌다고 가정한다. 172 빌은 본문의 정황으로 볼 때 ‘깨어 옷을 지킴’이란 우상 숭배에 동참하고 짐승을 경배하라는 요구에 대한 거부라고 본다. 173 계시록에서 유일하게 여기에서만 τηρέω(지키다)동사가 옷(garments)과 함께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옷의 중요성은 알렉산드리아 행전(Acta Alexandrinorum) 7.101-7 (Musurillo, Acts, 42)에서 강조되고 있는데 기록에 의하면 황제가 극장에서 흰 축제 옷을 입지 않고 앉은 사람을 벌하는 내용이 있다. 구약성경과 초기 유대교문헌에 의하면 ‘벌거벗음’과 ‘수치’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창 9:20– 170 Nwachukwu, Beyond Vengeance and Protest, 151. 171 Ibid, 147. A. Farrer, The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 Commentary on the English Text, (Wipf and Stock, 2005), 177-178 을 참조하라. 172 R. Bauckham, The Climax of Prophecy, 92-117. “Synoptic Parousia Parables and the Apocalypse,”편을 보라. 173 Beale, 837. 64 24; 사 20:4; 47:3; 호 2:10; 고전12:23; Apoc. Moses 20). 또한 히브리 성경의 הָוַ רֶע (nakedness, genitalia)는 LXX에서 8회나 αἰσχύνη(shame, disgrace) (사 20:4; 47:3; 겔 16:36, 38; 22:10; 23:10, 18, 29)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본 절의 αἰσχύνη가 벌거벗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174 다른 macarism들과 달리(1:3; 14:13; 19:9; 20:6) 본 절은 이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적을 행하여 미혹하게 하는 짐승과 용, 왕들(13:3-18)에 대하여 성도로 하여금 바르게 반응하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의를 유지하라는 부름 앞에 세상으로부터 더럽혀지지 않도록 스스로 점검하게 하는 윤리적 실천이 요구되는 권면이다. 다. 기록하라(19:9) 요한은 7-8 절의 내용을 결론짓는 말씀을 기록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계시록에서 기록하라는 명령은 총 5 회 사용되는데(1:11,19; 14:13; 19:9; 21:5) 그 중 본문이 유일하게 예수께서 말씀하지 않는 구절이다. 다른 네 구절에서도 화자가 명시되지 않은 곳이 있으나 내용상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해석된다. 본문은 천사가 명령하지만 메시지의 근원이 자신이 아님과 자신보다 권위 있는 존재로부터 발화되었음을 밝히며 자신 또한 동일한 종으로 하나님께만 경배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약 성경의 예언자들과 마찬가지로 요한은 자신이 증언의 근원이 아니고 하나님의 증인에 불과함을 나타낸다. 라. 혼인잔치(19:9) 혼인잔치의 이야기는 누가복음 14:15(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의 macarism과 유사하다. 혼인잔치에 이웃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푸는 테마는 여러 곳(마 25:10; 눅 12:36; 14:8; 에즈라 4서 9:47)에서 발견되며 메시아 연회 모티브는 묵시 문헌의 공통된 주제이다. 175 174 Aune, Revelation, Vol. 52B 896-898. 175 Ibid., 1032. 65 종말론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메시아 연회에 대해 살펴보면 유대교에서 메시아 시대는 이스라엘 족장과 영웅들이 모여 축하하고 악인은 영벌을 받는 메시아 연회로 시작된다. 메시아가 종말에 주빈으로 참석하기 때문에 메시아 연회라고 부르는데 계시록 19:7-9 에 이러한 사상이 반영되었다. 연회에 선택 받은 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보다 대적자들이 학살되는 것이 강조된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본문은 이사야 25:6-8 으로 여호와께서 산에서 만민을 위해 연회를 베풀고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고 백성들의 눈물을 닦고 수치를 제거하신다는 내용이다. 또 에녹1 서 62:12-16 에 보면 연회의 구성원, 날짜. 의인의 축복과 악인의 저주, 메시아(인자)와 함께 하는 연회 등이 명백히 나타난다. 176 쿰란 문서에도 메시아와 식사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1QSa 2.11-12). 프리스트(J. Priest)는 쿰란 공동체 식사가 메시아 연회는 아니지만 메시아의 날에 벌어지는 연회를 기대하는 것으로 구성되어있다고 주장한다. 메시아 연회에 관한 구약과 묵시문학의 가장 큰 차이점은 참여자인데 전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다면 후자는 선택 받은 자와 의인들에게로 한정된다. 따라서 심판과 축복은 묵시문학의 메시아의 날의 특징 중 하나이다. 177 계시록에서 교회들에게 희미하게 암시되던(2:7, 17; 3:12, 20) 종말적 만찬이 본문에 이르러 명확히 소개된다. 만찬(δεῖπνον)은 본문(19:9)과 19:17 에서 두 번 소개되는데 본문은 신실한 성도들의 명예를 위한 것으로 후자는 새들에게 대적자들의 살을 먹게 함으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다. 178 요한은 어린 양 혼인 잔치에 대해 상술하지 않으며 단지 청함을 받은 자가 복이 있다는 사실만 기록한다. 9 절로만 보면 하객으로 청함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되나 7-8 절을 미뤄보면 세마포를 입은 어린 양의 신부로 부름 받은 것이 된다. 의로운 행실의 표로 세마포를 입히고 176 12And they shall be a spectacle for the righteous and for His -elect: They shall rejoice over them, Because the wrath of the Lord of Spirits resteth upon them, And His sword is drunk with their blood.13 And the righteous and elect shall be saved on that day, And they shall never thenceforward see the face of the sinners and unrighteous. 14 And the Lord of Spirits will abide over them, And with that Son of Man shall they eat And lie down and rise up forever and ever.15And the righteous and elect shall have risen from the earth, And ceased to be of downcast countenance.16And these shall be the garments of life from the Lord of Spirits: And your garments shall not grow old, Nor your glory pass away before the Lord of Spirits. And they shall have been clothed with garments of glory,( R. H. Charles, The Apccrypha and Pseudepigarpah of The Old Testament Vol.II (Berkeley: PSEUDEPIGRAPHA the apocryphile press), 228-229. 177 J. Priest, “The Messiahs at Qumran,” JBL 82 (1963): 95-100. 178 Aune, Revelation, 1032. 66 만찬에 주빈과 함께 둘러앉게 되는 것이 복되다는 권면을 한다. 7-8 절의 결혼 비유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깊은 교제의 완성을 상징한다. 초대교회 성만찬에도 나타나지만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식탁교제는 친밀한 교제를 상징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라오디게아교회에 책망하며 훈계하는 3:20 에도 잘 드러난다. 179 9 절의 혼인 잔치로의 초대는 7-8 절의 비유에 대한 해석학적 재언급이다. 청하다(call, κλητοί)는 하나님께 주도권이 있음을 나타내는 단어이며 단순히 ‘초대하다’라는 의미가 아닌 ‘세우다’(elect)는 의미가 강하다. 7-8 절에는 어린 양의 신부로 교회가 준비된 것으로 보이나 반면 9 절에는 개개인의 성도들이 혼인 잔치의 손님으로 초대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12:17절처럼 공동체 전부와 공동체 일원은 동일시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본문의 비유가 다소 부자연스럽지만 7-8 절의 신부와 9 절의 청함 받은 자는 동일한 대상으로 보여진다. 180 본문은 종말적 혼인잔치의 테마가 유일하게 나타나는 곳으로 저자는 임박한 혼인 잔치와 새들을 초청하여 대적의 살을 먹게 하는 장면과(19:17-18) 조화를 이루게 한다. 181 초대 받은 무리가 큰 무리라는 점은 7:9-17과 19:1에서도 알 수 있다. 3. 맺는 말 셋째 macarism(16:15)은 정황과 그 배치가 적절하다. 즉 문학적 진행보다는 저자의 신학적 논제인 ‘예기치 못할 주의 재림의 시기와 독자들의 경각심을 고취 시킴’을 고려할 때 그 배치가 적절하다. 즉 1:3의 말씀을 지키라는 권면, 14:13의 주 안에서 죽는 자에 대한 축복에 이어 깨어 옷을 지키라는 권면으로의 점진적인 이행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더욱 명확해진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종류의 유혹으로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깨어 지키고, 영원한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합당한 신앙의 품격을 지켜내라는 것이다. 또 1:3과 14:13은 진행되는 진술에 대한 결론적 성격을 갖는 반면, 본 절은 짐승과 용의 활동(13:4-18)에 대한 주의 격앙된 반응을 보여주는 macarism이다. 구약에서 주의 날에 대한 우주적 징조와 신약에서의 파루시아에 대한 주의 언급은 하나로 모인다. 즉, 예언과 묵시적 언급에 의존하여 신적 개입을 기다리며 179 Beale, 944. 180 Ibid., 945. 181 Aune, Revelation, 1034. 67 깨어있으라는 권면이다. 이 기다림 동안 열방에 복음이 전파되고(14:6), 백성들이 회개하도록 부르심 받고(14:7),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8:6-9:19; 10:6-7). 넷째 macarism 인 20:6 은 바벨론 심판을 결론 짓는 기능을 한다. 본 절에서 처음으로 종말적 연회가 충분히 소개된다(cf. 2:7; 3:12,20). 본 절이 삽입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악인의 심판과 성도에게 임하는 영광에 대하여 매듭짓는 솔기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구조적으로 14:13 과 유사성을 보이며 주제 면에서 선택된 자와의 잔치와 하나님이 새들에게 베푸시는 악인을 심판하는 잔치가 대비된다(19:17-18). 보캄은 왕의 아들 혼인잔치에 초대 되어 참석하는 것은 왕의 명예를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왕위의 승계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초대에 불응하는 것은 왕의 권위를 모욕할 뿐 아니라 정치적인 반역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또 연회 의복은 기쁨으로 연회에 참석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 평상복으로 나타나는 것도 왕을 모욕하는 것일 뿐 아니라 왕의 기쁨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왕이 의상을 갖추지 않은 자를 단지 연회장 밖으로 내치는 것은 너무나 관대한 것이 되며 지옥으로 던져지는 이미지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석한다(마 22:13; 8:12; 13:42,50).182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종말적 혼인잔치에 참석하는 것은 성도로서 특권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를 드높이며 또한 우리를 구속하여 주신 하나님께 우리의 충성된 신앙이 변치 않았음을 드러내는 의무이다. 혼인잔치에 합당한 깨끗한 의복을 입는 것은 우리가 신앙의 품격을 유지하는 것으로 이 또한 종말적 혼인잔치에 신부로서 또 하객으로서의 마땅히 표현할 즐거움이며 동시에 초청하신 하나님의 명예를 드높이는 우리의 실천적 윤리이다. 제 6 절 본문주해(4): 절정-두루마기를 빠는 자의 복(22:14) 182 R. Bauckham,“The Parable of the Royal Wedding Feast (Matthew 22:1-14) and the Parable of the Lame man and the Blind man (Apocryphon of Ezekiel),”JBL 115/3 (1996): 471-488. 68 Μακάριοι οἱ πλύνοντες τὰς στολὰς αὐτῶν, ἵνα ἔσται ἡ ἐξουσία αὐτῶν ἐπὶ τὸ ξύλον τῆς ζωῆς καὶ τοῖς πυλῶσιν εἰσέλθωσιν εἰς τὴν πόλιν.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22:14) 1. 구조와 정황 본문은 에필로그내의 둘째 macarism 이며 계시록 전체의 마지막 macarism 이다. 또한 6+1 의 구조에서 절정에 해당되는 것으로 일곱 macarism 의 결론에 해당된다. 본문은 둘째와 넷째처럼 3 인칭 복수(14:13; 19:9) 구문을 갖는다. 이런 구문은 마태복음 5:3-12, 누가복음 6:20-23, 그리고 4Q525 3.1-3 에서도 나타난다. 22:14, 15 은 저자가 계시록 전체를 결론지으면서 주는 권면으로 충성됨의 축복과 충성되지 못한 자에게 임하는 저주를 나타낸다. 개, 점술가, 음행과 살인과 우상 숭배자들 그리고 거짓말 하는 자들은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 밖으로 쫓겨나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성밖에 밀려나는 자들의 이러한 행위들은 짐승과 그 추종자들의 행위이며(9:20-21; 13:15; 14:8-11, 16:2; 17:2; 18:3, 9; 19:2)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지는 둘째 사망에 처해진다(21:8). 본문은 십자가의 조명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점검하게 하는 말씀으로 마태복음 5: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 임이요)과 맥을 같이 한다고 스웨트는 주장한다. 183 2. 본문 이해 가. 두루마기를 빠는 자(22:14)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빠는 자(οἱ πλύνοντες τὰς στολὰς αὐτῶν)라는 표현은 7:14(ἔπλυναν τὰς στολὰς αὐτῶν)의 표현과 시제를 제외하고는 거의 유사하다. 7:14(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이 출애굽기 19:10, 183 Swete, The apocalypse of St. John, 304. 69 14(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백성에게 이르러 백성을 성결하게 하니 그들이 자기 옷을 빨더라)의 암시로 볼 수도 있으나 7:14 와 달리 출애굽기에는 속죄의 개념이 없다. 따라서 본문은 속죄 개념이 있는 다니엘서 11:35(또 그들 중 지혜로운 자 몇 사람이 몰락하여 무리 중에서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되며 희게 되어 마지막 때까지 이르게 하리니)의 암시로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두루마기를 빠는 자에게 보상으로 생명나무 열매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본문은 기능적으로는 2:7(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과 대등한 관계를 갖는다고 보여진다. 184 두루마기를 빠는 것의 비유는 크게 세가지로 해석되는데 첫째는 성도의 세례로, 둘째는 도덕적인 생활을 향한 결단, 셋째로 순교이다. 세례로 보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는데 먼저, 초대 기독교에서 몸을 씻는 것과 세례는 연관이 있지만 두루마기를 빠는 것과는 무관하며 세례는 단회적이나 본문에서는 지속적으로 두루마기를 빠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세례는 누군가에 의해 행해지나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자기가 주도적으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로마이어(E. Lohmeyer)등은 14:13 을 통해 본 절을 순교로 보는 해석을 하였지만 185 본문 문맥상 시간의 제약이 없어서 저술 당시의 성도뿐 아니라 후대의 성도들에게도 적용되는 지속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순교로 보기 어렵다. 오니는 두루마기를 빠는 것은 따라서 도덕적, 영적 정결이나 개혁을 의미하며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반드시 적극적으로 새롭게 해야 할 삶의 (또는 죽음의) 방식의 변화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86 두루마기를 빠는 것에 대한 구약적 배경은 정결하지 못한 자(출 19:10, 14; 레 13:6, 34; 14:9; 15:6-27; 17:15; 민 19:7,8,19; 31:24)나 선택된 자 (민 8:7, 21)를 위한 제의적 정결의 의미가 강하다. 이는 간혹 윤리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삼하 19:24; 레위언약 2:3). 187 쿰란 공동체에 이르러 불결하다고 간주된 자들에게 옷과 몸을 씻는 제의적 행위는 공동체 식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행해야 할 일이었다(4Q 514, 4Q277). 레위인이 회막에 들어가기 184 Aune, Revelation, 1219. 185 E. Loymeyer, Die Offenbarung des Johnannes, 180, Nwachukwu, Beyond Vengeance and Protest, 224 에서 재인용. 186 Aune, Revelation, 1220. 187 Loc. cit., Then I washed my garments [ἔπλυνα τὰ ἱμάτιά μου] and having purified them with pure water, then I washed [ἐλουσάμην] my entire self in living water, and I made all my paths upright. Aune 의 번역을 인용함. 70 위해서 두루마기를 빨아야 했듯이(민 8:7, 15) 쿰란 공동체 또한 도성에 들어 가거나 제단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옷을 빨아야 했다(11Q19=11QTemple 45:8-9,16-17; 희년서 21:16). 이는 정결의 문제는 개인적 선택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와의 단절로 이어지는 심각한 것임을 알게 해준다. 본문과 3:4와의 관련성을 보면 사데 교회의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는 곧 신앙을 버리지 아니한 자들이며 이기는 자라고 규정하고 2:7 에서는 이기는 자에게 생명나무 열매가 주어진다. 따라서 옷을 더럽히지 아니하는 자는 신앙을 지키고 이겨내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저자는 계시록을 결론 지으며 신앙을 지켜 인내하고 이겨내기를 권면하고 그러한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이 주어진다고 격려한다. 나. 생명나무(22:14) 본 절에서 생명나무는 문을 통해 도성에 들어간 뒤에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22:2) 진술의 선후가 도치된 점이 특징이다. 이는 계시록에서 흔히 사용되는(3:3, 17; 5:5; 6:4; 10:4, 9; 20:4– 5, 12–13) 수사기법으로 도치법(hysteron-proteron[last-first])이라 불린다. 188 생명나무에 대한 해석학적 전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생명나무 모티브는 창세기 3:22- 24 에서 유래되었다. 생명나무는 에덴동산의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으나 타락 이후 잃어버린 낙원의 상징이 되었다. 창세기의 생명나무가 가지고 있던 불멸성 모티브는 잠언에서는 지혜, 의인의 열매, 소원이 이뤄짐, 온순한 혀 등으로 현실의 세계에서 맛볼 수 있는 실천적 모색으로 대체된다. 이러한 예들은 마르쿠스(R. Marcus)가 지혜문헌에서 기존의 신비적 용어가 세속적 용어로 바뀌었다는 주장과 일치한다. 189 유대문헌에 이르러 낙원을 묘사하며(단 4:12; 에즈라 2 서 2:18; 8:52; 에녹 2서 8:3-4), 의인에게 주어져 영생을 얻게 하는 것으로(솔로몬시편 14:3) 그리고 선택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음식으로 묘사된다(에녹1서 25:24-25, 레위언약 18:11). 190 잠언에서 현세적 실천적인 모티브로 변환되었던 생명나무 모티브는 초기 유대문헌에서 종말적 모티브로 다시 살아나고 선택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의 의미로 발전한다. 이러한 해석학적 188 Ibid., 1222. 189 D.N. Freedman, The Anchor Yale Bible Dictionary. Vol. 6 (New York: Doubleday 1996), 658-659. 190 Aune, Revelation, 1221-1222. 71 전통이 계시록에 이르러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주어지는 생명나무(22:19)는 창세기의 생명나무에 부과되었던 불멸성 모티프를 다시 회복한다. 창세기의 생명나무에 금지된 접근이 계시록에서 접근할 권세(ἡ ἐξουσία)로 바뀐다. 이는 에덴 동산 이후로 금지되었던 실락원의 회복191과 하나님 임재 안에 거하게 되는 이미 개시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래상을 담고 있다. 잠언 초기 유대 문헌 요한계시록 3: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11:30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 13:12 소망이 더디 이루어지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거니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곧 생명 나무니라 2 Enoch 8:3 And in the midst of the trees that of life, in that place where on the Lord rests, when he goes up into paradise; and this tree is of ineffable goodness and fragrance, 1Enoch 25:5 It shall then be given to the righteous and holy. Its fruit shall be for food to the elect: it shall be transplanted to the holy place, to the temple of the Lord, the Eternal King. Psalms of Solomon 14:3 The pious of the Lord shall live by it forever; The Paradise of the Lord, the trees of life, are His pious ones. 4 Esdras 8:52 For for you is opened Paradise, planted the Tree of life; the future Age prepared, plenteousness made ready; a City builded, a Rest appointed; Good works established , wisdom preconstituted ; 4 Maccabees 18:16 He quoted to us the proverb of Solomon, "He is a tree of life to all them that do his will." Testament of Levi 18:11 And he shall give to the saints to eat from the tree of life, And the spirit of 2:7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191 낙원 παράδεισξο(계2:7)은 창2:8, 15등에서 ‘동산’으로, Eccles 2.5, Song of Sol 4.13에서는 ‘담이 둘러진 공원 walled-park’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담으로 두르다는 뜻의 pairidaiza라는 페르시아 단어를 기원으로 한다(Stephen S. Smalley, The Revelation to John;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of the Apocalypse . (London, SPCK.2005), 64) 이 모티브는 계시록에서 도성의 이미지로 변환된 것으로 보인다. 72 15:4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holiness shall be on them. Pirke Aboth 6:7 Great is Torah, for it gives to them that practice it life in this world and in the world to come; as it is said: 'For they are life to them that find them, and health to all their flesh: 'She shall be a tree of life to them that lay hold upon her, and happy are they that retain her.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표 9. 생명나무 모티브의 해석학적 전통. 3. 맺는 말 일곱 macarism 중 마지막인 본문은 그리스도가 왕으로 다스리시는 새 왕국에 들어가는 성도의 승리를 나타내는 종말적인 복을 묘사한다. 두루마기를 빤다는 것은 영적 정결을 이루는 것이다. 스스로의 영적인 정결을 점검하는 이 상징적인 행위는 그러나 단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행위이다. 생명나무 모티브는 창세기, 잠언에서 희미하게 그 존재를 드러내다가 초기 유대교의 묵시적 문헌에 이르러 종말적 소망이 구체화되고 낙원에서 의인에게 주어지는 영광으로 보편화된다. 창세기에 금지되었던 낙원이 계시록에서는 회복을 넘어 권세로 주어진다. 이를 위해 저자는 성도들에게 스스로 그리고 부단히 신앙 점검하기를 권면한다. 계시록에서 의인은 성에 들어가 생명나무를 얻게 되는 특권이 주어지나 악인은 성밖으로 쫓겨나는 것은 복과 화가 대비되는 지혜문학적 주제인 양자 선택의 표현 방식이다. 성문에 들어가는 것이 공간적으로 먼저 묘사되어야 하나 생명나무에 접근하는 것이 먼저 묘사된 이유는 불명확하나 아마도 계시록 저자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 하나님 왕국에 동참하는 것임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본 장에서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macarism의 구조와 문맥 정황 그리고 본문의 중심적 주제들을 살펴보았다. 필드가 제안한 6+1 의 구조는 일곱 macarism 을 바라보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였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A,A’→ B,B’→ C,C’로 이행할수록 저자의 메시지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이는 절정의 일곱째 macarism 과 주제적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일곱 개의 본문 주해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A 와 A’인 1:3과 22:7 은 서로 수미쌍관을 이루어 시작과 끝에서 재차 강조되는 저자의 목회적 중심 주제라고 할 73 수 있다. A 와 A’의 핵심 단어인 ‘지키다’(τηρέω)동사는 윤리적 구조를 제공하는 전형적인 지혜문학의 증거이다. 저자는 τηρέω 동사를 통해 공동체에게(1:3) 말씀에 대한 충성심(3:8,10; 22:7)을 고양하고 박해의 때를 인내하고(14:12) 이겨내도록 권면한다. 그리고 말씀을 지키는 것이 이기는 것임과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 복이 있음을 선포함으로 제시된 윤리적 삶을 살기를 권면한다. B-B’인 14:13 과 20:6 을 살펴보면, 6:10 의 ‘언제 우리의 피를 갚아주시겠냐’는 순교자들의 탄원에 대한 응답으로 제시되는 14:13 에서는 지혜문학의 신학적 특징 중 하나인 신정론적 질문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왜 악인은 승승장구하고 의인은 고통 받는가라는 질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순교자들에게 ‘잠시 안식하고 있으라’는 응답이 예비적으로 주어지고(6:11) 그 연장선상에서 본문이 진행된다.‘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되다’고(14:13) 선포하는 이유는, 밤낮 쉼을 얻지 못할 우상 숭배자들에 비해, 주를 섬기다 죽는 죽음 뒤에는 영원한 안식이 준비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본문은 죽음을 무릅쓰고 신실하게 믿음을 지키라고 권면한다. 죽음으로 믿음을 표현하는 행위가 믿음의 조건이 되지 못하지만 진실된 믿음의 표현이며 이러한 핍박과 환란을 인내하며 지켜나가는 것이 성도의 윤리이다. 20:6 의 첫째 부활은 일차적으로는 순교자들에게, 이차적으로는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되고 살아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중생하여 생명을 얻는 상태라고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부활(ἀνάστασις)은 죽음에서 삶으로 다시 일어남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람의 이전 위치에서 일어나 떠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에 첫째 부활은 이전의 비참함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지도 하의 새로운 자리로 옮겨짐을 의미한다. 따라서 저자는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의 본래 관계를 회복을 기대한다고 본다.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에 대해서는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사망, 성도의 다스림과 사탄의 붙잡힘 등과 같이 요한이 즐겨 사용하는 대비되는 개념을 병행하는 기법 안에서 이해된다. 따라서 첫째 부활과 둘째 사망은 순차적인 것이 아닌 지혜문학의 주제적 특징인 둘 사이의 선택의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 저자는 성도들에게 둘째 사망의 멸망의 길을 가지 말고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하는 첫째 부활의 복된 길을 가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C-C’는 16:15 에서 종말적 긴급함을 가지고 회개하여 파루시아의 때에 벌거벗음을 보이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권면이다. 따라서 본 절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심판을 피하도록 마지막 박해에 저항하고 부단히 경계하라는 말씀으로 해석된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으로 부끄러운 우상숭배가 드러나 음녀 바벨론와 동일시될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의 정황으로 볼 때 74 ‘깨어 옷을 지킴’이란 우상 숭배에 동참하고 짐승을 경배하라는 요구를 거부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의를 유지하라는 부름을 받아 세상으로부터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는 것으로 이는 윤리적 실천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렇게 지켜진 성도의 명예, 의로운 행동인 옷은 ‘어린 양의 혼인잔치(19:8-9)에 참여하는데 갖춰야 할 필수조건이다. 19:9 의 혼인잔치는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누릴 수 있는 완전한 연합을 의미하며 치열한 영적 전투에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이러한 복을 누리게 된다. 이는 14:13, 22:7과 형식상 내용상 결속되어있고 전후 문맥상 의외성을 보이는데 이런 이유로 계시록 본문에서 솔기와 같은 역할을 하며 해석상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즉, 1:3 의 말씀을 지키라는 권면, 14:13 의 주 안에서 죽는 자에 대한 축복에 이어 본 절에서 깨어 옷을 지키라는 권면으로 점진적인 이행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본문은 혼인잔치에 초대 받은 자들에 대한 축복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복된 것이라고 결론 짓는 기능과 어린양을 따른 성도들의 역전된 상황을 소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일곱 개의 macarism 에서 저자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중심 사상이라고 추정된다. 따라서 19:9 은 이와 짝을 이루는 16:15 이 말하는 ‘세상의 모든 종류의 유혹으로부터 죽음을 각오하고 깨어 지키고, 영원한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합당한 신앙의 품격을 지켜내라는’ 권면에 힘을 실어주는 근거가 된다. 성도로서 종말적 혼인잔치에 참석하는 것은 특권이며 의무이다. 이는 하나님의 명예를 드높이며 그에게 충성된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합당한 의복을 입는 것은 우리의 신앙의 품격을 드러내는 것이며 동시에 초청하신 하나님께 경의를 표현하는 당연한 실천적 윤리이다. 일곱 macarism 의 절정인 22:14 은 두루마기를 깨끗하게 유지하듯이 십자가의 조명 속에 자신의 내면을 조망하라는 권면이다. 이는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정결하기 위한 노력이며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의 변화를 내포한다. 저자는 계시록을 결론 지으며 신앙을 지켜 인내하고 이겨내기를 권면하고 그러한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이 주어진다고 격려한다. 일곱 macarism중 마지막인 본문은 그리스도가 왕으로 다스리시는 새 왕국에 들어가는 성도의 승리를 나타내는 종말적인 복을 묘사한다 처음 제기한 문제로 돌아가보자. 고통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성도에게 참 위로는 무엇인가? 욥기를 보면 욥이 세 친구 앞에서 제기하는 신정론적 질문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하나님이 창조의 주인이심을 스스로 보여주심으로 이 논쟁을 잠잠하게 하신다. 이런 지혜전승이 75 요한계시록에도 계승된다고 보여진다. 즉, 누가 진정한 하나님이시고 심판의 주인이신지를 보여주시는 것으로 순교자들의 질문에 응답해주신다. 많은 상징과 묵시적 표현들은 요한을 통해서 우주의 실재(reality)를 드러내주시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욥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예배를 드렸듯이(욥 42:8) 계시록에서도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우리의 바른 태도는 예배임을 보여준다(4:9; 5:12-13;, 7:10-12; 11:16-17). 하나님의 현현과 그에 대한 인간의 예배, 이 것이 신정론적 질문을 던지는 고통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진정한 위로가 된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macarism의 주해를 통해 얻어진 사실은 먼저 A-A’에서 독자들에게 말씀을 지키라는 실천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나아가 B-B’에서 조금 더 나아가 그렇게 말씀을 지키다 보면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주변 상황과의 갈등을 예상하고 죽기까지 인내하여 첫째 부활에 참여하라고 촉구한다. 이러한 권면을 받은 독자들이 느낄 부담감을 C-C’에서 해결해준다. 환란과 핍박에 대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인내하는 자는 혼인잔치에 참여할 예복을 지키는 것이 된다. 이렇게 예복을 지킨 자는 신랑 되신 어린 양의 신부이며 동시에 하객으로 초청받아 혼인잔치에 참여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마침내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게 된다. 이것은 진정한 해피 엔딩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고통의 현실에 대하여 저자는 진통제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각성제를 주고 더욱 고통에 맞서 싸우라고 권면한다. 그러면 이러한 해석을 바탕으로 요한계시록을 읽음으로 우리는 그럼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는가? 참된 복(μακάριος)과 신앙을 지켜내는 것(τηρέω), 이 두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고 사료된다. 종말과 현재,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 그것은 묵시문학의 가장 큰 특징인 시간과 공간의 초월성에 비추어 종말의 관점에서 현재를 바라보고 하늘의 관점에서 지상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종말과 현재 사이에 하늘과 지상 사이에 존재하는 연속성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요한계시록에는 미래에 대한 개방성과 결정성 사이의 불일치가 존재한다. 미래의 개방성과 결정성 사이의 균형에 대한 보다 설득력 있는 설명은 보캄에 의해 제시되었는데, 15-19장의 역할에 대한 설명에서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15:3-4의 모세의 노래가 16:1-18:24에 등장하는 심판에 대한 환상과 연결되어 배치된 76 구조는 인류를 향하여 근본적인 선택을 촉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192 . 이러한 조건성의 요소는 또한 일곱 교회에 전달하는 메시지 속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데, 이 메시지 속에서 주어진 명령은(예를 들면 회개하라는) 교회들의 반응을 촉구하며, 그 반응의 성격은 그 교회 공동체가 축복을 받을지, 심판을 받을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특징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동으로 도래하게 될 최종적인 완성을 보여주는 전반적인 틀 안에 존재하는 것이긴 하지만, 상당한 정도로서 조건성의 요소를 계시록 본문의 신학 속에 드러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윤리적 삶을 제거해버린 휴거신학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휴거 개념은 실제적으로 역사의‘단절’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신원은 역사 안에서가 아닌 밖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도들의 희망과 이 세상을 변화시키도록 추구해야 한다는 윤리적 명령을 빼앗는 것이 되는 것이다. 계시록의 주 기능은 권면에 있다. 심판의 시기에 관한 미래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묵시의 주된 수사적 기능이 아니다. 심판의 기능 또한 징벌적이라기 보다는 훈육적인 면이 있다. 적어도 인, 나팔 심판에서 일곱째 심판 전에 성도들의 기도가 하늘에 들려지는 동안 멈춰지는 것을 볼 때 최종 심판 전에 회개의 기회를 주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계시록 신학은 신실한 자들에게 더욱 신실함을 지키도록 하며 동시에 실족한 자들에게 돌이켜 회개하도록 권면하는 윤리적 목적을 가진다. 193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윤리적 삶을 촉구한다. 요한계시록이 제시하는 기독교 윤리는 종말론적 틀 안에서 현재가 미래적 관점에서 보여지고 또 그런 관점에서 살도록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계시록을 통하여 실천적인 윤리 원칙을 추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는 서신서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한계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러한 실천적 윤리 원칙에 관하여는 구약 및 복음서 등과 연계하여 통합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192 R. Bauckham, The Climax of Prophecy, 297-307. 193 B. Witherington III, The Indelible Image, 755. 제 4 장 결론 요한계시록 해석은 많은 어려운 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계시록이 올바르게 해석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배경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요한계시록의 잘못된 해석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배경 연구의 부족에 기인한다. 또한 그간 요한계시록 저자가 목회적 관심으로 전하려고 했던 진정한 메시지에 대한 고찰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본고는 이런 관점에서 요한계시록 장르에 대한 이슈들을 점검해보고 묵시문학이 가지고 있는 지혜전승적 요소들을 찾아 보았다. 아울러 지혜문학의 내용과 신학적 주제적 특징들을 살펴보았으며 이를 통해 계시록에 나타난 지혜전승적 요소들을 찾아냈다. 나아가 대표적 지혜문학적 표현인 macarism의 문학적 특징을 살펴보면서 그 속에 담긴 해석학적 전통을 탐구하였다. 이러한 배경연구를 바탕으로 요한계시록의 일곱 macarism에 대한 본문연구를 시행하였다. 먼저 그들의 구조적 특징을 살펴보고 그에 입각한 일곱 macarism의 주해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기에 보고하고자 한다. 첫째, 묵시문학에는 지혜전승적 요소가 있다. 따라서 묵시적 관점으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것이 단지 윤리적 해석을 기피하고 초월적 해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권면과 위로의 사회적 기능이 있으며 이념적 윤리적 메시지가 있다. 이러한 지혜전승적 요소는 윤리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둘째, 요한계시록에는 지혜문학의 특징들이 있다. 먼저 신학적 특징인 신정론적 요소가 요한계시록에 있으며 주제적 특징인 둘 사이의 선택이라는 모티브가 담겨 있다. 지혜문학의 문학적 요소는 계시록에 지혜전승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다. 78 지혜 전승의 기본적 문학 양식인 격언과 훈계 모두가 요한계시록에 발견되는데 전자는 ‘복이 있도다’(macarism)라는 표현으로 요한계시록에 일곱 번 사용되며, 후자는 명령문과 동기절이 어우러진 문장형태로 계시록 2-3장에서 많이 발견된다. 셋째, macarism은 해석학적 전통을 통해 구약에서 출발하여 초기 유대 문헌을 거쳐 신약으로 계승된다. 구약에서 유대교 예배의식 중 지혜 격언 형태의 송영이나 권면을 담은 명제적 진술로 시작되어 유대인들의 박해 상황을 통해 종말론적 macarism으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종말론적 윤리적 특징이 요한계시록으로 이어진다. 넷째, 요한계시록의 일곱 macarism의 구조와 문맥 속에는 요한계시록 저자의 목회적 관심이 담겨있다. 일곱 macarism의 6+1의 구조는 일곱 macarism을 바라보는 새로운 해석의 길을 열어 준다. 교차대구를 이루는 여섯 macarism 속에서 A,A’→ B,B’→ C,C’로 이행할수록 저자의 메시지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이는 절정에 해당되는 일곱째 macarism과 주제적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macarism의 주해를 통해 얻어진 사실은 먼저 A-A’에서 독자 들에게 말씀을 지키라는 실천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B-B’에서 조금 더 나아가 그렇게 말씀을 지키다 보면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주변 상황과의 갈등을 예상하고 죽기까지 인내하여 첫째 부활에 참여하라고 촉구한다. 이러한 권면을 받은 독자들이 느낄 부담감을 C-C’에서 해결해준다. 환란과 핍박을 죽음을 각오하고 인내하는 자는 혼인잔치에 참여할 예복을 지키는 것이 되고 이는 신랑 되신 어린 양의 신부이면서 동시에 하객으로 초청받아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하면 마침내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가 영생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를 위해서 부단히 신앙의 인격을 정결하게 유지하라는 저자의 윤리적 실천적 권면이 담겨있다. 79 참고문헌 이달. 요한계시록의 장르와 해석. 서울: 글누리, 2008. 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서울: 이레서원, 2006. 천사무엘.“구약성서의 지혜문학과 창조신앙.”기독교문화연구 2 (1997): 312-315. ________“지혜문학과 묵시문학의 관계.” 한국기독교 신학논총 32집(2005): 49-67. ________ 지혜전승과 지혜문학. 서울: 동연, 2009. Bauckham, R. 요한계시록 신학 (The Theology of the Book of Revelation). 이필찬 역. 서울: 한들출판사, 2000. Elwell, Warlter A. and Weaver, J. D. 20 세기 복음주의 성경신학자들 (Bible Interpreters of the 20th Century). 장세훈 역. 서울: 이레서원, 2001. von Rad, Gerhard 구약성서신학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허혁 역. 서울: 분도출판사, 1977. Ursinus, Z.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The Commentary of Dr. Zacharias Ursinus on the Heidelberg Catechism). 원광연 역. 서울: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2006. Alford, H. Greek Testa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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